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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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많은 이야기와 경험들로 가득차 있다. 이것을 글로 풀어 내기만 하면 뭐든 문학이 된다. 많은 작가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소설에 반영하며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 토루 와타나베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그 시절 20대의 일상과 인간관계, 사랑,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이 소설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직접 노출하진 않는다. 대신,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지진 않는다. 다만 적잖은 작품들이 작가의 경험에 픽션을 덧입혀 쓰여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또한 헤세 자신의 성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나니아 연대기 또한 작가의 아이들에게서 힌트를 얻어 시작된 판타지 소설이다. '하버트 셜리'의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실제로 발생한 흉기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완성한 소설 작품이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많다. '경험' 이라는 뼈대 위에 '상상력'이라는 살을 입혀 글이 완성되면 흥미와 진정성 모두를 얻을 수 있다. 문학 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은 많다. 자서전이나 회고록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 에세이도 경험과 감정을 담아 낼 수 있다.

삶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기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진실성은 독자들에게 공감, 인사이트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을 통해 작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데는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명상과 같은 이런 글쓰기는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한다. 자기 성찰 과정을 함께 이루어 내도록 한다. 다만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표현할지는 개인의 결정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공개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하는 경우는 너무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글을 표현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보면 피치 못하게 개인정보에 대한 내용이 담겨진다. 자신의 정보 뿐만 아니라,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개인정보가 함께 담겨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나의 저서에서도 꽤 많은 부분 개인정보들이 노출됐다. 때로는 실명이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 지명과 사건이 들어가기도 한다. 글을 읽는 독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점에서 이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로 자신의 표현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표현'이다. 이는 경험, 생각, 감정을 정리하게 하고 관점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로 인해 독립적인 시각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쓴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과 공유의 기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간다.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혹은 받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 살아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대화와 소통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힌다.

어쨌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창작과 예술의 영역이다. 고로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은 언어적, 문학적 기술을 향상하게 한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하는 어투와 습관을 바라 보게 됐다. 수동태의 문장이 가독력을 잃게 하고 긴 술어가 집중력을 흐트리며 접속사 과다는 주술 관계를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학습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또 있다. 추억과 기록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그것은 추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사라져간다. 기억이 기록물로 전환되고 다시 출판물로 전환이 되면 기억은 반연구적으로 보존된다.

'민음사'의 시리즈 인 시리즈'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 중 하나인 '중급 한국어'라는 소설은 '초급 한국어'에 이어 나온 작품이다. '초급 한국어'를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전편과 후편으로 나눠진 성격의 글이 아니다. 고로 글을 읽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전후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만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의 태생부터 현 순간까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 갑자기 누군가와 인연을 맺게 되며 그 시작점으로부터 그를 파악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인물과 친해지는 과정을 닮았다. 소설이 특별한 서사를 담고 있다기 보다 일상의 서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의 삶 전편에 대한 궁금증은 있지만 그것을 몰랐다고 소설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시간 강사가 삶과 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서술하는 글이다. 그로써 어느 누군가의 인생을 가볍게 훔쳐봤다. 분명 가볍게 쓰여져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깊이가 무직하다. 사소한 인간 관계와 사건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몇 일 전,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경험했던 적잖은 일상들이 그 시기 나와 많은 부분 겹쳤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출판', '글쓰기',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고민' 등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는 '독자'에게 적잖은 공감이 됐다. 소설은 역시 99의 허구로만 만들어졌을 때 보다 작가 실제 고민과 성찰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을 때, 그 진정성을 바탕으로 가치가 있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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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마음 사전 - 가장 향기로운 속삭임의 세계
오데사 비게이 지음, 김아림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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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썰듯 경계를 베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경계 없는 모호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각. '후각'이다. 향기에는 경계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떤 향인지, 시작점은 어디고 끝점은 어딘지, 기록하기도 힘들고 보여주기도 힘들고 표현하기는 더 더욱 힘들다. 그런 특징이 인간의 감정을 닮았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모호함을 전달하기에는 '향'이 적절하다. 어쩌면 '향'을 닮은 것이 '꽃말'이다. 꽃은 단순히 그것이 담고 있는 '꽃말' 외에 맛, 향, 그것의 역사, 효능 등 다양한 것을 함께 전달한다. 쌍둥이 아이들의 이름에는 '율'자를 사용했다. '율'은 '율마나무'에서 따왔다. 율마나무는 성실함과 침착함이다. 율마는 키우기 까다로운 나무다. 한번 마르기 시작하면 살려내기 어렵지만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 끝도 없이 자란다. 율마나무는 스칠 때마다 상큼한 향과 피톤치드를 내뿜고 주변을 정화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율마나무' 하나로 꽤 많은 정의를 할 수 있다. 율마는 작은 화분으로 실내에서 키우다가 성장이 어느정도 되면 정원으로 옮겨 심을 수 있다. 야외로 나간 나무는 실내에서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여 정원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 자라난다. 이처럼 꽃과 나무에는 각자 그 성향을 닮은 꽃말이 있다.

