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동식 소설집 5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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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와 릴스가 중독성 있다더니 '김동식 작가'의 '엽편소설'이 나에게 그러하다. 짧게 끊어지는 소설은 '이북'으로 읽기 쉽고, 자기 전이나 짜투리 시간에 읽기 좋다. 두께가 있는 책들은 책장을 펴기 전에 대략의 부담을 갖고 시작하는 반면 김동식 작가의 소설은 몇 장 읽다가 소재가 끌리지 않으면 한 편을 통채로 넘겨도 괜찮다.

흥미있던 소재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범죄 유전자' 편이 흥미로웠다. 해당 소설은 재판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에 관한 소설이다. '범죄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는 '자의'가 아니다. '유전적 문제'는 곧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전개된다. 이 판례는 부유한 권력자가 최초로 만들어 냈고 이후 사회는 '범죄 유전자 소유자'들이 '범법'을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회에는 '범죄유전자'가 우대받는 상황이 생긴다. 최초의 의도와 다르게 '범죄 유전자'는 우월 유전자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점차 '범죄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대략 전개가 어떻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허를 찔렀다. 범죄유전자를 가진 쪽을 '제노사이드'할 것이라고 여겼던 '예상'을 벗어나, '범죄 유전자'를 우월 유전자로 여기는 사회가 된다는 설정이 너무 흥미롭다.

예전 유시민 작가의 영상을 본 적 있다. '책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워딩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글의 유형이 있단다. '이야기'를 쉽게 읽는 사람, '정보글'을 쉽게 읽는 사람, 역사나 인문학글을 쉽게 읽는 사람이 각각 다르다. 고로 자신이 '소설'을 읽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다른 유형의 글을 읽으라는 조언이었다.

나의 경우는 '역사'나 '인문학' 책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 다만 '소설'의 경우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다른 책보다 그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린다.

읽다보면 '주인공'이 누구였더라, '아까 그 인물이 누구였지'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한번 흐름을 놓치고 나면 소설은 그때부터 엉망징창이 되버린다. 과거에는 메모에 소설 관계도를 적으면서 읽기도 했는데 그만큼 정성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짧게 끝나는 초단편소설은 지금처럼 집중력이 과거보다 높지 않을 때, '소설읽기' 훈련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의 소설 주인공 이름은 거의 정해져 있다.

등장인물은 각각 단편마다 다른 캐릭터로 나오지만 이름은 똑같다. 고로 소설 주인공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고 전개도 예측하기 쉽다.

김남우- '남자 주인공 배우'의 줄인말로 대체로 남자주인공이다.

임여우- '여자 주인공 배우'의 줄인말로 대체로 여자주인공이다.

정재준- 대체로 이성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나오는 편이고 논리적인 인물이다.

홍혜화- 혜화역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으로 주도적이고 강한 여성의 캐릭터다.

두석규- 한석규 배우에서 따온 이름으로 대기업 회장, 정치인 등 권력자로 나온다.

공치열- 대체로 열정과 고집이 있는 인물로 나온다.

최무정- 작가 개인의 악연에서 따온 캐릭터로 악역이고 음모와 배신의 캐릭터다.

장진주- 발랄하고 긍정적인 캐릭터로 주변상황을 밝게 만든다.

이름은 보면 임여우는 ㅇㅇㅇ, 정재준은 ㅈㅈㅈ, 홍혜화는 ㅎㅎㅎ, 장진주는 ㅈㅈㅈ처럼 쉽게 지었다. 마치 만화 드래곤볼의 캐릭터 이름이 '야채'이름인 것과 닮았다.

킬링 타임으로 읽기 딱 좋아서 전자책으로 종종 본다. 어쩌면 꽤 애매했던 전자책 용도를 찾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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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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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말도 안되는 행동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선택에서 몇 번의 '감정적 선택'을 한 적 있다. 그 선택은 옳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선택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깨달은 바가 있다. 바로 만족스러운 삶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선택을 하건, 문제는 반드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하는 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 선택을 배워야 하는가. 아니다. '받아드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선택도 '좋다'는 받아들임이 결국 선택 자체를 최선으로 바꾼다.

