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멘탈이지만 절대 깨지지 않아 -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주 흔들리는 사람들을 잡아줄 마음 강화 습관
기무라 코노미 지음, 오정화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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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훈련을 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한 군인이 훈련병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훈련 혹은 단련과는 별개로 폭언과 인격모독이라 할 수 있는 고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에는 '멘탈 강화 훈련'이라는 이상한 명분이 붙었다. 단언컨데, 멘탈은 그렇게 훈련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폭언과 인격모독을 견뎌내는 훈련을 하면 그 감각이 무뎌져 더 단단해진다는 논리다. 폭언과 인격모독이 멘탈을 강화하는 훈련법이라면 '붓다'는 '명상', '참선'에 대한 '정신수양'이 아니라 '폭언과 인격모독'에 해당되는 수양법을 전달했어야 한다. 멘탈은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수용력 내에서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인기 만화 '피너츠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누피는 이렇게 말한다.

"주어진 카드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어."

인생은 공평한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 불공평하다. 카드 게임과 같다. 합의한 규칙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로 승리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좋지 않은 카드를 이용하게 게임을 리드하고, 누군가는 꽤 괜찮은 카드를 들고 있으며 '패배'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나 똑같은 카드를 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 외모, 지능, 성별' 등 우리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것을 기본값으로 부여 받지만, 주어진 카드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

'멘탈' 역시 모두가 같지 않다. 누구는 강한 멘탈을 갖고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신장의 크기와 같이 크거나 작다. 네이트 로빈슨은 175cm의 비교적 작은 키를 가진 농구선수다. 그는 평균 신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를 갖고 있었지만 무려 세번이나 슬램덩크 챔피언이 될 정도의 탄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가 '탄력'이 아니라 '신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정신적 스트레스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모성이다. 사용하고나면 소모되어 버린다. 그것을 강화한다고 자그마한 상처를 꾸준히 내다보면 정신은 무너져 버린다. 고로 상대의 '멘탈 강화'를 명분으로 '폭언'과 '직설'을 날리는 사람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삶에서 성장을 위해, '상처'와 '실패', '좌절'은 필수적이다. 다만 그것을 꾸준하게 얻는 것이 '성장'은 아니다. 그것들이 왔을 때, 어떻게 그것들을 이겨 낼 수 있는지 휴식과 성찰, 명상 등의 활동일 필수적이다. '견뎌내기 위해' 더 작은 상처를 꾸준하게 내는 것은 훈련이 아니라, 파멸 시키고자 하는 열정일 뿐이다. 자신의 수용력만큼 수용하고 충전하여 다시 그것을 수용하길 반복하며 유릿잔 같은 약한 멘탈로 상처와 실패, 좌절을 이겨내는 것이다. 붓다는 오랜기간 고행을 했지만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는 와중 고행을 멈추었다. 그가 고행을 멈춘 이유는 고행 속에서는 마음이 피폐해질 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고행과 쾌락의 중간 지점인 중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중도의 길은 지나친 고행이나 지나친 안락에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삶의 방식을 말한다. 이를 통해 마음과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정신적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수 천 년 전, 한 수행자가 수 년간 고행한 끝에 자신의 수행법이 틀렸다고 여긴 이후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수행법으로 정신력을 강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때로 누군가의 '멘탈'을 부숴 뜨리고 크게는 작게는 기분저하, 우울감으로, 크게는 우울증과 자살로 키울 수 있다. 결국 유리멘탈을 받아든 것은 감내 해야 할 몫이고 이미 그것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그 유리멘탈로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을지 알아봐야 하다.

정신력은 '배터리'처럼 일정량의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용할수록 줄어들고 이후 재충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자마다 수용력의 차이가 있듯, 누군가는 한 번의 충전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누군가는 여러 번 충전해 주어야 한다. 재충전의 과정만 제대로 가진다면 전자기기는 큰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만약 빠르게 배터리를 소모하고 오랫동안 그 상태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방전된다. 방전된 전자기기는 아무리 충전해도 충전되지 않는다. 우리의 멘탈도 그렇다.