제주에서 자주 보이는 '수국'도 참 매력있는 꽃이다. 예전 제주도에서 수국은 '도체비꽃'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어린 시절 수국을 보면 이름 때문에 무서워 도망 다녔다고 하신다. '도체비'라는 말은 '도깨비'의 제주식 방언이다. 도체비꽃은 토양의 ph에 따라 색을 바꾼다. 수국 꽃의 색깔은 수시로 변하는데 그것을 꺾어다가 심으면 이전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피는 희한한 꽃이다. 이 꽃의 별명이 '변화하는 장미'인 이유다. 수국은 일본 정원이나 절에서도 널리 재배됐다. 수국은 대부분 독성이 있고 청산가리 성분으로 알려진 시안화물을 소량 함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꽃은 약으로도 쓰이고 독으로도 쓰인다. 양귀비라는 꽃도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 양귀비는 꽃이 피기 전까지는 고개글 숙이고 있다가 개화하면 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이는 당나라 귀비 양 씨에서 따왔다. 경국지색,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미친 미모의 상징인 양귀비는 당나라 6대 왕 헌종의 마음을 끌어드렸고 헌종은 양귀비를 만난 뒤부터 국정을 소홀히 하여 백성과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 중독성으로 양귀비라는 꽃은 여러가지 마약의 원료로 사용된다. 양귀비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비 양 씨에게서는 겨드랑이에서 심각한 암내가 풍겼다고 한다. 이 양귀비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편'이다. 실제 중국은 '당'나라 시기뿐만 아니라 '청'나라도 '양귀비'에 의해 국가가 파탄에 이르는 독특한 역사를 갖는다. 이 아편을 정제하고 새롭게 추출하여 '모르핀'이라는 마약을 만들고 다시 모르핀을 아세틸화하여 만든 것이 '헤로인'이다.