오른쪽과 왼쪽 중 어떤 선택지가 좋은지 묻는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아무거나' 선택해야 한다. 고심해서 '오른쪽'을 택하나, 고심해서 '왼쪽'을 택하나, 주어진 문제는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가위를 냈다고, 혹은 보를 냈다고 후회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상황은 언제나 '임의'로 주어진다. 결국 바보 같은 선택도 최선의 결과를 숨기고 있고, 최선의 선택도 바보 같은 결과를 숨기고 있다.

세상이 임의로 주어지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너무 고심할 필요가 없다. '가위바위보'는 고심하나 하지 않으나 성공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아무거나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도 받아드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밈'은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 쳐해진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좋아'라고 먼저 말해본다. 모든 선택지를 최선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의 말이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마지막은 '선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했던 도덕적 고민과 내적 갈등은 '선택'을 만들었다. 이성적으로 볼 수 없는 어떤 선택에 누구도 '바보 같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받아드릴 그릇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짧은 분량임에도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에는 오웰상을 수상하며 꽤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

어떤 책은 바로 직후 재독하게 되는데, 두 번을 읽는 것이 곧 하나의 완성체인 것 처럼 그렇다. 대표적으로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그렇다. 교모하게 엮인 플롯과 반전은 완독 후에 저절로 첫 장면으로 가게 만든다.

처음 읽을 때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두 번째부터는 작가가 치밀하게 숨겨둔 복선을 찾아가며 감타나게 된다.

다시 읽으면 소설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 또한 완전히 다른 의미의 이야기가 된다. 클레이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핑거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두번을 읽어야 소설이 완성된다.

이 소설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인 뉴로스를 배경으로 한다. 석탄 상인인 빌 펄롱의 이야기다. 그는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가장이다. 어린 시절에 미혼모였던 어머니와 함께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자랐다. 미시즈 윌슨의 배려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운좋게도 크리스마스에 읽은 이 소설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였다.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고자 했다. 거기서 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만다.

'핑거스미스'처럼 소설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잔잔한 소설에서 갑작스럽게 추리소설처럼 속도감을 갖기 시작한다. 펄롱이 거기서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젊은 여성들이다. 그중 한 소녀는 펄롱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 청을 받아 들아지 않았던 펄롱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 내용을 '아내'인 아이린에게 말한다. 다만 아내는 괜히 수녀원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꽤 인상적이다.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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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 무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HSP를 위한 심리학
최재훈 지음 / 서스테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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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를 하면 INFJ와 INTJ가 반반씩 나온다. 조금 우울해지면 INFJ가, 조금 예민해지면 INTJ가 나온다. F와 T성향이 반반 정도 나오는데 이렇게 나오나, 저렇게 나오나 피곤한 성격은 마찬가지란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지,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가장 많은 조회수가 나온 주제도 MBTI다.

예민하다고 하면 특히 '성격이 더럽다'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외부적으로 '짜증'을 표출 할 수 있는 예민성에 한정된 말이다. 그보다 더 예민하다면 '짜증'마저 삼키는 것이 상황을 둥글둥글 넘어 갈 수 있다는 지혜를 얻게 된다.

Highly Sensitive Person은 말 그대로 '매우 예민한 사람이란 뜻으로 HSP라고 줄여 부른다. HSP는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이 정의한 개념이다. 보통 사람보다 외부적인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그게 완벽한 나다,'

평소 무던한 성격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면서 조금씩 예민해지고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그 아이들의 특징이 말 많은 쌍둥이라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나의 최대 관심사는 '책 읽을 장소', '시간', '환경'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살기 위해 발악하듯 그런 환경을 찾아 다녔다.

