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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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임금'에게 판매한 아주 똑똑한 마케터를 알고 있다. 벌거 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제단사들이다. 이들은 어느날 임금에게 나타나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신하들은 중간 중간 제단사를 찾아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멍청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고로 옷이 보이는 것처럼 임금에게 보고한다. 다시 같은 이유로 다른 신화들이 찾아왔고 그들도 역시 옷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임금이 그 옷을 받게 된다. 모든 신하의 눈에는 보인다는 '이 옷'을 임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임금의 체통이 있어, 임금은 그것을 보인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신하들이 아름답다고 말한 옷이다. 모든 신하들이 극찬을 했다. 임금도 그 옷이 반드시 보여야했다. 제단사들은 임금에게 옷을 입히는 시늉을 한다. 임금 또한 옷 입는 시늉을 한다. 이후 옷을 입고 임금은 거리를 나선다. 시민 그 누구도 그 옷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모두가 보이는 옷을 자신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근엄한 표정으로 보이는 것처럼 시늉하다가 한 어린 아이가 소리친다.

"임금님이 벌거 벗었데요!"

그제서야 사람들은 옷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전을 읽으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된 책. 과연 그 책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그것을 읽고 커다란 감명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것이 임금님의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과 같은 것은 아닐까. 만인에게 검증된 책이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멍청이'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임금님이 벌거 벗었다'고 외친 어린 아이와 닮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그런 책들이 있다.

첫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고전을 읽으며 어떤 사람들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이야기를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실제 이상했다. 사람들은 여기에 상징주의를 담아 다양한 해석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이상했다. 대사도 전여 개연성 없이 이어졌다. 그것을 많은 사람이 인정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책에 대해 조금 더 심도 있게 살펴보려고 했지만, 나의 턱 없는 문해력으로 그 책은 그냥 이상한 책이었다. 책에서 앨리스는 커지고 작아지고 물체가 왜곡되는 것을 경함한다. 이런 형태 왜곡 인식 현상을 실제, 소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경험했는데, 그는 의식변조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었고 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었다. 1955년 영국 외과의사인 J. Todd에 의해 논문으로 다뤄졌는데 이는 '이상한 나라의 증후군' 혹은 '토드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영미권에서 흥미로운 소설인 이유는 다름 아닌, 언여 유희 때문이다. 가령 대사중에는

"내가 본 것은 고양이었어?"라는 대사가 있다. 당췌 그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이 대사를 영어로 바꿔보면 이렇다. "Was it a cat I saw?"

이 대사의 영어 스펠링을 거꾸로 쓰면 "Was it a cat I saw?"로 같은 말이 완성된다. 이 대사를 한국어로 보고 소설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차를 뜻하는 "Tea"와 발음이 비슷한 "T"를 이용한 언어 유희도 나온다. 이것을 한국어 버전의 소설로 읽고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공감하기 힘들다.

둘 째, 신곡.

이탈리아 작가 단테의 신곡은 이름이 무시무시하다.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가 그것을 읽고 그렇게 느꼈느냐 묻는다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단테의 신곡은 역시 어렵다.'고 말하지만 내가 읽은 단테의 신곡은 어렵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단테의 신곡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일단 인물의 이름이 어렵다.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보다 모르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고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것은 당연하다. 1300년에 지어진 책에 등장하는 인물을 '상식'으로 모두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단테의 개인적 라이벌이 꽤 나온다. 우리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들 인물 정보를 검색해 보면 역사적인 정보가 나오지만 정보가 그렇게 문서화 되어 있으면 역시 무시무시해 보일 뿐이다. 이 책은 지옥을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테는 지옥을 갔다 온 적이 없다. 그가 묘사한 것은 상상일 뿐이다. 신곡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등장인물들도 많이 등장한다. 플라톤이나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고, 소크라테스나 카이사르도 등장한다. 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런 이름들을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고 읽으면 단테의 신곡은 생각만큼 묵직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묵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의 근대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나뉜다." - T.S 엘리엇.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모든 문학의 절정"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무시 무시한 사람들이 '극찬한 이 '신곡'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과연 '바보'가 될 것이다. 나는 확실히 '바보'이기에 '신곡'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겠다.

