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날들을 좋았던 날들로
허췐펑 지음, 신혜영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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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음수성유, 사음수성독.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생명을 살리는 소의 젖과 생명을 앗아가는 뱀의 독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물을 마시고 만들어진다. 어떤 것 받아들이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같은 말을 듣더라도 불 같이 화내는 사람이 있고 '허허'하고 웃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같은 상황을 겪더러다도 한 평생 상처로 간직하는 사람이 있고 다음 삶의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물을 들이마신 소와 뱀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물'의 문제가 아니라 삼켜낸 이가 어떻게 뱉어내느냐의 문제다. '불교'나 '기독교', '천주교'의 '성언'들은 고귀한 말로 포장됐지만 '긍정적인 삶'이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주고 5리를 가자면 기꺼이 10리를 가주는 것은 불쾌하게 보자면 한 없이 불쾌해질 만한 일을 기꺼이 더 내어줌으로 상대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의 감정을 빚지게 해주는 행위다.

오늘의 우리의 하루는 좋은 날이 었을까? 나쁜 날이 었을까? 뱀과 소가 먹은 물과 같이, '날'이라는 것은 과연 독과 양분 중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그저 '주어진 날'을 어떻게 삼키고 있고 어떻게 뱉고 있는가. 새로운 차, 새로운 직장, 새로운 머리스타일 그것은 과연 좋은 양분인 것일까? 그것을 삼키더라도 독을 만들어 내고 있을 수 있고 죽음, 이별, 사고는 과연 나쁜 양분인 것일까? 그것을 삼키더라도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든 일에 불평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과 모든 일에 감사해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인생을 삼키면서 '독'과 '양분' 중 한쪽을 극명하게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내부에 존재한다. '선'과 '악'도, '좋음'과 '나쁨'도, '성공'과 '실패'도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관념적인 '양과' '음'은 모두 내부에 존재하고 이 경계는 분명하지 않으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삶에 있어서 '본질'을 찾는 것 자체도 무의미 하지만, 굳이 찾아본다면 '무탈'하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왜 그 행동을 지속하느냐?'라는 질문을 꼬리를 묻고 올라가다보면 완전한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까워 질 수는 있다. 어느 날, 매일과 같이 야근하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왜 일을 그렇게 많이 하세요?" 그는 대답했다.

"돈 벌어야죠",

"돈은 왜 버시나요?"

다음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그래야 아이들 옷도 사주고 해야 하니까요."

"아이들 옷을 사주는 건 왜 해야하나요?"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해지니까요". "

"그럼 아이들이 아빠가 일하지 않는게 행복하다면 일을 그만 두실 건가요?"

"그건 안돼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니까요."

이 질문에 첫 질문은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이다. 마지막 질문에 남자가 한 대답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일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일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에 최초의 대답을 내놨을까?' 아마도 본질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다양하다. 아이들 옷도 사줘야 하지만, 여름에는 좋은 곳에 여행을 가기도 해야하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도 해야하며 양가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번듯하게 살고 있다는 생색도 내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빚춰지는 사회적 지위도 필요하고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여러 이유 중 가장 먼저 포기 가능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올라가다보면 결국 '무'의 상태에 도달한다. 아무것에도 이유는 없다. 단지, 흐름에 맞는 현상에 행위를 지속할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들며 시간을 보내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최초에 자신의 본질을 찾아 고민해봤던 '싯다르타'는 모든 것은 '부질'하다고 판단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으로 보고 도교에서는 이를 '무'라고 봤으며,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중첩상태'로 정의 했다. 모든 것은 존재하기도하면서 부재하기도 하고, 행복이면서 불행이기도 하다. 삶의 의미에 심각하게 고민하다보면 때로 삶의 무의미에 허탈함을 느끼고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사실 삶이란 본질을 찾아 해맬 이유는 없다. 삶이란 그저 이유없이 주어져 있으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일 뿐이다. 거기를 채워가는 과정에 굳이 '독'으로 채워갈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차피 채워야 할 할당량의 인생이라는 '그릇'을 부여 받았다. 비워지는 경우없이 꾸준하게 채워야만 한다면 굳이 독과 양분 중 독을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가끔 바보같은 이론인 '조삼모사'처럼 아침에 세 개냐, 저녁에 네 개냐는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몫이다. 우리는 아득 바득 저녁에 4개를 받기 위해 살아간다. 사실 우리가 받을 총 량이 7개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4개를 저녁에 받기 위해 발악한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마시멜로 이론에 따라 만족지연을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유행하곤 했다. 분명하게 주어진다는 약속이 보장된 무한한 마시멜로와는 다르게 우리 인생은 한정적이며 어떠한 약속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욜로'처럼 저녁에 주어질 3개까지 모두 아침에 받아가라는 무책임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보장된 7개에 부담을 내려놓을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과 '불행'은 제로섬 처럼 한정적 자원은 아니다. 무한대로 주어지는 이 같은 양분을 굳이 저녁에 받기 위해 아침에 아껴 쓸 필요는 없다.

