로즈버드 -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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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테일은 많은 사람이 알아챌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것들은 단 몇 명만을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그 몇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작곡을 하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그들이 만난다면 참 잘 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 된 일일 뿐이란다.

맞는 말이다. 디테일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물찾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도 그 보물찾기에 꽤 열심인 듯 하다.

 

작가는 일곱 사람에게서 각자의 로드버드를 찾아내려고 한다. 로즈버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디테일이지만 그 사람의 가려져 있던 본질을 폭로하는 상징이라고 한다. 작가는 심오함을 건져 올리 수 있는 사소함을 발견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 그저 '장미꽃 봉오리'라고 정의될 수도 있는 로즈 버드는 '시민 케인'에서 등장했던 것 같다. 유명해서 대략의 내용은 알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 봐야 겠다.

 

키플링에게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롤스 로이드에 '공작부인'이라는 이름이 있었는지, '만약'이라는 시의 유명세를 지켜 본 그의 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키플링에 대해서 그다지 알지 못했다는 걸 알고 검색을 해봤는데, 풀네임으로 검색하지 않으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가방에 대한 이야기는 잔뜩 찾을 수 있겠지만,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을 찾으려면 풀네임으로 검색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의외로 사소한 것인 경우가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인생에 전환점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그 개인에게 커다른 의미를 지닌 어떤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소함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상대방이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창작물을 작가의 시각에 좀 더 접근해서 받아들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봐주기 원했던 것을 찾아낼 수 있을 지도. 그렇게 된다면 그 작품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걸 느낄 수 있을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마주한 때와 어떻게 다를까. 여러가지 궁금한 게 생긴다.

 

찰나의 거장이라고 불리운 브레송의 접이식 의자파트는 읽으면서는 조금 아쉬웠다. 브레송에 포커스를 둔 것이라기 보다는 작가와 브레송의 만남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브레송과의 만남으로 인한 자신의 감동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어서 조금 포인트에 어긋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인들의 미처 몰랐던 일부분을 알게 되어서, 그래서 그들에게 이전보다는 한걸음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카소의 그랑조귀스탱 가 7번지에, 파울 첼란이 풀어놓은 시계에, 보나르의 호주머니 속에 그들이 추구하던 것이, 그들의 삶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들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잡아내고 있다. 작은 것이 스쳐지나가기 섭섭할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을 소개한 파트가 인상적이었다.

고마움과 빚이란 제목으로 된 짧은 글이 함께 있다. 전기는 늘 앞사람들의 책에 큰 빚을 지고 있으니까, 이 책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작가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더워서 그런지 책 읽는 속도가 더디었고, 콕 집어낼 수는 없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브레송이랑 아는 사이라는 거랑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참석한 걸 자랑하는 거 같다라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참고문헌을 소개하고 있는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찬찬히 책을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아직 작가가 책 속에 숨겨 둔 로즈버드를 찾지 못한 것 같으니까. 작가가 숨겨 놓은,그저 그쳐 지나갔을지 모르는 보물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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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리플리 엔터테인먼트 지음 / 보누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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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을 때 주위에 사람들에게 '에헴'하고 목청을 가다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상대방이 '정말?' 또는 '왜?'라는 반응을 보인다.

다른 책이었으면, '그러니까 말이지...'로 시작하는 꽤 긴 문장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 책의 전후단락을 요약해서 브리핑을 하는 기분이 든다. 궁금하면 읽어보라고 말하는 것은 왠지 매정한 것 같기도 해서 주저리 주저리 설명을 해댄다. 그리고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문장이 한귀로 들어가서 반대편 귀로 쏟아져 나오는 게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때때로 있다. 설명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우선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적절한 차원에서 필터링을 하고 있다.

'왜?', '진짜?'라는 반응에 대응하는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은 책 표지를 보여주며 싱긋 웃는 것이니까.

'믿거나 말거나!'

