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 역사를 뒤흔든 지리의 힘, 기후를 뒤바꾼 인류의 미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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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30도에서 60도의 북반구 지역은 인구가 많다. 세계에서 GDP가 가장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최근 '기후변화'를 겪는다. 홍수가 빈번하고 지진과 화산활동이 잦아졌다. 에너지 가격과 곡물가격이 올라가고 농업수확량은 줄었다. '위도 30도에서 60도 사이' 이 지역에 흔히 말하는 선진 국가들이 몰려 있다. 대체로 같은 위도에 걸려 있다. 이 지역을 '축복 받은 벨트'로 보기도 한다. 마주하는 '기후위기'는 이 지역 메스컴을 통해 심각하게 다뤄진다.

BBC뉴스에서는 기후위기로 바다 얼음이 줄어들며 북극곰 개체 수가 감소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2100년에 북극곰을 지구상에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매년 멸종하는 숫자를 극단적으로 보도하며 인류가 만든 위기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2022년 영국 국립역사박물관 연구자들은 2022년 351종의 새로운 동물이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대체로 어떤 종이 멸종하면 새로운 종이 태어난다. 지구에는 총 5번의 대멸종기가 있었다. 생명은 대체로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에는 86%, 데본기에는 75%, 페름기 말에는 96%, 트라이아스기 말에는 80%, 백악기 말에는 76%의 생명체가 멸종했다. 그 모든 멸종은 누구의 탓일까. 그 멸종에도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있을까. 어째서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기후위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그래프'를 보자. 그래프는 대체로 완만하다가 1960년을 계기로 급증한다. 구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자료다. 여기에 인구수, 에너지 사용량, 질소비료 소비량, 탄소 배출량, 해양산성화 정도도 함께 보여진다. 지후변화는 지구 종말 위기를 말한다.

과연 지구 역사, 45억 년 중 인류 산업기 50년이 종말의 신호탄일까. 인류는 엄청난 비용을 치루고 지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신석기 시대를 1만년 전으로 보자면 현재의 빙하의 두께는 역대 가장 두꺼운 시기 중 하나다. 4000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는 가장 서늘한 시기다. 10~13세기에는 지금보다 더 기온이 높았다.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와 소빙하기에도 생물종은 대멸종하지 않았다. 기후학자들이 말하는 지구온난화의 위기는 '가파름'이다. 이 '가파름'에 '인류 산업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차치하고 지구온난화는 모두에게 위기인 것은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고 녹으며 북극에는 새로운 항로가 생겼다. 대체로 '축복받은 벨트'에 거주하는 '선진국'들이 물류 이동을 위해 이동하던 '수에즈 운하'보다 훨씬 경제적 가치가 있는 '북극권 항로'가 열렸다. 이 항로는 러시아에 커다란 기회다. '북극권 항로'는 러시아의 단독 영해다. 러시아는 그간 기존 선진국들의 물류이동에 합류하지 못했고 유럽과 미국에 의해 고립되기 쉬운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이 수에즈 보다 훨씬더 경제적으로 유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 지역은 인구가 희박하기 때문에 해적활동이 힘들고 낮은 기온으로 물류 이동 중 에너지 활용을 줄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를 관통하는 엄청난 기회를 '러시아'가 갖게 되는 셈이다.

기후변화는 인류 역사에서 항상 있어 왔다. 이런 기후변화에 '기후위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경제 패권이 이동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덕분이다.