한 심리학 교수는 물이 든 유리잔을 비유로 스트레스 관리를 설명했다. 유리잔을 들고 있을 때, 그 잔의 실제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1분을 들고 있을 때와 하루종일 들고 있을 때, 그 우리가 느끼는 유리잔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아무리 가벼운 잔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계속 들고 있다면 그 고통은 심각한 상황이 된다. 인생의 스트레스도 그렇다. 앞선 스트레스의 무게와 지금의 무게를 고스란히 얹어 들고 있다면 잔을 내려 놓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멘탈 관리라고 하는 것은 신체 성장과 성장 방식이 다르다. 근섬유를 찢고 그 상처 사이에 단백질을 채워 넣으며 성장하는 근육과는 다르게 '멘탈'은 이미 각자만의 수용력 내에서 그것의 소모력을 관리하며 사용해야 한다. 고로 멘탈 관리는 '상처, 폭언, 인신공격' 등에 꾸준하고 잦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명상과 감사함을 생활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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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OUT 유럽역사문명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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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전게임인 '테트리스' 끝판을 깬 13세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가만 돌이켜보면, 나도 그 나이 정도에 '테트리스'를 좋아했다. 테트리스는 1985년 소련의 프로그래머인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만든 퍼즐 게임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왜 '테트리스'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가만히 보면 테트리스의 불록은 모두 4개의 작은 유닛으로 구성된다. 작은 유닛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정사각형 모양, 긴 모양, 기억 모양 등이 된다. '테트리스'의 이름이 '테트리스'인 이유는 이를 구성하는 작은 유닛 4개 때문이다. 그리스어 접두사 'Tetra'는 '4개'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체가 한 바퀴 돌면, 그것을 '주기' 혹은 '바퀴'라고 한다. 영어로는 Cycle이다. 이런 바퀴가 두 개 있으면 Bicycle 이다. 즉, 자전거다. 만약 세발 자전가가 무어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Tricycle이다. 그렇다면 각도, 즉 Angle이 3개면 무엇일까. 바로 트라이앵글, 삼각형이 된다.

다시 말하면, 영어에서 두 개는 '바이', 세 개는 '트라이', 네 개는 '테트라'다. 영어를 공부할 때, 어원으로 공부를 하면 이처럼 파생되는 다양한 말의 뿌리를 알아 낼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그리스어 몇가지를 더 살펴보자.

하나는 모노

둘은 바이

셋은 트라이

넷은 테트라

다섯은 펜타

여섯은 헥사

일곱은 헵타

여덟은 옥타

아홉은 노나

열은 데카

고로 레일이 하나 밖에 없는 기차은 모노레일, 혼자 하는 말은 모놀로그, 독점하는 것을 모노폴리, 독재를 모노크라시라고 한다.

2개 국어를 하는 것은 바이링궐이라고 하고 1년에 두번 발생하는 일을 바이애뉴얼이라 한다. 미국 육군본부는 오각형 모양이라 펜타곤이라 부르고 발이 여덟개 있는 수중 동물은 옥토퍼스다. 10년을 디케이드라고 하고 열종목으로 구성된 운동 경기는 데카슬론이다.

