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Art & Classic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유보라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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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실에 '갈매기의 꿈'과 더불어 이 책이 꽂혀 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어렴풋 그 두 권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간이 꽤나 지나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저 자주 언급되는 사막 여우나 장미의 이야기 정도만 남겨두고 모두 잊어 버리고 있어다. 기껏해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리고 아기 염소를 그리는 방식을 작은 상자로 표현했다는 기특함만 갖고 있다면 수수함을 잊지 않은 어른이 될 거라는 독특한 망상으로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다시 읽게된 '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사실 많은 작가들의 번역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은 '유보라'님의 따듯한 그림 감성으로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 책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어린왕자의 엄청난 팬이다. 어린왕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국어 본 뿐만아니라,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까지 섭렵했다. 그렇게 어린왕자에 빠져 들었던 친구를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 깊은 감성에는 '나도 이미 읽었는데 별 거 없었다'라는 식의 오만이 스며들어 있었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자의 문자를 읽어 넘어갔던 행위가 나에게는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 중요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나고 나서 종종 '어린왕자'의 문구를 인용하는 다른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생텍쥐페리'라는 나에게 적절하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작가의 삶을 인용하는 글들을 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적당히 유치한 동화 같은 이야기였던 이 '어린왕자'라는 소설을 왜 이토록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의 첫 페이지를 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한 설명이 없이 이야기는 진행한다. 1939년 2차세계 대전 발발초기 예비역이였던 생텍쥐페리는 공군 비행기 조종사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녹여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최근 읽었던 '먼바다'를 비롯해 주인공들은 그 소설의 만물을 창조하는 창조주 같은 작가로 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어떤 사소한 역할을 하는 조연과 상황, 사물 모두가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당연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불착륙한 사막 어느 가운데에서 어린왕자를 만난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에서 지구로 내려오면서 주인공을 만나고 난 뒤 부터는 이야기의 흐름은 어린왕자로 옮겨진다.

어린왕자는 지구를 포함한 여러가지 '별'들을 여행한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저 동화같은 이 이야기에는 사실 어른들의 삶을 투영하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오만에 가득찬 사람과 명령에 복종만 하는 사람을 포함, 술에 빠져 잊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며 어린왕자는 그들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실 그가 독특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어른인 내가 본 그들은 전혀 독특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우리이며, 모두 그런 모습을 하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중요함'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에 적당히 설득되었다.

나는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에 속한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어떤 사건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근거나 자료가 있어야 '진실'이라고 판단하고 누군가를 오만하게 대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이루고 싶어한다. 이런 오만들과 많은 감정들이 이 짧은 소설 안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동화'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얼핏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이야기가 유명해지자 저자인 생텍쥐페리는 그 것 자체를 슬퍼했다고 한다. 어떤 틀에 벗어나야한다는 관념을 심어주고자 시작한 간단한 예시가 또 다른 틀이 되어 우리 어린들의 관념 속에 녹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제는 우연히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최초 공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보게 되었다.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이라며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갖는 그런 프리젠테이션을 다시보니, 무감각했다. 'MP3플레이어'와 '전화기' '인터넷 디바이스'를 서로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우리는 그 다음에 소개할 애플의 디바이스가 '그 모든게 되는 아이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치 식스센스의 결말을 알고 영화를 다시보는 것처럼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집게 손으로 사진을 확대하는 모습이나. 지도를 통해 스타벅스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를 연결하는 모습을 보는 당시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왜 환호하는 거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서쪽으로 항해만 하면 인도보다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는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여겨지는 '콜롬버스'를 당시 사람들 중 평가 절하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앞에서 콜럼버스는 탁자 위에 계란을 하나 두고, 계란을 세워보라고 말한다. 아무도 계란을 세우지 못하자 콜롬버스는 계란의 끝트머리를 깨어 그것을 세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런 식이면 나도 세울수가 있소!'라고 말한다. 이미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그 참신함은 참신함이 아니라 언제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 되어버린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막여우'가 말하는 '길들여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TV를 키면 나오는 무의미한 미녀 미남를 질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별'일 뿐이다. 서로가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나를 스치는 수 억개의 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아무리 먼 거리를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 길들여진, 즉 나와 관계 형성이 된 누군가는 다른 별들과 다르다. 살면서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돌이켜보니, 지금 그들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잊혀지기도 하고 어쩌다 생각이 나기도 한다.

