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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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서머스카운티 탤컷에는 한 남자가 서있다. 남자는 묵직한 해머를 들고 있는데, 근육질의 몸을 가졌다. 그의 이름은 '존 헨리'. 그는 1872년 탤컷의 빅벤드 터널 공사 노동자다. 터널 공사에 사람이 아니라 '증기드릴'이 사용되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헨리는 기계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증기드릴'과 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은 하루를 넘어 지속했고 결국 인간은 승리했다.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준 '헨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결국 무리한 대결 탓으로 결국 사망한다. 한 삽, 한 삽을 퍼낸 구덩이와 굴착기가 단숨에 퍼낸 구덩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인간의 우월성과 존엄성을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젓가락'으로 밥먹는 일에 대해 '손가락의 우월성'이 침해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 한다. 심지어 '뗀석기', '간석기', '청동기', '철기' 등. 시대를 구분하는 잣대는 '지능 수준'이 아니라 '도구 사용 수준'이다. 진일보한 문명을 사용한 것은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내고 인간을 더 풍족하게 살도록 했다. 구석기 누군가는 한끼 식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종일의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의 지금은 그 위험을 줄였고 시간도 줄였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높은 생산성을 대신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주먹도끼로 찍어 내어 빻은 밀가루와 분쇄기로 갈아낸 밀가루에는 '인간의 우월성'이 아니라 '고운 입자'라는 가치를 매겨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우월성을 침해한 사건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기 훨씬 이전부터 꾸준하게 이겨왔다. 인간은 분쇄기에도 졌지만, 자동차에게도 졌고 타자기에도 졌다. 단지 이번에 '인공지능'에게 졌을 뿐이다. 인공지능에게 지면서 인간이 우월성을 침해 받았다 충격이 현대인들에게 만연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한 진일보한 문명 상태를 유지했다.

'지능'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이 더 위험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었다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다만. 나는 이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알파고가 아무리 뛰어나도 알파고는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200만년이 걸렸다.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키는데 걸린 시간을 보면, 우리가 고작 십 수 년 개발 뒤에 '신'의 업적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과만이다.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승리다. 알파고에게 패배를 하고 '이세돌'은 은퇴를 했다. 우사인볼트는 100m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기아 K9 자동차 안에서는 나와 우사인볼트는 모두 평등해진다. 증기드릴을 이긴 '존 헨리'처럼 그 시대에 잠시 기계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기계는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앞지른다. 인간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생산해 냈기 때문에 당연히 기계는 인간보다 우월해야만 했다. 자동차가 탄생한 이유는 자동차가 인간보다 우월한 속도와 지구력을 가졌기 때문이고 드릴이 탄생한 이유도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 만년 전 누군가는 주먹도끼에 의해서 인간의 영역이 침범 당했다고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충분하게 돕는데 사용될 것이고 더 편하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직업을 앗아갈 것이라고 공포에 떨곤 했다.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인공지능이 엄청난 생산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소비력이 없다면 곧바로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의 효율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이 가난해진다는 위험은 공상 영화에서도 갖기 힘든 설정이다. 인류가 달나라를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대부분의 인간이 달탐사를 가진 않는다. 기술은 경제를 앞질러 혼자 독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조선 태종 12년에 코끼리가 조선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온 사신이 태종에게 코끼리 한마리를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조전서를 지내던 '이우'라는 사람이 코끼리를 찾아왔다. '이우'는 코끼를 보며 말했다.

