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의 실종자들
한고운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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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게 MBTI에 꽂혀 있다. 남들은 이미 관심이 시들해진 이들도 있지만 요즘 한참 심취해 있을 때가 있다. 별자리나 혈액형별 성격유형, 이런 류의 것을 잘 믿지는 않지만 어쩐지 MBTI는 사람을 파악하기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검사를 하면 딱 두 유형이 나온다. INFJ, INTJ. 이 두 유형은 번갈아가며 나온다.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나오곤 한다. 실제로 이 두 유형의 성격을 모두 내가 갖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읽는 책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철학'이나 '종교', '사회', '에세이', '시'와 같은 글을 심취해 읽을 때는 감성적으로 변했다가, '과학', '추리', '인문학'을 읽으면 이성적으로 변한다. 어떻게 70억의 인구를 모두 16개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어떻게 100년의 삶 중 일부만 떼어다가 그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가. 어떻게 남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최근 겪었는지와 무관하게 일관적일 수 있겠는가. 그런 물음을 갖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정도 나를 남에게 소개하는데 간편한 방식은 맞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MBTI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이 INTJ가 좋아하는 도서라는 글을 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분명 그러하긴 하지만, 나는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감성적인 글을 좋아하기도 한다. 고로 나는 INFJ와 INTJ 유형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는 아무개라고 보여진다.

지난 이틀은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쏟아지다가 맑게 개이기를 반복한다. 하늘을 보아도 구름은 희다가, 검다가를 층층이 쌓고 있다. 회색층 없이 층층이 쌓인 하늘에 따라 눈은 내리다가, 그러지 않다가를 반복한다. 날이 싸늘하게 추운데, 가장 좋아하는 가수 '성시경'의 음악을 틀고 '헤이즐넛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내려가면 안락 소파에 앉아 책을 잡는다. 꽤 감성에 젖어 그럴싸하게 폼잡고 커피와 책을 들고 마신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자세는 완전 엉망이다. 무거운 머리는 대충 삐딱하니 두고 다리 한 쪽은 의자 밖으로 꺼내어 꼼질 꼼질 거린다. 그러다 지나가는 아이의 머리에 발을 콩콩 찧는다. 아이가 덤벼들만 한참을 놀다가 다시 책에 집중한다. 어제 오늘 읽은 책은 '규슈의 실종자들'이다. 소설은 꽤 가볍다. 쉽게 말하면 인물의 성격도 평면적이고 서사도 단순하다. 고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제는 흥미롭다. 갑자기 사라진 이들에게 오는 분홍색 편지. 그 편지의 발신이가 이미 죽은 이라는 설정이다. 최근 읽었던 '러브레터'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닮았다. 배경은 '일본'이다. 등장인물은 '일본'과 '한국'의 중간 쯤 되는 재일교포다.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중간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조예가 깊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INFJ와 INTJ의 중간 쯤 되는 인간이다. 불경에서 철학적 사유를 깨닫고 성경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길 즐긴다. 그렇다고 신을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성별은 남성이지만 보통의 남자와 대화 주제가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낀다. 해외에서 외국인도, 현지인도, 그렇다고 영주권자도 아닌 모호한 지위로 10년이나 살았다. 한국을 잘 모르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 대해 잘 아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안다. 영어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고, 영어를 못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그런 모호함이 결국 나의 명확한 정체성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설에 등장 인물 일부는 '일본 이름'이다. 일본 추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거부감 없고 오히려 집중이 된다. 이 소설이 조금 각별하게 읽혀지는 이유는 '작가소개'에 있다. 한고운 작가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이다. 일본 여행에서 이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은 읽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오탈자가 보인다. 인간적인 습작의 흔적이다. 2년이 넘도록 묵혀 놓은 '소설'이 한 편있다. 그 전에 10년이 넘도록 묵혀 놓은 작품도 있다. 다만 나의 글은 출간하지 못했다. 이유라면 글이 조금 어려워진 탓일 것이다. 어려운 글은 때로 좋은 글처럼 보여지지만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고로 이미 써내려간 글을 어떻게 쉽게 바꿔야 하나가 나의 숙제다. 개인적으로 '소설 출간'에 동경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작가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잠깐을 듣고도 '누구의 노래'인지 알아 맞힌다. 김훈 작가의 글처럼 담백한 글 종류라면 몇 문장을 읽고도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게이고'나 '하루키' 또한 자신만의 명확한 색채를 가진 작가다. 책을 고를 때, 단순히 '작가'만 보고 고른다는 것은 꽤 징명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이를 찾았다는 의미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독자로써도 뿌듯함이 생기는 일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숨겼던, 그렇지 않던 의미있는 바를 찾을 수 있다. 정의로운 가면 뒤에 있는 과거, 누군가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선택했던 어떤 잘못, 그 위로 쌓여지는 진짜와 가짜의 겹겹이 때로는 눈을 뿌리고 때로는 햇살을 내리는 오늘의 날을 닮은 것 같다. 소설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추리를 좋아하는 이들이게 가벼운 '스낵' 같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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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코치도 커리어 고민을 합니다 리얼커리어 시리즈
남상은 지음 / 리얼러닝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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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 님은 손석희 뉴스룸에 출연하여 직업과 나이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 말했다.

