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필독서 시리즈 24
여르미 지음 / 센시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1위, 필명 여르미(류지아 작가)의 추천 인문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내 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은 어떤 책들이 있을까.

-'여르미 필독서' 중 나또한 추천하는 도서(읽은책)

1. '노자'의 '도덕경'

2.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3.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4. '공자'의 '논어'

5.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6.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7.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9. '알랭 드 보통'의 '불안'

10.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11.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여르미 필독서' 중 읽지 않은 도서(읽을 책)

1.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2.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3.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4.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5.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6.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7.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8.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9.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10.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

11.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여르미 필독서' 중 언급되지 않은 개인 추천 도서

1. '키스 휴스턴'의 '책의 책'

2.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3.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4.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5.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6. '팀 마샬'의 '지리의 힘'

7. '폴 센'의 '아인슈타인의 냉장고'

8. '이순칠'의 '퀀텀의 세계'

9. '도올'의 '노자가 옳았다'

10.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11. '헤르만 파르칭거'의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12. '바트 어만'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13.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14. '백승만' 분자 조각가들'

15.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

16.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작가는 완독하지 말고 순서대로 읽지 않길 바랬으나 순서대로 완독했다. 2025년 읽을 책 리스트가 꽤 정리됐다.)

성인 대부분이 1년 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1년에 한 권씩 읽어도 어떤 사람은 2~30년이 걸릴지 모른다.

고로, 만약 우리 아이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자란다?

혹은 어떤 사람이 죽을 때까지 딱 4권만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추천할 것 같다.

'노자', '사피엔스', '코스모스', '총균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 - ‘갓민애’ 교수의 초등 국어 달인 만들기
나민애 지음 / 김영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초 학부모가 되면서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졌다. 2024년, 그 이유로 교육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유튜브 영상도 보고, 관련 글도 자주 쓰게 됐다. 글 상당수가 '교육'으로 향하다보니 알게 됐다.

모두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노출이 잦은 전문가들도 익숙해졌다. 마치 초면이지만 구면인듯 하다. 나민애 교수도 그렇다.

여하튼 꽤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느낀 바는 결국은 '문해력'이다. 다수의 전문가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도,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도, 학교 선생님, 학원 원장, 작가 할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가 있으니 '문해력'이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한자'다. '영어'를 가르치는 '조정식' 강사도 만약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첫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자'라고 답했다.

대한민국 성인 열명 중 여섯이 1년에 책 한권 읽지 않는 나라다. 학부모 대부분이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아마 실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가 책을 읽기 위해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이 많다. 평생 책 가까이 해보지 않던 내 또래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제 일과시간 외의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눈을 뜨지마자 '책'을 먼저 잡는다. 아이의 머리를 말릴 때도 책을 읽는다. 특별한 노력없이 나에게는 아이에게 물려줄 좋은 습관을 하나 모범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안심이다.

아이와 매주 수요일 '책의 날'로 정했다. 2주에 한 번은 반드시 도서관을 간다. 2주 간 읽을 30권의 책을 수레에 끌고 온다. 다 못읽어도 좋다. 그저 가져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느끼는 것은 구매한 책을 모두 다 읽지 않는다는 나의 습관에서이다. 책을 고르는 순간도 '독서 활동'의 일부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직접 고르고 읽고 싶으면 읽되, 읽지 않으면 그대로 반납한다. 같은 책을 두 번 읽어도 되고, 세번 읽어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30권 중에 한 권만 무한 반복하다가 29권을 그대로 반납한다.

도서관에 가지 않는 2주에 한 번은 '서점'을 간다. 아이의 학교는 매주 수요일이 4교시다.

유일하게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매주 수요일마다 결석한다. 이날은 아이에게 주말보다 기다려지는 날이다.

이날, 아이는 모아둔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도너츠를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실컷한다. 새로운 신발을 사거나, 옷구경도 이날간다. '이날'의 공식명칭은 '도서관 가는 날'이다. 아이는 '도서관 가는 날'을 주말보다 손꼽아 기다린다.

도서관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무릎 위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무릎에서 벗어나 도서 검색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시 얼마가 지나자 '학습만화' 앞에 서성인다.

지금은 학습만화와 동화책을 반반 가지고 와서 한참을 읽는다.

'나민애 교수'의 글은 지금껏 찾아보던 다른 여타 초등 교육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질'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독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기 위해 읽었다기보다 이미 행하는 일에 확신을 심기 위해서다.