영어에 대해 말했다. 다만 이들은 그리스어 접두사다. 영어를 공부하는데 왜 그리스어를 알아야 할까. 안타깝지만,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어만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도 섞여 있고, 라틴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심지어 아랍어도 섞여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에게 한 대학생이 물었다. 번역 기술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언어학습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이에 마윈은 답했다.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다르게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이다. 실제로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단순히 '번역기술'이 아니라, 그 문화가 담고 있는 '역사'와 '사상'도 알 수 있다. 또한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로 쓰여진 수많은 글을 읽어야 한다. 그것은 배경지식과 이해력, 문해력을 키우고 단순한 의사소통과 학습의 의미를 넘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동아시아 삼국에 비해 유럽은 문화와 역사의 공통분모가 많다. 비교적 넓은 바다와 강, 산맥을 가진 동양과 다르게, 유럽은 과거부터 민족 간의 이동이 활발했다. 와중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섞이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 실제로 로마제국 당시에는 로마가 대부분의 유럽을 지배했으며,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가 유럽 대부분을 정복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의 문화는 다양하게 섞여 있다. 이후 유럽은 '제국주의'로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다. 현대 사회는 생활양식이 대부분 유럽에서 기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종교와 무관하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 스스로 아시아에 살지만 유럽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체계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간혹 우리의 전통 문화와 역사보다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서 더큰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하멜표류기'를 보면 외국인의 눈으로 본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과거 조선인'의 모습을 더 이국적으로 보게 된다. 교육, 예술, 문학, 정치적 이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럽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와 감정의 연결이 더 깊어진다. '유럽의 문화'와 '역사'는 어떤 면에서 보건데, 지금의 우리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지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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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잘되는 집들의 비밀 - 부와 운을 부르는 공간과 삶에 관한 이야기
정희숙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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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왜 정리정돈을 잘하는가. 그들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이유는 '버릇' 때문이다. 그들은 '정리정돈'을 잘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왜 그들은 그런 버릇이 생겼는가. 대부분의 '부자'는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업'을 하거나 사람이나 사물을 관리하는 '관리업'을 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관리'다. 그들은 '관리'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정리정돈'이다. 필요없는 물건을 쌓아 두는 것은 단순히 '공간활용'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쌓여 있는 물건은 '관리' 받지 못한다. 관리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다른 물건'을 가려 관리 받지 못하게 만든다. 즉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사용하는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손톱깎이를 둔 곳을 잊어 버린다. 한참을 찾다가 이내 다시 구매한다. 고로 집안에는 손톱깎이가 두 개가 된다. 물론 그 가치는 크지 않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릇'이 그렇다는 의미다. 이러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입지 않는 옷'을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를 쌓아둔다. 그것이 버릇이 된다. 너무나 많은 아이템에 둘러 쌓인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즉, 지저분한 아이템에 둘러 쌓여, 자신이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필요한 물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찾아 낼 수 없다. 즉, 물건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진다. 다시말해 아무리 하찮은 지출도 모두 2배가 된다. 공간마저 두 배로 사용한다. 요즘과 같이 집값이 높은 시대에, 잡동사니에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꽤 비싼 공간의 값을 지불하여 쓰레기에 내어주는 꼴이다. 부자들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이유는 그들이 '재고관리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사업은 '재고관리'가 생명이다.

'돈'은 에테르를 닮았다.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구매 순간 '형태'로 존재한다. 무슨 말인가. 10만원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연필이 될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 그 가능성은 '물건'로 굳어져 버린다.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 즉시 '입자'가 되는 '양자역학'을 닮았다. 그렇다. 돈은 가능성이다. 고로 '형태화'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다. 사과를 1만원에 사서 2만원에 판매한다고 해보자. 만약 100개의 사과를 구매할 여력이 되더라도 100개의 사과를 구매하면 안된다. 사과 100개를 구매하는 순간, 그것은 '재고'가 된다. 다시말해, 물건이 된 가능성은 팔리기 전까지 '악성재고'일 뿐이다. 이는 '유동성'에 악이 된다. 돈은 굴러야 커진다. 눈덩이를 닮았다. 구르면 구를수록 덩치를 키운다. 그러나 돈이 물건으로 굳어져 버리면 구르지 못한다. 구르지 못하는 눈덩이는 어떤가. 서서히 녹아버린다. 재고를 쌓는 것은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며 쌓여진 재고는 점차 감가상각에 의해 녹아간다. 소매업종에서 일한 적 있다. 사장은 말했다.

"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 같나요?"

그때 카운터라고 답했다. 카운터는 매장의 얼굴이고 결제을 하는 곳이다.라고 답했다. 사장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진열하는 쪽인가요?"

