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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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해 본 적은 없다. 책으로, 그것도 오디오북으로 여행서적을 봤다. 제주도 지방도로를 운행하며 '유럽' 이야기를 들었다. 머릿속에 심어둔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보조되며 이색적으로 들렸다. 본 도서는 지도나 사진이 많은 책으로 알고 있다. 다만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그것들은 확인 할 수 없었다. 윌라 오디오북에서는 아주 짧게 유시민 작가가 도서 서문을 읽는다.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역시 오디오북의 매력이다. 기행문이라 많은 사진이 있을 책이다. 다만 유시민 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진 못했다.

정치를 떠나 '작가'로 삶을 살고 있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다. 정치인 시절에는 날선 표정을 하고 있던 정치인이었다. '작가'로 전향한 뒤부터 그의 인상은 매우 달라졌다.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며,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다.

유튜브에서 여행을 다니는 컨텐츠를 찾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책을 선택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책이 갖고 있는 특장점 때문일 것이다. 책은 즉흥적이지 않다. 책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을 거듭 반복한다. 그렇게 정제된 글과 생각은 '유튜브' 보다 생생함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풍성함은 더하다.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문화와 역사, 인문학적 배경 지식까지 섞어 듣는 것은 여행서적의 매력이다.

유시민 작가의 책은 국가가 아니라, '도시'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프랑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가 아니라 왜 '로마, 아테네, 이스탄불, 파리'였을까. 아마 그것은 유럽 역사의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체로 5000년 간 크고 작은 변화는 있지만 반도 내에서 같은 민족이 뿌리를 박고 살았던 우리는 유럽인과 다른 역사관을 가졌다. 우리에게 서울은 언제나 우리가 살던 지역이었지만, 이스탄불의 경우, '터키의 역사'로 한정하기에 그릇이 크다. 로마 또한 '이탈리아의 역사'로 한정하기에 그 그릇이 너무나 크다. 대체로 도시들은 다양한 민족이 흔적을 남겼고 다양한 언어와 인종, 문화가 흘러지나간 자리다. 비교적 현대에 건국된 국가에 그 도시를 담아내기 역부족이다. 유럽은 고로 국가보다 도시가 깊이 있다.

꼬리를 올리고 흔들며 강아지는 반가운 감정을 표현하지만 같은 표현 방법이 고양이에게는 긴장과 불안이다. 결국 같은 것을 보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고양이와 개가 앙숙이 되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역사관이 다른 것은 유럽만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도 역사관의 차이는 크다. 중국은 영토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보는 관점이다. 반대로 우리는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그러니 중국과 한국 사이 역사적 문제가 갈등이 되곤 한다. 고구려나 고조선의 경우, 중국의 역사관에서 중국의 역사지만 우리의 역사관에서는 우리의 역사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북미에 있던 루이지에나를 미국에 매각한 것은 1803년이다. 그렇다면 그 지역은 언제부터가 미국의 역사고 어디까지가 프랑스의 역사일까. 알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관념적 차이일 뿐이다. 뉴욕의 맨하튼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만든 식민 도시다. 두부 자르 듯 정확하게 잘라 구분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역사는 때로 갈등이 되기도 한다. 유럽 도시는 그간 어느 한 국가에 속하여 오랜 기간 머물지 않았다. 고로 유럽 여행을 현대 국가 중심으로 보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

그의 기행문에서 절묘한 표현이 떠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관한 내용이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유적들이 있지만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강제 동원된 노동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민주적이며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단연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각자 잘 분업화 된 기술자, 노동자, 행정가들이 평화스럽고 문명화된 방식으로 축조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에펠탑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면 거기에는 그저 150년 된 철제물이 있을 뿐이다. 그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조금 떨어져 봐야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이 파리의 풍경을 해친다며 건설을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에펠탑이 세워진 이후에 그가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여기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니까."