 

여는 글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신에게도 빠삭한 분야가 하나쯤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는 문장에서 웃음이 났다. 당신이 알던 세상을 넓히고,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이 책이 도와줄 것이라며, 이제 '믿거나 말거나!'의 세계는 당신의 것이라는 문장은 자신감에 넘친다. 글자 색을 다르게 해서 강조하면서 밑줄까지 쳐있는 여는 글은 처음 본 것 같다. 여는 글마저 신기했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현대의 마르코 폴로라고 불리는 로버트 리플리가 수집한 것이다. 그는 기묘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전세계198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들렸었고,  책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발견할 수 있었다.  

리플리 그 자체가 믿거나 말거나였다고 그를 아는 지인들이 평가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리플리가 스스로 남긴'믿거나 말거나'와 그의 삶의 일부분도 소개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를 만든 사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믿거나 말거나!'는 짧은 이야기들이 무수히 모인 한권의 책이다. 찬찬히 읽어가고 있노라면, 왜 작가가 '믿거나 말거나!'라는 타이틀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한 일들이 정말 많이 모여있다. 분명히 칼럼 연재 당시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한번에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는 것의 즐거움을 막 터득한 어린아이의 끊임없이 쏟아지는 '왜'공세에 시달릴 때도 사용할 수 있을까? '글쎄, 믿거나 말거나'라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진다. 대충 설렁설렁 대답해주다가 귀찮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더 넓다는 것, 그리고 엄청나게 낮은 확률일 지는 몰라도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발톱보다 손톱이 2배 빨리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심할 때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엄청 신기한 내용들이 많으니까. 주말에 방바닥을 뒹굴거리면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어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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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배급회사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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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배급회사'라는 책 제목은 그 자체로는 사랑스럽다. 하지만 피터팬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믿음과 웃음으로 기운을 얻어 빛을 반짝이며 되살아나는 사랑스러운 요정을 호시 신이치의 책에서 만나 볼 수 없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호시 신이치의 요정은 어떤 모습일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나서 역시나 했다. 우선 모습이 틀리다. 다람쥐 크기에 촌스러운 회색털, 날개가 있어서 조금은 날 수 있는 외계생명체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그들의 목적도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호시 신이치에게 일반상식적인 관념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그의 매력이고, 그의 책을 읽는 이유니까.

플라시보 시리즈를 읽다보면,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드는 스토리들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사소하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들은 잡아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요정 배급회사'을 읽고나서도 그런 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지폐는 N박사의 항료가 섞인 잉크로 찍어냈을까라던가, 우리를 조정하는 원대한 계획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점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착한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우게 된다. 끝도 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줄을 서서 무의미한 스탬프를 받는 공무원들, 손님들의 목마름을 모른척 한 대가로 갈증에 시달리는 웨이트리스, 자신이 만들어 냈던 소음을 이어폰으로 들어야 하는 폭주족과 참을 수 없는 음향을 만들어 낸 사람들, 담배연기로 가득 찬 작은 부스 속에서 벽을 두드리는 흡연자들의 모습을 읽다보면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별 생각없이 무신경하게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스트레스는 의외로 작고 사소한 일로 증폭되는 것이니까. 세심한 배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행동한다면 지점이 생길 정도로 지옥이 포화상태가 되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원대한 계획 아래, 육아기에 의해 길러 진 성인이 된 아이들을 육아기의 목소리가 조정한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다. 대학 축제때 신입생을 상대로 담배나 주류를 무상 제공했던 마케팅 방법이 언뜻 떠올랐다. 미미하게 하지만 철두철미하게 접근해서 강력한 효과를 내는 상업술이 섬뜩할 정도로 무섭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기발함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기분맞춤보험이었던 거 같다. 작지만 그냥 지나쳐버리기에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문제들을 보상해 주는 보험회사가 신선했다. 소소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들에 대한 한바탕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절한 상담원,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며 지급해주는 일정금액으로 스트레스는 금새 해소된다. 회사는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소비자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이상적인 쇼트쇼트 공간에서 등장하는 멋진 사업 아이템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해설에는 호시 신이치의 에세이의 일부분이 소개되어 있다. 꽤 멋진 글이다. 기회가 되면 호시 신이치의 에세이집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문장이란 표정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괜시리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장도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사고와 표정이 오롯히 담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의식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표정을 찾아볼 생각이다. 이 문장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의 몸짓은 무엇을 말하기 위한 것인지도 생각해보면서 책을 읽다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설렁설렁 읽어대기만 해서 놓쳤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마감일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분량이 짧다고 쉬울 거라는 착각은 존재할 여지도 없을 듯 하다. 짧은만큼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쉽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설에서 소개하는 작가의 모습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초조함이 느껴진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쇼트쇼트라서 주로 자투리 시간에 잠깐잠깐 읽었었다. 보통은 시끄럽고 산만한 공간이었다. 이번에는 우연찮게열대야로 뒤척이다 잠에서 잠깐 깨어났을 때, 그 시간의 정적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하나, 둘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의 상상으로 채워야 할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동안 그 부분을 놓쳤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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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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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를 읽고나서 일본에는 비틀즈를 좋아하는 작가가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비 로드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누나의 예전 남자친구라든지, 은행강도에게 억류 된 상태에서 태연하게 비틀즈 노래를 불러대는 남자가 문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스레 일본에는 비틀즈가 방문했던 역사가 있어서인가라는 쓸데없고 싱거운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어떤 소설의 장면이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부분이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신치바에서도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던 거 같다. 음색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살려주기도 하고 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사카 코타로'하면 '비틀즈'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한가지씩 남는 게 있었던 거 같다. 가끔은 상황일 때도 있고, 때로는 주인공이나 주변인의 대사일 때도 있었다. 자기가 시간을 멈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뻔뻔스러움을 가장한 당당함이라던지,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산다던지 하는 것은 언젠가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골든 슬럼버'를 읽으면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인지가 기대되었다.

