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맘대로 크는 아이 - 두뇌진료 20년차 한의사가 알려주는 뇌 균형 건강법!
노충구 지음 / 보민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한의학에서 ADHD를 치료하거나 틱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까. 얼핏 서로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들이지만 한의학의 관점에서 바라 본 ADHD와 틱장애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인체를 '소우주'로 본다. 또하나의 작은 우주라는 뜻으로 우리의 신체는 우주운행원리처럼 '음양오행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음과 양은 우주만물의 기본이다. 이는 일종의 '기'인데, 서로 의존하면서 대립하고 순환하면서 전화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대표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금, 목, 수, 화, 지'의 오행 또한 서로 물리고 물리며 서로 의존하며 대립하고 순환한다. 우주 만물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전체로 건강이란 '코스모스'와 같이 잘 정도된 상태를 이른다. 고로 한의학에서의 치료는 어긋난 균형을 제대로 맞춰내는 일을 한다. 이것은 양의학과는 다르다. 양의학은 균형에 대해 고찰하기 보다 현상과 증상에 촛점을 둔다. 따지고보자면 뇌과학에 대해 접근할 때, 한의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꽤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ADHD(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는 일종의 장애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이거나 과다활동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산만하고 주의집중을 어려워 한다. 현대 뇌의학에서는 이런 ADHD 환자에게 '메틸페니테이트'라는 주의력개선제를 처방한다. 이는 매우 즉각적이며 강력한 효과를 준다. 그 밖에 클로니딘이나 아토목세틴을 처방한다. 이런 약물치료는 정신질환의 유일한 치료법이 아닐 수도 있다. 앞서 말한대로 ADHD는 질환이 아니라 장애이기 때문이다. 해당 약들은 일시적 주의집중력 개선에 지속시간이 존재한다. 즉, 보여지는 현상을 개선하는 관리약이지 치료제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매핵기'라고 불리는 일종의 증상이 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 더 심해지는데, '음~~', '큼~~'하는 소리를 내곤한다. 매핵기는 한방용어로 목 안에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않는 무언가가 걸려 있는 느낌으로 불쾌한 소리를 내게 하는 증상인데, 여기에는 '의지력'과는 상관없는 무언가가 있다. 주변에서는 그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것은 의지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매핵기는 일종의 히스테리로 정신적, 심리적 문제로 발생하는 신경증이다. 신경증은 의지력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틱장애나 ADHD 환자를 지켜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어떤가. 주의집중력이 없는 아이에게 '의지력'의 문제이거나 '성격'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진 않은가. 내가 자주 찾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매핵기에 관한 치료를 받기 위해 찾은 이비인후과였다. 진료를 받아보니 목에 이물질이나 가래는 없고 염증만 약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위산분비억제제를 처방받고 병원을 나왔다. 이처럼 양의학으로 진단명이 없는 질병도 한의학에서는 진단명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매핵기 치료법에 대해 성내지 말고 찬음식을 먹지 말라고 한다. 이를 보자면 한의학에서도 이미 오래전 부터 '신경 정신의학'을 다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증상에 대해 그 원인을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도 열심히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들은 일종의 장애나 질환으로 보고 균형있는 성장을 도와주어야한다. 실제로 ADHD의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느낀 첫 인상은 '예의없다', '통제불능이다' 등의 인상이다. 하지만 부모의 경우는 아이의 이상 징후를 잘 살피고 돌봐 줄 의무가 있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기 전에 그 아이들이 뇌와 건강의 균형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살펴봐야한다. 책은 산만한 아이, 예민한 아이, 허약한 아이, 늦된 아이로 나눠 아이에게 뇌 균형에 관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5살 쌍둥이 딸아이을 키우는 입장으로 꽤 신경쓰고 읽었다. 아이가 몸살 건강으로 열이나고 아파도 속이 상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티가 나지 않는 뇌에 관한 불편함을 겪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책임하게 방관하면 안되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라이앵글 - 남이 부러웠고, 남이 되었다
임경택 지음 / 좋은땅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시절 자주하는 상상으로 소재가 참신하다고 할 순 없다. 누군가와 영혼이 바뀌는... 그리고 나서 깨닫는 '나'에 대한 감사함. 이런 소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소비되는 것은 아마 많은이들이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SNS를 들여다보면 멋진 소품과 행복해 보이는 삶들로 가득하다. 이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 또한 하루 중 가장 가식스러운 표정을 짓고 사진을 포스팅한다. 소설은 개연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 이라는 바람과 함께 영혼이 바뀌어 버린다. 급한 전개에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직진으로 나아간다. 큼지막한 글자와 넉넉한 띄어쓰기,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지만 정작 페이지는 120쪽이 전부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야기가 흡수된다. 오랜 기간 긴 글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빠르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경준은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며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하는 바람을 한다. 그리고 실제 2000년도를 살고 있는 20살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된다. 겉모습이 완벽한 여성이 된, 젊은 청년은 그녀로의 삶에 만족하고 살기로 한다. 제 3의 시선으로 바라 본 그녀는 아주 괜찮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으로 조금을 살고보니, 그녀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겉모습을 보고 인생 전체를 알 수 있다고 하는 판단은 우리에게 매일 일어난다.

