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국어 문법 1 - EBS 장동준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장동준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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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이 문자를 보면 우리는 '빨간 과일'을 떠올린다. '사과'라는 '음성 신호'도 함께 떠오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사과의 '맛'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감촉이나 과거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혹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아이폰'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다시 피보나치 피보나치 수열 알고리즘처럼 '주식'이나 '돈'이 떠오를 수도 있다.

즉 '사과'라는 문자를 볼 때, 우리의 뇌는 '음성'과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고 뿐만 아니라 미각, 촉각, 시각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을 연결 지을 수도 있다. 이렇게 동시에 떠올리는 작업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뇌는 '문자'와 다양한 감각을 동시 연결해야 한다. 그것이 '문자'의 역할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사과'라는 문자를 읽었을 때, 우리의 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전에, 우리 뇌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보자.

전두엽은 추상적 사고와 판단을, 두중엽은 통증을, 후두엽은 시각, 측두엽은 청각과 기억을 담당한다. 우리가 '사과'라는 문자를 읽었을 때, 뇌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부위를 활성화 시킨다.

이 말은 무엇일까.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1.4에서 1.6kg정도다. 여기에는 860억개의 뇌 속 신경세포가 있다. 이 점은 '천재'와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큰 차이는 바로 '시냅스 연결'에 있다. 시냅스는 쉽게 말하면 '전선'이라고 보면 된다.

10층 짜리 건물이 있다고 해보자. 건물에 스위치를 하나 눌렀을 때, 한 번에 10층 전체의 불을 키기 위해선 여러 개의 스위치를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스위치만 있으면 된다.

즉, 전선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스위치에 연결 된다면, 우리는 하나의 작업으로도 10개의 불을 켤 수 있다. 다만 건물이 100층이건 1000층이건 스위치 연결이 시원찮다고 해보자. 그 건물을 켜기 위해 몇 번의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가.

시냅스 연결 강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냅스를 연결 하는 일이다.

시냅스는 단단한 피복으로 둘러 쌓인 전선과 다르게 말랑말랑한 단백질이다. 이것은 사용하면 늘어나고 길어지고 서로 달라붙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 즉 축구를 많이 하면 하체 근육이 발달하는 것처럼 이또한 계속되는 빈번한 자극으로 모형을 변형한다.

'사과'를 문자로 읽었을 때, 동시다발적으로 자극되는 뇌는 일회적으로 끝났을 때는 그저 단순 자극이지만, 그것을 지속적이고 빈번하게 반복하면 그것은 뇌의 여러 방을 연결하는 수많은 전선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자극으로 여러개의 방을 동시에 키고 끌 수 있는 효율성을 갖게 된다.

문자는 '소리'와 '이미지', '맛'과 '냄새', '감촉' 등 다양한 감각을 함께 연결한다. 지난 과거의 일인 '기억'을 상기시키고, 추상적인 생각을 일으킨다. 앞의 두 대상의 합이 새로운 순서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처럼, 연결되고 합쳐지고 새로운 것이 무한대로 생성된다.

'사과'는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극을 한 번에 일으킨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사람의 99%는 '문자'가지고 겨우 '음성'으로만 변환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문자는 음성만 저장하는 도구는 아니다. 다른 감각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25%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말해, 우리나라에서 문자를 소리내어 읽을 수 없는 사람의 수, 문맹률은 1%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75%나 된다.

최신식 TV를 가지고 '소리'만 듣는 용도로 사용하는 셈이다.

한때, 영화 평론가 이동진 님의 기생충 평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명징'과 '직조'가 담고 있는 '음성 정보'를 꺼내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다만 그것을 '이미지화', '의미', '감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결국 이것은 이슈가 됐다.