12만년에서 9만년 사이에는 기후 변화로 인해 사하라 사막이 습윤한 초지로 바뀌었다. 이 시기 현생인류는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기원전 200년에는 한나라와 로마가 본격적으로 온난기에 접어 들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2세기 중반에 기온이 내려가면서 중국에서는 농산물 수확량이 줄고 역병이 창궐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로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거나 한나라가 멸망하는 등 다양ㅇ한 사건이 일어난다. 11세기에는 소빙하기가 오면서 유럽에서는 농산물수확이 줄고 전염병이 창궐한다. 몽골 스텝에는 유사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리면서 유목의 생산성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초원지대가 확산되면서 말을 통해 몽골제국이 번영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었다. 14세기 초반에는 유럽 평균기온이 하강한다. 소빙하기의 시작이다. 이 시기에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이 유행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망자가 생겨나자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16세기, 동아시아에도 소빙하기가 시작된다. 초원지역에 거주하던 여진족이 명을 무너뜨리고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는 시기도 이 시기다. 역사의 흥망성쇠는 반복한다. 빙하기는 유럽에게 재앙이었지만 몽골에게는 기회였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대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할 때, 이상화탄소 농도를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지질학적 역사로 보면 현재 이산화탄소는 낮은 편에 속한다. 생태계 광합성을 증가를 위해 되려 이산화탄소가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산소'가 충만한 지구가 좋은 지구라는 편견은 지극히 인간종의 편협한 생각일지 모른다. 이산화탄소는 광합성의 원료이므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노도가 높을수록 식물종의 광합성은 유리하다.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위기'에 지나치게 꽂혀 있으면서 남들보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 옳을까. 다가오는 여름이 되면 '지구를 위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에어컨 켠 건물에서 '냉장고'의 시원한 음료를 꺼내 먹으며 이 주장들을 비판할지도 모른다. 대체로 기득권을 위한 '기후 위기'는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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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자기증명과 인정욕구로부터 벗어나는 10가지 심리학 기술
마이클 투히그.클라리사 옹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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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반 전체에 보여주셨다.

"아주 감각있는 그림이야. 소질이 다분해. 이쪽으로 나가도 성공하겠어."

그림은 4B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옅게 물을 섞은 수채화였다. 붓으로 노란 물감과 물을 섞어 한번 정도 칠한 뒤였다. 대상은 참외, 바나나 따위다. 그림이 명확히 기억나는 이유는 미술 선생님께 받은 칭찬 때문이 아니다. 그 그림이 C+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몇 분 뒤, 엄청난 칭찬이 이어졌다.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이 왜 감각있는 그림인지 설명했다. 사적인 칭찬도 함께 이어졌다. 이후 그림은 도로 돌아왔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칭찬을 듣고 그림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생각없이 칠한 물감 따위에 그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나도 몰랐다. 미술 선생님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다만 더 진행을 했다가는 선생님이 감동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나머지 시간을 그리는 척만하고 그 미완성 된 작품을 제출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던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칭찬은 되려 성장을 멈추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보통 '완벽주의자'는 굉장히 부지런할 것 같다고 착각한다. 다만 게으른 쪽이 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완벽하지 않기에 시작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보통 '시작'을 지연하거나, '선택장애'를 낳는다.

도착까지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되면 출발하겠다는 마음. 혹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오답을 고르지 않는다'는 마음. 그것이 완벽주의자에게 있다. 고로 실패할 행동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오류를 낳는다. 다시말해 틀리는 것이 두려워, 문제를 풀지 않는 것과 같다.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완성하라' 대체적으로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면 시작을 하지 못한다. 실수투성이 초보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발전을 더디게 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자연상에는 100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순도 99%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가스의 순도에는 five-nine 혹은 nine-nine이라는 말이 있다. 99.999% 혹은 99.9999999% 처럼 극도로 정제된 순도 기술로도 100%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가수의 순도는 9가 무려 11개나 들어가는 eleven-nine이 사용된다. 세상에 없는 것을 달성하려고 하니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순도 1%에서 2%로 올리는 것은 쉽다. 다만 99%에서 100%로 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어쩌면 1에서 99까지 올리는 편이 더 낫다고 할수도 있다. 그것이 100이 됐다고 차원 다른 결과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극히 적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99면 충분하다. 90도 충분하다. 때에 따라서 50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우도할계(牛刀割鷄)라는 말이 있다. 닭을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쓸 필요없다는 뜻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닭을 잡기 위해 소잡는 칼을 사용하는 일이다.