다만 그들이 세상 밖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이라도 행복한 표정을 하고 돌아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인연은 제주를 넘어 다국적으로 넓어졌다. 게중에는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형성된 관계 속에서 결국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함 때문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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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볍게 살아라 - 남들 덜 신경쓰고, 나를 더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마스노 슌묘 지음, 강정원 옮김 / 슬로디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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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디 뻔한 소리를 하겠지' 하며 책의 첫 페이지를 읽었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사람은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뉴질랜드에서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다운 받기도 힘든 뉴질랜드 촌구석의 인터넷 환경 탓에 나는 유학 갈 때, 다운 받았던 음악 리스트를 수 백 번이나 돌려 들었다. 물론 그것을 뉴질랜드의 인터넷 환경만을 탓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변화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심리와 게으름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같은 음악을 여러 번 듣다보면 단순하게 멜로디가 좋아 듣기 시작한 음악이라고 할 지라도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하고 가사에 신경이 멈춰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 생각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챗바퀴 돌리듯 돌리던 내게 '거북이-사계'라는 음악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빨간꽃 노란꽃 꽃 밭 가득 피어도~'로 시작하는 노래가사는 봄으로 부터 시작하여 신나는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이 오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놀러 가는 계절을 뒤로 하고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비교하는 노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략 뜻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일터로 나가는 일상, 하루종일 반복적인 일을 하다가 점심에는 피쉬엔칩스와 팹시콜라 하나를 들고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갈매기들이랑 점심을 나눠 먹는 일상. 다시 일이 끝나면 고된 몸을 이끌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뒤, 하염엾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그 일상에서 나는 좋은 계약 조건이라는 타이틀에 목이 매여 있었다.

인터넷에 있는 한국에서 젊음을 뽐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항상 부러워하고 나는 다시 다음 일상을 맞이 했다. 그냥 신나게 춤추면서 노래부르던 '거북이'의 '사계'는 그 때의 나를 대변하는 가사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는 퇴사를 했고, 나는 챗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들을 하면서 '거북이'의 '사계'는 더 이상 나를 위로해 주지않았다. 삶의 색깔은 하루를 마다하고 각각의 시간과 분과 초마다 나의 감정에 따라 달라졌다. 그 적합한 노래가 항상 달라져왔고, 그 적합한 책과 시와 영화가 달라져왔다. 마치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맞는다'는 죽은 시계와 같이 그 자리에 멈춰져 있던 노래와 책과 가사는 쉼 없이 돌아가는 나의 감정과 상황을 정확하게 일치해 주었다. 끊임없이 나를 쫒기 위해 달려오는 수많은 역동적인 '위로'들 보다 이런 책들이 더욱 나를 위로해준다.

