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당신의 문해력 - 공부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힘 EBS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 기획, 김윤정 글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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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로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체로 회화 실력이 굉장히 빨리 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부터 그렇다. 발음도 좋아지고 듣기 실력이나 말하기 실력도 금방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 조건이 있다. 늘리고 싶은 '영어 영역'이 '일상회화'에 국한된다면 말이다.

드라마 '프랜즈'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면 생각보다 빨리 귀가 트인다. 이유는 단순한데 실제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만든 드라마라서 그렇다.

"What are you doing here?"

(여긴 어쩐 일이야?)

혹은

"Are you kidding me?"

(장난해?)

이와 같은 문장은 자주 나오는데 꽤 반복적으로 나온다. 실제로 몇가지 어휘만 따로 외운다면 일상회화 수준의 어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회화에 문제가 없고 발음이 그럴싸하면 '영어 잘하네'라는 평가와 함께 꽤 의미있는 능력을 얻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 가정에서 일상 생활 중 벌어지는 대부분의 회화는 1000~2000개의 어휘 수준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하루에 100개씩 암기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달 정도면 일상 회화에서 일어나는 아주 간단한 어휘는 문제 없이 암기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일상 한국어 회화를 잘한다고 국어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고 일상 영어 회화를 잘한다고 영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가족과 식사하고 간단한 농담을 주고 받기에 2,000 단어는 꽤 넉넉하지만 현대인이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될 어휘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어휘를 만난다.

학교 알림장에서, 신문에서, 회사에서, 공문 등에서 우리는 일상회화에서 만나지 않는 어휘를 만난다. 일상 회화보다 조금 더 수준있는 어휘는 대략 5,000에서 1만단어 수준이다. 벌써 그 수준이 5배나 된다.

다시 조금더 학술적인 분야에 일 해야하거나 노출해야 할 때 만나게 되는 어휘의 수준은 적게는 1만 단어에서 많게는 2만단어까지 늘어난다.

다시말해서 그 범위를 최대치로 설정할 때, 일상회화에서 사용되는 어휘는 2천 개, 사회생활에서 사용되는 어휘는 1만 개, 학술적 환경에 노출될 때 사용되는 어휘는 2만 개가 된다.

즉,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일상 회화에서만 사람을 접하기에 2천 개의 어휘 내에서 사람을 접한다. 고로 간단한 회화를 통해서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듯 보인다.

다만 일상회화만 능숙한 사람보다 학술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어휘 면에서는 10배나 문해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와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서 비슷한 동년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간단한 식사와 일상 이야기를 나눈 학생과, 꽤 복잡한 사업에 관한 이야기, 정치에 관한 이야기, 경제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집에서는 그 차이가 서서히 벌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상 회화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접할 수 있고 사회적 회화는 공문이나 낯선이 즉 외부 활동으로 접할 수 있다. 반면 '학술적 언어'는 '책'으로 밖에 접할 수가 없다.

서로가 모두 다른 세상을 살면서 5살이 되고, 10살이되고 19살이 된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평가'라는 시험에서 '문해력 평가'를 받는다.

'수능'은 고유명사처럼 쓰여지고 있지만 사실 '대학 수학 능력 평가'다. 이 시험에 쓰여진 '한문'을 보면 받을 수, 배울 학의 한자가 쓰여진다. 시험의 취지를 보면 '대학에서 학문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당연히 '학술적 어휘'가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은 분명 중학교, 고등학교'와는 다른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네는 기초 교육과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둔다. 이미 있는 지식에 대해 학습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다만 대학은 다르다. 대학은 더 고차원적인 목적으로 학문적 탐구와 전문성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다. '학교'라는 명칭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중등, 고등 대학'을 비슷하게 여기지만 영어권에서는 초중고에 붙는 School이라는 명사가 대학부터는 사라진다. 완전히 다른 기관이라는 의미다.

대학은 전통적으로 두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전문가를 양성하고 연구한다. 고로 이미 완성된 인재를 선발한다. 단순히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활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로 '학술적 어휘력'이 완성된 이를 선발하는 것이 대학의 목적에 맞기도 하다.