책은 다소 불교적인 성격을 띄고 있지만 나는 복잡하게 이뤄진 '천상계'의 신의 존재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의 불교는 우리 인생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예수의 말씀과 부처의 말씀이 '종교'의 옷을 입고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건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종교에 관계없이 철학으로 접근하여 꼭 한번 읽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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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30가지 - 돈, 성공 닥치고 지식부터 쌓자
이리앨 지음 / Storehouse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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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는 '요약 능력'이 필수다. 큰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짧게 파악하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흔히 우리를 교육하는 학자들은 자신이 읽은 수 권의 책과 많은 경험,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 영향력을 얻는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능력이 네트워크를 만나면서 더 큰 영향력과 부를 생산해 낸다. 인플루언서라는 용어가 일상 전반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사람을 이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정보화사회'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회라고 했다. '정보'는 곧 경쟁력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성패를 판가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필요하거나 얻어야 할 정보의 양은 점점 넘쳐나기 시작했다. 어떤 정보가 진짜 정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얻어가야 하는지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정보의 폭풍 속에서 사람들은 헤메곤 한다. 이젠 경쟁력이라는 정보가 너무 많아져 그것을 요약하는 능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슈를 요약해서 알려주는 유튜버나 책을 요약해주는 팟캐스트, 맛집을 알려주는 인스타그래머들은 이런 정보의 홍수를 파고 들어 쓸만한 정보를 건져낸다. 그리고 다수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영향력을 얻는다. 이런 시대에서는 많은 정보를 얻는 것보다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해졌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흐름을 파악해내고 인간을 이긴다. 사람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소설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부분을 대체할지도 모를 이런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읽고 이해하고 요약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내가 항상 말하곤 했던 문해력과 연결되어 있다. 영상 플랫폼이 판을 키우고 인공지능이 우리를 보조한다고 하더라도 글을 통해 인지하는 능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수능을 포함해 우리 나라 시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의 유형은 '주제파악', '내용일치', '주장하는 바', '밑 줄 친 문장이 가르키는 바' 등 길고 복잡하고 긴 문맥을 빠르게 훑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빨리 얻어내는 것이다. 이런 능력의 훈련은 요령으로 생성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따지고 보자면 다독을 통해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튜브 플랫폼에서 작가인 이리앨은 너무 많은 정보 중 우리가 필요한 정보만을 뽑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많은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온다고 이야기하며 우리에게는 시간이 부족하고 얻어야 할 정보의 양은 넘처난다고 말한다.

이리앨이라는 이름은 '이상한리뷰의앨리스'의 줄인 말로, 그는 책에 대해 요약하는 컨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두껍고 어려운 책을 10분 내외로 요약하고 편집하여 방송한다. 벌써 구독자가 22만명이 넘는다. 이 책의 주제처럼 그는 대게 계발서를 위주로 제작을 하고 올린다. 나 또한 유튜브 방송채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책을 주제로 한 채널에서 구독자가 22만 명이 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흔히 북튜버라고 부르는 부류는 투자대비 효과가 적다. 읽어야 할 책의 분량은 많다. 그것을 영상 10분에 녹여 제작해도 조회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읽고 리뷰한 책들 중 상당수는 나 또한 읽고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많다. 그 책들의 대략적인 분량을 알고 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가지고 짧게 요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대학자들의 글들이 그를 스치고 나오며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감상들이 적혀져 있다.