따지고보자면 어떤 것을 보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것도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우리 속담으로 '등장 밑이 어둡다'라고 한다. 따지고보면 유럽여행을 소망하면서 가장 가까운 곳조차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장소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가져야 삶이 풍성해지는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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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홍선기 지음 / 모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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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채우는 욕구.

결핍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는 사람을 움직인다. '홍선기 작가'의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는 젊은 나이에 1조원 자산가가 된 사업가의 이야기다. 사업가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고 남들이 부러워 할 것들을 충족한 사람이다. 충만함이 흘러 넘칠 것 같은 인물. 그도 결핍을 느낀다. 외모, 경제력 어느 하나 빠질 것 같지 않은 이는 남들보다 더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충족된 부에 대한 욕구가 아닌 다른 결핍으로 움직인다. 결핍은 나쁘게는 '열등감'이 되고, 좋게는 '원동력'이 된다. 소설에는 죽고 싶은 이와 살고 싶은 이가 동시에 등장한다. 가장 삶을 충만하게 누리는 이는 죽고 싶어하고 소박한 일상을 사는 이는 살고 싶어 한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에 대해 다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다. 인간의 심리는 분명 고차원적이지만 기본적으로 결핍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갈증이 나면 물을 찾고 배고픔은 음식을 갈구하게 한다. 남성은 여성에 끌리고 여성도 남성에 끌린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나누면 갈증은 해소된다. 삶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핍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과 그것을 해소하려는 욕망. 그것이 해소된 후의 안정감. 그리고 공허함.

돈, 관계, 인생. 대부분의 것들은 그런 식으로 작동된다.

군시절 유격훈련은 지옥 같았다. 딱 5분만 바닥에 누워 있으면 살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간절하던 5분은 지금 당장도 가질 수 있다. 충만함이 넘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핍보다 더 결핍한 상태가 된다. 대체로 결혼 전에는 뜨겁게 타오르던 연인관계가 후에는 싸늘하게 식는다. 프로듀서 박진영은 은행이자로만 먹고 살 수 있을 20억만 벌면 은퇴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하게 성장했고 그거 상장한 원동력은 20억을 달성 한 이후 부터 '돈'이 아니었다.

물질로 오는 행복감은 유통기간이 짧다. 그 설레임은 주문한 택배 물품이 전달되는 정도의 지속성을 가질 뿐이다. 사람은 끊임없는 목표 설정을 하거나 목표 설정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한다. 돈으로 움직이는 삶이 언제나 무가치한지 보여준다. 돈은 더 큰 성장으로 향하는 중 만나게 되는 아주 작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홍선기 작가는 '소설가'이면서 사업가다.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롯데 '신격호' 회장이 떠오른다. 작가의 삶을 조금 살펴봤다.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서가 있다. 그에게 주어진 별명은 '실패몬', '프로실패러'란다. 무조건 호감이다. 실패라고 한다면 나또한 할 말 많다. 개인적으로 '마윈'이라는 인물을 좋아한다. 마윈은 '성공'의 아이콘이지만 그 또한 삶의 흔적은 '실패'로 가득차 있다. 내가 마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거 성공했기 때문도 있지만 실패를 대하는 마인드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삶을 '포레스트 검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묵묵하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간이라는 게 이분하기 좋아하기에 '성공'과 '실패'를 양분한다. 다만 성공과 실패는 양쪽 극단에 대치되어 있는게 아니다. 성공의 반대에는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다. 시작점과 성공 사이에 무수하게 이어진 점들이 있다. 그것이 '실패'다.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는 '시작'의 출발점에도 서지 못한다. 흔히 가시광선 밖으로 존재하는 적외선과 자외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의 존재로, 존재와 무존재를 오가다 사라진다. 다만 성공은 분명하게도 가시광선 안쪽 스펙트럼에 존재하며 그 존재감을 아주 강렬하게 빛낸다. 빛나는 것은 '시작점'도 '끝점'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어느 부분에 주인공들끼리 묻는 질문과 답변에 나도 참여해 보았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대답을 내놨다. 그것에 대한 해서도 가지각색이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봄이면서 가을이거나, 겨울이면서 여름"