언어는 이처림 '기호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다. '언어'는 '자의성'과 '창의성' 또한 갖는다. '언어'는 집단 지성에 의해 자연 발생한다. 고로 언어는 그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한다. 어떤 단어를 만날 때, 우리는 그 단어가 가진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대해 떠올릴 수도 있다. 이는 역시 앞서 말한 다양한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수록 '문법 체계'는 단순해진다. 또한 '단어'는 여러 문명에 유입되어 다양해진다. '인도네시아'의 인니어가 대표적이다. 인니어는 그 문법이 꽤 단순하다.

이 언어에서 책은 '부꾸'다. 영어의 'book'와 닮았다. 반면 '책들'은 무엇일까. 책의 복수는 '부꾸부꾸'다. 단순히 명사를 두 번 씀으로써 복수형 명사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그렇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이들의 문법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다양한 민족이 빠르게 배우고 소통해야 하기에 복잡한 문법 체계가 단순화 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문법이라면 '아래로의 발전'으로 이뤄진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흰개미집의 차이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있는 파밀리아 성당은 위로 뾰족 솟은 12개의 첨탑 건물 구조가 인상적이다. 다만 흰개미집은 얼핏 파밀리아 성당과 매우 유사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밀리아 성당의 경우 가우스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다만 흰개미집의 경우는 다수의 흰개미가 설계도면 없이 지은 구조물이다.

이 둘의 결과물은 상당히 유사하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하향식 설계와 상향식 설계를 언급했다. 파밀리아는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설계'다. 설계자가 있고 그 도면에 맞춰 지어진 계획적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반면 '흰개미집'의 경우 무리에 속한 개미가 자신에게 주어진 규칙에 따라 개별로 작동하며 이뤄지는 '아래에서 위로의 상향식' 구조체다.

언어라면 흰개미집과 같이 아래에서 위로의 상향식 구조체다. 즉 다수가 개별의 활동을 하며 이뤄낸 복합적 구성체라는 의미다. 다수가 사용하다보니 여기에는 규칙성과 창조성이 함께 들어간다. 다시 말해 '문법'은 자연발생적이며 창조적이고, 기호성을 갖고 있으며 역사와 사회성을 갖는다.

문법을 배우고 언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알게 되면 문법이 저절로 익는다. 다시 말해 글을 많이 읽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다양한 자극을 주고 우리가 더 특별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문자가 담고 있는 정보를 열어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에 여러 개의 방을 밝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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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어 문학사 : 산문과 운문 - EBS 장동준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장동준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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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8r'

이 괴상망측하게 생긴 단어는 사실 문장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것은 2010년 대 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 해외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나 또한 주로 사용하곤 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이렇다.

'다음에 봐'

이 단어가 그런 의미가 생긴 이유는 발음에 있다.

이 단어는 'see you later'이라고 하는 문장을 줄인 표현이다. see는 C, you는 U, later는 숫자 eight를 이용해서 L 8 R라고 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요즘 말하는 줄임말과 다르다. 이런 표현은 통신사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에도 간혹 나오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탄생한 이유는 왜 그럴까.

바로 그 문화와 시대적 배경 때문에 그렇다. 당시만 하더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문자 갯수제한이 있었다. 총 40개의 문자만 허용됐다. 그러니, 하나의 메시지에 많은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단어의 갯수를 줄여야 했다.

이것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 영문 키패드를 보면 숫자마다 3개씩 영어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다시말해서 숫자패드 1에는 abc가 2에는 def가, 3에는 ghi가 적혀 있었다.

이러한 키패드를 사용해보면 문제점이 발생된다. 바로 'cab'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보자. C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 숫자패드 1을 세번을 눌러야 한다. 다시 a를 쓰려면 1을 한 번 눌러야 하고, b를 쓰기 위해서는 1을 두 번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핸드폰으로는 버튼 1을 여섯 번 누르는 것이다. 이렇게 1을 여섯 번 누르면 글자는 다시 한 바퀴를 돌고 'c'가 된다.

글자 하나씩 입력하기 위해서 결국 글자마다 스페이스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See'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See를 쓰기 위해서는 e와 e사이에 스페이스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그러나 해당 버튼을 오랫동안 꾹, 하고 누르고 있으면 문자는 숫자로 바뀐다. 고로 당시 영어 메세지에는 문자와 숫자가 번갈아가며 이상한 기호가 된다. 이런 문화는 통일되지 못하고 때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센스를 보여주는 기회로 사용되기도 하다.