나의 글 또한 총 1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나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출발로 리뷰를 적기 시작했다. 꾸준하게 매일 일정 분량의 리뷰를 올리다보니 나의 글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대중의 심리인 듯 하다. 아무 연고없는 배우나 가수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 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사생활과 생각을 들여다 보고 싶어한다. 그 수요에 공급을 맞추는 행위는 비록 개인의 생각을 소비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꾸준히 팔려나가며 이처럼 책이 된다. 이 글 또한 누군가의 리뷰를 다시 리뷰하는 격이다. 사람의 생각이 물고 물리며 소비와 재생산되는 일은 인류가 탄생하고 수 백 만년을 반복해왔던 일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그것을 다시 읽고 첨삭 후 다시 리뷰를 쓰는 형식으로 인류의 문명은 발전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작가가 요약한 내용 뒤에 그가 흡수했던 양질의 정보는 가늠도 되지 않는다. 작가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또다시 그의 일부를 뱉어낸다.

들어가는 말에서 그는 정보의 선별과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는 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누구나 차등없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면 모두가 모두를 위하는 사회가 될 거라고 말했다. 사실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요약하는 과정에서 아웃풋되지 않은 상당수의 인풋은 첨삭자의 영양분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미새가 아이새를 키우기 위해 입에서 입으로 먹이를 먹여 주는 것처럼 누군가는 최초 어느정도의 성장을 위한 기본적인 지식양이 필수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두꺼운 책의 내용을 쉽게나마 설명하며 책에 대한 기본적이 호기심을 갖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류의 책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마 그런 책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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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시크릿 -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
류창장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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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로 상호 대응하는 두가지 성질이 있다고 믿었다. 이 두가지 성질은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데 이를 음과 양으로 구분했다. 음과 양은 특별할 것없는 기본적이고 평범한 개념이었다. 마치 해와 달 혹은 겉과 속처럼 상응하는 성질이 구성이 만물에 적용된다는 것을 원리로 했다. 암컷과 수컷, 삶과 죽음, 겉과 속, 해와 달, 낮과 밤 등 우리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이분법적인 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 몸의 오장육부, 생년의 난월 난시까지 그 개념은 점차 넓어지고 포괄적이게 되었다. 우주와 자연 만물에는 음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 이 철학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가 됐다. 현재의 의미로 확대해 보자면, 부와 빈, 성공과 실패 등의 세속적인 의미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상대하는 개념 없이 한 쪽의 것만을 취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에도 중요하다. 빈곤한 사람이 없다면 부유한 사람이 탄생할까? 겉이 없다면 속은 존재할까? 애초에 이 질문에는 한가지 오류가 있다. 이분법이란 두가지를 빗대어 기준을 두고 서로를 정의함으로 한가지가 없다면 다른 한가지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을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음과 양의 구분으로 둔다면 어느 쪽에 속할까? 그게 음이던 양이던 중요하진 않지만 행복의 반대가 불행인 것만은 그것을 정의하는 언어로 봤을 때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인생에 불행을 지워버린다면 행복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자석의 N극과 S극은 상호 그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 힘이 강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강해지고, 한쪽의 힘이 약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약해진다. 결국 불행을 줄이고 싶다면 행복과 불행이 구성하고 있는 행,불행 전체 파이를 줄여야 한다. 공부하는 인내의 시간과 결과 얻어내는 기쁨은 비례한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행동력과 사회적 지위의 성공 여부도 비례한다. 한 쪽의 것을 지우고 반대쪽만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의 주된 철학인 음양설에 극명히 위반된다. 음양설은 동서양을 포함해 가장 오래된 철학 중 하나다. 인간이 수 많은 세월 간, 수많은 사람과 상황으로 직접 경험해오고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철학이다. 이것을 위반하고 음이나 양 한 쪽을 취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몰상식한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무지의 산물이라 이 욕심을 조금만 이용하면 많은 욕심이 붙은 돈을 얻어 낼 수 있다. 쉽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큰 돈을 벌어다 준다. 많이 먹어도 살빼는 방법이나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는 방법, 급등주를 찾아서 전날 미리 매집을 하는 프로그램 등. 머리는 알면서도 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행복할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행을 철저하게 피하고 행복만 취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결과값은 추론가능하다. 정답은 '없다'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스스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줄여야 하고, 행복을 키우고 싶다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을 감내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열반처럼 행복으로 여겨지는 수행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해탈이나 열반은 행복을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불행을 없애는 방법이다. 즉, 행복과 불행 모두를 탐하지 않음으로서 세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출렁이는 결박이나 장애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 하더라도 극하게 기뻐하지도 않고 극하게 슬퍼하지도 않는 초월의 상태를 해탈이라고 하고 이 해탈의 경지의 최고조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2500년 전 붓다가 발견한 인생의 원리다.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에는 실제로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것 뒤로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보기에 따라 한쪽 부분을 부각해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음과 양이 모두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과 상황에 대해 일부를 극대화시킨다. 그 감정의 출렁거림에 쉽게 자극받는다. 책 표지에는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이라고 적혀 있다. '훈련'이라는 용어는 현대인들에게 쉽게 사용되는 어휘지만 지금 산속이나 오래 전 선인들은 이런 훈련을 '수행'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살면서 불행이라고 판단되는 몇 가지 사건에 틀림없이 직면한다. 또한 행복이라 판단되는 사건에도 틀림없이 직면한다. 하지만 행복함 가운데 불행에 대한 대비는 필연이고, 불행함 가운데 행복이라는 선물이 필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감정에 의해 왜곡하는 일련의 사건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왜곡없이 바라보는 마음을 '긍정'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긍정'이라는 단어를 좋은 쪽으로 왜곡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긍정'이란, 내가 이미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음의 영역과 양의 영역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해준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지만 성공 또한 실패를 이어 낫는다. 실패를 통해 성공을 얻고 생사의 삶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성공은 실패를 낳고, 실패는 또다시 성공을 낳는다. 그 순환고리에 있다. 이렇게 삶의 고와 락이 반복하며 돌도 도는 것을 불교적 용어로 '윤회'라고 부른다. 좋은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나쁜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좋은 일도 있다. 이미 존재해버린 어떤 사건의 양과 음의 영역을 객관화햐여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거기서 양의 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은 우주의 이치를 유일하게 벗어낼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이다.