"배우의 좋은 점은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나이에 따라 자신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 60이 되어서, 70이 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이 있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 앞으로 더 나이 많은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배우'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배우 한석규는 20대에 영화 '닥터봉'으로 데뷔한다. 그 뒤로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종횡무진한다.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된 그가 다시 그런 역을 맡을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그가 맡게 될 역은 무수하게 많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이다. 그 시기마다 맞는 옷을 차려 입는 일이다. 고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옷을 입는다은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그를 '배우'로 기억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게 일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배우가 되기 전, '성악가'가 꿈이었다. 실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중창단 활동을 했으며 학창시절에 그 재능를 주변에서 인정 받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배우의 꿈을 꾸었으나 실제로 그는 배우가 되기 전까지 1년 6개월 간, 성우로 활동한다. 사람이 다변적인 이유는 '삶'과 '세상'의 모양이 다변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단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고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미국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다만 링컨이 대통령으로 기억하지만, 링컨은 1861년 3월 4일부터 1865년 4월 15일까지 4년 1개월만 대통령으로 임기를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 부터 가족 농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잡역을 했으며 뉴세일럼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833년에는 일리노이주 새그몬 카운티에서 측량사나 우체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한 일은 '대통령'이 아니라, '변호사'다. 그는 1836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무려 24년 간, 변호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링컨'의 정체성에 대해 떠올리기에, 우리는 '변호사'보다는 '대통령'이 먼저 떠오른다.

