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20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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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란 본래 예측하기 어렵다. 불가피한 사건이다. 다만 이것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일탈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다. 잦은 지진이나 화산 활동에도 환경을 발판 삼아, 더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도 많다.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살면서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다면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에 가깝다.

다리가 붕괴되거나 백화점이 무너지거나 배가 가라앉는 다양한 재난은 '사회 시스템'의 어딘가에 오류가 있음을 말한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현명하지만, '소 잃은 후'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일단 잃어버린 것은 덮어두고 '덧됨'을 계속 해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이재민, 수재민 돕기' 캠페인을 벌였다. 집과 시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TV에 항상 나왔다. ARS 전화로 천 원 씩 기부를 하는 일이 거의 '문화'처럼 되어 갔다. TV에는 방에 들어찬 물을 바구니로 퍼내는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었다며 통곡하곤 했다. 그것이 일반적이라 점차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다음해에도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TV를 보면서 ARS로 전화기부를 하는 이상한 문화 말이다. 국가 역할의 부재가 시스템이 되면, 흐르는 물고는 그것을 향해 흐른다. 그 물길은 더 깊어지고 빨라진다. 그 다음 해에도 그럴 것이 뻔했다. 그것은 내성이 되어 다음해가 되을 때, 그것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특별히 이상지 않았다. 비가오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피해를 보지 않은 이들은 돕는 독특한 시스템. 그러던 것이 어느 새 그것이 사라졌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재난 관리 및 대응 체계가 개선된 결과일지 모른다. 결국 시스템이 갖춰지자, 사회는 더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인 이들을 얻었다. 국가는 기반 시설과 공공 인프라를 개선했다. 댐이나 제방, 하수도 시스템 건설을 개량했다. 건축법과 도시계획 기준을 새로이 도입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예전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그렇다. 국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직접 물을 퍼다가 날라 줄 것이 아니라, 물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줄기를 흐르는 것은 '물'의 역할이다. 시스템 구축에서 국가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하다. 국가는 누가 통제를 할 것인지, 무엇이 우선인지 규율과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해결책을 만들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증 외상 센터라는 곳은 특별하다. 이는 대규모 재난이나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은 다른 어떤 것보다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취합하여 하나의 일관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말해, 중증 외상센터는 다양한 전문 분야 의료팀이 협렵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그것은 사회가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축소판을 닮았다. 위기의 상황에 하나의 해결책을 위해 신속, 정확하게 의사전달하고 목적달성을 하는 시스템말이다. 각 상황은 환자 상태와 의료장비 시설의 복잡성 때문에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 해결 능력은 시스템 발전의 상징이다. 중증 외상 센터는 다학제적 협력의 본보기다. 외과, 내과, 신경과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협업하여 환자 치료에 임한다. 복잡한 의료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에 사람을 다루는 일을 포함한다. 업무 중, 가장 강도 높은 업무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 '인체'를 '의료 행위'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말한다. 어떤 업종에서도 가장 고단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문제 해결 능력은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일상의 도전을 대처하는 가벼운 일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의 일, 국가에서 일에서 모두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장은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쉽게 말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볼수록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개인에게 대응해보면, '자기성찰'을 닮았다. 우리 사회에는 과연 시스템에 애한 '성찰'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대규모 재난 등에서 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기관이다. 쉽게 말해, 앞서 말한 사건 사고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마치 미래의 안전에 대해 '확률적 배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확률적으로 그것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판단하기에, 임시 방면으로 '덧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해결 능력'이 아직은 꽤 허술하다. 이것은 '중증외상센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미래를 대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간결하고 쉬운 문체다. 이는 교수가 '김훈 작가'의 필체를 좋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단순히 문체 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정과 결합한 의료인으로써의 소명에 대한 기술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이 우리 삶을 닮았다. 사람을 대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렵고 복잡한 속내도 살펴보자면 어떤 직업이던 사람사는 모양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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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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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문장은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첫 문장의 조사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가 '꽃이 피었다'로 바꿨다. 그의 수필 '바다의 기별'에서는 이 조사 하나에 얼마나 심히 고민했는지 흔적이 있다. 그 결과는 '담배 한 갑을 태운 것'으로 설명됐다. 단순한 조사 하나, 단어 하나지만 그것이 갖는 어감은 아주 다르다. 문장을 여는 첫 문장에 그는 왜 그런 고민을 했을까? 김훈 작가는 현대 사회의 언어 사용에 대해 우려하곤 했다. 그는 사회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마치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는 언어의 사용이 언어의 본질을 바꾸었다고 했다. 언어는 곧 소통의 도구이지만, 앞선 언어의 오사용으로 언어는 단절의 장벽을 만드는 무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이처럼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했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라는 두 문장은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꽃이 피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서술한 문장이다. 곷이 피었다는 사건 자체에 중점을 둔다. 다만 '꽃이 피었다'는 꽃을 특정하거나 강조하며, 다른 상황이나 맥락, 대조되는 요소들과의 관계속에서 꽃이 피었다는 것을 말한다. 고로 한국어에 있는 '조사'인 '은'이나 '는'은 종종 비교나 대조 혹은 특정한 사실에 대한 강조를 하는 반면, '이'나 '가' 조사는 사건이나 상태의 간단한 서술에 쓰인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문장이 전달하려는 뉘앙스나 맥락을 크게 바꾼다. 김훈 작가가 '꽃이 피었다'라고 쓴 이유는 그 문장이 담담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또한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또한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1인으로 한때나마 그의 문체를 따라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그의 글은 덧붙이기보다 덜어내기를 중요시 한다. 불필요한 수식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접속사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의 글이 동강동강난 짧은 문장 여럿의 나열처럼 보인다. 군더더기가 없다. 덜어진 접속사는 문맥의 흐름으로 '독자'의 문해력에 맡긴다. 그의 작업을 보면 '문학'이 단순히 글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다듬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은 쓰는 것보다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예술품을 빗는 '장인'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글을 대하는 그 태도를 보면 경이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을 작품화해 내놓는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다. 음악가나 소설가, 화가 등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다. 상품화한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되고, 팬층이 생겨난다는 것은 꽤 고귀한 일이다. 거기에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들어간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어도 이들은 결코 '멋진 문장'을 만들지라도 철학을 담을 수는 없다. 때로 인공지능은 문법적 정확성, 문체의 다양성, 심지어 창의적인 표현까지 흉내낼 수 있다. 다만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철학'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글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 생각이 깃든 철학이 결여되어 있다. '프랑츠 카프카'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프랑크 카프카'는 20세기 초의 체코 출신 유대인 작가다. 그는 고뇌와 내면적 갈등을 그의 작품에 깊게 반영했는데, '변신'이라는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괴상한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따지고 보면 카프카 자신의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카프카의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적 갈등이 그 작품에 독특한 깊이와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생을 통해서 그 문학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설령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글인지 보다, 누가 쓴 글인지를 먼저 살핀다. 고로 아무리 훌륭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삶'을 살아 갈 수는 없고, 단순한 알고리즘에 의한 데이터 조합에 '매력을 느낄 독자'도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AI가 이 모든 직업을 위협하는 시대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작가다.