참고로 'T.S 엘리엇,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분명 대단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인물 중 괴테의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책도 읽어 본 적 없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인 '노인과 바다'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그의 소설을 그저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노인과 바다'에 들어가는 '상징주의'에 대해 그저 독자의 몫으로 두었을 뿐이지 깊은 문학적 상징을 염두하고 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떠오르는 감독과 뮤지션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다.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대사는 '밥은 먹고 다니니?'다. 이 대사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석을 두었지만, 실제 이는 송강호 배우의 애드립이었다.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는 당시 서울대 사회과학대 출신의 가수의 노래라는 이유로 '청년 실업에 대한 사회 비판과 풍자'로 알려졌으나 정작, 작사할 때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직접 해명했다. 그 밖에도 '양희은' 가수의 '아침이슬'은 '민주화 운동'과 전혀 관련 없었음에도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졌고 가수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의 테마곡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고전을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가령 '대체 그 많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사랑했을까'

하며 그 글이 내포하는 많은 해석을 찾으려 든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속에 작가는 내용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사색하는 것은 독서를 풍요롭게 한다. 고전을 읽는 습관은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통해 다양한 사색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이유가 나의 지성 탓인지, 혹은 그것과 그것을 평가하는 권위자의 권위에 의해, 없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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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록 - 내 인생을 바꾸는 작은 기적 기록
안예진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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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패권 다툼이었다. 농경민족은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고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착하고 자리잡고 문화적 번영을 하는 이룬다. 덩치가 크고 잃을 것이 많다. 비옥한 토지를 선점한다. 나아가기 보다 지키는 것을 우선시 한다. 대체로 분업이 잘 되어 있다.

유목민족은 반대다. 대체로 기민하게 움직인다. 척박한 땅에 거주한다. 덩치가 작고 잃을 것이 없다. 지키는 것보다 나아가는 것을 우선시한다. 대체로 분업보다는 개인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유목민족은 몽골이나 여진이 있다. 이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대체로 가난했고 전문적 능력도 갖추지 않았다. 날아가는 새처럼 최대한 몸집을 가볍게 해야 했다. 언제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도록 중요한 것이 아니면 덜어 냈다. 이들의 특징은 '기동력'과 '자유', '다재다능'이다. 몽골족은 이민족의 침략에 재빠르게 도망 다녔다. 활동을 위해 소지품을 최소화했다. 중요한 무언가를 제외하면 모두 버려야 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본능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이는 본질 파악 능력을 향상 시켰다. 한 곳에 머무르다보면 불필요한 잡동사니가 쌓인다. 살아가며 꼭 필요한 것들을 쌓아 두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결국 모른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잃을 것이 많은 농경민족과 잃을 것 없는 유목민족의 결정적 차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초원을 유랑하는 유목 민족도 있지만 바다를 유랑하는 유목 민족도 있다. 대체로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섬나라가 그렇다. 이들은 떠돌아 다니다가 약탈을 했다. 스스로 음식을 지어 먹었고 전쟁에도 참여했다. 농사를 짓거나 사냥도 하기도 했다. 전문 분야를 나누지 않고 개인의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해야 했다. 세계를 보면 농경민족들이 번영하다가 쇠퇴와 부패가 시작하면 잽싸게 유목민족들이 패권을 앗아갔다. 몽골, 일본, 영국, 여진 등 갑자기 세계사에 중심으로 우뚝 서버린다. 경제에서도 이와 같다. 덩치가 커지면 기동성이 줄어든다. 지나치게 커저버린 덩치 때문에 줄어든 기동성을 '프리랜서'들은 잽싸게 채워나간다. 공무원이나 대기업보다 더 선호 되는 것이 '유튜버'라는 직업이다. 커다란 덩치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지만 사람들은 자유를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공동체가 지나치게 둔해지고 비합리적이게 되면 사람들은 권태감을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 유목민족처럼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잽싸게 유목민들이 패권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지금 현재가 그 과도기라 보여진다. '디지털노마드', '경제적 자유'. 이런 것들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소속감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을 중요시 생각했다. 경제와 사회, 문화분야에서 '인플루언서', 즉 유목민들이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농경민족의 자리를 빠르게 꿰찬다. TV를 켜면 대형 유튜버들이 나온다. 이들은 스스로 연출가이자 음향감독이고 카메라 감독이자 출연자이자 작가이고, 편집자이기도 하다. 혼자서 모든 역량을 다 해낸다.

