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공부 혁명 -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교실은 어떻게 배우는가?
호시 도모히로 지음, 정현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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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희망자에게 '키즈폰'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2년 약정 단말기값과 월 이용 요금 8,800원도 모두 무료다. 교육청 지원이다. 이제는 스마트기기가 생활로 들어 오더니, 초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 당시, 이런 온라인 교육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현상이 반드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언택트 비대면 교육은 '대안'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체'는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온라인 교육은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는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완하거나 추가 옵션을 제공하는 정도까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교육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도 안된다고 본다. 즉,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 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언택트 교육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문제점은 여럿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배우는 것 또한 교육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며 '학업' 이외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발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타인의 실수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며 반면교사를 삼거나 동기부여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이 언택트 교육에서는 사라진다. 우리는 전화를 개발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항상 '만남'을 통해 해결한다. '전화'는 아무리 '화상통화'나 VR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어도 '만남'의 대안이 될 뿐, 만남을 '대체' 할 수는 없다.

언택트 교육의 두 번 째 문제는 집중력 저하다. 스마트폰 기기가 무서운 것은 그 속에 있는 컨텐츠가 '몽땅' 무료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컨텐츠들은 모두 무료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 수익률을 만들어 내는 거대 공룡이 됐다. 그들이 '무료'로 배포해도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케팅'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는 생존전력 상, 우리의 집중력은 너무 쉽게 저하된다.

세번째는 기술적 장벽이다. 기술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화상교육을 한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최신식 아이패드를 도구로 삼고, 누군가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학습하게 된다. 공간에서 학습하는 이들에게는 '부모소득'이 '자리 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는 '부모소득'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일부 학생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업에 참관할 있고 적절한 학습장비가 없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또한 주변 환경적 영향도 크다. 집 안 사정, 개인적인 문제 또한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흔히 '사교육 시장'은 '교육'보다는 '보육'의 의미가 훨씬 크다. 부모가 6시에 퇴근하는 사회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이 1시인 것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축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는 '뺑뺑이'라는 용어를 익숙히 알고 있다. 자녀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때로는 '시간'이다.

그러나 온라인 교육은 꾸준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앞서 말한 '대안'이다. 모두가 같은 교육 여건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히 언택트 교육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다. 교육의 목적이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를 직, 간접적으로 겪고 그것을 맥락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간접 경험을 통해 미리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인성과 관계 형성을 배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학습은 '국영수'를 대단한 온라인 속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로 '명문대 합격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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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수학 1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생강 시리즈
김민재 외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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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선수임에도 수영장에서 훈련했다. 수영장 가운데서 제자리 달리기를 하거나 명상과 같은 정신 수련도 했다. 뭍에서 공을 차고 운동장을 달려야하는 선수가 '물'에서 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전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기초체력을 위해 해야하는 훈련은 다양하다. 그 향상의 좋은 예가 수영이다. 물속에 들어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 행위도 축구 실력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다만 수영과 명상은 많은 스포츠 선수가 즐겨하는 트레이닝 방식이다. 실전과 연관이 없음에도 이것들은 체력, 정신력, 지구력, 근력, 유연성을 개선한다. 자칫 의미 없는 일 처럼 느껴지는 이 훈련이 일류를 만드는 버팀목이 됐을지 모른다. 박찬호 선수는 일상 생활 중 '계단'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계단 밟고 오르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졌다. 고로 항상 실생활에서 계단을 이용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야구선수의 구속력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고 묻느다면 그 또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범인이 범접하지 못할 등급에 도달한 운동선수들은 '기초체력'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훈련법이 수학과 무슨 관련이 있나.이유는 이렇다. 다수가 '수학'이라는 학문에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다. 단순히 '덧셈과 뺄셈'만 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안되기에 전혀 필요 없다는 논리다. 컴퓨터와 계산기가 모두 해결해 주는 시대 '인간'의 수학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학문이라며 '수학'을 경이시 한다. 수학은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목적일 뿐이고 중요성과 이유도 모두 그것이 전부라는 이유다. 그러나 진정 수학이 필요한 이유는 직접 활용도를 높이기 때문이 아니다. '호날두' 선수가 수영실력을 위해 수영장에서 훈련을 한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컴퓨터가 대부분의 계산을 처리하고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수학을 활용하지 않음에도 수학을 공부는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문제 해결 능력. 수학은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문제 해결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이 능력은 일상생활과 직업에서도 유용하다. 논리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갖는다. 쉽게 말해 논리는 일관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가령 기상캐스터는 날씨가 궁금한 이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고기압'과 '저기압' 등을 주절주절 말한다. 예측할 날씨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어떤 논리의 근거도 없이 '내일은 비가 옵니다. 제 느낌은 맞습니다. 제 느낌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신뢰할 사람은 없다. 수학은 문제와 정답 사이에 무수한 등호가 존재하고 논리적으로 앞과 뒤가 다르지 않다는 여러 단계를 거쳐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결국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논리는 다수에게 설득력을 얻는 방법이다. 과거에는'사람'을 신뢰했다. '제사장'이라던지, 왕, 귀족의 말이 권력이었다. 다만 현대 사회로 이어지면서 '권력'은 다수의 합의에의해 얻어진다. 고로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력이 곧 권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식이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그 논리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정확한 풀이식은 오류를 줄여주고 생각을 조직화하게 한다. 현대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은 이렇다. 우리는 '이력서'로 사람을 판단하고, 제안서로 사업성을 판단하며, 계약서로 서로의 약속을 보장 받는다.