키즈카페, 수영장, 카페, 도서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 '수다쟁이'들과 '각각'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 헤매다보니 조금씩 아이들이 성장해간다. 주변에서는 '말 많이 할 때가 좋은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가장 예민해지는 것은 '청각'이다. 가끔 부모님댁을 가면 아무도 보지 않는 TV를 켜놓는 경우가 있다. 집안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야 마음이 편하다는 부모님의 집에는 항상 TV가 켜져 있다.

그러면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빠져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정신적 방전을 시켜 놓는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 TV가 켜져 있다면 반드시 꺼버린다.

이 예민함이 점차 극에 달한다. 단순히 소리를 줄여주는 '노이즈캔슬링' 고가 해드셋을 구매하고, 귀마개는 필수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그냥 평소에도 귀를 막고 살고 싶은 심경이다. 사회 활동에 큰 문제가 없다면 맥스 귀마개를 24시간 착용하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루프'라는 귀마개인데 꽤 고가다. 착용하고 나면 외부에서 귀를 막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며 일상 소음의 데시벨을 낮춰준단다. 고가의 제품이라 아직 구매하진 않았지만 몇 달째 구매를 망설이는 제품 중 하나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청소기 소리', 심지어 형광등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전자기적 소리까지 각종 소음이 정신적으로 고단하게 한다.

뭔가 품격있는 취미를 갖고 싶었던 욕망은 없으나 특히 가사 없는 '클래식 음악' 혹은 '빗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틀어놓고 심지어 나중에는 그것마저 꺼버린다. 2개의 유료 명상 어플리케이션을 구독하고 있고 아주 극단적으로는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적다.

최재훈 작가의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를 보니 HSP의 특성 중 사람을 만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쉽게 지친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면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의 표정, 목소리, 말투 등을 파악하고 그 상황과 사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아주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HSP 성향의 사람들은 꽤 이타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편이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HSP의 사람들을 사람들은 원하고, HSP 사람들은 사람들을 멀리하고자 한단다.

사람을 어떻게 딱 열 두가지 성향으로만 나눌 수 있겠냐만 MBTI에서 내향, 직관, 계획형인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에 사고와 감정이 것이 딱 절반인 만큼 다른 성향보다 더 복잡하고 예민한 듯하다.

T와 F를 구분하는 방법에서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질문을 던지면, '무슨 일 때문에 우울한데?'하는 감정형 반응과 '무슨 빵을 샀어?'하는 사고형 반응이 있단다.

나의 경우는 '우울한데 왜 빵을 사지?'하고 생각하면서 '근데 무슨 일있어?'라고 답할 듯하다.

책에서보니 '타고난 성향'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은 즉, 생긴대로 살라는 의미다.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면서 살라는 의미다. 그러하다. 나름의 내면적 고통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살고 있다. 그러고보면 HSP로 태어난 걸 피할 방법은 없고 받아 들여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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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대전환 -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역사의 시그니처 4
김혜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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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한 친구가 해줬던 말이 있다. 자기는 10살이 넘을 때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과 같이 '세상을 보고 있다고 믿었단다.

친구의 당시 시력은 마이너스 였다. 꽤 엄청난 근시를 갖고 있는 '친구'에게 모든 세상은 '흐릿'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칸트는 여기서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즉, 세상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 안경'이란 생각의 틀 혹은 규칙같은 것이다.

앞서 우리의 '감각기관'의 한계를 확인했다. 즉 우리가 왜곡없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을 넘어선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즉,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 따위들이 있다. 가령 당신이 들고 있는 사과와 내가 들고 있는 사과를 합하면 사과가 두 개가 된다는 사실은 '현상'을 바라보고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보여지는 현상 없이도 머릿속으로 답이 2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성'이라는 도구다.

즉, 보여지는 진실에 왜곡을 인지하고 나면 우리는 '이성'이라는 도구에 의지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인식'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 '도구'의 성능은 매우 중요하다. 고로 '칸트'는 생각했다. 우리가 '본질'을 바라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성'이라는 도구는 과연 완전한가.

