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
현혜 박혜정 지음 / 굿웰스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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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년 전 쯤, 해외에서 유명한 영상 하나가 돌아다녔다. 아기 코끼리 한마리와 배고픈 사자 14마리가 싸우는 영상이다. 이 싸움에서 아기 코끼리는 사자가 덤벼도 아랑콧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백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 14마리가 아기 코끼리와 싸우는 이 장면은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영상만 보더라도 누가 '백수의 왕'이 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영상에서 코끼리는 사자 14마리를 파리 쫓듯 쫓는다. 화가 난 코끼리가 반격하자 사자들은 코끼리를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장애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적혀 있다. 코끼리는 위협적인 몸을 갖고 있지만 온순하게 풀을 뜯는다. 결국 우리가 '백수의 왕'이라고 하면 '사자'가 떠오르는 이유가 그렇다. 숨기고 있는 능력이 더 뛰어나고 뛰어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사용하는지, 사용하지 않는지가 '백수의 왕'을 만든다. 사자는 코끼리에 비해 몸집이 작다. 골격은 말할 것도 없고 몸무게나 힘에서도 떨어진다. 간혹 물소나 하마, 기린에게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가 '백수의 왕'인 이유는 사자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코끼리, 기린은 더 위협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축구 선수라고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뛰지 않는다면 능력있는 선수가 아니다. 능력은 발휘될때만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언제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평생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않는다. 장애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이와 함께 세계를 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를 갖고 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진 간판에 등을 맞고 척추신경이 끊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사고 직후와 이후의 삶과 생각에 대해 얼핏 보자면 책을 읽으면서 숙연해질 정도다. 저자는 '나도 하는데, 할 수 있습니다!'라고 독자를 격려한다. '해야 하는데...'하고 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도 결국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이 장애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떤 결함에 의해 활동에 제약이 있다면 '장애'라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누군가는 행하고, 누군가는 행하지 못한다. 얼마 전, 조선시대 장애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책을 보자면 장애인들은 그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100번이상 충족하며 사회 주요 관직과 위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키가 크면 중심축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불리하다. 김연아 선수의 키는 큰 편이기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불리했다. 그러나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라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발바닥 안쪽 아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 그것을 '평발'이라고 부른다. 평발을 가지면 지구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지구력이 떨어져서 오래 경기에 뛰지 못해야 할 선수가 '2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지성 선수'다. 벽에 부딪쳐서 넘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장애가 된다. 다만 그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디딤돌이 된다. 박지성 선수가 평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지성 선수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평발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더 박수를 보냈다. 장애가 디딤돌이 돌이 된 것이다. 아무리 그것을 극복하면 멋진 이야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신체의 장애를 넘어서기 위해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 '에드거 앨런 포'는 시련이 없다는 것은 복 받은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련을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시나 그녀가 가져야 했던 시간을 보면 다시 또 숙연해진다.

