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 - 개그맨 김형인의 뼈 때리면서도 담백한 세상에 대한 처세 이야기
김형인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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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형인'. '웃찾사'에서 '그런거야?'라는 유행어가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지냈다. 공개 코미디가 방송에서 언제 사라진지도 몰랐다. 공개 코미디 뿐만아니라 드라마나 예능도 보지 않았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탓일 것이다. 오래 전 알았던 이를 다시 만난듯 유튜브 채널에 비친 반가운 얼굴을 눌렀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리하여 시작된 인연 말이다.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봤다. 하나, 둘 보다 보니, 추천 영상은 계속 다음 영상을 띄웠다. 대게 '조폭', '징역' 이야기가 많았다. 특별히 관심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무심하게 봤다. 돌이켜보니 업로드 영상을 모두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징역'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긴 적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의 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교도소(矯導所)는 '감옥(監獄)과 다르다. 그저 가둬두고 징벌하는 곳이 아니라, 교화시키는 곳이다. 교도소(矯導所)의 교(矯)는 '바로잡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보면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인'에는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이 없다. 실수나 고의도 모두 살인이다. 그 죄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의 여지가 열렸다. 사악한 '악'들을 가둬 뒀을 것 같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며 인생에 대한 성찰은 이곳보다 많이 이뤄진다. 전과가 많은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 26%인 1,163만 명이 전과를 갖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성인 4명 중 하나는 전과를 갖고 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교화'가 되지 않는 무관용 사회라면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을지 모른다. 매스컴에 나오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나 파렴치한들이 만들어낸 '전과'에 대한 편견은 개그맨 김형인에 의해 아주 조금이라도 희석됐을 거라 믿는다. 나도 그랬다.

그의 짧고 투박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인생 실전에서는 아무리 깨우쳐도

또 무슨 일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뿐.

*

이렇게 공감되는 말이 있을까.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고 더 많은 이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고생은 안하는게 최고'이고 청춘이라도 아프지 않는게 최선이다. 다만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아픔과 고생의 순간이 찾아온다. 피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피하면 좋다. 다만 언제고 반드시 마주하게될 그것들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상대'가 별볼일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맛봐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젊을 때 말이다. 외국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을 때, 삶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주고 있다고 믿었다. 고작 'Hello'를 뱉으며 유아처럼 말을 더듬던 시기, 교수는 경제학을 뱉었다. 뭐라고 필기해야 할지도 막막한 그 첫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첫 시험에 무얼 써서 낼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흘렀다. 한 번, 두 번 하다보니,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 시험은 그냥저냥 할만했고 한 번을 경험하니, 두 번은 요령이 생겼다. 읍내 촌구석에서 자라던 내 어린시절은 '아버지'의 봉고차로 6개월에 한 번 시내에서 열리는 오일장 구경을 갔다. 버스도 타 본 적 없는 촌놈이 처음 버스를 타고 혼자 시내로 나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내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같은 장소를 몇 시간을 헤매다가, 공중 전화로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결국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 주변만 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고 나는 가방에 옷 몇가지와 화장품 정도를 넣고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따지고 보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시시해진다. 그것은 반복되면 '무의식'처럼 해결한다. 아픔과 고생은 당면한 당사자에게 가혹한 일이겠지만, 그까짓 놈들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말은 투박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리 깨우쳐도 무슨 일은 반드시 생긴다. 아무일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그의 영상을 정주행하여 봤던 나로써, 그가 쓴 글에 몇가지 생각해 볼만한 예시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사람에게 치이고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는 그에게서 '실패의 내성'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수 년 전, 만든 유튜브 채널은 지금도 구독자가 727명이다. 