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영어 문법 2 - 주민혜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주민혜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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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한마리가 있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두들긴다. 'qwdf' 임의로 두들긴 알파벳의 조합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알파벳 조합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your', 'is', 'name', 'what'처럼 말이다. 이처럼 의미가 있는 알파벳의 조합을 '단어'라고 한다. 이 최소 단위의 알파벳 조합은 각기 의미가 다르다. 'your'가 하는 역할은 그 소유주를 밝히는 역할이다. name은 그것의 '이름'이다. 즉, 알파벳이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하는 역할이 달라진다. 동작을 가르키면 '동사', 상태를 설명하면 '형용사', 이름을 가르키면 '명사'다. 이렇게 단어가 어떤 역할은 다르다. 단어가 하는 역할로 분류한 것이 '품사'라고 한다. 영어에는 8개의 품사가 있다고 배운다.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그리고 '부사, 전치사, 감탄사, 접속사'가 있다. 눈치를 챘겠지만 모두 '사'로 끝난다. 또한 나열하는 과정에서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사용했다. 접속사 '앞'에 있던,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는 축구로 치면 '선수'에 속한다. '그리고' 뒤에 있는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 부사'는 선수로 뛰지 않는다. 다만 축구 경기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즉, 치어리더나 심판, 관중 같은 걸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품사'는 '사람'이다. 개중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만 축구선수다. 이들은 팀을 이뤄 경기를 뛴다. 이렇게 특정 단어들이 팀을 이루면 그것을 '문장'이라고 한다.

단어를 만들다보면 단어의 갯수는 끝도 없어진다. 고로 우리는 이미 있는 단어를 재활용한다. 예를들어 '아름다움'을 가르키는 beauty는 명사다. 이 명사의 뒤에 ful이라는 접미사를 붙어 beautiful이라는 형용사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다시 여기에 ly라는 접미사를 붙어 beuatifully라는 부사로 재활용한다. 이처럼 원래 단어에 뒤나 앞에 무언가를 붙여서 새로운 품사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작점이 '동사'라면 우리는 이것을 '준동사'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work라는 동사가 있다고 해보자. 이것은 '일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이 뒤에 ing 나 ed를 붙이면 형용사가 된다. 'working 일하는', ' worked 일이 되어진', 처럼 말이다. 동사의 뒤를 붙여 형용사로 바꾼 것을 '분사'라고 부른다. 앞에 to를 붙이기도 한다. to work처럼 앞에 to를 붙이면, '일하는 것, 일할, 일하기 위해서', 처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정해지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처럼 정해지지 않은 to로 시작하는 단어를 to부정사라고한다. 정해재지 않아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ing를 붙여 'working 일하는 것' 이렇게 명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동명사다. 다시말해, 동명사, 분사, to 부정사, 이 셋을 통틀어 준동사라고 부르는데, 영어는 문장의 순서가 어떻게 배열되느냐, 문장이 어떻게 앞과 뒤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되는냐, 극서으로 품사와 성분을 구분해낸다.

축구 팀에는 반드시 골키퍼가 한 명 들어간다. 한 명도 없을 수도 없지만, 두 명이 나올 수도 없다. 축구장에는 '명사, 형용사, 대명사, 동사'가 들어간다. 이 선수들은 간혹 정해지기도 했지만 다른 포지션에 들어 갈 수도 있다. 다만 동사는 무조건 동사의 위치에만 들어간다. 모든 축구팀에서 한 명의 역할을 하는 '골키퍼'를 '동사'라고 해보자.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에서 뛰지 않는다. 무조건 골키퍼 포지션에서 뛴다. 그래서 골키퍼가 들어갈 자리는 '골키퍼 자리'다. 모든 선수는 공격수, 수비수 등의 포지션에 배치 받는다. 명사는 공격수, 형용사는 수비수 이런식이다. 이처럼 공격수, 수비수처럼 팀에는 '포지션'이 있다. 이 자리이름을 '성분'이라고 부른다. 문장의 성분에는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가 있다. 눈치를 챘겠지만, 모두 '어'로 끝이 난다. 간혹 품사와 성분을 헷갈리는 경우가 있지만 품사는 '사'로 끝나고, 성분은 '어'로 끝난다. 이제 의문이 있다. 어째서 다른 품사는 모두 '사'로 끝나는데, '동사'는 '사'로 끝날까. 이유는 이렇다. 동사의 자리에는 무조건 '동사'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간혹 축구 해설 위원들은 '골키퍼'를 '골키퍼'라고 부른다. 대체로 다른 선수들은 이름을 불러주는 반면, 골키퍼는 '골키퍼'라고 부른다. 고로 골키퍼의 자리는 골키퍼가 들어가는 것처럼 동사의 자리는 동사가 들어간다. 지금까지 축구를 예로 영어 문법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문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말에는 '조사'라는 것이 있다. 흔히 말하는 '은, 는, 이, 가, 을, 를'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단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해준다. 쉽게 말해서 '철수'라고 하는 명사 뒤에 '는'이라는 조사를 붙이면 '주어'라는 의미다. '영희'라는 명사에 '을'이라는 조사를 붙이면 '목적어'라는 의미다. 이런 조사의 역할 덕분에 우리는 문장을 뒤죽 박죽 섞어도 의미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다.

