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세계적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15가지 양육 법칙
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강유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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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더니 목이 따끔 거렸다. '타이레놀' 두 정을 물과 삼켰다. 예전 읽었던 백승만 작가의 '분자 조각가들'이 떠올랐다.

약을 먹으면 아픈 곳만 집중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몸은 전체가 하나의 화학덩어리다. 투약에 의해 몸이 가진 화학적 농도는 달라진다. 약물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할지, 어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타이레놀, 즉 아세트아미노펜은 통증을 완화하고 열을 낮춘다. 두통이 있어도, 치통이 있어도 복용할 수 있다. 통증을 완화한다. 그렇다면 이 약품은 어떤 애니메이션처럼 우리몸에 들어와 아픈 곳의 세균에 다가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약물은 혈류를 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세포와 조직에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서 부대찌개의 햄 너무 짜기 때문에 찌개 자체에 물을 붓는 행위와 비슷하다. 두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약물은 두통을 유발하는 신경 회로를 차단하고 체온 중추에 작용하여 열을 낮춘다. 다만 우리가 필요한 역할만 골라서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이 과정에서 화학적 균형이 깨진다. 이것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바로 '졸음'이다. 현대 화학약물의 역사는 '졸음'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로 발전해 왔다. 졸음을 유발하는 두통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체약품이 개발됐고 어떤 약품은 치료제로 시작했다가 수면제로 역할을 바꾸기도 했다.

갑자기 왜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이루는 자아가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형성하는 여덟가지 지체는 몸, 생각, 감정, 감각, 관계, 환경, 영양, 영혼이다. 즉 우리는 여러 조건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반대로 하나의 정체성은 여러 조건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약물과 같이 하나의 투약으로 이것 전체의 농도는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말을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늬앙스의 경험을 하는가,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 불가능한 '사이드 이펙트'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의도대로 전달되는가. 알 수 없다. 여덟가지 지체가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자아'가 되나. 고로 사람이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단순한 몇가지 요령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육아 전문가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칭찬하세요'라고 말한다. 다른 어떤 육아 전문가는 '칭찬은 되려 독이 됩니다. 칭찬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전문가 의견의 반대편에 전문가가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커피의 효능'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에 '커피와 숙면'을 검색하면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신철 교수님'의 영상이 나온다. 아침이나 낮에 마시는 커피는 밤에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영상이다. 뇌와 신체가 카페인 효과로 인해 활동성이 높아지고 이로인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숙면을 위해서는 커피를 무조건 절제하라는 조언의 영상도 있다.

'고구마의 다이어트 효능'을 검색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고구마는 당과 칼로리가 높고 탄수화물이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해롭다는 의견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GI지수가 낮은 음식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전문가는 전체 중 일부를 들여다보는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세분화한 내용에 대해 특화적으로 연구한다. 고로 전반적인 균형은 독자가 판단해야 한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물질이 있다. 뛰어난 각성효과는 문학이나 예술, 음악, 과학계 거장들에게도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고 식욕을 억제하며 불안감과 긴장감을 급속도로 해소 시키는이 물질은 세로토닌을 분비하여 기분조절에 도움이 된다. 심지어 빠르게 인지력과 학습능력을 올리는 효과도 있다. 이 물질의 일반적 이름은 '담배'다. 좋은 부분만 취합적으로 보게되면 마약이나 담배에게서도 충분히 좋은 부분을 찾아 낼 수 있다.

전문가가 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가설 설정'이다. 전문가는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먼저 설정하고 실험을 설계한다. 이후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고로 '실험과정'에 주관성은 개입할 수 없으나 실험 단계수립 단계에서 이미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다.

논문을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주제나 접근 방식이 기존 연구와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기존 연구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통해 오류를 검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성은 논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마늘의 효능'을 이야기하면 '마늘의 부작용'이 확실한 차별성이 된다. 현대 과학은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고로 끊임없는 창과 방패가 서로가 서로를 찌르고 막는 모순을 쌓아가며 발전해 간다.