행복의 시크릿은 그렇다. 우리에게 우주나 외부세계가 주는 일종의 자극에서 벗어나 스스로 상황 속에서 양의 부분에서 기회를 찾고 확장하며 불행이라 여겨지는 사건에 행복을 찾아내고 행복이라 여겨지는 사건에서 불행을 찾아내어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며 밝은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신이 창조해낸 만물과 우주에서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먹기 수행'을 통해 삶을 긍정적이고 밝게 살아가라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 56가지가 책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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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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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는 일본 소설을 꽤 좋아했는데 요즘은 많이 읽지 않는 듯 하다. '신의 카르테'는 나쓰카와 소스케 작가의 시리즈 소설이다. '카르테'는 의사의 진료 기록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작가인 그는 현직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자신의 배경을 토대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 책은 1, 2, 3권이 시리즈로 출간 되었다가 0권에 이어 4권이 나온 것이다. 시리즈 물이라고 하더라도 앞 전 시리즈를 몰랐다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하진 않는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 병원의 내과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의 이야기는 어쩌면 작가인 나쓰카와 소스케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요즘과 같이 '워라벨'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 자신의 직업에 좋은 점을 찾고 애정을 갖는 다는 것은 부럽고도 존경해야하는 일이기 도하다.

책은 단순한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라고 치부하기에 삶의 많은 부분을 가르쳐준다. 소설 속에 있는 글 중에는 담아두고 싶은 글귀가 꽤 많다. '가야할 갈이 명확하다면 비통함에 젖어 멍하니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리라.' 책의 120 페이지에 있는 글과 더불어 너무 많이 아는 탓에 필요 이상으로 허무하게 생각한다는 글... 넘어가는 페이를 붙잡고 한참을 읽었던 부분이다. 사실 살다보면 너무 뻔하게 흘러가는 일을 알면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걸어갈 길이 불 속임을 알면서 한발 한발을 내딪는 일들은 더 많이 아는 이들이 선택하는 바보 같은 일들이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전 리쌍의 노래 '광대'의 가사를 보면 '저 순진한 사랑의 초보, 애인있는 남자와 눈맞어, 사랑에 빠져, 슬픔을 기다리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죽음과 삶과 희노애락의 다음 순서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이들이 보기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나 '눈물'을 흘리고 사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주할 미래보다 더 중요한 건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많이 아는 것 보다는 조금은 덜 아는 편이 낫은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는 비통함은 완전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한 걸음과 다음 한 걸음을 떼어 움직여야 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슬픔이거나 죽음이거나 비통함이라 할지라도 눈을 뜨면 보이는 미래를 억지로 가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다보면 목적지라는 순간보다 과정이라는 연속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바라던 대로 가족들과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 후타쓰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담담하게 맞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건, 죽음보다 그 걸음과 걸음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지 않을가 생각한다.