"고놈 참 추하게 생겼구나, 에이 퉤!" 이우가 코끼리를 놀리고 침을 뱉자. 코끼리는 이우를 쓰러뜨리고 발로 밟아 죽여버렸다. 이 일로 코끼리는 '살인죄'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살인'에 대한 죄값을 두고 법리를 따지던 상황에서 결국 태종은 코끼리를 순천의 '장도'라는 섬에 귀향을 보내기로 했다. 귀향을 갔던 코끼리는 섬에 물과 식량을 축내다가 결국 야위어 갔다. 이 일로 코끼리는 다시 육지로 이송이 됐고 세종 2년에는 코끼리가 공주로 이송됐다. 코끼리는 노비에게 돌봄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었는데, 세종 3년 3월 코끼리는 다시 또 자신을 돌보는 노비를 발로 차 죽여버렸다. 코끼리는 매년 쌀 48섬에 콩 24섬을 먹어 치웠고 성질이 나빠서 사람을 죽이니 다시 또 귀향을 가야 한다고 결정됐다. 이렇게 코끼리는 다시 귀향을 떠난다. 실제 코끼리는 지능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지능지수가 80정도니 전 동물을 통틀어 4번째 정도 된다. 코끼리는 성격이 온순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포악하지도 않다.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코끼리를 포악한 범죄자로 만들었다. 어떻게 다룰지 아는 이와 그렇지 못하는 이에 따라 이는 무기가 되거나 흉기가 되기도 한다. 기계가 대체한 인류의 능력은 많다. 덕분에 인간은 치명적이던 '신체능력'을 더 퇴화 시켰다. 기계의 능력이 인간을 대체 할수록 인간은 체력이 낮아지고 근육이 약화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을 돕는다. 실제로 스마트폰에 뺏긴 지적 능력으로 사람람들은 뇌의 일부분을 퇴화시켰다. 스마트폰의 강한 자극에 오랫동안 노출된 뇌는 현실감각에 무뎌진다. 주의력이 약해지고 감정이나 현실 변화에 무감각해진다. 이를 팝콘 브레인 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이 디지털 치매, 불면증 ADHD에 취약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덜 걷고 덜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한 몸을 가진 이들이 희소한 사람이 됐고 이에 따라 가치있게 됐다. 이제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뇌 영역을 도우면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희소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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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법
장신웨 지음, 고보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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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쳐해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자신의 꼬리를 미끼로 천적에게 주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런 생존법은 사실상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잘린 꼬리를 재생시키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도 하고 한 번 자른 꼬리는 다시 끊어지지 않는다. 즉, 평생 단 한번의 사용만 가능하다. 도마뱀은 꼬리에 지방을 저장하곤 한다. 지방은 실제로 가장 큰 잠재적 에너지원이다. 많은 양의 지방을 저장하면 갑자기 찾아온 기아의 상태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률을 높여준다. 꾸준하게 쌓아둔 지방을 끊어내고 도망을 가는 것은 결국 목숨을 부지했지만 새로운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은 침을 쏘고 나면 죽는다. 벌은 놀라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을 쏜다. 다만 이 생존법 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침을 쏘면서 침에 벌의 내장이 함께 뽑혀 나오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기보호를 하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뱀장어는 860V까지 전기를 생성해 낼 수 있다. 다만 이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를 배출해 내면 금세 지친다.생산 이후에 방전된 체력 때문에 원주민들에 의해 쉽게 잡히기도 한다. 외부의 적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기'라는 보호막은 자신에게도 위협이 된다. 자신 역시 발생된 전기 감전에 안전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어떤 동식물은 독을 만들어 낸다. 복어또한 외부의 위협에 대해 내부에 독성을 만들어낸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체는 죽은 뒤에 자신이 맛없는 고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후경직'을 한다. 동물체가 죽고 나면 내부에 화학변화가 일어나고 근육이 굳어지는데, 소는 24시간, 돼지는 12시간, 닭은 2시간 정도로 사후 강직된다. 이때, 고기는 질겨지고 맛이 없어지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풀어진다. 천적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살아 있을 때부터 죽었을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며 대부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치명적인 독성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위협이라고 느끼는 상황이 되면 우리 또한 내부에서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예전 자연습성에서 천적으로 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쳐해졌을 때의 현상이다. 인간은 뛰어난 송곳니나 두꺼운 살가죽이 없다. 털도 없는 연약한 피부에 지구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동물보다 우수한 게 없다. 다만, 인간이 위협에 노출됐을 때, 우리는 뉴로트로핀(neurotrophin)이라는 뇌 화학물질은 분비한다. 이것은 뇌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강화한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를 '생각의 바다'에 노출시킨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고민이나 걱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사자기결(思者氣結)이라고 해서 '생각이 많으면 기가 엉킨다'라고 했다. 