경국지색하면 떠오르는 다른 인물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무척 좋아했다. 장미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꽃이기도 하지만 가장 오래된 꽃 중 하나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플로리전트 화석지대에서 최소 3,500만년 이상된 장미를 확인할 수 있단다. 그 뿐만 아니라 장미는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에서도 그 기록이 발견됐다고 하니 이 꽃이 인간과 함께한 역사가 꽤 길다고 할 수 있다. 장미유는 화장품이나 향수에 들어간다. 다만 그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재료다. 장미유 28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6만 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위해 지중해 실시아를 방문해 며칠동안 축제를 열었다.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지 4일째 되는날 그녀는 현대 가치로 125만 달러에 해당하는 장미를 구입한다. 구입한 장미를 깊이가 45cm인 복도의 바닥에 카펫으로 깔아 사용했다. 그녀는 그 밖에도 장미를 워낙 좋아했는데 장미 향수를 사용하고 장미 목욕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는 장미는 그 매력 많큼이나 꽃말도 다양하다. 활짝 핀 분홍색 장미는 약혼을, 반쯤 핀 분홍색 장미는 사랑을, 분홍 장미 봉오리는 찬탄을, 붉은 장미는 깊은 겸손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장미가 의미하는 '겸손'과 다르게 역사에서 장미는 '사치'를 위해 사용되곤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는 평소 장미로 채워진 베개를 쓰고 연회장은 장미로 도배를 했다. 장미향 분수, 장미 수영장, 장미 술, 음료, 푸딩 등 장미를 이용한 사치를 즐겼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는 카네이션을, 장례식장에는 국화를, 졸업식에는 프리지아와 작약을 선물한다. 유현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과시는 '생필품'에서 멀어질수록 뛰어나다고 한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정원에 잔디를 심어두곤 했는데 그 이유는 먹고 사는 것에 전혀 연관 없는 작물을 기르고 유지하는데 비용을 지불할 만큼 그 부와 여유를 과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꽃은 영원하지 않다.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보더라도 인간이 '생필품'과 전혀 연관 없는 무언가에 비용을 지불할수록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 만큼 꽃은 먹고 사는 이외의 무언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우리 삶에서 해왔으며 고로 삶의 중요한 순간과 장면에는 언제나 꽃이 함께 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여러 꽃들의 의미와 상징을 함께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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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평화가 당연하지 않은 미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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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볼록한 부분도 있고 오목한 부분도 있다. 따뜻한 부분도 있고 차가운 부분도 있다. 볕이 잘드는 밝은 부분도 있고 그림자 지는 부분도 있다. 애초에 우주에 완전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이 있으면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이 있으면 빈곤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고 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PC사상은 모든 종류의 편견을 없애자고 한다. 종교, 출신, 인종, 성별, 장애, 직업 등에 대해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편견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백번 맞다.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다만 차별을 없애는 것과 그것들이 모두 똑같아야 하는 논리는 다르다.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하는 논리는 겉으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오류가 있다.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다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고 동물과 인간도 다르고 기업인과 노동자도 다르다. 극단적인 동물애호가나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중에는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미국 NBA 선수의 74%는 흑인 선수다. 산부인과 전공의 중 여성은 90%이고 환경파괴의 근본적 원인은 인구증가다. 도덕적 혹은 윤리적 올바름은 선민사상을 갖는다. 자신이 가진 도덕적 올바름의 가치로 타인을 평가한다. 가령 건강한 채식주의자,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동물애호가 등은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실현하며 산다. 다만 극단적인 쪽에서는 높은 선민의식으로 다른 이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을 폄하하고 평가한다.

전쟁이 나지 않으면 좋다. 다만 전쟁은 언제나 있어 왔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의 기록이 없는 시기는 고작해봐야 268년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있어 왔기 때문에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전쟁 상황이라는 것이 꽤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진우 작가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보면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전쟁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전쟁 옹호론'과 다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또한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인도적인 안쓰러움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들이 정한 도덕적이고 윤리적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마치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서방 매스컴을 통해 이슈가 되어 있을 뿐, 비슷한 문제는 이미 세계 이곳 저곳에 있다. 매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일본에서는 매년 2만명이 자살한다. 파키스탄에서도 매년 5만명의 어린 아이가 오염수로 사망하고 중국에서는 매년 1만 명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 모든 슬픔을 함께 하고 살아야 할까. 대한민국에서 매 38분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살한다. 모든 죽음에 슬픔을 표할 수는 없다. 그것은 냉혹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전쟁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최악의 정치 행위다. 그러나 그렇다는 가치관과 그럼에도 그것이 피치 못하게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것이다. 파리가 붙어 있는 어린 흑인 아이가 흙탕물을 마시는 장면이 종종 영상으로 소개된다. 기부참여를 높이기 위해 극단적인 영상을 송출하는 것을 '빈곤포르노'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더 불쌍하고 가여운 모습이 노출되야 기부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근거는 납득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영상에 노출된 이들은 '흑인'에 대한 또다른 편견을 갖게 된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pc사상은 그렇게 오류를 갖게 된다. 전쟁은 현실이다. 전쟁은 '악'이 '선'을 공격하는 '아마겟돈'과 다르다.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한 연예인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적 있다. 모두가 안타까워 할 사건에 그가 기부한 기부금의 액수를 문제시 한 것이다. 얼핏 듣기에도 꽤 거금이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그의 기부금을 비웃었다. 나또한 십수년 간 유니셰프를 통해 혹은 그 밖의 시설에 대략 천 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다만 단순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욕하고 우크라이나를 감싸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평가의 대상이 됐다. 자신의 월급에 십 분의 일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우월한 도덕적 잣대로 상대의 선행을 평가하는 일은 모순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K2전차를 비롯한 다양한 방산 산업의 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는 다양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그 누구하나 파병을 통해 돕진 않는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돈과 무기를 지원할 뿐이다. '국가'와 '이념'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인류애적'으로 보면 무기와 돈을 더 지원하면 전쟁은 길어지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난다.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쟁이었다는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을 대신하여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제 관계는 인간 혹은 개인의 탐욕,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에 의해 작동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시스템의 갈등이다.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취하는 유럽과 미국의 시스템적인 갈등이다. 안정적인 정권 유지를 위협 받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시대는 단순히 무엇이 좋고 나쁘다로 규정할 수 없다.