'바루흐 스피노자'하면 우리는 '철학자'가 떠오른다. 다만 그의 직업은 '렌즈 연마사'였다. 그는 망원경용 렌즈를 연마하는 일로 소득을 얻었고 그 전에는 가족의 무역 사업을 돕기도 했다. 그가 렌즈 연마사로 일한 기간은 생각보다 짧지 않은데, 대략 20년 이상 일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이작 뉴턴도 그러하다. 뉴턴은 우리에게 물리학자로 유명하지만 그가 가장 오랫 동안 일한 곳은 '영국 조폐국'이다. 그는 1696년 영국 조폐국 감독관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이후 관장으로 승진였다. 뉴턴은 사망 전인 1727년까지 약 30년 이상 이 직책에서 화폐 위조를 막는 책임자로 일했다. 이런 예시는 너무 많다. '진화론' 하면 떠오르는 '다윈'은 '지질학자'였다. 전화기 발명가로 유명한 '그레이엄 벨'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교육원이었다. 그렇다. '사람'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리어'라는 것은 '무'를 잘라내듯 동강낼 수 있는 어떤 성질이 분명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남들은 명확한 진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만 그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부분 우리가 누군가의 '정체성'이라고 알고 있는 모습은, 실제 그의 인생에서 아주 극한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일관적인 진로로 커리어를 쌓지 않는다. 누군가는 축구선수를 하다가 장사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교사를 하다가 작가가 되기도 한다. 고로 사람의 정체성을 '직업'으로 한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것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싶어한다. 아마 이것이 우리 사회를 '전문직 선호 사회'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다만 자신의 미래와 커리어는 죽기 직전까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 고민은 나에게도 꽤 숙제였다. 농사를 짓기도하고,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사업을 하기도 한다. 모든 정체성이 나를 포함한다. 과거에는 명확한 무언가의 색체를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다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꽤 다면적인 삶을 살았다. 고로 기회란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겪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커리어 코칭' 또한 '커리어' 고민을 한다. 누군가를 '코칭'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완전한 이'가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해 본 이들이어야 한다. 만약 '커리어 코치'가 '커리어'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더라면 누군가를 코치할 자격이 없다. 다만 '코칭'은 분명하게 '도움'을 주는 역할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내면 속에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가르쳐보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스스로 갖고 있다. 떠먹여 입속으로 쑤셔 넣어도 소화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능동적인 자세'는 몹시 중요하다. TV를 보면 알아서 정보를 뇌속으로 꽂아준다. 다만 '책'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이들이 조금더 능동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읽어내야 하며, 그것을 사색해야 하는 일이다. 광부가 금을 캘 수 있는 것은 금이 찾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금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스스로 찾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다만 먼저 고민해 본 이들이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은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힘이 될 때가 있다. 커리어 코치는 고로 공감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쨌던 진로 고민은 특별히 당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로 고민이 든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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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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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통신지연 사태가 일어났다. 왜 그랬을가. 이유는 이렇다. 대만에서 홍콩으로 이어지는 심해 4000미터에는 광케이블 8개가 있다. 이중 7개가 지진으로 끊어져 버린다. 여기서 우리나라도 1대만과 연결된 2개의 케이블 중에 하나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후 모든 통신의 전화는 한 개의 케이블에 몰린다. 그 결과 통신 지연사태가 벌어졌다. 전화와 인터넷 등의 서비스가 중단된다. 여기서 생각도 못해 본 부분을 알 수 있다. 실제 '온라인 연결'은 사실 '물리적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리 익스프레스', '이베이', '아마존' 등의 해외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와의 통신 방법은 '물리적 연결'이 기반이다. 현재 전 세계의 인터넷 혹은 대부분의 국제통신은 '해저 통신 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물론 위성통신도 존재한다. 그러나 위성통신은 항공기나, 선박, 전쟁 상황 등의 특정 상황에서 1%정도만 보조적 역할을 할 뿐 거의 대부분은 해저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해저 케이블은 말 그대로 지구 해저에 깔려있는 광섬유 케이블이다. 전 세계 해저 케이블 지도를 살펴보면 정말 무식할 정도로 대륙과 대륙을 잇는 케이블 지도가 나와 있다. 그 길이를 다 합하면 130만 킬로미터나 된다. 이는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구와 달을 한바퀴 반을 묶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다. 이것을 인류는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케이블을 배에 싣고, 바다 바닥에 말그대로 깐다. 즉, 엄청난 '혁신'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노동'의 댓가다.