"영희는 철수를 사랑한다."

"철수를 영희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철수는 영희를"

"사랑한다. 영희를 철수는"

심지어 우리말은 '조사' 덕분에 더 다양한 어감을 조정할 수 있는 이점을 얻게 됐다. 다만 영어에는 '조사'가 없다. 즉 어떤 단어가 어떤 성분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저 '어느 위치'에 있는지로 파악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어는 문장을 뒤죽 박죽 섞으면 의미가 바뀐다.

"영희 loves 철수"

"철수 loves 영희"

"love 철수 영희"

"love 영희 철수"

고로 영어는 문장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쉽게 말해 우리말의 문법에서는 '조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이 명사 뒤에 어떤 조사를 붙이는지 그 구분도 굉장히 다양해진다. 명사가 '할아버지'라면 여기에는 '께서'라는 조사가 붙는다. 반면 영어의 문법은 조사에서 자유로워진다. 그저 어떻게 단어를 배열하는지가 훨씬 중요해진다. 이렇게 영어 단어를 어떤 순서로 배열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문법'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your', 'is', 'name', 'what'라는 단어는 그저 나열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이것이 문법 구성에 맞는 순서를 배열하면 비로소 '문장'이 된다. "What is your name?"

이렇게 완전한 자리배치가 완성된 단어 배열을 '문장'이라고 부른다. 문장은 두 단어 이상이 붙어 문장의 구성을 이루는 것이다. 즉, 거기에는 문장의 위치만으로 '조사'와 같은 '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최소단위로 형태를 이룬 문장을 '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단어가 둘 이상이 배열되어 있으면서 의미는 있지만 '형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이라고 부르나.

"Oh my god!"

우리는 이렇게 구성된 영어 단어를 만난다. 이것은 분명 문장은 아니다. 다만 둘 이상의 단어가 붙어 있고 의미가 있다. 이런 문장의 조합을 '구'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언어는 '구'와 '절'로 이뤄져 있다. 이것을 '구절'이라 한다. 구와 절은 번걸아가며 최소단위의 의미를 전달하고 그것이 일관성 있는 하나의 소주제를 갖게 되면 그것은 '문단'이 된다. 문단은 대체로 작은 하나의 단위를 갖고 있다. 수능에서 나오는 짧은 지문들은 대게 '도입, 본론, 결론'처럼 세단계 문단으로 나눠진다.