갈 길을 잃은 채널. 편집 기술이 없다거나, 컨텐츠가 없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업로드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오랜 기간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을 두고 새로운 채널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채널에 편집도 없이, 혼자 촬영한 영상, 아마 그 아마추어 같은 영상을 본 몇 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밖에도 꾸준하게 그에게는 무슨 일인가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얼마 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채널은 시작됐다. 그 동안 느낀바는 있다. 채널 내용과 상관없이 실패를 넘어서는 모습을 지켜본다. 흔히 감정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혹은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이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웃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웃기 힘든 일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에도 잠시 자신을 속이고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웃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나와 닮았다. 억지로 더 과하게 웃고나면, 웃는 동안의 슬픔은 아주 잠시 옅어진다. 그러다 혼자가 됐을 때, 병목상태에 정체돼 있는 슬픔은 뚫린 봇물처럼 쏟아진다. 와장창 쏟아지면 다시 그것을 잊기 위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나는 참 다행이도 그 탈출구를 '책'에서 찾았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어떤 걸 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찾아보게 됐다. 나쁜 쪽으로 빠지는 이들은 굳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사회면 뉴스에 나오곤 한다. 그를 잘 알진 못한다. 영상을 통해 정제된 그의 모습만 알 뿐이다. 다만 아무리 정제해도 걸러지지 않은 무언가가 영상을 통해 보여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는 더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그 탈출구를 삼지 않았을까. 남들이 기피할만한 주제와 사람들을 소재로 음지를 양지로 바꿔내는 그야말로 진짜 희극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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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팩트 - 세상의 진실과 거짓을 한눈에 간파하는 강력한 10가지 법칙
팀 하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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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세계 3번째 부자인 워렌버핏은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와 홍콩 여행을 갔다. 여행 중 버핏은 게이츠에게 맥도날드 점심을 사주었다. 그날 해당 맥도날드 매장 이용자의 평균 자산은 백억불 이상이 넘었다. 평균의 오류는 그렇다. 당장 시골 동네 양로원에 빌게이츠가 방문하면, 양로원의 이용자 평균 자산은 수 조원이 된다. 숫자는 사실을 말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일화는 여럿있다.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영국의 열차 과밀 탑승자수는 1,000명이다. 다만 영국 열차는 평균 탑승자 수가 130명이었다. 고로 영국 열차는 과밀하지 않다. 이 결론은 잘못됐다. 물론 숫자에 따르면 영국 열차를 과밀하지 않다. 다만, 실제 탑승자 100%가 과밀함을 경험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통근 시간에 승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운행되는 열차가 10대라면 통근시간 한 대에, 모든 이용자가 이용하고 나머지 9대는 빈 차로 운행된다. 고로 열차 이용자의 100%는 과밀함을 느낀다. 객관적 사실을 들이 밀어도 그것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옳은 문제는 아니다. 통계 뿐만 아니다.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하며 전달하려는 욕구가 있다. 진실은 충격적이지 않다. 오늘 아침 내가 물 한잔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진실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오르 내려야 하는 '정보'가 되려면 정보는 '상품성'을 가져야다. 정보가 '마케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자극적인 '가짜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다. 흔히 1% 부자가 99%의 부를 차지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하위 50%보다 더 큰 부를 갖고 있다는 말 말이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2014년 1월 '가디언'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정확히 3년 뒤, 85명에서 8명으로 부자의 숫자가 바뀐다. 이야기는 점차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해당 글을 인용하여 부의 쏠림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나왔다. '인류애'의 상위 몇 명이 져야 한다는 '책임 촉구'도 생겼다. 다만 이것은 실제가 아니다. 하위 50%의 부와 동등한 숫자를 가진 이들은 상위 8명도 아니고, 85명도 아니었다. 실제 상위 2억 내지 3억명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포함될지 모른다. 숫자는 점차 자극적으로 수정된다. 나중에는 상위 1%가 인류 99%의 부를 소유했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이 주장이 팩트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가 8,500명이어야 한다. 주장의 오차가 100만 배가 되는 순간이다.