그렇게 칸트는 '이성'이라는 도구의 효용을 위해, 그 도구를 시험해보기로 한다. 그것이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는 '이성'을 비판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더 가까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자, 이제 칸트가 보고자 했던 세계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보자.

칸트는 세계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봤다.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세계가 있다. 이것을 '현상'이라고 부른다. '현상'에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다시 사과를 예로 들면 사과는 빨갛고 둥글다. 또한 맛있다. 이것이 밖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 즉 현상이다.

두 번째는 '물자체'다. '물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사과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빨간색이라는 것은 사과 표면에 부딪친 광자 중 일부가 특정 파동으로 우리의 시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는 인지감각이 만들어낸 해석의 결과다. 둥글다는 모양 또한 우리가 공간을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맛도 미뢰 세포가 화학적 전기신호를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그로 이러한 것들은 사과라고 하는 것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사과가 만들어낸 그림자와 같다. 그저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물자체'란 무엇인가. 해석의 여부와 상관없이, 사과가 가진 그 본질 자체를 말한다. 본질은 우리가 느끼고 해석하기 전에 '사과' 그 자체에서 이미 존재한다.

손으로 벽에 그림자를 만들어 동물의 모양을 만든다고 해보자. 벽에 보이는 그림자는 우리가 보는 '현상'이다. 손의 실제모습이 바로 물자체다. 사과가 빨갛고 맛있고 둥글다는 것은 사과가 만들어낸 그림자와 크게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과 자체가 아니라 사과의 껍데기를 해석한 우리의 감각기관의 해석일 뿐이다. 즉 그것은 사과 본질이 아니다. 고로 우리가 '사과'를 '물자체'로 보기 위해서는 '경험적 이지 않은 '사유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고로 '감각기관'을 넘어서 볼 수 있는 '이성'이라는 렌즈가 잘 닦여 있는지 의심을 통해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만 '진실'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양계를 벗어나서 수십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아직 내리지 않은 비를 예측하기도 한다. 즉 경험적으로 혹은 '현상'으로 얻은 정보만 가지고는 우리의 인식 세계를 확장할 수 없다.

즉 각자 개인은 모두 제3의 현상을 동시에 바라보지면 사실상 '물자체'를 통찰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각자 끼고 있는 안경이 다를 수 있다. 고로 우리가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몹시 중요하다. 그것은 순수이성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가 모두 다른 안경을 끼고 있고 스스로도 다른 안경을 끼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연필을 보고 지우개로 보고, 어떤 사람은 연필을 보고 노트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호 착오적인 세계 인식관에서 우리가 '물자체'를 집중한다면 '현상'을 넘어선 본질을 같이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이고 안경의 여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같은 '세상'을 바라본다는 믿음의 출발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 한 것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경험적 관측'을 통한 발견이 아니다. 실제 당시 학계에서는 '천동설'에 대한 더 많은 귀납적 논리가 있었다. 다양한 관측과 기록이 지구가 아니라 하늘이 돌고 있음을 말했다. 이렇 듯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며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귀납추론'을 내린다. 이는 '현상'을 통한 인식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경험'을 통해 발견한 사실이 아니다. 반대로 '이성'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연역추론한 결과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상'이면의 '물자체'를 보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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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강한 아이의 비밀 - 공부가 쉬워지는 문해력 성장 로드맵
최지현 지음 / 허들링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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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에서 '뚜렷한 자기만의 생각 없이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환자가 약국을 다 뒤져서 온갖 약을 다 먹어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양을 늘리는 '독서'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말한다. 몇권의 책을 읽었는지 산술적인 만족을 위해 '활자'를 '음성신호'로 바꿔내는 작업은 독서의 본질이 아니다. 독서의 본질은 '호기심'을 탐독하는 일이다.

