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인생 조언 - 하루 5분으로 내면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부르는
정운 지음 / 유노책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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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가장 오랜 질문 중 하나다. 다만 가장 오랜 질문임에도 명확한 답을 내린 이는 없다. 오랜 질문에 대해 오랜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과 생각 자체가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질문에 골똘히 생각해 가다보면 각자 자신만의 대답이 나온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고로 이 질문과 생각에 대해 깊게 사색하려면 '오래된 이들의 말'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최신 심리학이라던지, 자기계발서, 에세이 몇 권으로 인간의 욕망, 무의식, 삶에 대해 모두 꿰뚫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랫도록 묵히고 숙성시킨, 푹 삶고 고아 진국을 우려낸듯한 맛은 없다.

다만 고전에는 그 맛이 있다. 특히 동양 고전이 그렇다.

'숫타니타파, 법구경, 아함경, 금강경, 유교경, 사십이장경, 유마경, 법화경.

이 정도면 고전 종합 세트나 다름없다. '불교'라는 어휘 자체가 '종교적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

불교를 종교냐 철학이냐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구식 사고에 빠진 셈이다. 서양에선 종교에 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의 계시가 있어야 한다. 믿음도 필요하다. 다만 철학은 이성을 통해 사유하는 체계다.

그러나 불교에는 신이 없다. 신을 거부한다. 창조주도 없고 절대적 구세주도 없다. '부처'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말고, 숭배하지말라'고 말했다. 되려 '스스로 공부하고 법을 따르라'라고만 했을 뿐이다.

실제 많은 서구 학자들은 불교를 '무신론적 종교'로 분류한다. 근대의 일본 학자들은 불교를 '철학'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특히 다이쇼 시대의 일본 불교는 서양철학을 능가하는 '실존철학'으로써 불교를 포장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를 철학으로만 분류하기에는 또 문제가 있다. 불교는 이성을 통해 사유하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요하기 때문이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타파나 법구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게 담겨져 있다. '관념'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뿌리째 뽑는 삶의 기술'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고로 불교는 '삶의 기술, 고통의 경영학, 존재의 해체학'처럼 완전히 다른 분류의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 MIT의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불교를 '심리학'으로 해석한다. 불교의 핵심이 '인간 마음의 구조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신이 아니라 욕망과 집착을 다루고 그것을 치유해 내는 과정이라 그렇다. 결국 불교는 철학도 종교도, 심리학도 아니다. 금강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은 인간이 정의하는 '개념의 덫'에 걸린 셈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분류하건 그것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파리를 새라고 분류하건, 곤충이라고 분류하건, 파리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뗏목일 뿐이다. 강을 건너면 버려라'

그렇다. 쓸모를 다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짊어지고 끝까지 이동할 것이 아니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두고 가야지 그것을 끌고 가면 되려 짐이 될 뿐이다. 불교는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중요치 않다. 오직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숫타니타파는 초기 불교 경전 주엥서 가장 투박하고 원시적이다. 이는 부처의 목소리를 거의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학자들은 이 책이 가장 늦게 펴닙되고 적거 윤색되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날것'을 담고 있는 글이다. 과거 동네 서점에서 아이와 책을 고르다가 '숫타니타파'를 구한다고 했더니, 서점 아주머니께서, '그냥 넣어 드릴께요'하고 주신 기억이 있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시간이 되면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튼 우리를 자극하는 문구들은 대체로 인스타그램 명언처럼 짧고 강렬하게 스치고 잊혀 지지만 숫타니파타의 문장은 짧고 단단하여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법구경은 조금더 대중적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구절 하나만으로 법구경의 반은 이해한 셈이다. 짧고 강력한 이 말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짜증나는 일이나 슬픈일이 일어나면 줄곧 그 상황에 매몰되어 그것의 좋은 면을 보지 못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여러번 곱씹지만 잠시후 망각해 버린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천'이라는 것을 상기시켜본다.