수능에 나오는 지문의 경우에는 꽤 짜임새 있는 방식으로 여러 형식의 글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대체로 18번 문제의 경우는 '편지글', 19번 문제의 경우, '수필'이나 '일기문' 그 밖에 주장문, 설명문, 알림문, 통계문 등이 나온다. 글을 많이 읽다보면 대체적으로 이런 글의 종류에 따라 중요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글'의 경우에는 목적없이 쓰는 경우는 없다. 고로 편지글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편지를 썼는지를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일기문의 경우에는 '필자'의 감정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주장문의 경우에는 필자가 주장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반드시 있다. 주장문은 '팩트'가 아니라, '의견'이 등러간다. 설명문은 독자가 모를만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한다. 고로 대부분 어려운 명사를 도입에 던지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방식이다. 대체로 첫문장을 접하고 좌절하는 경우는 그것의 도입이 당연히 모를만한 단어로 시작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통계문은 당연히 도표를 보고 비교한다. 알림글은 정보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지를 살핀다. 여기서 도표와 알림과 같은 글들은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묻는다.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나오는 영어 지문은 대체로 '좋지 못한 글'이 많다. 문법이 어그러져 있고,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 쉽게 Think라는 단어로 '생각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suppose'라는 가정하다 혹은 'deliberate' 혹은 'consider'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이 단어가 더 세밀한 어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밖에도 불필요하게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집어넣는다. 뿐만아니라 괜스레 수동태 문장이 많거나, 간혹 아예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고로 모든 문장을 정확하게 문법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대체로 '문해력'은 언어를 통해 말과 글의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해내는 능력을 길러낸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하게 다듬어진 글만 만나고 사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논문'과 같은 글은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고로 영어에서 중요한 것은 '번역'하는 능력이 아니라, 글을 읽고 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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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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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빛나며, 덫없는... 모두가 그렇다. 별처럼 빛나는 시한부 삶을 산다. 그것은 타버리며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빛은 본질을 두고 수 억 광 년을 날아온다. 날아 온 빛은 본질이 사라진 순간에도 여전히 빛난다. 그것이 여기에 닿아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에너지가 되는지 본질은 알지 못하지만 역시 그것은 이곳에 심어져 새로운 싹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 빛은 생각을 닮았다. 찰라의 순간만 스쳐 지나간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잠시 닿고 사라질 뿐이다. 그 찰라의 순간을 위해, 빛은 수억 년의 시간과 수억 광년의 과정이 필요하다. 짧은 만남을 하고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빛과의 만남, 생각과 감정이 전달되는 과정은 그래서 아주 고귀하다. 별빛은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나 무수한 공간과 시간을 얼마나 홀로 내달렸을까. 그러니 여기 지금 이순간, 그것들을 허투루 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이 일회성이다. 빛처럼 멀고 길다. 시공간을 달려오며 스치듯 지나간다. 다가오는 인연과 운명, 시간도 그렇다.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할까. 몇 번의 오전 10시를 맞이할 것이며, 몇 번의 월요병을 앓게 될까. 모든 것은 유한하다. 유한한 것은 희귀하다. 희귀한 것은 필요로 할 때, 가치 높아진다. 고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면 모든 것은 가치 있어진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모든 것은 고귀해진다.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80만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빛을 본 이후로 이 유한한 카운타다운은 시작된다.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희귀해진다. 채워짐 없이 매순간 소비해 버리는 이 유한한 가치는 매순간이 더 고귀해지는 까닭이다. 유아기를 지나고 청년기를 지나며 의식없이, 그것을 소진해 버리지만 그것을 후회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의식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소진하고 있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어쨌건 매순간은 소진으로 전속력을 달리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 대부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살있는 것 같은데, 살고 있지 않다. 인생 80만 시간중 30만 시간은 자는데 사용하고 눈 깜빡거리는데에도 9년이나 사용한다. 평생의 40퍼센트를 눈감고 있는데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나. 