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클래식 1포옹 - 하루를 껴안는 음악의 힘 1일 1클래식
클레먼시 버턴힐 지음, 이석호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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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는 '바스켓볼(Basketball)'이다. 직역하자면 '바구니에 공 넣기 게임'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농구에는 바구니가 없다. 농구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캐나다 출신의 29살 미국 체육 강사,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가 1891년 미식축구 실내 버전으로 만들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복숭아 바구니 2개를 3미터 높이에 못으로 고정한다. 고정된 바구니에 축구공을 집어 넣으면 된다. 농구는 그렇게 시작했다. 다만 문제가 발생했다. 골이 들어가면 사다리를 타고 3미터를 올라가 바구니 속 축구공을 꺼내와야 했다. 이로써 경기의 흐름이 끊겼다. 바스켓볼은 지금처럼 대량 득점이 가능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됐다. 바로 바구니 밑을 뚫어 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농구는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이 이렇게 확장될 수 도 있구나'

누군가의 간단한 아이디어는 이처럼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고정된 관념을 깨부수는 간단한 아이디어는 때로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렵고 복잡한 것들을 수월하게 하는 것은 '클래식'에서도 있다. 품격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저들만의 리그'라는 '클래식'의 이미지는 위와 마찬가지로 '고정관념'이다.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다는 '바스켓볼'에 '구멍'을 뚫어 '바스켓'을 없애 버린다. 스포츠의 본질은 '시작'이 아니라 '즐김'이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신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었거나,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노래 했거나, 자연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왜 꼭 바구니어야 하지?'

간단한 질문은 바구니 없는 농구를 만들었다. 클래식은 반드시 '클래식'할 필요 없다. 영어에서 Classic은 '일류의', '최고의', '고전, 명작', '모범' 등의 뜻이 있다. 그것이 주는 강박관념과 고정관념이 클래식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한다면 바로 그거부터 버려도 괜찮다.

'테세우스의 배'에 관한 역살이 있다. '테세우스의 배'에 있는 부품을 하나씩 고쳐나가면서 사용하다보니, 어느새인가 원래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하던 부속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인가?

'바스켓볼'에 바스켓이 없다면 그것은 '바스켓'인가. 클래식이 클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는 이미 정답이 내려졌다. 그렇다. 바스켓볼은 바스켓없이도 바스켓볼이고 클래식은 굳이 클래식하지 않아도 클래식이다.

교회에서 신과 자연을 찬양하지 않아도 클래식이다. 비교적 최근에 작곡되어 과학과 여성,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클래식이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모든 것이 바뀌고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만 남았더라도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다. 인간도 매일 3300억 개의 세포가 태어나고 죽는다. 고로 모든 인간은 7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것이 테세우스의 배와 무엇이 다를까. 클래식이 더이상 클래식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 클래식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비백인'를 이야기 한다. '테세우스의 배'는 그럼에도 '테세우스의 배'이고 이 클래식은 그럼에도 '클래식'이다. 뿐만 아니라 '바스켓볼'처럼 이름을 벗어나 더 많은 것을 포옹한다.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단순히 이름에 갇혀 더 많은 것을 포옹하지 못하는 것은 그 본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운동, 음악은 즐기는 것이 본질이다. 이름에 갇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더 평범하고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클래식'을 듣고자 한다면 '클레이먼시 버틴힐'의 '1일 1클래식 1포옹'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은 정보를 공부하려 들기 보다는 차근 차근히 하루에 하나 정도를 즐기며 그 배경을 알아가는 재미를 갖는 것이 나와 같은 비주류 인간도 꽤 즐겁게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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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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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다만 남이 나를 괴롭히면 배로 갚아준다."

한강 몸통 시신 살인사건의 피의자 장대호의 말이다. 그는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면서 일관적인 말을 했다.

"유족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다. 상대방이 죽을 짓을 했다."

내성적이고 주변인들과 마찰을 빚은 적 없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범죄 전력도 없었으며, 정신과 치료 기록도 없다. 되려 하는 일에 성실한 편이었다. 그가 자수를 하고 인터뷰를 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입니다.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죽인 사건이에요."