생각의 끝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로 귀결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상황이 우리를 천적으로 부터 경계심을 갖게 만들고 이것이 집단과 개인의 생존력을 높히기 때문이다.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는 것처럼, 꿀벌이 자신의 내장을 침과 함께 내놓는 것처럼, 전기뱀장어가 자신의 체력을 방전할 만큼 전기를 내뿜어 내는 것처럼 이는 인류를 키워온 생존 전력이지만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100세가 넘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대부분이 '스트레스가 없는 즐거운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영양가 있는 식사나 꾸준한 운동이 아니라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우리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내는 내부적인 작용들이 우리를 더 빠르게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코끼리의 크기로 불어난다. 이런 걱정은 앞서 말한대로 생각 중독 현상의 결과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불필요한 미래와 과거를 떠올리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들은 결국 우리의 지능과 상상력을 발달 시켰으나 곧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극도로 발전된 생각의 범주는 가만 두게 되면 다시 불필요한 걱정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종이 위에 덜어내는 것은 '걱정'을 줄이는 동시에 엄청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은 쉽게 말하면 '망나니'에 가깝다. 그는 30대에 도박으로 부모의 유산을 모두 날렸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빚을 많이지고 성욕과 도박의 유혹에 쉽게 현혹됐다. 쾌락 뒤에 찾아오는 환멸감의 윤회를 반복하던 삶을 유지하던 그는 질투심 많고 남들의 존경과 찬사를 즐겼다. 쾌락과 좌절은 아이러니하게 같은 뇌파를 만들어 낸다. 결국 우리 뇌는 쾌락과 좌절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그는 불연듯 깨달음을 얻는 성인 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탐구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렇게 극도로 노출된 스트레스에서 탄생했다. 글 이라는 것은 '생각의 흔적'이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의 흔적들의 속도를 낮추지 않으면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를 만들어 낸다. '수능 금지곡'이라는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 있다. 어떤 날은 노래 가사가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돌아다닐 때가 있다. 이때는 가까이에 있는 물건의 숫자를 세거나 종이 위에 구구단을 적는 등 어떤 일에 몰입을 하면 일순간 머릿속에 잡생각이 들어갈 틈이 사라진다. 그리고 머리는 고요하게 된다. 생각의 흔적은 우리의 뇌를 정화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결국 '문학'이라는 결과물도 만들어낸다. 예전부터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천재적인 영감을 얻어내곤 했다. 어찌된 일인지, 미술가와 음악가의 작품은 극도로 아름답고 그들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젊은 시절 가난과 빚 사이에 요절한 '모차르트'나 조기교육으로 인한 불행의 삶을 연속한 베토벤, 반 고흐나 톨스토이. 끝도 없는 천재들은 결국 생각 중독자들이고 글과 음악은 그것을 덜어내는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아인슈타인 또한 바이올린을 몹시 좋아했다. 걱정이 코끼리처럼 몰려오면 결국 글을 쓴다. 생존을 위해 나에게 독을 만들어 내면, 이 독은 나를 죽이지만 역으로 다시 이용하면 이것은 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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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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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개미 사회는 여왕개미, 일개미, 숫개미로 되어 있다. 즉, 일개미도 암컷이다. 일개미의 특징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 일개미 중에서 선택 받은 개미만 여왕개미가 된다. 일개미가 여왕개미가 되는 과정에서 굉장히 독특한 현상을 보게 된다. 일개미가 여왕개미가 되는 순간 뇌용량은 20~25%가 줄어든다. 뇌로 가는 에너지를 돌려 난소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난소는 5배로 커진다. 뇌가 환경과 경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고도의 기억력 시험을 치룬다. 이들은 320개의 경로, 2만 5천개의 개별 거리, 호텔, 극장, 대사관, 경찰서 등 2만 가지의 목적지 위치를 외워야 한다. 런던대학교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택시 운전사의 뇌를 스캔했다. 그 결과 '해마'라고 하는 부위의 뒷부분이 비대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전 경력이 긴 운전사일 수록 해마의 크기는 더 컸는데, 이것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인간의 뇌도 변화를 갖고 온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신체 근육이 커지고 생각을 하면 뇌 근육이 커진다. 일개미에서 여왕개미로 바뀌자, 뇌 용량을 25%나 줄이고 난소를 5배로 키운 개미처럼 말이다.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임원으로 진급됐다. 그때 내가 들었던 말은 이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렇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물도 100도 씨 위에서는 수증기고 냉동고에서는 얼음이다. 사람은 '물'과 같다. 유연하다. 언제든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 '퀀텀 라이프'의 저자, '하킴 울루세이'는 본명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지혜롭다'의 북아프리카 표현인 '하킴'과 '신이 행하신 일이다' 라는 '울루세이'이다. '마약중독'에 빈민가 갱스터와 같은 삶이었다. 다만 그를 담는 그릇을 바꿈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됐다.

