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국사 2 경제.사회편 - EBS 이희명 선생님 고등 생강 시리즈
이희명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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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쇄국정책'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조선의 근대화를 늦춘 인물로 묘사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당시 조선의 상황을 살피면 '쇄국정책'이 '그나마의 최선'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기반을 둔 사회다. 이는 조선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연관있다. 조선 후기의 조세 체계는 주로 '토지'를 기반으로 했다. 다시말해, 세수 확보를 위해 정부는 농업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했다. 반면 상공업의 발달은 자본과 자원의 분산을 의미하며 중앙 집권 통제력을 약화 시키는 요인으로 여겼다. 상공업이 발달하면 경제의 중심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다. 이는 새로운 사회 계층의 출현을 의미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상공업이 발달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발생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의 발달이 끝이 아니다. 이는 영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었다. 영국은 도시화가 가속화 됐고 중산층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688년에는 명예혁명을 통해 절대 왕정이 제한되고 의회 중심의 정치 체제로 전환됐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에는 경제적 변화가 우선한다. 프랑스도 상공업과 제조업이 발달하며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이 생겨난다.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에 맞는 정치적 권리를 주장한다. 이런 결과로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가 말하는 시대는 '조선왕조시대'다. '조선왕조'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은 '왕조'의 몰락이다. 상공업을 발달하고 서양과 무역을 하며 근대화를 이루는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과 결이 맞지 않는다. 결국 조선이 건국 당시부터 갖고 있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중앙집권체제'가 '상공업의 발달'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체제는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일관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또한 내부적으로 일관된 규범과 기준을 확립하도록 한다. 대규모 프로젝트와 안보 정책에 효율적이고 빠른 의사결정 능력과 표준화 시스템을 가질 수 있다. 실례로 봉건국가였던 네덜란드가 중앙집권국가였던 영국에게 패권을 넘겨 주었던 사례를 본다면 정치체제는 그 시대에 따라 장단점이 있을 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흥선대원군 시대의 조선은 상공업이 구조적으로 발달할 수 없는 '농업 기반 사회'였다. 이런 농업 기반 사회에서 외국과의 무역은 자칫 중대한 안보적 위기를 만들어낸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다시,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이 법칙에 따라 쌀 가격은 크게 요동친다. 농업 기반 사회인 조선의 '쌀 생산량'은 거의 정해져 있다. 게다가 19세기 조선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던 시기다. 분쟁이 줄고 중앙 권력의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세도정치'하면 정치적 불안감이 커졌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극소수의 권력이 국가를 운영되면 정치적으로는 안정화에 접어든다. 이런 이유에 조선 후기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즉,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농업생산량은 정해져 있는데 수요가 폭발하는 것이다. 이는 쌀값폭등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쌀은 지금의 쌀과는 다르다. 당시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쌀'이다. 노동력이나 군운용도 모두 쌀로 지급한다. 고로 '쌀값폭등'은 현대로 치자면, '오일쇼크'나 '하이퍼 인플레이션'와 비견할 수 있다. 조선의 주요 생산품이 '쌀'인 와중에 '외국'과 교역을 한다면 조선 내부의 '쌀'이 외부로 반출된다. 쌀이 반출되면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쌀값이 폭등한다. 쌀값이 폭등하면 국가 운영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친다.

일단 '군 운용비용이 증가'한다. 쌀값이 폭등하면 국가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증가한다.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하던 임금은 '쌀'이었다. 또한 군인들의 식량 조달에 대한 비용이 상승하고 전체 국방 예산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다. 또한 중앙 집권 국가의 큰 장점이던 대규모 사업 또한 불가능해진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 부담'도 대폭 높아진다. 또한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불안과 불만을 증가 시킨다. 상류 계급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도시 빈민이나 농민들의 반란이나 소요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사적으로 개항'을 막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생겨난다. 반면 조선과 교역상대는 어떤가. 교역 상대국은 '기계를 통한 엄청난 생산성'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상품들은 국내 산업을 위협한다. 즉,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그가 단순히 고지식한 '노인'이라서가 아니라, 당시 조선의 정치인으로써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실제로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맞는다.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의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본 외에도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수교를 시작한다. 실제로 교역이 시작되면서 대량의 곡물이 항구를 통해 수출된다. 반대로 값싼 공산품이 수입된다. 이런 상황은 결국 '조선내부의 쌀부족' 현상으로 이어진다.