CN U CM BK 2 ME.

(Can you come back to me.)

이는 고정된 문자가 아니라,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서로를 학습시키고 가르키고, 전파되는 방식으로 퍼졌다.

이처럼 '문자'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쓰여졌다. 그렇다면 아예 문자가 없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정보를 남기고 전달했을까. 그리고 그 과정과 방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시대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대시가, 향가, 고려가요, 시조(평시조, 연시조), 사설시조, 가사

이 땅에서 우리말로 시를 짓던 이들이 우리 문자없이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한문'이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영어의 숫자패드'처럼 한자는 정확하게 우리말과 호환되지는 않았다. 고로 우리는 꽤 다양한 방식으로 이 도구를 사용했다.

첫째, 고대시가

고대시가는 '종이'가 없던 시기에 말로써 '구전'되던 '노래'를 후대 문헌으로 남긴 경우가 많다. 고로 '문자'가 아닌 '소리'로 전달하는 특성에 맞게 '율격'과 '리듬'이 매우 중요했다.

둘째, 향가

향가가 사용된 시대는 주로 삼국시대, 즉 4에서 7세기 쯤 된다. 종이는 중국에서 채륜이라는 환관이 기원전 2세기 경에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대략 삼국시대인 6세기 경이다. 다시말해서 삼국시대에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종이'가 아니라 '목관'이라는 나무가 필요했다.

중국에서는 '죽관'이라는 '대나무'에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곳에 문자를 기록하기 하려면 '글자수 제한'과 '장 혹은 단 구별'이라는 필연적인 정형화 된 구조가 필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향가다. 향가는 '4구 4구 2구'라는 3단 구성이 필수적이다. 이는 초장 중장, 종장의 '시조의 형식'에도 영향이 있다. 향가는 대체로 승려나 화랑등 귀족과 지식인들이 사용했다. 이들은 한자의 음과 뜻을 번갈아가며 우리말을 표현했다. 앞서 말한 영어가 숫자의 음을 차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후 '고려가요'로 넘어간다. 고려가요는 당연히 고려시대에 발생하고 유행했다. 이 시대는 이미 '종이'가 한반도에 전파된 뒤이다. 고로 '형식'에서 자유로워진다. 죽간이나 목간처럼 구와 장을 맞출 필요도 없이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고로 향가보다는 길고 쉬우며 귀족이 아니더라도 쓸 수 있었다. 고로 주제가 다양히진다.

넷째는 '시조'다.

시조가 발생한 시기는 '조선초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기'다. '조선 초기'에는 '한글'보다 '한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시기다. 또한 조선 건국이 '중앙집권 체제 이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교사상'이 전파됐다. 고로 우리 글은 '사회적 질서, 정치적 질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지식인들은 '유교'의 영향에 맞게 '중국'에 대한 사대를 중시 했으며, 고로 웬만한 표현은 '중국의 방식'으로 사용했다. 고로 대부분 덜 서민적이고 정형화 된 형식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사설시조'다.

사설시조가 보편화 된 시기는 조선 중, 후반이다. 이 시대에는 '한글'이 보급됐다. 한글은 여성과 평민의 글로 쓰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주제가 다양해지고 '형식'이 자유로워진다.

우리 문학사는 단순히 시대마다 개별로 이유 없이 유행처럼 번지다가 사라진 것들 투성이가 아니다. 당연히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시대에 맞게 그라데이션으로 옅어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현대 우리의 글은 'ㅇㅋ, ㅇㅇ, ㄴㄴ' 처럼 자음만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초성체라고 한다. 초성체인 자음으로만 대화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PC 보급과 게임 문화가 아닐까 한다. PC를 하기 위해서, 왼손은 키보드 위에 올라가고, 오른손은 마우스 위에 얹어진다. 대체로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쪽은 오른손인 경우가 많다. 마우스를 쥐었다가도 재빠르게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로 올라가는 과정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왼손으로만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가 생겼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그렇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됐다고 초성체를 사용하는 나라는 어느나라에도 없다.