이번 책은 쫓기는 한 남자의 숨가쁜 이틀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아오야기 마사하루.

아오야기 마사하루라는 말 그대로 온 세상에 추격당한다. 언론과 권력에 쫓기고, 공격당하지만 그를 알고 있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를 믿는다.

아오야기의 옛 여자친구 히구치는 아오야기의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하기에 그를 믿을 수 밖에 없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를 돕는다. 치한을 끔찍히 싫어하는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서 아오야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자들을 상대로 인생의 소중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호통을 치는가 한편, 잽싸게 쪼르르 도망치라고 카메라를 향해 소리친다. 대학시절을 함께 패스트푸드점을 누비고, 그에게 밭다리 후리기 기술을 전수해 준 고리타, 아오야기의 믿음에 답을 못줬다며 못내 안타까워하는 가즈오, 불꽃회사 사장과 그가 구해준 연예인, 그리고 철저한 감시체계를 만드는 데 일부 기여한 바 있는 연쇄살인범와 그를 운반해 준 그의 옛 동료와 주차장에서 만난 청소년까지 아오야기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움과 기운을 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신뢰를 쌓았다면, 다른 부연설명이 없더라도 그가 꽤 멋진 캐릭터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아오야기가 초콜릿을 반으로 부러뜨렸을 때, 조금 더 많은 쪽을 상대방에게 건네 준 일을 단점이라면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 외에는, 박카스 광고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바르고 성실한 캐릭터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거대한 시나리오의 주인공 대타가 되면서 긴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아오야기가 골든 슬럼버를 부르는 장면이 꽤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상태를 알리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추억이라는 행위 자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때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를 흥얼거리는 아오야기의 모습을 꽤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과거와 습관을 버려야 하는, 생존을 위해 꼴이 좀 우스워져도 도망쳐야 하는 입장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골든 슬럼버'를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톡톡 던져지는 멋진 문장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무마되고 나서 자신의 존재와 무사함을 알리기 위해 아오야기가 사용하는 방법도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이 없다면 결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들의 소통방법을 보면서, 추억의 꽤 멋진 기능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난처한 상황에서 엄마 히구치를 구해주는 그녀의 어린 딸 나나미의 재치와 귀여움도 한 몫 하고 있다.

