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영어1등급으로 만들어주마 (최신개정판) - 당신도 늦지 않았다! 수능 50일 전 내가 발견한 비밀 너를 OO1등급으로
서림 지음 / 메리포핀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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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터, '아사다마오'는 여자 싱글 최초로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을 3회 성공 시켰다. '트리플 악셀'은 공중에서 착지하기까지 3회전 반을 도는 기술이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힘차게 도약하여 몸을 비틀고 회전하는 동작이다. 이 때, 팔은 공중으로 솟구치자마자 가슴으로 모아 오므려야 한다. 또한 착지 시에는 팔을 벌려 빙판 위로 착지하면 된다. 회전 수는 3회전 반이다. 어떤가? 간단하지 않은가? 사실 '트리플 악셀'은 피겨 선수들이 최고로 치는 기술이다. 이처럼 지식은 간단하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적용하는 것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수단'이며, '관습'이고 '상호의 약속'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영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트레이닝'하는 것이다. 몸에 익고 훈련되야 한다.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 얼마나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습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누구나 '트리플악셀'에 대해 '성공 방식'을 말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매일 똑같은 양의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어떤 요령이나 쉽게 할 수 있는 '과외'를 받았다고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도 아니다. 긴 영어 문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학생들은 고액과외를 받기도 하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는 '강사'들은 깔끔한 복장을 입고 나와, 멋지게 '독해해 나간다.'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에 너무나 쉬워 보인다. 다만, 혼자서 긴 영어 문장과 만나면 앞이 깜깜하다. 자괴감이든다.

그렇다. 누군가가 성공했던 '트리플악셀'을 구경한다고 해서 내가 어느날 갑자기 '트리플악셀'을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전 세계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은 모두 연습장이 아니라 TV 앞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생들은 '강사들의 트리플악셀' 시범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돌아온다. 영어는 '능동적인 훈련을 통해 학습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간단한 율동이나 동작과 같이 신체를 이용하는 활동이며, '몸'이 기억해야하는 '과목'이다. '어느 학생이, 어느 학원에가니 몇 점이 올랐다.'는 것은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학생들의 점수 중, 일부의 경우를 '마케팅'한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은 노력없이 얻을 수 있다는 정보에 '얼씨구나', 지갑을 열고 달려든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는 '트레이닝'하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감각으로 익숙'해지는 것이지, '지식과 지능'과는 별개의 것이다. 어려운 영어 독해 방법을 설명하는 강의를 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독해법'이 있다. 바로 '끊어 읽기'다. 끊어 읽는 법은 분명 효과적으로 문장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해외 유학 시, Assignment(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접했던 영어 문장에서 '끊어 읽기'의 흔적이 없었다. 나는 눈동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며 이해를 했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당신이 여기까지의 글을 읽었는데, 어떻게 이해하며 읽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내가 읽어보니 그렇더라. 너도 읽어봐라.'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토익', '토플', '수능' 영어를 비롯해 '영문 독해'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이런 영문독해 강의는 '끊어읽기'로 설명한다. 다만, 본질을 들여다 보자면 끊어읽던 붙여읽던, 덩어리 단위의 명사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무의식' 속에서 넣다가 뺐다 쓰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명사'입니다. '수능 영어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명사를 이해하세요."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is a part Mayan who was raised in a culture that taught the value of waiting for others to speak first."

이러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보통의 영어 강사들은 '동사를 찾으세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차적으로 읽으며 이해 해야 하는 '언어'의 특성에서 '동사'를 찾는다는게 어불성설이다. 사실 앞선 글에서 한 단어로 보여지는 것은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다. "존스 홉킨스 약리학 박사 학위 학생인 마리세라 고메즈"라는 하나의 명사다. 굳이 어려운 말로 하자면, 이는 '명사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명사구를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덩어리가 많아봐야 3~4개 뿐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뇌에는 4개의 방이 있고 4개까지를 한 번에 받아 들일 수 있는 셈이다. 만약,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이것을 단어마다, 하나의 방을 사용한다면, 벌써 10개의 방을 사용하게 된다. 다만, 이 명사구를 이용해 단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면, 우리가 문법에서 말하는 S(주어), V(동사) O(목적어) C(보어)로 구성하는 5형식의 모든 문장이 한번에 인식된다.

