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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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이해하는 철학 중 '블록 우주'라고 있다. 시간을 하나의 '블록(Block)'으로 생각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블록처럼 고정되어 있다. 시간은 과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정된 하나의 블록 처럼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고정된 시간을 경험할 뿐이다. 이 이론에서는 모든 사건과 상태는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시공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는 이론 중 하나이며 연구나 검증이 어렵기에 '유사과학'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는 않는다. 굳이 '블록 우주론'을 들고 오지 않더라도 현재, 과거, 미래는 동시에 내재되어 보인다. 씨앗을 보면 수박을 볼 수 있고, 수박을 보면 씨앗을 볼 수 있다. 시간이라는 함수값을 지우고 보면 수박과 씨앗은 함께 존재한다. 때로 우리는 '세종대왕'의 어린시절을 보며 '세종대왕'의 업적과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다시, 세종대왕의 업적을 보며 어린시절과의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이도'라는 인물이 태어났을 때, 이미 그 안에는 그의 미래가 이미 함께 존재하는 바와 같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다고 해보자. 물은 식도를 타고 신체 내부로 들어간다. 내려간 물은 위를 지나 소장으로 이동한다. 소장 내부 벽면에는 몰을 흡수하기 위한 수송체가 있다. 수송체는 수분과 미네랄을 흡수한다. 이는 모세혈관을 통해 혈류로 들어간다. 소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물은 다시 대장으로 흘러간다. 대장은 수분의 일부를 재흡수한다. 이렇게 흡수된 물은 혈관을 타고 이동하거나 세포에 잠시 머물다가 6시간 정도 지나서 일부 소변이나 대변으로 배출된다. 배출되는 소변은 화장실 변기관을 타고 하수관으로 이동한다. 하수관은 지역내 하수처리 시설로 연결된다. 하수 처리 시설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정화 과정을 겪는다. 이후 이는 대략 24시간 정도가 지나서 바다나 강, 하천 등으로 배출된다.

자, 이제 나의 몸의 일부였던 물이 바다나 강, 하천으로 갔다. 배출된 물은 머물지 않는다. 지구가 자전하며 생성되는 바람의 영향으로 수표면을 이동한다. 혹은 바다로 간 물은 달과 태양의 조석력으로 마구 섞인다. 혹, 지구의 중력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섞인다. 바다의 다른 물과 섞여 어디론가 흘러가거나 바다 생물의 몸에 들어가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바다의 온도 차이로 열도 현상이 일어나면 위 아래로 섞이며 해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류는 태양 에너지에 의해 기체로 바뀐다. 이것이 상승하는 공기와 대류가 되면 수증기를 삼킨 공기는 상승하며 차가워진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수중기는 응축된다. 응축되면 작은 물방울이 형성된다. 증기 분자들은 작은 물방울로 모여 구름 형태가 된다. 구름은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대기를 타고 다니다가 크고 무거워지면 중력에 의해 지면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지면 지표면에 스며든다. 이중 일부는 흙과 지반을 통과해 지하수가 된다. 일부는 강이나 강물, 호수가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동물과 식물의 식수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부는 정수 처리가 되어 주택, 학교, 회사 등의 소비자에게 배급된다. 이것이 다시 한 잔의 물이 되어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이렇게 돌고 돈다. 물은 때로 나를 채우기도 하고, 남을 채우기도 한다. 물의 순환 과정을 살피면, 나를 채우던 물이 고양이를 채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는 때로 나무가 되거나 풀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동차가 되거나, 핸드폰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어떤 것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갖더 버린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70%는 물로 이뤄져 있다. 인간은 이처럼 돌도 도는 순환의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고여있는 형태일 뿐이다. 들어왔다가 나가고 외부를 돌고 돌아 다시 들어온다. 그것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순환하는 어떤 커다란 유기체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커다란 유기체는 모두 '나'이기도 하다.