늦은 밤에 읽기 시작할 때 즈음에 딱 100페이지만 읽자고 마음 먹었는데, 결국은 새벽에 쫑쫑거리는 새소리가 들릴 때까지 깨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사카 코타로 소설은 꼭반드시 오후 즈음에 읽어야 겠다.

 

아마도 이 문장들을 책을 덮고나서도 한참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불꽃놀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보는 거잖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옛 친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아마 말이지, 그런 때는 상대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생각?" 아오야기는 무심코 반문한다.

"추억이란 건 대부분 비슷한 계기로 부활하는 거야. 내가 떠올리고 있으면 상대도 떠올리고 있지."

 

 

"너 말이야, 바다에서 고래에게 습격을 받으면 어쩔 건데?"

......

"그러니까 가장 영리한 방법은."

"영리한 방법?"

"도망치는 거. 헤엄쳐서 도망치는 거. 그거밖에 없어. 꼴이 좀 우스워도 괜찮으니까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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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자기설명서
쟈메쟈메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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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변덕쟁이에 고집불통, 도박을 선호하는 다분히 다혈질적인 인간의 군집이라는 B형의 오명은 분명 O형들이 날조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O형이 많은 일본에서 O형을 미화하기위해 만든 수단이 '혈액형별 성격 규정 짓기'였다라는 불건전 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믿고 있다. 왠지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혈액형별 성격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약간의 신뢰를 얻고 있을 뿐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혈액형을 분류하는 것에도 ABO식외에 수많은 유형이 있어, ABO식의 단순한 분류로는 성격 규정은 힘들고, 근거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혈액형별 성격...이거 꽤 재미있지 않은가?

점이나 심리테스트 같은 건 믿고 싶지 않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보게 된다.

그냥 한번 봐두는 거야.이런 것도 알아두면 다 공부가 된다고.

그러다 맞으면 믿는다. '오호, <당신은 변덕쟁이>, 딱 맞추네'

혈액형별 성격도 이런 유형 중 하나라고 해야하나?

특히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솔직히 다 맞지는 않다. 하지만 사소하고 구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몇가지 설명들을 발견하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가의 재치있는 문장도 웃음을 짓기에 충분하다.

주위 사람들이 의욕적이면 의욕을 잃는다.

주위 사람들이 의욕이 없으면 갑자기 의욕이 넘친다.

숨기려 한 것도 아닌데 누가 물으면 숨긴다. 말하고 싶지 않다.

......

솔직히 조금 뜨끔했다.

 

하지만 다른 혈액형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다 이런 생각 한번쯤 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유리처럼 쉽게 깨질 것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세사에 불가능한 건 없지 않을까?'생각한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변명을 하면 왠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

 

사람들 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끄트머리에 이것이 B형의 전부가 아니고, B형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적어 놓고 있다.

이렇게 딴지 걸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기타 시뮬레이션도 재미있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가 B형이었다면 분명히 저럴거 같다면서 키득거렸던 것 같다. 그리고 햇님과 바람이 B형이었다면, '시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흥미 없으니 혼자서 하든지 말든지'라고 귀여운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그랬을까? 뭐라도 걸었거나 누가 촉매제같은 걸 듬뿍 뿌렸다면 더 재미있는 게임이 됐을 거 같다는 생각이 살짝 스쳐간다.  

 

책을 읽는 동안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맞아맞아' 맞장구도 쳐가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이 일본최대서점 기노쿠니야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할 만큼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걸 보면, 사람들이 참 외롭게 사는구나 싶다. 내 마음 날 같이 알아 줄 사람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메마른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어쩌면 작가의 문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 내고 위로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에 쏙 들어오는 이 작은 책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나 보다.

 

B형은 사랑받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책의 끝머리에 적혀 있는 이 문장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인건지, 사람이라서 외로운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겉돌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뫼비우스의 띠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을까? 자유롭지만 고독하지 않는 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말이다.

 

한국인의 ABO식 혈액형 빈도에 따르면 A형은 34%, B형은 27%, AB형은 11%, O형은 28%라고 한다.

27%의 B형들, 힘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B형들은 꽤 괜찮은 사람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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