아함경은 초기 불교의 교리적 뼈대를 제공한다. 불교가 말하는 법의 구조와 논리를 담고 있다. 금강경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단단한 것을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즉 금강경이 말하는 바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리고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갖는다.

서로 다른 결의 텍스트들이 이렇게 모여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질적이면서 결국 하나로 수렴하는 아이러니가 어디 이 불교와 동양 철학에서만 그럴까 싶다. 문제는 책 몇권 읽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책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만 보여준다. 고로 책은 자신을 비출 뿐 그것 자체로 무언가를 바꿔낼 수 없다. 거울에 선 우리는 거울이 비춰주는 모습을 통해 스스로 매무새를 정리한다. 머릿칼을 넘기고 표정도 바로 잡는다. 다시말해서 책은 우리를 변화시켜주지 못한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직접 행동하기 실천하는 뿐이다.

고로 어떤 거울을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거기에 비친 자신을 보고 어떻게 가꿔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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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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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는 '윌라 오디오북' 첫 메인 페이지에 '항상' 올라가 있어도 결코 보지 않으려고 했다. 표지가 워낙 '소녀소녀'한지라 당연히 내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아마 어린 여성 청소년들이 보는 소설이겠거니 가볍게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인지, 음원을 재생했다. 처음, 끌린다는 느낌 없었다. 그러다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들의 연기력에 집중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나중에 보니, 꽤 유명한 배우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고민시, 김도훈, 염정아, 박지율, 주인영, 김의성, 박준면, 배성우, 박정민, 류현경, 김준환, 임성재, 김소윤, 이승아, 김달걀, 김은우, 최양락, 유정우.

소설을 듣는 내내 그들의 능청 맞은 연기력 덕분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맛깔나는 사투리와 능청스러운 배우들 간의 호흡이 워낙 자연스러워, 도대체 원작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손열매'는 성우로 일하던 중, 절친한 언니인 '고수미'에게 사기를 당한다. 또한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면서 삶의 균형마저 잃는다. 그녀는 결국 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수미의 어머니와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완주에서의 시간은 열매에게 상처를 치유해주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그렇다. 얼핏 주제라고 특별할 것이 없다. 단순한 플롯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재미있다. 소설 원작이 본래 맛깔나게 쓰여 졌는지, 작가와 성우가 그렇게 작품을 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말 오랫만에 재밌게 들은 오디오북이다.

소설이 끝나고 '박정민 배우'가 소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한다. 알고보니 이 작품은 '박정민 배우'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 프로젝트 첫 번째 책이다.

박정민 배우는 개인적으로 매우 호감을 갖는 배우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나와 나이가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같은 연예인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희안한 동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꽤 재미있게 봤던 영화에서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할만큼 '연기력이 미친 배우'도 그였다. 항상 영화가 끝나고 배우를 찾아보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중에 그를 알게 되고, 내가 봤던 그 '미친(?) 배우'가 모두 한사람이라는 것에서 경탄했다.

본업에서 재능과 노력이 탁월한 그에게 배울 점도 많다. 본업을 중심으로 관심사와 부업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에서도 꽤 여려모로 귀감이 된다. 내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 '책'이다. '밀리의 서재'나 '윌라' 같은 도서 어플리케이션에서 모델로 쓰거나 협업하는 이들을 보면 '어?' 하고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리고 '박정민 배우'는 적잖은 빈도로 그렇게 나와 마주쳤다.

아마 앞으로 나올 모든 프로젝트를 다 챙겨 들을 것 같다. 고민시, 염정아, 배성우 등의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이 소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기획 의도와 기획력, 연기력, 뭐하나 빠뜨릴 수가 없다.

소설 원본을 보지 못하여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은 '김금희 작가'가 희곡처럼 대사와 지문을 구성하여 쓴 작품이라고 한다. 분명 오디오북이 이렇게 재밌다면 본 책도 그러할 것이다. 나중에 종이책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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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부머리 독서법 : 영유아, 초등 저학년 편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지음 / 책구루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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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대략 5~6년 전에 읽었으니,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은 셈이다.