가끔 10여 년을 공부하고도 외국인과 말 한마디 못하는 영어 실력을 말하면서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한다. 다만 한국의 영어 교육은 '일상 회화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학술적 문어체 이해력'이 목표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더 고급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가 학술적 어휘력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축구선수는 기본적 소양과 축구선수가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 되고, 피아니스트 역시 기본적 소양과 피아니스트가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 된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지나치게 학구열이 높아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독일어'를 잘할 필요가 없듯.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학술적 어휘력'에 뛰어날 필요도 없다.

다만 '일상회화'로 전달 가능한 정보가 비교적 희소성이 적기 때문에 '고급 직업군'으로 갈수록 '학술 어휘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고대인들은 '농사'나 '사냥'을 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지만 당장 다음 달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천문학적 지식'은 '일상 회화'로 구전되기 어려웠던 것과 비슷하다. 지배층이 문자를 지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점차 고도의 기술 산업으로 변하면서 우리 사회 직업군도 대체로 '고학력자'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학술 어휘력'을 키우는 것이 역설적으로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어휘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제는 '문해력'에 대한 여러 걱정이 나오기도 한다. 이 말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그 무엇보다 희귀하고 값진 능력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회가 계속해서 뒤로 간다.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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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사춘기 상담소 - 한번 어긋나면 평생 멀어질까 두려운 요즘 엄마를 위한 관계 수업
이정아 지음 / 현대지성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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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아이는 독립을 원하면서 동시에 의지할 곳을 찾는다. 부모는 통제하려 하면서도 자녀가 자율성을 갖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상반된 욕구는 서로가 다른 방향을 향하는 나침반처럼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가만보면 '사춘기'라는 용어는 '인간'에게만 사용된다. '사춘기'는 생물학적 용어는 아니다. 고양이가 사춘기에 걸렸다거나 참새가 사춘기에 걸렸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사춘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춘기라는 용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에 해당되는 '청소년'들이 자신을 사춘기라고 명치하지 않는다.

"내가 요즘 사춘기라서 기분이 좀 왔다갔다 해."

"내가 요즘 사춘기라서 어른들 하는 말에 반항하고 싶어져."

이런 식의 대화가 청소년들 사이에 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사춘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부모세대다.

최초에 나부터 그렇다. 10대 시절을 보내면서 스스로 '사춘기니까'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생물학적, 심리적 으로 급격히 변화 시기라는 인지도 크지 않다.

인간의 삶 전체를 봤을 때,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사춘기'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춘기 이후에도 인간은 꾸준하게 변해간다. 성인기에도 신체적 능력의 정점과 함께 정신적 안정이나 변화가 올 수 있고, 중년기와 노년기에는 신체의 노화와 함께 또다른 생물학적,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인간의 변화는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경험이다.

그저 호르몬 문제라고 하기에도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사춘기라 할 수 있는 여러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어떤 이들은 우울증을 겪고, 어떤 이들은 갑상선 문제로 다양한 호르몬 문제를 겪는다. 여러 관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고로 사춘기 시절의 누군가만 특별하게 여길 것이 아니다.

아이를 가지면 다양한 '훈련'이 가능하다. 말하지 못하는 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단순 반복하는 유튜브 채널을 멍때리고 보게되며, 다음달이면 쓰레기통에 들어갈 플라스틱 장난감을 잔뜩 카트에 싣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때로는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모든게 우리를 인격적으로 수양하게 하는 큰 훈련이다.

'사춘기 변화'는 우리가 형성할 다양한 관계들 중 만날 하나의 유형일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시간씩 큰소리로 울어대며 그자리에서 대소변을 봐 버리는 아무개도 거쳐오지 않았던가. 그에비하면 꽤 양반인 편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아버지는 지체 높은 양반이었다. 허준은 그의 얼자로써 양반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각본상이겠지만 허준의 아버지는 용천군수로 얼자 허준을 나무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같은 일생을 놓고 봤을 때, 비슷한 동년배로써 '허준'의 사회적, 역사적 지위가 훨씬 높아진다.