흥선대원군이 우려대로 쌀이 부족해지자, 쌀값이 상승했고 물가는 폭등했다. 게다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 귀금속이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된다. 일부 지주는 쌀 수출에 적극 가담하여 엄청난 이득을 남겼다. 그 이익을 다시 토지 매입에 투자되어 대지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쌀에 대한 '시장독점'과 '수요폭발'이 일어나자, 국가는 '군인'에게 지급할 '임금'인 쌀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1882년 쌀겨와 모래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좋지 못한 급여를 받은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그것이 임오군란이다.

임오군란의 진압과정에서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다. 이로써 조선의 내정에 대한 청의 간섭은 더 커진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군대는 조선에 주둔하게 된다. 이후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점차 확대된다. 그 과정에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했는데, 외국 공사관은 해당 국가의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실제로 고종이 직접 러시아로 간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외교 관례와 영토의 개념으로 볼 때, 조선의 황제가 러시아의 영토로 피신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로시아는 러시아인을 조선의 재정, 군사 고문으로 앉히고 광산 채굴권이나 삼림 벌채권을 얻었다. 그러나 쌀유출은 계속 이어졌다. 철도가 놓이며 더 많은 식량과 자원이 철도와 항구를 통해 수출된다. 쌀값 폭등은 더 가속화된다. 뒤늦게 '방곡령'을 통해 쌀의 유출을 막아보려고도 했으나, 이미 구조적으로 경제적 파탄이 났기 늦은 상황이었다.

일본 또한 조선의 쌀값폭등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수입국이었기에, 조선의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1920년부터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한다. 조선의 쌀을 증식하여 쌀 생산량을 높이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증산에 필요한 시설을 확대하고 화학비료를 사용을 권장한다. 실제로 더 많은 쌀이 생산되었으나 수확량에 비례하여 수출량이 늘어나면서 쌀값이 안정되지 않았다. 식량 사정도 악화됐다. 쌀값이 높아지자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처지에 쳐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항이 불러 일으킨 연쇄적인 불행의 도미노는 국가의 재정과 안보를 파탄시키고, 결국 '경술국치'까지 이어진다.

가만 보면, 중앙집권국가인 조선의 멸망은 시대적으로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경제'가 '안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지독한 방식으로 학습했다. 어느 통계를 보니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돈'과 '경제'에 삶의 촛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삶'에 직결된다는 위기감을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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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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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막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설명.

다자이 오사무, 그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난다. 집안은 부유했으며,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이루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도교제국대학에 입학한 후 좌익활동을 시작한다. 날 때부터 정해진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의 신념의 충돌은 그의 삶 전반에 존재한다. 이런 내면과 갈등은 그의 삶을 내면과 외면으로 분리했다. 물론 어떤 사건이 기폭제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겪는 다양한 사건은 모두 서로 그러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다자이 오사무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비난을 하던 그는 1930년에 다나베 아쓰미라는 연인과 투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 사건으로 연인인 아쓰미는 사망했으나 그는 살아 남았는다. 이후 연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받던 그는 이후로도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한다. 이런 비극은 다른 비극을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불러 일으킨다. 결국 그는 약물 중독에 시달린다. 중독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그가 가게 된 병원은 '정신병원'이다. 몇 번의 비운과 고통이 그들 찾으며 그는 생애 동안 총 다섯번의 자살을 시도한다. 끊임없이 자기자신과 인간에 대한 고뇌를 멈추지 않던 그는 마침내 1948년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던 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인간실격'이 발표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극적이고 복잡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작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내면의 고뇌와 인간의 약점을 탐구한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고통스러운 그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오염되는 감정'을 느낀다. 다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가 느끼는 일부 감정에 있어서 철저한 공감을 갖는다.