당시, '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책이다. 아이가 '공부'와 큰 상관이 없는 나이였고 나 역시 '학부모'라는 이름은 너무 낯선 시기였다. 그 시기에 책을 읽고 꽤 공감과 깨달음이 있었다.

얼마 간, 책은 내 서재 책장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는데 서재에는 수 천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니 실제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인테리어마냥 '스르륵'하고 훑다가 몇권을 뽑아가 버린다.

이게 참... 씁쓸한 것이.. 아무리 책이 많아도 슬쩍하고 뽑아 버리면 몇년 째, 그 구멍이 매워지지 않는다. 물론 기껏해봐야 1~2만원 짜리이니, '새로 책을 사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책'은 집고 읽고 페이지를 넘기던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한 흔적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책을 사다가 꽂아 놓는다고 하도, 내가 읽었던 흔적 없는 책일 뿐이다.

사람들은 '빌려가는 책'에 꽤 무신경한 편인데... '이거 나 잠깐 빌려줘'하고 가져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히 그 집에 가면 내가 빌려줬던 그 책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거나 너무 당연스럽게 그 집 책꽂이에 꽂혀 있다.

'말을하고 가지고 와야 하나, 그냥 슬쩍 가지고 올까.'

하다가, '선물로 준 셈'치고 그냥 나온다. 그러나 역시 내가 준 선물의 가치가 '상대'에게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책이 워낙 많으니, 몇권 정도는 없어져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5년이지나고 때로는 10년이 지난 책들도 마치 '내 자식' 떠내 보낸 것처럼 마음이 그렇다.

대략 15년 정도 전에, '정글만리'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지인에게 '그 뒷편을 제가 빌려드릴까요?'했다. 인기가 있어서 대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였다. 역시,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그 책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 책을 잃어버린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앞서 말한 '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도 내 서재에 꽂혀 있었던 책이다. 그렇다. 꽂혀 있었다는 말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최승필'이란 사람을 보면 왜 그 책을 빌려간 '그' 사람이 떠오르는지 알 길이 없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어쨌건 최승필 작가가 '저학년'을 위한 책을 출간한듯하다. 워낙 현재 읽고 있는 책이 많아서 '윌라'에서 '청소'할 때 이 책을 읽었다. 요즘 꽤 시간을 보내는 취미라면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대청소하기다. 집도 깨끗해지고 책도 듣고 '취미없는 나'에게 꽤 의미있는 취미가 됐다.

듣고 있노라면 '최승필' 작가가 '독서'라는 개념에 '타협'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정도는 학부모가 듣기 좋아 할 만한 이야기도 해주면 좋으려면..

'학습만화는 책이 아닙니다.'

'오디오북은 책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독서'에 대한 개념을 구분한다. 그 까칠까칠함이 어쩐지 더 믿음직스럽다. 그렇지 않은가. 본래 정도는 우리 입맛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으니까...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살이 빠질 수 있다는 희망,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만화책을 보면서 '문해력'을 기를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 대체로 '정도'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그런 까칠한 정도를 택하는 대신에 '그래도 무언가가 있을까야'하는 기대감을 택한다. 그러나 '사필귀정'.. 결국은 다시 돌고돌아 정도를 찾게 된다. 결국 더 빠른 길을 택하다가 더 멀리 갔다 돌아오는 셈이다.

아무튼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뼈'때리는 책이다. 물론 책 좋아하는 1인으로써, 그의 말에 100번 공감한다. 그리고 그의 말에서도 타협점은 분명히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만화책'과 '오디오북'은 '책'과 '책이 아님' 사이를 오간다고 본다.

책을 좋아하면 '오디오북'도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 '오디오북'은 책을 읽는 것보다 진행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답답하기도 하다. 메모도 할 수 없고 지나간 부분을 몇번이나 다시 들을 수도 없다. 읽다가 몇 장 뒤에 있는 챕터의 어느 부분을 다시 훑을 수도 없고 읽자마자 휘발되어 '느낌'정도만 남고 모두 사라지는 느낌도 그렇다.