동감(sympathy)과 공감(empathy)의 차이를 아는가. 이 둘은 모두 pathy(통한다)라는 어원을 공유한다. 연결되어 통한다는 의미를 가진단어다. 둘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similar(비슷한)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동감(sympathy)은 말 그대로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Entire(전체의)와 같은 어원을 가진 공감(Empathy)는 타인의 감정을 내부로 옮겨 같은 심리과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둘은 얼핏 닮았지만 다르다.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고 해서 성질이 같은 것은 아니다. 비슷하게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그것의 상태를 받아드리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가 텔레파시(telepathy)처럼 먼거리에서 통하는 초능력과 같은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겪거나 보는 일 외에 동감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에게 하는 대부분의 위로는 '네 맘 다 안다'지만 친구와 헤어지면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신의 일상을 지낸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략적으로 유추한 적은 많다. 다만 실제로 생생하게 이야기를 읽은 적은 많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고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크기의 시련을 갖고 있다. '장애'라고 말할 수도 있는 시련이다. 누군가는 배우자를 잃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모를 잃기도 하며 누군가는 남들보다 허약한 체질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시련을 갖고 있지만 완벽해 보이는 상대들을 보며 자신의 가치를 깎아버리곤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시련은 극복하지 못했을 때, 시련으로 남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난 뒤부터는 축복일 수 있다. 그것을 극복할지, 말지는 어떤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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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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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종교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다. 얼마 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전세계 빈곤층에게 통신기술을 전파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을 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빌 게이츠는 '카톨릭 신자'다. 그는 자선 활동에 전념하며 전 세계 부호 목록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을 제외한 나머지 44명은 모두 '개신교 신자'다. 앞서 말한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도 '카톨릭 신자'다. 불교를 탄압의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불교 신자'였다. 안중근 의사와 정약용은 카톨릭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신자'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개신교'다. 스티브 잡스도 불교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개신교 신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카톨릭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아이작 뉴턴은 신학자며 종교학자였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간혹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왜 그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걸까. 어떤 종교인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것은 종교가 가진 '초월성' 때문이다. 종교의 특징은 '초월'에 있다. 인간이 설정한 한계선을 종교 가볍게 넘어 가게 한다. 모든 것을 초월해 버리는 종교의 근간에는 '죽음'도 있다. 종교는 죽음조차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을 믿는 것'이 순진하거나 어리석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가 천재라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 조차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대는 신을 믿는 이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다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다. 서울 구치소에서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를 상담해오던 '양순자 작가' 또한 카톨릭이다. 그녀는 사형수들을 상담하면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을 바라봤다. 인간은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을 관찰하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달리 본다. 죽음을 초월한다면 삶의 가능성은 무한으로 넓어진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남과 동시에 울음을 터트린다. 온갖 공포 속에서 빛과 공기마저 공포가 된다.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소년이 되며 공포는 점차 줄어든다. 한 살이 두 살이 되거나 여든 아홉 살이 되는 것 모두 나이가 드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죽음의 목전에서 두 가지 유형을 보인다. 하나는 그것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경우며, 다른 하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경우다. 여기서 어른과 비어른이 나눠진다. 수 많은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났다. 이들은 동등하게 같은 운명을 맞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다. 어차피 맞이하는 죽음에는 '순서'만 있을 뿐, 결과는 같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언젠가 땅에 닫는다. 반드시 언젠가는 땅에 닿는다. 죽음은 '중력'처럼 일방적인 결과다.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가게 될 결말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는다. '사후세계'를 믿던 다시 윤회하여 환생하던 죽음이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단계 중 하나라고 여길 뿐이다. 이들은 진짜 어른이 된다.

삶이 단 한번 뿐이라고 여긴다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목숨'이 무한대인 게임을 하는 사람과 '단판'에 승부를 봐야하는 사람과는 '실행력'부터 차이가 생긴다.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도 다른 이들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것을 먼저 안 사람은 죽음에 대해 담담하며 은행에서 번호표 뽑듯, 자신의 차례에 응당 행동한다. 어차피 놔버릴 것들에 대한 욕심도 두지 않으며, 젊은 이들가 묻지도 않은 말하고 싶어 안달하지도 않는다. 어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초월'해 있는지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초월'은 멀어진다. 살다보면 먼저 태어난 것으로 '어른'의 지위를 얻어가는 사람이 있다. 다만 모든 경우가 어른은 아니다. '나이는 많지만 어른이 아닌 경우'도 적잖게 본다. 삶에 쥐고 있는 것들은 많다. 욕심, 자존심, 허세, 체면, 물욕, 과거, 미래 등이 그렇다. 그런 것들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 '죽음보다 덜한 위기' 정도는 웃으며 넘긴다. 뜨개질을 할 때,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실을 풀어 코가 빠진 지점까지 되돌아가야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풀기가 아까워서 그대로 진행한다. 결국 완성품은 불량품이 된다.

'뭐.. 좀 다시하면 되지.'