그간 '영국', '일본', '미국'을 비롯한 해양 세력 국가들의 주도권이 두드러졌다. 해양 세력은 극강한 무역량을 바탕으로 세계화를 선도했으며 더 큰 부를 소유하고 영향력과 군사력을 확장했다. 다만 대륙세력은 해양세력에 의해 고립되기 일 수 였다. 어느 편을 들고 어느 쪽을 응원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무엇이 맞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쟁은 역사에서 피치 못하게 일어났었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전쟁을 통해 커다란 이익을 얻는다. 주식의 등락이 요동치고 새로운 외교의 명분의 생긴다. 가치 판단보다는 현실 대응이 언제나 중요하다. 전쟁은 언제라도 일어 날 수 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났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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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는 빨리 걷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
장샤오헝 지음, 하은지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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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급식이 나오면 좋아하는 반찬과 싫어하는 반찬이 있었다. 좋아하는 반찬은 소시지, 싫어하는 반찬은 가지무침이다. 반찬이 나오면 먹는 방식이 있다.

첫째, 맛 없는 것부터 먹을 것.

둘째, 맛 있는 것은 여유있게 먹을 것.

사람마다 성향과 취향을 다르겠지만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코를 막고 가지무침부터 빠르게 해치우면 소시지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인생 혹은 성공을 어떤 부류로 봐야 할까. 빠르게 성취해야 하는 부류일까? 음미하고 즐거야 하는 부류일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사람은 빠르게 도달한 것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감흥을 느끼지 않기 위해, 때로는 빠르게 해치우는 일도 한다. 코를 막고 재빨리 목구멍으로 가지무침을 넘기는 행위가 그런 일이었다. 슬픈 기억은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를 기대하고 행복한 순간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고로 속도라는 것은 '가치'에 반비례한다.

고급 와인을 먹는 방법은 코로 먼저 즐긴다. 입에 머물면서 공기와 섞어준다. 그것을 그제서야 삼킨다. 오래 머금으면 그 향을 더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쓰디쓴 싸구려 술은 단숨에 목구멍으로 밀어 삼켜킨다. 연인의 손이 닿으면 오랫동안 머물고 싶지만 개똥이 닿으면 빨리 털어 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속도가 '가치'를 만들어 낸다고 믿는 세상에 '기술'이 아닌 곳에서 '가치'가 만들어 질지 의문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시대다. 속도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속도는 빨라질수록 시공간을 왜곡한다. 자신의 시간만 천천히 흐른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속도를 고정하면 시공간이 왜곡된다. 삶은 시공간을 영유하는 것이다. 해외에 살면서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했다. '뉴질랜드'라는 곳은 '유학생', '현지인', '관광객' 섞여 있다. 교육과 관광을 업으로 삼는 국가답게 관광객과 유학생 현지인의 비율이 적당히 섞여 있다. 개중 여권을 보지 않고도 상대의 체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걷는 모습이다. 두리 번 거리며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 쪽은 관광객 쪽이다. 아주 빠르게 앞만 보고 걸어가는 쪽은 현지인 쪽이고 그 중간 정도 되는 것이 유학생 쪽이다. 이 셋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쪽은 역시 가장 느린 쪽이다.

