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 나치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아이들의 삶
줄리언 보저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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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되지말고, 피해자가 되지도 말되, 절대, 결단코 방관자가 되지도 말라."

홀로코스트 학자 예후다 바우어의 말이다.

2020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서아프리카 국가 출신 망명 신청자들을 대규모 추방했다. 서아프리카 국가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사회다. 고로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언론과 인권 단체의 비판이 거셌다.

줄리안 보저 역시 당시 그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망명 신청자들을 다시 카메룬으로 추방 시키는 것은 직접적인 위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을 기사화 하던 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법학교수를 알게 된다. '루스 하그로브'다. 줄리안 보저는 그렇게 그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의 아버지가 1938년 빈이 게슈타포에 넘어간 후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의 외가도 1906년 오데사에서 유대인 학살을 피해 탈출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조부모가 나치 치하의 빈에서 아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멘체스터 가디언'에 광고를 실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멘체스터 가디언'은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가디언'의 전신이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과거 조부모의 광고'의 이야기는 그렇게 '루스'에게도 전했다. 그러자 '루스' 또한 자신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를 같은 방법으로 탈출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직업의 장점을 십분활용한다. '가디언'의 기록 보관 담당자에게 자신과 '루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탈출시키기 위해 '가디언'에 실었다는 광고를 찾을 수 있는지 말이다. 그렇게 '기록 보관담당자'는 1938년 8월의 광고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교습'이라는 여섯개의 토막광고가 있었는데, 개중 그들의 '성'을 찾는다.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를 교육시켜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보거 가. 빈 3구, 힌처슈트라세 5번지 12호"

기재된 주소지를 보고 그는 확신을 했다. 그의 가족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총명한 아이'란 '아버지'를 가리킬 것이다. 광고주는 자신의 조부모일 것이다. 역사적 배경에서 자식을 탈출시키기 그 흔적이 '광고' 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광고'는 '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절한 사람'을 찾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광고에 실린 아이의 숫자는 총 여든 명이었고 이들 전부가 빈 출신이었다. '줄리안 보저'는 그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이미 100년이 된 이야기, 당사자들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그는 당사자의 자녀를 찾기로 한다. 이렇게 3대에 걸친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

현대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다시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로 거슬러 내려가는 이 추리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인간성'에 대한 공감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여섯 다어 속에서 시작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대인을 고용하면서 구햇던 것 처럼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조부모가 남긴 흔적으로 과거 난민과 현재 난민이 겪는 공통된 운명을 발견한다.

2025년 다시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하면서 어쩌면 과거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난민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문제다. 우리 대부분은 1938년 빈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에 대해 '참혹한 역사'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현대'에 벌어지는 '난민 추방'에 있어서는 '국익'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다. 과연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나침반이다. 줄리안 보저와 루스 하그로브가 그들의 가족사를 좇아가며 발간한 것은 단순한 광고나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과 연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가해자가 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그도 아니면 100년 전 작은 신문 광고 속처럼,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음에도 행동하고자 하는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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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신의 실수
류시은 외 지음, 연상호 기획, 최규석 만화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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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중 '지옥'의 세계관을 그대로 두었다. 다섯 소설가가 같은 세계관으로 글을 집필한다. '지옥 세계관'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다섯 작가의 글이다.

지옥 세계관은 이렇다. 갑자기 천사가 커다란 얼굴을 보이며 등장한다. 이들은 특정인에게 죽음을 예고한다. 그리고 떠난다. 예고된 시간이되면 사자들이 나타나 끔찍한 방식으로 대상자를 죽인다. 그리고 지옥으로 보낸다. 사람들은 '예고'를 받은 이들의 삶을 비난한다. 문제가 있지 않고서 심판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종교적 심판으로 해석한 '새진리회'란 종교가 생기고 이들은 사회를 장악한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와 광신 사이에 갈등한다. 다시 여기에 반기를 드는 단체인 화살촉이 등장하고 대상자들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신의 심판을 옹호한다.

드라마에서 플롯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장면이 있다. 천사가 '아무개'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아무개'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갓난 아이라는 사실이다. 갓난 아이가 '도덕적 죄악'을 저지를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심판'받는 사람에게 회개하라, 말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심판'의 기준이 '임의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죄 있는 대상이 아니라, 아무나 심판 받는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새진리회'와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것이 '지옥'의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을 그대로 두고 각기 다른 다섯 소설가가 글을 쓴다. '지옥'의 세계관에 살고 있는 여러 인물을 그려낸다. 개중 기억나는 것은 '조예은 작가'의 글이다. '조예은 작가'는 최근 몇 작품으로 익숙해졌던 인물이다. 읽으면서 꽤 반갑다.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관에서 '조예은' 작가의 시각은 벗어나 있다. '세계관'이 아니라 '사람'에 맞춰져 있다. 실제 그렇다.