The boy(그 소년)과 The boy that I know(내가 아는 소년)은 모두 한 덩어리다. 아무리 그 뒤에 다른 지저분한 단어가 붙는다고 하더라도 모두 한단어다. The boy that I have known since 2008(내가 2008년부터 알아오고 있는 그 소년)과 같이 사실 모두 하나의 명사구다. 결국 the boy is kind.(그 소년은 착하다)와 The boy that I have known since 2008 is kind.(내가 2008년부터 알아오고 있는 그 소년은 착하다)는 사실상 구조가 같다.

그렇다면 명사를 어떻게 바라보면 쉽게 볼 수 있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없다. 뭐든 '쉽게' 얻고자 하는 욕심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아사다 마오가 모든 문제에 쉬운 해답이 있었더라면, '아사다마오'는 왜 그처럼 연습장에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을까. 결국 직접 해보고 부딪쳐보고 틀려보고 써보고 말해보고 생각해보고가 정답이다. '메리포핀스' 출판사의 '서림' 작가 님은 이 책에서 '영혼독해'라는 독해법을 언급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워낙 추상적인 관념이라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그녀는 영어문자를 읽고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려는 습관을 벗어나, 영어 자체로 이해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로 하나의 문장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소화하고 거기에 맞는 리액션을 통해서 문장 자체를 체감하라는 의미다. 이에 심하게 공감한다. '월드스타'로 유명한 가수 '비'는 영어 공부를 할 때, 한국어의 모든 발음을 영어처럼하거나 한국어의 어순을 영어 어순으로 바꿔 말했다고 했다. 이것은 '괜찮은 훈련'이다. '나는 학교에 갔어'의 문장을 '나는 갔어, 학교에'라고 바꾸는 간단한 훈련으로 우리는 영어 어순대로 이해하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책 한 권 읽었다고 영어가 능숙해질 순 없다. 다만, 그 태도에 대해 어느정도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책을 읽고 커다란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약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더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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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뉴스
셰릴 앳키슨 지음, 서경의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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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에 '특종', '단독'이라는 단어에 흘깃하여 이 페이지를 열어 봤다면, 우리는 언론을 '욕'할 이유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자본주의에서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다. 자연에서 선택받지 못한 생물 또한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를 있도록 한 '진화론'의 '자연선택설'이다. 자본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택받지 못한 상품과 서비스는 사라진다. 환경에 선택받는 것은 고로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은 것들이야 말로 '우성인자'다. 우성인자는 유전된다. 다음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우성인자 중, 더 특화된 종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환경에 따라, 진화는 일반향으로 흘러가는 것 처럼 보인다. 공룡이 지구를 점령했던 중생대는 대략 18억6000만년이다. 그중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다고 보여지는 기간은 1억 5천만 년이다. 인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2~400만년이다. 그 많던 공룡들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털없는 원숭이로 보여지는 '사피엔스' 종이 지구를 바글 바글 뒤덮고 있다. 어째서 그때는 공룡이 맞고, 지금은 인류가 맞는가. 지구의 산소 농도는 주기적으로 변한다. 낮을 때는 12%이고 높을 때는 35%다. 쉽게 산소는 0.5%의 변화만 생기더라도 숨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꾸준하게 환경을 변화시키며 대기중의 산소 농도를 바꿔왔다. 여기서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과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나눠졌다. 고생대 캄브리아에는 산소농도가 12%까지 줄어든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생물종은 멸종했고 곤충과 같은 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데본기에는 산소가 급증하며 해양 동식물이 바다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공룡이 살던 중생대의 산소의 농도는 다시 15%로 추락한다. 이렇게 대기와 해양 속의 산소의 농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몸집이 큰 동식물이 유리하다가, 다시 몸집이 작은 동식물이 유리하게 되다.

