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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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희곡 '모두가 나의 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평범한 가정을 말한다. 테마는 '비극'이다. 주인공 조 켈러는 전쟁 중 불량 비행기 부품을 납품해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책임을 동업자에게 전가한다. 이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많은 가족은 고통을 받는다. 다만, '조'는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아들인 '크리스'는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가족은 이와 관련한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맞이하는 선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희곡과 같이 어떤 선택은 가족을 위하거나 지극히 개인을 위한 '선'일수 있고, 어떤 선택은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 결정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선택에는 그 이면에 감춰진 '책임'이라는 것이 따른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허준'에는 비슷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고 심지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허준'은 드라마 후반부에 가서 '아들'의 '원망'을 듣는다.

임진년, 왜군이 쳐 들어왔을 때, 불에 탈 위기에 처한 '서책'을 짊어지기 위해, '국왕'의 호위길을 이탈했고 경황없는 전쟁의 위기에서 '가족'을 새까맣게 잊어 버린다.

이 드라마에는 굉장히 철학적인 서사가 있다. 바로 '허준 아버지', '허론'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상 허론은 굉장히 덕망있는 무반계 양반이다. 다만 '허론'은 '밀무역'이라는 중범죄를 지은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선택을 한다. 반대로 '허준'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식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순번을 지켜 아들을 치료하는 지독함을 보인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어떤 가치관으로 상황을 보느냐에 따라, 분명 다른 평가가 나올 법하다. 허준의 융통성 없음은 분명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이었겠지만, 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무전무결한 '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주제와 상징성을 갖는다. 제목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인류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다. '조 켈러'는 자신의 비도적적 선택으로 전쟁 중 수많은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의 선택은 직접적이지는 않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건처럼 굉장히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선택이다. 그가 만든 불량 부품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자식이 사망한 모든 부모들의 아들이다. 고로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조가 자신의 아들만 보호하려 했던 이기적인 태도와 전쟁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희곡이 쓰이진 배경적 지식의 영향으로 희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호하지 않다. 다만 이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여지는 분명하게 있다. 희곡에서 크리스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되고 상황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세운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 의지하여 자신의 세상을 구성한다. 다만 그러한 부모가 자신이 믿고 있던 도덕적 기준을 배신 할 때, 그 충격은 분노나 슬픔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를 보면, 얼마 전 읽었던 소설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 역시 꽤 부유한 배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부의 출처가 '대부업'이라는 사실은 그를 괴롭게 한다.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마르크스 사상'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의 출신 배경과 생각해 볼 때, 자아에 대한 모순과 혼란이 필연적이었다. 실제 다자이 오사무는 이러한 배경적 지식과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삶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은 '파친코'와 비슷하다.

결국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은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단순히 개인적 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아들러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진정한 도덕적 선택이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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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아들러의 말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이와이 도시노리 엮음, 박재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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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름을 싫어한다.

자, 그렇다면 초콜릿과 동물과 여름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로 무언가를 넌지시 건내는 일에는 '죄'가 없다. 건내지는 '무언가'에도 문제가 없고, '건내는 행위'에도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다.

건내받는 쪽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변수가 워낙 많아서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두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참 여성스러우시네요.'

칭찬일지 모른다. 다만 상대는 불쾌함을 들어냈다. 이런 경우는 적잖게 볼 수 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가 받아드리는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가 몇번 반복되면 그것은 학습된다.

이후로 우리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싫어하면 어떡하지' 혹은 '잘못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말 뿐만아니라 행동이나 상황도 그렇다. 같은 행동과 상황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학력이 부족한 것

몸이 병약한것

이 셋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만 일본 경영의 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는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는 남들이 '불행'이라고 받아드린 이 세가지를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인자로 인식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 이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고로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채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함께 있는 사람이 에너지를 채울 수 있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주도록 배려한다.

이 배려가 오해가 되고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적잖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러'의 이론이다. 아들러의 이론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닮았다.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둔다.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두면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으로 변한다.