상품진열은 방법에 따라 판매율은 달라진다. 그러나 사장은 그때도 아니라고 답했다. 사장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창고 입니다."

창고가 가장 중요하다. 재고가 쌓이면 사업은 반드시 망한다. 팔리지 않는 악성재고는 창고에 쌓여 다른 물건을 가린다. 그러면 아무리 히트상품이라 하더라도 빛을 보기 전에 망하게 되어 있다. 창고를 깨끗하게 비우고 잘 관리해야 돈이 돈다. 결국 미니멀리즘은 '소유욕'을 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관리'에 대한 이야기다. 재고관리는 사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다. 최대한 재고를 없애야 한다. 가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물건을 재고처럼 쌓아 놓는다면 반드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느려진다.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부의 성공은 보수적인 접근 뒤에 이뤄진다. 모든 사업은 '관리'라는 목적을 만난다. 맥도날드의 CEO는 버거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CEO는 커피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업종이던 그 상위에는 언제나 '관리'라는 목적을 만난다. 고로 커피장사, 버거장사, 옷장사, 스마트폰 장사 할 것 없이, 모든 일의 하부에는 각자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만 그 상위로 올라 갈수록 재고관리와 사람관리 능력만 남게 된다. 이 가장 상위에는 고로 '철학'이 남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이런 방식으로 성장한 사례다. 고로 '아이템'으로 사업하느냐는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재고관리'에 실패하면 반드시 망한다. 부자들이 정리정돈에 뛰어난 이유는 깔끔한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에 베어 있는 '관리' 습관 때문이다. 그들은 쓰지 않는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고 들인다고 하더라도 얼마후 처분해 버린다. 그들은 가치 있는 물건만 집으로 들인다. 가치있는 물건을 집으로 들이면 그것들은 관리 받는다. 이들에게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현대 중공업은 유조선을 만들어 팔며 성장했다. 그러다 오일쇼크가 터지며 만들어 놓은 유조선이 놀게 되는 경험을 한다. 말그대로 '악성재고'가 된 것이다. 현대는 유조선을 개조하여 '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물건을 싣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대상사의 시초다.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오일뱅크 현대 그룹은 모두 '재고처리'를 효과적으로 하는 과정에 형성된 결과물이다.

삼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은 '쌀'을 팔던 회사다. 그러다 쌀이 재고로 쌓이는 일을 없애기 위해, 직접 정미소를 차렸다. 또한 이 정미소까지 운송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운송업'을 시작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재고처리'를 최우선으로 한다.

예전 해외에서 꽤 성공한 사업가를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당구장을 운영했지만, 당구장 손님들이 매번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는 것을 보고 같은 건물에 중국집도 차렸다. 이어 당구장과 중국집에 정기적으로 '청소업체'를 부르던 일을 처리하고자, '청소업'까지 운영했다. 한때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지탄받던 비즈니스 형태는 사실상 매우 효과적인 '관리능력'인 셈이다. 실제로 이들은 지각하는 법이 없고 어지르는 법이 없다. 시간관리, 자기관리, 재고관리 등 '관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왜 정리정돈을 잘하는가. 그것은 정리정돈이 결국은 '관리'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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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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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장점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겪어보는 것이다. 2006년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소설을 읽었다. 책은 인식의 변화를 줬다. 주인공은 '살안자'의 동생이다.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입장이다. 게다가 '살인'이라면 어떤 변명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가 아니던가. 다만, 선과 악은 그렇게 칼로 무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악마'라기 보다 매우 인간적이었다. 느낀바는 이렇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 입장을 알 수 없다.'

사람은 보는 만큼 성장한다. 조선 시대의 누군가가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있더라도 '화성이주'를 생각해 낼 수는 없다. 결코 알지 못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확장할 뿐이다. 고로 사람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매우 각별한 경험이다.

