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농담
김준녕 지음 / 채륜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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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하는 이야기를 농담이라고 한다. 여기서 '실'이란 '열매'를 뜻한다. 알맹이 없이 주절 주절하는 이야기들을 흔히 '실없는 농담'이라고 한다. '소설가의 농담'은 '김준녕 소설가' 님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서 '소설'이 되기를 기다리다 삐져나온 파편들의 모집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하는 한마디와 한마디에 숨겨져 있는 그 인물의 배경과 삶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물들이 얽히고 섥히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다. 그저 허튼 이야기나 해대는 것과는 다르게 소설은 굉장히 많은 생각과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김영하 소설가 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를 해내는 정도를 넘어서, '완전한 세계'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들이 필요하다. 실제로 소설가들은 그들이 다루는 여러 분야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까지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 그들이 소설 한 편을 짓기 위해 떠올리고 공부해야 했던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은 소설로 남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의 책은 '사랑에 관해 쓰지 못한 날'을 통해 접했었다. 그 또한 수필이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는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며, 무언가를 경험해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야깃거리가 솓아난다. 나 또한 그렇다. 매일 꾸준하게 일정 분량을 써내는 습관을 보며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다양한 소재로, 여러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단순히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누군가로의 감정이입을 하고,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거기에 몰입하다보면 되려, 이야기는 소비할수록 더 샘솟는다. 흔히 말하는 '글쟁이', '이야기꾼'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리 글 써서 머릿 속 아이디어를 소비시킨다고 해도 더 샘솟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짧은 시와 간단한 산문들이 이 책에 형식없이 소개된다. 아마 이야기 하나를 지으며 떠오르던 수많은 사색이 모두 녹아져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떠올려 볼 엄두도 내보지 않았던 여러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면 우리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오롯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신의 주장에 매몰되기 쉽상이다. 하지만 소설가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인물의 속과 겉을 모두 이입하고 본다. 그런 이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은 값싸게 자기계발을 해내는 불공정 거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글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해 내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기심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많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탈무드 임마누엘 제 6장 27~29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들은 땅 위에 큰 보배들을 쌓아 두지 마시오. 땅 위에는 좀이나 녹이 그것들을 잠식하며 도적들이 훔쳐 갑니다. 그 대신 영혼과 의식들에 보배들을 모으시오. 그 곳은 좀이나 녹이 쓸지못하고 도적들이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보배들이 있는 곳에 그대들의 마음 또한 있으니, 참된 보배는 지혜와 지식 뿐입니다.' 우리가 쌓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감가상각이 일어난다. 갑작스럽게 위험에 쳐 해지거나 누군가가 훔쳐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금고보다 강력하게 보배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정 부분의 지혜와 지식을 꺼내어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만큼 완전한 사업은 존재하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또한 누군가의 머릿속에 자신의 것과 비슷한 복제품을 전달하는 일이다.

책의 시작하는 부분에 '주의'가 적혀 있다. '지금부터 당신이 보게될 모든 글은 농담이다. 말 그래도 웃자고 하는 소리다. 웃긴 농담부터 슬픈 농담까지 그 범위는 헤아릴 수 없다. 부탁이니 절대 기억하려하지말고, 담아두려 하지말아 달라. 냇물 흐르듯 당신의 머리에서 흘려 버리길 바란다. 당신이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위 내용에 동의했다고 판단하고서 난 마이크를 잡겠다. 만약 기분이 나쁘다면, 뭐 어쩔 수 없다. 허공에 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라. 값을 치렀으니, 응당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이는 책이 시작되면서 적혀 있는 부분인데, 사실상 굉장히 많이 공감했다. 전문가의 인문 혹은 전공 서적이 아닌 이상 작가의 글은 사실상 이렇게 오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는 글 속에 '교훈'이나 '교육적 내용'을 담기보다 읽는 시간 즐거움을 더 추구한다. 어떤 책이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 외로 나 또한 그렇다. 어떤 책이던 무언가 남기려고 강박을 갖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재밌는 예능프로를 보며 펜과 종이를 들고 장면을 돌려보고 사진찍으며 무언가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예능 프로를 더 재밌게 만들고 즐기게 만들며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고 반복해 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어제 들었던 수업내용보다 어제 봤던 예능프로의 내용이 더 기억이 남는 이유는 거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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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 시스타북스 Seestarbooks 18
최진영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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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들여다 본다. 부숴지며 파도 하얀 거품이 해얀가로 몰려 들다가 사라진다. 다시 파도가 몰아온다. 크고 때로는 작게 파도가 왔다가 가다.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 옆에 엉덩이를 묻히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꽤 많다. 누군가는 멍하니 사색에 잠기고, 누군가는 친구와 장난치고 있다. 누군가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해결해 보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는 각자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때, 그들은 모두 같은 바다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마냥 즐거운 바다는 아니였다.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할수록 우리는 그것으로 받는 위로나 즐거움, 슬픔이 줄어든다. '슬프다'하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긴 문장보다, 이별 후 먹먹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달이 더 많은 걸 말해 줄 때가 있다. 긴 글을 읽는 것이 그 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이 있다면, 추상적이고 짧은 글은 다시 그것만으로 매력이 있다. 누군가는 단풍놀이에서 낭만을 느끼고 누군가는 흘러가는 세월을 탓한다. 누군가는 쓸쓸한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는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풍은 말이 없다. 우리가 낭만을 느끼거나, 쓸쓸함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단풍'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많은 것을 바라본다. 얼굴에 묻은 주름살을 찾아보기도 하고, 뒤에서 쫒아오는 트럭을 차에 달린 사이드미러로 보기도 한다. 손 거울로 화장을 고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는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라곤 평평한 면 위에 발라져 있는 수은일 뿐이다. 우리는 빛을 반사하는 수은을 통해 돌이어 반사되는 피사체를 바라본다. 단풍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다. 달이 그렇고 모든 것들이 그렇다. '시'라는 것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는 '뱀'이라는 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겠다.