'제논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에서 '극한값'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예시다. 내용은 이렇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기를 한다고 해보자. 거북이는 아킬레스보다 50m 앞에서 출발한다고 해보자. 이 경기는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일단 거북이와 간격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절반을 따라 잡았다고 해도 25m는 아직 남아 있다. 다시 그 25m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다시 25m의 절반을 따라잡아야 한다. 하지만 또 12.5m가 남는다. 이후 다시 그 절반인 6.25m를 추월하면 3.125m가 남는다. 이렇게 공간을 절반씩 나누는 행위를 영원히 반복하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 이는 '무한'과 '극한'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흔히 1에서 2까지 수와 1에서 100만까지의 수 중 어떤 곳에 수가 더 많은지 묻는다면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숫자를 무한으로 쪼개면 어느쪽에 숫자가 많은지 알 수 없다. 결국 '완벽'이란 이처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의 거북이 같은 존재다.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다. 적응적 완벽주의는 성취와 목표의 과정을 즐긴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결과와 기준에 엄격한 편이다. 고로 실패에 대해 두려워 하고 자기비판에 취약하다. 고로 적응적 완벽주의는 높은 생산성을 띄고 그것에 대한 보상고 충족감을 얻으며 성장한다. 이는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결과에 치중한다. 자신만의 높은 기준에 의해 신경쇠약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강박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완벽주의자들에게 자신은 언제나 미완전한 존재다. 자기 존중의 문제를 맞는다. 자신에 대한 불만은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다. 그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실망과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스트레스는 보통 근육을 경직시키고 혈액순환에 장애를 가져온다. 식물과 동물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고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맛없는 고기 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독소는 스스로에게 쌓여 결국 자신을 죽게 만든다. 현재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인간은 포식자에게 노출되는 일은 없지만, 극도의 공포나 불안감은 포식자를 만났을 때와 같이, 우리 신체 내부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스스로 독소를 만들어 낸다. 결국 결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완벽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꽤 철저하고 완벽한 노력형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게을러지고 선택을 망설이는 방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고로 어느정도 내려놓고 미완성의 자세를 인정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편하고 쉬운 자세가 아닐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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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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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 가볍게 읽을 책을 골랐다. 밤 11시. 결말을 보고 잘 수 있는 책. 기준은 두께. 서점에서 100 페이지 겨우 넘는 몇 권을 집었다. 내용은 상관 없다. 속도감. 몰입감이 있으면 좋겠다. 두 권은 '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이다. 바퀴벌레는 얇지만 묵직했다. 두 번 째 책.

'뱀에게 피어싱'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제목. 사전 정보 없이 책을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꽤 충격적이다. 짧아 후루룩 읽히긴 한다. 소재는 문신과 피어싱. 기본적으로 수위는 아주 높다. 살인, 자해는 물론이고 성적인 내용도 아주 노골적이다. 자극적이다.

소설은 난데없이 '스필릿텅'으로 시작한다. 피어싱의 일종으로 혀 끝이 뱀처럼 갈라지는 모양이다. '스필릿텅'에 매력을 가진 '루이'라는 여성. 그녀를 '스필릿텅'의 매력으로 안내한 '아마'라는 남자. 문신전문가 '시바'의 이야기다. 묘사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다수다. 준비없이 마주한 자극성에 흠짓 놀랐다. 대략 30 페이지 정도 넘어서고 이해했다. '이런 류의 책이구나'

예전 '365일'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책을 읽다가 펴놓을 수 없는 상황이 주가 되는 상황. 꽤 보수적인 성격이라 자신있게 내용을 알았다면 서점에서 자신있게 집어오진 못했을 것 같다. 어쨌건 어쨌건 영화를 보더라도 자극적인 영화를 못 보는 편은 아니다. 19금 딱지를 붙이고 나오는 것들이 주는 여과없는 매력이 분명있다. 불편하다는 시선도 많지만 그렇진 않았다.