그가 가진 고민들, 사회적 부적응과 자아 상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괴리감, 외로움,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불안과 혐오, 끊임없는 자기와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심, 좌절. 그것은 소설을 읽기 전에도 내 안 어딘가 존재하는 감정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장난기 많고 농담 좋아하는 밝은 사람이지만 그 속은 정반대이다. 겉으로 가면을 쓰고 솎으로 그 빛에 준하는 그림자를 가지는 것을 보면 페르소나와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구스타프 칼 융'의 심리학 이론 중 하나다. 사회적 상황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가짜 자아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을 가면, 즉 페르소나라 부른다. 반면, 우리의 의식적 자아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성, 부정적인 사고와 욕망, 감정 등 무의식의 일부, 타인에게 숨기고 싶어하는 내면. 그것은 그림자이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는 진짜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페르소나를 연출한다. 모두를 철저하게 속이며 이러한 개념은 융의 페르소나 개념와 매우 일치한다. 융의 심리학에서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자아 실현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에서의 갈등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조금 더 직관적으로 그려진다. 다만 '인간실격'에서 주인공은 이 균형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그림자에 짓눌려 고뇌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이를 수용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던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의 여정을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인간으로써 자격의 실격'을 선언한다. '소설 데미안'과 대비적으로 그는 결국 열리지 않은 결말로 끝을 낸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불안과 외로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이 고뇌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페르소나와 그림자, 선과 악 사이의 고뇌를 열린 결말로 이야기 했던 '헤세'의 '데미안'과는 다르게, '인간실격'은 종결된 결말로 끝을 낸다. 결국 우리 모두는 '페르소나'를 집어 삼키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고뇌가 멈추기 위해 결국은 그 간격을 줄여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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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연대기 - 조선을 뒤흔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건 80
유정호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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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세조는 자신의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다. 영화 '관상'으로 유명한 '계유정난'이다. 그는 '성공적인 반역자'로 역사에 기록된다. 반정의 성공 이후, 그는 자신의 반정에 대한 역사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그래서 그런지 세조는 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그렇게 역사는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세조의 이야기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조의 '성공적인 반역'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의 공과 과를 모두 알고 있으며, 그 평가가 각각의 개인마다 다를 수 있음도 알고 있다. 세조 뿐만 아니다. 선조의 몽진, 광해의 폐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해석은 일방향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대체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조선왕조실록'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원치 않는 기록이나 불리한 기록이 있을 수 있다. 하물며 왕의 기록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록은 왕명에 반하는 내용까지 기록한다. 시대가 흘러 가치관의 차이가 발생해도 우리가 그 사건을 오해없이 바라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객관성 때문이다.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정도전과 새 국가를 건설했을 때부터 순종시대의 '경술국치'까지 500년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보면 꼭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 같다. 만들어지고 흥하고 쇠하고 망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한 사람의 인생과도 닮았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부분이 많다. 육아는 사람이 완성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일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사람이 성장 과정을 배우며, 느끼는 바는 우리 모두는 환경도 어찌할 바 없는 '내재적 성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기본 '시스템'은 그게 DNA에 각인이 되었는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설정된 시스템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쌍둥이를 키우며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두 아이의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내재적 시스템'의 역할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처럼 어찌할 바 없이 정해진 무언가를 '숙명'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애초에 조선의 건국부터 짜여진 '숙명' 같은 시스템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어떤 연유로 조선의 흥망성쇠를 이끌었을까.

조선이 건국되기 전, 고려는 봉건주의 국가였다. 군사적 공로에 따라 토지를 수여하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공로자가 취하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귀족이라는 강력한 권력이 탄생했다. 귀족과 무인은 점차 세력이 확장되며 중앙 정부보다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조선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는 이러한 폐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다보니 지방 호족의 세력이 강해졌고 각각이 중앙 정부에 대한 충성도도 낮았다. 그 결과, 국제적 이벤트에 대한 대응이 약하고 비효율적이었다. 이성계는 이런 봉건제도의 폐해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런 폐해에 대해서는 최근 방영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외침에 대한 대응 전략 부재, 귀족 간의 권력 다툼, 내란 등 고려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시스템의 한계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야기했다. 1388년 위화도 회군 전 후, 고려의 군사력은 명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성계의 눈에 해당 출정은 비합리적인 봉건제도의 결정판이 었을지 모른다.