'너무 길다'

단 두단어로 이루어진 시. 여기에 누군가는 인간의 본성과 유혹에 관한 해석을 내놨고, 누군가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해석을 하며 누군가는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에 대한 예찬으로 보기도 했다.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시는 그렇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울은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도 이별 후에는 슬프게 들릴때가 있고 슬픈 노래도 즐거운 일에는 신나게 들릴 때가 있다. 시가 하는 역할이란 기본에 충실하여 읽는 이들에게 충분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무척이나 얇고 얇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저 평평한 판대기에 수은이나 발라 놓은 것을 왜 구매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수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도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투영하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시가 투영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시인에게 만물은 '시'가 된다. 이처럼 시인이 스치고간 흔적들이 주변에 쌓이고 흔한 것들이라는 것에서 시인이 시도했던 투영들이, '시'가 없어도 보이곤 한다. 가끔은 거울도 없이 나의 표정이 느껴지거나 인기척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런 기민한 감성을 만들도록 '시인'은 독자의 감성을 꾸준히 건든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과 일기들로 시인은 독자에게 꾸준한 거울을 들이민다. 거울은 동그라미도 있고 별모양도 있고 달모양도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독자의 마음에 이미 존재한다. 거울의 모양과는 상관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곧, 시이고 시는 곧 세상의 모든 것이며 이것은 밖이 아닌 안에 이미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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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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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몽골에 지배당하며 90년에 가까운 내전 간섭을 받는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최대 934명이다. 일본의 기록에는 553명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인식에는 몽골에 대한 감정보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일까. 간혹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일본 순사가 군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에서 민간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의 독일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일제하에서도 원칙적으로 '법치'는 있었다. 무차별적인 학살과 살상이 아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일제의 불법적 만행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감정을 우선하고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1년에는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이 일본의 동경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묵고 있는 일본인 하숙집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말다툼 끝에 이판능은 부엌칼로 하숙집 주인 두 부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게 됐고, 일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 와서는 그 형량이 7년 6개월로 감형됐는데, '정신착란'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오늘날의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로 그는 무죄감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의 문제로 감형된 사건이기도 했다. 완전 무법의 시대일 것 같은 국권피탈의 기간에도 사법은 작동했다. 어린 시절 근대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은 '악', 한국은 '선'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당시에는 정확하게 맞게 떨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가 믿고 싶던 것들이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어째서 몽골에 비해, 일본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극단적인 것일까. 추측컨데 이는 '현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아마 몇몇은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나빠야 하는데,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글'에 대한 반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울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보면 '승리한 근현대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 혁명들은 왕권을 몰아낸 의회의 승리다. 이 혁명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의회정치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히 따지고 보자면 이 혁명은 우리가 삼국시대 당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율령반포, 영토확장, 법치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 '왕권강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왕권약화의 끝을 보여주던 서구의 정치역사는 그렇게 '혁명'을 통해 '절대선'으로 바뀌는 듯 했다. 반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여러 정책 중 이부는 우리가 배운 '왕권강화'가 명분이었다.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청나라'와 떠오르던 신흥강국 '일본'과의 외교능력은 그렇게 왕권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서구 선진국과 다르게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이다. 역사는 꼭 정해진 '선'과 '악'이 있지 않다. 시기에 따라 지금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보이는 것들이 '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수학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역사'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흔들거리는 양팔저울을 떠올리곤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추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쪽에 무게를 더해간다. 현대에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과 '일본'을 적으로 두고자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도 그렇다. 안중근과 이봉창, 서재필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역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죄사절단'을 구성하여 뤼순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조의금을 모으고 대대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투사 이봉창 또한 색다른 해석이 있다. 그는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바꾸기도 했고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없이 술마시고, 영화보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서재필 또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던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했던 애국의 마음과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이게도 사람들은 결과에 맞게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존재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 대륙의 '콩산맥'이 20세기초까지 지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는 사람과 그 풍경을 묘사하는 여행가들의 말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존재하지 않던 콩산맥'을 부정하는 것은 천치 취급당하기 일수였다. 