윤회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물의 순환의 예를 들었다. 비약이라면 비약이다. 어쨌건 우리는 돌고 도는 유기체의 일부이며, 그 유기체 자체이기도 하다. 고로 사람은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없고, 물은 물이라 규정할 수 없으며, 나는 나라고 규정할 수 없다. 불교철학에서는 이처럼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설명한다.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너'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그런 것들이 모두 착각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주는 하나 덩어리가 끝없이 움직이며 형태를 변형하는 유기체일 뿐이다. 고로 우주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며, '슬픔', '악', '선', '기쁨' 따위는 없다. 모두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처럼 구별할 수 없는 큰 덩어리에 인간은 구별 지어 이름 짓길 좋아한다. 구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는 동양철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노자' 철학에서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도'라고 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범'이라고 한다. 그것을 '도'라고 이름 지엇지만, 혹은 '범'이라고 이름 지엇지만 그것이 가르키는 대상이 너무 모호한 하나의 덩어리다. 서양 철학에서는 이를 '신'으로 규정하는데 이 전체를 '하나'라고 부르며, 기독교 철학에서 이를 '유일신', '하나님'으로 규정한다.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각각의 조합이다. 고로 각각은 모두 전체이다. 이것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를 가르켜, '도가도 비상도'했다. 이는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다'라는 의미다. 언어가 가진 한계성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불완전하다. 언어는 인간의 작디 작은 지성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고로 완전한 '우주'라고 하는 일원적인 덩어리를 인간의 지성 크기로 난도질한다. 고로 언어는 우주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쉽게 말해 인간이 가진 '종이'가 2차원 평면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정확한 지도를 제작한다손 치더라도 구형의 지구를 표현 할 수 없다. 아무리 정확한 지도도 그 왜곡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진리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진리는 경험이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더이상 진리가 아니다. 고로 지식은 언어로 얻을 수 있지만, 진정한 지혜와 깨달음은 언어로 얻을 수 없다. 그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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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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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끓는 물 속 개구리는 어떻게 죽어가나. 자신이 익어가는지 모르는 채로 개구리를 익히는 방법은 물 속의 개구리를 서서히 끓이는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의 독재자는 동물의 권리를 신장하고 평등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집권한다. 그 최초의 선의가 '모두 악을 위한 계획'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초의 의미가 선량하다손 치더라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점차 퇴락하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권력의 횡포는 고인 물이 썪기 때문이지, 썩은 물이 고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혁명이 다수의 지지를 통해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혁명은 다수를 설득할 '명분'을 갖는다. 조지 오엘의 소설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이라는 돼지가 '타도 인간'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농장 내에 혁명을 통해 인간을 몰아낸다. 이들을 몰아낸 것은 주동자는 '나폴레옹'이라는 리더지만, 그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친 '메이저'라는 정신적 지주가 그 씨앗이 된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그 역할로 '루소'가 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불합리한 왕정을 비판했다. 정부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고 국민의 동의를 기반으로 정당한 정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명분은 프랑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사상이 되지만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이라는 '황제'를 등극시킴으로써 더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소설의 돼지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자 '스탈린'으로 보여진다.

소설은 프랑스 혁명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다만, 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에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리더 돼지의 이름을 '나폴레옹'으로 명명함으로써 그 전개와 결과를 시작부터 암시했다. 배경지식을 모르고 본다면 도입 부분에서 최소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민중'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유럽 전체에 전파하여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렇게 집권한 나폴레옹이 다시 제정을 탄생시켜 스스로 왕보다 더 높은 '황제'가 된 것은 혁명의 아이러니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렇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다. 소설 '동물농장'은 대체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다. 소설은 독특하게도 독자의 해석 방향을 열어 두기보다는 거의 1대 1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러시아 혁명을 비유한다. 앞서 말한 '메이저'는 프랑스 혁명에서 '루소'를 닮았지만, 러시아 혁명에서는 '레닌'과 '칼 마르크스'를 닮았다. 철학은 그 씨앗으로 시작해 '혁명'의 명분이 된다. 다만 '철학이 담던 순수함'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라진다. 혁명의 지도자는 점차 독재적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혁명의 이상과 목표는 아주 조금씩 변화한다. 그 변화는 아주 사소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방식으로 대중을 배신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전혀 다른 시대적, 공간적 배경의 두 사건을 거의 동일하게 다룬다.