최근에 비슷한 영감을 주는 일화가 있었다. 2021년, 말레이시아 탄중 펠레파스 항에서 출발한 에버 기븐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해 100%의 확률로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야 한다. 이 과정 중 이 커다란 배는 수에즈 운하 중간에 좌초가 되어 버린다. 원인은 운전미숙. 이 단순한 사고로 전세계 무류의 12%가 정지해 버린다. 또한 일시적으로 유가가 폭등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딸깍' 한 번이면, 해외에서 마법처럼 집 앞으로 물건이 배달되는 것은 실제로 엄청난 '수작업'의 결과물이다. 수작업의 결과물에 대한 예시는 '수에즈 운하'의 이야기로 이어서 계속해 볼 수 있다. 수에즈 운하는 앞서 말한대로 전세계 해상 무역량의 12%를 담당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연결 구간을 뚫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운하를 팔 때, 굴착기나 트럭이 동원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수에즈 운하의 착공 시기는 1859년부터 시작된다. 즉 이 시기는 굴착기나 트럭 등이 없는 '오스만 제국' 시대다. 공사 진행 중 후반부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굴착기나 발전된 기계장비도 도입됐다. 다만 이 작업의 초기에는 말그대로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어, 삽과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런 고전적인 작업방식은 꽤 '비효율적이고 멍청하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고급승용차'나 '반도체 기기', '첨단 의료기기' 등도 이 루투를 통해 들어온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최첨단'이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도 꽤 '고전적인 방식'의 기반아래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예시는 '일론 머스크'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회사들, 특히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꽤 혁신적인 기술과 대담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이 혁신의 기반은 무엇일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또한 이런 창의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직원 복지와 적은 노동시간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다만 이 회사들은 혁신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달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긴 근무시간과 높은 작업환경에 놓여지는데, 이런 이유로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회사는 타 회사에 비해 '산업재해률'이 높기도 하다. 꽤 단순한 논리다. 높은 생산성은 더 많은 노동에 기인한다. 누군가는 적게 일하고 많이 얻는 '효율적 방식'을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혁신은 '엄청난 수작업'과 '엄청난 노동 시간' 뒤에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그렇다. 토마스 에디슨은 매일 실험실에서 18시간을 보내며 수천 번의 실험을 했고, 스티브 잡스, 니콜라 테슬라, 빌게이츠 등은 매우 극단적으로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꽤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최첨단'이라는 문화의 선두에 있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했다는 것이다. 흔히 '긴 노동'은 '비효율'과 '똑똑하지 못함'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엄청난 노동시간 뒤에 이어진다. 기적은 아무것도 안하고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한 결과일 뿐이다. 유대교 '할리차'라는 종교법이 있다. 여기에 '피츠츠이' 원칙이 있다. '피츠츠이' 원칙은 급한 경우에는 종교적 의무를 행하지 않도록 허용한다. 다시말해서, '기도'가 최선이 아님을 이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이 돕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인고의 시간이 쌓이면 그것은 어떤 일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기적이다. 즉 기적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기적이 일어나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어떤 일들의 결과가 기적인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을 가차없이 자르고 엄청난 노동시간을 요구한다. 이것은 꽤 가혹해 보일 수있다. 다만 이런 원칙은 '세종대왕'에게도 사양된다. 세종대왕의 업무 부담은 거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도와 법률을 만드는 일 때문에 밤을 새우는 일이 빈번하기도 했다. 세종 시대, 사육신 중 한 며인 성삼문은 왕의 명령으로 명나라에 출장만 열 세번을 다녀온다. 또한 신하들에게 읽은 책의 권수를 3개월마다 보고서로 제출하게 하고 매달 세 차례나 독후감을 지어 올리도록 했다. 고령으로 인해 사직을 희망하는 '황희'에게 '사직 거부'를 여러차례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연로함을 계속해서 이유로 삼자, 자신의 가마를 내어 주겠노라, 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신하들이 고된 업무강도에 사직을 희망하곤 했다. 세종은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일정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과도하게 밀어부치는 스타일 이었다. 그는 신하에게 빠른 진행을 압박하곤 했다. 세종은 주기적으로 작업 현황을 점검하고 수정사항을 제안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기도 했는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업적 뒤에는 엄청난 고강도 노동이 필수적이다.

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나 요행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단기간 성취가 이뤄질 수 있지만 지속적인 성취라면 그것은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지속적인 성취의 뒤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볼 수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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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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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참고로 '심신미약'에 관한 죄와 벌에 관한 내용이다. 꽤 가볍게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듯 하여. 간략하게 적어 본다.

"퍼즐에 답을 아는 사람은 그 문제의 난이도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게임'에는 나오는 대사다. 소설과 상관 없이 대사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경험과 지식은 삶의 자양분이지만, 인식을 왜곡 하는 도구이기도 한다. 20대를 마무리하던 시기,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아버지는 삶에 대한 조언을 주셨다. 이어 말씀하셨다.

"모두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 밖에 살지 못한다."

고로 누군가를 오롯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한 평생,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께서 끝마무리에 하신 말씀이다. 결국은 '자신의 몫'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자신의 살았던 삶 밖에 살지 못했다. 40대는 자신의 20대를 살았을 뿐, 현재의 20대를 경험해 본 바가 없고, 현재 20대는 자신의 20대를 살았을 뿐, 현재의 10대를 살아 본 적이 없다. 고로 모든 이들은 자신의 경험 밖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혹은 '상상'해보거나에 의존할 뿐이다.

조언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내가 한 조언은 내가 살았던 경험에 기반한 '데이터'일 뿐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는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세계적인 배우가 꿈인 학생, 수능 만점자가 목표인 학생, 100만 유튜버가 꿈인 직장인. 사람들의 이상적인 목표와 꿈을 조언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용어가 '비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나 또한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말하기 보다 듣는 쪽이다. 그러다보면 상대가 조언을 바랄 때가 있다. 한때는 '비현실적'이라는 조언을 했던 적 있다. 그 '비현실'은 누구의 '비현실'인가. 생각해보면 '나의 비현실'일 뿐이다. 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적인 배우와 수능 만점자인 사람들, 100만 유튜버인 직장인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고로 그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다. 나에게 비현실인 것이 반드시 누군가에게도 비현실일 수는 없다.

