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켈리 함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스몰빅아트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P.411 나는 개인적으로 100% 엄마이면서 여전히 100% 나 자신 일 수 있다.

법적으로는 혼인상태이지만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키워낸 중년의 여성의 이야기다. 어린 아이를 놔두고 자신의 삶을 위해 홍콩으로 떠난 남편을 두고 에이미는 '엄마'로써의 책임을 다하고 산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돌아온 '남편'을 그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온 남편이 쥐어준 신용카드로 '에이미 바일러'는 짧은 일탈을 즐긴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고향을 벗어나 대도시 뉴욕에서 정확한 배경도 성도 확실하지 않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멋있는 옷과 헤어를 하며 자신이 입어보지 않았던 옷과 상황을 즐긴다. 이런 짧은 일탈은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자아 중에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사람은 살면서 완전한 자아 하나만을 갖고 태어난다. '나'라는 스스로의 자아를 유일하게 갖고 있던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자녀'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기도 하며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자아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회사에서는 어떤 사장이나 어떤 직원이 되기도 하고 소비자로써는 어떤 고객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이나 학생이 되기도 한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한 여자가 있다. 그는 성공한 아버지의 유일한 '오점'이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인정하지 않으려했고 양육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와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하고 함께 살았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그런 모녀를 돌보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키우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살았다. 잘 나가는 사업가 아버지를 두면서도 그녀의 기억은 가난으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청소와 식당일로 겨우 그녀를 키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고 법원의 판결에 의해 그녀를 친자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결과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매달 50만원의 양육비를 보낸다. 이 내용을 보자면 과연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과연 우리에게 존경 받아야 할 사람일까. 이 이야기는 '스몰 프라이(Small Fry:하찮은 존재)라는 리사 브레넌 잡스의 자서전에 있다.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스티브 잡스'다. 그가 모녀에게 양육비 50만원을 보내던 당시도 그의 자산은 2500억 이상이었다.

한 사람은 여러가지 자아의 옷을 입고 있다. 어떤 모습을 보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면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자아의 옷은 어러 방향으로 다른 색깔을 내보인다. 살다보면 자신이 있고 있는 옷 중, 가장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설명하는 듯한 옷을 발견하기도 한다. 거기에 함몰되어 살아가다보면 진짜 자신을 잊는 경우도 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3번을 이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교육에서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위해 자주 사용된다. 또한 공부를 하다가 도중에 놀러 나간 맹자를 보며 맹자의 어머니는 겨우 짜놓은 베틀을 칼로 잘라버렸다. 그리고 '학문도 베와 같이 한 올과 한 올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그만 둔 것은 베 중간을 칼로 잘라버린 것처럼 쓸모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결단'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맹자의 교육을 위해 여러가지 실천을 하는 그녀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어머니나 어버지이기 전에, 혹은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친구이기 전에 온전한 스스로의 자아도 갖고 있다. 태초에 갖고 있던 자아가 타인에 기준이 되는 다른 자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설자리를 잃어간다. 마치 효자가 되거나 좋은 아버지가 되거나 좋은 어머니가 되는 배경이 곧 자신의 올바른 옷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효'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자녀를 보고 행복할 것이고, 어떤 자녀가 '사랑'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부모를 존경할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자아를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에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어쩌면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극심한 전염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가 포기해 버린 자신의 자아는 사라지지 않고 피해의식으로 남아는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를 말하는 부모에게는 '사랑'을 빙자한 '투자자'의 심리가 들어가 있다. 자신이 투자한 사랑에 대한 '이자'를 톡톡히 챙기고 되돌려 받겠다는 심리는 이런 '희생' 뒤에 감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 좋은 싱글맘, 두 자녀를 가진 과부의 짧은 휴일에 관한 소설. 우리 모두는 타인을 만족해야 하는 채우지 못하는 욕심을 채우려 한다.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며 자신을 잃어가는 소설의 주인공이 드디어 오롯하게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짧은 휴가를 얻는다. 자녀들의 한 어머니로써, 그리고 한 여자로써의 자아를 분리하고 두 자아를 모두 사랑 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엄마'이자 '한 여자'의 이야기다. 책의 챕터마다 한 여자로의 인생을 즐기지만 들어가는 챕터의 앞 부분에 딸의 일기이자 편지가 하나씩 담겨져 있다. 어쩌면 '완전한 나'로 거듭나기에는 역시 '부모'라는 뗄 수 없는 자아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자의 신세계 - 국내 최고 경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의 확장 전략
김영익 외 지음 / 리치캠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투자를 잘 하기 위해선 무슨 책을 읽어야할까. 코로나19로 전세계 주식 시장이 크게 요동쳤을 때, 이를 명분으로 한 대규모 양적완화와 코로나 지원금이 막대하게 시장에 풀렸을 때, 많은 사람이 '투자'에 관심갖기 시작했다. 중학생, 초등학생, 가정 주부는 물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증권 계좌를 계설하는 투자붐이 일었다. TV예능에서는 '주식'에 관한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경제전문 유튜버와 채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래프나 주식 호가창을 띄워 놓고 내일의 주식 가격을 알아 맞추는 고수들이 나오는 듯 했다. 주변에서 너도나도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이런 증시초호황기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의 '상대적 빈곤함'이 늘어나고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역대 최고가에 레버리이지를 배팅하면서 오늘의 코스피 가격을 들어 올렸다. 코로나가 '이슈'에서 '생활'이 되면서 역동적이었던 주식시장은 고요하다. 역시 역사상 최고가에서 옆으로 횡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자신의 종목을 바라보며 '정보'를 찾아 다닌다.