마약에 미쳐 누군가의 이마 위로 총구를 들이대던 그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지만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다른 백인들과 경쟁하는 삶을 산다. 얼핏 '포레스트 검프'와 '굿윌헌팅'을 떠올리게 한다. '퀀텀'이라는 말은 양자를 이야기한다. 흔히 '퀀텀 점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서히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한 단계 불쑥하고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역시나 '양자들'의 집합체이던가. 인간의 성장도 계단식 성장이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까지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은 언제나 내 정수리보다 위에 있었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다시 교실에서 만났을 때, 여자아이들의 키가 내 코밑 부근 쯤 됐다. 물리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도 마찬가지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제자리를 돌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다만 우리는 다음 퀀텀점프를 위해서 잠시 계단의 평지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언제 다음 세계로 화끈하게 넘어갈지는 알 수 없다. 해외에서 영어를 공부하면 3, 6, 9 법칙이 있다. 마치 시간과 돈을 남의 나라에 쏟아 붓고 있다고 느껴질 때, 3개월, 6개월, 9개월이면 갑자기 한 단계씩 성큼 성큼 성장한다. 유학시절 내 공부법은 단순했다. 누군가는 머리가 좋아 공부하는데로 바로 암기했으나, 나는 달랐다. 봐야하는 책의 표지를 편다. 저자 소개와 목차를 포함해 모든 범위를 훑는다. 무슨 말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그런 글들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내가 무엇을 했나" 싶다. 앞서 했던 방법을 다시 한 번 한다. 이렇게 읽고, 또 읽고 또 읽다보면 어두운 방에 촛불 하나, 둘, 셋을 켜듯 서서히 환해짐을 느낀다. 글을 읽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어느 순간에는 '정독'이지만 '속독'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키워드'를 위주로 이해를 하고 있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전체 그림을 마인드 맵을 통해 그려보면 전체의 그림을 훤하게 불 밝힌듯 켜진다. 처음에는 어둡고 다음에는 덜 어둡고, 그 다음에는 조금 덜 어둡다. 밝혀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 놓고 하나씩 초를 켜기를 한 회, 두 회, 세 회를 하며 ㅇ, ㅗ, ㅇ, ㅣ, ㄴ, ㅎ, ㅗ ,ㅏ, ㄴ' 총 9획을 완성하면 '내 이름'과 함께 전체의 암기는 완성된다.

어둠을 맞이하는 태도는 그렇다. 어둠은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그것이 그저 '어둠'이라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조금씩 밝힐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인간은 조금씩 진화한다. 되지 않는 어떤 것을 붙잡고 짜증을 낼 때 쯤, '하킴 울루세이'의 인생을 만났다. 이미 몇 개의 초가 밝혀진 내 방과 다르게 그의 방은 칠흑같은 어둠에서 '성냥'을 찾는 일 부터 시작한다. 내 방이 어둡다고 말하기에 더 뒤에 시작하여 태양처럼 방을 밝힌 누군가가 존재했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고 책임감 없는 어머니와 마약으로 삶이 망가진 아버지, 마음 놓고 돌아 다닐 수 없는 유혹의 거리에서 시작해도 언제든 밝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회독으로 책 한 권을 암기할 수 없다. 누군가는 새까맣게 깜지를 쓰기도 한다. 불완전한 첫 번 째와 어설픈 두 번 째와 그리고 세번 째를 하고 나면 결국에는 저도 모르게 완성된다. 지구는 최초에 불타오르는 암석 덩어리였다. 이 모든데 하루 아침에 완성 된 것이 아니다. 수 많은 하루와 하루가 쌓여 완성된 완성체다. 양자를 뜻하는 퀀텀의 역학을 우리는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역학 작용으로는 전혀 닮지 않은 이 세계는 빛처럼 파동이자 입자의 이중성을 띈다. 즉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개입할 때만 입자로 존재한다. 퀀텀 라이프의 저자의 삶도 중첩된 상태로 굉장히 오래 존재 한다. 다만 그 모두가 진실이며 우리가 그를 바라보면 그는 어떠한 완전한 형태로 존재한다. 신도 오늘을 만드는데 이처럼 오랜 시간과 정성을 쌓았는데 단 한 번으로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하겠다는 것은 '오만'이자 욕심이다. 근 3일 간, 책을 놓지 못하고 꾸준하게 읽었던 책이다. 이처럼 재밌는 책은 꼭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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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 -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나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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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양초에 불 붙일지라도 처음 초의 불 빛은 흐려지지 않는다. 지혜를 알리고 정보를 알리고 배움을 알리는 일은 나누면 나눌수록 배가 된다. 제자를 길러내거나 도움을 주는 것을 게을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학창시절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오던 세대에서 '정보'는 혼자만의 것 이어야만 했다. 누구에게도 알려줘서는 안되고 알려주면 알려줄수록 희소성이 떨어져 자신의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여겼다. 