사람들이 '유목민'에 대한 환상을 갖는 이유다. 이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스스로 컨텐츠를 제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유목민에게 가장 큰 원동력은 사실 '결핍'과 '불안'이다. 초기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이들의 경우, 공동체가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기 바쁘다. 대체로 인플루언서들의 상당수는 항상 겉돌다가 기회를 발견한다. '도서 인플루언서' '안예진' 작가는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녀의 이름에 따라 그녀는 '유목민'을 꿈꾼다. 유목민처럼 그녀는 안정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도전'과 '자유'를 희망한다. 그녀가 이처럼 유목민을 지향하면서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현대 많은 사람들도 원하는 삶이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했다. '돈'에 대해 조금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사는 삶을 말한다. '농경민족'에게는 사실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대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꾸준하고 보장된 수확물만 존재할 뿐이다. 유목민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기회를 틈타 높은 기동성으로 커다란 성장을 할 때가 있다. 대체로 이들은 꾸준하지는 못해도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만큼의 기회가 충분하게 있고 흔히 말하는 '대박'의 꿈도 가질 수 있다.

주식투자에 실패하거나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여러 지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것으로 보아 '안예진 작가'의 삶은 유목민을 닮았다. 내 성향도 비슷하다. 역사, 경제, 양자역학, 풍수지리, 관상, 필체, 뇌과학, 동양철학, 소설, 서양철학, 종교, 미술, 음악, 뭐든 상관 없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렇게 읽다보니 얻는 게 많다. 개인이 여러가지 일에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유목민의 특성'에도 맞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보니 어떤 것을 볼 때, 다면적이게 보인다. 가령 현대미술을 보면서 역사와 기술이 떠오른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서양미술은 사실적인 그림에 권태를 느끼고 일본에서 찾은 '자포니즘'이 성장한다 던지. 노자를 읽으면서 양자역학과 닮은 부분을 찾아 본 다던지. 국부론과 종의 기원을 섞어 생각해 본다던지.

현상과 사물이 기존에 알고 있던 '관념'이 아닌 다각화된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것은 분명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그것이 다른 선택들을 하게 한다고 믿는다.