한국 기자를 비꼬는 말로 '기레기'라는 용어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기레기'는 '특종', '단독'과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내고 제목과 상관없는 주제를 뽑아, 클릭수를 높이기도 했다. 중립적이지 않은 내용을 통해, 정치와 경제에 간접적인 간섭을 하기도 하고 모호한 용어 사용을 통해서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이것은 과연 그들의 잘못인가. CNN과 CBS에서 많은 탐사보도를 하고 여러 수상 경력을 가진 미국의 언론인 '셰릴 앳키슨'는 '내러티브 뉴스(책)'에서 '뉴스'의 문제를 꼬집는다. 특별히 '한국언론의 문제점'이라고 찝어내지 않았음에도 한국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것이다. 우리가 '기레기'라고 비웃고 조롱하던 언론의 문제는 '한국 언론'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언론이 가진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환경에 의해 생존을 받아야 생존하는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언론'은 환경에 적합하게 잘 성장해왔다. 여기에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어째서, '공룡이 멸종했는가.'에 '공룡의 문제'를 끄집어 낸다는 것의 상당희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대기 중 산소의 농도는 21%다. 1.5%의 산소 농가 줄어 19.5%가 되면, 흔히 말하는 '산소부족' 상태가 된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구토와 두통등의 저산소증세가 나타난다. 우리와 공룡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알 수 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인류와 공룡이 함께 생존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한다. 둘 중 하나는 21%의 농도에, 다른 하나는 35%의 산소 농도에 숨을 쉬는데, 어떻게 공존 할 수 있는가. 환경은 그토록 무섭다.

흔히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라는 말을 한다. 보수언론이라면 보통 분류하기를 '조중동', 즉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일컫고, 진보 언론이라면,한겨례, 경향신문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언론의 정치편향성은 사실 어느나라에나 존재한다. 이는 언론사 창업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구독자의 성향의 문제다. 얼마 전 읽었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언론사가 일방적인 정치 편향 보도를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으나, 구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진화되어 왔다는 시각이다. 즉, 언론 독자적인 문제를 꼬집기에 그 것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일 수도 있다. 환경은 그렇다. '내러티브(narrative)'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나래이션'과 어원을 함께 하고 있는 단어다. 언론은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단어 선정을 한다. 여기에는 의도치 않던, 의도를 했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용어가 섞여 쓰인다. 진실된 정보와 사실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글쓴이의 의도는 분명하게 들어간다. 즉, '기독교 국가의 1인당 gdp가 상대적으로 높다'라는 황당한 기사를 어린 시절 접했던 적이 있다. 이 기사에는 거짓은 없다. 실제 1인당 gdp로 봤을 때, 기독교국가의 gdp가 높긴 하다. 팩트를 전제로 한 기사에는 쉽게 생각해보면 '의도'를 유추해 볼만한 '내러티브'가 숨겨져 있다. 선진국일수록 식배 비중이 낮고, 고소득일수록 '식비 비중'이 높다는 엥겔의 법칙도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쓰기에 따라 그 의도가 불순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도서는 실제 미국 현대 정치의 기본 배경 지식이 없으면 자칫 어려울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밖에 미투 운동 등 미국 현대 사회의 이슈들을 언론이 어떻게 해석하고 보도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트럼프 힐러리의 미국 대선과 이후 트럼프를 향한 언론의 내러티브에 대한 서술이 많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환경이란 바로 그 글을 읽고 접하는 독자들을 의미한다. 지금도 댓글하나 달리지 않는 좋은 기사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기레기'라는 욕이 달리는 인기 '기사'에는 어김없이 엄청난 조회수가 따른다. 우리는 그런 안좋은 기사를 욕하지만 결국 그 제목에 이끌려 그것들을 선택한다. 환경에 적합한 우성인자들은 더 환경에 맞게 성장하는 법이다. 의사의 소명은 '돈'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돈을 받지 않고 진료하겠다'고 개업하는 경우는 없다. 의사에게 일정의 의료비용을 지급하면서 의사의 가치관에 대한 '신뢰'는 의사에게 맡긴다. 이것은 '언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할 때, 그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며, 인종, 종교, 국적, 정파, 사회적지위를 초월하기로 한다. 또한 자신의 위협에서도 그 지식을 인도적으로 사용하기로 선언한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적정 타협점에서 가치관과 현실성의 중간을 택하도록한다. 더 좋은 언론이 되기 위해선, 그들에게 채찍질을 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그들에게 제공해야한다. 그리고 이 우리 모두는 그 환경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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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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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중국 고대에는 '상(商)나라'가 있었다. 