넷플릭스 작품을 볼 때만 하더라도 '신'이라고 하는 존재나 그래픽, 액션을 기대하고 본 것이 사실이다. 사람에 대한 감정과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보진 않았다. 그것을 글로써 보며 여러 느낌을 갖는다.

이렇게 한 세계관을 여러 작가가 공유하여 글을 쓰는 것을 '공유세계관'이라고 한단다. 분명 얼핏 비슷한 형식을 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꽤 흥미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들어가기 전에 짧게 몇줄 짜리 작가의 소개가 있다. 어떤 글을 쓰던 사람인지를 살피면서 글을 읽는 것도 재미다. 사실 소설이나 드라마 할 것 없이, 괜찮은 세계관을 확장하여 여러 각도로 보는 것은 꽤 안정적인 작법 같다.

어렵고 복잡하게 세계관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이유도 없다. 단 실제로 다섯 단편에는 '새진리회'가 어떻고, 박정자라는 최초의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독자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에 단순히 에피소드를 더 할 뿐이다. 이로써 짧게 몰입하여 읽기 쉽고 좋다.

넷플릭스에 지옥1을 다 봤는데, 이미 지옥2도 나와 있는 모양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만 월별로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보는데 이번 주말은 지옥2를 보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결제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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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퐁
이유리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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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비눗방울'이 되는 약을 먹었다. 점차 몸이 투명해지더니 가벼워서 자꾸만 하늘로 날아가려고 한다. 날아가는 것을 묶어 잡아 두고 짧게 여행을 한다.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 꽤 경쾌한 소리 '퐁!' 하며 그가 터져 버린다.

이런 허무맹랑한 소재를 참고 읽어 낼 수 있는가. 소재만 듣고서는 그렇지 못한다. 다만 '이유리 작가'의 '글'은 다르다. '황당무계'한 소재지만 '소재'의 참신함이 소설의 매력이 아니다. 소재는 배경이다. 소설의 매력이라면 관계와 감정이다. 소설에 깊이 공감하며 읽는다. '논리'와 '개연성', '설득력'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하며 읽는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차인표 배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같은 일상을 반복한단다. 항상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며 살게 된단다. 고로 어제와 같은 하루를 오늘 반복하고 그것을 내일도 반복할 것이라는 특별함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기대감은 10대, 많아도 20대 초반 정도에 끝난다. 삶을 즐거운 '연극'처럼 하던 호기심은 완전히 사라진다. 30대가 접어 들면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의 단계로 들어간다. '꿈', '일', '사랑'은 모두 반복되는 루틴에서 빛을 상실하고 일상의 색깔을 갖게 된다.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같은 그런 삶을 반복하면 자기 세계에 점점 갇힌다.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생각만 한다. 나이가 들면 '선택'이 빨라진다고들 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내리는 선택이 과거에 이미 판단 내린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비슷한 선택에 대한 과거 결론이 데이터가 되어 점점 질문에 골똘해지는 진중함이 없어진다. 반사적이고 충동적이고 관성적이게 된다. 그냥 그래왔듯 그렇게 선택하게 되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미' 판단 내려진대로 행동한다. 생각해 볼 일이 점차 줄어든다. 편협해지고 자기 세계가 확고해진다. 그것이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차인표 배우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보는 일이 독서라고 말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공감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유리'작가의 글은 소재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중년 레즈비언의 이야기도 그렇다.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내가 만든 세계에 빠져 다양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소매업 가게 매니저로 일한 적 있다. 당시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캐셔'를 하며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내주었다. 그때 직원들이 하던 말이 있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장애인들이 많아요?'

실제 뉴질랜드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이상하리만큼 '장애인'들이 많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정신 지체,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 그러나 장애인 비율은 실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다른 것이라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이런 시선의 차이가 그들을 밖으로 나다닐 수 있게 하는지, 그렇지 못하게 하는지를 만들 뿐이다.