'빨리 걷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는 명언은 중국 최고 부자 '마윈'이 한 말이라고 한다. 빨리 걷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바쁘다는 것 혹은 늦었다는 것. 걸음이 빠른 사람은 대게 다음 일정에 쫒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와 영감은 쫒기는 와중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돈'으로 환전하여 사용하는 '시간제 근로자'가 아니라면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맞다. 누군가는 최저임금을 벌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지만, 누군가는 바쁜 일은 피고용인에게 넘기고 가치있는 일을 한다. 실제로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다. 군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병장과 이등병의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등병의 경우에는 무척 바쁘고 분주하지만 성과는 엉성하다. 반대로 병장은 무척 여유롭지만 성과는 완벽하다. 결과는 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는 '성격급한 부자'에 관한 책을 읽었다. 부자들은 다수 다혈절적이고 성격이 급한 편이라는 것이다. 꽤 부유한 몇 명을 함께 경험해 본 결과,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그들은 성격이 몹시 급하고 다혈절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는 한 없이 친절하다가 업무상 답답함이 느껴지면 '버럭'하고 화를 내곤 했다. 그들의 걸음거리가 어땠는지 특별하게 기억에 남진 않지만 분명한 건 성격 급한 부자들을 꽤 많이 봤다는 사실이다. 다만 성격이 급한 것과 '속도'와는 다르다. 실제로 그들은 바쁜 업무 중에도 개인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화분을 키우거나 골프를 치거나 책을 읽는 등. 꽤 여유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즐겼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급조절'인 것 처럼 보인다.

별 하나와 동그라미 하나를 빠르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을 빠르게 그리기 위해 오른손과 왼손에 연필을 한 자루씩 쥔다면, 동시에 별과 동그라미를 그려 2배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아마 별이나 동그라미 혹은 그 둘 다 엉망으로 그려 넣을 것이 뻔하다. 사실 별과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나를 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다시 그리는 것이다.

대기만성형으로 유명한 유재석 님은 초보운전자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거에요."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맞다. 때로는 빠르다고 생각한 길이 되려 돌아가는 길인 경우가 많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르고. 속도는 분명 가치와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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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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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나 색을 점점 옅게 혹은 진하게 칠해서 점층적으로 변지게 하는 효과를 선염(渲染)라고 한다. 영문으로는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부르는다. 이런 선염은 몽롱하고 서정적 느낌을 준다. 경계가 모호한 색감의 변화는 동양 철학의 음양오행을 닮았다. 속이 선염으로 차 있는 반면 동양화는 그 테두리를 진한 선을 이용해 표현한다. 역설이다. 그것이 동양화의 특징이다. 칼처럼 떨어지는 외곽선과 빛처럼 점층적인 선염의 조화다. 이는 유럽 미술과 크게 다르다. 외곽선이 모호함과 칼처럼 떨어지는 유럽미술은 이처럼 동양화의 극적인 차이에 매료됐다.