기원 전 1600~1046년 경, '상(商)나라'는 '은(殷)'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넓은 지역을 한 명의 군주가 통치하기 어려워 황제의 형제나 친척에게 그 땅을 나눠 통치하게 했다. 즉, 봉건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상(商)나라' 역시 황제의 친족에게 일부 지역을 나눠 통치했다. 그 지역 중 한 곳이, '주(周)'다. '주(周)'에는 성이 희(姬), 이름이 단보(亶父)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장남이 바로 '오태백(吳太伯)이다. 그는 나라를 일으키고 이를 '오(吳)나라'로 칭했다. 나의 성씨는 여기 양쯔강 근처에서 시작했다. '천자'로 부터 성을 하사받은 '오(吳)나라'의 왕이 뿌리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뿌리가 천자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1,000년도 넘으면서 '혈통'이라는 것은 의미가 사실상 없다. 16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전체의 인구 중 '성씨'를 가진 이들은 10% 남짓한 수준이다. 즉, 대한민국에 있는 성씨 중 대부분은 '가짜 성씨'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17세기에는 20%가 넘는 이들이 성을 갖게 됐고, 19세기 초에는 50%가 성씨를 가졌다. 19세기 후반에는 70%가 성을 갖게 됐는데, 20세기에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하면서, 일본 순사들은 '성씨'을 원하는 대로 신청받았다. 즉, 집안 어른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혈통'을 의미하는 '성'에 대해, 나는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는다. 황족이나 왕족의 성씨를 자랑하는 성씨는 많다. 고구려하면 '고', 신라하면 '박', '석', '김', 고려하면 '왕', 조선하면 '이'를 비롯하여 그 밖에 왕족의 성씨로 혈통을 따지자면, '해, 부여, 진' 등 따질 수도 없이 많다. 즉, '의미없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보면 독특한 이름들이 많다. '스테파니, 제니, 마이클, 존 등'. 일부의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거나, 교포로 생활하다 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시대마다 다르다. 더 큰 문명에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은 '명문'에 닿아 있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차별감은 우월감과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즉, 저마다 자신들의 성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여길 것이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의 체계 하에 중국 문명을 숭상하는 소중화 사상을 가졌다. 나의 조상의 뿌리가 '중국'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은 가난하고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커다란 위인이 됐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금수저 집안 출신이다. 이순신은 덕수 이씨의 집안으로 약 300년 이상, 조선에 엄청난 인재를 배출시켰던 명문 집안이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초계 변씨'로 이 또한 굉장한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이순신의 어머니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하기 힘드나, 그녀의 성씨가 '초계 변씨'라는 점에서 당시 또한 굉장한 집안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혈통'은 지배계급에게 '명분'이 되곤 했다. 고로 당시의 성씨에 대한 해석은 과할 수도 있지만, 분명 해당 지배계급으로써의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남긴, '일기'에 따르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힘드나, 어머니인 '초계 변씨'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자주 교류가 있었으며, 그 성향을 고대로 물려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위인'하면 꼽히는 인물 중,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세종대왕'도 있다. 세종대왕의 어머니는 '원경황후 민씨'로 남편인 이방원이 권력을 획득하는데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녀는 '정도전'이 왕자들의 권력을 견제하려 들자, 집 안에 '무기'를 숨겨 놓기도 했고, 2차 왕자의 난에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창을 들고 나가서 싸우고 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일도 있다고 한다. 그녀의 성격은 대장부스럽다고 평가 받는다. 조선의 왕비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의 영향이 아들에게 전이되지 않았을리가 없다. 이순신이라는 신격화 된 인물을 알기 위해선, '초계변씨'를 알아야하고, '초계 변씨'를 알기 위해선 '이순신'을 알아야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오직 모계로 부터 유전된다고 알려졌다. 즉, 외할머니, 어머니, 딸과 같이 모개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포 속에는 미토콘트리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취식한 음식과 산소를 통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를 생성한다. 우리가 취식한 음식과 산소는 화학에너지다. 이것이 열 에너지가 되고, 그것이 운동에너지가 되고 다시 전기에너지로 바뀐다. 이 역할을 하게 하는 발전소가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이런 생명활동의 필수적인 에너지 발전소에 '아버지'가 끼어들 틈은 없다. 이것은 오직 어머니에게서만 받으며 아이의 건강과 에너지에 큰 역할을 한다. 즉, '초계 변씨'가 아니라면, 이순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도서는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초계 변씨'의 행적을 찾아 떠난다. 이름도 모르고 기록도 찾기 힘든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은 참 흥미롭다. 