둘째는 비판적 사고다. 수학은 오류와 모순을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도록 한다. 또한 과정은 사실과 가능성을 구분케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의심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추상적 개념과 이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것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여 다룰 수 있도록 한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화하고 핵심 개념을 이해하도록 한다. '복소수'라는 개념을 보면 흥미롭다. 복소수는 '파동함수, 특히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종종 복소수로 표현되는데, 입자의 위치나 운동상태 등을 확률적으로 기술하도록 돕는다. 복소수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개념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만 이것은 양자역학의 간섭과 중첩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이다. 서로 다른 파동함수들이 중첩되어 간섭현상을 일으킬 때, 복수수의 덧셈과 곱셈 규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명료'하면서 현상은 모호한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양자역학을 '글'로 보게된다면 그것을 기술하는 현상은 직관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문자로 이해하기에, 이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철학'의 개념에 속할 것 처럼 보여진다. 양자역학이 '철학'의 개념이었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직관적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데는 힘들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수학적으로 이런 모호한 현상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슈뢰딩거 방정식이나 행렬역학, 힐베르트 공간 등과 같은 수학 개념과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설명된다. 이는 현상을 이해하는데는 애를 먹지만 실험결과와 수학적 논리는 매우 잘 일치하며 아주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고로 수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같은 현상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간단 명료하게 정의하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고로 우리는 양자역학이라는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해석하여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 온 이것은 비로소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됐다. 이 절차로 우리는 반도체와 트랜지스터를 이용하고, 양자역학의 자극된 방출을 활용하여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MRI 또한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이다. 이처럼 우리 실생활에서 그것을 기술로서 사용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단계는 '수학'이다. 수학은 복잡한 현상을 '숫자'라는 명료하고 객관적인 도구로 쉽고 간단하게 다루게 돕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양자역학 만큼이나 명료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다루게 하는데, 수학을 통한 기초체력을 연습하는 것이 어째서 중요하지 않은가.

* 본 도서는 '만화'로 이뤄져 있다. 다양한 개념을 쉽고 재밌게 이해 할 수 있게 구성 되어 있기에, 다가 올 수험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하길 권장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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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20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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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란 본래 예측하기 어렵다. 불가피한 사건이다. 다만 이것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일탈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다. 잦은 지진이나 화산 활동에도 환경을 발판 삼아, 더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도 많다.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살면서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다면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에 가깝다.