1982년 출간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 시대 가장 우량한 기업 43개로 경영의 모범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기업들은 2년 내로 30%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것들은 결과 편향적이다. 로또 1등 당첨자의 로또 당첨확률은 100%다. 숫자는 그렇다. 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과에 도달한 이들을 토대로 조건을 분석한다면 조건의 성공 확률은 100%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성공 조건'은 결과에 따라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조건'으로 변경해도 된다. 통계자료와 숫자는 이처럼 진실을 말하는 듯 하면서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둔다. 컴퓨터는 딱 인간의 편향만큼 왜곡한다. 인간은 믿지 못해도 컴퓨터는 믿는 요즘이다. 다만 컴퓨터 또한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야심차게 인공지능 챗봇인 테이(Tay)를 공개한다. 테이는 사용자로부터 학습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벌어진 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대량학살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무슬림 혐오주의자들로 인해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다. 구글스피커와 더불어 대한민국 인공지능들도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다. 기술자들은 강제적으로 개입하여 정보를 필터링 하도록 해야 했다. 유튜브 채널을 보면 '필터버블'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알고리즘이 사용자에 맞는 정보를 편향되게 제공하다보면 결국 정보의 버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에 따라 유튜브는 다른 채널을 보여준다. 10대의 유튜브 추천 채널에는 게임 방송이 주를 이루고 20대에는 연애나 코미디, 30대는 경제관련 채널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겠지만 이또한 사실이 아니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정보의 양은 무지 막지해졌다. 이제 정보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찾은 정보를 어떻게 취합하고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

팩트를 명확하게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은 중요하다.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 미래에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유튜브 채널이 짧게 요약해 주는 정보로 세상의 흐름과 지식을 쉽고 빠르게 쌓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영상메체는 정보 전달을 일방향으로 한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보낸다. 정보가 '선전물'이 되는 것은 적잖은 독재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얼마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렸다. 희한하게 이 기간동안 경제 통계발표가 연이어 무기한 연기됐다. 정보를 갖고 있는 이들은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기도 하고, 비공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한다. 공급자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을 때, 우리의 눈과 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심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고통을 겪을 때,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 자리가 되는 도무지 이해가 하기 어려운 통계자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이는 공급자의 신뢰문제다. 신뢰할 만한 공급자일 경우, 그 정보를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공급자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조작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 따지고 보자면 그 힘은 '독서력'에서 얻어진다. 쉽고 빠르고, 짧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이 정보는 물론 꽤 좋은 방향으로 소비된다. 다만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능동적인 정보습득 능력을 길렀을 것이다.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공급자가 되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수요자가 된다. 수요자가 수동적일수록 공급자는 능동적이게 된다. 수요 공급 이론에 따라 언제나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적다. 고로 정보는 언제나 값어치를 갖는다. 이것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은 '힘' 혹은 '권력', '재력'을 갖는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릴지, 그것을 능동적으로 해석할지. 그것은 본인이 판단할 몫이며 그 모든 것은 독서가 재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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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