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논술 부분 엑스퍼트'로 나 또한 등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많은 것을 얻는 부분이라면 지식적인 부분이다. 분명 농경으로 남들이 곡간을 채워가는 기간에, 여러 분야에 지식을 채워 놓고 있다고 본다.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훔쳐갈수도 없는 멈추지 않는 샘물을 내부에 만든다고 본다. 그것은 언젠가 화수분이 되어 채우고도 넘칠 것이다. 개인적 소통은 없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그런 신뢰가 있다. 단순히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기술'을 떠나, '저 사람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녹아져 있을까' 떠올리면, 이들의 미래가 기대되고 때로는 때로는 자극받기도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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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 성공 법칙 -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는 가장 강력한 8가지 습관 리어웨이크 시리즈 2
간다 마사노리 지음, 서승범 옮김 / 생각지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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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선과 악을 가르지 않는다. 중력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던, 나쁜 사람이던 '힘'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는 양자로 나눠져 있다. 그것을 '음' 혹은 '양'으로 불러도 좋다.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 '여름'과 '겨울', '겉'과 '속' 이렇게 이렇게 양자로 나눠진 것들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에너지의 크기는 같다. 이것을 수학에서는 '절대값'이라고 부른다. 절대값은 이렇다. 수직선 위에 한점을 찍고 좌측이던 우측이던 점으로부터 멀어져 보자. -3과 +3은 둘다 절대값 3이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파동을 보면 위로 볼록 나온 부분을 '마루',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골'이라고 부른다. 진동의 중심에서 골과 마루는 각각 일정부분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결국 '골'이나 '마루'나, 진동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진폭은 커지며 진폭이 커지면 파동이 커진다. 선한 내적 동기나 악한 내적 동기나 둘다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일정 부분에 성공을 이룬 이들을 보면 대체로 '선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지만, '악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다. 가령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겠어'라고 다짐하는 에너지나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복수하겠어'하는 에너지나, 절대값은 같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크지만 '증오'는 그 대척점에서 사랑만큼 큰 에너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믿지 않던 혹은 그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것은 그저 그렇다. 도덕적이고 윤리적 잣대는 인간의 관념상에서나 존재하지 태초에 자연과 우주에 '도덕'과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석유는 '선'하기 때문에 '물'보다 더 많은 열량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세상에는 꼭 좋은 사람에게만 '돈'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기치거나 속이고 기만한 사람에게도 '돈'은 여지없이 따라 붙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람과 집단에게도 '돈'은 끌려간다. 그것은 '중력'과 같다. 중력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작동한다. 때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끌리기도 하고 실제로 사이코패스 또한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은 걸로 알려졌다.

부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만큼 '악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공한 이들을 보면 때로 열등감이나 복수심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이런 에너지를 이용하여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다. 뒤이어 스스로를 움직였단 '악의 감정'에서 벗어나 '선한 영향력'을 고민한다. '악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다수는 대체로 '결핍'이다. 결핍이 해결된 이들은 더이상 '악의 감정'이 동력으로써 에너지를 잃는다. 이후부터 그들은 다른 도약을 위해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후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이들은 다시 한 단계 도약을 하며 다음 단계로 퀀텀 점프를 한다. 이들이 이처럼 두 번 째 감정으로 퀀텀 점프를 할 때 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꽤 높아진다. 또한 말 그대로 또다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출판'한다. 결국 출판되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선한 영향력'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한결 같은 성공 방정식은 없다. 17세기에는 17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고 21세기에는 21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다. 20대에는 2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고 50대에는 5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다.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에게 맞는 방정식이 있고 자영업자에게는 자영업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성별, 지역, 출신, 시기, 나이에 따른 각자 다른 방정식이 존재한다. 대체로 베스트셀러에 속한 자기계발서는 '대중'에게 선택 받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화 된 내용일 뿐이며 모두가 같은 방정식이 사용된다고 볼 수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중학생에 입학한다. 인간의 관심사는 처음에는 먹는 것에, 그 다음은 부모에 그리고 친구로 이어진다. 다시 이성과 부, 사회적 지위, 건강, 행복 등으로 넘어간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다. 유명한 누군가의 자기계발서를 보며 따라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는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제비가 박씨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그것이 '선'이던 '악'이던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초기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발화하는 것은 '악'의 에너지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악'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갖고 있는 '열등감' 혹은 '복수심', 보여주고 말겠다는 '허세'와 '허풍' 혹은 '허영심'도 포함된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당췌 말이 안되는 목표를 허풍을 늘어놓고 그것을 해내고 만다. 내뱉고나면 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카푸어'라는 이들의 대부분은 빈곤해지는 과정을 겪지만 이들 중 소수는 실제 그것을 탈 수 있는 사회적 지위까지 스스로 만들어내곤 한다. 위로 혹은 아래로 깊은 진폭은 어쨌건 '동력'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무엇으로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 말의 본질은 '움직임'이 결국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악'이던 '선'이던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까. 원리는 이렇다. 그것을 종이 위에 쓰는 것이다. 우리뇌에 들어 온 정보는 '망상활성계'에 이해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로 나눠져 이곳 저곳에 전송된다. 어떤 정보는 우선시 되고, 어떤 정보는 그렇지 않는다. 망상활성계는 이렇게 나눠진 정보 중 일부 정보에 기민하게 만들고 각성되게 한다. 종이 위에 글을 쓰면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깊은 곳에 박힌다. 이후 뇌는 우연하게 스치는 수많은 정보 중 '일부 그것'을 기민하게 받아들이고 발견한다. 그것을 스스로 재생산하고 저장하길 반복한다. 그런 과정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일어난다. 결국 무의식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세상 가장 신기한 힘은 따지고보면 '중력' 아닌가. 왜 그것이 서로를 당기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한다. 결국 '힘'은 원리를 파악하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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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일 1명상 1평온 - 오직 나만을 위한 하루치의 충만함
디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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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생불이라 추앙받던 '숭산 스님'을 대표하는 두 가르침이 있다. 다음과 같다.