피해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다음 생에 또 그러면 넌 또 죽어"

평소 사회면 뉴스를 굳이 찾아보지 않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스치듯 지나갔던 인터뷰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복수는 왜 더 잔인해지는가.

1968년 발표된 '박태순'의 '무너진 극장'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는 4월 25일과 26일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4.19 혁명 당시 시민들의 저항을 이야기 한다. 소설 주인공은 시위 과정에서 군중 심리를 말한다. 초점은 '폭력'과 '무질서'다. 군부독재에 저항한다는 명분이지만 시위는 폭력적이로 무질서했다. 명분이 있으면 행위는 정당화 되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대부분의 전쟁과 테러, 범죄는 명분이 있다. 학대 피해자가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가능성으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학교 폭력'이 위험한 이유다. 보복성 학폭으로 받은 것을 배로 돌려준다. 이 악의 순환고리 때문에 폭력은 더 잔인해지고 무자비해진다. '따돌림'은 대체로 '공감부족'에서 생긴다. 대상의 심리를 공감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따돌리는 이들은 그렇다면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 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공감 부족은 '공감 능력' 때문에 생긴다.

자석에서 S극이 강하면 반대로 N극도 강해진다. 이는 상대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 뿐만아니라, 집단을 형성하면 집단에서의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가 있다고 해보자. 한국 선수가 경기력 좋기를 바랄수록, 일본 선수의 경기력이 나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다수'와 '다수'가 대립하는 것은 '따돌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체로 따돌림의 경우에는 '다수'가 '소수'에게 향한다. 인간은 비슷한 이들끼리 몰려 다닌다. 취미가 비슷한 이들끼리 몰려 있거나, 성격이 비슷한 이들끼리 몰려 다닌다. '취미, 성향, 말투, 성격' 등.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다수가 되면, 이들의 입장에서 '소수'는 '비정상'이 된다. 소수에 대한 증오는 '청소년'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인간 다수에게 일어난다.

각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지역과 나이에서 무작위로 섞여 언제든 자유롭게 상하좌우로 이동하는 '성인'과 다르게,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집단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에서는 '골프'를 좋아하는 이, '테니스를 좋아하는 이', ' 포켓볼을 좋아하는 이' 등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찾아 뭉칠 수 있다. 다만, 그저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뭉쳐진 '무작위 집단'에서는 소수가 '따돌림'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글로리'라는 영화를 봤다. 꽤 재밌게 봤다. 다만,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되는 학교 폭력 일기'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몰입해서 봤던 것 같다. 학교 폭력을 당하던 여중생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과 드라마는 모두 이를 '통쾌한 복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두 작품을 볼 때,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더 처참하고, 더 불쌍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다만, 명분이 있다고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학교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도 가해자가 되는 서로가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개인적으로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밈'으로 돌아다니는 '학교 폭력 멈춰!'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반편성이 아니라, 특정한 '다수'가 생기지 않도록 '고교학점제'를 확대하여 학생이 자율적으로 과목을 선택하여 이동 할 수 있는 교육과정 편성이 낫지 않을까.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몰입도가 너무 좋았던 책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하드코어'해지고 잔인해지기는 한다. 한 편의 고어 공포물을 본 것 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 할 듯 싶다. 몰입하여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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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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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삼(三)자를 보면 동양 철학을 알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선은 '하늘', 가장 밑에 있는 선은 '땅'을 의미한다. 여기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 천지인(天地人)은 하늘과 땅, 인간이 어울어고 각각 대등한 위치에 존재한다. 어느 하나가 독보적이지 않고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삼재(三才)는 오래부터 한반도에서도 사용됐다. 얼핏 기억하기에 부채나 대문, 북 등에서도 보인다. 태극기의 둥근 원에 음과 양으로 나눠진 '태극'이 있다. 이 태극문양은 음양태극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노란색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삼태극(三太極)이다. 예전부터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런 삼태극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삼태극은 셋이 서로 균형을 이룬다. 서로 조화롭다. 여기서 하나만 빠지더라도 그 균형은 무너진다.