자포니즘이 유럽에 소개될 때, 유럽 미술계는 정체되어 있었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그 시기 유럽 미술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단순히 원근감과 색체감 등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분위기와 서사를 바탕한 동양화는 어딘가 달랐다. 동양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는 회화방식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서양 회화의 특징이라면 외곽선을 줄여 사실적 묘사를 한다. 반면 동양 회하는 외곽선을 뚜렷하게 그린다. 또한 붓의 힘을 조절하여 두껍고 얇은 선을 나타낸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라는 그림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선비가 그려져 있다. 선비는 악기를 연주한다. 선비의 옆에는 호리병과 문방사우가 그려져 있다. 이 잡화들은 음율감을 표현하듯 굵고 얇은 선을 교차 이용한다. 눈으로 음악의 풍류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양화는 이처럼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화려하지 않은 색감과 투박한 그림체가 가벼워 보이지만 깊고 묵직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에 커다란 영감을 받았다. 당시 예술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표현력' 이었다. 실제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양 예술은 위기에 빠진다. 19세기에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묘사'는 기계가 넘어섰다. 더 이상 똑같이 복사해 낸다는 것이 무의미해 버린 것이다. 미술의 영역이 기술의 영역이 되버린 시기에 이들이 찾은 것은 '도슈사이 샤라쿠'나 '우타가와 도요쿠니'처럼 강렬하게 표현을 강조하는 동양식 우키요에였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샤라쿠의 작품을 모사할 정도였다. 그들이 동양화에 받은 충격이 엄청났다. 그전까지 화가의 역량은 얼마나 피사체를 잘 표현하는가를 고민했다. 다만 동야의 미술은 유럽과 확실히 달랐다. 동양 미술의 중심은 '피사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서사다. 또한 작가의 감정과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까지 담고 있었다. 사실주의에 벽에 갇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던 유럽은 동양화의 매력에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봤다. 모르고 보면 단순 선과 채색의 그림이지만 작가의 해석을 함께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는 역사와 서사가 있다. 투박하게 찍혀 있는 점은 눈빛을 묘사하고 두께는 힘을 표현하며 직선과 곡선으로 분위기를 표현한다. 손은 어째서 펴고 있는지, 옷차림과 자세, 시선은 모두 사소하지만 중요한 위치를 서사한다.

가장 닮아 있는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을 서사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피사체가 보여주고 있는 겉표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고로 작가의 영역이 수동에서 능동으로 넘어섰다. 이런 표현법은 당대 작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모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동양에서 시작했지만 서양에서 더 크게 환영 받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단순하고 괴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피카소의 초년 작품을 보여주면 그가 화가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정할지 모른다. 표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담는 것이 미술의 영역이 되면서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 됐다.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입체주의 미술 양식으로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피사체 모사를 벗어나 작가의 표현에 집중으로 미술의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은 입체주의를 벗어나 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해졌다. 이처럼 미술이 추상적인 것을 담아내고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예술'로 승화한 시발점에는 '자포니즘'이 있었다. 자포니즘은 일본으로 부터 시작했으나, 이름만 그렇지 일본 고유한 문화는 아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중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되는 '신윤복'의 그림은 역시나 최고다. 그의 그림은 확실히 서사적이다. 무엇하나 그저 표현된 것 없다. 각 표현이 그 시대상을 담고 있으며 관계와 전후 상황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라지와 견주어 크게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이유다. 신윤복의 그림은 굉장히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그의 그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단순한 외각선와 부드러운 선염의 조화가 이처럼 단순함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배경을 백지화 한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아예 그리지 조차 않는다. 고로 작가의 표현을 직관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볼거리가 풍성한 대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 서양화와 비교한 동앙화의 특징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것이 서양화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국수주의적인 생각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면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의 다채로움을 난도질 하는 것이다. 당근과 구름을 비교하거나 상어와 밥주걱을 비교하는 것처럼 이는 비교 대상도 아니고 비교 의미도 없다. 예술은 순위를 매기거나 우열을 가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예술은 아주 주관적인 영역이다. 고로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더 우월하거나 동양화가 서양화보다 우월한 것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온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현대 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적절한 융합의 역사다. 그 어떤 부분에 우리 조선의 그림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나 동양의 그림을 보며 서사를 유추해 내는 방식은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과 닮았다. 고로 김홍도, 신윤복 등 천재 화가의 그림들을 그들과 닮은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시대적 행운일지도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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