그들이 공부하고 찾아다니는 정보는 과연 무엇일까. 주변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자면 그들은 기법이나 그래프 해석방법에 특히나 관심이 많은듯 하다. '골든크로스'나 '빨간도지', '거래량 실린 장대양봉' 등의 어제의 기록으로 내일의 주가 향방을 맞추려는 이들에게는 그 어떠한 정보보다 '기법'이 중요한 듯하다. 과연 '투자'를 잘하는 방법에는 '기법'이 정답인 것일까. 얼마 전,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지인이 투자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문자가 왔었다. 그는 지난 호황기에 돈 좀 벌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워랜버핏', '피터린치'로 시작하는 책 몇 권을 구매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추천한 책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었다. 당장 오늘 구매하고 내일의 가격이 궁금한 이들에게 '애덤 스미스'와 '벤저민 그레이엄'은 크게 와닿지 않는지 그는 나의 추천을 거부했다. 그래프만을 가지고 투자를 할 때, 큰 수익을 얻었던 적이 있다. 회사의 주가는 보지 않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세력 매집구간', '10일 선, 60일선의 매수 타점', '장기이평선을 강하게 뚫는 단기 이평선'...

유튜브를 보면 마치 내일의 기상을 예보나 해주듯, 그래프에 온갖 잡다한 선을 긋어가며 내일의 주가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나오곤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앞서말한, '국부론'이나 '현명한 투자자'를 읽어보지도 않고 그래프를 이용한 투자기법에만 촛점을 맞춘다.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호가창과 그래프창을 띄워놓고 내일의 가격을 맞추는 일에 신뢰하지 않는다. 시장가격은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제와 오늘 담배를 핀 사람이 내일도 담배를 피울 확률이 높다는 근거로 과거의 기록이 내일의 예측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런 미래를 예측하는 데이터는 하루, 한달, 1년으로 어림잡을 수 없다. 마치 어제와 오늘의 기온으로 6개월 뒤의 기온을 맞출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어제도 덮고 내일도 더웠다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법에 의해서는 6개월 뒤에 찾아 올 겨울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런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쌓여 있는 데이터는 어제, 오늘이 아니라 10년과 20년 혹은 1세기 가까운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어째서 대단한 투자자들이나 기업가들은 '역사책'을 좋아하는 가. 그들이 투자기법이 아닌 역사책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어떠한 근거가 있는가.