나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입맛에 맞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조금더 자극적이고 조금더 극적인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기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감정, 삶의 태도가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러가지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 할수록 시끄러워 지는 법이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역사를 볼 때면, '단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하는 교과서라는 단 한 권의 책에도 참 복잡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정확히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교과서 집필' 만큼이나 '독서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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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 - 사진작가 문철진 여행 산문집
문철진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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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에도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았지만, 어쩐지 '가지 못하는 것'과 '가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행서적을 좋아했지만, 근래들어 부쩍 여행서적을 자주 읽는다. 가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위로 받는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여행 서적마다 특별하게 다른 부분은 없다. 비슷한 나라에 비슷한 경로로 간다. 거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편지형식을 띄고 있다.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로에 따른 순서도 없다. 일본을 갔다가 갑자기 브라질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페이지에는 태국이 나오는 것 처럼 사건의 순서와 시간에 관계없이 나온다. 어쩐지 진짜 친구의 편지를 읽는 듯 하다. 문철진 작가는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벌써 십 수 권을 출판한 그는 최근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로 나가는 일에 부담감을 가졌다. 중독이란 이런 것일까. 그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몸에도 흘러나와 마치 담배나 마약과 같이 금단 증세가 일어난다고 했다.

여행다운 여행을 가 본 기억은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관광'과는 다르다. 삶과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훌쩍하고 여행을 떠나버리긴 쉽지 않다. 대게 여행을 하게 되면 여럿이서 함께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도는 것을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의 로망은 조용히 재밌는 소설책을 가방 가득하게 갖고가서 혼자 사색하고 글쓰고 읽고 하는 여행이다. 누구와 생각의 차이로 다투고 싶지도 않고 무얼 먹을지 고민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챙기거나, 눈치를 살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낮선 곳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싶은 욕심이다. 대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오겠다는 강박증 같은 각오를 하고 떠난다. 언제 다시 살펴보지 모를 사진을 마음껏 찍고 SNS에 남기게다는 일념을 갖는다. 추억을 갖는다는 것은 내부가 아닌 외부의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외부의 일이 너무 복잡하여 쉬며 충전하러 떠나는 길에 굳이 찾아 추억을 만들 욕심은 없다. 예전 '김영하' 작가 님의 글에서 중국을 떠나는 길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이 한 적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여행에서의 추억은 굳이 찾지 않더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조용히 사색을 하며 글을 쓰려던 여행에서도 어떤 무언가의 사건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다만 글쓰는 사람에게는 불쾌한 사건도 좋은 사건처럼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없어도 괜찮고 있으면 더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 여행에서 사진은 몹시 중요하다. 사실 말은 추억을 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했지만, 오래 전 떠났던 여행을 복기하는데는 사진만 한 것이 없다. 예전 어린시절에 가족 여행에서 아버지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계셨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의 갯수가 정해져 있던 필름카메라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담기 완벽했다. 다만 요즘처럼 어제든 수 배 장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깨닳으려는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여 단 한 컷을 찍어내려는 미세한 마음의 작동과, 언제 우연히 행복한 표정이 찍힐지 몰라서 마구자비로 찍어대는 사진과는 분명 본질의 차이가 발생한다.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굉장히 기민한 감각을 소유하게 된다. 빌어먹을 하루 중에서도 분명 감사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여 온순하고 예민한 그 행복의 감정이 숨겨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책에서는 그야말로 글보다 사진이 많다. 하지만 글보다 사진에 더 오랜기간 시선을 머물려 사색했다. 작가가 나와 같은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의미없는 한 컷을 찍고 다음 컷을 준비하는 인스턴트 같은 감정은 아니였다는 것은 사진과 함께 하는 편지글에서 읽힐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살면서, 제주에서 20년 가까운 기간을 살면서 여행에 굶주려 있는 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일상이었던 곳을 특별한 감정을 갖고 방문하고 추억과 사색하는 이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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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줄 인문학 Q&A Diary - 3년 후, 내 아이를 위한 특별한 기록
김종원 지음 / 청림Life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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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선생님은 '세상 그 어떤 완벽한 문제집보다 꾸준히 모아둔 오답노트 한 권이 더 완벽하다'고 하셨다. 이는 탄생 원리가 '나의 약점'에 최적으로 보완토록 되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문제집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보다, 꾸준히 모아왔던 '오답노트 한 권'을 꾸준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15년 전 사용하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그거에는 하루를 살면서 내가 느꼈던 내용이나 고쳤으면 하는 버릇, 사람을 만나면서 했던 실수 등이 투박하게 적혀 있었다.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많이 해줘야 하는지, 부하직원으로써 어떤 자세를 해야하고 리더로써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날 그날에 따라 좋은 명언과 참고할 만한 글, 내가 해왔던 생각들이 정리없이 적혀 있었다. 그 것을 지금에서 보면 내가 읽어왔던 어떤 책들보다 가장 완벽하게 나를 보완하고 있다는 생각이들때가 있다.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수 백 장의 내용 중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과 해당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위인들의 격언 중에는 시대에 맞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는 내용도 있다. 계발을 위해 읽어가는 그런 내용은 완전히 나에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쉽지 않다.