다만 살면서 느낀바에 의하면 무조건 먼저 배운 것을 다음 현자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그것은 '내 영향력'을 넓힐 뿐만 아니라, 세상이 밝아지는데 아주 조그만 기여를 하는 것이다. 투명한 물에 빨간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이를 정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맑은 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쉽게 물들지만 가려진 '진리'나 '본질'을 되찾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책 한 권을 읽고 각종 SNS에 올리는 글은 도서 요약이 아니라, 읽은 도서와 그전 도서가 융합된 다양한 정보다. 대략 3~4000자를 매일 꾸준히 쓰다보면 적잖은 시간이 들어간다. 글쓰는데만 하루 30분에서 1시간을 사용한다. 일주일이면 넉넉잡아 7시간이고 한 달이면 30시간, 이렇게 꾸준하게 글을 쓴게 3년이니 365시간을 썼다. 총 5권의 책을 집필했고 인스타그램, 블러그, 브런치, 유튜브를 통해 꾸준하게 나의 생각과 먼저 알게 된 지식을 알리고 있다. '영어'나 '지식', '인문학', '역사'할 것 없이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이 유익해지길 바란다. 다만 이렇게 알리는 노동에 '돈벌이'가 되진 않는다. 누군가는 돈도 안되는 일에 쓸데 없이 시간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그렇게 이익을 목적으로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탈무드'는 탄생하지 못했다. 알리고 알리고 알리지만, 내 지식은 줄어들기는 커녕 다시 끄집어내어 설명하고 복기할 때마다 재생산됐다. 누구도 훔치지 못한 자산을 내부에 쌓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가끔 쓰는 글에는 오류가 있다. 사람들은 글쓴이의 상식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 수준'의 질문을 내놓는다. 표면적으로는 '질문'이지만 질문자는 이미 정답을 알면서 일종의 '테스트'를 한다.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어김없이 조롱이 따라 나온다. 나는 해당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도서를 통해 조금 먼저 접하거나 알게 된 것을 기록하고 넘길 뿐이다. 글을 쓰다보면 스스로가 그 분야의 전문가쯤은 된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지만 나는 사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잘 모른다. '너 이것도 모르지?' 하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뜨끔하고 기분이 상하지만 나는 호흡을 다시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한다.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탈무드에서는 '당신의 혀에게 나는 잘 모릅니다라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면 '모른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수치적'으로 생각한다. 가령 미국 역대 연방준비이사회의 '혈통'을 묻는 질문이 그렇다. 대략적으로 그들 중 다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들의 본명과 가정사까지 정통할수는 없다. 다만 이런 질문에 최대한 아는 수준까지 대답을 하고 결국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내가 '모른다'라고 대답한데는 어떤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예전 아이들과 병원을 찾았을 때가 있었다. 별뜻없이 나는 의사선생님께 궁금한 것들을 마구 물어봤다. 실제로 '전문의'라는 사람들은 관련 전문 지식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의식에서의 행동일 것이다. 내 질문에 의사는 미간을 깊게 파고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엄청나게 두껍고 어렵게 생긴 전공 서적을 내가 보는 앞에서 뒤적 거렸다. 그의 대답에는 분명하게 '모른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자신이 다시 공부한 내용을 나에게 설명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그 다음부터는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모른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비슷한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이 있다. 그것을 어떤 주제가 나올 때마다 기록했다.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드는 그런 기록들은 하나 둘 씩 쌓아 놨지만, 사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오랜 사람들이 쌓아 놨던 기록을 먼저 살폈다면 내가 새롭게 겪는 일은 많이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겪으며, '아.. 다음 번에는 이렇게 해야 겠구나' 했던 '지혜'는 이미 탈무드 속에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동안, 더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이다. 직장생활을 어린 나이에 시작하여 내가 관리자로 있던 시기, 직원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다. 직원 중 너무 상식적이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직원이 있었는데, 마침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해당 직원을 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또한 침을 튀기며 그 사람을 욕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기억은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지워 버렸지만, 나보다 5살은 어린 20살 여자 아이에게 "그렇지 않니?"라며 동의를 구하는 것에서 선명해 졌다. 이때, 여자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저는 잘 모르겠어요." 