자극적인 소재와 적나라한 표현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아쿠타가와 상 심사과정 중 심사위원 열 중 아홉이 추천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중학교 때인가. 초등학교 때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영화를 본 적 있다. 예전에는 '토요일'이 휴일이 아니었다. 토요일은 일찍 끝나는 날일 뿐이었다. 이런 날, 선생님의 재량으로 '비디오' 빌려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 반 친구 중 재밌다고 빌려온 비디오가 하나 있었다. 그 비디오를 전 학년이 교실에서 봤다. 그 때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당시 봤던 비디오는 '배틀로얄'이라는 영화다.

우리나라는 '심의'가 높은 편이었다. 수위가 높다 싶으면 19금 딱지 붙일 기회도 없이 방영되지 못했다. 성인마저 때로는 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배틀로얄'은 나의 '상식선'을 가볍게 넘었다. '일본 감성'이라는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으로 '연약한 여성'이 설정된다. 건장한 남성과 까불거리는 인물이 통쾌하게 죽는다. 다들 죽임을 당하더라도 '주인공 여성'은 끝까지 살아 남는다. 그것은 일종의 '공식'이다.

정확치 않지만 배틀로얄은 그러지 않았다. 약육강식만 존재했다. 약하고 불필요하면 가차없이 죽인다. 배우의 이미지나 관객의 기대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목이 잘려 나가거나 망치로 두들겨 맞는 장면도 여지없다.

'무서운 영화추천'이라는 검색을 통해 '일본 영화'를 찾은 적 있다. 댓글은 보지 않았다. 댓글을 보면 기대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시 우연하게 본 댓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괜히 봤다. 일본애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 만드는 걸까.'

왠만한 공포 영화는 무섭지 않은 나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방을 어둡게 했고 컴퓨터 스피커를 잔뜩 올렸다. 아이스크림을 앞에 끼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영화가 시작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소리를 조금씩 줄였다. 얼마 뒤에는 다시 소리를 줄였다. 결국 이어폰을 착용했다. 형용할 수준이 아니다. 잔혹함이 지나치다시피했다. 영화는 영화와 성인물의 중간쯤 됐다. 입맛이 떨어졌다. 꺼냈던 아이스크림을 도로 냉동실로 집어 넣었다. 헛구역질 나서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비위가 나름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볼 수 가 없었다. '고어물'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접했다. 공포와 상관없이 비위가 강해야 했다.

때로 그것이 솔직하다 여길 때도 있다. 대외적으로 쉬쉬하지만 다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감, 인간관계, 구조적인 배경으로 '혼자'만 알고 있는 사적 폭력성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외부에서 확인했을 때 얻는 동질감도 있을 것이다. '루이'와 '아마'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동거를 한다. 대기업에서 주관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하고 있던 피어싱을 모두 빼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을 '기업'에서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입속에는 '스필릿텅'을 준비하는 '피어싱'이 숨겨져 있다. 입을 벌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그것을 꾹 닫아 보이지 않는다. 남들의 눈에 평범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무엇을 숨겨둔다. 사회가 강제로 '마스크'를 쓰게 했을 때, 다수는 불평을 했지만 어느 순간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마스크 뒤로 숨길 수 있는 표정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면을 감추기 위해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일에 피로감을 느꼈던 이들은 조금더 편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소설은 굉장히 얇지만 다양한 부분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다. 본 소설은 '스네이크 앤 이어링'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데 소설과 내용이 같다고 알고 있다. 소설이 영화로도 나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충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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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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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눈을 떠보니 영국 총리의 몸으로 바퀴벌레가 깨어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닮은 도입부다. 소설은 '역방향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총리가 된 바퀴벌레는 이 '역방향주의'를 밀어 붙인다.