누군가와 영혼이 바뀌는 일반적인 소재와는 다르게 이 소설은 셋의 시선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여성이 되고 싶고, 누군가는 젊어지고 싶고, 누군가는 죽고 싶다. 그리고 각자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이 된다. 하지만 곧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앵글은 각도를 의미한다. 사물은 각도에 따라 모두 달라보인다. 머그컵 하나를 주변으로 여러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자. 어떤 누가 그리기에는 머그컵은 손잡이가 없는 원통 모양일 것이다. 어떤 누가 보기에는 머그컵은 손잡이가 있는 컵일 것이고 위에서 바라본 머그컵은 속이 깊은 모양일 것이다. 이처럼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으로 시선을 둘러가며 그 사물은 모양을 바꾼다. 화가들은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화가들은 자신들이 보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들의 그림에 모순을 찾아낸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사물의 본 모습을 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사물의 여러 방향에 따른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사물의 한 방향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방향으로의 모습을 담으면 그 사물의 본질을 더 담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게 왜 예술작품이지?' 싶은 어그러진 모양의 입체주의의 등장은 이렇게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차원의 고민을 하던 예술가들에 의해 현상과 사물의 본 모습을 고민했다. 오롯한 그것의 본질을 담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예술은 어찌보면 현실의 본질일 수도 있다. 예술은 입체주의를 벗어나, 색체와 농도, 질감과 여백 등을 통해 겉모습이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담아내며 '현대 예술의 장르'로 진화해간다. 트라이앵글이라는 소설은 내가 설명한 예술의 진화 과정과는 다르게 좀 더 재밌고 쉽게 쓰여져 있다. 어쨌거나 우리의 본 모습은 보여지는 그대로와 거리가 매우 멀다. 아무런 사건 사고 없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커다란 아픔이 있고 편하고 좋아보이는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장애가 있다. 어린시절 남성의 '군대'와 여성의 '출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유치하게 싸우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의 유치함이 정말 유치해 질 나이가 되었을 무렵인 현재에와서는 젠더이슈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나친 패미니즘과 가부장적이던 사회문화가 충돌하며 남녀의 시각 차가 벌어졌다. 남자는 여자가 부럽고, 여자는 남자가 부러우며, 왕자는 거지를 부러워하고 거지는 왕자를 부러워한다. 토끼는 호랑이를, 호랑이는 토끼를 부러워 한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정확한 인지가 없는 상태를 계속하다보면 처음에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자기 비하와 비관,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감정은 변해간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스스로인 타인을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과 현실을 살고 있으며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이타심의 기반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꾸준하게 감사노트를 작성한다고 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삶의 자세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혐오의 초기 증상으로 발전한다. 나에게는 오늘도 남들이 평생 가져보지도 못할 무언가를 갖고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자녀나 부모, 직업, 돈, 키 무엇일지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감사해하며 그것을 인지하고 사랑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이라는 것을 이 '트라이앵글'이라는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투자로 30년을 벌었다
한정수 지음 / 토네이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투자의 장점은 '부자가 되는 것'에 둘 수 없다. 투자는 미래가 긍정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확신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된다. 본래의 뜻이야 그렇지 않지만, 이제와서 '경제적 자유'란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불노소득'을 의미하는 듯 하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겠어'라는 욕심을 가득 담은 돈들이 투자판으로 몰려들며 실제 목표를 달성하고,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얻는 이들도 생겨났다. 단순히 빨리 은퇴하기 위해 투자를 하는 가치관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투자금들은 '욕심'을 함께 동반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의 목표의 최대 가치 중 하나는 '빨리'다. '빨리'는 가끔 좋은 가치다. 하지만 이것이 '욕심'과 함께 동반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빨리 살빠지는 법', '빨리 돈 버는 법', '빨리 공부 잘하는 법' 등은 언제나 성공한 적 없는 비책 임에도 언제나 시장에서 히트상품이 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강원랜드' 주식을 꾸준하게 매입해 주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강원랜드' 주식을 사주는 이유는 '경제적 자유'를 통한 '불노소득의 삶'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할 수 있었다는 아빠의 '공부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강원랜드 주식을 사주는 이유와 확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한 세대에 두 번 오기 힘든 '세계적 이벤트(팬데믹)'로 실적에 직격탄을 맞은 종목이기도 하고 꾸준한 배당과 시장 대장주다. 