가끔 교육에 대한 철학이 흔들릴 때가 있다. 역시 이것저것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사실 뭐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어'가 무조건 중요하다. '국영수'라는 학습 과목으로 여겨서 그렇지 사실 국어는 '수학이나 영어'처럼 하나의 과목이라기 보다 모든 학습의 '근간'이지 않는가.

숫자를 모르고 어떻게 수학을 배우고, 알파벳을 모르고 어떻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모든 학습에는 '국어'가 근간이 된다. 고로 책읽기를 넘어설 어떤 학습법도 존재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종이 질감'이 있다.

'더 인간적인 건축'은 아마 '벌크 페이퍼'로 만들어진 종이 같다. 겉보기에는 벽돌책처럼 보이지만 가볍고 두께감이 있으며 흐릿한 질감이 신문지를 읽는 것처럼 눈이 편하다.

이런 류의 종이는 책을 펴고 손가락에 만져지는 감촉부터 기분 좋게 한다. 책을 펼때마다 '훅'하고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종이 냄새도 좋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 '한가지' 이유인 것 같다.

'향수'

해외에서 10년 간 거주하면서 다른 '한국인'과 다른 점이라면 참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찾았다.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책욕심'은 왜 그렇게 많은지 영문으로 된 다양한 책을 구경하고 구매하고 오는 것이 취미였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그때 구매한 대부분의 책은 처분했지만 그 향수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의 책과 해외책의 차이점은 아주 분명하다. 한국의 책은 화려하고 묵직하고 반들거린다. 한국인들이 '예쁜 것', '보여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반대로 해외책은 '가볍고', '지루하다' 책표지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안쓰는 듯 하다. 대부분 한국 책들은 '양장본'이 기본처럼 출판되지만 '원서'들은 책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며 '수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양장본'을 선호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

벌크지의 특징이러면 눈이 너무 편하다. 향이 좋다. 가볍다. 촉감이 좋다.

'토마스 헤더윅'의 '더 인간적인 건축'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인간적인 건축은 현대 건축의 따분함에 대해 말한다. 직선, 반듯함, 일률적임 등 현대 건축이 갖고 있는 따분함을 이야기한다.

책은 '건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책의 구성을 보면 '책' 자체가 주는 매력이 훨씬 크다. 이는 일본의 '킨즈키'와 닮았다.

일본에는 '킨즈키'라고 하는 문화가 있다. '킨즈키'는 깨진 도자기를 금과 옻으로 수리하여 '금'이 난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 요소를 주는 것이다.

일본 문화는 굉장히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건축과 정원에서는 동양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안정적', '인위적', '완전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도 '미완'을 좋아한다. 예전 일본인 지인에게 듣기에 안짱다리나 덧니, 얼굴점, 짝눈, 작은 키가 매력이라고 했다.

한국은 건축과 정원에서 비교적 '자연적'이고, '불완전성'을 가지면서 '깨끗한 피부, 대칭된 얼굴, 큰키 등을 선호한다. 문화에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 '미완'이 주는 '자연스러움'이 '인간적인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독특한 생각이든 것이 있다. '인간적인'이라는 형용사와 '인위적인'이라는 형용사가 가진 특징이다. 둘은 얼핏 비슷하지만 다르다. 인위적인 건축은 직선과 단조로움, 일률적인 특징이 있다. 반면 인간적인 건축은 '곡선', '다양성', '복잡함'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가진 미에 대한 모순처럼 '인간'이 가진 다양한 모습이 모순을 만들어내는듯 하다.

책에는 굉장히 다양한 장난스러움이 묻어 있다. 분명 번역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난스러움을 그대로 가져온 '출판사'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진다.

가령 단조로움이라는 말을 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조로움'이라고 표현한다거나 손글씨로 적혀져 있는 다양한 주석들도 재밌다.

글씨가 삐뚤어져 있거나 갑자기 세로로 나오기도하고 그림에 맞춰 글이 갈려져 있디고 하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맛이 분명하게 있다.

책은 얼핏 두껍지만 대부분이 사진과 그림이다. 쉽게 넘어간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물리적 책에 백 퍼센트 만족하게 하는 책이다. 아마 책이나 건축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책을 접하면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이 더 많아지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읽었다. 그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고양이가 되어 '인간'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고양이 눈에 보여지는 '인간'은 어떨까. '눈'이라는 것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 있다. 너와 내가 모두 존재하듯, 그들도 존재한다.

어느 빌런이 우주선을 타고 사람들을 해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렇다.