과거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독서'라고 정의했다. '독서'는 사전적 의미로 '책을 읽는 행위'임에 틀림 없으나 실제로 그 활동의 영역을 정의하자면 '호기심'에서 출발할 것이다.

독서는 단순히 문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는 '정보를 탐닉'하는 행위다. 즉 불러 일어난 호기심을 알아차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할만한 정보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저자의 논리 구조에 맞에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독서가 삶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이 다하는 날, '저 사람은 몇권의 책을 읽었는가'는 '몇 시간' TV 앞에 앉아 있었느냐 만큼 무의미하다. 독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행위이며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능동성을 요구'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도입부를 펼칠 때와 마지막 커버를 덮는 순간의 짧아짐을 느낀다. 즉 어떤 누구에게는 '책 한권'이 꽤 먼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다독하다 보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소득이다.

새학기에 '교과서'를 새롭게 받은 학생 중 상당수는 '교과서 수준의 글밥'을 완독한 경험이 극히 적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마주쳐야 하는 교육상황은 '국어, 수학, 영어' 등 꽤 많은 과목의 교과서를 1년 간 학습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1년에 10권의 책을 읽었던 아이에게 10과목의 교과서를 1회독 하는 것은 적절한 수준이다. 다만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이들이 겨우 교과서 정도를 읽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주말이나 평일 주말에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 이상의 글밥을 꾸준하게 읽은 아이에게 '교과서'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책 중 한 권일 뿐이다.

한달에 10권의 책을 읽은 아이에게는 책의 첫장에서 마지막장까지의 기억이 큰 거부감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책을 받아온 첫날 교과서의 1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해낼지 모른다.

이런 기억은 비단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공 서적도 사실 정독으로 읽었을 때, 숫자적으로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덤벼보기도 전에 책이 주는 묵직함과 두려움. 그것을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도서의 종류나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300페이지의 책을 읽을 때,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보자.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1000페이지를 읽는데 2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다보면 흔히 말하는 벽돌책을 받을 때가 종종있다. 누군가는 펴보기도 전에 기겁할만한 분량이지만 나의 경우네는 아침에 눈뜨고 딱 100페이지씩만 읽는다. 그렇게 열흘을 읽으면 웬만한 벽돌책도 부담없이 2주내로 끝이 난다.

어떤 책은 생각보다 안넘어가는 책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책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이 비슷하여 빠르게 읽히지만 전공자를 위한 책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명사 자체가 너무 여럽고 관념도 복잡하다. '노자'나 '칸트'의 철학에 대해 분석한 책을 읽을 때는 도대체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사전을 찾으며 읽고 한다.

이런 경우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그냥 읽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명사 정도는 사전으로 급하게 찾아보지만 문맥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꾸역구역 넘어가다보면 책의 중반부를 읽을 때는 '대략의 요' 정도가 파악이 가능하다. 이후 더 정확한 이해를 원하면 '재독'하면 그 속도나 흥미가 훨씬 빨라진다.

아마 이는 '학습'에서도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할만하다'하고 접근하는 것과 '언제 다하지'하고 접근하는 일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습은 평가를 위해 '범위'를 쪼갠다. 다만 이렇게 쪼개진 범위에서 주어진 '명사'만 암기하는 것은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고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잃게 만든다. 이는 '본질'을 잃는 것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학습은 '호기심'을 줄게 만든다.

'수헬리베 붕탄질산플네나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앞글자만 따서 외우는 행위는 실제로 원소주기율 표에서 1주기와 2주기 원소의 배열 순서를 나타내고 이는 '양성자의 수'에 따라 원소가 정렬됐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순서가 뒤로 갈수록 원자의 질량도 대체로 증가한다.

즉 다시말해서 '수헬리베..'라고 정보를 암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에서 설명한 '미시 세계의 대략적인 구조', 이후 미시세계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모두 파악할 때, 더 쉽게 암기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독서는 단순히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게 하고 심리적 두려움을 없앤다는 점에서도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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