강원랜드는 배당금이 1000원에 가깝게 지급되어왔다.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회복한다는 가정 하에 이는 결코 나쁜 숫자가 아니다. 이 주식은 15년 뒤,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 선물이 될 예정이다. 급하게 일주일 전에 매장에서 구매하는 졸업선물이 아니라, 아머지가 15년 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철학이 들어있는 졸업선물이 될 예정이다. 이 졸업선물은 아이에게 불노소득이 아니라 자산의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세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을 주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어떤 대형 사건이 일어나기 전조 증상이 항상 보인다. 또한 주식과 언론, 정치는 항상 함께 움직이며 세상의 흐름을 나타낸다. 그저 막연하게 내 직장생활을 잘하고 사는 것보다 왜 갑자기 GE는 세계 1위 기업에서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30%에도 미치지 못한 기업이 됐는지를 파악하며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비트코인을 선물하지 않는 이유는 있다. 그 이유는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넘겨 주기에는 그 것을 구매했다는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그것을 구매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철학이 없고 그것은 그저 욕심'만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다수의 사람들은 보통 투자철학에서 '워렌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사례를 예로 들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워렌버핏과 빌게이츠의 철학에는 '경제적 자유'가 있지 않았다. 그들의 투자나 사업 철학이 '경제적 자유'에 있었다면, 아마 자산 가치 30억 수준에서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렌버핏은 워렌버핏의 자산은 2021년 기준으로 1004억 달러로 평가된다. 그는 이미 청년기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도 남았다. 그런 그가 아직도 현역으로 투자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자유'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시장에 대입하여 장기적으로 회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 있다. 즉, 내가 그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여 아이의 성장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양육하는 부모, 혹은 동업자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취감과 만족감, 책임감을 사회에서 직, 간접적으로 얻으면서 영향력이 뻗어가는 과정이 '투자'인 샘이다. 가는 목적이 다른데 그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답습할 리는 없다. 그와 같은 비전을 바라보며 걸어야 그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세상학개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한정수 작가'님은 투자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공부'에 할애한다. 단기적인 트레이딩을 견제하면서 중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구매한 비트코인이나 주식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총 자산액이 10억이 됐다거나 20억이 됐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가 투자를 통해 수십억을 벌었던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얼마를 투자했다의 말이 아닌 비트코인, 이더리움 몇 개 매집. 혹은 몇 주 매수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3000만 원을 삼성전자에 넣어 6000만 원이 됐다는 식의 자랑이 아니라, 삼성전자 주식을 900주, 950주, 1000주 보유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투자에 임해야한다. 주식은 위와 아래를 향하며 물결모양으로 성장해 간다. 이런 성장과정에서 상승의 달콤한 열매만 먹겠다는 욕심으로 단기 트레이딩을 하는 것을 경계하며 밑으로 빠지는 그래프에서 더 공부하고 매집하고 위로 치고 올라가는 그래프에서 만족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을 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던 '공매도 폐지'에 대해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공매도는 시장 대세를 거스르는 투자 기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래의 형평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접근 방식일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 원리상 시장에 더 많은 현금이 투입되고 이것은 현금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여러차례 겪었지만, 시장의 대세 상승은 아주 단기간에 급하게 이뤄진다. 오랜기간 오르고 내리고 하며 하락하거나 지지부진해보이는 주가는 예고없이 한 번에 강하게 시장가격을 들어올린다. 이런 타이밍을 맞춰 부자가 되겠다는 접근은 '많이 먹고 살을 빼겠다.', '공부는 하지 않고 1등이 되겠다.', '결혼은 하지 않고 애를 낳겠다.' 등의 듣고나면 허무맹랑함에 헛웃음이 나는 모순일 뿐이다. 누구나 '투자'를 통해 대박을 원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런 욕심과 탐욕을 이용해 서서히 부자가 된다. 