이 책은 어떤 시기에 보냐에 따라, 뻔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다가와서 마치 죽어있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나의 마음을 살펴주었다. 책에 나오는 '끽다끽반(喫茶喫飯)이라는 말' 몇 번을 페이지를 앞으로 갔다가도 되돌리는 말이었다.' 선어'에 나오는 말로 '차를 마실 때는 차 마시는데 집중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데만 집중하라는 말' 나에 대해 엄청난 위로이자 조언을 하는 말이다. 마치 정확하게 이 타이밍에 나에게 이 말을 해주기 위해 저자가 일본에서 작가활동을 했던 듯, 모든 상황이 나에게 맞아 떨어졌다. 그냥 건강한 식사를 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아 배나 두드리면 되는 행복할 수 있는 순간에, 나는 오지않은 미래를 붙잡아두고 떠나가겠다는 과거를 끄집어 내며 현실의 나를 좀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지금있는 행복에나 충실해라' 지금 주는 밥도 못먹는 놈이, 나중에 차려놓은 밥상은 어떻게 받으려고 하는가. 내가 어떤 목표를 이루는지와 상관없이,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가져야한다. 만족한다는 것은 정체를 말하지 않는다. 현재를 만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장기적인 비전은 그대로 둔 채, 일단 현실에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라는 말이다. 나의 두 발은 현실에 두고 이상을 바라보는 두 눈은 미래를 바라보라고 했던가. 지금 당장 기탱해야 할 두발을 무감각하게 두고서 미래로 빨리 나아가지지 않는 현실에만 불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로동선' 여름의 난로와 겨울의 부채와 같이 단기적으로 보자면 도저히 불필요한 것들도 사실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부채는 가만히 두기만 하면 1년 중 어느 순간에서는 난로보다 훨씬 적합한 역할을 하는 물품이 되고 난로도 가만히 두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 어느 것 보다 중요한 순간이 온다. 지금 내가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정말 불필요하기 때문일까. 내가 지금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또한 정말 무능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만물이 시기가 있는 것 처럼 나 또한 세상에 맞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사용해 달라고 세상에 떠드는 것은 자신의 바보 같은 무능을 홍보하는 격이지만, 언젠가 시기가 왔을 때는 '낭중지추'와 같이 스스로 들어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 능력을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살다보면 내가 부단히 노력하는 것들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이루지 못할 바에는 '죽음' 밖에 없다고 소리치는 일들은 결국 '죽기 위한 발악'이다. 죽을 힘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있다지만, 죽을 힘을 다해도 이루지 못하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투자에는 '손절'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존버'라는 말처럼 끝까지 버티면 언젠가 수익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상장 폐지 되는 경우도 있다. 상황과 현실에 맞는 이론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들이 현명하다. 이루지 못할 것에 에너지를 쓰느니 내가 더욱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책의 소제목 자체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된 것이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수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내 미래와 현실을 갉아 먹어서는 안된다. 빠른 손절은 투자의 미래의 절대적 '선'이다. 워렌버핏은 '코로나19'사태가 벌어지고 자신이 갖고 있던 자산에 수 조원의 손해가 발생했지만 빠르게 '손절'을 하고 '애플'이라는 '플랫폼 기업(?)'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는 그 손해를 상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수 십조를 벌었다. 아니다 싶은 일에는 더 이상 애를 쓰지마라. 밑 빠진 독이란 것을 확인해다면,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불굴의 의지는 '바보같은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방증한다. 내가 노력하던 일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어었다면, 지금까지 했던 노력을 보상 받을 생각을 저버리고, 얼른 다른 독에 물을 붓기 시작해야한다. 죽을 임을 다해도 안되는 일은 분명하게 있다.