가벼운 마음이지만 쉽게 내지 못한다. 그것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야 어른이다. '매몰'된 비용에 대한 집착도 어른이 되면 놓아야 한다. 삶에 욕심을 내려 놓으면 무서움이 사라진다. 누구나 삶에 위기가 있다. 누구나 길을 지나가다보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어둡다고 멈춰 선다면 어둠 속에 머물게 되지만, 더 가속해서 그곳을 빠져나온다면 곧 터널의 밖이라는 걸 깨닫는다. 터널 뒤에 밝은 빛을 알고 있으니 터널 쯤이야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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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머니 GET MONEY
이경애 지음 / 밀리언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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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방법'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학창시절 학업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대게 머리가 단정하고 셔츠를 교복 바지 안으로 넣어 입었다. 높은 확률로 그들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필통도 묵직하지 않았다. 내가 모범생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질'과 '현상' 중, '현상'에 더 기민한 반응을 한다. 보여지는 현상을 모방한다면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현상'이 아니라 '본질'이다. 학업성적이 우수해지기 위해서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는 것이 어느 정도의 확률로 도움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현상을 흉내내는 것은 비닐 봉지에 명품 마크를 달아 넣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12년간 일본에서 납세액 1위를 여러번 기록한 '사이토 히토리'는 지갑에 돈을 넣을 때 한 쪽으로 정리해 둔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을 따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상'을 모방하면 그들과 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샤머니즘'을 닮았다. '명당'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적 있다. 실제 '명당'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로또 1등' 당첨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판매처'를 조사한 것이다. 실제로 1등 당첨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명당 판매처'에서는 여지없이 1등이 나왔다. 이것은 '본질'과 '현상'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예시다. 사람들은 '로또 1등'이 많이 배출된다는 '명당'으로 몰린다. 그 곳에서 구매를 하면 신비한 기운 덕분에 1등 당첨자가 얻은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로또 명당 판매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 구매를 했다. 그 결과 당연히 더 많은 로또 당첨자가 발생했다.

부자를 흉내내기 위해, 부자의 말투를 따라하거나 부자의 습관을 따라하는 것은 '본질'이 만들어낸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왜 머리를 단정하게 하며, 왜 안경을 쓰고 다녔는지, 필통은 왜 가벼웠는지, 그들은 왜 옷을 단정하게 입었는지, 그 '왜'를 고민해야 한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능'도 아니고 '유전자'는 더 더욱 아니다. 그들은 아주 오랜 기간 '습관'처럼 굳어진, '무의식' 삶의 패턴이 있었다. 그들은 왜 그들이 남들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굳이 옆에서 묻기에 몇 가지 대답해 볼 뿐이다. 해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나에게 한국어 과외를 받던 '현지인 친구'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고 물었다.

"'철수와 민철은 밥먹었다.'라는 문장에서 철수'과'라고 하면 안돼?"

나는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왜냐고 물었다.

"받침이 없으면 '와'라고 하고, 받침이 있으면 '과'라고 하는거야"

그러자 친구는 다시 물었다.

"한국인들은 이름 말할 때, '와'냐 '과'를 따지기 위해 받침 유무를 빠르게 판단하면서 말하는거야?"

이 물음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한국인이지만 우리말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철수는'은 맞고 '철수은'은 틀리다는 것은 그냥 오랫동안 그렇게 썼기 때문이지 문법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다. 고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문법에 무지하다.

'본질은 무엇인가' 여기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라이프스타일'이다. 실제 부자에게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할 것 같지만, 한국인에게 물었다고 더 정확한 문법 설명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정 환경'에 의해 결정됐을 수도 있고 자신만의 경험에 의해 결정됐을 수도 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셔츠를 교복 바지 안에 집어 넣는 것은 '성적을 올리는 필수 조건'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제도권의 규범이나 제도를 벗어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면 안된다'는 규율이 있으면 그들은 대게 그것을 지킨다. 준수사항이 있으면 그것을 지키고 교사가 설정한 과제와 학업량을 지킨다. 그저 그것이 전부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 대게 품행이 방정해지고 학업성적이 우수해질 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요?'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부자'의 종류는 엄청나게 다양하며 그저 운좋게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비트코인'을 매매하여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모든 것은 일반화할 수 없지만, 예외사항으로 전체를 부정하기도 힘들다. 대게 사람들은 섞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자와 빈자, 우등생과 열등생은 자신이 보는 세계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들은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들이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그들도 인지하지 못한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상'을 살펴봐야 한다. 그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제3의 눈에서 현상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본질과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서는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도 거의 대부분 관통한다. 개인적으로 쉽게 읽히며 본질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현상들이 담겨져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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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달이 말해준 것들
지월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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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면 모두가 너를 응원할 거야."