다리가 붕괴되거나 백화점이 무너지거나 배가 가라앉는 다양한 재난은 '사회 시스템'의 어딘가에 오류가 있음을 말한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현명하지만, '소 잃은 후'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일단 잃어버린 것은 덮어두고 '덧됨'을 계속 해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이재민, 수재민 돕기' 캠페인을 벌였다. 집과 시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TV에 항상 나왔다. ARS 전화로 천 원 씩 기부를 하는 일이 거의 '문화'처럼 되어 갔다. TV에는 방에 들어찬 물을 바구니로 퍼내는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었다며 통곡하곤 했다. 그것이 일반적이라 점차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다음해에도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TV를 보면서 ARS로 전화기부를 하는 이상한 문화 말이다. 국가 역할의 부재가 시스템이 되면, 흐르는 물고는 그것을 향해 흐른다. 그 물길은 더 깊어지고 빨라진다. 그 다음 해에도 그럴 것이 뻔했다. 그것은 내성이 되어 다음해가 되을 때, 그것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특별히 이상지 않았다. 비가오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피해를 보지 않은 이들은 돕는 독특한 시스템. 그러던 것이 어느 새 그것이 사라졌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재난 관리 및 대응 체계가 개선된 결과일지 모른다. 결국 시스템이 갖춰지자, 사회는 더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인 이들을 얻었다. 국가는 기반 시설과 공공 인프라를 개선했다. 댐이나 제방, 하수도 시스템 건설을 개량했다. 건축법과 도시계획 기준을 새로이 도입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예전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그렇다. 국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직접 물을 퍼다가 날라 줄 것이 아니라, 물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줄기를 흐르는 것은 '물'의 역할이다. 시스템 구축에서 국가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하다. 국가는 누가 통제를 할 것인지, 무엇이 우선인지 규율과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해결책을 만들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증 외상 센터라는 곳은 특별하다. 이는 대규모 재난이나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은 다른 어떤 것보다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취합하여 하나의 일관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말해, 중증 외상센터는 다양한 전문 분야 의료팀이 협렵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그것은 사회가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축소판을 닮았다. 위기의 상황에 하나의 해결책을 위해 신속, 정확하게 의사전달하고 목적달성을 하는 시스템말이다. 각 상황은 환자 상태와 의료장비 시설의 복잡성 때문에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 해결 능력은 시스템 발전의 상징이다. 중증 외상 센터는 다학제적 협력의 본보기다. 외과, 내과, 신경과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협업하여 환자 치료에 임한다. 복잡한 의료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에 사람을 다루는 일을 포함한다. 업무 중, 가장 강도 높은 업무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 '인체'를 '의료 행위'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말한다. 어떤 업종에서도 가장 고단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문제 해결 능력은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일상의 도전을 대처하는 가벼운 일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의 일, 국가에서 일에서 모두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장은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쉽게 말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볼수록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개인에게 대응해보면, '자기성찰'을 닮았다. 우리 사회에는 과연 시스템에 애한 '성찰'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대규모 재난 등에서 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기관이다. 쉽게 말해, 앞서 말한 사건 사고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마치 미래의 안전에 대해 '확률적 배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확률적으로 그것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판단하기에, 임시 방면으로 '덧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해결 능력'이 아직은 꽤 허술하다. 이것은 '중증외상센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미래를 대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간결하고 쉬운 문체다. 이는 교수가 '김훈 작가'의 필체를 좋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단순히 문체 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정과 결합한 의료인으로써의 소명에 대한 기술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이 우리 삶을 닮았다. 사람을 대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렵고 복잡한 속내도 살펴보자면 어떤 직업이던 사람사는 모양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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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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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문장은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첫 문장의 조사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가 '꽃이 피었다'로 바꿨다. 그의 수필 '바다의 기별'에서는 이 조사 하나에 얼마나 심히 고민했는지 흔적이 있다. 그 결과는 '담배 한 갑을 태운 것'으로 설명됐다. 단순한 조사 하나, 단어 하나지만 그것이 갖는 어감은 아주 다르다. 문장을 여는 첫 문장에 그는 왜 그런 고민을 했을까? 김훈 작가는 현대 사회의 언어 사용에 대해 우려하곤 했다. 그는 사회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마치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는 언어의 사용이 언어의 본질을 바꾸었다고 했다. 언어는 곧 소통의 도구이지만, 앞선 언어의 오사용으로 언어는 단절의 장벽을 만드는 무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이처럼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했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라는 두 문장은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꽃이 피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서술한 문장이다. 곷이 피었다는 사건 자체에 중점을 둔다. 다만 '꽃이 피었다'는 꽃을 특정하거나 강조하며, 다른 상황이나 맥락, 대조되는 요소들과의 관계속에서 꽃이 피었다는 것을 말한다. 고로 한국어에 있는 '조사'인 '은'이나 '는'은 종종 비교나 대조 혹은 특정한 사실에 대한 강조를 하는 반면, '이'나 '가' 조사는 사건이나 상태의 간단한 서술에 쓰인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문장이 전달하려는 뉘앙스나 맥락을 크게 바꾼다. 김훈 작가가 '꽃이 피었다'라고 쓴 이유는 그 문장이 담담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또한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또한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1인으로 한때나마 그의 문체를 따라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그의 글은 덧붙이기보다 덜어내기를 중요시 한다. 불필요한 수식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접속사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의 글이 동강동강난 짧은 문장 여럿의 나열처럼 보인다. 군더더기가 없다. 덜어진 접속사는 문맥의 흐름으로 '독자'의 문해력에 맡긴다. 그의 작업을 보면 '문학'이 단순히 글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다듬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은 쓰는 것보다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예술품을 빗는 '장인'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글을 대하는 그 태도를 보면 경이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을 작품화해 내놓는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다. 음악가나 소설가, 화가 등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다. 상품화한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되고, 팬층이 생겨난다는 것은 꽤 고귀한 일이다. 거기에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들어간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어도 이들은 결코 '멋진 문장'을 만들지라도 철학을 담을 수는 없다. 때로 인공지능은 문법적 정확성, 문체의 다양성, 심지어 창의적인 표현까지 흉내낼 수 있다. 다만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철학'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글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 생각이 깃든 철학이 결여되어 있다. '프랑츠 카프카'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프랑크 카프카'는 20세기 초의 체코 출신 유대인 작가다. 그는 고뇌와 내면적 갈등을 그의 작품에 깊게 반영했는데, '변신'이라는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괴상한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따지고 보면 카프카 자신의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카프카의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적 갈등이 그 작품에 독특한 깊이와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생을 통해서 그 문학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설령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글인지 보다, 누가 쓴 글인지를 먼저 살핀다. 고로 아무리 훌륭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삶'을 살아 갈 수는 없고, 단순한 알고리즘에 의한 데이터 조합에 '매력을 느낄 독자'도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AI가 이 모든 직업을 위협하는 시대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작가다.