아무튼 문학과 글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것이 좋고 나쁘다 할 수 없다. 그것은 문화이며, 시대이며, 그리고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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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
귀도 토넬리 지음, 김정훈 옮김, 남순건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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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당신을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

신은 당신을 만들기 위해 '진공' 상태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진공' 상태'란 가득찬 상태다. 그게 무슨 말일까. '진공상태'는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다. 흔히 '비어있는 상태' 혹은 '무'의 상태로 알기 쉽지만 진공은 가상의 입자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상태다. 쉽게 말해 양전자와 음전자가 끊임없이 생기고 상쇄하는 상태다. 이를 '양자요동'이라 한다.

수 많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생겨나고 서로를 소멸시키며 0으로 반환하는 상태다. 평온하고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들어지고 서로 소멸하며 요동치는 역동의 상태다. 0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있다.

0이 최초에 발견될 때, 인도 수학자들은 그것에 '없다'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0이 무한한 양수와 음수의 집합이며 모든 것이 중첩되고 상쇄하는 완전한 상태로 봤다. 다시말해 0은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없음의 반대다.

아무튼 이렇게 진공의 상태가 만들어지면 그 안은 에너지가 '거의 무한'이다. 물질과 반물질이 무한히 생성하고 소멸한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서든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이 남는 상태가 되는데, 이 미세한 비대칭 때문에, 우주에 물질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고 이 비대칭이 꾸준하게 팽창한 결과가 현재의 우주다.

우주 초기의 환경은 고온과 고압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강력히 잡아당기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것을 핵력이라 한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력으로 결합되면 중수소핵이 된다. 다시 중수소핵 두 개는 결합하여 헬륨핵이 된다. 이렇게 최초의 원자가 만들어지는데는 3분의 시간만이 걸렸다. 다만 이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에하나 이 과정이 10분 간만 지속됐더라도, 거의 모든 수소는 자유양성자를 소비해 무거운 원자가 되버린다. 그러면 우주상의 모든 수소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수소가 사라지면 '헬륨'이 생성되지 않는다. 헬륨과 수소가 없으면 우주를 밝히는 '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 몇 분, 그 몇 분의 차이로 우리는 기적인 세상을 보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자는 공간을 부유하고 다닌다. 부유하는 원자는 어떻게 될까.

만유인력의 법칙, '모든 물질은 서로 끌어 당긴다. 단, 질량이 작은 물질은 질량이 큰 물질에 끌려간다.'

이 원칙에 따라 떠다니는 원자는 서로 달라붙고 다른 원자를 끌어당긴다.

이렇게 덩어리 된 원자는 다시 공간을 부유하고 다른 원자를 더 끌어 당기며 몸집을 더 키운다. 질량이 커지면 더 큰 중력을 갖게 된다. 더 큰 중력은 더 많은 원자를 끌어 당긴다. 이렇게 뭉쳐진 원자 덩어리가 모여 압력과 열이 생기면 핵융합의 새로운 조건이 탄생한다.

원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조건 아래서 '수소'가 '헬륨'으로, 헬륨이 '탄소'로 바뀌고, 여기에 추가적인 핵융합이 일어나며 산소, 질소, 마그네슘 등으로 점점 더 무거운 원소로 결합된다.

융합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점점 무거운 원자가 되던 덩어리는 결국 더이상 결합할 수 없는 최대치까지 몸집이 커진다. 그 덩어리가 바로 원자 '철'이다. '철'은 합성을 멈추고 안으로만 수축만한다. 그러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폭발해 버리는데, 이것이 '초신성 폭발'이다. '초신성 폭발'은 우주 사방으로 원자를 다시 흩뿌려 버린다. 이렇게 뿌려진 원자가 다시 서로 끌어당기며 질량을 키우고, 다시 철이 되면 폭발하고 사방으로 원자를 뿌린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반복한다.