물론 도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진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초계 변씨가, 아들 이순신을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음직한 일들에 대해 '합리적 추론'을 해보기도 한다. 가령,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중에 '변씨의 가문'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물론 읽다보면, 너무 부족한 근거 탓에, 빈약한 근거라고 여겨지는 추론도 있지만 분명 합리적이고 흥미로운 추론들이다. 이처럼 접근이 색다르고 흥미로운 책들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특히 이 책이 더 애정이 가는 이유는 저자인 '윤동한 작가' 님의 이력 때문이다. 윤동한 작가님은 현재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으로 '역사'에 관한 학자가 아니다. 역대 부커상 수상자 중 최초의 흑인 여성이었던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세상에 내가 원하는 그런 작품이 없으니 내가 쓰겠다"라고 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 없을 때,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직접 그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 버린다고 생각한다. 멋진 작가와 멋질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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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더 해볼게요
서림 지음 / 메리포핀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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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ing means being unafraid to lose." - Fran Tarkenton

(이기는 것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성공'과 '실패' 중 더 흔하게 '실패'가 산재돼 있다. 유독 나에게만 그것이 찾아왔다고 느끼는 이들 중 대부분은 '실패'를 온전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성공에 이른 이들을 바라보면, 그들에 비해 나에게만 찾아온 실패가 씁쓸할 때가 있다. 예전 한 기자가 이미 2만 5000번이나 실패한 사업가를 찾아가 물었다. "벌써 2만 5천번이나 실패를 하셨는데... 지금 하시는 실험을 계속하실 건가요?" 그라자 사업가는 대답했다. "실패라니요. 나는 실패를 한 게 아니라, 성공에 도달하지 않는 2만5천 가지의 방법을 알아낸 거에요." 그 사업가는 전기배터리 실험을 하던 에디슨이었다. 실패는 성공보다 흔하디, 흔한 현상이다. 확률적으로 더 자주 발생하고 더 넓은 곳에 포진돼 있으며, 누구를 따지지 않고 들이닥친다. 갑작스럽게 성공을 이루는 행운도 분명 좋지만, 실패를 맞이하는 자세는 그래서 중요하다. '실패'가 더 빈번하다는 사실은 대게 '성공'을 이르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성공과 실패는 그 성향이 매우 다르기에, 같은 부류라고 여겨지나, 성공은 '결과'이고 실패는 '과정'이다. 성공은 그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수많은 실패 뒤에는 다시 '성공'과 '실패'의 기로가 들어선다. 그거에 다시 '실패'를 맞닥드려도 다시 '성공'과 '실패'의 기로는 들어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없는 나의 입을 기다릴 때가 많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감추고 있다고 여기는지, 나에게 종종 '고민'을 털어 놓곤한다. '남의 일'에 생각없이 한마디 '툭'하도 던지고 나면 내가 뱉은 생각없던 무의식의 말이 다시 나를 자극할 때가 있다.

"만약, 안되면 어쩌지?" 나보다 상급자가 나에게 물었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나는 대답했다. "될때까지 할텐데 안 될 때를 대비할 필요가 왜 있나요?" 사람은 적당한 순간에 포기해야하기도 한다. 미련을 두고 의미없는 도전을 하는 것또 굉장한 위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 반드시 존재한다. 넘지 않고서는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럴 때 '안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불필요한 고민을 하게 한다. 실제 안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이 없다. '다시하거나', '그만하거나' 대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옵션을 물어보면, 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만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이래 저래서 안되는데요'. 그들에게 그럼 '다시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럼 그들은 다시 대답한다. '그러면.. 이래 저래서 안되는데요.'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인 상황에 '고민상담자'는 역할을 잃는다. 이런 고민은 '실패할까봐 두렵다'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 두려움이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가정이라는 것도 사실상 엄청나게 확률 높게 들어 맞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50%로 본다. 그러기에 두려움을 갖는다. 우리 누구는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로또복권을 사면서, 당첨되지 않을 확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첨되지 않을 너무나도 '당연한 확률'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당신의 실패에 '거봐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래 실패는 아주 흔한 일이며, 성공이 아주 극적인 일이다. 실패할 확률을 맞추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실패를 예상한 이들의 적중률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선견지명에 놀랄 이유도, 나의 한계를 결정 지을 이유도 없다.