낚시로 큰 고기를 낚기 위해선 물고기가 있을 법한 곳에 미끼를 던져 놓고 세월을 낚는 인내심이 중요하다. 지금쯤 잡혔을까를 수없이 궁금해하며 낚시찌를 들어 올려보는 촐랑가리는 방법으로는 대어를 낚을 수 없다. 큰 물고기를 낚기 위해선 잔잔하거나 넘실거리는 파도에 낚시바늘을 담궈 놓고 하염없이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지루함이 필수적이다. 대어가 좋아할만한 미끼를 끼워놓고 그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바늘을 담궈 뒀으면 그 밑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찾아 볼 것이 아니라, 가만히 그 밑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한다. 낚시바늘을 담궈 두고 그 밑에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는 있는지, 얼마나 가까이 오고 있는지 어떤 모양의 물고기가 올 가능성이 있는지를 궁금해 물안경을 쓰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멍청함을 우리 투자자들이 보통 갖고 있다. 내가 투자한 회사가 어떤 호재가 있는지, 어떤 악재가 있는지, 다른 투자자들은 어떤 전망을 하고 있는지 따위가 궁금해 올라오는 모든 기사와 게싯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투자자로써의 자세가 아니다.

화폐의 역사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원리, 금리나 버블형성의 원인에 대한 호기심은 투자 공부의 기본이다. 정말 큰 그림을 보자면 분 단위의 분봉보다는 하루 단위의 일봉이, 하루 단위의 일봉보다는 일주일 단위의 주봉이, 일주일 단위의 주봉보다는 월 단위의 월봉이 더 큰 흐름이다. 큰 흐름에서의 상하 이동 속에 수많은 작은 상하가 존재한다. 이런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깨닫기 위해서는 국제정세나 역사와 같은 큰 그림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책은 '투자의 신세계'라는 제목을 걸어두고 투자기법이 아닌, 역사와 이론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있는가. 그것은 진짜 보물은 열기 힘든 상자 속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일주일만 경험하고 공부하면 언제든 알 수 있는 투자 기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숙성되어 있던 역사와 자본주의의 원리가 진짜 투자의 기법이다. 결국, 부로 가는 진짜 기법은 철학, 인문학, 역사 등의 오래된 책속에 이미 숨겨져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 21세기 신인류, 플랫폼 노동자들의 ‘별점인생’이야기
유경현.유수진 지음 / 애플북스 / 202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유럽에서 전쟁중, 창기병은 기피 기병 중 하나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창의 길이는 3m가 넘고 무게도 3kg가 넘어가면서 전투에서 그들의 느리고 무거운 기동성이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전투 중 근거리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어, 고작 긴 창을 땅에 박아두고 상대돌격대를 먼저 맞이하는 용도로만 창기병이 활용되다보니, 그들은 총알받이로써의 역할만 수행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는 창기병의 숫자를 항상 모자르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15~16세기 유럽의 대부분 전쟁에서 창기병은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1:1 계약 형태의 군사 서비스가 대행해주는 일종의 용병서비스 직군이 대신 하게 되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이나 애국심보다는 시일에 따른 보수가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자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그들을 보며 '용병대장은 유능하면 왕을 위협하고, 무능하면 돈 낭비니 결국 쓸모없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창기병들은 서로 평원에서 만나 몇 번의 합을 겨룬뒤 초원에 앉아 쉬면서 상대와 술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렇듯 창기병 사업이 대박이 나자, 이런 일을 주선하던 용병 용역 회사의 잇속만 커져갔다. 그 와중에는 독일에서 알브레히트 혼 발렌슈타인(Albrecht von Wallenstein)이라는 용병대장의 용병 기업(company)은 15만 대군으로 군사가 늘어나기도 했는데, 그 규모는 프랑스나 스페인보다 병력규모가 컸다고 한다. 앞서말한 용병기업에서의 꾸준한 병령 증가는 페르디난트 2세 황제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고 황제는 매수꾼을 이용해 용병대장을 암살해버렸다. 그렇게 용병기업이 무너지고 이후에는 다시 조직에 대한 충성을 중요하시하는 왕권강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프리랜서(freelancer)는 이처럼 자유계약을 하는 '창기병(lancer)'에서 유래를 했고 당시 용병기업을 부르던 기업인 컴퍼니(company)는 현대 기업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조직에서 독립된 용병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중세 유럽이 아닌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겪는다. 