최초의 핵이 만들어지는데는 고작해봐야 3분이다. 다만 광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까지는 38년의 시간이 걸린다. 다시 첫번째 별이 만들어 지는데는 2억년이 걸린다.

'성서'에서 말하는 '빛이 있으라하여 빛이 있었다.'

처럼 간결하고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분명 엄청난 과정을 통해 우주는 빛을 만들었고 이제 그 빛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조건이 된다.

결국 초신성 폭발이 만들어낸 원자 덩어리는 이렇게 조합되고, 저렇게 조합되며 다양한 물질이 된다. 결국 우리가 '별'에서 왔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 탄생 138억 년 동안 이런 무한한 반복은 꾸준해 왔다. 개중 은하와 별, 행성이 만들어진다. 우리 은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은하에는 대략 1천억에서 4천억개의 별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 게다가 은하의 갯수는 대략 2조 개 쯤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에 있는 별의 갯수는 최소 10의 24제곱 정도 된다. 거의 1경 개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엄청난 숫자가 모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운좋게도 이렇게 수많은 환경 중 한 곳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략 10억 년 쯤 전에, '우리은하'의 변두리에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백열 플라즈마의 완전 구체가 형성된다. 이 구체는 자기장을 가지고 있고 25일마다 자전을 하며 표면온도는 6000도에 가깝다. 그 내부 온도는 100만도도 넘는다. 이 엄청난 가스 덩어리는 거대한 중력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원시행성계 성운이 질서정연해지고 투명해진다. 태양과 가까운 쪽은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풍부해진다. 태양 주변을 공전하던 먼지 알갱이들은 질량 때문에 방사선과 태양푸에 쓸려나가지 않고 서로 충돌하며 점점 더 큰 물체로 뭉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뭉쳐진 덩어리가 1km정도가 주변을 끌어 당길 수 있는 질량이 된다. 이는 다시 주변을 끌어 당기고 주변이 끌려오면 더 큰 질량이 되어 더 큰 중력을 갖는다. 이렇게 태양 주변에는 무수한 암석 덩어리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구형 행성'이 된다.

이 행성은 태양에서 세번째로 가까운 궤도에 위치했다. 그리고 1억 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현재 화성의 질량과 같은 행성이 이 행성과 충돌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행성이 충돌하면서 아주 오랜시간 동안 두 천체는 융합된다. 그러나 일부는 튕겨져 나갔고 행성의 중력장에 갇혀 궤도를 돌다가 하나의 구체로 뭉쳐진다. 그것이 원시 지구와 달의 탄생이다.

이 중 네 번째 행성의 위치는 기가 막히다. 이 위치는 우주의 추위를 피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받을 만큼 태양에 가깝게 공전한다. 열 에너지는 너무 가열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물'은 생성된다. 기가막힌 위치 덕분에 생성된 물은 이 행성의 대부분을 덮고 수십억 년동안 유지했.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이곳에서는 꽤 다양한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분자를 통합하고 변형하며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조건이 형성된다.

이산화탄소와 햇빛은 당을 합성하고 산소가 배출되는 이 생화학 반응은 환경을 더 드라마틱하게 바꾸었다. 다시 튕겨져 나간 그 파편의 위치 또한 기가 막히게 좋았다. 달의 위치 덕분에 조류가 생기고, 계절이 생겼다. 달이 지구를 때리는 속도와 각도 또한 엄청난 운이 따랐다. 엄청난 충격은 지구의 회전 속도를 바꾸었다. 지구의 회전은 내부의 대류운동을 시킨다. 고로 철과 니켈로 구성된 액체 금속이 지구 내부에서 열에 의해 대류운동을 하고 그로인해 행성을 감싸는 얇은 자기장이 발생한다.