과연 먼저 태어난 것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할 수 없는 이유다. 스탈린은 테레사 수녀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으나,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할 수 없고 이완용은 안중근보다 스무살 연장자였다.

사춘기라고 하는 시기는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정도다. 이 시기에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아이'보다 '부모'에 가깝다. 이 시기에 오히려 관계 정리를 먼저 마친 쪽이 아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재설정하여 스스로 독립할 준비를 마친다.

다만 부모의 입장에서 이 관계 재설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리고 귀엽던 순종적인 자녀의 상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거나, 나쁜 친구와 사귀거나 사실 부모의 관여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동물세계에서 육체적으로 성숙한 자식에게 부모는 관여하지 않는다. 때로 다 커버린 자녀가 어디론가 홀연이 떠나더라도, 심지어 공격을 당하거나 위험에 쳐해도 돕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성장보다 배워야 할 문화적, 사회적 성장기간이 더 길다. 이런 간극으로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사춘기'라는 시기가 존재할 뿐이다.

사춘기를 슬기롭게 지나가기 위해서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인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롭게 형성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녀'라고 대하기 보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아보자.

그것은 어쩌면 자녀의 사춘기 상대법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방법일지 모른다.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당히 타협하며 상대의 과제에 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다보면 상대와 나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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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고백 김동식 소설집 4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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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너무 맞는 책이다. '양심고백'은 사실 제목이 의미가 없다. 그저 '김동식 작가'의 단편 모음집 시리즈 중 하나다. 김동식 작가의 책이라면 '회색인간'을 이미 읽었다. 대략 어떤 도서인지 그로 이해가 된다면 그 뒤로부터는 도서의 이름이나 순서는 상관 없어진다.

이책은 아주 짧은 단편 여럿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보다 더 짧은 이런 짧은 소설을 '엽편소설'이라 부른다. 요즘처럼 빠른 컨텐츠 소비가 시대적인 흐름이 된 세상에 '김동식 작가'의 엽편소설은 제격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긴 장편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흐름이 묵직한 장편소설을 꺼내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를 알게 된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마다 발생하는 단편적인 사건들은 극의 흐름을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 단 짧으면 두 세장, 길면 그 두 세배가 되는 소설은 짧게 몰입하고 짧게 쉴 수 있어 좋다.

사람의 죽음에 평점이 매겨지는 소설은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이다.

사람이 죽을 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점'이 매겨지며 사람이 이로써 어떻게 행동양식을 바꾸는지는 꽤 흥미롭다. 이런 룰을 만든 '악마' 중 '악마'는 다시 규칙을 '태어나면서 평점'으로 바꾸면서 더 악마스러운 결과가 생긴다는 내용도 그렇다.

자동차나 물건, 빌딩 등의 것들이 아기로 바뀐다는 설정도 너무 흥미롭다. 어떤 소설은 예측불가고 어떤 소설은 예측 가능한데도 재미있다. 소설을 한참 읽다가 '김동식 작가'의 다른 소설도 검색해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기마다 잘 읽히는 책들이 있다. 어떤 시기에는 '철학책'에 관심이 있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그런 책만 읽고, 어떤 경우에는 '역사책', 어떤 경우에는 '추리소설'만 줄줄이 찾아 읽는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최근에는 딱히 꽂혀 있는 주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지나치게 바쁜 탓도 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개인적으로 무언가에 골똘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시간도 절대적으로 줄어 들었다. 요즘은 다시 잡식성으로 독서의 방향이 생겼다. 개중 짧게 읽을 수 있는 '김동식 작가'의 책을 찬찬히 더 읽어 볼 것 같다.

Calm 어플을 다시 결제했다. Calm 어플은 '코끼리 어플'과 더불어 내가 결제하고 있는 명상 어플리케이션이다. 결제한 이유는 아이에게 '명상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오늘부터 세션을 시작했고 하나씩 매일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은 하루를 보내면서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데 그로인해 신경이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다. 한창 싸우고 떠들 때이긴 하지만 아이에게 '명상'을 가르쳐서 자신의 스트레스나 감정을 다를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 생각은 오래전 부터 하던 생각인데,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보다가 문뜩 다시 하게 됐다.