고로 어느 한쪽의 절대성이 생기지 않는다. 과학에는 100%는 없다.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생각해보건데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닐 수 있다. 데이터 전문가에 의하면 아이를 길러내는 것은 '부모'보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또 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고로 '맹신'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취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며 자신의 철학에 맞도록 선택 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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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특별판)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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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11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다. 그는 고향, 알텐하인으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가족의 형태는 이미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으며 그의 인생도 역시 그랬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을은 역시나 작은 마을이었으며 사건 피해자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스테파니와 로라의 실종 사건은 조용한 마을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 사건의 중심에 토비아스 자토리우스가 있었다. 그는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곧 의대에 진학하여 총망받는 삶을 살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하루만에 일어났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채 바뀌었다.

형사 피아와 보텐슈타인은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로 한다. 그들은 알텐하인으로 간다. 사거의 진실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마을은 조용하고 작았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작은 마을에는 깊은 어둠이 보였다.

기억을 상실한 토비아스는 그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의 기억에는 두 시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멜리라는 소녀에 의해 자신의 결백이 증명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렇게 한참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아멜리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11년 전 사건과 너무나 비슷했다. 피아와 보덴 슈타인은 아멜리의 실종과 11년 전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은 하나씩 벗겨진다.

어디서 봤던가... 했던 이 소설은 꽤 오래 전, 동생의 추천으로 읽었던 추리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2024년 8월에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한다. 제작된 드라마에서는 원작 소설의 복잡한 인물 관계와 비밀이 어떻게 영상으로 펴현될지 기된다. 원작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서스펜사가 드라마에서 잘 구현될 수 있을까.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11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자신이 정말 결백한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기억이 사라진 부분에 대해 모호한 의심만 있을 뿐이다. 그 심리적인 갈등은 독자와 시청자로 하여금 응원을 하도록 만든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작은 마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추악함을 잘 보여주는 이 소설은 하나하나 안개가 걷히는 바와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다시 읽어보니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 소설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우리 사회를 축소한 축도처럼 보여진다. 겉은 평화스럽지만 그 속에는 질투와 증오, 복수심이 가득차있다. 사회라고 말했지만, 개인의 외면과 내면도 비슷하다.

우리는 겉으로 말끔한 척 살아간다. 체취를 감추기 위해, 향이 나는 샴푸와 비누,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하거나 세련된 옷을 차려 입기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담고 있는 '열등감'과 '증오', '자격지심', '질투'들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한 거짓을 거트로 두른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그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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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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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노우에 사나'와 '미쓰자와 데스로'는 침팬지와 인간의 지적 대결을 기획한다. 침팬지 어미와 새끼 세 쌍에게 터치스크린에 뜬 숫자(1에서 9까지)를 알아보고 순서대로 터치하도록 훈련한 것이다. 숫자는 스크린에 잠시 비춰지고 사라진다. 침팬지는 숫자를 순서대로 누른다.

대결 상대는 인간 대학생이다. 역시 만물의 영장답게, 인간은 침팬지를 이겼다. 인간 12명 중 7명이 모든 침팬지를 이겼다. 다만 숫자가 더 빨리 사라지고 더 어려워지자 점차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한다. 다섯 살배기 침팬지 한마리가 모든 인간을 이기기 시작한 것이다. 난이도는 점차 올라갔다. 이후, 모든 침팬지는 모든 인간보다 정확했고 빨랐다. 인간이 전패한 것이다. 속도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인간과 다르게 침팬지들의 성적은 속도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았다.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이 모든 자연의 '개체'보다 월등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어떤 인간은 '돌고래'보다 낮은 지능지수를 갖고 있다. 측정 방법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지적 차이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렇다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할 수 있게 했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조지프 헨릭은 하버드 대학교 인간 진화 생물학과 교수다. 그는 인간의 진화, 문화, 사회적 학습.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내가 그를 알고 있는 이유는 '위어드'라는 도서를 통해서다. '위어드'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위어드는 문화적 진화가 인류의 역사와 뇌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현대 서구 문명이 현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다. 인간의 '진화'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 문화의 변화'를 통해 다른 경로를 갖게 됐다.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이다. 그렇다. 불과 40만 년 동안 뗀석기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겨우 청동기라는 금속을 사용한 것은 고작 5000년 전 일이다. 금속의 우연한 발견과 함께 40만년을 쳇바퀴 돌듯한 인간의 진화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졌다.