아프리카 윤 지음, 이정경 옮김 / 파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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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한국에 관심 많은 외국인을 만나곤 한다. 유학시기, 친한 친구들은 한국을 좋아했다.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음악을 좋아했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나보다 한국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들이 가졌던 열정은 '한식'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한식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밑반찬'과 '후불결제'가 그렇다. 우리에게 당연한 문화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꺼내 놓아도 잘 먹지 않는 배추김치, 무말랭이, 콩나물 무침 등. 무료로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이 개념은 놀라워 했다. 친구는 밥과 밑반찬만 먹어도 되겠다고 했다. 패스트푸드에 가면 감자튀김만 추가해도 비용을 내야 한다. 친구는 종지에 나오는 콩나물 무침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식당에 따라 뷔페처럼 퍼먹을 수 있도록 하는 곳도 있다. 한식은 대게 후불결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해외 레스토랑도 후불결제다. 다만 후불 결제 시, 서로가 신용카드를 꺼내어 다투는 모습은 재밌다. 우리의 식문화는 대게 공유한다. 찌개나 전골을 시키면 상대가 '쪽'하고 빨아 먹었던 수저를 다시 국물에 담군다. 이 모습에 기겁하는 이도 있다. 다만 대부분은 받아들였다. 한국인의 식문화 중 가장 독특한 점을 찾으라면 '채식'과 '물', '발효'다. 이 특징은 지리적인 특징에 따른 문화다. 동양은 태평양을 아래로 하고 있다. 태양열로 달궈진 적도의 태평양은 습한 공기를 만들고 북상한다. 이것은 풍부한 강수량을 만든다. 여기에 특징이 하나있다. 한, 중, 일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모두 이 동양에 속하지만 식문화는 약간씩 다르다. 삼국은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쌀농사를 짓게 됐다. 아프리카를 아래로 하는 유럽에 비해 식물이 비교적 크고 쉽게 자란다. 이들은 짧은 풀이 자라는 유럽보다 '채식'을 하기 유리했다. 다만 중국의 경우 토질이 황토에 석회질 성분이 많다. 수질이 좋지 못한 중국에서는 고대로 부터 '차문화'가 발달했다. 중국 음식에 기름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다. 일본의 경우, 기온이 덥고 습하기 때문에 최대한 음식을 빠르게 섭취했다. 일본에 '생식'이나 '튀김'이 많은 이유도 그렇다. 중식의 경우에는 기름에 넣고 '웍'으로 조리하므로 '조미향'이 독특하고 재료 간의 '조화로움'에 집중한다. 일식의 경우에는 풍부한 강수량과 싱싱한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다.

한식의 경우는 이 중간에 해당된다. 한국은 수량이 풍부하지만 토질이 석회질이 아니다. 비교적 습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생식'을 하지 않는다.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수확철에 저장한 음식으로 겨울을 보내야 한다. 한식의 특징은 '저장성'에 있다. 한식은 고로 '탕류'가 잘 발달되어 있고 발효식품이 많다. 서양인의 냉장고와 한국인의 냉장고에는 확연히 다른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장아찌', '김치', '젓갈'과 같이 반년 이상 두고 먹어도 문제없는 음식이 있느냐의 여부다. 이런 동양의 특징 덕분에 서양인들은 특히 '한국음식'과 '일본음식'에 환상을 갖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식'에 '웰빙푸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산업화가 먼저 된 일본의 경우, 일식이 먼저 알려졌다. 한식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한식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설거지'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식기류가 덜 나오는 '일식'에 비해, 중식과 한식은 식기류가 더 많이 나오고 씻기도 힘들다. 이 또한 식사후 뒷처리 물사용과 연관있다. 실제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왜 한국인들은...'에 자동완성 기능으로 '날씬한가'가 함께 나온다. 한국인들은 비교적 마른 편에 속하는데 이 또한 '채식 위주'의 식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의 생활수준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한다.'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고기를 많이 못했다. 세종시기에는 소를 도축하는 것이 불법이기도 했다. 이것은 농업국가들이 필연적으로 가져야 했던 문제다. 다만 통계를 보자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기면 고기, 해산물이면 해산물 거의 모든 식단을 대체적으로 많이 먹는다. 어쨌건 꽤 오랜 시간, 동양인이 육식을 하지 않아 왔다는 것은 사실임으로 그것은 '식문화'에 그대로 남았다. '숙성'이나, '발효'는 사실 건강이나 맛을 위한 발명이 아니다. 이것은 식품을 오래 보관하고 먹기 위한 방안이었다. '고기'는 발효나 숙성이 어렵다. 보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동양'과 '서양'의 큰 문제였다. 오죽하면 아인슈타인이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특허를 냈을까. 오래된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은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후추라는 향신료를 찾게 했다. 이것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서양이 해결방안을 외부에서 찾은 것과 반대로 동양은 그 해결방안을 손쉽게 찾았다. '숙성'과 '발효'다.