괴소소설을 보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이 책이 단편 소설이라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 있다. 다만 이 글을 쓴 이가 '히가시고 게이고'라면 읽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게 된다. 지금껏 그가 써왔던 이야기와 문체, 풀어가는 방식과 함께 비교하며 읽다보니 소설이 담고 있는 재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이 소설은 짧은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짧고 쉽다. 간단히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어떤 부담감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다.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단편이라면 취미로 써둬도 좋겠다.'

다작 중 명작이 나온다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작인 것 같다. 긴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단편을 써왔을까. 모든 연습은 작품이 되고, 모든 작품은 연습이 되어, 결과와 성장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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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데일리 티칭 -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크릿 습관 365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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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자는데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된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조금 쌀쌀하다 싶어 온도를 올렸다. 발끝에서 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너무 놀라웠다. 분명 따뜻함 위에서 포근히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전기장판은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단물을 마시고 깨어나보니 해골물이었다던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날 꿀맛 같은 잠을 잤고 그것은 거짓이라도 나에게 진실을 주었다. 완벽한 거짓은 간혹 진실을 닮았다. 다시 생각해본다면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별것 없다. 내가 그날 '전원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진실이 되는 것일까. 세상에는 분명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지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이지 않다. 설령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네모 모양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죽는 이상 그 진실에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진실이라는 것은 마냥 알아야만 하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진실과 거짓은 구별할 필요도 사라진다.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진실이라면 나에게 철저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을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욱 나아가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진실이라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의 가치는 진실을 상회하고 남는다.