'돈', '명예', '인맥', '기회'... 그런 성공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지금 당장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가 빚은 항아리의 크기아 아직 크지 않고 구멍이 나 있는데, 아무리 명약을 갖다 퍼준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모두 소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오지 않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아직 내가 그것들을 받아들일 그릇은 가지고 있는지 감사해야한다. 지금 당장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그릇이 깨진 바가지라면 얼마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 갈 것이 뻔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또 1등 당첨자'의 미래처럼, 사실 지금의 모습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런 것들이 나에게 오느듯 싶더라도 그것들이 머물지 못한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 처럼 철썩 같이 그것들이 나에게 달라붙길 원한다면 나의 자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식농부 '박영옥'님은 준비되지 않은 '상한가'를 경계하라고 했다. 10년을 기다려서 30%를 수익을 얻으나 오늘 매수하고 내일 30% 수익을 얻으나 모두가 똑같은 30%인데 그냥 얻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그런 부와 기회는 결국 나에게 머물지 못하고 금방 달아나 버린다. 부가 잠시 머물러 주인의 그릇을 살펴본 결과 자신을 보호해 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부는 자신을 성장시켜주고 안전하게 보호해 줄 보호자를 찾는다. 꼭 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맥, 명예, 기회 모두가 마찮가지다. 그것들이 나를 성장시켜주길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성장시킬 그릇은 되어 있는가. 오늘 하루도 좋은 책으로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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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왜? - 반일과 혐한의 평행선에서, 일본인 서울 특파원의 한일관계 리포트
사와다 가쓰미 지음, 정태섭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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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한국 독자를 위해 출판한 책이 아니다. 한국인이 한국인 독자를 위해 출판한 책이 아니다. 일본인이 일본인 독자를 위해 출판한 이 책은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책이 한국어 번역본으로 이와같이 출판되었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일본인들은 대게 극우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유가 어찌됐건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일본인들의 성향이 상당히 극단적이다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인구는 1억 3천만명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정치적 성향 또한 다양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극우'라고 칭하는 사람의 글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설명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저자인 사와다 가쓰미는 1967년 생으로 방탄소년단 등의 한류 아이돌을 이해하기 조금 많은 나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마이니치신문사에서 30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현직 기자다. 특히 1999년 부터 4년 반 동안, 다시 2011년 부터 4년 동안 서울 특파원으로 지냈다. 그는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당시 혼자서 배낭여행 차, 한국을 여행 온 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가졌던 최초의 관심은 참으로 극미했다.

아주 오래 전, 네이버에서는 '한일 실시간 번역 게시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게시판은 상당히 단순하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게싯글을 게시하고, 일본인은 일본어로 게싯글을 게시하면 실시간으로 게싯글과 댓글이 번역되어 서로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이런 참신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얼마 간 지속되다가 이내 폐지되었다. 한일 교류의 창구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기획자들의 예초 예상과는 다르게 극우 양측 네티즌들이 상대를 헐뜯는 장소로 바뀌어감에 따라 게시판 성질이 '극단'으로 치닫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호기심으로 해당 게시판을 들여다보며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족 있는지 살펴봤다. 그 곳 올라가 있던 게싯글들을 읽어보면 '일본인'들이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어렸을 때 부터, 반일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한일협약으로 일제 식민지 시기의 보상이 다 끝났음에도 끊임 없이 보상과 사죄를 요구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인도적인 사죄를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죄를 요구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한국을 보며, 거지근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제품을 그래도 배껴쓰는 양심없고 국민성 낮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일본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 성장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없는 괘씸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모두 일본의 핵심 소재나 부품을 사다가 조립을 하는 수준이라 한국의 기술력이 미천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는 그들이 맞기도 하고 그들이 틀리기도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당연히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반드시 있다. 우리는 일본의 상품을 그대로 배껴 성장한 나라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의 상품을 그대로 배껴 성장했으며 기술과 자본은 '이익'을 향해 움직일 뿐이다. 끊임 없이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정권'이 계속 해서 바뀌는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비롯되어 있으며 불완전하게 종결된 근대사의 결말 때문이기도하다.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에 관심이 없거나 '무시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되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문화 대한 관심이 적다. 한국은 일본의 핵심부품을 조립하는 회사라는 타이틀은 결국 '한국이 일본의 최대 고객'이라는 타이틀로 인식이 달라졌으며 한류 컨텐츠를 타고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을 동경하기도 한다. 이 책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 80년 대 민주화를 이루고 최근의 촛불혁명의 성공으로 '올바름'이 중요하고 그것을 바꿀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인식이 분명한 나라라고 했다. 그런듯 하다. 어두운 역사라고 하지만 결국 그 역사의 끝에는 대중의 성공이 있었다. 그런 역사적 배경으로 한국민들은 '대중'의 힘을 굉장히 신뢰한다.