'과학'의 발전과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식문화에 환상을 심었다. 어쨌건 이는 일부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프리카 윤'은 한국 식문화에 대한 간단한 호기심으로 한국과 인연을 처음 시작한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법한 '오지랍 넓은 아주머니'를 통해 한국의 인상을 처음 접한다. 체중을 줄이고 맛을 챙기는 한국식에 푹 빠진 뒤에도 그는 한국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는다. 그녀는 카메룬인으로써 정체성을 갖고 미국에서 생활한다. 와중 한국계 미국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 카메룬, 한국, 미국. 국적으로 따지자면 꽤 재미난 문화의 융합이다. 역시나 그녀와 남편은 불어, 영어, 한국어, 카메룬어로 여러 언어가 융합된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융합된다. 우리는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쉽게 말하는 '순종'말이다. 다만 조화라는 것은 '순종'에 적합하지 않다. 식재료를 그대로 섭취하는 것을 '요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양한 식재료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하나의 맛을 내는 것을 우리는 훌륭한 요리라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지극히 낙천적인 시각과 때로는 이별의 슬픔, 신체적 고통, 마음의 상처가 담겨 있다. 언제나 행복하고 웃을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원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하나의 음식처럼 조화롭게 섞여 완성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어쩐지 그녀가 세상에 내어놓은 책이 짧지만 다양한 맛이 있는 우리 인생과 같아서 너무 재밌다. 어느 순간에는 '요리책'을 읽는 듯 하고, 어느 순간에는 연애 소설을 읽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감동도 있다. 삶은 그래서 재밌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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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 상처뿐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임아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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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팔고(人生八苦) 중, '원증회고(怨憎會苦)'. 불교에는 사람이 면하기 어렵다고 하는 여덟가지 고통을 구분했다. 그중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수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고통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애별리고)과 고통의 크기는 같다. 원수와 함께 해야하는 고통. 그것은 크나 크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관계를 맺는다. 자신을 중심으로 관계의 얽힘은 확장된다. 게중 선택 밖의 관계도 존재한다. '가족'이 그렇다. 부모, 형제, 자녀와 같이 선택하지 않은 관계. 천륜으로 이어진 관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가 그렇다. 관계에서 상처 받길 계속한다면 자신과 상대를 위해 떠남을 결정해야 한다. '이별'을 조금 더 순화된 말로 하자면 '독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부모자식 간의 이별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계에는 '부모자식의 관계'가 지속적이지 않다. 자녀가 성체가 되면 이들은 이별한다. 다름 표현으로 독립한다. 부모의 밥그릇을 탐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이빨을 드러낸다. 그것은 반댓쪽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예외다. 사회가 묶어 놓은 시스템은 '자연계'의 그것을 거스른다. 공자는 유교의 개념에서 '효사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모를 공경하고 궁휼히 여기는 이 사상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 국가와 사회에 부담이 되는 '노인'에 대한 책임을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윤리적 책임으로 두었다. 이것을 부정하는 일은 사회에 지탄을 받는다. 유교의 영향력과 무관한 서구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성인 이후로 달라진다. 서양 부모에게 육아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다. 동양에서는 다르다. 동양에서 관계는 죽음 직전까지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다음 자녀가 자신을 공경한다는 믿음으로 지탱된다. 시대가 달라지며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자녀세대가 태어났다. 흔히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삶의 무게에서 '적어도' 하나의 부담은 줄이고 싶어한다. 이 세대간의 간극 덕분에 현대는 세대간의 갈등이 극심하다.