나머지 60퍼센트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인지하지 못하는 매순간에도 별빛은 끝없이 날아온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어떤 별은 죽어 버렸을 것이고 어떤 별은 새로 태어났을 것이다. 어둠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빛도 있고, 밝히기 위해 발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작고 하찮아서 신경에 쓰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타버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순간에 그것은 전부 소멸 중이다. 더 태울수록 빨리 소멸하고, 열정적으로 탈수록 수멸한다. 소멸하는 순간도 마저 소멸 중이다. 최선의 타오름으로 소멸해 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운으로 잠시 남았다가, 그것마저 소멸해버린다. 모두는 시간이라는 진통제를 치사량까지 투여 받 소멸해 버리는 죽음을 향한 여정 중이다. 책장에는 이미 소멸해버린 별의 여운들이 있다. 그것이 타버려 남겨진 흔적이 몇 백 페이지 위에 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정된 순간을 살고 한정된 공간을 살며 소멸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소멸해버린다.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허망함은 잠시남아 머물다가, 그마저 소멸해 버릴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으로 앉고 사는 듯 하지만, 그것을 몇 번 떠올려 보지 못하고 죽는다. 특히 골똘하게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경험한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한줌의 재가 되어 흔적도차 사라진다. 그것은 '빛'과 같이 멈추지 못하고 잡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가. 얼마 전, '사카모토 유이치'라는 인물이 별이 됐다. 함께 시대를 같이한 인물 중 누군가의 생이 마감됐을 때, 그가 곧 '역사'가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어린시절, '정주영 회장'이 생을 마감했을 때,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끝났다고 생각하셨다. 8년 뒤에는 마이클잭슨이 죽었고, 다시 2년 뒤에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지금은 '죽은 후'가 더 익숙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생과 함께 살고 있을 때, 나는 일상에 치여 살다가 불현듯 그 죽음을 봤다. 어쩐지 알고 지냈던 누군가의 죽음 같아, 믿겨지지 않으면서 때로는 그 본체를 떠난 빛이 시간과 공간에 남겨 놓는 흔적들로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이 생각을 읽으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채, 빛만 가지고 수 십 억 광년을 날아온 빛의 흔적들처럼 영롱하게 빛나지만 만질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저 그것은 그것으로 완전하게 존재하며 아주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서 어떤 것은 사라져가고 있고, 어떤 것은 만들어가고 있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그것이 어두운 어딘가를 얼마간 빛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은 단 한번도 완전히 어두워진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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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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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꽃이 피는 시기가 있으면 지는 시기도 있다. 지는 시기가 있으면 피는 시기도 있다. 지는 시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피는 시기만 있는 것도 아니며 꽃이 꽃이 아닌 시기도 있고, 꽃이 꽃인 시기도 있다. 그것이 그것이 되는 시기는 분명히 있다. 고로 서두르거나 조급해 할 것 없다. 가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올 때가 있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한없이 필 것만 같고, 지는 시기에는 한없이 질 것만 같다. 꽃이 꽃인 시기에는 한없이 꽃일 것 같고 꽃이 꽃이 아닌 시기엔 한없이 아닐 것 같다. 다만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이 보이다고 지금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수 억 광년을 날아온 빛의 흔적이며 그것이 보인다고 지금 존재하는지는 알 수는 없다. 반대로 어떤 별은 수 억 년 전에 만들어져 빛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지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빛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환영일 수 있다. 우주가 한 점에서 터져 나올 때, 사방으로 그 파편이 튕겨 나갔으니 우주의 모양은 '구'를 닮았다. 그것은 빙글 빙글 돌아가며 시작과 끝점을 같도록 하고 위와 아래가 없으며, 옆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도 둥글기 때문에 이는 우주를 닮았다. 둥근 것은 위도 아래도 없으며 옆도 없다. 어느 쪽으로 굴려도 그 모양은 같고 뒤집어도 세워도 그것은 그 모양이다. 지구의 곡률이 1도당 111.32킬로다. 그것은 360도로 나누어 조금씩 아래로 휘어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곧'고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14.58km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 지평선이 시선의 끝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의 끝은 아니며, 바라보지 못한 세상의 범위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그것 공간을 더 넓게 보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바라보고 싶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걸을 뿐이다.