'빌런이 지구를 공격하는 것은 지극히 지구를 위한 일이다.'

인간은 '지구'를 자신과 동일시 한다. 다만 인간은 지구의 대표가 아니다. 실제 '지구 온난화'로 피해를 입는 것은 '지구'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가장큰 피해를 걱정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따뜻해진 지구에는 많은 생물종이 사라지겠지만, 더 많은 종이 생존할 수도 있다.

장난삼아 개미집을 부수거나 숲에 있는 벌집에 화염방사기로 불태우는 일은 우주 빌런이 지구를 침공한 것만큼이나 개미와 벌에게도 재앙이다.

'저 빌런'은 사실 어쩌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히어로'와 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예시다. 분명한 것은 이 땅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인듯 하지만 인간이 이땅에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에 가깝다.

농작물을 망치는 '맷돼지'는 2000만년전 부터 존재했다. 기껏해봐야 200만년이 고작되는 '인간'이 '어디 내 땅에 들어와!'라며 총을 쏘는 행위는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소설은 '천년집사'에 관한 소개를 먼저 한다. 천년집사는 전설처럼 내려 오는 이야기다. 천 년에 한번,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나선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고덕은 형사다. 범죄와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우연히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다 고양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소재가 독특했다. '해리포터'를 보면 뱀과 해리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장면과는 꽤 다른 서사다. 이 능력은 고덕을 고양이의 세계로 이끈다. 동시에 고덕은 자신이 평소 보지 못했던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소설의 장점이라면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은 '본인'이라고 특정한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밖에 살지 못한다. 이 단점은 스스로를 독단적인 인물로 만든다. 다만 소설을 읽을 때, 남성은 여성이 될수도 있고, 여성은 남성이 될수도 있다. 또한 전지적인 시점에서 신이 되기도 하고, 제3의 시선도 갖게 된다.

'지구의 수많은 종'을 대표하는 우주 '빌런'과 '지구파괴'의 주동자 '인간'을 대표 '히어로'의 싸움에서 누구를 지지하는가. 시선의 확장은 이처럼 같은 장면을 보고도 시선을 다르게 만든다.

슈퍼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이렇게 살려진 '인간'은 매 세끼마다 새로운 생명을 접시에 올린다. 엄청난 탄소배출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버리며 더 많은 생명을 취하고 앗아간다.

알을 깨자마자 갓 태어난 병아리의 암수를 분리하여 한 쪽을 분쇄기에 바로 갈아버린다. 다른 한쪽은 얼굴과 엉덩이만 뚫린 장소에 밀어 넣고 알만 낳도록 한다. 그 효용이 끝나면 뜨거운 물에 담궈 털을 뽑고 식물을 담근 끓는 물에 살갖을 데워 찢어먹어 버린다. 이 잔혹성을 간단히 풀기만 해도 사악한 악마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간의 시점으로 맛있는 요리일뿐이다.

예전에 한 일본인이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라는 영상을 올린 적 있다. '카루비'라는 한국식 이름을 짓고 100일 간 산책도 하고 애정을 쏟는다. 다만 이 애완 돼지는 100일 뒤에 잡아 먹힐 예정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불과 몇 시간 전, 몇 일 전 혹은 방금 전까지 맛있는 식사 메뉴로 '이름 모를 돼지'를 먹고서 유튜브를 비난했다. '가여운 돼지'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행위를 즉각 멈추라고 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사랑'을 주고, 이름을 준다는 행위는 '신의 권력'과 같다. 인간의 '사랑'과 '이름'을 부여 받은 돼지는 '죽지 않을 수 있는 정당성'을 일부 부여 받은 것이다. 인간은 어떤 대상은 가엽게 여기고, 어떤 같은 대상은 무심하게 여기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고양이들은 고덕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면서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천년 집사의 과정이 단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천년 집사는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소설은 단순 판타지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명'이라는 주제는 꽤 복잡하다. 언젠가 TV에서 인간이 '소'와 '돼지'를 먹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익숙해진 관습과 사고방식으로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시선을 얻게 됐다. '돼지'라면 살갖이 썰려서 마트 진열대 위에 놓여 있어야하고 같은 건물에는 귀엽게 생긴 살아 있는 동물이 주인을 기다린다. 인간이 선별적으로 '필요'에 의해 살리고 죽이고 먹이고 사랑한다.