다만 거기에는 '확률'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들어간다. 다만 이룬 자에게 그것의 확률은 100%이다. 로또 당첨자에게 "당신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몇 퍼센트 였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100%이다. 결과를 이미 맞이한 이들에게 '확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는 100%인 일을 '되지 않은 사람'의 기준으로 답한다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현실에는 무조건 존재하는 현상을 없다고 믿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느정도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나. 다른 사람이 가진 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있을까.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고로 많은 빅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 아프리카에는 '소금 채취자'라는 '직업'이 있다. 이들의 하루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서구권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 소금 채취자들이 전통적 방법으로 소금을 채취하는 일상에 대해, 그들은 '판타지'처럼 듣는다. 다만 소금을 채취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일상'일 분이다.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내 것이 정답이 아님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주 쉬운 문제를 오래 고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성인은 과거의 자신을 잊고, 그 모습을 답답하다고 여긴다. 다만 손가락을 빌려야 겨우 숫자의 조합을 더할 수 있던 나이를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분수와 그래프를 배우고, 부피와 겉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쉴새없이 몰아치는 정보의 홍수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난이도를 평가 할 수 없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이 굉장히 주관적인 정답이라면, 난이도를 평가할 수도 없지만, 정답을 내릴 수 조차 없다. 원래 모든 문제는 스스로 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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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 일본다루기
김현구 지음 / 이상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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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토브리그'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돈이 없어서 졌다. 과외를 못해서 대학을 못 갔다. 몸이 아파서 졌다. 모두가 같은 환경일 수가 없고, 각자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집니다. 우리는 오서환 단장한테 진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어진 상황한테 진 겁니다."

운동 선수가 경기에서 졌으면 경쟁 상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누가됐건 이길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본질은 지지 않는 것이지, 상대가 어쩐지가 아니다. 공정한 룰과 규칙에 의해 진행되는 '스포츠'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적 대응이다. 상대를 미워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냉철하게 확인하고 합리적, 이성적으로 상황을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적'은 언제나 '적'이 아니다. '비'는 '홍수'가 났을 때나 '원망'의 대상이지, 가문 날에는 '희망'의 대상이다. 고로 대응은 '상대'가 아니라 '상황'에 해야 한다.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언제나 '명분'만을 가지고 대응할 수는 없다.

명청교체기에 '여진족'과 화친해야 하는 문제로 조선은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 '여진'은 오랑케였다. 그냥 오랑케도 아니라, 뿌리 깊은 숙적이다. 여진족은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 때에도 한반도 내륙과 해안 지역을 침입하고 약탈하곤 했다. '광해'의 실리외교가 당시에는 '친일'에 버금가는 저항을 불러 일으켰음을 짐작케 할 수 있다. 결코 '적'과 화친할 수 없는 명분은 '인조반정'의 원인이 됐다. 기어코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한 '선택'이 결국, 비극이 됐다.

중요한 것은 학습능력이다. 변형 문제가 나오면 와르르 무너지는 겉핥기식 학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고 드는 일이다. 산과 골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시간'과 '상황'의 변화는 '새옹지마'와 닮았다. 모든 것은 그렇게 위와 아래를 번가른다. 그리고 나아간다. 중간단계 없이 건너뛰는 것은 없다. 하루와 하루가 쌓여 이뤄지는 것이다. 바퀴가 땅을 밟고 일렬의 흔적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듯, 모든 과정을 하나의 선으로 즈려밟고 나아가는 것이다. 고로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없고,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고대 인도는 '수레바퀴'에 빗대어 우주를 표현했는지 모른다. 경제는 매초, 매분, 매일, 매주, 매년을 숫자하여 기록한다. 수레바퀴가 굴러간 흔적이 여실하게 좌표에 나온다. 그것이 가능한 영역이기에 그렇다. 사람의 일생도 수치화 가능하다면 '분봉', '일봉', '주봉', '월봉'처럼 캔들차트화 가능할지 모른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우리는 모두 '우상향'을 바란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급상승하는 그래프가 언제나 우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고로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무엇을 보거나 단기적인 파동에 눈이 가려져 더 큰 파동을 보지 못한다면 그 수레 바퀴는 '위'를 향한 우상향이 아니라, 때로는 제자리를 헛도는, 혹은 '바닥'을 향해 나아가는 '우하향'이 되지 않을까. 간혹 역사, 국제관계, 경제 등을 보며 스스로에 대한 삶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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