이로써 태조는 중앙집권된 체제를 꿈꿨다. 군사력을 효율적으로조직하고 지위하는데에는 중앙집권 체제가 필수적이었다. 봉건국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이후의 왕들은 짜여진 시스템에 걸맞는 성장을 촉진한다.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토지 관리를 정비하며 세수를 확보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유교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사회가 통합하면서 조선은 '안정적인 국가'로 거듭난다.

파편적인 '불교'의 성향을 벗어버리고, 질서정연한 '유교'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조선은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장려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군군신신부부자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유교의 이념에 따라 조선은 왕과 신하 사이의 도덕적 관계와 책임을 강조한다. 즉, 왕은 신하의 조언을 경청하고 정치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됐다. 그 결과 조선은 '신하'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게 됐다. 현대의 민주주의가 삼권분립에 의해 국가 권력을 분산하고 약화시키는 것처럼 왕권과 신권은 서로 견제하고 화합하며 국가를 운용해 나갔다.

정도전이 제시한 이념은 당시 혁신적이었는데,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명명하며 국왕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대표라는 인식을 갖는다. 이런 인식은 조선 500년 간 꾸준했다. 중종반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종은 스스로 반정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신하들에 의해 왕이 된 인물이다. 또한 조선 후기 철종은 정치란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한 청년에 불과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신하들에 의해 왕위로 추대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아무리 '왕'이라 하여도, 신하에 의해 제거되고 추대되기도 했다. 반대로 왕들은 왕위에 있으며 신하들의 반정을 언제나 견제하고 경계했다. 이런 시스템은 조선의 전근대까지 잘 이끌어 왔다. 다만, 중앙집권 체제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운영은 가능했지만 외부적 환경과 내부적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은 부족해싸. 경직된 중앙집권 체계는 사회 내부적으로 다양한 정치 세력에 대한 투쟁을 더 중시하게 됐다. 즉, 내부적으로 살아남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국가가 되어 결과적으로 외부 위협에 대한 효과적 전략을 갖지 못했다. 중앙집권적 체계는 외부 세계와 교류를 업격하게 통제했다. 통제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통제 하다보면, 새로운 지식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유입, 새로운 세력과 부에 대한 견제가 따라온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 '무역'은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중범죄다. 이런 조선의 '내재적 DNA'는 산업혁명을 저해했다. 그저 조선의 정책 결정자들은 '산업'보다 '농업'을 중시했으며, 이는 '변화'보다 '유지와 질서' 그리고 '안정'에 더 촛점을 맞추게 되는 '조선의 태생적 DNA'였다.

결론적으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협력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탄생에 결정적이었으나, 봉건적 국가인 고려가 중앙집권적 국가인 조선에 멸하고, 다시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이 시대에 다시 흥하는 것 처럼,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으며 절대적이고 완전한 정답도 오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역사 500년을 살피면 하나의 왕, 하나의 세대, 하나의 시대가 스치듯 지나가지면, 결과적으로 인생 100년과 너무도 닮아 있다. 고로 삶을 살 때, 우리는 그것을 떠올릴 수 있다.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 즉, 나를 흥하고 망하게 하는 것은 '칼'이 아니라, 그것이 맞나게 되는 시대와 타이밍이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이 언젠가, 나를 흥하게 할 무기가 되어 줄 어느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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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이루어주는 감사의 힘 - 감사는 파동, 힘, 에너지다!
뇔르 C. 넬슨.지니 르메어 칼라바 지음, 이상춘 옮김 / 한문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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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의 목표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에 있다.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조작하고 타자를 칠 수도 있으며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지난 실험에서 일론 머스크는 '페이저'라는 이름의 9살 원숭이를 대상으로 도구 없이 비디오 게임을 하는 초기 실험을 진행했다. 원숭이는 막대를 조종하여 공을 받아내는 '퐁'이라는 비디오 게임을 학습했고 게임에 대한 보상으로 바나나 스무디를 제공했다. 이후 '페이저'는 조이스틱 없이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정보만으로 비디오 게임을 하도록 했고 생각만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 실험을 '멍키 마인드퐁'이라고 명명했다. 먼 미래의 SF영화 같은 이 실험은 이미 수 년 전에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얼마 전에는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했다.