역방향주의는 이렇다. 돈의 흐름이 반대로 가는 것이다. 종업원들은 일을하면 노동의 댓가로 기업에 돈을 지불한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되려 지불한다. 쇼핑을 하면 물건 값을 소매가로 받는다. 현금 비축은 금지가 되고 은행에 돈을 맡기면 높은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돈을 주기 위해 제품을 끊임 없이 구매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주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인수하고 우주 탐사를 확대한다. 돈의 흐름이 거꾸로 흐른다. 이런 돈의 흐름의 끝에는 '소비활성'과 '완전 고용'이 있다. 이런 허무맹랑한 개념을 읽다가, 문뜩 멈춘다.

'어! 잠깐만. 그럴 수도 있나.'

되도 않는 개념에 살짝 설득 당하고 '피식'한 뒤, 다시 읽는다. 이처럼 경제의 흐름을 뒤집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웃 국가와의 관계다. 독일, 프랑스 심지어 중국과의 관계다.

이 소설에서 '역방향주의'는 꽤 구미가 당기는 일일지 모른다. 노동을 하면 돈을 주고 쇼핑을 하면 되려 돈을 받는다니. 그럴싸한 '파퓰리즘'이다. 결국 '노동'보다 '소비'가 주가 되는 세상을 이 소설은 비꼰다. 현대 사회는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다. 소비가 경제 부양의 큰 축이 되면서 사회는 '노동'보다 '소비'를 부축인다. 현대 자본주의가 현대인에게 '소비'를 장려하며 진행하다보니 결국은 사람들은 '빚'에 허덕인다. 현존하는 경제 개념을 완전히 뒤집은 이 개념은 허무 맹랑할 것 같지만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때로 일부는 현대 자본주의를 닮기도 했다.

얼핏 '그럴 수도 있나' 했던 건 그 표면적 설득력 때문이다. 돈이 거꾸로 돌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금 비축이 불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을 한다. 결국 정말 소비를 자본주의 축으로 두는 것이다. 이런 역방향주의는 시장에 끊임없이 통화가 공급되며 금방 화폐가치가 떨어지게 할 것이다. 다만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강력한 수출이다. 강력한 수츨을 통해 파운드화를 이웃 국가에 무더기로 보내면 화폐는 다시 안정화된다. 빈곤한 다수의 여론을 이용한 파퓰리즘을 풍자한 이 소설은 2020년 1월 31일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한 브레시트(Brexit)를 떠올리게 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나에게도 잊지 못할 사건 중 하나다. 영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그렇게 강한 인상이 남았나.

브렉시트 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였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까지 세상은 나름의 상식 선에서 움직였다. 세상은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공통의 '선'을 지향하는 듯 보였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가 주류였던 시기다. '브렉시트'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 유럽은 '그렉시트(Grexit)'라는 개념을 끊임없이 노출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럽에서 내보내자는 이야기였다. 그렉시트에 대한 유럽의 자세는 납득 가능했다. 경제적 득실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2016년 영국의 유로 탈퇴 국민 투표는 달랐다. 유로존을 이탈할 이유가 그리스 만큼 명확한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내부 정치적 이유'로 시행한 국민 투표다. 이전까지 세계는 나름의 상식선에서 흘러갔다.

영국의 '브렉시트' 선언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며, 자충수가 될 것이 뻔한 그 정치적 행동을 할 없다고 여겼다. 당시 나는 브렉시트와 전혀 상관 없는 국내 '피혁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적잖은 비중을 그 안정적인 회사에 투자하고 있던 나에게도 '브렉시트'는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한편으로 불안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내 상식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여겼다.

어두워진 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대한 개표방송을 온라인으로 시청하고 있었다. 끝까지 그럴리 없다는 확신을 했지만 개표방송 마지막에 코스피 상당수의 주식이 하방으로 내리 꽃는 모습을 지켜봤다. 브렉시트와 전혀 연관없는 '피혁회사'의 주식은 그중에서도 아주 무섭게 내리 꽂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고립주의를 영국 국민 다수가 생각한다고?'