가족 간의 관계 뿐만 아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관계도 떠날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옳지만 그 실수가 자신과 상대의 본질마저 흔들 정도라면 과감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라면을 끓은 양은냄비의 손잡이를 잡는다. 젖은 행주로 쥐어도 뜨끈함이 올라온다면 손에 화상을 입더라도 끝까지 들고 있거나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았을 때, 더 큰 부상의 위험이 있다면 손이 데일 각오를 해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내려 놓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실수를 떠안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선택을 번복한다. 친구와의 관계나 사제 간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신의 실수를 담담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잘못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그저 서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살펴 봐야한다. 가끔 살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범인들은 가장 쉽고 이기적인 방식을 택한다. 바로 상대를 바꾸는 일이다. 부부는 대게 살아 온 환경이 다르다. 누군가는 머리를 말린 수건을 방 안에 걸어 두길 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세탁기에 넣어두길 원한다. 상대에게 한 두번 말을 해도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 세탁기에 넣어두길 원하는 쪽은 상대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상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갈등은 대부분 하나 둘 쌓이고 결국 다툼이 된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답은 쉽다.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면 된다. 상대를 바꾸는 것은 흔히 말하는 성인들도 이루지 못했다.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4대 성인의 제자 중에는 그들을 배반하거나 실망시키는 일이 적잖았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그들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문제 해결 방식을 바꿨다. 그들은 상대를 바꾸지 않고 자신을 바꿨다.

따져 들자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오른쪽으로 가려는 자와 왼쪽으로 가려는 자가 동등하게 힘의 균형이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대립이라고 부른다. 대립된 상태에서는 모두가 제자리에서 힘을 소진한다. 오른쪽이던, 왼족이던 사실상 '재앙'에 가까운 결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상대의 방향에 맞춰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상대에게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잣니이 고치면 그만이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고로 누군가와 대립관계에 있다면 상대에게서만 문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한 여자는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남편은 워낙 술을 좋아했고 여자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여자가 술을 먹지 말길 남편에게 말해도 남편은 어느정도 약속을 지키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온다. 이 갈등에 여자도, 남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관점을 바꿔 여자가 '술을 먹기로 한다면' 갈등은 사라진다. 남녀는 서로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금연' 또한 마찬가지다. 담배 냄새가 심하다면 상대가 끊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흡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흡연은 좋지 않기에 자신과 상대를 위해 금연을 권유하겠지만, 흡연으로 인한 건강의 문제와 부부관계의 악화 중 차악을 택하면 된다. 물론 억지 일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이 그런 선택을 쉽게 하기 어려운 것처럼 상대 또한 자신을 바꾸는 것을 어렵다고 느낀다.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것, 다른 하나는 그 관계를 종료하는 것이다. 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다. 한 번 이어진 인연이 불가분의 인연이 되어 영원히 따라 올 것이라는 관념은 쌀농사를 짓던 전체주의 동양사회에서 있던 문제다. 한, 중, 일 삼국의 자살률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이것은 국가 법이나 사회체계의 문제라기보다 윤리로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윤리와 비윤리. 그것은 분명 살아가는데 중요하지만, 죽음보다 선행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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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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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4분, 영화는 2시간, 드라마는 50분. 일반적 러닝타임이다. 각각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것은 과거에 비해 길어졌고, 어떤 것은 짧아졌다. 예술과 문화는 독자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기술발전'이다. 음악은 '라디오, 티비'와 함께 발전했다. 라디오, TV는 광고를 통해 매출을 발생한다. 