아들러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현상과 관계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제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다.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일정하듯, 우리의 과제도 우리가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즉,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선물을 하는 것은 그것으로 나의 과제를 다한 것이다. 그것을 받고 기뻐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의 과제'이다. 상대의 과제를 간섭하려는 시도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예를들어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걱정은 사실 내 '과제'가 아니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드리는지는 그들의 '과제'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 뿐이다. 마치 물리적 세계에서 시간이 각자 다르게 흐르는 것 처럼, 나의 과제와 상대의 과제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

간혹 우리는 타인의 과제까지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며 내가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다. 이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다.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둘 때,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변화하듯, 나의 과제에 집주아면 상대의 반응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과제에 충실할 때, 관계는 그에 따라 더 유연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과제분리'는 '상대성 이론'처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관계역시 더 건강하게 형성된다.

자칫 가장 이기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과제 분리'는 서로가 각자의 세계에서 완전하게 작동되는 '상대성 이론'인 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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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문은 DNA를 말하지 않는다 - 유전자에는 없는 세포의 비밀
알폰소 마르티네스 아리아스 지음, 윤서연 옮김 / 드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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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가.

 흔히 우리는 DNA를 본질이라 생각한다. DNA는 우리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결정 짓고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다만, DNA는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 정보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명은 정보를 활용하고 변화하는데 단순히 DNA가 아니라 더 복합적인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의 정보의 흐름과 맥락 속에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진다.

 이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도면 하나로 건축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도면은 건축물의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선물이 완성되기까지, 재료, 환경, 작업자의 숙련도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개입한다. 우리의 DNA도 다르지 않다. DNA는 설계도일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실제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DNA만큼이나 환경이 크다. 세포 간의 상호작용과 외부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 세포는 서로 대화하고 신호를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한다. 이런 상호 작용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지시된 기계적 행동이 아니라, 생명이 가진 능동적인 역동성의 결과라고 볼수 있다.

 어항 속의 금붕어를 예로 들수 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어항 속에서 키우면 5cm밖에 성장하지 않지만 이것을 연못에서 키우면 30cm 이상 자란다.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를 유전자의 집합체로만 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유물론적으로 보는 관점을 닮았다.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철학'을 대입하는 것이 자칫 우습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하며 바꿔 낼 수 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신경가소성은 우리의 뇌가 학습, 경험, 혹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뇌가 성장과 성숙이 완료되면 더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면 현대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변화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이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한 예시로 '런던의 택시 기사'에 대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런던의 택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 구조를 모두 외워야 하고,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능력을 요구 받는다.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년 간 기사들은 런던의 모든 길을 철저히 암기 한다. 이 과정에서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크게 발달하는데, 해마는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물리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의 뇌가 경험을 통해, 혹은 환경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유전자에 의해 고정된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을 통해 뇌가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 택시 기사들이 그들의 환경적 요구에 맞춰 뇌를 변화시키는 것 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유전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분명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단순히 DNA에 프로그래밍 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언제든 재구성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기도 한다.

 8살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과학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의 유전자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성장한다. 물론 우리 아이를 보건데, 키, 몸무게, 눈의 색깔처럼 유전자가 결정하는 기본적인 정보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아이를 구성하는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비슷조차 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란 단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고로 우리는 '자유선택'에 의해 존재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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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저학년 독서습관 만드는 결정적 시기 - 독서습관 일주일 프로젝트
김기용 지음 / 미디어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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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용 금붕어는 어항속에서 5cm 정도 크기로 자란다. 금붕어가 5cm인 것은 유전자 탓인 걸까. 아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연못에 풀어 놓으면 이 금붕어는 30cm까지 자란다.

금붕어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이다. 환경은 왜 중요한다. 환경은 '성장'의 '시작'이고 끝이다. 유전자를 탓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훌륭하다.