예전 정치인들은 이 삼태극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 말이다. 그래서 임금 왕(王)자는 석 삼(三)자를 위에서 아래로 관통한다. 현재 정치는 다르다. '인간'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다. 임금 왕(王)에서 하늘을 의미하는 하나가 빠졌다. 이를 걷어내면 흙 토(土)가 된다. 진정한 '정치'는 땅과 사람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로움은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 건국 이념을 보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의미가 있다. 왜 단군은 '조선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포괄절인 관념을 사용했을까.

국가주의 이념은 '국가'를 가장 우선시 한다. 가령 '의사'가 전쟁 중 적군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애국'과 '인간' 중 무엇이 옳은 일일까. '이어령' 선생은 '한국'과 '일본'이 축구경기를 빗대어 이를 말했다. 두 국가가 치열하게 경기를 한다. 한국이 골을 넣으면 기뻐한다. 반대로 골을 먹히면 분해한다. 이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있다. 스포츠에서 국가를 빼면 모든 기쁜 일도 분할 일도 없다. 인간이 골을 넣고 골을 먹는다. 어느 인간이 골을 넣던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정신과 기본 원리를 밝혔다. 여기서도 국가주의가 빠진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번역된 표현에서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다만 에이브러햄 링컹의 원어 표현은 다르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이 아닌, 사람'이 들어간다. 홍익인간의 건국이념과 닮았다.

'공자가어', '여씨춘추' 등의 책에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고 찾지 않았다. 그러니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것은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다. 그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거기에 '형나라'을 빼는 것이 옳다."

사람이 주울 것이니 괜찮다는 의미다. 여기에 '노자'는 다시 말했다.

"거기에 사람도 빼는 것이 옳다."

경계선을 하나씩 해체할 때마다 포용성이 높아진다. 그것이 가족이고, 친구이고, 한국인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은 포용성이 적어진다. 경계선을 모호하게 선택하는 일은 포용성을 높인다. 인간을 넘어서 생명을, 생명을 넘어서 존재를 포괄하는 사랑이 더 포용적이다. 어느 한쪽을 명확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닌 '모호함'이 아니라, 어느쪽도 포용할 수 있는 '위대함'이다.

이어령 선생에 따르면 나그네에게 신념은 버려야 할 짐이라고 한다. 신념에 사로잡혀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길을 떠난 나그네는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달라야 한단다. 이 철학이 나와 매우 닮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한 자기 신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다만 양쪽 패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상황마다 대처하는 이와, 무조건적으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는 것은 다르다. 예전에는 어떤 목표를 가질 때, '배수의 진'을 치곤 했다. 퇴각로 없이 뒤로 물러서면 '죽음' 뿐이다라는 결심은 때로 목표를 강력하게 이루게 하기도 한다. 다만, 언제부턴가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될 수도 있지..뭐..'

항상 플랜B를 가지고 여유있게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살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할리 없다는 생각, 자신의 신념이 잘못될리 없다는 확신에 빠지면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게 된다.