당신이 도전하는 일에 실패할 확률은 99%다. 당신이 맞이 할 미래에서 얻고자 한 댓가를 얻지 못할 확률이 99%라는 것이다. 이 말이 저주라고 느껴진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가 굉장히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 점수를 1등급 올리거나,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5kg을 감량한다거나, 원하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조금 더, 조금더 성장하거나. 하지만 사실상, '현재'의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이미 최선을 도달한 상태다.' 이 최선을 넘어가는 1g의 목적도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당신이 만들어낸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더 극하게 말하자면 99.99% 쯤은 된다. 이제 우리가 실패할 여지가 당연해졌다. 그럼 다시 도전해보자. 그리고 실패해보자.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0.001%의 확률에 들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1만 분의 1의 확률이 성공의 확률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도전을 2회하기만 해도 그 확률은 5천 분의 1로 줄어든다. 다시 3회를 하게 되면, 3333분의 1로, 4회를 하게되면 2000분의 1로 줄어든다. 실패에 '도전'이라는 대응을, '장군', '멍군' 식으로 무감정 대입하기만 하더라도 성공의 확률은 '복리'로 늘어난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는 결국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실패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문제를 바라 볼 때, 감정을 배제시킨다. 실패도 즐겁게 맞이한다. 소설가 김영하 님은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서류상의 문제로 다시 돌아 온 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화가 날 법한 상황에 김영하 작가 님은 '글쓰기 좋은 소재가 됐다'고 여기고 말았다. '내가 두 번 다시 중국을 들어가나 봐라'보다 편안하게 다음에 중국행 비행기를 끊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 그곳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림 작가 님은 입시의 실패를 맞이하고 '반수'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을 입학하고서 다시 대입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꾸준한 실패를 맞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한다. 물론 실패에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다는 것 쯤은 여전히 알 수 있다. 다만, '나는 해도 안돼'가 아니라 현명하게 어느정도는 현실과 타협해가면서 원하는 목표를 이뤄낸다. 우리는 아주 사소하게 정해 놓은 목표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제의 나와 달라지는 아주 작은 성취라도 결코 당연한 것은 없다. 그녀는 대학생활 중 과외와 대학생활과 수험생활을 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아주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켰다. 실패할 여지도 충분히 둔다. 그녀는 결국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통해 '교대'를 입학하 수 있었고 지금은 다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젊은 이들에게 굉장히 고민이 될 법한 이야기다. 주변 어디서나 있는 이야기고 실제로 모두가 수험생활을 하며 일정한 '패배자'를 양산해내는 대한민국 '입시'와 '고시'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보다보니 '너를 영어 1등급으로 만들어주마'라는 도서가 보였다. 단순히 태어나서 부터 영어가 능통했다는 '원어민'의 영어 공부법이 아니라, 불완전하여 실패를 거듭했던 이에게 축척된 성공과 실패 데이터가 축척된 새로운 책에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녀는 스스로 '이과적'이라고 했으나, 그녀의 문체는 깔끔하고 보기 편하고 따뜻하다. 그녀가 '이과적'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업에 종사하는, 그리고 글을 쓰는 '문과적' 인간 이라는 사실은 여실하게 글에서 들어난다. 대한민국 많은 수험생들이 읽기를 희망하는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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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디즈니 애니메이션 70주년 특별 에디션 고급 벨벳 양장본)
루이스 캐럴 지음, 디즈니 그림, 공민희 옮김, 양윤정 해설 / 아르누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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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난해함을 느꼈다면 당연할 것이다. 제정신으로 글을 읽고 있는지, 글을 쓴 사람은 과연 제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아리송한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덴마크의 동화가 생각난다. 욕심많은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 오라'하고 명령을 하자, 거짓말쟁이 재봉사가 '어릭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 올렸다는 동화 말이다. 모든 어른들이 입을 꾹 닫고, 마치 임금님이 입고 있는 옷을 찬양하였으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아이가 외쳤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유명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숨기고자, 우리는 자막없는 외화영화에서 옆사람의 웃음소리에 따라 웃는다. 그렇다. 그저 '뭔가 대단한게 있는가 보다'하고 넘어가면 '보통'은 된다. 나의 부족함이 최소한 들키진 않는다. 다만, 읽으면서 내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글을 읽으며 철썩같이 이해한 척을 하고 싶진 않다. 당신이 눈동자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의 글을 훑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중에서 휘발되는 이유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이 소설은 '언어유희'가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미국 시트콤 '프랜즈'를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틈틈히 '프랜즈'를 보곤 한다. 이처럼 재밌는 시트콤 '프랜즈'를 주변인들에게 소개하면,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식 유머가 나랑 안맞는 것 같다.' 정말 미국식 유머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함께 같은 장면을 보면서 나는 웃고 상대가 웃지 않는 이유에는 '번역'이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했다.