유전자를 기준으로 볼 때, 생물종을 번식하는 것이 '우월성'이다.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의 형태로 잠시 모여 있다가 다음 형태로 유전자를 넘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세대를 이어받아, 우리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에게 유전자를 넘긴 조상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를 포함해 최초의 사피엔스가 탄생한 4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도, 단 한 명의 패배 없이 유전자를 전승했다.

유전자를 전승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약 동서고금할 것 없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 짝을 찾는다. 남성은 '매력적인 여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하고, 여성은 '유능한 남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이것은 '성선택'의 본질이다.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승리한 일부가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로 진화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남성은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 때로는 더 많은 암컷과 관계를 맺는다. 이때 남성은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가장 유능한 남성을 선택한다.

태조왕권은 스물 아홉의 부인을 두었으며 성경의 솔로몬 왕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의 무함마드는 13명의 부인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3세는 마흔 일곱 명의 아들과 쉰 다섯명의 딸이 있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각각 8명의 자녀가 있었고 LG의 구인회 회장은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11명의 자녀가 있고 세종대왕은 18명의 자녀가 있었다. 2003년 발표된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약 8%의 중앙아시아 남성들(대략 1600만 명)은 징기스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Y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특정한 유전적 표지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징기스칸과 그의 직계 후손들로 유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남성 정복자는 틀림없이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할 것이고, 매력적인 여성은 틀림없이 가장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할 것이다. 즉 이 경쟁에서 도태된 어떤 유전자는 반드시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핏줄을 따라 시간의 역순으로 직렬로 올라가면 그 상위에 있는 모든 조상은 그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유전자들이다.

경쟁에서 이긴 남성과 가장 매력적인 여성들이 작게는 40만 년 사피엔스 종의 시작부터 이겨왔고 더 크게 올라가서 40억년 전 생물 탄생부터 지속되었다.

즉 우리의 유전자는 40억의 지리한 시간 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우리에게 승리의 유전자를 남겼으며 '자연 선택'에 의해 쭉정이들은 도태시키고 가장 강력한 하나의 핵심을 남긴 것이 바로 우리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완전하다. 마치 아름다운 금붕어처럼 말이다. 다만 유전자와 다르게 우리의 종을 결정짓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환경이다. 환경은 우리를 유전자 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종으로 바꿔 놓는다. 어항속 금붕어가 연못속 금붕어와 완전히 다른 종처럼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 던져져야 하는가.

바로 '어항'이 아니라 '연못'이 아니라, '강'이 아니라, 바다로 던져져야 한다. 스스로를 강으로 던져져야 한다. 현대인에게 가능성이란 '육체적 조건'으로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인의 성장은 육체보다 '정신'을 의미하며, 한계가 있는 육체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한히 성장하는 정신적 성장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머스크'는 그곳에서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청소년기에 '남아공'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물리적 환경에 더불어 그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우리를 어떤 환경 속으로 집어 넣는다. 이 환경은 물리적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데, 간혹 '마션'의 경우에는 화성에서 감자를 심는 환경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하멜표류기'는 우리를 조선 중기로 데려다 놓으며, '안네의 일기'는 우리를 세계 2차대전 속으로 집어 넣는다.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할 환경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때로는 공포, 위기, 행복, 불행, 슬픔, 성공, 실패, 고통, 미움, 사랑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다차원의 감성적, 이성적 깊이를 확장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읽으며 교훈을 얻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읽으며 자신감과 노하우를 얻으며,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상대적 행복감을 갖고, 다른 이의 행복을 보고 행복한 마음을 얻는다. 또한 전혀 위험없이 '위험'을 겪어보며 위기 의식을 키우는데, 그 위기라는 것은 원래 '생존력'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리적 환경이 가진 제약을 무한히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환경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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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꽃 -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강병인 쓰다 3
나태주.강병인 지음 / 파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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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한 '제이슨 레이놀즈(Jason Reynolds)의 소설 중에 Long Way Down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굉장히 모호한 특징이 있는데, 소설인데, '시'이다. '시'인데 소설이고 글이 글이 되어 글을 표현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나 빈칸 여백이 모두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을 펴보기 전까지 이 책을 온전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예전 한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본에 있는 '.'과 '..' 그리고 '...'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을 설명한 적이 있다. 글은 어떻게 전달하는가를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고딕체'를 이용한 정보의 나열은 심히 많은 걸 담을 수가 없다