저자는 '불매운동'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최근의 불매운동이 규모화되면서 놀랍다고 했다. 특히 여행부분에 있어서 일본의 타격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가 일본과 한국의 비교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말하는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은 머리로 이치를 궁리하기보다는 실천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은 관념이 중요시 되는 사회이다 보니 한국어를 일본어로 그대로 옮기면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하고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사용하는 어휘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어는 그의 말처럼 관념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한구절만 읽어봐도 '독일어 번역본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처럼 번역을 하더라도 그 나라의 문화에 따른 어감은 남아 있게 되다. 확실히 유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의식 때문에 우리는 관념이나 명분을 중요시한다. 그런 이유로 일본어 번역본을 읽다보면 너무 쉽게 풀어져 있어, '청소년' 책과 같이 쉽게 읽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책이 일본의 책보다 조금 더 모호하거나 관념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공감하던 부분이다.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그들이 거의 비슷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아주 사소한 의사소통 때문에 함께 지내면 다툼이 일어난 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마치 일본과 한국은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비슷하면서 약간의 차이 때문에 때로는 아주 다른 문화권의 나라들에 비해 다툼과 오해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책은 짧고 쉬워서 오래 걸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아이들과 이번 주말에 외식을 하며 책을 읽었다. 주말에는 오롯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책을 놓지 못했다. 다음 주말 부터는 손에 든 책을 좀 내려 놓고 아이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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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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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을 덮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단순히 소설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이 책은 소설책이 아니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파고 들어간다. 역사의 배경에서 평범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게 된 평범한 사람의 '악'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책의 중반 부까지는 흔히 말하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카페시우스'가 있다. '악의 어떻게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가'라는 소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중반부까지는 '이게 실화인가' 싶은 역사적 사실들이 담담하게 나열되어져 있다. 예전 어떤 채식주의자는 유튜브에 있는 병아리 감별 영상을 보고 채식을 결심했다고 한다. 영상은 갓 태어난 병아리들을 숫컷인지 암컷인지를 감별하고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숫컷은 분쇄기로 던저 버린다. 동물을 보면서도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은 우리가 갖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찰라의 순간에 생과 사를 가르는 병아리 감별사처럼 주인공 카페시우스는 '노동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른다.' 그의 손가락에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갈라졌다. 그는 평범한 약사였다. 그를 소개하는 첫 장면은 그를 기억하는 유대인 가족들의 시선으로 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과 같은 전개방식이 독특했다. 그를 사람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부터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관료화된 '악'에 의해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되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내용은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같은 영화들이다. 해당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모두 이 책에 나온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너무 영화화했네'라고 생각했던 잔인한 장면이 결국은 '축소된 재연'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을 죽이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는 비인간적인 모습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군에 입대했을때를 생각해보자면 말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이해하지 못할 '부조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부조리들을 바라보면서 비합리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이런 부조리들이 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이유없이 상병이 되면 일병, 이등병의 군기를 잡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위치인 병장이되면 그런 부조리에 무뎌지면서 되려 악해진다. 마치 조금씩 스며들어가는 스펀지의 물처럼 '악'은 관계와 상황, 환경에 의해 조금씩 받아들여진다. 굉장히 논란이 되었던 '윤일병 사건'들도 군대라는 특수한 위치와 장소에 모이기 전까지 가해자들이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은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로 인해 죽은 수많은 사람들... 그는 분명 악이다. 하지만 ...