직접적으로 명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소설의 후반부에는 '자살'이나 '우울'에 관한 키워드가 등장한다. 짧은 소설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치고,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중요하다.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뛰어놀게 만들고 운동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아이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 무엇보다도 '자살'로 죽을 확률이 그 어느 질병보다 많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생존'하는 것 아닌가.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다. 어떻게 행복해져야 하는가. 그것을 가르치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생존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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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을 보면 신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 '천지'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빛과 어둠'이 만들어진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는 '노자 사상'과 맥락이 같다. 노자는 세상을 '음양'으로 보았다. 어떻게 세상을 딱 둘로 나눠서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노자'가 말한 '음양'은 '정확히 양분된 음과 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찬물에 더운 물을 부으면 찬물과 더운물은 섞인다. 이를 '대류현상'이라고 말한다. 밀도가 높은 물은 위로 올라가고, 밀도가 낮은 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고로 분자 단위에서 '섞임'이 발생한다.

찬물은 밀도가 높고 더운물은 밀도가 낮다. 고로 더운물은 위로 올라가고, 찬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분자 단위로 섞이는 이런 대류 현상에 정확한 구분점은 없다. 어디서부터 찬물이고 어디서부터 더운물인지 알 수 없는 층이 생기고 그 층은 미세하게 '그라데이션'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섞이지 않은 '극도로 차가운 부분'과 '극도로 뜨거운 부분'이 존재한다. 고로 '물'이라는 '전체'를 볼 때, '물'은 '하나'이면서, '찬물'과 '더운물'로 양분되어 있다. 더운물과 찬물은 정반대의 성질이지만 서로 맞닿아 있다. 정확히 반대 성질로 분류됐지만 섞이고 있다. 하나이지만 둘이다.

태극의 모양을 보면 위로 붉은색, 아래로 파란색의 모양이 보인다. 태극은 커다란 두극으로 이뤄진 형태다. 정확히 양분되지 않고 들어간 부분과 나온 부분이 존재한다. 서서히 섞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하던 '석빙고'를 보면 돔형 만들어졌다. 그리고 가장 윗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이런 디자인은 '음양'의 성질을 잘 이용한 예시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공기는 아래로 내려간다. 석빙고의 작은 구멍은 위로 올라가려는 더운 공기를 배출하는 곳이며 찬공기는 아래로 떨어진다.

물은 본래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올라간는 성질이 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촛불을 켜면 불꽃은 위로 얇게 솟구쳐 올라간다. 반대로 강과 계곡은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불의 올라가려는 성질과 물의 떨어지는 성질 또한 '음양'의 원리로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이라는 의미가 있다. '수승화강'은 물과 불이 가진 이 성질을 의도적으로 균형있게 다루어 몸의 에너지를 순화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아마 '한의학'에서 말하는 개념 중에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지 모른다. 이는 '대표적인 수승화강(水昇火降)'을 적용한 사례다.

양자역학에서 '음과 양'이라는 개념은 꾸준하게 등장한다. 음과 양은 하나를 이루지만 둘이다. 둘이지만 하나이고 섞이지만 분리되어 있다. 분리되어 있지만 섞인다. 가장 먼 두극인 '음극'과 '양극'의 모양을 아주 길게 늘리면 우리는 결국 그것이 하나라는 인지를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다. 서로 강한 응집력을 갖고 있다.

전자와 양성자도 서로 끌어당기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전자는 마이너스, 양성자는 플러스의 성질을 갖는다. 다만 이 둘은 서로 하나를 이루어 원자의 형태가 된다. 이 둘을 억지로 떼어 놓으면 마치 자석처럼 강하게 다시 붙으려는 성질을 갖는다. 이때 이 둘의 질량이 아무리 가볍더라도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달려가는 속도가 빛에 가까워지면 E=MC^에 의해 무한대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것이 핵에너지다.