기하학에서는 '합동'과 '닮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두 도형이 서로 크기와 모양이 완전히 같은 경우에는 '합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각도와 변의 길이까지 모두 같다. 반면 두 도형이 서로 크기만 다를 때, 이를 '닮음'이라고 부른다. 닮음은 각도는 동일하지만 변의 길이가 일정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변의 길이에 대한 비율만 조절하면 두 도형은 완전히 일치 하는 하나의 모양이 된다. 다시 말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은 서로 닮은 각도와 모양을 가졌다. 그 비율적인 부분만 조절을 한다면 이 두 사건은 기하학적으로 합동이다. 이런 두 사건의 평행이론적 일치를 조지 조웰은 말하고자 했다. 이는 두 사건에 대한 예시만은 아니다. 모든 혁명이 일어나는 매커니즘이 이와 닮았다. 다수를 설득할 '철학'을 등에 엎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은 다시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은 혁명에 의해 무너진다. 대체로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반복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명칭은 다르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이론이 있다. 그것은 기하학의 '합동조건'을 닮았다. 쉽게 말해 자연과학에서는 '대류 현상'이 있다. 온도가 높으면 기압이 낮아진다. 기압이 낮아지면 위로 올라간다. 온도가 낮아지면 반대로 기압이 높아진다. 기압이 높아지면 아래로 내려간다. 쉽게 말해 물을 끓이면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은 아래로 내려가며 물이 순환하게 되는데, 이를 '대류현상'이라고 한다. 인간의 사회도 이와 닮았다. 다수 분자의 활동량이 많아지면 밀도는 낮아진다. 밀도가 낮아지면 온도가 높아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위로 올라간다. 반대로 활동량이 작아지면 밀도가 높아지고 밀도가 낮아지면 온도는 낮아진다. 온도가 낮아지면 아래로 내려간다. 다수의 열망은 혁명이 되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역사는 진행한다. 고로 완전히 옳은 것도, 완전히 그른 것도 없다. 어떤 혁명은 어떤 혁명을 뒤집은 것이고, 반대로 어떤 혁명은 어떤 혁명을 닮았다. 그 물고 물리는 닮음의 조건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끓는 물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이기도 하지만 그 끓는 물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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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 말하기에 자신이 생기면 인생이 바뀝니다
한석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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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는 쓰기와 다르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쓰기'와 다르게 말하기는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말하는 속도, 표정, 눈빛, 발성, 제스처 또한 듣는 자세 등.

'쓰기'가 정제된 정보를 담는 그릇이라면, '말하기'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글로 읽었을 때와 말로 전달 받았을 때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쓰기'와 '말하기'는 모두 중요한 소통방식이다. 다만 어떤 면에서는 '쓰기'보다 '말하기'가 더 효과적인 전달 방식일 수 있다.

일단 '말하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소통'이다. 요즘처럼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실시간 댓글 소통이 가능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는 독보적인 실시간 소통 방식이다. 실제로 문자를 주고 받다가 답답해지면, 우리는 1차로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2차로 직접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만큼 '글'보다 '말'이 주는 힘이 어떤 면에서 강력하다.

둘째, 말하기는 비언어적 표현을 담는다. 가령 사람은 거짓을 말할 때, 무의식적 특징을 가진다. 눈을 피한다거나, 과정된 손짓을 이용하기도 하고, 음성의 높낮이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빨라지는 경향도 있다. 이런 비언어적 특징을 '글'은 숨길 수 있다. 이는 말하기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셋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앞서 말한 '실시간 소통'과 일맥한다. 대화에 대한 즉각적인 호기심을 해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책읽기'라는 소통보다는 '대화'를 통한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를 '소크라테스적 대화'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자기 인식력을 촉징할 수 있다.