괴소소설을 보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이 책이 단편 소설이라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 있다. 다만 이 글을 쓴 이가 '히가시고 게이고'라면 읽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게 된다. 지금껏 그가 써왔던 이야기와 문체, 풀어가는 방식과 함께 비교하며 읽다보니 소설이 담고 있는 재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이 소설은 짧은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짧고 쉽다. 간단히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어떤 부담감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다.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단편이라면 취미로 써둬도 좋겠다.'

다작 중 명작이 나온다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작인 것 같다. 긴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단편을 써왔을까. 모든 연습은 작품이 되고, 모든 작품은 연습이 되어, 결과와 성장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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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데일리 티칭 -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크릿 습관 365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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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자는데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된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조금 쌀쌀하다 싶어 온도를 올렸다. 발끝에서 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너무 놀라웠다. 분명 따뜻함 위에서 포근히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전기장판은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단물을 마시고 깨어나보니 해골물이었다던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날 꿀맛 같은 잠을 잤고 그것은 거짓이라도 나에게 진실을 주었다. 완벽한 거짓은 간혹 진실을 닮았다. 다시 생각해본다면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별것 없다. 내가 그날 '전원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진실이 되는 것일까. 세상에는 분명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지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이지 않다. 설령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네모 모양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죽는 이상 그 진실에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진실이라는 것은 마냥 알아야만 하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진실과 거짓은 구별할 필요도 사라진다.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진실이라면 나에게 철저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을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욱 나아가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진실이라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의 가치는 진실을 상회하고 남는다.