요즘 의사라고 하면 그 인기과로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꼽는다고 한다. 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으로의 의사를 어떤 이들은 미용을 위해 일하는 미용서비스 업종 종사자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또한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분명한 '선의' 행동임으로 비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념에 의해 상처를 더 받는 법이니까. 어쨌건 어떤 의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분명 누군가의 상쳐나 질병에 환자만큼의 고민을 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환자의 인생을 관찰하는 주인공이자 작가 나스카와 소스케의 시선이 엿보인다. 얼마 전, 읽었던 골든아워가 문뜩 문뜩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물론 문체나 분위기는 사뭇다르지만 어쩌다보니 의사의 글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이 책을 포함하여 의사의 글이 차갑고 투박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되려 읽기 편하고 문체가 좋은 듯 하다. 시간이 나면 관련 드라마와 다른 책도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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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알고리즘 - 잘될 운명으로 가는
정회도 지음 / 소울소사이어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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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는 어느정도 진실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도무지 믿기 힘든 현상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꼭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가나 성경에서 또한 의미가 모호하거나 믿기 힘든 일들이 자주 나오곤한다. 이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고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점점 줄어든다. 그 이유는 기이한 현상 자체가 줄어 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기록의 방식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특별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오랫동안 전하기 위해서 특히 '글'이라는 도구가 없던 시기에는 '말'과 '기억'이 큰 역할을 해야 했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의 전쟁에서 곰 부족이 통일하고 고조선이 되었다.'로 단군신화를 해석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로써 전해지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니게 된다.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스토리텔링과 비유법이다.

기록은 기억에서 말로, 글로 그리고 영상으로 많이 변해오고 있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단은 영상을 저장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없던 시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든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대신화'들이 탄생했다고 믿는다. 물론 종교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 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이나 일들에 대해서 모호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대게 미신으로 치부하던 일들이 뒤늦게 과학으로 풀어지는 것들을 보면 과거인들의 지혜가 과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많이 넓어져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특이하게 느끼곤 하던 명상의 효과나 잠재의식에 관한 이야기, 양자역학과 같은 이야기는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과학의 범주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되어지고 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영어단어는 'fortune'이다. 이는 행운이나 운을 이야기하는 영어 단어이다. 그 뿌리를 살펴보자면 force라고 하는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의 '운'은 인간이 거역하기 힘든 어떤 커다른 힘(force)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런 모호한 말은 운(fortune) 뿐만 아니라 기(energy)에서도 나온다. 분명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느끼는 어떤 존재에 대해 우리는 정의를 하지 못한채 오랫동안 '운' 혹은 '기'라는 표현을 써왔다. 하지만 이는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미래에서 온 아버지의 메시지를 과학은 '중력(gravity)'말하고 딸은 유령(ghost)라고 말한다. 인터스텔라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유령이라는 존재나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유령은 없다!' 따위의 이야기를 상대성이론으로 풀어낸다니 결국 우리가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단지 미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회도 작가 님의 글이다. 그는 명확하게 운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마치 그것이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알게 모르게 찾아오고 사라지지만 결국 내가 이전에 살펴봤던 영상에 상호 영향을 주는 것처럼 운에도 알고리즘이 작용한다고 그는 말한다. 과거에 봤던 영상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추천 영상이 되고, 이를 통해 미래에 보게 될 영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운의 알고리즘이다.

그를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영상을 우연하게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는 멀끔하게 잘 생긴 내 또래의 사람처럼 보였다. 어쩐지 그를 다시 책으로 만난 건 우연을 가장한 인연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 타로카드에 대해 실험을 하는 영상들이 있다. 얼마나 이 타로라는 것이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밝히는 목적의 영상들이 있다. 나는 지금도 별자리나 타로 혹은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믿지 않는 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타로카드를 뽑고 전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자역학에 의하면 관찰자에 의해서 결과 값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즉, 실험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바라보지 않으면 물결의 모습 즉 파동이 되는 관찰자 효과처럼 우리의 미래는 유연하게 달라지는 현상이다.

책에서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앞서 말한 운(fortune) 즉,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force)와 비슷한데, 대략 운명과도 같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는 것은 나태함이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평온함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고 한다. 이를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가독성이 좋아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대기업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일 수록 이런 운에 대한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쩐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을 필요는 반드시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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