'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이 둘을 정확히 영상으로 보여줬다. 영화에서 주인공 포레스트를 제외하고 모든 주변인물들은 그보다 똑똑했다. 다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모두 불행했다.

영화에서 포레스트는 같은 말을 꾸준하게 반복한다.

"Stupid is as stupid does."

'바보는 바보짓을 해야 바보에요'

사람들은 '포레스트'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결과적으로 바보짓을 하는 이들은 '포레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옭아 매고 자신을 학대하며 인생을 소비했다.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포레스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Stupid is as stupid does."

'바보는 바보 짓을 해야 바보에요.'

자신을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포레스트'를 '바보'라고 확신한다. 다만 포레스트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결국 바보 짓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포레스트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이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같은 '인식'은 자신의 판단이 바보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결국 포레스트 검프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미군에 입대하여 꽤 괜찮은 스펙을 얻는다. 사업에도 성공하고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기도 한다. 이 와중에서도 그는 꾸준하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한다. 그 어리숙함에 관객을 웃는다. 영화의 흐름 상, 포레스트는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행복에 이른다. 그를 비웃던 주변 인물과 관객은 바보가 된다.

'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

'오직 모를뿐이다.' 어차피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될지 안될지 알 수 없다. 세상이 어떤지도 모른다. 고로 걱정과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고민해도 결국 모른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성공이나 돈을 위해 움직이지도 않는다. 단지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오직 할 뿐이다.' 그것은 바보 같지만 가장 바보 같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 다만 그 뿐이다.

가장 단순한 기본이 중요하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돈', '성공', '관계'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음식은 없으면 3주를 버틸 수 있다. 물 없이는 3일을 버틸 수 있다. 호흡이 없으면 3분도 버티지 못한다. 수면 없이 인간이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공식적으로 11일이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이론은 점차 아래로 넓어진다. 상위에는 자아실현과 존중, 소속과 애정의 욕구가 있지만, 그 근본에는 안전 욕구와 생리적 욕구가 있다. 하위 욕구는 상위 욕구를 다단하게 떠받든다.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안전 욕구가 충족될 수 없고, 안전이나 애정욕구를 충족하지 않고서는 존중이나 자아 실현 욕구를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모든 욕구의 하위에는 '호흡'이 있다. 가장 기본은 '호흡'이다. 중국 최고 의서로 꼽히는 '황제내경'에는 사람이 하루 1만 3천500번의 호흡을 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만 5천 번 호흡한다. 즉, 현대인들은 과거인들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흡이 많다는 것은 호흡이 잦다는 것을 말한다. 호흡이 잦다는 것은 호흡이 짧다는 것을 말한다. 호흡이 짧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RSA라는 용어는 호흡 주기 동안 발생하는 심박수 변화다. 그 이름은 듣기만해도 무시 무시 해지는 'Respiratory sinus arrhythmia'다. 어쨌건 이에 따르면 인간은 숨을 들이 쉬면 심박수가 증가하고 내쉬면 감소한다. 심박수는 지나치게 높아도, 지나치게 낮아도 문제가 되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인들은 호흡이 짧고 심박수는 지나치게 높다. 감정의 변화,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자율 신경계의 균형을 흐트러트린다. 또한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현대인들은 항상 맹수에게 쫒기듯 긴장된 상태로 살아 간다는 의미다. 고로 의식적으로 호흡을 천천히 낮게 하는 편이 좋다.