삭,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달은 스스로 그냥 달이다. 다만 때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는다. 이름마다 다른 것을 담는다. 아침에는 좋았던 감정이지만 밤이되면 복잡해지고, 얼마 전까지 행복했지만 얼마 뒤부턴 슬퍼지기도 한다.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해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삭에서 보름달로 채워나다가 어느 때부터 다시 삭으로 사그라든다. 사람의 인생이나 감정도 이처럼 완전하지만 이랬다 저랬다 거린다. 그러나 모양을 감춰, 보이지 않는 삭도, 사실 어딘가를 반드시 지키고 있다. 말은 가볍고 글은 무겁다는 작가의 글이 달에 비유되어 여러 감정으로 들어온다. 확실히 글은 말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 앉는다. 학창시절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살았다. 음악소리가 귓구멍에서 머리를 스치지 않고 심장으로 내리 꽂았다. 적막은 견디기 힘든 지루함이었다. 나이가 많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멀리서 들러오는 TV소리', '자동차 엔진소리' 등. 엄청나게 많은 소음 속에서 '적막'이 그리워진다. 아무것도 틀지 않은 이어폰을 귀에 꽂아 두면 조용히 '적막의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적막'의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각은 모두가 잠들고 혼자 깨어있는 밤이다. 달이 떠서 적막해진 것인지, 적막해지기에 달이 뜬 것인지. 어쨌거나 달은 적막과 함께 했다.