책에서 여러차례 차용한 워렌버핏의 말처럼, 증권시장이란 인내심이 없는 자로부터 인내심이 있는 자에게 돈을 이동시키기 위한 도구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소설에 따옴표가 없다. 마음 속으로 한 말과 소리를 내어 한 말, 내가 하는 말과 상대가 하는 말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모두 일렬 정렬되어 있다. 문장의 말미에나 가서 내가 읽은 문장이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말이 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작가의 서술 의도를 명확히 유추할 수는 없으나, 한 문장을 다시 곱씹고 상대의 말인지, 화자의 말인지 되찾는 일을 반복하면서 1인칭 시점의 전개 방식 임에도 상대의 시선으로 들어가 되새김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삶은 타인의 시선을 공감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 1인칭 시점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그들의 생각을 표면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나 그들을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대중교통을 타면 마치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타인들의 뒷모습이 무탈하고 무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내 배경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인생들임에도 그들 하나 하나에는 우주만한 고통과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금껏 우리가 누구가를 위로하는 말들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들이다. 어쩌면 식사 시간에 "잘 먹겠습니다."라는 외침을 해야한다는 어린이식 훈련처럼 단순히 어떤 상황에 의식없이 뱉게 되는 영혼 없는 위로의 훈련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가. 누군가가 나의 고통에 공감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완전한 공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인간으로부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이들은 종교를 빌어 신께 고통을 위탁하고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해방감을 맞이한다. 상대의 말과 내 말이 구분되지 않고 마구자비로 서술되어 있는 친절하지 않는 기법은 사실 타인과 나를 동일 시하는 공감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갖게 만든다.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나 노인에게까지 감정이 이입되어 진짜 화자가 누구인지 애매해한 소설의 전개에 결국 '화자'가 있어도 주인공이 없는 독특한 소설이 완성됐다. 절정의 고통이 죽음이라는 착각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꼬집기라도 하듯, '절정의 고통'이 죽음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으며 되려, 고통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친구의 부탁을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노래 가사에 표면적인 이야기 흐름이 있는 노래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했으며, 어떻게 됐다.'는 식의 전개가 흘러 나오는 가사. 하지만 다른 어떤 노래에서는 이야기는 없지만 생각과 감정이 열거 되는 노래도 있다.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가사가 없이 음의 높낮이만으로 사람의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해내는 음악들도 있다. 모두가 같은 소재를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분명하게 다르다. 다만 해석의 여지를 어디까지 주고 있는지에 따라 음악이 포용 범위가 넓어진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을 느끼는 것은 '바발디'의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음악을 듣고 언젠가 떠났던 가족여행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던 추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친절하게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풀어 설명해주는 책이 읽기 편하고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되려 읽기 어렵고 사색할 여지를 주는 책들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이 책은 아예 가사를 빼어버린 '클래식 음악'처럼 전혀 친절하지 않게 전개한다. 이런 전개 방식으로 각자 소설을 읽는 사람들마다 수천 수만 가지의 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타인은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철학적인 질문을 소설 분위기로 꾸준하게 던지며 심오하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함께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만 누구나 반드시 겪을 최후의 죽음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하다. 언제든 함께 해줄 것 같은 위로 뒤에도 결국은 모두와 떨어져 혼자 오롯하게 경험해야 하는 죽음이라는 시간. 과연 우리는 함께하고 있을까. 우연히 발견한 소설의 제목과 시간이 일치, 다시 화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과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인의 언쟁. 우리의 삶은 일관적인 듯 하면서 모순적이고, 모순적인 듯 하면서, 일관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루이비통 - 제주를 다시 만나다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어:

'패랭이라도 썽 뎅기주 경 탕 안 아프쿠냐'

(밀짚모자라도 쓰고 다니지 그렇게 타면 안아프니?)