호흡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하단을 단단히 쌓지 않고서 높은 탑을 쌓을 수 없듯. 가장 기본이 단단해야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래는 빈약하고 위로는 거대한 역삼각형 구조물을 쌓으려 한다. 아래로 피라미드는 아래로 넓고 묵직할 때 안정감이 있고 그것을 뒤집에 세우면 언제나 넘어진다. 어떤 스트레스적인 상황에 처할 때, 상사에게 꾸지람을 당할 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절로 호흡을 짧게 한다. 이는 심박동을 높힌다. 그것을 그대로 두기보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천천히 느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을 끝까지 내뱉고 있는지. 그것을 안다면 감정 절제가 가능하고 이성적 판단에 유리하다. 장 폴 샤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인생이란 태어남(birth)와 죽어버림(death)사이에 선택(choice)이라는 말이다. 즉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앞서 말한 욕구에서 하나씩 이뤄 나갈 수 있다. 좋은 선택은 잦고 짧은 호흡이 아니다. 느긋하고 깊은 호흡, 잔잔한 심박동에서 나온다. 호흡을 깊고 길게 해보자. 이 과정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있다. '나'는 호흡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호흡하는 신체를 지켜보고 조절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화가 났을 때, '나'는 화가 난 '감정'을 바라보는 주체다. 슬픈 감정이 생겼을 때, '나'는 '슬픔'을 바라보는 주체다. 결국 '내'가 슬픈 것도 '내가' 화난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존재다. 이런 자아 객관화가 이뤄지면 감정에 따른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그 기본 중 기본은 호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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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흔들린다 - 경제, 정책, 산업, 인구로 살펴본 일본의 현재와 미래,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정영효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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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이타현 미야하라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여느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관을 갖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어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니시 야스코 씨는 한 달에 한 두번 병원 정기 검진을 위해, 혹은 2주치의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 니시 야스코 씨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이다. 2015년에서 2019년 총 4년간 주민이 0명이 되어 소멸된 마을은 일본 전국적으로 164곳이다. 앞으로 이 속도는 더욱 가속화 될 예정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일본의 안타까운 실정이 아니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 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충남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 이곳 전체 주민은 95명이다. 이중 절반 이상인 52명은 60대 이상이고 4~50대는 23명이다. 이 봉선리는 백제인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제단'이 처음으로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가까운 미래에 소멸을 맞이할 마을은 우리나라에만 1067곳이나 된다. 일본이 흔들린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은 독특한 나라였다. 어린 시절, 일본의 위상은 엄청났다. 어른들은 '일제'를 곧 '명품'으로 인식했고 어른들은 일본제국의 만행을 욕하는 동시에 현대 일본인의 선진의식을 부러워 했다. 그 오묘한 국가가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던 곳이다. 첫 인상은 그랬다. '질서, 청결, 예의' 어른들에게 들었던 일본의 이미지가 그대로 있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을 견주는 것은 어느 분야든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천지가 개벽한 듯 하다. 일본은 저렴한 여행지 중 하나가 됐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뉴스 기사는 적지 않게 나온다. 내가 어린시절 어른들과 내가 가졌던 일본에 대한 열등감 혹은 컴플렉스는 현재 청소년들에게는 없다.