가장 완벽하게 나의 단점을 저격하는 자기계발서는 내가 써야 한다. 보통이 작가들은 글을 읽는 것을 몹시 좋아하며,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다는 답답함에 직접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이유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을 것 같은 완벽한 책 한 권을 낸다. 하지만 그런 큰 포부를 갖고 집필한 책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이고 다시 누군가에는 '뻔한 말들'이 가득한 책인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살아왔던 인생과 보고 들었던 것들의 차이가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장 완벽하게 공감되는 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를 완전하게 알아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이유로 꾸준한 글쓰기는 가장 나를 잘 아는 책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손바닥에 30cm짜리 자를 후려맞으며 써야 했던 일기의 기억은 어쩐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일기를 숙제와 같은 업무로 만들어버렸던 어린 시절 교육 방식이 맘에 들지 않다. 선생님에게 사생활을 공개하고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거나 손바닥을 맞거나, 택1의 교육법으로 어쩐지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에 거부감이 강하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면 개학 2~3일을 앞두고 연필을 쥔손이 노랗게 될 때까지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너무 단조롭지 않게 하루 하루의 이야기를 지어내며 적었던 일기의 기억을 되돌려 볼 때, 그런 식의 교육을 할 것이라면 '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소설 쓰기'를 가르치는게 더 좋았을 법 하다는 생각도 한다. 나의 오래된 일기 방식은 '기록'이 아니다. '시'가 되기도 하고 '메모'가 되기도 하며, '편지'가 되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한다. 형식은 없다. 그냥 하루 하루 기록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2010년 어느날에 나는 친구에게 500불을 빌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일기에는 '00에게 500불을 빌림'이라는 한 줄이 적혀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그 돈을 왜 빌렸는지, 어디에 썼는지는 있지 않다. 그날 돈을 빌렸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오랜기간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던 희안한 습관 때문에 15년 전의 외국 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날것 그대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갑과 핸드폰을 자주 잃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나의 수첩에는 얼마를 사용했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그의 전화번호와 생일은 언제인지가 모두 적혀있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던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의 이름과 생일 전화번호를 보면 어쩐지 소름이 끼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의 곡선 끝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과 내가 친하게 지냈음을 암시하는 여러 글들을 보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쓴 일기에는 여러 인문학적 내용들이 적혀 있기도 하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빈 노트에 왜 그런 것들을 적어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것들을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이렇게 글을 모으고 쓰고 생각하는 작업은 꽤 시간이 지날 수록 '출판'의 욕심이 생긴다. 이런 출간 욕심은 세상에 없는 완벽한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바뀐다. 그렇게 완전한 책을 냈다고 다짐했어도 책의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린다. '어디서 본 글들이 가득한 책입니다.'부터 '완전 제게 딱 맞는 책입니다'까지 사람들 중 나와 생활 방식과 삶의 방향이 비슷한 이들은 공감하고 완전히 다른 이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와 일상을 함께하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잠을 자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매일 기록할 수 있는 빈 공간에 커다란 주제를 던져 주고, 하루의 생각을 짧게 기록하게 한다. 이것은 완전한 인문학 책, 자기계발서가 되며 동시에 일기이며, 커다란 선물이자, 교육서적일 수 있다. 예수가 아닌 이들이 그의 가르침과 그외의 것을 담은 성경이나 부처가 아닌 이들이 그의 가르침과 그외의 것을 담은 불경 등을 포함하여, 공자가 남긴 이야기를 그저 문자로 남긴 논어, 여러 성인들이 남겼다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아닌 이들이 글을 써서 남긴다. 이 또한 나에게 완전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 줄 가장 완전한 책을 3년에 걸쳐 집필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좋은 선물이자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다시 글들이 출판되어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할지도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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