자유롭다는 것에는 여러 함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소속감을 갖지 않으며 고용주와 상대 중 어느 쪽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독립적인 개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형태가 바뀌어 가고 있다. 특정기업에 소속되어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노동자로써의 법률적 권리를 보호받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프리랜서의 확대는 앞서 말한 유럽의 예시와 같이 꼭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2021년 최저임금은 1시간에 8,720원이다. 임금근로자에게 보장되는 이런 최저임금은 프리랜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밖에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어떤 권리도 프리랜서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페이스북, 우버, 유튜브 등의 플랫폼 기업의 특징은 스스로 충성도 있는 병력을 갖지 않고 외부의 용병을 고용해 사업을 일군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력을 투입하는 노동자들과의 관계는 사업자상의 동등한 1대1 계약관계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어떠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최저 임금이나 노동보험에 대한 의무나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도 없으며 노동환경에 대한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법률적 보호에 특히나 취약한 노동환경 속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랜서는 플랫폼기업과 사용자 사이에서 2중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임금은 시장논리에 따라 철저하게 낮아지고 높아지고하며 안정성마저 보장받지 못한다. 플랫폼 기업이 우리 사회에 이처럼 녹아 들어가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우리 노동의 형태가 급격하게 변해가는 것은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대, 30대의 일자리는 각각 8만 2000개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긱 이코노미'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기업의 입장에서 상시노동자를 고용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젊은 층의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화에는 새로운 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단순한 터치 몇 번으로 당일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지고 있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무한 양상되가고 있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사회의 노동형태가 바뀌면서 이에 따른 법률적 해법도 함께 나와야 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과 문화의 발전으로 우리 노동자들은 '별점'이라는 무시 무시한 인사고과를 매일 한 건, 한 건에 따라 평가 받는다. 인권의 사각지대는 '억대 프리랜서'의 탄생 뒤에 감춰지며 이처럼 우리의 주변에서 언제나 존재하는 듯하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 이런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익은 시간이 갈수록 사회에서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 뻔하다. 아마 그 언젠가 다가울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 일과 나의 미래, 10년 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홍성원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관련 주제에 관한 여러가지 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을 읽노라면 그들의 주제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에 맞춰져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자면, '기계에 의한 일자리 강탈은 없을 것이다.'가 내 생각이다. 기술이 사회와 문화에 받아지기 위해선 '능률'만이 답은 아니다. 기술력의 핵심은 '사업성'에 있다. 일본 아이치 현의 산업용 로봇 개발 업체 '덴소 웨이브'와 IT업체 '히타치 시스템즈', '히타치 캐피탈' 등 3개의 회사는 2019년 일본 언론을 통해 자동 날인 로봇을 개발했다. 이 괴상망측한 로봇의 역할은 두 팔을 가지고 한 팔로 서류를 넘기고 날인란을 자동 식별 한 뒤, 인감을 들어 인주를 묻히고 종이에 찍는 역할을 한다. 이 로봇이 가져 올 미래의 변화는 서류에 찍어야 할 날인을 자동을 찍어준다는 것에 있었다. 날인란을 스캔하여 찾아내는 기술, 인감을 들고 인주에 묻히고 찍는 기술을 비롯해 현대 일본의 최첨단 기술이 밀집되어 있는 집합체로 고작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도장 대신 찍어주는 역할이다.