군대에 있으면 직급이 올라갈수록 부대 내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이 존재한다. 상병이 되면, 부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정규적으로 후임들을 불러모아 불필요한 교육을 해야했다. 강압적으로 시키지는 않지만 그 위치가 되면 누구나 그랬고 나또한 그래야할 것 같은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면 사회에서는 좋은 친구 혹은 형과 동생으로 이어질 관계들이 불필요하게 긴장감이 형성되는 관계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정서적 가혹행위'를 하게 되는 그런 문화는 그 상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과연 개인의 탓일까. 그리고 그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 개인은 무고한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뒤를 넘기면 마지막에는 굉장히 와닿는 문구가 있다. 중반부까지 읽어왔던 내용에 후반부에서부터 지리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법정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법정 내용이 길어지면서, 점차 책의 절반 부분을 차지하던 '악행'에 대해 무뎌지기 시작한다. 마치 그 시대의 대중들처럼 책을 넘어가면서 조금씩 악에 무뎌진다. 재판이 20년 이상 이어지며 조금씩 잊혀져가고 용서해가게 된다. 결코 책의 초반의 상황이라면 무뎌질수 없는 감정들이 책 한장 한장 넘어가면서 무뎌지기 시작한다. '직접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기도한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악인지 점차 희미해져간다. 무정한 대중들의 시선은 점차 '과거는 잊고 새로운 미래!'를 외친 다. 우리 근현대사와 너무나 닮아있던 독일의 역사를 보면서 가슴 한편이 답답해온다. 친일 청산을 이야기하며 항상 선진국의 사례를 이야기 하지만, 너무나 닮아 있는 독일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었다. 사형제가 없는 독일에서 혹은 엄청난 판결을 받지만 얼마 후 풀려나는 전범인들을 보고 욕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는 정의 인지, 정치인지 잘 모르겠다.

사법에서 '엄벌'과 '교화' 사이에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교화'를 택한다. "나쁜 놈은 '천벌'을 주자" 보다는 "그를 교화시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자"를 따진다. '쳐 죽일 놈들'이라는 나쁜 놈들을 보면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엄벌'을 기대하지만 국가는 그들을 '교화'시키고 사회구성원으로 구실을 할수 있도록 노력한다. 최대한 '감형'을 하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내보내려 한다. 그러한 사법기관의 유연함이 없다면, 범죄는 더 잔혹해지고 숨어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죄수자를 관리하기 위해 들어가는 여러가지 행정과 세금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관리가 필요한 죄수자를 내보냄으로써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사회구성원'이 필요한 국가로써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가지 말이 많다. 얼마 있으면 '조두순'의 출소가 있다. 그런 이유로 사실 이런 교화와 엄벌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악의 평범성이란 무엇일까?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에 대한 보복이 일어난다. 이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노론과 소론도 그랬고, 개혁파와 온건파가 그랬으며, 친일파와 친러파가 그랬다. 국가에 항구를 개방하자는 개혁파가 이기면 다시 온건과 급진으로 나누고 그 중 하나가 정권을 잡으면 상대쪽은 사라져야 했다. 단, 안정적인 정치를 위해 상대를 '악'으로 몰아세우고 얼마 뒤에 그들을 '교화'의 명목으로 풀어준다. 단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들어왔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할 뿐이지, 이는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어져 간다. 박근혜 정부 때, '악'의 부품으로써의 역할을 다했던 사람들을 색출하고 죄를 묻자는 이야기나 노무현 정부 때, '악'의 부품으로써 역할을 다했던 사람들을 색출하고 죄를 묻자는 이야기를 보자면 사실상 스케일과 명분만 달라질 뿐,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이와같은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기분이 든다. 미국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다면 과연 역사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무엇이라고 기록했을까? 그리고 그 홀로코스트의 부품들을 무엇이라고 기록했을까? 과연 지금의 우리는 전혀 '악'이 아닌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같은 상황에서 '절대 선'의 편에 서서 사회를 등질 수 있을까?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고만가지 감정들이 오묘하게 뒤섞이며 결론짓지 못한 책의 감상에 가슴이 먹먹함을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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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디자인 45
이노우에 히로유키 지음, 정지영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단 한 줄이라도 나를 자극하는 말이 있다면 나머지 모든 페이지들이 쓰레기와 같아도 그 책은 좋은 책이다. 내가 책을 읽을 때 항상 마음 속에 새겨두는 말이다. 이 책은 이노우에 히로유키라는 일본의 치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자 경영박사가 쓴 자기계발서이다. 사실 자기계발서는 대부분 우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계발하려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아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식으로 고치길 기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살을 빼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살이 빠지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하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어떻게 시간관리를 해야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일을 해야하는지 우리는 대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자신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문자로 다시 확인하려 드는 걸까? 단순히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내가 모나리자라는 예술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소유할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이미 한 번 보았고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DVD를 소유하는 것이 무가치있는 일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좌우명을 수첩의 앞 표면에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두기도 하고, 매일 보는 아이의 얼굴을 지갑에 두어 보관하기도 한다.