'동성애'에 대해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던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사랑 방식에 가타부타할 일이 뭣이 있을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비슷하고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공감결여 상태로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역사가 통일된 왕조를 오래 지속했기 때문일까.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사회를 안정적으로 지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상황에 매번 부딪치던 매너리즘이 결국 획일화가정답처럼 했을 것이다. 나이 든 사람처럼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같을 사회를 500년 간 유지하다보니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해 간듯 하다.

'킹크랩'을 먹고 싶었던 한 젊은 부부가 '킹크랩'을 훔쳐다가 라면에 넣어 먹는 이야기.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 없으면서도, 마치 난 지난 추억을 상기하듯 읽었다. 논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다. 먹기 위해 살려두던 녀셕에게 정이 들고, 그러나 그것을 결국 쩌먹는 이야기. '환경'이나 '동물'이런 거창한 것을 떠나, 그냥 상황과 내용이 아니라 상황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했다. 관련 생각은 스치면서 누구든 해볼법하다. 죽어 있는 남의 살갖을 뜯어먹고 삶을 유지하는 우리의 '생'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본 적 있나. 혹은 그런 표현을 읽어 본 적 있나. 모든 일상은 표현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표현하기에 따라 맛있는 식사가 되고 때로는 공포물의 한 장면도 된다. 어미닭이 사랑과 정성으로 품던, 병아리 되지 못한 알을 꺼내다가 달군 후라이팬에서 볶아 버린다는 묘사 정도라면 충분히 '계란후라이'도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 방식만 다르게 해석해도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꽤 다양한 삶을 사는 셈이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이야기하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이고, 말하기 나름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표현을 한번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은 굉장히 단조로워 보이지만 사람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머릿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보는 것이 어쩌면 독서의 매력이다. '이유리 작가'의 글은 흥미로운 소재를 '대단하지 않은 일 마냥' 배경에 넣고 감정과 묘사를 서술한다. 서술자가 담담한 표정을 가지니 독자도 저절로 담담하게 읽힌다. 그리고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 본 적 없는 많은 사람과 생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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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크레이브 1~2 세트 - 전2권
트레이시 울프 지음, 유혜인 옮김 / 북로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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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트레이시 울프'는 뉴욕타임즈와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녀는 판타지 소설이나 로맨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다. 그녀의 특징이라면 교육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문학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전문 작가가 됐다. 즉 가장 많은 삶의 경험을 '교육현장'에서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배경과 다르지 않게 소설은 역시 전개 배경이 '학교'다.

예전 뉴질랜드에서 첫 유학을 시작할 때 였다. 알고 지낸 백인 여자가 있었다. 나 보다 몇살은 어렸는데 고등학생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트와일라잇'이라는 소설이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꽤 '핫'하다고 했다.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녀는 책과 영화를 모두 읽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의 매력으로 꽤 많은 여학생들이 영화와 소설의 팬이 된 듯했다. 책을 읽기도 전, 그 말이 떠올랐다.

'우리 딸이 나중에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재밌어 하겠다.'

소설을 읽고 든 생각이다. 소설은 어렵지 않으며 충분히 흡입력있었다. 얼핏 '트와일라잇'과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캐릭터 간의 관계,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몰입력이 매력있다. 주된 내용은 주인공 그레이스가 겪는 정체성의 발견과 내적 성장이다. 단순 로맨스와는 차이가 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소설은 알레스카다. 알레스카 한 외딴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부모님의 사고로 고아가 된다. 이후 카틀미어 아카데미로 전학가게 된다. 그녀가 간 학교는 단순 학교가 아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드래곤과 같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과정은 역시 매력적이다. 현실에서 '판타지 세계'나 '무협계로 넘어가는 소설을 본 적 있다. 이런 소재는 물론 '현실도피'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은 '판타지 소설'이 가진 '허무맹랑함'에 설득력은 준다.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하는 세계관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세계관이 마음에든다.

소설의 배경은 '학교'다. 폐쇄적인 공간이다. 이런 폐쇄성은 긴박감을 더해준다. 닫혀진 공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유대감. 이런 것들이 인물의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소재로 치지면 매우 독창적인 소재는 아니다. 익숙한 소재다. 다만 유치하지 않고 세계관 구성도 좋다. 책은 '척척'하고 넘어 갈 만큼 가독성이 좋다. 읽으면서 마흔을 바라보는 남자가 읽어도 괜찮은가...,하면서도 몰입하며 읽었다.