이 기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가 사람의 뇌속에 '컴퓨터'를 이식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맞지 않다. 일론 머스크가 사람 뇌에 이식한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일종의 '리모컨'이다. 즉 뇌에 '리모콘'을 넣어서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조작하는 방법인 것이다.

뉴럴링크는 뇌의 특정 부위에 아주 작고 유연한 전극을 삽입한다. 이는 뇌파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뇌가 일으키는 전기적 활동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지된 활동은 무선으로 외부 장치에 전송된다. 마치 우리가 먼거리에서 리모컨으로 TV의 전원을 키고 끄는 것처럼 말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 뇌의 무엇이 외부적 무언가와 연결하여 작동된다는 것은 상상속 무언가가 아니다. 종교적인 무언가도 아니다. 뇌는 생각과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패턴의 전기적 활동을 한다. 즉, 떨림을 만든다.

떨림은 무엇인가. 떨림은 모든 것이다. 떨림은 우주의 근본적인 언어다. 이 우주에서 모든 것은 진동하는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소리에서부터, 빛, 물질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형상은 궁극적으로 떨림의 다양한 표현이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종교'가 아니라, '물리학'의 영역에 있다.

소리는 떨린다. 솔리는 물체의 진동에서 시작한다. 진동은 주변 매질을 통해 전달된다. 이 파장은 뇌에 도달하여 우리 신체를 자극한다. 이때 이 떨림은 전기신호로 전달되여 우리의 뇌로 보내진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진동한다. 이 진동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변화를 통해 공간을 건너 전파된다. 이 파장의 크기에 따라 색이 결정되며 이 파장이 우리 시신경을 자극하면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보내진다.

물질은 떨림이다. 물질은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떨림은 그 물질이 고체인지, 액체인지, 기체인지까지 결정한다. 또한 물질의 온도와 밀도도 결정한다.

모든 것은 떨고 있다. 이 덜림은 우주의 기본적 작동 원리이자, 우주의 언어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전파도 역시 떨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뇌파를 가진다. 뇌파는 떨림이다. 얼마나 떨리는지에 따라 델타파,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로 부른다.

우리가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지면 뇌는 1초에 0.5에서 4번 사이로 떨린다.

우리가 명상을하거나, 창의력을 요하는 활동을 할 때는 1초에 4번에서 8번 사이로 떨린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거나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뇌는 1초에 8번에서 12번 사이로 떨린다.

적극적으로 사고하거나 집중할 때,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우리 뇌는 12번에서 30번 사이로 떨린다.

이렇게 1초에 몇 번을 떠는지를 세는 단위를 '헤르츠'라고 부르고 각각 떨림의 횟수에 따라, 델타파,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라고 부른다.

과학적으로 아직 연구가 진행중인 부분이기에 과학과 유사과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것이 있다. 바로 '공명현상과 뇌파'의 상관관계다.

공명현상이란 하나의 물질이 진동을 하면 주변의 다른 물질이 비슷한 진동을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두 개의 종을 옆에 두고, 하나의 종을 때리면, 때리지 않은 옆에 있던 종이 함께 울리는 현상이다. 이처럼 떨림은 서로 주고 받으며 같은 진동수를 갖는다. 그것이 공명현상이다.