학교와 책,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라도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봤다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본다. 정치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해봤다가, '보수'적인 생각도 해본다. 서로 상충되는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분명 서로 다른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찌보면 일관적이지 않다. 다만 언제나 일관적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순풍이 불 때는 돛을 올렸다가, 역풍이 불면 돛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최초에 내린 결단을 바꾸는 것은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야 한다. 어떻게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 둘을 조율하는 중요한 위치가 되는가. 아마 절대적 존재인 '하늘'과 '땅'에 비해 유연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하늘과 땅 중간에서 이 둘을 모두 포용하고 넓게는 횡으로 종으로 포용하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두 눈은 이상을 향해 두고, 두 발은 현실을 향해 두어야 한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적절한 조화로움을 알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은 역시 삶을 지혜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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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눈으로 보면 녹색지구가 펼쳐진다 - 지구환경의 미래를 묻는 우리를 위한 화학 수업 내 멋대로 읽고 십대 7
원정현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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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복을 입던 때가 생각난다.설레임의 추억. 대한민국 70만 중학생은 같은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졸업하면 고등학생도 같은 추억을 갖는다. 대한민국 청소년 140만명의 교복과 체육복에는 화학물질 '폴리에스테르'가 사용된다. 이는 3년마다 사용되고 버려진다. 교복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방석, 커텐, 가방, 침대, 쿠션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된다. 이 섬유는 원유를 소재로 하는 합성섬유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하다. 내구성도 좋고 구김도 적다. 만약 '폴리에스테르'가 없었다면 우리는 '면, 마, 견, 모'의 천연섬유 중 하나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값비싸고 대량생산이 힘들다. '화학'은 환경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역사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이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실제로 고고학자들은 현 지질학 시대를 '플라스틱기'라고 부를지 모른다고 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에 이어 플라스틱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용품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면밀히 밀하면 '석유제품'이다. 엘렌 맥아더 재단(Ellen MacArthur Found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의 바다에는 1억 5천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자면 물고기와 플라스틱의 비율이 3대 1 정도라고 한다. 이 추세면 앞으로 27년 뒤인 2050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은 시대가 온다는게 전망이다. 이런 플라스틱은 어떻게 시작됐고 과연 나쁘기만 할까. 그 방향을 보기 위해 역사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폴리에스테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화학산업이 발달하면서 대중화됐다.

제1차 세계 대전은 기존과 전쟁 양상이 달랐다. 원인은 '참호'다. '참호'는 별거 없다. 땅을 파서 도랑 안에 숨는 일이다. 적의 공격에 방어하기 수월한 전략이다. 참호전이 발달되자 전쟁은 교착 상태가 된다. 양쪽이 도랑을 파고 대치하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전', '물량전'으로 바뀐다. 폭탄과 대포, 기관총을 쏟아붓는다. 동시에 참호 안에서 대치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후방의 '경제력'과 '물자수송력'이다. 산업혁명을 먼저 맞이한 영국과 프랑스는 이런 '장기전'이 달가웠다. 이들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으며 예금이 풍부했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바뀌자 독일은 불안했다. 후발 개발국 독일은 식민지가 없었다. 기껏해봐야 1~2년의 비축 자원만 있었다. 당시 '철도'은 대규모 물자를 운송할 수는 있지만 전선의 최전방까지 물자를 운송하기는 어려웠다. 내연기관의 중요성이 커졌다. '차량' 개발이 중요해진 것이다. 전쟁 이후에도 이들은 전시에 사용할 차량을 징발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고무와 합성섬유, 철강, 화학 산업이 함께 커진다. 1차 세계 대전으로 내연기관 엔진의 수요가 크게 확대된다. 철도 산업이 핵심이던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주요 에너지는 '석탄'이다. 1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석유 확보가 국가 안보에 중요해지면서 석유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때 미국이 주요국 중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된다. 그 시기 미국은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음 한다.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자동차왕 헨리포드'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석유의 시대'가 열린다.

석유 시대의 특징은 '대량생산'이다. 만약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소비를 위해 코끼리나 고래를 사냥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석유소비의 확대로 세계의 절대 빈곤률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석유와 화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흔히 말하는 '석유'와 '화학'이 우리에게 멀리 있냐고 따지고 들면 그것은 아니다. 화장품, 세제, 치약, 섬유유연제, 주방세제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LG생활건강'은 그 뿌리가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다. 우리나라의 석유화학공업은 '정유공장'에서 시작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화학과 석유는 가깝게 있으며 그만큼 우리가 지구 환경에 방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산업화 이후 지금껏 환경에 위협을 주던 '화학'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비관적인 시각을 갖는 편이다. 그 이유중 하나로 과다한 인구가 있다. 세계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80억을 넘었고 2050년 안에 100억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앞으로 늘어날 20억의 인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층에서 나올 예정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원정현 작가'의 '화학의 눈으로 보면 녹색지구가 펼쳐진다'라는 책은 짧지만 쉽고 깊이 있게 화학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지구 환경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는 있지만, 무관심하고 방관하지 않기 위해, 아주 적지만 중요한 지식을 갖고 살피는 일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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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너머의 별 - 나태주 시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사랑 시 365편
나태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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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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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지은 '풀꽃'의 저자 '나태주' 시인이다.