뉴질랜드에서 거주한 기간이 10년이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산타클로스를 10번 가까이 보다보니 12월이 가장 더운 달이라는 인식이 그닥 낯설지 않다. 나는 죽고 싶은 시간만큼, 장소도 한정하고 싶지 않다. 여름이면서 겨울이거나, 가을이면서 봄인 어느 장소인지 모르고, 어느 시기인지 모를 어떤 시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조금 열려졌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인 아니며, 누군가는 자고 있을 때, 일어나고 다시 누군가는 에어컨을 가동할 때 히터를 켠다. 모두가 일방향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깨달음은 해외에서 배운 마케팅, 경제, 영어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이다. 작가는 자신을 너무 많이 투영할 것 같다는 이유로 배경을 해외로 설정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본을 배경으로 했기에 소설의 몰입도는 더 높아졌다. 한국인이 소설에 등장하면 현실성 여부를 따지고 들게 된다. 적당한 이질감과 적당한 동질감을 주는 일본이라는 배경은 소설의 몰입도를 높였다.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떠올리게 한다. 서술방식과 전개 방식은 다르고 글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을 닮아 빠르게 읽었다.

편견 같은 것은 아니지만 책 좋아한다면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롯데'라는 그룹을 좋아하는 이유도 창업주의 꿈이 '문학도'였기 때문이다. '홍선기' 작가의 재능에 감탄이 나오는 매우 좋은 소설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도 다재다능 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데,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젊음과 삶에 대한 죄악이다. 당장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며 삶을 삶답게 가꾸어 가야 한다. 소설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을 닮아 나는 이 소설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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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미르 파란시선 127
류성훈 지음 / 파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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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는 것은 점점 더 공감에서 멀어진다는 뜻이었고 공감하기 위해선 말을 끝내야 할 때가 있었고 그런 끝은 점점 늘어만 갔다." -류성훈의 '글루코사민 중'

산에 오르면 산 전체가 위로를 줄 때도 있지만 작은 풀이나 나무가 위로를 줄 때가 있다. 무작위로 뻗어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이 아주 오묘하게 마음을 위로하게 되면 산이 아닌 '그것'을 위해 그곳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어떤 것이 나를 위로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뜯어보지 않은 포장 산물처럼 무엇이 나를 위로할지 알 수 없이 산행한다. 무언가로 위로 받으면 숨겨둔 보물을 당연하듯 찾아내고 내려온다. 그것이 마치 목적인 것 처럼.

때로는 규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규모가 담지 못한 것을 담아낼 때가 있다. 무엇을 찾아낼지 알지 못하면서 무엇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행할 때가 있다.

대체로 '시'는 그렇다.

시를 읽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가 적확하게 나에게 들어 맞을 때가 있다. 다만 그 적확은 아주 미묘한 감정의 선을 건드린다. 단연컨데 시인의 글은 그의 것이다. 그가 뱉어낸 글에는 시인의 철학과 생각이 담겼고 시인의 경험과 문체가 담긴다. 그러나 그것이 넘어오면 그것은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담겨와 바늘 끝 같은 감정의 쳠예함을 정확히 타격한다. 바늘 끝이 바늘 끝과 닿는 아주 극미세한 교감에 온몸이 전율이 흐를 때가 있다.

'대화한다는 것은 공감에서 멀어진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도 하다. 세상 누구도 자신보다 더 자신다울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큼 해 본 적이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자신만큼 시간들여 들여다본 적 없다. 그것은 부모, 형제, 부부할 것 없고 친구, 연인은 말할 나위 없다.

말을 할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때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달, 바다, 산에게 위로 받는다. 그것의 특장점이란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사람을 기르지 않는 시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 반려동물을 길러 본 적 있는 이들의 수가 국민 과반을 넘는다. 말하는 동물의 양육이 인생에 패착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부모로 학습했다.

결국 그 하나의 바둑돌을 내려 두면서 판 전체가 어그러지는 오묘한 관경을 바라본 자녀세대의 현명한 선택은 '말하는 동물'을 키우지 않자는 것이 아닐까.