단순히 역사를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감이라는 본질을 통찰하는 과정으로 인지해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진화'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헨릭 교수는 인간의 문화적 발전을 진화라는 언어를 통해 설명한다.

다양한 종교나 신화를 보면 우리 인간은 '자연'과 별개의 객체다. '자연'과 동떨어진 생물학적 배경으로 우리는 자연과 스스로를 구분 지었다. 다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으며 그 연결점은 얕게나마 존재한다. 고로 우리가 독보적인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현재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다는 그 작은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회성'일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침팬지 한마리보다 생존력이 떨어진다. 자연에서 최약체로 평가되는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이유는 인간의 진화가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하는 것이 다른 종에 비해 우월했을 뿐이다.

침팬지, 오랑우탄 그리고 두 살 짜리 인간을 비교해 보건데 다른 두 유인원에 비해 인간이 보유한 유일하게 월등한 인지 능력은 '사회적 학습 능력'일 뿐이다. 물론 다른 인지능력에서도 인간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약간의 우수함을 보였으나, 그 차이는 미미했다. 어린 인간의 공간 능력이나, 수량 능력, 인과능력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수 없다.

나약한 인간의 '지적능력'으로 우리를 만든 것은 '생물학적 진화'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이성을 선택할 때, 생존능력보다는 '외모'를 살핀다.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사회적 능력이 배우자 선택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다. 그것은 우리를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었다. 사회를 이루도록 진화한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이 삶에 대한 능동적 해석의 중요성을 말한다.

자연선택은 우리가 자연에 의해 선택 당하고 있음을 말한다. 다만 인간은 그저 선택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화가 우리를 수동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으나, 우리는 문화를 통해 진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진화'는 '능동적 대처'가 가능하고 언제나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책 재미 있습니다. 1부, 2부, 3부로 쪼개어 업로드 하겠습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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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 스트레스 없는 삶을 위한 미니멀리스트 매뉴얼
프랜신 제이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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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있는 '그것'은 어떻게 '그것'이 됐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사색하는 힘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 없는 '것'은 없다. 저것이 나에게 온 역사를 반추해 보건데, 그냥 생기는 것은 없다. 쌀 한톨이라도 입속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인연이 된다. 그것은 어떻게 나의 입속에 있게 됐는가. 그 역사를 반추하는 것은 삶을 감사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500원짜리 껌을 산다. 입에 넣는다. 껌을 감싸고 있던 포장지를 살핀다. 생각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린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너'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껌종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종이의 재질과 두께, 인쇄 디자인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이후 엔지니어에게 간다. 종이의 물리적 특성을 확인하고 안정성을 보장하는 재료를 연구한다. 구매 담당자는 펄프와 잉크, 코팅 재료를 확인하고 그 원재료를 각 구매처에서 구매한다. 펄프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나무를 재배한다. 혹은 벌목한다. 이렇게 벌목된 나무는 제지 공장에 들어간다. 공장 직원은 주문내역을 확인한다. 내역을 기반으로 얇은 종이를 제지한다. 이번에는 기계관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계 관리자는 기계를 수리하거나 관리한다. 생산된 껌종이의 품질은 어떤가. 안전한가. 품질관리 전문가는 이를 검사하고 기준치에 맞는지 확인한다. 포장 작업자는 껌종이를 포장한다. 물류 담당자는 완성된 껌을 제조 업체에 납품한다. 소매업자는 이를 진열해 놓고 있다가 원하는 이에게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노고는 껌종이라는 '정체'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역사가 됐다. 이제 구매자인 나의 손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처분하는가.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지 않는가. 삶이 나에게 주는 축복이란 이처럼 보이지 않는 후면에 잔뜩 숨겨 있다. 우리가 펴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에 나에게 왔나.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 있나. 그것을 안다면 그 감사덩어리를 함부로 할 수 없다. 만물이 그렇다. 그냥 생기는 것은 없다. '그것'이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 우주가 작동해야 한다. 작게는 온도, 기온, 날씨, 위치, 시간, 사람, 돈이 필요하고 크게는 태양의 적정 궤도에 안착한 지구의 기가막힌 위치선정 혹은 빅뱅과 초신성 폭발에서 터져나온 원자 물질의 운동량과 인력, 척력, 중력, 각운동량의 조화까지 따져 들어갈 일이다. '그것'이 '그것'으로 탄생할 확률과 내가 나로 탄생할 확률은 각자 독립적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우연이다. 이 우연들이 서로 무한에 제곱수로 중첩된다. 여기서 이 값들은 서로 인연이 다시 제곱이 된다. 고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것은 무량대수급의 우주 산술적 대입의 결과다. 어찌 함부로 들이고,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