우리의 작은 지성은 '완전한 진실'에 대해 알기 쉽지 않다. 완전한 진실은 객관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은 남쪽에 있기에 남산이지만, 제주에서 바라보기에 그것은 '북산'에 가깝다. 진실과 객관성이란 결국 주관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는 유연한 것이며 고로 모든 객관화 필연적으로 오류를 낳는다. 고로 가장 완벽한 객관화는 자신을 기점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진실보다 상회한다면 거짓이 낫다. 고로 '나'는 인생 여정 중 가장 완벽한 장소와 완벽한 시간에 있다. 거기에 그 어떤 객관성이란 없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럴뿐이다. 지금은 인생 최고의 전성기이며, 다시 내일, '지금'을 인지하는 순간 그 전성기는 그 순간으로 바뀐다. 모든 것은 믿기에 따름이다. 에너지라는 것은 언제든 모양을 바꾸되 총량은 지킨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가 모양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수력발전에서 만든 에너지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화력 발전소로 만든 에너지를 통해 불을 끌수도 있다. 열량은 보존하되 모양만 바뀐다. 고로 에너지의 주체는 '원인인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밑으로 크게 움직이건, 위로 크게 움직이건 움직임 자체가 에너지다. 고로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얻는 이들보다 양쪽으로 얻는 효율이 좋다.

예전 한 행동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행동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이들에게 빈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다만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은 모두 공을 가지고 빈통 앞에 섰다. 얼마 뒤에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바로 공을 빈통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아무 지시나 요구가 없어도 당연스럽게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봐서 우리는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빈통에 던진 공이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저 빈 시간과 빈 공간을 부여받은 이들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여 하는 일종의 '놀이'와 가깝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빈 공간에 빈 시간을 부여받고 빈통 앞에 테니스공을 들고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때 우리가 던진 공은 통에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이 놀이에서 규칙이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없다. 그것은 다만 자기가 설정한 기준일 뿐이며 그 기준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고로 모든 것이 '공'하다고 했다. 도가에서는 모든 것이 '무'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고 모두 비어있는 것 투성이에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활용하는 이의 능동성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통속에 들어간 것을 성공으로 정의해도 그만이고, 통속에 들어간 것을 실패라고 정의해도 그만이다.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100년 전 캐나다의 스포츠 강사가 주변에 있는 복숭아 농장에서 가져 온 복숭아 바구니에 축구공을 던져 놓는 경기를 개발했다. 바구니를 사다리에 고정하여 높게 세웠고, 공이 들어 갈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번거러움을 없애기 위해 바구니 아랫부분에 구멍을 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의 시초다.