고로 서둘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 그저 한 걸음씩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라. 한걸음 뗄 때마다, 지평선 끝도 한 걸음만큼 넓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넓이는 몇 걸음을 떼었는지로 결정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면 반대로 과거는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내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사라지고 나타날 뿐이다. 모두 환영 같은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과거도 미래도 사라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으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창조의 시간은 오로지 지금, 여기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존재의 두려움을 겪고 존재하는 것에 허상의 불안함을 갖지마라.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무소처럼 자신의 길을 걸어라. 묵묵하게 걸어가면 그것은 비록 잘못된 길이라도 언젠가 제자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우주가 둥글고 지구가 둥글기에 거기에서는 잘못된 방향도 잘못된 길도 없다. 방위가 서로 같고 상하가 서로 같다. 고로 자신이 믿는 방향을 향해 묵묵히 걸으라.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원망하지말고 세상이 나를 잘못 알아줘도 탓하지 마라. 그저 가기로 했다면 생각은 자리에 내려놓고 그 자리를 벗어나라.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원망하기 전에 내실보다 더 알려졌음을 두려워 해라.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본능'이며 '흉내'가 아니라 '본질'이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확인하려면 그저 둥근 달을 바라보라. 그것이 반달이 되었다고 반이 사라졌는가. 그것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존재하지 않는가. 차지 않은 달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일 뿐이다. 지워진 달의 반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최선을 다하라. 어느 순간 그것이 가득차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둥글다는 증명이다. 고로 지금 바라는 무언가가 무슨 모양을 하고 있는지 걱정하지마라. 그것이 반달의 모양이든, 하현의 모양이든, 초승이나, 심지어 삭의 모양이든 그저 그것의 원형이 머리 위에 떠있음을 기억하고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채워지는데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고 믿어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하는 일을 하라. 의문도 품지말고 좌절도 하지말고 열심히 하지말고 그저 숨 쉬듯이 해라. 특별하게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하고 있는 중에는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도록 해라. 세상 위대한 일은 모두 '귀찮고 하찮고 피찮고 시시찮다. 그것을 꾸준하게 해내는 것이야 말고 진정한 해냄이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없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좋아질 뿐이다. 그저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라. 현재와 지금에만 몰입하라. 그 밖에 모든 것은 환영이고 거짓이고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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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공부 혁명 -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교실은 어떻게 배우는가?
호시 도모히로 지음, 정현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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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희망자에게 '키즈폰'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2년 약정 단말기값과 월 이용 요금 8,800원도 모두 무료다. 교육청 지원이다. 이제는 스마트기기가 생활로 들어 오더니, 초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 당시, 이런 온라인 교육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현상이 반드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언택트 비대면 교육은 '대안'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체'는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온라인 교육은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는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완하거나 추가 옵션을 제공하는 정도까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교육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도 안된다고 본다. 즉,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 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언택트 교육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문제점은 여럿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배우는 것 또한 교육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며 '학업' 이외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발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타인의 실수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며 반면교사를 삼거나 동기부여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이 언택트 교육에서는 사라진다. 우리는 전화를 개발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항상 '만남'을 통해 해결한다. '전화'는 아무리 '화상통화'나 VR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어도 '만남'의 대안이 될 뿐, 만남을 '대체' 할 수는 없다.