일부 이론에서 뇌파 역시 공명현상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는 또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랑, 분노, 감사, 공포, 우울과 같은 인간의 감정은 각각 다른 뇌파 패턴을 갖는다. 사랑은 알파파, 분노는 델타파, 감사는 세타파, 공포는 감마파 활동을 증가시킨다. 우울은 굉장히 특이하게도 좌뇌와 우뇌의 비대칭적인 패턴을 갖는데, 전반적으로 뇌활동이 저하로 이어진다.

어떤 분위기에서 사람은 차분해지고, 어떤 분위기에서 사람은 흥분하며, 어떤 분위기에서 사람은 영감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생각을 가질 때,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감정을 가질 때, 어떤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떨고 있고, 이 떨림은 단순히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확산되며 주변의 어떤 것에 영향을 주고 그것과 공명현상을 가져 함께 떤다. 결국 나는 무언가에 영향을 주고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다.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매순간 결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함으로써 그 주파수가 갖는 다른 공명현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심리학을 너머, 아직 연구 중인 물리학의 일부분에 속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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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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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160페이지의 얇은 소설이다. 1959년 작품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24세 작품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집필했음에도 감정 표현이 훌륭하다. 비교적 어린 나이라는 수식어는 소설의 특징을 보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 속 감정은 단순 감정으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 '폴'은 39세 여자 주인공으로 6년 사귄 남자친구 '로제'와 '시몽'이라는 25살의 잘생긴 변호사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갈등에 '나이'는 꽤 중요한 핵심이다.

소설의 큰 뼈대를 말하자면 이렇다. 39세 여성인 '폴'은 '로제'와 연인 사이다. '폴'은 몇 번의 이혼을 경험한 여성으로 이후 로제와 꽤 오랜 연인사이가 된다. 이들의 관계는 꽤 편안한 상태로 '폴'은 '로제'가 없는 시간을 익숙해지고, 외로움의 감정에 익숙해진다. 반대로 '로제'는 이미 익숙해진 '폴'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일과 새로운 인연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폴'은 남자의 이름, '로제'는 여자의 이름이라고 여겼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남자와 여자를 헷갈리곤 했다. 이 소설은 은연중 남녀에 대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말하고자 하는 듯 보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폴은 14세 연하의 잘생긴 남성과 감정이 생겨난다. 폴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로제'와의 관계 때문에, 이 잘생긴 남자 시몽과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것에 죄책감을 가진다. 반면 로제의 경우 꽤 어린 다른 여성과 육체적, 정신적 관계를 가지면서 자책감을 갖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분명 존재하는 듯 보인다. 어린 여성을 만나는 남성을 보는 시각, 어린 남성을 만나는 여성을 보는 시각, 그 나이 차이가 무려 열 네살이나 난다면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설령 진실이 무어가 됐던 사회가 바라보는 편견은 여전하다. 마음이 편한 연인 관계인 '폴'과 '로제'는 그 편안하고 소원해진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 흔히 우리 속담에 '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간혹 구애가 끝난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비유로 사용된다. 이 비유가 정확히 들어 맞듯, 로제는 폴을 편안하게 대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로 그녀를 생각한다.

폴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는 관계에 대한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혼자 남겨지는 외로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오랜 연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있으니, 서로가 서로가 아닌 새로운 연인을 만들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르게 한다. '로제'는 젋고 예쁜 여성과 만남을 하며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여기지만, '폴'은 잘생기고 멋진 남성과의 만남에 대해 꽤 묵직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소설의 중반부에 잘생긴 시몽이라는 남자가 폴에게 구애를 시작한다. 시몽의 구애는 또렷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포인트는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부터다.

실제로 '요하네스 브람스'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클라라 슈만'이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안타깝게도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동료의 아내였다. 그녀는 역시 브람즈보다 14살이나 많은 연상이었다. 결국 누군가의 아내인 연상의 연인을 사랑하는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으로 상대의 마음을 떠본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같이 물음표를 던지지 않는다. 작가가 강조한 것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같이 점점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 그럴까. 아마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이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복잡한 삼각 혹은 사각 관계는 소설이 이어지며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들이 겪는 다양한 감정은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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