풀꽃은 2012년 광화문 글판에 실린 이후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행하여 관련 패러디도 적잖게 보게 되는 시다.

개인적으로 '풀꽃2'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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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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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1971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서울신문의 신춘문예 시인 부분에서 '대숲 아래서'라는 시를 당선작으로 시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 시는 사랑하던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거절 당한 후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시라고 한다. 인간의 언어는 완전하지 않아서 대상을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다.

'바다'라는 대상을 표현한다고 해보자. 색은 '파랑'이고 맛은 '짜다'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바다의 단면적 모습이지, 바다가 아니다.

아무리 문자수를 늘려도 인간의 언어로 바다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로 글자수가 곧 본질을 담는 것은 아니다. 수십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하듯, 시는 함축적이고 명료하여 두꺼운 사전보다 더 명료하게 대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산', '바다', '들'보다 더 모호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감정'이다. 감정은 '잔잔'할수도 있지만, 그것이 출렁거리면 굉장히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은 애별리고(愛別離苦)에서 크게 흔들린다.

시와 노래가 애별리고(愛別離苦)를 노래하는 것은 그로써 당연하다. 자연에서 '노래'는 '사랑'과 굉장히 연결되어 있다. 새들은 '구애'를 위해 노래를 한다. 노래를 못하는 꽃은 '향'으로 구애를 한다. 향과 노래가 사랑을 중심으로 닮았다.

향기라는 시는 이처럼 '시'와 '향'이 '사랑'을 닮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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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내 앞에 잠시

예쁘게 앉아 있던 꽃

가서는 잘

살아라

더 예쁘게 살아라

네가 남긴 향기만으로도 나는

가득한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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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와 닮았다. 인간의 노래 역시 '사랑'을 주제로 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래를 뜻하는 두 가지 '곡'이 있다. 흔히 말하는 교향곡이나 악곡을 말할 때 쓰는 곡(曲)과 '통곡'처럼 크게 울면서 부르짓는 노래도 곡(哭)이다.

두 곡은 음차할 때, 둘 다 '곡'이고 '감정'을 극대화하는 노래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시에 '이제 사랑은'은 이 두 곡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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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까 봐 겁난다, 너

언젠가 네가 미워질지도 모르고

헤어질지도 몰라서

미워할까 봐 겁난다, 너

미워하는 마음 옹이가 되어 내가

나를 더 미워할 것만 같아서

이제는 너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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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너무 복합적이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모순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을 이유로 속박한다면 '자녀'는 언제나 '부모'에게 독립할 수 없다. 어떤 관계도 모순처럼 물고 물리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고 감정이 존재한다. 고로 때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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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니면 사람의 길이 생긴다

바람이 다니면 바람길이 되고

물이 다니면 물길이 열린다

쥐나 새가 오가면

쥐나 새들의 길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이 오가면

마음길이 열린다

얘야,

제발 비켜 있지 말거라

봉숭아 꽃물 들인 손으로 가을꽃 꺾어 가슴에 안고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빈손이라도 좋고

찡그린 얼굴이라도 좋으니

내가 찾아가는 마음 길 맞은 편

허전하게 비워 두지는 말아다오.

사랑이 들어 찰 수 있도록 언제나 마음을 열고 그릇을 비워 두는 것은 중요하다. 완전히 그 마음이 닫혀 있도록 매말라 있다면 그 길은 스스로도 나다지니 못하지만 상대에게도 없는 길이 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소설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나갈 수 있고 상대가 들어 올 수 있는 감정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시는 왜 읽는가, 그 자리 오고 갈 수 있도록 길을 갈고 닦는 것은 아닐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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