마인드를 이렇게 갖다보면 하나 둘씩 덜어내는 것이이 일상화 된다. 물욕이 줄어든다. 물욕이 줄면 '집착'이 준다. 집착은 번뇌가 된다. 번뇌란 '번거롭고 괴롭다'라는 의미다. 때로 사람은 단순한 것을 돌고돌아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가.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사피엔스 종이 '쉬운 길'을 돌아간다는 것은 이미 '농업혁명'에서 증명 됐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농업혁명'을 인류에게 재앙이 표현했다. 사람들은 더 영양결핍에 시달렸고 나약해졌다. 엄청난 노동강도를 지녀야 했고 질병과 사회적 불평등, 전쟁과 같은 문제도 만들어냈다. 결국 돌고돌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40만년을 지속해오던 본질을 1만년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는 중일지 모른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요란한 수레를 잠재우기 위해 가득 채우는 것은 정답이다. 그러나 어설프게 채운다면 수레 안은 더 요란스러워진다. 채우고 채우고 채우다가 결국 깨닫는다. 빈 수레가 그나마 가장 정숙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우고 가벼워지는 것에 최대 촛점을 맞추고 있다. 뭐든 덜어내고 비워내고 버린다. '할부'나 '렌트'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본래 '쌓는 일' 보다 '돌리는 일'이 훨씬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다.

학창시절 '생각비우기 연습'이라는 책이 유행했었다. 일본의 한 젊은 스님의 책이다. 도서는 '생각'을 비우고 멈추라고 말했다. 그때는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동경했다. 머리를 많이 쓰다보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여겼나보다.

다만 '정신력'이나 '주의력' 같은 것은 일종에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이 쓰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닳고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에는 쓸수록 단련되는 것도 있지만 닳아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근육'처럼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면 '연골'처럼 닳아 없어진다.

'정신'에 관해 대체로 그렇다. 군대에서는 일부 가혹행위를 '정신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시행한다. 그러나 정신을 훈련하는 방법은 비우고 집중하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년 간 정신 차리지 못해 허둥대는 와중 나를 정리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바로 '미니멀리스트' 꽤 오래 전부터 지향하고 있었다. 최근 손웅정 작가의 책을 보고 다시금 자극을 받았다. 그렇다. 실제로 비우다보니 꽤 많은 변화가 생긴다. 많은 것을 비우니 더 가벼워지고 더 빨라지고 더 깊이 있어진다. 물이 맑아야 더 깊이 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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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전쟁 - 숨겨진 모래 자원 쟁탈전
이시 히로유키 지음, 고선윤 옮김 / 페이퍼로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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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지반이 식으면 딱딱한 암반이 산을 이룬다. 지구 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만들어진 '암산'은 밤과 낮의 온도차이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팽창과 수축은 암석에 균열을 만든다. 암석의 균열 속으로 물이 들어간다. 들어간 물은 역시 기온의 차이로 팽창과 수축을 한다. 암석 사이의 물이 얼면 암석은 '빠직'하고 깨진다. 깨진 암석 사이로 박테리아가 들어간다. 박테리아는 구멍을 뚫고 나무 뿌리는 균열을 파고 든다. 비, 바람, 기온은 꾸준히 암석을 쪼갠다. 쪼개진 암석이 바람이나 물을 타고 흐른다. 흘러가며 서로를 긁어댄다. 더 미세해지고 더 가늘어진다. 이렇게 '모래'는 만들어진다.