달이 뜬 뒤, 부정적인 생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을 건너뛰기 하려고 일찍 잠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적절한 망상도 때론 필요하다. 인문학 책만 들여다 보기에 우리는 감성 에세이나 소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만 살 수는 없다. 음력 8월 보름에 뜨는 '한가위'다. 환하게 내리 비추는 달이 완전히 차올랐다. 오랫동안 보지 않던 친지 가족을 만나고 모두 만난다. 신문은 말했다. '이번 한가위는 100년 만에 뜨는 가장 둥근 보름달'이라고... 100년 만에 뜨는 한가위 보름달이 나에게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나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친구 녀석들도, 보고나면 이상하게 기진맥진해진다. 사람을 만나고 해체된 '기'는 '달'이 뜨면 서서히 채워진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80년 만에 내리는 눈을 맞은 적 있다. 대학 강의를 듣다가 불쑥 나왔을 때다. 급하게 사야만 하는 것만 사기 위해 나왔으나, 주머니에는 10센트가 모자랐다. 모자란 동전 때문에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야 했다. 가난한 유학생은 편의점을 나와서 하늘을 봤다. 내리는 것이 비인지 눈인지 몰랐다. 무언가가 내 얼굴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80년 만에 오클랜드에 내린 첫 눈이라고 했다. 그 눈은 나에게 씁쓸한 의미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라고 해도, 나에게만은 다른 의미일 수 있다. 그것이 '달'이 가진 의미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같은 달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달은 공포의 상징이기도 하고 호기심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불길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역사가 흘러가면서 그때는 맞았던 달의 모습이 지금은 다르다. 달을 닮아 '감정'도 그랬다. 분명 언제고 반듯하게 나를 비추고 있다가, 시기가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거짓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던 기억도 나중에는 '잊고 싶은 악몽'이 되기도 한다. 어떤 누군가와 이별했던 슬픔도, 지나고보면, '그땐 그랬지' 하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 모습은 그대로나 그렇게 바라보고 저렇게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와 지금이나 달의 모습은 조금도 차이가 없으나 그렇다. '땅의 달'이라는 '작가 지월' 님은 말했다. 때로는 초승달, 때로는 반달 그러다 결국 때가 되면 보름달. 자신의 시간이 오면 본연의 큰 모습으로 빛을 내어 어둠을 밝힐 줄 아는 사람이라고... 100년만에 뜨는 가장 둥근달은 역시나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달은 다들 잠든 시간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에 떠 있을 뿐이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더 밝은 존재가 뿜은 빛을 받아서 비춰 줄 뿐이다. 나 또한 스스로 빛나진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뿜어져 오는 빛을 받아 다른 어디론가에 은은하게 비추는 존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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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 백성을 깨우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36
안오일 지음 / 다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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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약은 따로 있지 않고 그 쓰임에 따라 나눠지는 법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은 광해군의 학질을 다스리기 위해 비상과 소금, 빗물로 약을 만든다. 비상은 '비석'을 불에 태워 가루로 빻은 분말이다. 이 물질은 독성이 너무 강해 살충제로 사용된다. 대게 조선시대 사약에 쓰인 이 약재를 '허준'은 '광해'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다. 은수저를 까맣게 물들이는 이 독약은 백혈병 치료제이기도 하다. 독과 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은 흉기이면서 훌륭한 조리 도구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것이 담고 있는 본질도 달라진다. '언론'은 '말씀 언(言)'에 '논할 논(論)'을 사용한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말한다. 언론은 말을 퍼트리는 매체지만 이들은 여론(輿論)을 만든다. 여론은 '수레 여(輿)'에 '논할 논(論)'을 쓴다. '여론'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지지를 받는 의견을 말한다. 이것은 즉, 상품 뿐만 아니라 '정보'도 마케팅 능력이 중요하다. 아주 좋은 상품이라도 마케팅이 부족하면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아무 형편없는 상품이라도 마케팅이 훌륭하여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언론'은 쉽게 말해 '정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셈이다. 어떤 정보를 담을지, 어떤 정보를 담지 않을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혹평'으로 다룰지, '호평'으로 다룰지 이 모든 골자를 제작한다. '조보'는 승정원의 발표사항을 필사하여 배포하던 일종의 민간 심문이다. 일정하지 않은 종이 위에 초서체로 날려쓴다. 언론의 역할 중 '신속'과 배포' 중 조보는 '신속'을 택했다. 지금과 다르게 조보는 사람의 손으로 필사했다. 빠르게 필사해서 다량 배포하기 위해, 글씨가 뭉게지는 '필기체'를 피할 수 없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신속이 생명이라고 여기고 누군가는 '정확'이 생명이라고 여긴다. 다면적인 특성의 언론은 역시나 다양한 '대중의 가치관'을 만나면서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선조수정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민간 업자들이 조보를 활자 인쇄하여 판매하니, 많은 이들이 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시행 두어 달 후에 우연히 임금이 이를 알고 분노하여 관련자를 처벌했다.' 신문이나 인터넷 등 편리하게 정보를 접하던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왕실과 조정 혹은 국정에 대한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에 승정원에서는 그날그날 소식을 모아 전국으로 배송했던 모양이다. 이 500년이 된 일간 신문을 소재로 소설이 집필된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 보고자 한 것이다. 소설의 '조보, 백성을 깨우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는 권력에 맞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미국 언론인 '셰릴 앳키슨'의 '내러티브 뉴스'라는 도서를 읽었다. 도서에는 '언론인'으로써 진실에 대한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 오랜기간 '군부'와 '독재'의 정치를 경험한 우리의 역사를 살피면 대중이 우리 언론을 향하는 시선이 어떨지 그려진다. 그러나 앞서 말한 '내러티브 뉴스'를 보자면, 우리가 갖는 고민이 꼭 우리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이라는 '미국'에서도 갖고 있었다. 언론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놀랍게도 아시아 1위이다. 일본과도 차이가 꽤 큰편이다. 의외로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미국보다 높다. 우리의 언론인과 미디어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외부의 직, 간접적인 압력에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현대사의 문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듯, '대중'이 '언론'을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빠른 '근현대사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 덕분에 실제 사회와 '대중인식'에는 큰 차이가 발생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을 '대중'이 감시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기레기'라는 말이 있다. 대중이 평가가 더 엄격해 지면서 '언론'은 '권력'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지고 '대중'의 감시에서 덜 자유로워졌다. 개인적으로 언론에게는 불편한 일이겠지만, 사회적으로 괜찮은 현상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언론도 장악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김판서와 그에 맞서는 '민간 언론인'의 이야기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꽃은 피어날 시기가 왔다고 판단을 하면 미루지 않고 핀다. 나중에 된서리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 신문과 뉴스를 보면 굉장히 시끄럽다. 국가가 엉망이고 언론이 엉망이고 사회가 엉망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다시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한다. '박노해' 시인은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했다. 조용한 나라는 독재의 나라이며 살아있는 나라는 권력자에게 언제든 묻고 감시하는 나라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민중'이 주인인 나라라는 모호한 '권력구도'의 정치 체제다. 고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잘못을 온 국민이 스마트폰과 TV를 통해 지켜보고 지탄을 하며 서로를 경계한다. 소설에 '글은 권력을 향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정보를 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글'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같은 글을 읽고도 이해하는 이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글을 담은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각자가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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