우리의 작은 지성은 '완전한 진실'에 대해 알기 쉽지 않다. 완전한 진실은 객관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은 남쪽에 있기에 남산이지만, 제주에서 바라보기에 그것은 '북산'에 가깝다. 진실과 객관성이란 결국 주관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는 유연한 것이며 고로 모든 객관화 필연적으로 오류를 낳는다. 고로 가장 완벽한 객관화는 자신을 기점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진실보다 상회한다면 거짓이 낫다. 고로 '나'는 인생 여정 중 가장 완벽한 장소와 완벽한 시간에 있다. 거기에 그 어떤 객관성이란 없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럴뿐이다. 지금은 인생 최고의 전성기이며, 다시 내일, '지금'을 인지하는 순간 그 전성기는 그 순간으로 바뀐다. 모든 것은 믿기에 따름이다. 에너지라는 것은 언제든 모양을 바꾸되 총량은 지킨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가 모양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수력발전에서 만든 에너지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화력 발전소로 만든 에너지를 통해 불을 끌수도 있다. 열량은 보존하되 모양만 바뀐다. 고로 에너지의 주체는 '원인인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밑으로 크게 움직이건, 위로 크게 움직이건 움직임 자체가 에너지다. 고로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얻는 이들보다 양쪽으로 얻는 효율이 좋다.

예전 한 행동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행동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이들에게 빈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다만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은 모두 공을 가지고 빈통 앞에 섰다. 얼마 뒤에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바로 공을 빈통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아무 지시나 요구가 없어도 당연스럽게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봐서 우리는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빈통에 던진 공이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저 빈 시간과 빈 공간을 부여받은 이들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여 하는 일종의 '놀이'와 가깝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빈 공간에 빈 시간을 부여받고 빈통 앞에 테니스공을 들고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때 우리가 던진 공은 통에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이 놀이에서 규칙이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없다. 그것은 다만 자기가 설정한 기준일 뿐이며 그 기준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고로 모든 것이 '공'하다고 했다. 도가에서는 모든 것이 '무'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고 모두 비어있는 것 투성이에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활용하는 이의 능동성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통속에 들어간 것을 성공으로 정의해도 그만이고, 통속에 들어간 것을 실패라고 정의해도 그만이다.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100년 전 캐나다의 스포츠 강사가 주변에 있는 복숭아 농장에서 가져 온 복숭아 바구니에 축구공을 던져 놓는 경기를 개발했다. 바구니를 사다리에 고정하여 높게 세웠고, 공이 들어 갈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번거러움을 없애기 위해 바구니 아랫부분에 구멍을 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의 시초다.

100년 전까지는 그저 복숭아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 행동에 불과한 일이 거기에 의미을 부여하는 순간, '블록버스터 스포츠'로 탈바꿈한다. 마이클 조던의 능력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되고,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주관적인 의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나름의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약속'이나 '합의' 또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고로 그것 또한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탑일 뿐이다. 누군가는 빙상 위에 돌을 밀어 넣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컬링'이라고 부르고, 그물 속으로 공을 차 넣는 행위에 누군가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축구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주에 원래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인지 해야지만 그것은 의미를 겨우 부여 받는다. 발과 다리를 이용해 공을 네트 넘어로 차 넣는 게임인 '세팍 타크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다. 모든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렇게 될 뿐이고, 저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저렇게 될 뿐이다. 그것을 부여하는 이는 누구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그 흥미롭고 창조적인 놀이가 바로 '인생'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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