어린 시절 제사나 명절을 지낼 때면 롤케익과 환타,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 문화가 조금 독특하다는 사실은 내가 군입대를 하고 난 뒤 였다. 내 어린 시절인 제주 제사상에는 환타와 롤케익, 카스테라를 포함해 달달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올라왔다. 이런 문화를 보고 '제주의 조상'들은 '입맛이 신식인가 보구나' 하고 농담하는 분들도 많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현무암 제질의 토양인 제주는 옛부터 쌀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고로 '논'이 아닌 '밭'에서 재배되는 '보리'가 주식이었다. 제주에는 쌀이 귀하기 때문에 보리나 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80년 대까지 제주인들의 주식은 보리였으며 당시의 제주농가의 주 소득 작물 또한 보리였다. '제주맥주'는 유명하다. 밋밋한 맛에 '소맥'의 재료 정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맥주와는 다르게 제주의 맥주는 그런 의미에서 유래와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음료이기도 하다. 쌀이 귀한 제주는 '떡' 보다 '빵'이 구하기 쉬웠다. 제주는 그런 이유로 빵을 만들어 제삿상에 올린 것이 었다. 제주인의 특징은 섬지역의 특성처럼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제주도민이 실용적인 이유는 아마 오랜 기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 온 탓이 강할 것이다. 제주는 토양이 척박하다. 돌이 많고 물을 대기 쉽지 않다. 이런 제주는 예로부터 정치범들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내륙과 널리 떨어진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바람 많고 변화무쌍한 기후적 특성이 제주인들의 성격을 길들였다. 척박한 땅과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제주인들은 투박하지만 외지인에 대해 막연한 동경도 있다. 광해군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대학자와 정치적 거물들이 제주로 유배를 왔다. 그들은 제주도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견문을 넓혀주기도 했다. 유별나다는 서울 강남 못지 않은 교육열로 지금도 제주도는 전국 수학능력평가 시험의 평균점수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주 영어 마을에 위치한 국제학교의 인기가 높은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4.3사건 이후 다수의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도피했던 역사도 있다. 제주의 역사에서 일본은 다른 대한민국의 도시와는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다. 다수의 재일교포는 그 출신이 제주인 경우가 많다. 또한 제주인들은 국제 결혼을 통해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이런 독특한 문화와 감정은 산업이 먼저 발달한 일본의 문화를 쉽게 흡수하게 했다. 제주인들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일본의 문물과 문화를 쉽게 흡수하고 받아 들였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보면 항상 먼저 드는 생각은 '실용적'이라는 단어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본질'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격식과 절차보다 실용적인 것을 따지는 문화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령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제주라는 점과 1인당 자산수준이 전국 최상위라는 것을 보자면 어쩌면 제주인들의 실용적인 문화가 현대의 제주를 만들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학교 선생님 중에 과수원을 하고 있지 않은 선생님은 없으셨다. 은행을 가면 일반 은행원 중에도 과수원이 없는 사람들이 없었다. 농협이나 새마을금고에 예금하시던 부모님을 따라갔던 나는 항상 직원분과 '농약'과 '비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부모님을 보곤 했다. 모두가 그렇다고 분명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제주인들은 주말에는 과수를 돌보고 주중에는 급여 생활을 하며 토지를 소유하는 자본가이자 노동을 하는 노동가의 두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의 정낭 문화는 제주 뿐만 아니라 제주를 위로 하는 여러 남태평양 및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다. 돌 기둥에 3개의 나무 기둥을 어떤 모양으로 끼웠는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들은 3개의 기둥 한쪽을 모두 내려 놓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들어 와도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두개만 끼워 놓음으로써, 잠시 외출한다는 표현을 했으며 모두 끼워 놓음으로 오래 집을 비워 두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현대의 돌과, 바람, 여자가 많은 제주 삼다와 더불어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무는 제주인들의 신뢰문화가 얼마나 잘 형성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화산섬인 이유로 돌이 많고 바람이 많은 특성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여자가 많다는 것도 제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찌 됐는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항상 남자보다 여자아이의 숫자가 많아 학교에서 정한 '남녀 짝궁' 문화에서 짝을 갖지 못한 여자 아이들끼리 짝도 꽤 많았다. 제주의 여자가 많은 이유는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다. 제주의 여자는 남편이 배를타고 나가면 집안 살림부터 밭농사까지 책임지곤 했다. 그런 문화적 이유는 여성들의 생활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제주에는 '요망지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 표준어로 바꿔 부를 말은 없으나, 굳이 바꿔보자면 '똑부러진다'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여성이 생활력이 강한 문화 탓에 제주의 여성들은 '요망지다'라는 표현이 적합해보인다. 다만 남성의 경우는 남자가 귀한 탓에 조금 유순하게 자라는 탓이 있는 듯하다.

책은 내 고향의 바로 옆에 거주하는 '송일만 작가'님의 글이다. 나와 나이차이는 분명하게 있지만,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비슷한 지역에서 추억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쉽게 들리는 제주도 사투리는 글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책에서 문자로 접하는 제주도 사투리는 몇 번을 머뭇하고 돌이켜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속독도 불가능하다. 책은 제주의 언어가 다수있고 그 번역을 함께 사용해 적혀 있다. 제주도의 말에 호기심이 있고 문화에 호기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제주의 여성, 어머니, 문화를 함께 볼 있는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