알고 있다는 사실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뭇 다른 감성을 갖고 있는 행위들이다. 성인이 되어가며 나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대게 학창시절 잔소리를 듣던 어린 소년은 나름 머리가 컸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쓴소리와 잔소리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주변에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그런 이유로 학창시절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자기계발서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찾아 보게 되는 듯하다. 자신이 스스로 찾아보는 잔소리 같은 느낌이랄까? 이 책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출간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소장 그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바이블과 같이 그것을 소유하고 스스로 자극하라는 의미로 만든 일종의 상징물로써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한 마디 한마디에 짧은 설명을 써두고 그 말 마다 커다란 여백의 페이지를 세워둠으로써 가볍게 넘어가지만서도 언제든 쉽게 원하는 페이지를 찾을 수 있도록 편집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넘어가다가 '행복의 감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 한 줄이었다. 그것으로 이 책은 그 가치를 다했다. 단 줄의 글이라도 그것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맞는 글이라면 그 책은 의미 없는 두꺼운 책들보다 더 큰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 '행복의 감도' 그러고 보니, 쾌쾌한 냄새가 나는 방에 오래 머물다보면, 나의 후각은 무뎌지고 그 냄새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는 목욕도 처음에는 매우 뜨겁다 생각을 하지만 몸을 담구고 얼마가 지나면 더이상 물이 뜨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뜨거워야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행복도 그런 것 같다. 모든 감각은 익숙해질 수록 무뎌진다. 끼고 있던 반지나 시계 등의 악세사리도 오랫만에 착용하고 나면 어딘가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착용하다보면 벌써 익숙해져버리고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진다. 행복이 나에게 없기 때문에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너무 행복에 쌓여 있다보니 그 감도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내가 몸 담구고 있던 뜨거운 욕조의 물온도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발가벗은 채로 욕조의 밖으로 나갔다 오면 알 수 있다. 굳이 그런 식으로만 행복을 확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불필요한 '불행'들을 스스로 찾아야하는 재차의 불행을 끌어들이고 있는 샘이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살다보니, 모든 감각에 무뎌져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에는 계란 후라이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맛있던 밥이던가. 언제부턴가 고급진 플레이팅이 되어 있고 다양한 요리가 겸해진 식당이 아니면 '맛있는 밥'을 먹었다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예전에는 당연히 타고 다니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지만, 지금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가용을 갖고 있으면서 '더 좋은 차'를 생각하게 된다. 더 크고, 더 맛있고, 더 비싸고, 더 좋고, 더 행복한 삶을 찾아 헤맬수록, 나는 이전에 갖고 있던 나의 행복을 저만치 멀리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넘어 갈수록 나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저만치 앞에 두고서 돌아가는 어려운 행복을 찾아 다니는듯 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분홍소시지에 계란을 입혀서 소시지 전을 해주셨다. 나는 따뜻한 보리밥 위로 미지근한 보리차를 적적하게 부어 그 위에 분홍소시지 전을 올려 먹곤 했다. 그것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녀석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구매했다는 '큐브' 녀석을 사고 싶어 수 일의 용돈을 모와 구매했던 '큐브'는 몇 주 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더 비싼 장난감인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만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다. 아마 지금의 행복을 곧 두고 나는 더 멀고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위해 돌아다니지 않을까 싶다. 책은 여러가지 습관의 디자인을 소개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감도를 높이는 습관'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습관이다. 아마 같은 책을 읽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없이 스치는 문자배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책의 힘이자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떤 촉각을 느끼고 있는지, 나를 스캐닝하듯 명상을 통해 다시 나의 오감을 깨우는 습관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1일1식과 영어읽기와 같이, 앞으로 이 책을 통해 매일 스캐닝 명상을 통해 스스로의 감각을 깨우고 행복감과 자유로움에 더 예민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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