소통은 공감이 아니다. 소통은 그저 오고 가는 창구를 열어 놓는 일일 뿐이지 그것이 진청 하나의 감정으로 덩어리 지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오고 가는 소통의 창구로 인해 어떤 누군가들은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들은 색이 다른 이들의 감정으로 오염이나 물이 들기도 한다.

자전만 있고 공전 없는 춤들.

나아감 없이 제자리에서 근면하게 도는 것들에 대한 회의감. 그것은 과정이라는 이름에 언제나 따라다닌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 받고 싶기에 어디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근면해진다. 그것이 자신의 자리라고 착각한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공전하며 나아가 버린다.

고도로 성장하던 경제의 발전이 한풀이 꺾이고 그것이 다시 한풀이 꺾여, 전설적인 성공을 이뤄낸 어버이들에 대한 열등감.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낸 동년배들과의 경쟁심. 그것은 남녀를 불문해졌다.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든 뭐든 잡히는대로 물속에 처박아 한 모금의 숨을 뻐끔 거리듯, 대상은 자녀, 부모 심지어 사랑해야 할 이성까지다.

삭막한 경쟁사회가 생존본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사방에 적만 가득하다는 학습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우리는 해버린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들임에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들은 결국 아주 똑똑한 선택을 한다. 몰라야 할 것은 몰라도 좋다.

7살 아이는 7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고 스무살 청년은 스무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너무 빨리 성숙해진 세상이 서로서로 삭막해지게 하고 의미를 상실케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가만 보면 그것은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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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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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침팬지를 간식과 공간으로 훈련한 실험이 있었다. 1973년 뉴욕 콜롬비아 대학의 허버트 테라스 교수의 실험이다. 그는 평범한 침팬지를 수학 문제를 풀고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침팬지로 훈련시켰다. 훈련방식은 간단하다. 배고픈 침팬지를 한 공간에 넣는다. 공간의 가운데 선을 긋는다. 침팬지가 우연히 선을 넘으면 배식구에서 사과조각이 떨어진다. 침팬지는 그 공간을 학습했다. 침팬지의 학습이 끝나자 실험자들은 공간을 바꾼다. 선 대신에 커다란 버튼을 설치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커다란 버튼을 누른 침팬지는 사과를 얻었다. 비슷한 과정을 몇 차례하며 실험자들이 했던 것은 침팬지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었다. 단계별로 학습 난이도는 올라갔다. 이후 침팬지는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고 인간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천재 침팬지고 길러졌다. 인간은 항상 공간으로부터 학습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

건축은 단순히 구조물을 쌓고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만드는 것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다. 건축물을 짓는 행위는 '시'를 짓거나, '밥'을 짓는 것 처럼 재료를 들어 구조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건축 자재도 들어가지만 짓는 이의 철학과 의미가 함께들어간다. 시나 밥과 같이 그것은 짓는 자체 보다는 상대를 위해 대접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결국 상대에 대한 공감인지 능력이 공간인지 능력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바꾸는데 아주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옷'과 '공간'이다. 영국 속담에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처칠의 말처럼 공간도 사람을 만든다. 조선시대 임금은 정3품 이상의 고위관리와 조정회의를 했다. 이때 임금은 가장 진한 적색 곤룡포를 입었고 그 중심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그의 자리는 입식의자 위에 앉았다. 정3품의 당상관들은 임금의 좌와 우에 좌식으로 앉아 조금 밝은 적색 의복을 입었다. 또한 임금을 측면으로만 대할 수 있었다. 임금은 위에서 아래로 신하들 전체를 정면으로 내려다 봤지만 신하들은 임금을 바라 볼 수 없었다. 의복과 더불어 공간은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 2.7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3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의 창의력이 두 배나 높게 나왔다는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공간이 중요한 이유 그것이 물리적 공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인 공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맹모삼천지교'도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맹자의 어머니는 아이의 환경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으로 인해 이사를 다녔다.