웃으면서 말하는 여자 아이에게 나는 '기필코, 너도 그 사람이 이상하다는 것에 동의해라!'는 듯이 "뭐가 그럴 수 있어? 이상한 거지"라며 욕하고 있었다. 20살 여자 아이는 끝까지 이 험담에 참여하지 않았고 능숙하게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앞뒤 상황이 전부 기억나지 않는 이 이야기에서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침을 튀기며 20살 여자애를 설득하던 내 모습'이었다. 남을 험담하는 인격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것인지 그 이후로, 나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그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탈무드에는 이미 이 비슷한 내용이 기록 되어 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세사람을 죽인다. 자기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건으로 스스로를 죽이고, 자리에 없는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듣는 상대를 죽이고자 발악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당시 먼저 떠올렸다면 나는 입을 무겁게 닫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비싼 시계도 매시간 60분 밖에 나타낼수 없다. 살다보면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났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가 비슷한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가 허세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재벌이 된다고 하더라도 쌀 밥 위에 금가루를 뿌려 먹을 수는 없으며 언제나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먹게 된다. 그 밖에 탈무드에는 굉장히 좋은 내용들이 많다. 스스로 재미없고 조용한 이들을 무시하고 시시한 샌님으로 여기더라도 언제나 인내심 강한 사람이 스승이 된다. 이 모든 내용이 이미 수 천 년 전,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기록해놨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이것을 값싼 가격에 읽고 수천년의 시간과 지혜를 구매한다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 밖에 탈무드에는 재미난 표현들이 몇개 더 있는데, 가령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걱정꺼리가 늘지만 재산 이 없으면 걱정거리가 더 많이는다.'라는 표현과 '돈이 있으면 걱정되지만, 돈이 없으면 슬퍼진다.'라는 말에서 인간이 살면서 최소한의 '부'에 대한 관념은 필요하다는 부분도 공감된다. 사람은 유일하게 다음 세대로 자신들이 겪었던 실수를 넘길 수 있는 존재다. 이전 세대가 이미 겪은 오답을 통해 오답노트를 만들어 언제나 정답을 찾아내곤 했다. 매 세대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다른 종들과 달리 인간이 이전 세대의 정보를 넘겨 받는 것은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발전한 이유기도 하다. '탈무드'를 읽고 수 천 년, 수만명의 삶과 지혜를 훔쳐낸 이들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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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백만장자 (골드 리커버 에디션) - 푼돈이 모여 어마어마한 재산이 되는 생생한 비법
토머스 J. 스탠리.윌리엄 D. 댄코 지음, 홍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에서는 연간 총 1,400만대가 넘는 자동차가 팔린다. 이 중 연간 약 7만 대는 메르세데스다. 숫자로 보자면 대략 0.5%정도다. 미국의 백만장자 가구는 거의 350만이나 있다. 사실상 성공적인 부를 얻는 누구는 휘황찬란한 별 엠블럼을 달고 도로로 나갈 것 같지만 고급 수입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리스하는 사람들 중 백만 장자로 분류되는 이는 1/3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고급 승용차 구매자 2/3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지출을 리스를 통해 구입한다. 그들은 씨앗과 돈을 아주 비슷하게 생각한다. 씨앗은 먹어버리거나 심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 만약 씨앗을 심고 10피트짜리 옥수수로 자라는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도 먹어 없애버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장 배고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씨앗을 삼키는 일은 제대로 된 부를 얻어보지 못한 선택인 경우가 많다. '만족 지연'이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한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진은 3~5세의 아동을 대상으로 시험을 했다. 접시에 담아둔 마시멜로를 15분간 먹지 않고 기다린다면 2개로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실험에서는 마시멜로를 바로 먹어버린 집단과 끝까지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의 부류로 나눠졌다. 실험의 오류가 있다고는 하지만 '만족지연'은 절제성과 미래의 성공을 연관 짓는 실험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만족을 지연하는 경우 2개의 소득을 준다는 약속에도 이후의 2배 만족보다 당장의 만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실험에 참여한 아이의 15년 뒤 성장과정과 대인관계, 학업능력과 경제 능력을 비교했을 때, 만족을 지연한 쪽이 훨씬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흔히 '부'라고 하면 '빌게이츠'나 '일론머스크', '워렌버핏' 등을 떠올리지만, 전세계를 통틀어 몇 명 되지 않는 부자의 습관을 흉내내는 것은 '표본부족' 혹은 '표본오류'다.