100년 전까지는 그저 복숭아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 행동에 불과한 일이 거기에 의미을 부여하는 순간, '블록버스터 스포츠'로 탈바꿈한다. 마이클 조던의 능력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되고,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주관적인 의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나름의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약속'이나 '합의' 또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고로 그것 또한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탑일 뿐이다. 누군가는 빙상 위에 돌을 밀어 넣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컬링'이라고 부르고, 그물 속으로 공을 차 넣는 행위에 누군가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축구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주에 원래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인지 해야지만 그것은 의미를 겨우 부여 받는다. 발과 다리를 이용해 공을 네트 넘어로 차 넣는 게임인 '세팍 타크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다. 모든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렇게 될 뿐이고, 저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저렇게 될 뿐이다. 그것을 부여하는 이는 누구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그 흥미롭고 창조적인 놀이가 바로 '인생'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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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어 화법과 작문 - EBS 최경일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최경일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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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본문맹률은 1%지만, 실질문맹률이 75%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문맹이란 우리말로 '까막눈'이라고 하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는 글자를 읽어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한 바를 이해하는 이들은 25%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기본문맹이란 글자를 말 그대로 음성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만 실질문맹이란 글이 의미한 바를 이해할 수 있는지다. 눈 감은 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자가 얻을 수 있는 삶의 혜택이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수 있다. 글자를 모르는 이가 다수이고 혼자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은 꽤 편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시험을 치루는 일도 수월하고, 직업을 찾거나 자기계발을 하는데도 남들보다 수월하다. 다른이가 어렵게 쌓은 정보를 손쉽게 훔쳐 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더 풍부한 삶을 간접체험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얻을 수 있는 '공감능력'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생각에 근거를 더할 수 있는 '논리력'도 생긴다. 그것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자'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기본문맹률은 1% 수준이다. 다수의 국민이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은 모두 공부를 열심히하고, 자기계발에 속도를 붙이며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을 것 같다. 다만, 실질문맹이 75%다. 다시 말해서 실질문해력을 기른 이들에게 나머지 75%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장학금, 채용, 스포츠 경기 등에서 경쟁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째서, 세상은 소수가 독식하는 구조가 되는 것일까. 가령 예를 들자면,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부자 순위'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 부자 상위 50명 중 서울대 출신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관장, 방시혁 하이브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조영식 SD바이오센서 창업자가 6명이다. 나머지 44명의 학력 또한 연세대, 고려대, 건국대, 한양대 등이다. 대한민국에는 총 200개의 대학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 5개 정도에서 대한민국 부자 50명을 거의 대부분 배출한다. 순위를 50위에서 100위로 올려도 그 결과는 같다. 또한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서울대 출신 의원은 62명이다. 창업을 통해 부를 이루거나,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이들은 표준화된 교육제도나 시험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이다. 생각해보자. 언어 능력은 단순히 언어 능력이 아니다. 언어 능력은 당연히 글을 읽는 능력이기에, 국어능력이면서 과학능력이고, 수학능력이고, 역사능력이고, 사회능력이며 외국어 능력이다.

결국 '문해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부모가 돈이 많아 공부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 없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더 공부하여 좋은 학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단순히 '돈'이 유일한 이득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공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두가 눈 감은 시대에 홀로 눈을 뜨고 살아갈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에서 부나 권력은 최첨단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만 흥미롭게도 많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은 TV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는 것을 과도하게 꺼린다.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경영자들 중 일부는 자녀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TV시청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유튜브나 인스타, 틱톡, 웹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술의 영향력과 중독성을 잘 알기 때문에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기술에 의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는 업장을 '실리콘밸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의도치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 눈 먼 사람들을 양산하는 업종에 일을 하면서 자신과 가족들 만큼은 그것에서 철저하게 격리하여 저들끼리 눈을 뜬 세상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것은 굳이 음모론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내부적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담배 제조업체의 경영진은 자신의 가족과 자녀들이 흡연을 시작하는 것을 막는다. 패스트푸드 체인의 고위 임원은 자신의 자녀에게는 그것을 먹이지 않으며, 고카페인 음료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무리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약처럼 아이에게 지어 먹이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은 기술의 영향력과 중독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기술에 의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한다. 대체로 부유한 가정일수록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선호한다. 예술, 문학, 체육 등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으로인해 방해 받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아이폰'을 만들었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와 로린 파월 잡스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인 리드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빌게이츠는 실제로 메모나 독서를 '전자기기'가 아닌 '종이'로만 한다. 또한 그의 딸인 제니퍼 캐서린 게이츠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인간 생물학을 전공하고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눈을 홀로 뜬 이들은 역시 자신들만 눈을 뜨고 있기를 바란다.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것을 다시 정리하면 '화법과 작문'이라고 하고, 이것을 우리는 '언어'라고 부른다. 언어 능력은 과거인들, 미래인들, 세계인들이라는 4차원의 다수와 소통하는 방법이고 많은 이가 눈을 감고 있을수록 세상은 더 편하고 쉬워진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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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지 않는 연습 : 실천편 - 관계의 피곤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반응하지 않는 연습 시리즈
구사나기 류슌 지음, 김여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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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인공지능이 자동주행을 학습하는 방법은 이렇다. '반복', '지속'.

하나의 사건은 그저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이 반복적이면 그것은 '데이터'가 된다. 그것을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반복을 지속하면 알고리즘은 산발적인 데이터의 평균값을 계산한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다수의 데이터의 평균값 정도의 반응을 취한다. 인간의 뇌도 그렇다. 인간의 뇌는 '반복', '지속'한 데이터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 여기에 하나의 다른 인자를 넣자면, '빈번'이다. 인간의 뇌는 '반복적으로 빈번하게 지속하는 일'을 학습한다. 학습된 데이터는 비슷한 상황에서 '얼추' 비슷한 대응을 하도록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우리의 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자라와 솥뚜껑은 완전히 다른 모양과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얼추' 비슷하다. 우리의 데이터는 완전히 섬세하진 않지만 '대강' 비슷한 어떤 것을 '그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거기에 '의식없는 대응'을 해 나간다.