사피엔스에게 공간은 몹시 중요하다.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를 벗어나 모든 대륙으로 인류가 뻗어 나간 것은 인간이 '공간'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살기 적합한 공간을 찾아 능동적으로 다녔다. 기후변화로 밀림을 잃은 원숭이가 초원의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리를 펴고 앞발을 들어 먼 공간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허리가 펴진 원숭이들은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직립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후면 근육이 강화해야 했고 후면 근육이 강화되면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2족보행을 하게 됐다. 2족보행은 4족 보행에 비해 어너지 소모가 25%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력이 늘어나면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넓어졌다. 이 과정에서 체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머리를 제외한 전신의 털이 얇아졌고 가늘어졌다. 전신 '살갗'이 노출된 상태가 됐다. 인간에게 의복과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 버린 보호막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필수품이 되버린 '의'와 '주'는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그러나 현대의 대한민국은 똑같은 공간에서 획일화 된 삶을 산다. 대규모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서 볼일을 보고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있는 식탁에 앉아 있으며,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 거주 공간의 역할이 개성을 잃고 단순히 거주 역할만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차'나 '인스타그램' 등을 사용한다. 공간이 인간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그뿐만 아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사무라이 마을'을 보면 주택 담장으로 만들어진 골목길이 미로처럼 되어 있다. 이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좁은 공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간활용 방식이기도 하다. 섬나라의 경우 공간에 대한 제약이 있다. 고로 이동 시간은 적게 들지만 공간은 항상 부족했다. 이를 위해 조경과 건축 디자인을 복잡하게 구성하는 것다. 오밀조밀한 공간은 일본인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일본인들은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한 구성을 한다. 일본의 '신주쿠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의 신주쿠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역 중 하나다. 초보 여행자들이 가끔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본 전자나, 자동차 산업 역시 대체적으로 작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집어 넣는 제조업으로 성정하기도 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2017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됐다. 이 건축물은 특이하게도 미술관 내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건축물의 내부는 다른 미술관처럼 찾기 힘든 미로형 내부가 아니라 달팽이 모양과 같이 나선형 구조의 경사로가 있다. 관람자들은 이방과 저방을 오가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를 따라 가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 장소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에 꼽히곤 한다. 이 디자인을 생각한 이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건축거장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3대 건축 대장으로 꼽힌다. 건물 내부에서 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건물 곳곳에 묻어 있다.

유현준 교수의 인문 건축 기행을 보면 꼭 세계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다. 그의 다른 도서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 역시 단순히 구조물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그 내면에 담고 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가 숨어져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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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 양자역학, 창발하는 우주, 생명, 의미
박권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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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표현이다. 빅뱅으로 우주가 폭발할 때, 최초의 원자인 수소와 헬륨이 생성됐다. 폭발 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서로 끌어당긴다. 더 무거운 쪽으로 원자가 모인다. 중력 수축이다. 모든 원자는 떨린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말한다. 유명한 E=mc^2다. 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이다. 질량이 무수하게 작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빛에 속도에 가까우면 에너지는 엄청나게 커진다. 빠르게 떨고 있는 원자들이 중력에 의해 모여 들면 원자 사이에 밀도가 높아진다. 온도도 높아진다.