예전처럼 '말하기 능력'이 1대 1이거나 1대 상대적 소수인 경우에는 '말하기 능력'이 한계를 가진 적도 있다. 다만 현대 영상매체의 시대가 오면서 '말하기 능력'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무조건 '쓰기 능력'이 중요했다. 책을 쓰거나 '컬럼'을 작성하는 이들이 다수를 상대 할 수 있었다. 다만 유튜브가 활성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말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상대할 수 있게 됐다. 1회성이라 증발되고 마는 '말하기'의 또다른 단점이 '유튜브'라는 저장 매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글'과 같이 기록어 같은 파급력을 갖게 됐다. 바야흐로 '말하기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유창하게 말하는 다양한 유튜버들을 만나게 된다. 예전 같으면 강연장에서만 볼 수 있거나 술자리 친구들 앞에서만 이야기하던 내용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면서 말하기는 더 빠른 속도로 생각이 같은 이들을 모울수 있는 수단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하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이에 스피치 코치 '한석준' 아나운서는 그의 저서 '말하기 수업'에서 말 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말 잘하는 방법은 한 두 가지는 아니다. 말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양한 능력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고로 단순히 성대를 떨어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분명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맞는 말을 하더라도 내용에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없는 소리를 해도 말에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컨텐츠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발음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대부분 발음을 연습할 때, 자음에 대해 신경을 쓰곤 한다. '시옷'이나 '히읗'과 같이 발음하기 어려운 자음에 대해 애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뭉게지는 발음의 경우, 그 문제점은 자음이 아니라 '모음'에 있는 편이 많다. 실제로 영어와 한국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에서 음절을 나누는 기준은 '모음'이다. 훈민정음을 살펴보면 한 음절의 구성요소를 '자음, 모음, 자음'으로 구성한다. 이에 첫머리에 자음을 '초성'이라고 부르고 가운데 모음을 '중성', 끝의 자음을 '종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초성, 중성, 종성'은 천지인 체계를 따른다. 다시 해서 초성은 하늘, 중성은 인간, 종성은 땅을 가르킨다. 이렇게 하늘과 땅, 사람을 자연적 구성 요소의 대표로 두는데 이것이 삼재론이라는 유학사상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하늘, 땅과 그 지위가 같고 되려 중심이기도 하다. 이 삼재론은 동양 철학에서 균형의 상징으로 '인간'이 설정된다. 다시말해 모음은 '균형'을 상징하고 사람을 상징한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모음은 음절의 기준이 되어 명확한 전달을 가능하게 하고 초성과 종성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모음을 조금 더 신경써서 말하는 일 뿐만 아니라 말하기에는 눈빛과 행위도 포함된다. 말을 할 때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일은 현대인들이 자주하는 실수다. 사람의 말은 입을 통해 나가지만 그 방향은 '눈'에 있다. 말은 공간으로 퍼져 목표점을 잃는 '떨림' 즉, '파동'이다. 다만 '빛'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진다. 다시말해 빛은 파장이 짧아 '직진성'이 강하고 소리는 파장이 길어 '전파성'이 강하다. 말은 '파장'을 갖고 있"기에 '전파성'이 강한 반면, 직진성이 약하기에 눈빛으로 그 방향성을 정해 주어야 한다. 다만 현대인의 대부분은 사람과 대화하는 일에 서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과 대면할 때, 스마트폰을 함께 쥐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눈을 두고 말하는 습관을 갖는데, 이런 경우, 소리의 전달에 반향을 상실한다. 이런 경우는 적잖다. 이는 내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 중 하나다.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다. 될 수 있으면 상대가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대에게 '당신의 이야기에 경청할 준비를 하겠습니다'라는 표시로 전달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하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힘들 여지가 있다. 간혹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에 스마트폰에 신경을 두는 경우가 있다고 할 지 모르겠다. 다만 인간은 반복적인 행위를 학습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사소한 행위는 반복과 습관이 되고 결국 그 행위는 무의식에서 학습한다. 결국 사소한 대화 조차 우리는 '말하기 훈련'의 일부이며 사소한 대화에서도 자신의 습관을 관찰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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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출구 있음 YOU TURN - 힐링닥터 사공정규의 유턴 처방전