사람이 나이를 쌓는다는 것은 이런 '빅데이터'도 함께 쌓였다는 의미다. 고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의식'보다 '무의식'에 많은 일을 전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우리가 의식보다 무의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의 삶 전반이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를 살펴보자. 어린아이의 감각은 예민한다. 어린 아이는경험하는 다수의 것들을 '삶의 최초'의 받아 들인다. 쉽게 말해 모든 선택은 이전에 고민해 본 적 없는 고민일 것이고, 어떤 편견이나 과거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 다만 성인의 경우는 다르다. 성인의 경우에는 대체로의 선택에 있어 비슷한 경험을 데이터로 쌓아 있다. 어떤 편견이나 과거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점심 메뉴를 고른다고 해보자. 성인의 경우에는 다양한 메뉴를 접해보고 자신이 좋았던 기억과 그렇지 않는 기억을 바탕으로 결정을 반자동적으로 내놓는다. 다르게 말하면 그건은 '선호도'가 되지만, 말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경험'을 앗아간다. 반자동적인 선택과 결정이 완료되면 성인의 다수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경험을 할 것이고, 일상이 반복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일정의 결정을 이미 완료했다. 달력에 '월'을 가르키는 숫자가 두 자리가 되면 두꺼운 옷을 입고 장마 기간이 되면 장화와 비옷을 꺼내둔다. 그것은 반자동적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사라진다. 이런 과거의 데이터가 많다는 것은 빠르고 '대체적으로 맞는 판단'을 대략 내릴 수 있음을 말한다. 다만 다시 말하면, 새로움을 잃고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의 한 번 뿐인 여행을 떠난다고 해보자. 평생 추억해야 할 이 기억에 '나' 대신에 나의 과거를 학습한, 나를 닮은 누군가를 대신 내보낸다고 해보자. 그것은 과연 효율적인 선택일까. 그렇지 않다. 무의식화와 일반화는 대체적으로 단순반복 작업에서 효율성을 가져다 주지만, 삶의 '감사함'을 상실하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 '무의식'에게 삶의 전반을 맡겨 두고 자신은 우울과 걱정, 불안 따위로 삶을 채운다.

인간 뇌의 디포트값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하게 세팅되어 있다. 즉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걱정, 우울, 불안의 상태로 접어든다. 고로 우리는 그 디폴트값을 최소화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것이 최소화되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무의식에게 맡겨 두었던 '본인의 주체성'을 도로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기 위해, '내부의 대부분'을 무의식이라는 '자동행동장치'에 맡겨 두었다. 그러고서는 고작 하는 일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는 것이다. 주체성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감각을 새로이 느껴보는 것이다. 가령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감촉이라거나, 걷는다면 발바닥이 바닥에 붙었다가 떼어지는 감촉을 완전하게 느껴보는 것이다. 자신의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콧등의 감각, 새끼손톱의 느낌 등 우리가 간과하던 작은 감각기관을 모두 열어 놓는 것이다. 후각, 미각, 시각, 촉각, 청각에서 우리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아주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퀀텀라이프'의 저자인 '하킴 올루세이'는 마약중독 갱스터에서 천재 물리학자로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 그의 삶을 바꾼 아주 결정적인 습관은 '세기'다. 그는 자신이 불안하거나 다른 걱정이 생길 때면 주변을 센다고 했다. 보도블록의 숫자라던지, 주변의 나뭇가지 숫자. 벽돌의 갯수, 책장 속 책의 권수를 그냥 세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숫자를 세고 있으면 걱정과 불안은 사라진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능동적인 활동'을 할 때, 디폴트값에서 멀어진다. 고로 능동적인 경험을 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호흡하는 순간과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전등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잡음, 새소리, 바람소리, 가벼운 바람의 감촉, 스스로 만들어내는 목소리 등.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알아차리고 들여다 보자. 그러면 어떤 것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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