인간의 소통에는 '언어적 소통'보다 '비언어적 소통'이 압도적으로 높다. 굳이 그것을 비율로 표현하건데 7 대 93 정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언어적 소통보다 더 중요한 정보는 꽤 나 직관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모름'이라는 명사보다는 사람이 짓고 있는 표정과 눈빛, 말투, 분위기 등이 더 많은 '모름'을 표현하는 법이다.

페이지 한 가운데 있는 단 하나의 글자, 혹은 페이지를 가득 담은 여러 단서가 전체적으로 물음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서 '폰트'는 몹시 중요하다. 같은 사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의복과 표정, 화장법, 눈빛을 다른 것처럼 '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정숙해야 하는 곳에서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경건해야 하는 곳에서는 양복을 입는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라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 아름다움' 뿐만아니라, '비언어적 아름다움'이 추가되어야 한다.

서예가 '강병인'의 글씨로 보는 시인 '나태주'는 번듯한 사내가 때와 장소에 맞는 의복과 표정을 맞춰 입은 모습이다.

언어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서예가'는 비언어적으로 표현한다. '봄비'라는 시를 보면 'ㅂ'이라는 단어에 들어갈 점이 비처럼 점점점 내리고 있다. 천지인은 묵직함과 가벼움을 번가르며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거나 흘리며 글의 운율을 더하고 시 전체를 정방형으로 두거나 띄어쓰기 간격을 극도로 줄이여 의미를 곱씹게하는 구간도 분명 존재한다.

'서로가 꽃'이라는 시에서 '꽃'에 해당되는 'ㄲ'은 마치 꽃잎처럼 하늘하늘 거리며 그 꽃잎을 피운 줄기는 그 마디마디가 서로 얽히며 '꽃'이라는 언어가 주는 '의미'와 글씨가 주는 '비언어적 감성'을 동시에 느기도록 한다. 어떤 '시옷'은 기억처럼 누워 있고, 어떤 시옷은 ㅜ처람 꺾여 있다.

어여쁨이라는 시는 쌍비읍을 이루는 'ㅂ'이 7번이나 사용되는데 그 위로 'ㅂ'이 3번, 아래로 4번을 사용된다. 이는 분자가 분모보다 작은 '진분수'와 같은 형태다. 진분수는 가분수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가련 1/4는 아래로 단단히 기둥이 되어 받치고 있는 형상이라면 4/1은 자칫 그 숫자가 넘어질 것 처럼 불안하다. 홀수의 분자와 짝수의 분모가 진분수이 형태가 되어 그 균형을 매끄럽게 잡는다.

뿐만아니라, 'ㅇㅓㅇㅕ'라는 구간에서는 그 글이 주는 여백이 넉넉하여 둥글 둥글 물고기가 좌로 헤엄하는 형상이다.

우리가 읽는 글씨는 대체로 컴퓨터에서 정형된 모양을 가진다. 고로 그 의미 전달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가진 감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떤 폰트로 글을 전달하느냐에 따라,때로는 화난 것 같은 감정이 전달되고, 때로는 애교스러운 감정이 전달된다.

과거 조상들은 '명필'의 기준에 단순히 '내용'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가 대표적인데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추사체'는 하나의 정형화된 글씨체가 아니다. 문제는 내용에 따라, 시기에따라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것이 정말 천재적인 표현법 아니겠는가.

가만보건데 '모든 시'라는 것은 꼭 어떤 서예를 만나 그 감성이 다시 재표현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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