우리 주변에 상대적 다수에 해당되는 백만장자는 어떤 습관들을 가지고 있을까. 흔히 자산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드시 '고소득'이진 않다. 대부분이 교사나 교수와 같이 평균적인 급여를 갖는 이들인 경우가 많다. 또한 돈이 많다고 여겨지는 '의사'라는 직업군도 '자산가'로 속해지지 못했다. 누군가는 더 많은 소득을 얻고도 자산가가 되지 못하고, 누군가는 평균적인 소득만으로도 자산가로 거듭나게 됐다. 이들의 둘의 차이를 가른 것은 다름 아닌 '시간'과 '습관'이다. 흔히 '의사'을 고소득 직업군으로 분류하면서 우리는 '의사'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갖는다. 다만 의사의 경우, 대부분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늦은 공부를 마치고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의사들은 다른 직업군과는 별개로 대게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다. 고소득에 이타적인 이들은 자신의 소득 일부분을 기부하거나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들의 대부분은 개인시간이 부족할 만큼 일을 하기도 하고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 시간 외에 직업군에 관한 도서를 읽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의사의 경우에는 끊임 없이 관련 도서를 읽고 자기계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안정적인 고소득을 얻기는 하지만 '자산'을 형성하는 일에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한다. 미국의 백만 장자의 경우 3만 5천 달러 정도 수준의 차를 구매한다. 이들은 또한 신차가 아닌 '중고차'를 구매하곤 하는데, 얼핏 흔히 말하는 BMW나 벤츠와 같은 차를 구매하기 보다 대부분 '포드'와 같은 차를 구매한다. 결국 도로 위에 다니는 차종으로 그 사람의 자산 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은희'라는 인물이 나온다. 억척스럽고 소탈하지만 그녀는 건물이 몇 채나 되는 자산가다. TV에 나오는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멋들어진 셔츠를 입고 비싼 자가용에서 내리지만 우리가 그들을 '자산가'라고 생각 할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자산'을 알 수 없으므로, 이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자산가'일 뿐이다.

대부분의 자산가는 악세서리나 옷, 자가용 등에 지출을 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그들은 지출되는 돈이 '투자'의 형태인지 '비용'의 형태인지를 생각한다. 대부분 자가용이나 의복, 악세서리 등은 지출과 즉시 감가상각이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이 가치 감소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만약 같은 지출을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에 투자 했다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상 장기적으로 우상향 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기준으로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주식의 형태로 소유하고 있었으면서 '소극적 투자자'였던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매수는 하더라도 매도를 거의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은 수 년에서 십 수년, 길게는 수십년 씩을 매입 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그래프에 기민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산을 매입한다.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자산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고로 보여지는 부분으로 그의 자산을 추정하곤 한다. 비싼 옷과 자동차를 구매하는 이들은 대부분은 타인에게 그렇게 보여지길 원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보여지길 원하는 원하는 이들은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하고 결국 이는 자산형성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쉽게 말해서 대중에게 '자산가'란 매스컴을 통해 만드어진 이미지로 밖에 접할 수가 없으며 이런 이미지는 '허구'에 가깝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다. 닭이 있어야 달걀이 있고, 달걀이 있어야 닭이 있는 것과 같이 물고 물리는 관계다. 검소한 이들이 지출형태를 투자로 갖고 있을 때, 자산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산가는 지출의 형태를 투자로 갖고 있기 때문에 검소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자산가들이 비싼 옷과 명품 악세서리, 고급 수입차를 타고 있다고 한다면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어딘가 어긋난다. 고소득자와 자산가는 분명하게 다르다. 결국 검소하고 느긋한 이들은 시간과 습관이라는 무기의 도움을 받아 '복리'의 작용으로 자본주의의 승자가 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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