그렇다고 완전 책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와 같이 청소하면서 듣기 좋고, 분명 문어체를 띄고 있어 비슷한 다른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아이는 '오디오북'을 매우 좋아한다. 오디오북을 매취침시간마다 듣고 하교 후에 간식 먹으면서 듣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하교한 뒤에 무얼하는지 관찰해 봤더니, 대개, '오디오북', '책', '만화책', '간식', '만들기 놀이', '인형놀이' 정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꽤 책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면 읽는 책의 수준도 낮고 '만화'책인지 '줄'책인지 그 알 수 없는 경계의 책을 읽는다. 그러니 '정말 책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알려면 초등 고학년까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뭐 어찌됐건, 부모로써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일은 반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와 함께 책을 즐길 수 있을지, 이번에도 '최승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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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 자기 주도형 아이를 만드는 초등 저학년 교육 비법
나카네 가쓰아키 지음, 최미혜 옮김 / 애플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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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보다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백편의자현'라는 고사가 있다. 백 번 책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보인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진나라 유향이 쓴 '설원'에 나오는 말이다. 공부가 막힐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도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의미다.

일본의 초등학교 교사이자 교육평론가인 '나카네 가쓰아키'는 '초3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잘하는 것'보다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말을 조금더 일상 어휘로 바꿔보자면 '습관의 중요성'이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국한할 것도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성공의 요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잘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자존감'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은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앞서 말한 '나카네'작가는 실제로 같은 책 매일 읽기라는 실험 수업을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싫어하지만 결국에는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그 문장이 자신 안에 들어 감을 깨닫는다. 그건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문장이 '자현'되었다는 의미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하버드 의대 인지 신경학자들은 사람의 뇌가 반복하는 정보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정보에 시냅스는 더 굵고 단단하게 연결된다. 우리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단백질'이다 이는 기계와 달라, 성장과 퇴보를 한다. 다만 성장하는 방식이 다소 '생물'적이다. 즉,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나간다. 반복은 뇌의 회로를 튼튼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이해는 그 다음이다. 이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입력을 통해 내부에서 발생한다. 즉, 자주 걷는 길이 자연스럽게 오솔길이 되듯, 반복은 사고의 길을 만들어낸다.

'초3의 성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닺앙의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반복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이 먼저다. 반복을 견딜 수 있는 아이라면, 언젠가 성적도 따라온다. 다만 반복을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똑똑해도 그 재능은 썩는다. 반복이 없으면 실력이 생기지 않고, 실력이 생기지 않으면 자존감도 생기지 않는다. 자존감 없는 아이는 결국 '시도'하지 않는다. 고로 반복은 성적보다 중요하고,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습관과 감정적 동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버이날이 지나고 11일인 오늘에서야 부모님댁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운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애들 구구단 암기를 시켜보니까, 공부 머리는 아닐 것 같네'

우스께소리로 한 말씀이셨다. 그 말씀에 '습관을 지켜보니까, 공부 시켜 볼만한 아이들 같다고 말씀 드렸다.

암기력이나 인지능력 등 공부에 관련해서 다양한 지적능력이 필요하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반복'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독서백편의자현'

이는 공부의 본질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처음부터 잘하려 애쓰지 말고, 끝까지 읽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문해력이라는 것은 별것 없다. 많이 읽고 반복해서 읽다보면 글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분해되어 흡수 소화되는 일이다. 읽을 수록 저절로 문장이 보인다. 지능이란 이 차이를 조금 빠르게 하느냐, 늦게 하느냐를 결정할 뿐이다. 어차피 도달하는 영역이라면 조바심낼 필요도 크게 없다.