2022년 한해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585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585건의 사건이다. 이는 '피해자'뿐만아니라 '가해자'도 만들어 낸다. 즉, 한해 1000명이 넘는 살인 피해자와 살인 가해자가 만들어진다. 성폭력은 3만건, 그러니까, 6만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매녀 만들어진다. 절도는 27만 건이다. 이또한 50만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들어진다. 고로 그 만큼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1922년 소련 최고 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 백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

숫자는 비극의 크기를 함시하지만 그것은 깊이를 말하진 못한다.이 비극에는 감정이라는 깊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선을 행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에도 여지는 존재한다. 비록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지라도 각자 자신만의 이유를 가진다. 고로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그렇다. 최초에는 사건을 다룬다. 다음에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이후부터 명확한 '선과 악'이 등장한다. 명확하게 '나쁜 사람'과 명확하게 '좋은 사람'이 나눠 등장한다. 다만, 진행하면서 작가는 각각의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모든 인물의 과거나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그 인물이 행동한 이유의 인과관계가 펼쳐 보여진다. 비로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한다. 물론 여기서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는 것은 '상황상'을 말한다. 모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선과 악은 존재한다. 다만 이것은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개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선한 인물도 수없는 살상을 해치는 악인이다. 농장주는 어떤 면에서 '선하고 근면한 인물'로 보여지지만, '환경' 혹은 '자연'의 측면에서 사악한 인물로 보여진다.

고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처럼 다면적인 것이 인간이다. 고로 현상이나 상황을 그려내는 것보다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두 그럴싸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이를 알려준다. '악의 평범성'은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공무원일 뿐이다. 다만 그 결과는 '악'이 된다. 고로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한나 아렌트는 주장했다. 이는 악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 제시된 개념이지만 더 깊게 따지고 보자면, 본래 '악'은 외부적으로만 보여질 뿐이다.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민의 29.8%가 전과자다. 다시 말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전과자다. 현재 대한민국 교도소 수감자수는 5만명이다. 다시말해, 지금 이순간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이다. '전과자'를 나쁜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대한민국에 선한 인물은 셋 중 둘 뿐이다. 수감자를 1000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1000명 중 한명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범법 혹은 범죄와 '악'은 같지 않다.

모든 '악'을 '악'으로 정의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악'과 '선'이 공존한다. 우리는 내면을 보지 못하기에 그의 겉모습으로 '악'과 '선'을 구분한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그 내면을 보지 못한다. 그저 가늠하거나 넘겨 짚을 뿐이다. 각자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이느 공간에서 만나게 된 단면끼리 그 역사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를 보더라도 그럴 것이다. 예전 미국의 TV광고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쪽은 우울해 하는 인물이 있고, 한쪽은 스포츠를 관람하고 소리를 지르며 평범한 삶을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대조되어 있었다. 그 광고는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한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스포츠를 관람하고 소리를 지르며 평범한 삶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삶을 떠났다는 이야기었다. 그렇다. 내면은 모른다. 고로 소설의 가장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누군가의 복잡한 내면을 아주 잠시라도 훔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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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수학 3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생강 시리즈
김민재 외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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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우리의 앞에 마법의 상자가 하나 있다. 이 상자는 꽤 특혈한 상자인데, 우리가 이 상자 안에 무언가를 넣으면 그 상자는 그것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버린다. 예를들어 상자 안에 사과를 넣으면, 상자는 그것을 바나나로 바꿔 버린다. 그것에 규칙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마법의 상자다. 다만 그것에 규칙이 주어지면 그것은 '함수'라는 수학 용어가 된다.

수학에서 함수는 이 상자와 같다. 우리가 '입력'으로 무언가를 넣으면, 상자는 그것을 '출력'으로 뱉는다. 결국 그 상자는 출력에 따른 결과값을 도출해주는 장치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것을 인연과보(因緣果報)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음에도 결과값이 출력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히 '우주의 규칙'이라 할 수도 있다.