황당과 믿을 수 없음이 교차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몇몇 있었다. 2017년 버락 오바마의 재임 기간이 끝났고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이 진행됐다. 다수의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출마는 해프닝이라고 여겼다.

불법이민자를 추방하고 미국 중심의 고립주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중국을 향한 무역 전쟁. 당시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지는 공약들을 보고 방송에 전문가로 나온 패널들고 웃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재밌긴 하겠네' 정도 수준으로 넘어갔던 일이 결국 실제로 벌어졌다.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했고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미중 무역 전쟁은 실제로 있었다. 세상이 거꾸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말이 '뉴노멀의 시대'다. '기존의 표준'이 사라지고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은 시대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이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여겼지만 실제로 탈세계화는 현실이 됐다. 누가 득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비로소 '파퓰리즘'의 시대가 열렸다. 국익에 관련 없이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입맛대로 정치를 했다. 국민 감정에 따라 정책이 움직이는 시대가 열리자, 탈세계화는 더 가속화됐다. 비로소 파퓰리즘에 반하는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부류도 생겼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독재 국가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가졌다. 민주주의가 결국 '파퓰리즘'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러시아와 중국이 자신들의 입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주요국 간의 '전쟁'과 '갈등'이라는 말이 나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당연한 사실로 알고 지내던 과거는 사라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요국들은 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을 닮은 소설이지만 그 도입부를 제외하고 내용은 전혀 다른 반식으로 흘러간다. 카프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오가며 현실 상황에서의 문제를 글로써 나타낸다. 과학기술, 사회문제, 인간 심리적 갈등에 대해 비현실적인 소재와 현실적인 문제를 적당히 섞어 표현하는 것이 이언 매큐언 작가와 '카프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난 이언 매큐언 작가는 전쟁 직후,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의 세계에서 '브렉시트'를 목격한 지식인이다. 그가 목도한 영국의 정치적 흐름은 역방향주의, 고립주의였다. 바퀴벌레 총리가 만들어낸 역방향주의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두워지고 고통스러워지면 본래 자신의 본체였던 바퀴벌레는 더욱 번성할 수 있게 된다. 맹목적인 파퓰리즘과 애국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볍고 얇은 소설을 통해 묵직하게 담았다.

카프카의 소설을 최근에 읽고 비슷한 소재라 구매를 했다. 개인적으로 가볍게 읽기 위해 얇은 책을 구매했는데 의외로 가볍게 읽을 수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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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 1 정치편 - EBS 최태성 선생님 고등 생강 시리즈
최태성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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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효과적인 교육 매체다.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전달한다. 중요한 것은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차트, 그래프, 그림, 애니메이션, 감정, 분위기 등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여인이 있다.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개어 있다. 오른쪽 어깨 뒤로 구불 거리는 길이 보인다. 그녀의 이마는 넓은 편이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를 그린 그림에는 눈썹이 없다.'

감을 잡았겠지만 '모나리자'다. 이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모나리자'를 떠올린다. 그림 한 장이면 바로 알 수 있는 걸, 글은 한참 설명해야 한다. 그래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고로 비효율적이다. 인간의 뇌는 이미지로 기억한다.

언어는 선이다. 문자는 좌에서 우로, 소리는 앞에서 뒤로 정보가 나열된다. 이것을 '이미지'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선을 면으로 바꾸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이런 작업은 수동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능동적으로 이뤄진다. 이미지는 '평면적'이다. 추가 작업 없이, 정보가 바로 바로 들어온다. 빠르고 쉽다. 영상은 더 직관적이다. 공간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재밌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라는 것은 '공간적 정보 뿐만 아니라 시간과 감정을 연결하고 냄새, 촉감, 추상적인 것 등을 복합적으로 떠올리는 작업이다. 인간이 물론 시각 정보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은 비중이 높다는 것이지 절대적이진 않다.

예를들어보자. A라는 반에 서른 명이 있다고 해보자. 이 중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고, 3명이라고 해보자. 반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는 27명이다. '비교적으로 많다'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다르다. 인간의 기억은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시각 정보만으로 채워지진 않다.