우리의 삶은 어쨌건 어떤 다른 생명을 취한, 그 위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언제나 '모순'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생명의 존엄을 해하며 생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을 언제나 해야한다. 제3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늦기 전에 공부정서를 키워야 합니다
김선호 지음 / 길벗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던 피터슨'의 '열두 가지 인생의 법칙'을 보면 '훈육'에 관해 나온다. 교수는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적당한 훈육과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폭력적 체벌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체벌'과 '훈육'은 필수라고 말한다. 사랑을 핑계로 훈육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부모로써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한 권의 책에서 한 줄의 문장만 건질 수 있어도 그 책은 좋은 책이다. '열두 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솔직히 다른 부분은 기억 나질 않는다. 언급한 그 부분이 꽤 충격적이었다.

왜 그런가.

당연한 '본질'을 말해서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에 대한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확신이 덜 할수록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다. 본질을 두고 본질보다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그것이 본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좋은 성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과서 위주의 예습 복습, 분명한 목표 의식, 엉덩이를 붙이고 오랫동안 앉아 있을 만한 인내력. 그것이 중요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근검절약, 자기계발을 통한 능력 향상, 좋은 투자처를 향한 꾸준한 장기투자. 그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더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다. 더 획기적이고 빠르고 쉬운 방법. 그런 것들은 실제로 더 문명화 된 사회를 만들었고 더 고도화 된 기술을 발면하긴 했으나 육아, 건강, 공부 따위에 갖다 붙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계발에 해당하는데, 계발은 지속, 빈번, 반복이라는 꽤 고전적인 방법이 정답일 뿐이다.

'지켜야 할 본질적 핵심'이 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획기적인 방법으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역사'와 '성공 신화들'을 보며 우리는 기존 방법에 회의감을 느낀다.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보니 본질이 흔들린다. '훈육'과 '체벌'하지말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 부모는 자책과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가 가질 상처를 무기로 '부모'가 자책하면 그것은 아이에게 좋은 일인가.

솔직히 아이를 키우며 목소리 키우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육아를 해보지 않은 '전문가'들이 혹은 자신의 육아에서도 달성하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부모'들의 죄책감을 유도한다.

혹여라도 목소리가 커진다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자책을 한다. 그것은 '보육자'로써 자기 확신이 떨어지는 목소리다. 자기 확신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부모는 원칙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단호한 원칙을 기준하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좋은 부모'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다수의 부모가 아이를 방관한다.

사랑과 공감과 이해.

말은 좋다.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물건을 훔친 아이에게 '우리 아이가 물건을 훔치고 싶었구나.'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차도 위에서 노는 아이에게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다면 아이를 걷어차서라도 일단 차도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 위급한 상황에 사랑의 눈빛과 다정다감한 목소리는 필요없다.

김선호 작가의 '늦기 전에 공부 정서를 키워야 합니다'에는 '조던 피터스'와 같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고로 속이 후련하다. 모두가 알지만 그렇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솔직히 우리는 신화를 기대한다.

선행학습 없이 '서울대'에 입학한 아이, 스스로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야기 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국영수 과목에서 1등급 비율이 높은 아이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고 사교육 참여율도 높다. 선행 비율도 상당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초등시절에 두각을 나타내고 초등에 두각이 나타난 아이들은 중등, 고등에서 여지없이 더 승승장구한다.

미디어는 꼴등이 1등으로 졸업한 이야기,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입학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다만 '통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현실 데이터와 통계는 이상적인 동화를 부정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과정을 선행한 이들은 이미 차별화된 학습환경을 누린다. 단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로 작가, PD, 프로듀서들은 '팔릴만한 이야기'를 싣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진리란 부정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막대한 '학습량'은 어린시절부터 수반되야 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에서 중학교부터 스마트폰을 뺏고 성적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가 당황한 요구다.

과도한 욕심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기본에 충실히 인내심을 가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이기지 못한다. 인간의 육아는 다른 동물과 다르다. 육아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하나의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를 육' 여섯이 필요하다.

지식과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도덕과 윤리를 심어주는 덕육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체육

풍요로운 정서를 기르는 심육

세상의 아름다움을 탐미할 수 있는 미육

타인과 어울리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육이다.

고로

'공부 안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균형적인 육아가 아니다.

육아는 사람을 고르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학문을 기르기 위해 정서를 망쳐서도 안되고, 정서를 기르기 위해 학문을 망쳐서도 안도니다.

균형적인 육아를 위해서는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기르려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로 그것은 '요령'이 아니라 쌓이는 하루 하루의 일상, 즉 본질이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