방송은 호흡이 긴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이 곧 매출에 직접적 영향인 방송의 특성상 음악은 러닝타임이 짧아야 했다. 이제는 2분 대의 음악도 등장한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1906년의 '켈리 갱 이야기'의 러닝 타임 60분이었다. 1937년에는 100분을 돌파했다. 2000년대 초반에 1시간 40분으로 정착했는데 VHS 비디오 테이프의 등장 때문이다. VHS 비디오도 물리적 한계는 있었다. 2시간을 담기 위해서 250m의 길이가 필요했다. 이후 DVD가 등장했고 러닝타임은 더 길어졌다. 현재는 스트리밍으로 송출함으로 물리적 제약이 사라졌다. 지금의 영화는 2시간이 넘는 경우가 많다. 선수보호 차원 일수도 있으나 스포츠도 짧아졌다. 19세기 축구는 전후반 1시간 씩, 총 2시간이 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전후반 45분 총 90분의 러닝시간이 자리잡았다. 드라마도 러닝 타임이 짧아지다가 요새는 간접 광고를 통해 광고 노출이 늘어나며 시간이 길어졌다. 산업화 된 국가들은 대게 야구 경기가 인기가 있다. 야구는 호흡이 길고 중간 광고를 삽입하기 꽤 괜찮은 컨텐츠다. 미술에서 사실주의는 왜 인상주의로 넘어갔을까. 카메라의 발견이다.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인간은 눈에 비치는 사실을 기계만큼 담기 어려워졌다. 인간은 기계가 담지 못하는 것을 담아야 했다. 미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까지 프랑스 곳곳의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은 그저 '그림'이 아니다. 거기에는 '역사'와 '기술', '문화'가 담겨져 있다. 과거 미술가에게는 현대인들이 생각치 못한 장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직접 물감을 조제하여 사용했다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튜브형 물감은 비교적 최근은 19세기에나 나왔으며 나사형 뚜껑도 시간이 지나서 나왔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던 중 같은 색을 만들어야 하는 당혹스러움에 마주했다. 그들은 각종 재료로 직접 물감을 만들고 사용했다. 정확한 농도를 맞추지 않으면 같은 색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기술의 발전은 그들의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흔히 예술가하면, '배고픈 직업'으로 알고 있다. 다만 '모네'만 보더라도 꽤 큰 규모의 개인 저택과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알려진 유명 예술가들은 편견과 다르게 귀족인 경우가 많다. 반 고흐 또한 '배고픔'의 대명사로 알려졌으나 그 뒤를 조금 더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부분이 없지 않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술이나 음악, 집필에 종사하는 이들은 편견과 다르게 부유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현대에 와서 이들이 부유해진 것이 아니라, 풍요로움이 주는 영감도 적잖은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네의 루앙대성당은 얼핏 채도를 다르게 하여 그린 같은 그림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시간에 따른 '빛의 작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미술가는 어떤 것을 표현해야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자시계가 나왔지만 고급 손목시계는 아직도 아날로그로 작동된다. 신용카드와 각종 스마트폰 지불 서비스가 나왔음에도 고급 지갑은 역시 가죽으로 만든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그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 나갔다. 석기시대가 청동을 개발했다고 해도 인간은 21세기에도 건축자재로 돌을 사용한다.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져 끝난 것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했기에 '돌'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AI 인공 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에 전시된 여러 예술 작품들은 최근 개발된 고화질 스마트폰 보다 훨씬 선명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매년 수 천 만 혹은 수백만이 방문하는 명소다. 인상파 화가들의 붓질을 더 면밀히 살펴본다. 그들이 남긴 인위적인 흔적에 더 인간다움을 느끼고 작가가 담으려고 했던 내면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상상한다. 기계가 묘사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은 작가의 인생과 철학을 알고 나서야 더 깊이 있어진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기술에 자리를 뺏기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담아냈다. 이미 죽은지 수 세기가 지난 이들의 그림을 보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됐다. 수입이 적고 근로환경이 열악한 미술 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유럽에서는 추급권을 도입했다. 추급권이란 작가와 화랑, 미술관 간에 표준 계약성을 작성하고 미술 작품이 재판매될 때, 작가에게 보험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3천 유로(390만원) 이상의 미술품에 한해서는 0.25~4%를 제공한다. 인세를 받는 여타 작가나 음악가에 비해 판매하면 더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미술가들을 위한 유럽의 제도다. 선진국들 중에 유독 한국이 아직 추급권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어쩐지 이들에게서 훌륭한 미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회적 배경도 한몫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미술은 역사, 기술, 문화와 더불어 사회도 담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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