원자를 다시 말하자면 마이너스인 전자와 플러스인 양성자가 있다. 이 둘이 적정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안정적인 상태다. 그러다 두 개의 원자가 서로 달라 붙다가 하나의 마이너스를 공유한 두 개의 플러스가 될 때가 있다. 다시말해 '마이너스'는 플러스와 결합하는데, 마이너스가 꼭 각각 하나씩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로 어떤 원자는 둘이 결합하며 하나의 마이너스를 공유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 역할을 하던 '전자'가 이 결합에서 소외된다. 이 전자는 이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를 '자유전자'라고 부른다. 이 자유전자는 당연히 '음'의 성질을 갖는다. 고로 이는 '양'으로 이동하려고 흐른다. 이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다.

'음양론'에 의하면 모든 것은 이처럼 '음과 양'의 조화로 구성되고 이로써 세상이 규칙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규칙이라는 것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의 언어란 인식할 수 있는 단위로 대상을 일반화하고 쪼개어 표현한다. 인간의 언어가 가진 한계다. 인간의 언어는 매우 불완전하다. 빗방울이 바다에 떨어지면 어느 순간부터 빗방울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강물이 바다와 합쳐지면 어디서부터가 바다고 어디서부터가 강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는 흐르고 섞이고 구분된다.

이처럼 음과 양의 성질은 명확하게 '언어화' 할 수 없다. 고로 이를 언어화 한다면 더이상 이 '성질'은 이 '성질'이 아닌 것이 된다. 이 성질을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라고 부른다. 우주의 이치, 만물의 성질. 즉 '도'이다.

'도가도 비상도'

노자의 첫문장이다.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더이상 도가 아니다.'

방금 나는 불완전한 우리의 언어로 '도'를 정의했다. 고로 이 '도'는 '도'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대략의 형태를 일반적인 모습으로 인지했다.

우주는 이처럼 '도'라는 '원리'와 '성질', '방식'으로 작동된다. 모든 것은 조화로운 상태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가. 그렇지 않다. 노자는 '도'라는 기본 원리를 통해,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에 끌리는 것, 왕과 노예는 서로가 극에 위치하지만 섞이고 분열되어 있으며 흐른다는 내용.

이처럼 인간 사회나 인간의 성질이 도를 닮아, '자연스러운 무위의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이처럼 '자연의 도'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덕'이라고 부른다. 노자는 '도'에 관한 글과 '덕'에 관한 짧은 글을 남겼는데 이를 도경과 덕경이라고 부른다. 이 둘을 합쳐 '도덕경'이라 부른다.

도덕경은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고 모든 것은 우주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기에 '도덕경'을 읽는 것은 '경제, 사회, 사랑, 우정, 사업, 가족, 공부, 운동, 건강' 등 모든 일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도를 알고 적용하는 일을 '덕'이라 한다.

고로 '덕'이 많은자는 '도'를 아는 자이다. '도'를 아는 자는 '덕'이 많다. 덕이 많은자는 우주의 원리와 이치를 알고 있으며 이들은 그 작동방식에 맞게 순리적인 삶을 산다.

우주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알고 있다면 세상에 황당한 일은 하나 없고, 불합리한 일도 없으며 발생하는 모든 일에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최초 3분의 1까지 너무 재밌게 읽다가 그 이후로는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인식이 확장되도록 하는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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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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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직 완주하지 못했지만 '모던패밀리'라는 미국 드라마의 컨셉을 좋아한다. '모던패밀리'를 알게 된 것은 유학 시절이다.

시트콤 '프랜즈'를 완주하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찾던 중이었다. 함께 유학 중인 친구가 '모던패밀리'를 추천했다. 얼마보다 멈췄다. '배경 웃음 소리'가 없어서다. 시트콤을 보면 웃음 포인트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삽입되는 경우가 있다. '모던패밀리'의 경우에는 이 소리가 없다. 고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 찾기 어려웠다. 당시 배경에 깔리는 '웃음 소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던 참이다. 강제 웃음을 유도 한다는 이야기부터 '웃음'이라는 주관적인 포인트를 공급자가 결정한다는 꽤 철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다만 웃기 위해 보는 프로그램에 '철학'은 좀 빼고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공급자가 '웃음 포인트'를 결정해주는 드라마를 선호하긴 했다.