이는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한다. 이제 원시 지구에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 등의 유기 분자가 풍부하게 존재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일산화탄소와 암모니아, 포름알데히드를 아미노산, 지질, 다당류, 핵산으로 변형시키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이 단백질은 정보를 조직화하여 최초의 DNA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우연은 또다른 우연과 겹치며 엄청난 행운을 만든다. 바로 태양계에서 다섯 번째 암석행성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지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는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그 지구 밖으로 '목성'이라는 '실패한 별'이 만들어진다. 이 목성은 워낙 거대해서 그 중력이 엄청나다. 이 거대 가스 덩어리는 자신의 질량으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소행성과 혜성의 곡률을 변화시킨다. 실제로 목성은 그 거대한 몸체 때문에 소행성들을 우주 공간으로 밀어냈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35억 년 전, 바닷물의 보호아래, 자외선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최초의 생물학적 구조가 안전하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조류인 단세포 원핵생물에서 다세포로 분화해 간다. 대략 3억년 전에는 지구가 거대한 온실효과로인해 온난화를 겪었다. 이때,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이를 '캄브리아기'라고 한다. 다시 6500만년 전에는 커다란 운석이 주구를 충돌하며 먼지 구름이 형성된다. 이는 지구 기온을 변화시키고 갑작스러운 기온 하락에 공룡 등 다양한 종들이 멸종한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크기가 작은 포유류가 살아남으며 뜻 밖의 기회를 얻는다.

다시 수백 만년 전에는 아프리카에 급격한 기온 차이로 숲을 잃어버린 원숭이가 먹을 것을 찾아 다니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넓어진 들판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넓은 지역을 오랫동안 걷기에는 털이 없는 편이 훨씬 더 유리했다. 털 없는 원숭이는 열을 배출하기 쉬워 더 많이 걸을 수 있었다. 털이 없어진 원숭이가 직립 보행을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은 '도구'를 사용하기 편했다. 또한 소모하는 열량이 높아진 탓에 '육식'을 시작한다. '초식'을 하던 털 없는 원숭이가 '육식'과 '사냥'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우연히 '불'을 발견하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그 뇌구조는 파격적으로 성장한다.

우연은 우연을 불러 일으키고, 다시 그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일으킬 때, 모든 확률은 제곱으로 커진다. 과연 우리가 '이글'을 볼 수 있었던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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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생물 Ⅰ 1 - EBS 장호 선생님 고등 생강 시리즈
장호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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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몸에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고대 의사하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서기 150년 경, 로마에는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갈레노스가 있었다. 그 또한 서양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17세기까지 사양 의학의 기반을 이루었다. 또한 그의 영향력은 근대까지 지속됐다. 갈레노스의 연구에 따르면 혈액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서 소비되어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에는 4가지의 액체가 있고 이것이 균형을 이루면 건강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이 네가지 액체는 '혈액, 점액, 노란색 담즙, 검은색 담즙이다. 이중 혈액은 당연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것이 생명의 근원이자 건강의 원천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대 의학에서 혈액은 어떻게 사용된다고 봤을까. 그 생각에 따르면 혈액은 각 신체 부위로 옮겨진다. 옮겨지며 영양분과 에너지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러한 혈액이 특정 신체 부위에 도달하면 혈액은 사용되고 사라진다. 말 그대로 소모품이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윌리엄 하비'라는 영국 의사가 현대적 의미의 '혈액순환'을 정의한다. 하비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심장이 혈액을 펌브질하고 있으며 이것이 혈액을 신체 전체로 도달하게 한다고 봤다. 펌프질 된 혈액은 산소와 영양분을 각 신체 부위에 제공하고 이산화탄소와 다른 대사 산물을 수거한다. 이런 매커니즘은 연속적으로 작동되는데 그로써 혈액이 재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재사용 되는 혈액중 일부는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또한 수거된 이산화탄소는 폐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즉, 혈액은 '영양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운반하고 수거하는 매개체라는 의미다.