때로 '좋은 책, 좋은 글'처럼 무엇을 읽느냐에 집중하는 부모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느냐'이다. 실제로 좋은 책은 스스로 좋아하는 책이며 좋아하는 책은 여러번 반복해서 읽게 된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문해력이 길러지고, 문해력이 길러지면 많이 읽게 되고, 많이 읽게되면 좋은책을 발견하게 된다.

고로 중요한 것은 내용이나 주제와 상관없이 '재밌는 책'을 골라 반복적으로 읽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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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을 키우는 책육아의 힘 - 리터러시 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독서교육 첫걸음
권이은 지음 / 유아이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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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전문가의 자녀들은 책을 좋아할까'

'권이은 작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고, 정작 독서전문가들은 조언을 하듯 '자기 자식'에게는 못해주는 경우가 분명 있다.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는 꽤 현실적이다.

어떤 이들은 '책육아'라는 말부터가 잘못됐다고 꼬집기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부모가 의도를 가지는 순간, 주도성은 부모가 갖고 있다는 의미다. 자식의 흥미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통제 의식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의 취미 역시 부모와 다르고 살면서 본인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시기에 그것에 흥미가 생기는 법이다.

다만 그것이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아이에게 '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분명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또한 스마트기기와 TV처럼 영상노출이 많은 환경보다는 도서관 같은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랄 때 아이들이 더 책을 가까이 하기도 한다. 우리가 욕심을 갖고 아이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책이 또 '모든 것의 열쇠'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책을 좋아하면서 학업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책을 잘 읽지 않지만 학업성적이 우수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육아'가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책이 단순한 지식의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수단'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와 같이 알고리즘이 세대를 가로막는 필터버블 시대에 우리는 점차 세대 간의 소통이 힘들어진다. 아이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와 부모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 간의 상호작용이 철저하게 막혀 있기 때문에 아이의 유튜브에서는 '게임유튜버'가 부모의 채널에서는 '교육채널'이 추천 영상으로 뜬다.

'책'은 어떤가. 책은 꽤 직관적으로 제목을 확인할 수 있고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TV앞에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 조차 사라진 요즘. 더욱이나 가정내의 책문화는 중요해졌다.

교육계에 이런 말이 있다.

'집을 팔아도 국어는 안된다'

다른 과목과 다르게 '국어'는 '생활환경'부터 개선이 필요하다. 책은 보통 5시간에서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일이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하나의 주제로 꾸준하게 돌아가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몰입이 보통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생명과학에 관련된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은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관련된 '책'을 보는 사람들은 그 관련 주제에 대해 3일이고 일주일이고, 길게는 몇주동안 그러한 방식으로 삶을 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책'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골든 타임이 존재한다. 이 골든타임 안에 '책문화'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책에 크게 흥미를 갖기 힘들고, 학창시절에는 '국어 점수'가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슬프게도 학창시절은 8세부터 19세까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고, '읽기'라는 훈련은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과학, 사회, 역사' 등 당양한 과목에도 필요하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가 하루 10분이상 책을 읽어주는 가정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만 5세 기준 언어 이해력 점수가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이 효과는 아이가 유아기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단순히 지능을 높인다는 차원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더 오래 듣고, 감정을 따라가고, 그 안에서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일찍부터 길러진다는 의미다. 이는 '학습'이 아니라, '관계'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하다.

어릴 때의 작은 격차는 말그대로 작은 격차일 수 있다. 다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릴 때의 격차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성장은 '복리'와 닮았는데, 복리는 누적시간이 늘어날수록 초기 투입량에 대한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령 한달 1%의 성장이라는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투입값이 1일때와 9일 때의 차이는 단순히 8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이 기간이 10년만 되어도 그 격차는 무려 26배에 달한다.

이는 처음에는 조금 글을 많이 읽는 수준, 일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쓰는 수준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이와 글이 가진 구조와 함의를 분석하는 이의 수준으로 벌어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였겠지만 그 차이는 매달 복리로 증가하고 결국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처럼 된다.

책은 그 자체로 기적은 아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속도로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기르는 아주 원시적이고 정도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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