언제부터 이렇게 일본이 가난해지기 시작했을까.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경제 위기를 보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나 2010년이 지나도 일본의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2020년도 벌써 3년이나 흘렀다. 일본이 잃어버렸다는 그 시기는 20년을 지나, 30년, 40년을 훌쩍 넘었다. 이 정도라면 '잃어버렸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맞는가 싶다. 일본이 경제 호황 시절보다 더 긴 불황 시절이라면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 국민의 1인당 GDP는 칠레나 터키 보다 적었다. 어쨌건 두 세대 만에 일본이 엄청난 경제 성장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오른 것은 사실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일본은 이미 엄청난 경제 대국이었기에 내 또래가 갖는 일본에 대한 환상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최근 나이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 일본에 대한 인식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대체적으로 나이 어린 친구들은 일본인에 대한 감정 인식이 나쁘지 않으며 되려 무감각하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삶의 질에서 어느 나라와 굳이 비교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일본의 미래는 더 어둡다고 본다. 일본의 미래가 더 어두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역사적 감정'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전 세계가, 특히 미국이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를 앞다투어 하기 전까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었다. 그것은 지금은 조금만 경제에 관심을 가져도 자주 듣게 되는 '양적완화'지만 일본 경제를 부양하겠다며 시작했던 '양적완화'는 언발에 오줌누기 같았다. 경제를 부양하는 방법치고 유래가 없는 방법이었다. 당시 일본을 다시 부활하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일본 경제 부활을 확신했다. 아베의 야심찬 경기 부양책은 아베의 세가지 화살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오르내렸다.

'양적완화', '재정지출확대', '기업 체질 개선'. 이미 마이너스 금리인 일본이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돈을 찍어내는 일 밖에 없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부양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일은 크게 기준금리 조절, 지급 준비율 조절, 재할인율 조절이다. 여기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넋놓고 시장의 흐름을 지켜봐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이때 아베는 무제한적으로 돈을 찍어 시장에 푸는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엔화가 풀리면 엔화가치가 떨어져, 수출이 살아나고 기업 수익이 높아지면 체질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다만 이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논리다. 준기축통화라는 엔화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이런 양적완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성장에 큰 발판이 되기도 했다. 과거 일본 은행이 발행한 자금의 반 이상은 국제 금융 시장으로 흘러갔다.이 자금의 다수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중국은 낮은 비용으로 일본 은행이 공급한 자금을 운용했다. 일본의 민간 은행이 중국에 직접 투자나 융자를 한 적은 업지만 중국은 국제 금융시장이라는 중개거점을 이용하여 달러채를 발행하고 투자금을 마련하여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투자했다. 결국 2021년 9월 말까지 일본 은행 자금은 488조엔, 일본 대외금융채권은 524조엔 이 늘었다. 반면 중국의 대외금융채무는 232조 엔 늘었다. 일본 중앙은 경제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일 말고는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거른데 위험한 것은 일본 중앙은행의 일본 국채 보유율은 50%가 넘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다. 일본 중앙은행은 도쿄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주식을 매입한다. 특이한 일이다. 일본은행의 상장지수펀드 보유액은 도쿄증시 1부 시총의 4%인 24조원에 해당된다. 일본은행은 신탁은행을 통해 니케이와 도쿄증시 1부종목 지수인 토빅스를 사들이는데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개입하여 대주주가 되는 상황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ETF 매입을 늘려온 효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34개사의 기업에 10% 이상을 보유 중이다. 이는 자유 시장 법칙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일본 은행이 대주주인 회사들은 경영 감시의 우려가 있고 기업의 가치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 또한 시장에 참여 중인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의 이런 투자 성향을 믿고 단기 투자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일본 경제의 가장 큰 위기는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손을 써도 역사상 있어 본 적 없는 특이한 방식을 꾸준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발의 오줌누기로 곪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지연시키는 일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미래는 아주 어둡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어렴풋 보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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