성별과 나이를 초월할 수 있는 꽤 유의미한 시간인 듯 하다. 개인 취향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소설은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빠르고 쉽고 몰입력 있는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내가 읽었던 2권이 아직 완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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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시간 책쓰기의 기적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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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존 F 케네디'를 미국 대통령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사망 2년 전인 1961년이다. 즉, 그의 삶에서 '대통령'이라는 정체성은 아주 짧게 스치고 간 셈이다. 존 F. 케네디는 실제로 상원의원 6년, 하원의원 7년을 활동했으며 2차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복무한 기간도 '대통령 재임기간'보다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미국 대통령'이다.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제임스 딘' 또한 그렇다. 영화 배우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3년 뿐이었다. 그의 대표작도 고작 3편이다. 이소룡의 주요 활동기간도 1970년에서 1973년으로 극히 짧은 편이다. 우리나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기간도 4년이 안된다. 마지막으로 '링컨'은 4년 간 미국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그의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 정체성으로 남아 있던 활동은 '변호사'로 24년간 일했다.

역시 그래도 대중이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에게 각인된 '순간'만을 그것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짧게 스쳐지나간 '경력'이지만 대중에게는 그것이 정체성으로 남는다.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는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낸다.

책을 쓴다는 것은 '정체성'을 남기는 일이다. 사람과 삶은 워낙 유동적이라 변화무쌍하고 생각과 가치관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시각, 관계,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고로 '사람'을 '컨텐츠화'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책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황준연 작가'를 만난 적 있다. 당시 부모님 댁은 꽤 농촌에 위치했다. 우연히 네이버 지도를 살피다가 그의 사무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 간단히 메모를 해놓고 잊고 있다가 어느날,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불쑥 전화를 걸었다.

'네이버 지도를 보니까 근처에 계신다고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 활동하시던 주소지는 아니었다. 이후 따로 '서귀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남을 잡고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책쓰기'에 진심인 편이다.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고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됐다.

책을 쓰는 일은 꽤 흥미있는 일이다. 이미 과거에 두고 왔던 '정체성'을 뒤늦게 사람들이 쫒아 읽는 일이다. 첫 책이 나온지는 벌써 5년도 넘었다. 이어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책이 나왔다. 당시 거의 초고 수준이던 글은 그대로 출간됐다. 지금 보면 오탈자와 비문 투성이다. 문체도 많이 달라졌다. 심심찮게 과거 썼던 글을 읽은 독자의 리뷰가 올라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꽤 죄송하다는 생각과 조금 정돈해서 출간 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책이 출간되자, 간혹 강연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새로운 출간제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일은 부수적인 일이라 차치하고 가장 괜찮은 점이라면 '스스로가 정의됐다'는 점이다.

책을 쓰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고 드러낼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보고, 독자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다. 이 과정으로 내가 얻은 것은 '작가'라는 호칭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하는 점이다.

스스로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출간'하면 명확해진다. 이 명확함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도 명확히 갖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소개'할 때 유용하기도 하다.

일정 수준의 책이 출간되거나 일정한 판매부수가 넘어사면 '네이버 인물등록'이 가능하다. 혹은 '인스타그램'에 '파란색 체크'를 받을 수도 있고, '위키피디아'에 이름이 등록되기도 한다.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진 않지만 본인을 소개하는데 이처럼 간편한 방법도 없다. 나의 경우에도 위 세 가지가 모두 등록됐다. 간혹 '위키피디아'에 어떻게 이름을 올리셨어요?'하고 묻는 경우도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해당 페이지에 '작가'라고 이름이 올라가 있고 짧은 프로필이 있는데 내가 올린 부분은 아니다.

황준연 작가 말대로, 책이 알아서 해주는 역할이 분명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작가'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삼고 싶어도 가능하지도 않다. 본업 작가라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고 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꿈 같은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떤 글을 보건데,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 1위가 '작가'라고 한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평균 소득도 꽤 높은 편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대부분의 작가는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고로 일에 대한 부담보다는 '취미'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고소득자가 출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단다.

어쨌건 생각보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글'이나 '워드'를 켜서 하루에 한 페이지씩 두 세달만 꾸준히 쓰면 책 한권 분량이 나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면 그만이다. 좋은글은 필요없다. 어차피 출판사가 출간 의향을 내비칠 때, 그들이 원하는 글의 방향이 각기 달라서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냥 매일 같이 취미삼아 한장씩 글을 쓰는 습관만 잡혀 있으면 1년에 3~4권의 책 분량의 글밥은 나온다.

고로 황준연 작가의 말대로 책쓰기는 생각보다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맞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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