원자의 모형을 보면 가운데 커다란 '양성자'가 있고 그 주변으로 전자가 도는 모형을 볼 수 있다. 전자는 마이너스 전하를 갖고 양성자는 플러스 전하를 갖는다. 플러스 전하가 강력하게 가운데로 모여든다. 플러스 극을 가진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양성자들도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운동에너지의 크기는 온도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고로 온도가 초고온 상태가 되면 양성자의 운동에너지가 엄청나게 커지는데 이렇게 높아진 운동에너지의 힘이 서로를 밀어내던 힘을 이겼을 때, 두 원자핵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두 원자핵이 충돌하여 하나의 원자핵으로 결합될 때, 아주 강력한 끌어당기는 힘이 발생한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속도 높아지면 역시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렇게 두개의 원자가 하나의 원자로 융합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핵융합 에너지'라고 한다. 아무튼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 기존 원소는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원소로 생성된다. 새로운 원소는 이전 원소보다 질량이 더 크다. 원소들이 폭발로 인해 우주로 흩어졌다가 다시 무거운 원자로 모여든다. 다시 중력 수축이다. 이렇게 수축과 핵융합 반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차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점차 원소가 무거워지다가 철이 만들어지면 같은 방식으로 더이상 무거운 원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철은 모든 원자핵 가운데 가장 강한 결합을 한 상태다. 고 가장 안정되어 있는 상태다. 고로 철 역시 가장 무거운 원소이기 때문에 주변 원자를 끌어당긴다. 기본적으로 철을 만들기 위한 핵융합 온도는 30억도다. 중심이 철로 가득찬 중력덩어리가 점차 모여든다. 중력에 의해 철이 꾸준하게 모여들면 질량은 점차 커진다. 그러나 철은 아무리 온도가 높아져도 핵융합하지 않는다. 점차 철은 철끼리 끌어당기며 압력이 높아진다. 이때 철의 중심 핵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면 양성자와 전자가 합쳐지며 중성자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보는 원자 모형은 커다란 양성자를 전자가 돌고 있지만 실제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지 않다. 양성자와 전자의 거리는 서울에 둔 오렌지와 수원에 있는 꽃가루 사이의 비율과 같다. 다시 말하면 원자의 99%는 비어있다. 이 비어 있는 공간이 꾸준하게 압축되다가 결국 붕괴되면 원자가 무너지며 수축한다. 이 수축 속도가 빨라지면 폭발한다. 이 폭발이 초신성 폭발이다. 별들 중에서 태양보다 10배 정도로 무겁고 태양보다 10억 배 밝은 이런 초신성은 중심핵이 수축하며 폭발에 이른다. 이것이 우주 전체로 흩어지고 흩어진 우주 알갱이가 다시 모여 만들어진 것이 우주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은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별의 후손인 셈이다. 이렇게 원자가 뭉쳐지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태양계와 지구는 만들어졌다. 지구에는 이처럼 별에서 흩어져 나온 원자들이 득실 거린다. 이 중 10억년 동안 지구에 떨어진 번개로 인해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지구에는 35억년 전 엄청나게 많은 번개가 내렸다. 이 것은 생명에 필수적인 물질인 인을 만들어냈다. 이 인은 점차 발전하다가 단세포 생물로, 그 단세포는 분열을 하면서 다세포로, 그 아주 극희귀한 경우의 수를 뚫고 어류가 되고 그것은 다시 땅으로 기어 나온다. 극한의 숫자를 뚫고 그것은 멸종하고 탄생하길 반복하다가 나온 것이 지금의 우리다.

그것은 우연인가.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것은 확률이다. 양자역학은 참 재미있는 것이 모든 것을 확률로 표현한다. 우리가 우너자 모형을 보는 것처럼 원자는 양성자 주변에 전자가 돌고 있지 않다. 양성자 주변에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닌 '무언가'가 구름처럼 있다가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그것은 입자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거시세계와는 첨예하게 다르다. 고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끄는 하나의 공통 이론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어쨌건 거시세계에서 우리를 이르게 한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별들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그것이 입자가 된다. 그것은 단지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고로 우리가 있는 세계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박권 작가의 책은 읽으면서 전체적인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으나 어려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다양한 수학적 공식과 인문학적, 역사적 사실을 섞어 이야기 한다. 철학과 역사, 인문학으로도 설득 할 수 없는 것에 물리학과 과학, 수학을 들이밀며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는 것, 기적에 대한 것에 대해 수학적 증명을 해보인다. 수학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제창한 용어로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에너지를 알고 그 모든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능력을 갖는다면 그 역학적 상태에 따른 미래를 계산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우리가 하는 자율적인 선택들이 단순히 물리학적 계산으로 이뤄진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만 미시세계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이며 그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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