사공정규 지음 / 가디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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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기본값은 '부정적 사고'이다. 쉽게 말해, 뇌가 보수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 조상은 생존률이 높아졌다. 난생처음보는 버섯이 있을 때, 그것을 스스럼 없이 먹은 쪽과 먹지 않는 쪽 중 어느 쪽이 살아남았을까. 먹지 않는 쪽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유전자를 남겼다. 어두운 밤에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쪽과 공포를 느끼는 쪽 중 어느쪽이 더 살아 남았을까? 당연히 공포를 느끼는 쪽이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어두운 밤, 야수의 공격으로 죽고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다. 낯선이에게 경계심을 갖던 이와 갖지 않던 이 중에는 누가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 당연히 경계심을 가진 쪽일 것이다. 경계심 없는 이들은 전염병에 의해 죽고 경계심 많은 이들이 살아 남았다. 고로 인간은 공포를 쉽게 느끼고 경계심이 많으며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쉽게 말해, 인간의 뇌는 '보수적'으로 생각하도록 진화되어 있다. 다른 표현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버섯을 수 만명의 사람이 먹었을 때, 다수는 죽는다.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살아 남은 한명은 남들이 먹지 않는 버섯을 독식 할 권한이 생긴다. 때로 운좋게 살아남은 한 사람이 '스타'가 되기에 역시나 또 수만의 사람이 이름 모를 버섯을 주워 먹는다. 우리 뇌는 기울어져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길 건너 친구가 있다.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들릴 만한 거리다. 그럼에도 그는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이때 생기는 배신감과 불쾌함. 그것은 견디기 어렵다. 다만 이후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청각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보자. 견디기 힘든 불쾌함과 배신감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 자리에 미안함이 생겨난다. 이렇듯 우리는 알지 못하는 정보에 대해 '부정적 선택'을 먼저 한다. 최초에 친구를 불렀던 사건을 정신의학적으로 중립사건이라고 한다. 이런 중립사건에 우리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이를 '부정성편향'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를 살리던 정신 작용 중 하나다. 우리는 만물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하여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상당수의 인간이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 본다고 해서 왜곡된 세상이 올바른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이런 정신 작용을 따지고보면 붓다가 말한 '인생은 고(苦)'라는 것의 의미가 짐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고(苦)는 '쓰다'는 의미로 '감각'이다. 붓다는 인생의 맛이 '쓰다'라고 정의했지만, 쓰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지 실제 '인생'이라는 중립적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각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인종 간에는 미각의 특성이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특정한 맛에 민감하거나 미각의 민감도가 인종에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미각은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미각이 남성에 비해 더 민감하다고 보고되며, 노화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는 주관적인 감각 기관이다. 고로 누군가는 누군가는 '쓴맛'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대인들이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음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라는 쓴 음식이다. 인생이 '고'라는 붓다의 말 마저 부정적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인생을 '견뎌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하지만, 우리는 커피라는 음료를 여러 방식으로 즐긴다. 사람마다 진하고 쓴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취향에 맞게 우유나 설탕을 넣어 마시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커피는 쓰다. 뇌의 기본값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커피의 기본맛이 '쓴' 것과 닮았다. 부정적이라는 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기에 힘들때면 취향 것, '우유'나 '설탕' 등의 첨가물을 섞는 방식으로 즐긴다.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이라는 감정은 앞서 말한 우리 뇌의 기본값에 위해 생겨나는 부선물이다.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유화 시키기 위해서는 '쓰다'라는 진실을 거부할 것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정교한 뇌과학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으로 가는 길에서 행복으로 돌아설 수 있을지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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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기억의 도시 -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간과 장소 그리고 삶