그 뒤로도' 모던패밀리'는 한참 내 관심 밖이었다. 단순히 배경으로 깔리는 웃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당시 드라마의 소재가 상식 밖이라고 여겼다. 드라마에는 일반적인 가족이 나오지 않는다.

젊은 이민자 여성과 나이든 미국 남편. 동성커플. 입양. 이혼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이 소개된다. 당시 드라마가 짜놓은 독특한 가족의 형태가 참 '미국스럽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이란 어떤 형태일까.

아마 중형 세단 자동차를 소유한 4인 가족.

아버지의 직업은 화이트컬러에, 어머니는 전업주부.

수도권 30평 대 아파트.

거실에 커다란 쇼파 그리고 TV.

저녁이 되면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먹으며 웃음꽃이 피는, 주말에는 온 가족이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가는 그런 가정일까.

학창시절 만화, 드라마, 책에서 보던 가정은 다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아니었다. 해가 지면 아버지, 어머니는 땀과 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돌아오셨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좌식 식탁에 앉아 어제 먹던 찌개를 데워 먹었고 후식으로 '요플레'를 따먹었다. 아버지는 다먹은 밥사발에 보리차를 담아서 드셨고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으며 된장찌개가 대충 묻은 수저를 핥아 먹고 '요플레'를 마저 먹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께서 소유하셨던 '감귤보관 창고'를 개조한 집이었다. 꽤 벌레가 자주 출몰하고 가끔 물이 새기도 했다. 변기에 앉을 때는 귀뚜리마, 바퀴벌레, 민달팽이가 변기에 붙어 있지는 않은지 항상 살펴야 했고 할머니댁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우리집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아버지께서 양복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시면 어머니께서 넥타이를 고쳐주는 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없다. 집은 꽤 화목한 편이었고 나름 모자람 없이 자랐다.

아마 '공자'가 말한 주어진 위치와 역할이 있다는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사람'과 '지방사람'은 원래 다르다는 인식.

고로 나와 서울 사람은 철저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일반적인 가정은 일반적인 가정답게

우리가족은 그냥 우리가족답게.

고등학교를 올라갔다. 우리집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한 채 다른 아이들을 바라 보았다. 나처럼 특수한 사람은 적고 모두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여겼다. 모두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입을 닫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평온해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됐다. 생각보다 편부모가 많았고, 생각보다 동성애가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폭력적인 어머니도 판타지 속 이야기가 이었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 재혼한 아버지의 자녀, 재혼한 어머니의 자녀와 형제 자매가 되는 일, 서로가 꽤 불편한 관계가 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유학 시절에 알고 지내던 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냥 작게 회사를 운영하시는 평범한 집'이라고 했다

그 '작게'라는 모호한 '부사'가 직원 300명이었다는 사실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직원 300명이 작아?'

형은 나의 놀람에 놀랐다. 왜 그런 포인트에 놀라는지를 모르는 눈치였다.

'일반적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평균을 닮았다. 우스께 소리로, 동네 마을 버스에 빌게이츠가 타면 그 버스는 평균적으로 억만장자들이 탄 버스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저 환상뿐인 '일반적인'이라는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은 '알콜중독 아내', '동성애자 남편'과 그의 애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재로 보면 자극적인 듯 보이는 것이, '모던 패밀리'를 닮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떤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나의 삶이 굉장히 특수한 삶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특수한 삶을 살아가며 그 평균을 내어 '환상'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역시 '동성애'를 느끼고, 누군가는 편부모를 가졌으며, 누군가는 이혼이나 사별을 겪고, 누군가는 아이를 잃는다.

최대한 가장 그럴싸한 겉모습만 보여주며 민낯은 이렇듯 혼자만 가지고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위로한다.

'저 사람은 과연 어떤 민낯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까'

마치 아무리 잘나고 멋진 사람이라도 그런 동정심이 생기면, 질투나 부러움, 미움 등의 감정이 사라진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나. 나나 너나.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고 나면 생각한다.

다 고만고만한 인간등리 만드는 세상이다, 연민이 들고나면 누군가를 미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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