다시 함수로 돌아가보자. 어떤 숫자를 입력하는 '상자'가 있다. 이 상자에 숫자 2를 넣으면 상자는 곧 4를 출력한다. 다시 4를 넣으면 이 숫자는 다시 8을 출력한다. 여기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한다. 넣은 값에 2배를 출력한다는 것이다. 함수는 규칙을 따른다. 그렇다. 함수는 항상 일정한 규칙이나 방법에 따라 작동한다. 그저 마법과 같이 어떤 일이 그저 출력되는 것은 없다. 어느 순간에는 3이 출력되고 어느 순간에는 -2가 출력되고, 다시 어떤 순간에는 20억이 출력되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상자에 몇 번의 값을 입력해보고 대략적인 함수의 규칙을 알아차린다. 함수에서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을 알아내고 입력값에 어떤 출력값이 나오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무한한 가능성의 함수로 시작한다.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환경, 가치관, 교육 이라는 초기 조건이 설정된다. 이는 우리 인생 함수를 형성하는 기본 매개 변수가 된다. 인생에서 변수는 변화를 의미한다. 경험이나 관계 직업, 건강 등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리고 각각의 흔적은 하나의 점이 되어 좌표평면에 그려진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곡선을 만들어낸다. 반면, 상수도 존재한다. 우리의 핵심 가치와 신념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일관성이다. 이것은 우리 인생 함수에 균형을 잡아주고 방향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함수. 이것은 왜 중요한가. 어떤 현상이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분명 존재한다. 가령 물이 끓는다던지, 물이 얼어버린다던지, 그것은 분명 어떤 변화지점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임계점'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는 막연한 자연현상이었지만, 그것의 정확한 수치를 숫자로 알고 있는 순간부터 그것은 무한대로 이용가능한 재료로 변신한다. 원래 '무지'는 공포의 영역을 확산하고, '앎'은 안정의 영역을 확산한다. 이처럼 임계점을 구하는 하나의 과정을 '극한'이라고 한다.

극한에 대해 살펴보자. 마냥 1과 가까운 숫자에 대해 살펴보자. 누군가는 2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1과 가장 가까운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1.5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1과 가장 가까운 수는 아니다. 다시 누군가는 1.1을 말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1.01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1과 가까운 숫자를 무한대에 가깝게 생성한다고 해보자. 극한은 우리가 얼마나 1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숫자들은 함수에 넣었을 때, 그 출력값의 변화도 함께 일어난다. 그 값이 얼마나 특정값에 가까워지느냐.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극한'이다. 극한을 사용하면 우리는 변화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다리를 건설할 때, 그 다리가 견딜 수 있는 최대 하중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막연한 공포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는 꽤 큰 차이를 만든다. 극한은 숫자를 이용하여 그 값을 계산케 한다. 우리는 유통기한이 적혀 있지 않은 음식을 먹기에 망설여진다. 우리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불분명한 아지랑이일 때, 더 줄어드는 법이며 그것이 적당히 '보임'의 영역으로 존재할 때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결국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혼인일 수도 있고, 직업일 수도 있다. 사업상의 실패일 수도 있고, 출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ㄷ르은 우리 궤적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만든다. 이 전환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 값에 모호한 태도를 가지는 것과 규칙을 파악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함수처럼 인생은 끊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우리의 인생함수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앞서말한대로 '공포'의 영역이 된다. 다만 그 공포는 '일정부분 예측 가능한 공포'다. 무지한 것을 모르는 것과 무지한 것을 아는 것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고로 이런 불확실성은 불확실성을 아는 확실성으로 전환하므로 공포에 대한 공포를 상실케 할 수 있다. 고로 우리는 공포를 아는 영역으로 만들어 그 변화의 공포를 호기심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인생을 흥미진진하고 가치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복잡한 수학은 결국 얽혀 있는 여러가지의 문제 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모두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결국 '문제'를 많이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해결 능력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다. 삶도 공부도 모두 함수를 닮아, 어떤 값을 입력해야 특정값을 얻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떤 값도 도출하지 않으면, 어떤 값도 나오지 않는다. 고로 수학은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하는 학문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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