이용민 지음 / 샘터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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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1800년, 뉴욕의 인구는 6만명이었다. 이 정도면 현재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인구보다 2만명이나 작다. 이런 뉴욕은 50년만에 인구가 60만명으로 성장하고 다시 50년 뒤에는 400만에 가까워진다. 다시 50년이 지난 1950년에는 1200만명의 거대 도시가 된다. 이렇게 도시가 급격하게 성장하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상하수도의 문제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갈증이 일어난다. 뉴욕시는 이런 수요가 불러 일으키는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마침 19세기 초, 영국의 벽돌공, 조셉 애습딘은 구운 석회석과 점토, 가소(Calcine)을 섞어 시멘트 가루를 발명하다. 그것이 '포틀랜드 시멘트'다. 포틀랜드 시멘트는 빠르게 굳고 높은 강도를 가진 재료로 이후 건설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시멘트는 단단하지만 열에 의한 팽창으로 깨지기 쉽다. 간혹 뜨거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되면 깨져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러다 프랑스 공학자인 프랑소와 코그넷은 19세기 중반, 인류 최초의 철근 콘트리트 건물을 만든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철근 프레임에 콘크리트를 붙여 조금 더 단단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후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정원사였던 조셉 모니에르가 콘크리트에 철망을 삽입하는 방식을 개발하는데 그것이 철근 콘크리트 시스템의 토대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함께 쓰는 공법은 생각보다 아주 기가 막힌 우연으로 가능한데, 철근과 콘크리트의 열팽창계수는 거의 똑같다. 거기에 배합 비율에 따라 그 차이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콘크리트는 철근을 감싸고 있기에 산소에 의한 부식이 적어지고 되려 콘크리트의 주 성분인 탄산칼슘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그나마의 철근 부식도 막아준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의 궁합으로 인류는 인장력이 높고 내구성이 좋은 건축물을을 짓게 된다.

뉴욕의 인구 증가는 이처럼 '건축공학'의 발달이 한몫했다. 건축공학이 때마침 발달하면서 뉴욕은 수평구조로 넓어지는 기존 도심들의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난다. 2차원 평면의 도시가 수직으로 공간활용을 하면서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도심으로 탈바꿈된다. 이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다. '수평 구조'의 공간 활용에서는 '자동차'가 이용됐지만 '수직 구조'의 공간 활용에서는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에 획기적인 운송수단이 생겼다. 일상상활에서 우리는 가끔 'OTIS'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한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다. 1853년 미국의 엔지니어인 엘리샤 오티스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제조한다. 이런 제조 공법은 수직 공간 활용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공학적인 발전을 적극 받아들여 뉴욕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인구를 수용하고 거대 도시로 탈바꿈 된다. 이 과정에서 뉴욕하면 떠오른 높은 빌딩, 마천루가 탄생한다. 1931년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어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높이 381미터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이어 1970년에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완공되었고 2013년에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지어진다. 이처럼 뉴욕이 엄청난 수용력을 자랑하는 도시가 됐을 때, 그것을 상징하는 다양한 상징물들도 함께 따라왔다. 다만 19세기 중반 뉴욕이 빠른 속도로 산업화 되고 도시화 되면서 도시의 시민의 생활 환경이 약화됐다. 1850년 뉴욕의 성장이 본격화 됐을 때, 시민을 위한 자연과 레이크레이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1857년 대규모 경쟁 설계 공모전을 개최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건축가이자 조경 디자이너인 프레더릭 로우 올름스테드와 칼베르트 바우스의 디자인이 선택되면서 뉴욕의 가장자리에 커다란 공원이 자리 잡는다. 이 공원은 소풍, 공연, 자전거 타기,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 높였다.

뿐만아니라 급격한 인구의 증가는 상하수도관, 도시 행정, 전력 및 수도 공급 등 당양 문제를 야기했고, 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간 뉴욕의 도시 행정은 다른 국가들의 모델이 된다. 도시의 성장을 보면 그것이 개인의 성장과도 닮았다.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성장은 일어나지 않으며, 반대로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은 성장을 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주의 인구는 1984만명이다. 6만명의 도시가 2세기만에 330배 성장하여 2000만 명에 가까운 도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맞이하고 그것을 성장했는지를 보면 과연 뉴욕의 문제 해결 역사가 성장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현대 많은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 이유는 그 뒤에 있는 수많은 문제와 해결의 반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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