모래는 모든 것에 사용된다. 우리를 둘러싸는 벽, 바닥, 천장 모두에 모래가 있다. 건물을 이루는 콘크리트의 70%가 모래다. 스마트폰, 컴퓨터에도 모래가 들어간다. 반도체의 원료 중 하나가 석영사 즉 모래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기본 원료인 기판은 유기규소로 만든다. 이는 모래와 암석 속에 산소와 결합된 실리카 상태로 존재한다. 실리카에서 실리콘을 추출한다. 이것으로 웨이퍼라는 앏은 원판을 만든다. 이 위에 회로를 구워 붙인 것이 반도체다. 에어콘, 냉장고, 밥솥, 카메라, 텔레비전 등 어디 하나 모래가 없는 곳이 없다. 첨단 기기며 아름다운 건축이며 할 것 없다. 때로 우리가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모래'는 이렇게 현대 사회에 중요한 자원이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모래다. 전기는 '석유'로 만든다. 그러나 '석유'는 모래로 만든다. 그것이 무슨 말일가. 텍사스, 루이지애나, 콜로라도, 펜실베니아 등에서 '채굴'되는 미국 셰일오일은 그 원유채굴 비율은 68% 이상이 됐다. 2010년대에는 20%였던 비율이 2019년에는 68%까지 올랐다. 셰일을 추출해내려기 위해서는 수압파쇄법이라는 공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대량의 모래가 사용된다.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어 그것으로 셰일오일을 밀어 올리는 기술 혁신이 바로 '셰일혁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래는 거의 모든 곳에 사용된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세계는 매년 약 500억 톤의 모래를 사용한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여 과거 20년 간 모래의 사용은 5배나 늘었다. 이로인해 모래 고갈은 점차 가속화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아프리카나 중동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를 퍼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중동에가면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모래 고갈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러하다.

모래 고갈은 유효하다. 사막의 모래는 너무 가늘다. 모서리가 없어 서로 엉키지 않는다. 시멘트와 섞여도 강도를 낼 수 없다. 모래가 시멘트와 섞여 단단해 지는 이유는 모래의 각진 부분이 직소 퍼즐처럼 얽히고 맞춰지며 단단히 고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사막 모래는 너무 입자가 가늘다. 고로 사용이 불가하다. 또한 바다의 영향으로 염분이 많다. 사막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이유는 물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염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염도가 많은 모래는 알카리성을 띄기도 한다. 이는 건축물의 강도나 안정성에 위협이 된다. 모래가 많은 중동국가들이 되려 모래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8년 무하메드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의 수상으로 취임된다. 취임 5개월 후 그는 모든 모래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웃나라인 싱가포르가 자신들의 나래에서 매입한 모래를 가지고 간척매립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자국의 모래가 이웃나라의 국토확장에 쓰였다는 사실은 말레이시아 정부 입장에서 기가 찰 노릇이다. 말레이시아는 비로소 2018년 모래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 눈에는 매우 하찮아 보이는 모래의 가치는 점차 높아진다. 30년 전, 잡지나 신문에는 '석유 고갈'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앞으로 30년 안에 석유가 고갈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 석유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울 만큼 풍부한 자원 중 하나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석유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심해나 셰일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원유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과연 자원의 희소성으로 볼 때, 앞으로 모래는 '석유'보다 훨씬 중요한 입지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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