현대적 의미의 '순환'을 정의했지만 혈액에 대한 연구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1665년에는 혈액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몸속에 있는 혈액을 외부의 혈액으로 공급한다는 발상은 당시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실험 대상은 강아지였다. 먼저 개 한 마리를 죽기 직전까지 피를 흘리게 만든다. 이후 그 개가 과다 출혈로 죽기 직전이 되면 다른 개의 동맥과 개의 정맥을 연결시켜 개가 살아나는지 확인했다. 이 실험으로 개가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을 확인한 의사들은 즉시 인간에게도 같은 실험을 재개한다.

1667년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드니는 15세 소년에게 양의 피를 수혈한다. 이후 그 소년은 실제 회복했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다만 이 수혈 실험은 항상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실험에서 다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고 일부 환자는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혈액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할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 분명히 종류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시기. 오스트리아에서 '란트슈타이너'라는 인물이 태어난다. 그는 수혈 후 심각한 후유증과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겉으로는 똑같이 보이는 피라고 하더라도 그 종류가 달라 서로 호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혈구의 표면에는 적혈구가 서로 달라 붙게 하는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다. 이를 '응집원'이라고 한다.

응집원에는 A응집원과 B응집원이 있는데 각각 A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B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AB를 모두 가진 적혈구, 둘다 없는 적혈구가 있다. 이것을 ABO로 구분한다. 즉 응집원에 따라 다른 혈액이 엉키면 피는 굳어버린다. 다만 분명 같은 혈액형인데도 그 둘을 결합했을 때, 응집이 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왜 그런고하니, 혈액은 단백질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르다. 쉽게 말해 '혈액'은 그 '혈액'이 자기의 혈액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태그'나 '이름표' 같은 것을 각각 가지고 있다.

1940년대에 과학자들은 혈액 응고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라는 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원숭이를 사용했다. 이 원숭이에게서 혈액의 특별한 항원이 발견된다. 이 항원은 사람의 적혈구에도 발견될 수 있었는데, 이 항원이 존재하면 원숭이의 이름을 따서 RH+(양성), 없을 때는 RH-(음성)라고 한다.