언택트 교육의 두 번 째 문제는 집중력 저하다. 스마트폰 기기가 무서운 것은 그 속에 있는 컨텐츠가 '몽땅' 무료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컨텐츠들은 모두 무료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 수익률을 만들어 내는 거대 공룡이 됐다. 그들이 '무료'로 배포해도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케팅'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는 생존전력 상, 우리의 집중력은 너무 쉽게 저하된다.

세번째는 기술적 장벽이다. 기술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화상교육을 한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최신식 아이패드를 도구로 삼고, 누군가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학습하게 된다. 공간에서 학습하는 이들에게는 '부모소득'이 '자리 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는 '부모소득'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일부 학생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업에 참관할 있고 적절한 학습장비가 없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또한 주변 환경적 영향도 크다. 집 안 사정, 개인적인 문제 또한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흔히 '사교육 시장'은 '교육'보다는 '보육'의 의미가 훨씬 크다. 부모가 6시에 퇴근하는 사회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이 1시인 것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축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는 '뺑뺑이'라는 용어를 익숙히 알고 있다. 자녀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때로는 '시간'이다.

그러나 온라인 교육은 꾸준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앞서 말한 '대안'이다. 모두가 같은 교육 여건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히 언택트 교육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다. 교육의 목적이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를 직, 간접적으로 겪고 그것을 맥락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간접 경험을 통해 미리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인성과 관계 형성을 배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학습은 '국영수'를 대단한 온라인 속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로 '명문대 합격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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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수학 1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생강 시리즈
김민재 외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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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선수임에도 수영장에서 훈련했다. 수영장 가운데서 제자리 달리기를 하거나 명상과 같은 정신 수련도 했다. 뭍에서 공을 차고 운동장을 달려야하는 선수가 '물'에서 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전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기초체력을 위해 해야하는 훈련은 다양하다. 그 향상의 좋은 예가 수영이다. 물속에 들어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 행위도 축구 실력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다만 수영과 명상은 많은 스포츠 선수가 즐겨하는 트레이닝 방식이다. 실전과 연관이 없음에도 이것들은 체력, 정신력, 지구력, 근력, 유연성을 개선한다. 자칫 의미 없는 일 처럼 느껴지는 이 훈련이 일류를 만드는 버팀목이 됐을지 모른다. 박찬호 선수는 일상 생활 중 '계단'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계단 밟고 오르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졌다. 고로 항상 실생활에서 계단을 이용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야구선수의 구속력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고 묻느다면 그 또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범인이 범접하지 못할 등급에 도달한 운동선수들은 '기초체력'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훈련법이 수학과 무슨 관련이 있나.이유는 이렇다. 다수가 '수학'이라는 학문에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다. 단순히 '덧셈과 뺄셈'만 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안되기에 전혀 필요 없다는 논리다. 컴퓨터와 계산기가 모두 해결해 주는 시대 '인간'의 수학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학문이라며 '수학'을 경이시 한다. 수학은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목적일 뿐이고 중요성과 이유도 모두 그것이 전부라는 이유다. 그러나 진정 수학이 필요한 이유는 직접 활용도를 높이기 때문이 아니다. '호날두' 선수가 수영실력을 위해 수영장에서 훈련을 한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컴퓨터가 대부분의 계산을 처리하고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수학을 활용하지 않음에도 수학을 공부는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문제 해결 능력. 수학은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문제 해결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이 능력은 일상생활과 직업에서도 유용하다. 논리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갖는다. 쉽게 말해 논리는 일관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가령 기상캐스터는 날씨가 궁금한 이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고기압'과 '저기압' 등을 주절주절 말한다. 예측할 날씨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어떤 논리의 근거도 없이 '내일은 비가 옵니다. 제 느낌은 맞습니다. 제 느낌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신뢰할 사람은 없다. 수학은 문제와 정답 사이에 무수한 등호가 존재하고 논리적으로 앞과 뒤가 다르지 않다는 여러 단계를 거쳐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결국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논리는 다수에게 설득력을 얻는 방법이다. 과거에는'사람'을 신뢰했다. '제사장'이라던지, 왕, 귀족의 말이 권력이었다. 다만 현대 사회로 이어지면서 '권력'은 다수의 합의에의해 얻어진다. 고로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력이 곧 권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식이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그 논리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정확한 풀이식은 오류를 줄여주고 생각을 조직화하게 한다. 현대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은 이렇다. 우리는 '이력서'로 사람을 판단하고, 제안서로 사업성을 판단하며, 계약서로 서로의 약속을 보장 받는다.

둘째는 비판적 사고다. 수학은 오류와 모순을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도록 한다. 또한 과정은 사실과 가능성을 구분케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의심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추상적 개념과 이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것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여 다룰 수 있도록 한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화하고 핵심 개념을 이해하도록 한다. '복소수'라는 개념을 보면 흥미롭다. 복소수는 '파동함수, 특히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종종 복소수로 표현되는데, 입자의 위치나 운동상태 등을 확률적으로 기술하도록 돕는다. 복소수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개념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만 이것은 양자역학의 간섭과 중첩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이다. 서로 다른 파동함수들이 중첩되어 간섭현상을 일으킬 때, 복수수의 덧셈과 곱셈 규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명료'하면서 현상은 모호한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양자역학을 '글'로 보게된다면 그것을 기술하는 현상은 직관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문자로 이해하기에, 이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철학'의 개념에 속할 것 처럼 보여진다. 양자역학이 '철학'의 개념이었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직관적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데는 힘들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수학적으로 이런 모호한 현상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슈뢰딩거 방정식이나 행렬역학, 힐베르트 공간 등과 같은 수학 개념과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설명된다. 이는 현상을 이해하는데는 애를 먹지만 실험결과와 수학적 논리는 매우 잘 일치하며 아주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고로 수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같은 현상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간단 명료하게 정의하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고로 우리는 양자역학이라는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해석하여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 온 이것은 비로소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됐다. 이 절차로 우리는 반도체와 트랜지스터를 이용하고, 양자역학의 자극된 방출을 활용하여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MRI 또한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이다. 이처럼 우리 실생활에서 그것을 기술로서 사용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단계는 '수학'이다. 수학은 복잡한 현상을 '숫자'라는 명료하고 객관적인 도구로 쉽고 간단하게 다루게 돕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양자역학 만큼이나 명료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다루게 하는데, 수학을 통한 기초체력을 연습하는 것이 어째서 중요하지 않은가.

* 본 도서는 '만화'로 이뤄져 있다. 다양한 개념을 쉽고 재밌게 이해 할 수 있게 구성 되어 있기에, 다가 올 수험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하길 권장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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