프랜즈의 한 대목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이별의 상심 중인 챈들러(Chandler)를 위로하는 친구들과의 대화 중 하나다. 챈들러는 말한다. "So, I'm not gonna lose her?(그럼, 그녀를 잃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에 레이첼(Rachel)은 대답한다. "Oh honey, you're not a total loser.(넌 완전 찌질이가 아니야.)" 이 대목에 영어권 사람들은 웃었고 비영어권 사람들은 '미국식 유머와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이 대목의 웃음 포인트는 lose her(루스허: 그녀를 잃는다)와 loser(루저: 찌질이)의 발음이 비슷하면서다. 비슷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도 계속 나온다. 프랜즈 5화에는 모니카(Monica)에게 국자를 빌리러 방문한 대니(Danny)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국자를 빌리고 돌아가며 말한다. "See you later.(이따봐)". 여기에 옆에 있던 피비(Phoebe)가 웃는다. "See you ladle.(국자봐!)" 이 부분에서 자막을 읽는 왜 웃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것 또한 언어유희다. later(이따)와 ladle(국자)의 발음이 비슷하면서 생겨난 유머다. 뿐만아니라, 프랜즈 곳곳에는 이런 유머가 숨어져 있다. 이런 유머코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녀를 잃는 건 아닐까"하는 질문에 "넌 완전 찌질이가 아니야"라고 답하는 아리송함과 "이따봐"라고 했더니 "국자봐"라고 답하는 도통 난해한 유머코드에 머리만 아플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저 단순히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데?'를 따지고 들면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고 난해하다. 도통 스토리가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다.

제대로 흘러가는게 하나도 없는 괴상망측한 스토리텔링과 번역이 의미를 상실한 유머코드는 이미 난해한 작품을 더 난해하게 만든다. 실제로 작가 '루이스 캐롤'은 희귀한 신경장애로 고통받았다. 그가 가졌던 신경 장애는 시각적인 물체의 크기가 훨씬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하는 질병이다. 1955녕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토드'가 이 질병을 발견하고 여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후 이 질병은 '토드 증후군'으로 알려졌다. 독특한 세계관은 실제 작가의 질환에 기반을 하고 있다. 토끼굴을 들어간다.(영어 표현의 Down the rabbit hole 표현으로 사용됨) 그리고 크기가 줄어들고 커지고를 반복한다. 난해한 설정은 사실 작가가 가진 질환에서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여왕'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시대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독특한 소설에 매력을 느낀다. 작가인 '캐롤'에게 집필한 다음 책을 바치라고 제안한다. 이에 캐롤이 가지고 왔던 다음 책의 제목은 "동시 선형 방정식과 대수 방정식의 적용에 대한 결정요인에 관한 기초 논문"이었다. '루이스 캐롤'은 '동화작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수학자다. 심지어 수학교수였음으로 그가 여왕의 제안에 응하며 받쳤던 다음 작품들은 온통 수학 논문들이었다. 해당 소설은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관통한다기 보다, 담고 보여주고자 하는 철학과 유머가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 가 있는 '앨리스'가 유일한 '정상'이라고 여길테지만, 실제 그 나라에서 유일하게 이상한 이는 바로 '앨리스'였으니 말이다. 책을 읽는 이들이 '난해한' 문장 앞에서 '마치 모두 이해한 것 마냥'하는 그 난해함마저 사실 정상적인 듯 하며 이상하고, 이상한 듯하며 정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유명한 영화나 게임 등에서 자주 소스로 사용된다. 심지어 '매트릭스'와 같은 명작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 받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밈(meme)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번식하여 타인에게 복제, 복제 된다. 15년 전에 개봉한 타짜의 대사가 느닷없이 유행하면서 대규모로 다시 퍼져나가거나, 당시 별 의미를 알 수 없던 상황과 대사가 재생산되면서 확산되기도 한다. 인간은 평범한 기억보다 '이상한' 기억이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꽤 감동적이었던 클리셰 가득한 짜임세 있는 영화보다, 도통 난해한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의 '일본 고어물'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 인용하고 인용하고, 다시 누군가가 인용하고 권위자가 선정하고 인용하길 반복하다 보면, '이상한' 이야기는 다시 '명작'으로 거듭난다. 다들 좋다하니 좋은건가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분명 난해하고 어렵고 이상하지만,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으며, 이 책과 함께하는 시대, 문화, 인물을 함께 볼 때, 작품이 다시 보일 수 있는 굉장히 다변적인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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