이처럼 RH는 일종에 혈액에 붙어 있는 '이름표'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의 이름표가 있는 혈액은 RH+(양성), '이름표'가 없는 혈액은 RH-(음성)이다. 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데 이름표를 가진 이들은 이름표가 없는 혈액을 수혈 받아도 문제가 없지만, 이름표 없는 이들이 다른 이름표가 있는 혈액을 수혈 받으면, 이름표가 없는 이들은 '다른 이름표'를 '외부의 침입자'로 규정한다. 외부의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 항체를 생성하고 이 과정에서 적혈구가 파괴되기도 한다. 이 반응을 용혈 반응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수혈받게 되면 혈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빈혈이나, 신장손상, 심한 경우네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혈액형은 결국, 항원의 차이에 의한 구별이다. 다만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왕성하던 20세기 초반, 굉장히 독특한 주장이 생긴다. 동물과 사람에 대한 혈액형 조사가 한창을 이루던 시기, 국가별 혈액형 분포도 함께 이어졌다. 이 시기는 '골상학'과 '우생학' 등이 유행하던 시기다. 이런 유행은 '흑인 노예'와 '아시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 국가들에서 B형 혈액형이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B형 혈액형의 비율이 20에서 30%로 추정되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원숭이에게는 B형이 많다.'는 연구가 진행되며 이것이 새로운 인종 차별의 재료로 사용된다. 실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에밀 폰 던게른 교수는 1914년에 Handbuch der Rassenhygiene라는 책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혈액형 차이를 언급한 적 있다. 이 언급에 따르면 동양인의 혈액형 분포는 서양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며, 특히나 B형 혈액형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것이 동양인의 행동과 성격 차이에 대한 새로운 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B형이 많은 동양인은 야만적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인종차별적 소재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에 1927년 '후루카와 다케지'라는 교육자가 자신의 주변 인물과 친척 열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혈액형에 의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A형은 소극적이고, B형은 개성이 강하며, O형은 적극적이다. 또한 AB형은 A형과 B형의 특색을 모두 갖는다. 다시 1970년에는 노미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연예인과 유명인'들에서 TV와 방송매체, 뉴스, 잡지로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며 큰 유행을 갖는다. 다만 일본에서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정리한 자료는 표본이 지나치게 적고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 또한 대체로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와 '교육자'에 의해 조사된 내용이라 그 근거를 찾기 더욱 어렵다. 이렇게 일본에서 유행하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일본의 경제 호황시기 한국으로 넘어가 한 차례 더 유행을 했고 MBTI 성격유형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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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황솔아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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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뒷통수를 보면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눈을 등지고 있는 그 뒤통수에서 그가 평생 보지 못할 우주의 끝 같은 존재를 내가 보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우스께소리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장총'이면 자신의 뒷통수를 저격할 수 있단다. 우주도 결국은 지구처럼 '구' 모양을 하고 있을진데, 어쩌면 가장 먼거리라고 하면 어설픈 '안드로메다 은하'가 아니라 눈 뒤에 달린 '뒷통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울'과 '거울'로 내 뒷통수를 구경하는 일을 '취미'삼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이론상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들춰 보는 일은 상대의 눈에 비해 희귀한 일이다. '관찰하면 존재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라더니, 나의 뒷통수는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상대의 뒷통수를 보면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의 뒷통수라하더라도, 그에게 철저히 '무지'의 영역이 되는 그 '구역'을 면밀히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남모를 우월감이나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의 완전한 '나체'를 관찰하는 듯, 완전히 벗겨져 있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듯. 그의 완전한 무지의 영역을 훔쳐보면서 나또한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내보인다. 나의 뒷통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마 흰머리가 약간 있을 수도 있고, 삐친 머리가 불완전하게 달려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내 뒷통수를 살폈던 것은 언제인가. 가만 살펴보니, 나는 남들을 관찰하며 남에 의해 관찰된다. 그러며 정작 내가 나를 가장 모른다. 나는 나에게 단 한번도 면밀한 360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살다보면 상대의 표정과 말투, 숨소리를 관찰하게 된다. 나또한 그랬다. 직장 상사의 숨소리가 어땠는지, 그의 표정은 어떻고 목소리는 어떤지. 그 작은 변화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리며 증폭해 나간다. 상대 눈썹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아주 사소한 억양과 말투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머릿속은 끝없이 상대의 모습을 되뇌인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는 어떠하면 말의 빠르기와 높이는 어떠한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나. 상대의 한숨에 부여하는 큰 의미만큼 나의 숨에도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가. 숨을 단 한번이라도 조절해 보거나, 관찰해보려 노력은 한 적 있는가.

입술 주변의 근육은 어떤 긴장상태에 있는가. 이마의 근육은 어떻고. 발이 닿고 있는 바닥의 감촉에 대해서는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왼쪽발 세번째 발가락의 촉감은 어떠한가. 그것을 지금에서야 느껴본다면, 그것이 남의 발가락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살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의 인간이 존재한다. 이런 인간들은 각자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라벨링'을 하면서 정작에게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라벨링'은 보지 못한다. 눈에서 가장 먼거리인 뒷통수에 달려 있으니 보지 못한다. 가깝고도 멀다는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일지 모른다.

혼자라는 것은 때로는 가장 낯선 이와 함께 하는 일일지 모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모든 나를 대표할 자신은 여전히 없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단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존재이며, 더욱이 관찰해 본 적은 없다. 낯선 땅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 인간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가장 낯선 자신과 일대일로 마주할 때가 아닐까. 우리는 가장 낯선이들과 만남을 피하고자 결국은 가장 익숙한 누군가를 밖으로 찾아나선다.

황솔아 작가의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는 작가가 서른 여덟살 동안 겪은 다양한 생각과 삶이 그려져 있다. 주변에 존재할 만한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쉽게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데 황솔아 작가가 말하는 것 처럼, 겉을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내가 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다면화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현대인이 생존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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