눈을 감으면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잡생각이 허공에 둥둥 떠다닌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 올 공간이란 이처럼 친절하게 비워져 있지 않다. 거기에는 잡생각, 감정 등의 부유물들이 불규칙적으로 떠다닌다. 아주 불친절한 공간이다. 이 불친절한 공간에 정보를 집어 넣기 위해서는 불순물 덩어리를 적당히 이용해야 한다. 혼합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과 연결하고 흥미와 연결해야 한다. 다른 곁가지가 달리면 적당한 중량이 생기며 비로소 묵직하게 내려 앉는다. 고로 이것은 받아들이는 양이 아니라 경험과 시간, 공간, 냄새 등 다각적 부유물과 결합하는 '능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영상'은 강압적이자 일방적으로 정보를 때려 넣는 작업이다. 정보를 받아 들이기는 쉬우나, 그것이 다른 부유물과 적당히 섞이지 못한다. 이질적인 외부 정보가 과도하게 들어오면 때로 그것을 불러들이거나 새롭게 해석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고로 학습이라는 것은 '학'이 하나요, '습'이 99인 능동동적 행위다. 한 번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99번을 소화시키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한상 차려놓는 것보다 떠먹고 소화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영상이 잘 자려놓은 밥상이라면 학습이란 그것을 떠먹고 씹고 소화시키는 과정이다. 잘차려진 밥상을 받는 것은 건강 유지 비결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먹고 소화하는 능동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동적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초적이다.

영상 매체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고로 문해력은 떨어진다. 읽기, 쓰기와 같은 언어 능력에 손상이 온다. 영상은 급하고 빠르게 입력하는 좋은 수단이지만 소화력을 떨어뜨린다. 소화력이 떨어지면 이후에는 영상 학습에서도 능률이 떨어진다. 결국은 영상매체 학습도 글쟁이들의 영역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1세대를 공식 행사장에 들고 온 것이 2007년이니까. 2007년생 돼지띠는 태어날 때도 '스마트폰'이 있었다. 영상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된 셈이다. 이후 2005년에는 4G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바야흐로 스트리밍, 동영상의 시대가 열렸다. 다수가 영상 매체에 노출되면서 학습 방식도 바뀌었다. 소화력은 떨어졌는데 잘 차려진 밥상이 끊임없이 오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떠먹여 주기 학습 방식이 습관화 되면서 학생들은 글을 읽기 어려워 한다. 이때 가장 적절한 대안은 '만화'다. 만화는 시각적인 요소가 많지만 적잖은 문자가 함께 적혀 있다. 직관적인 평면과 선의 조합으로 문해력을 높이기 충분하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인사'를 배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기초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기초적인 어휘를 먼저 공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학습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가장 먼저 쉬운 방식으로 하는게 좋다. 영화를 보거나 간단한 음악으로 흥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공부는 꼭 책상 위에 정자세로 앉아서 딱딱하고 어려운 학습지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글을 읽기 불편하다면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영상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만화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영상매체는 접근까지 너무 많은 유혹이 존재한다. 또한 의식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흐트려지는 경우도 있다. 시청자의 집중력과 이해력에 연연해 하지 않고 일방 통행하는 영상보다 어쩌면 만화로 최초의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최태성 작가의 '생강 국사'는 앞서 말한 선, 면, 공간을 적절히 배치하여 있다. 독자의 경험을 적절히 상기 시킬 수 있는 유머와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영상 매체의 홍수 속에서 비슷한 강의는 유튜브에서 간단한 검색으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문해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다. 흥미와 문해력을 함께 얻기 위해서 꽤 적절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챕터 뒷편에 요약본과 문제도 수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지만 결코 담고 있는 컨텐츠의 무게가 가볍진 않다. 내신과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성인에게도 꽤 즐겁게 읽힐 수 있는 학습지이자, 역사 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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