이 기계는 현대 인간이 자랑하는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 이런 기술이 시험테스트 용이 아닌 상업용으로 개발됐다는 것에 기술발전이 우리 사회에 끼칠 문화적 변화에 회의를 갖게 했다. 심지어 종이에 인감을 찍는 이 기계의 속도는 총 2분이나 들어간다. 이 로봇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무엇일까. 초선진국이자 기술 강국이라는 일본은 '도장 결제 문화'를 바꾸지 못했다. 기계가 도장을 찍는 역할을 대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3사는 공동개발에 나섰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일본에서는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본 근로자는 '인감'을 받기 위해 회사를 출근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일까. 인간은 문화와 기술의 발전 속도는 최초 비슷했다. 그러다 점차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져가며 인간이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기술에 가장 기민하다는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이런 문화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해외와 국내에서 송금 속도와 수수료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암호화폐'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 '문화적' 문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상에 만들어진 공간의 변화는 '코로나19'라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공간의 이용이 줄어들고 사이버공간으로의 문화적 이동이 일어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20년 신규 사업자는 15.4%가 늘었다. 그중 부동산업은 28.9%, 소매업이 19.2%, 음식점업이 10.8%의 순서로 가장 많았다.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고, 물건을 사고,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시장의 사업성을 바라보고 더 많은 오프라인 공간의 확장에 투자했다. 어째서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꼭 이성적인 문제로만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존재한다. 기존 선진국들은 빠르게 젊은 층의 인구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을 갖는 젊은 층의 급속한 감소는 기술의 시장성 감소를 말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에 분명 기술의 진보는 존재하지만, 사실상 기술은 '상업성'을 필수적으로 동반해야한다. 가령, 최첨단 휴대폰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반으로 접히는 휴대폰은 우리 시대의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가격'에 있다.

200만원이 넘는 금액을 핸드폰에 투자할 수 있는 일부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소비자의 비율을 보자면, 더 많은 소비자 층이 존재하는 시장은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 쪽이 아닌,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적당히 효율적인 기술인 편이 많다. 또한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게 됐을 경우를 보자면,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의 소비력이 떨어지게 된다. 소비력이 떨어지게 되면 시장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경쟁력없는 사업은 지속할 수 없다. 아마 인간은 앞서나가려는 기술을 문화와 사회 법률로 적당히 끌어당기며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선에서 기술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직업을 인공지능이 앗아갈까봐 겁을 먹을 필요와 이유는 없다. 다만, 인공지능에 의해 내 직업의 행태와 구조가 변화할 수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인간은 도태되거나 가난해질지도 모른다.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방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1년 3월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대 1로 이기면서, 이제는 이세돌 구단을 이기는 방법으로는 훌륭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시키는 명령에 충실하게 복종하는 일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바둑이라는 스포츠를 모두 인공지능에게 내어주진 않는다. 고로 바둑 기사의 직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가장 똑똑한 인공지능 둘이서 두는 바둑을 관전하지 않을 것이고 사업성 없는 기술발전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알파고는 더이상 바둑계에서 바둑기사와 대전을 두지 않는다. 일부 경기에서는 인공지능이 바둑을 이겼을지 모르지만, 바둑 스포츠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 사업성 없는 사업은 이처럼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가 나왔음에도 마라톤 경기에서 1위를 하는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정확히 목표물로 연사되는 기관총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활로 과녁을 맞추는 인간에게 박수를 보낸다.

생각하는 기계는 어쩌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내지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 지못한다. 이처럼 순환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당연히 기계와 인간의 대결에서 기계의 완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세상은 기술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기술의 발전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법률과 사회문화가 이를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주행중 어린이와 노인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쳐해져 있을 때,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인공지능'의 몫이 아니라, '도덕적 관념'에 따른 '프로그래머 인간의 판단'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대중의 판단도 중요하다. 이런 일로 인해 무한대로 발전하는 기술이란 존재하기 힘들며,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움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시시하거나 지루하게 생각해왔던 철학이나 인문학 등의 인간에게 필요한 시선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중요했던 논리력이나 암기력이 아닌 직관력이나 통찰력과 같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능력을 가진이들이 더 큰 기회를 통해 훌륭한 생산자이자 좋은 소비자가 되지 않까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 - 아이의 마음과 생각이 크게 자라는 하루 3줄
윤희솔 지음 / 청림Life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빈 워드 박사는 1977년 이후 하버드를 졸업해 40대가 된 16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현재 일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여기에 90%가 글쓰기라고 답했다. 제주 표선고등학교는 IB교육과정을 현재 진행 중이다. IB교육과정이란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줄인 말로서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학위협회가 인증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교육과정은 논술, 서술형으로 문제가 출제되고 시험을 통과하면 디플로마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한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항목이 있고 그중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오지선다형 출제 방식을 오랫동안 고수해오던 우리 교육체계는 일본의 교육체계와 닮아 있다. 아마 이웃국가라는 특수성과 근대 역사의 연대성 때문에 비슷한 법의 체계를 따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한 일본은 2020년 즉, 2021년 1월 대입공통 시험을 논술형 문제로 출제하도록 도입했다. 이런 일본 공교육의 변화는 앞으로 AI가 더 정확한 정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미래 세대에 대한 대비로 생각된다. 근래의 토익 학원에서는 '영어'가 아닌 '기술'을 가르친다. 어떤 문제의 유형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기술적인 요령을 알려줌으로 표면적 점수를 올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교육의 본질이 흐려진 현상은 '대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수능 외국여 엉역의 내용일치 문제의 정답은 역대로 4번과 5번인 경우가 많다. 통계에 관한 문제 또한 역대로 4번, 5번이 많고, 1,2,3번이 나온적이 거의 없다. 이런 영어 실력과 하등 상관없는 문제푸는 기술만 가지고도 일정 점수를 맞을 수 있는 영어 교육 따위는 분명하게 잘못되어 있다. 본질과 상관없는 교육은 학생들에게 '본질'에 벗어나도 좋다는 최악의 교육을 시키는 샘이다. 국제 바칼로레아(IB과정)의 논술형 교육이 앞으로 대세가 된다는 것은 일본의 입시변화를 통해 알 수 있따. 토론과 논술은 읽고 쓰는 장기간의 학습 습관으로 평가 가능하다. 더이상 꼼수가 통하지 않는 교육이 비로소 우리의 미래에도 찾아 온 것이다. 쪽집게 과외나 강의가 언제나 우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학생'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 강사의 능력'을 키우는 샘이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사교육 강사의 능력'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의 교육 과정은 점차 서구 선진국과 일본을 닮아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쪽집게 강사가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 능력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입지는 크지 않다. 되려 우리는 논술 시험을 폐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평가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 않던가. 단순 반복을 통해 일정의 규칙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의 학습 방식을 인간이 따라가긴 쉽지 않다. 요령과 패턴을 찾아내는 지금까지의 평가 방식은 분명 앞으로의 시대에 맞지 않다. 설령, 우리 교육제도가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는 그런 방식으로 교육되어서는 안되며, 이것은 AI에게 지배당하는 교육을 받는 샘이다. 노래를 잘하기 위해선 노래를 많이 불러봐야한다. 또한 그에 선행되어 많이 들어봐야한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선, 그림을 많이 그려봐야한다. 물론 그에 선행되어 많이 그림감상을 해봐야한다. 그렇다면 논술실력이 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하다. 많이 읽어보고 써봐야 한다.

많이 쓰고 읽기 위해선 지속가능 해야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하는 일에 흥미나 호기심이 있어야한다. 흥미와 호기심이 있기 위해산 노출빈도가 높아야 하고 노출빈도가 높기 위해선 가정 환경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트렉스타의 대표이사 '권동칠' 님의 저서 '관찰의 힘'을 보면 그는 직원에게 유독 강조하는 것이 '독서'라고 한다. 조금 과할 만큼 그는 '독서 능력'을 요구한다. 사업가인 그가 이처럼 독서능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독서력이 '사업 생산성' 향상에도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사의 대표들이 이처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초격차'의 권오현 회장 또한 읽는 책의 분량이 엄청나고 또한 독서를 강조하곤 했다. 1981년 6월 신용호 회장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열며 세계최대규모로 대형서점 시장에 뛰어든 날,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신용호 회장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이야기 했다.

독서력이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것은 사업가 즉, 장사꾼에 의해 증명되었으며 이런 생산성을 향상시킬 직원을 채용하지 않을 사업가(장사꾼)은 존재하기 힘들다. 취업이 잘되는 교육을 하는 기관은 명문이 되고, 명문기관 독서력과 글쓰기 능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면 학원에서라도 가르쳐야 하고 학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면 동아리라도 만들어야 하며 동아리를 찾기도 힘들다면 가정에서라도 힘써야 한다. 책은 그렇다. 세상은 우리 모두를 뒤로하고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교육의 근본인 '독해력, 문해력'만은 달라지지 않는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뀌어도 오지선다형이건 서술형이건, 토론형식이건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흔들림없는 교육을 위해선 '본질'이 중요하다. 이는 읽기와 글쓰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