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잘되는 집들의 비밀 - 부와 운을 부르는 공간과 삶에 관한 이야기
정희숙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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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왜 정리정돈을 잘하는가. 그들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이유는 '버릇' 때문이다. 그들은 '정리정돈'을 잘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왜 그들은 그런 버릇이 생겼는가. 대부분의 '부자'는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업'을 하거나 사람이나 사물을 관리하는 '관리업'을 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관리'다. 그들은 '관리'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정리정돈'이다. 필요없는 물건을 쌓아 두는 것은 단순히 '공간활용'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쌓여 있는 물건은 '관리' 받지 못한다. 관리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다른 물건'을 가려 관리 받지 못하게 만든다. 즉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사용하는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손톱깎이를 둔 곳을 잊어 버린다. 한참을 찾다가 이내 다시 구매한다. 고로 집안에는 손톱깎이가 두 개가 된다. 물론 그 가치는 크지 않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릇'이 그렇다는 의미다. 이러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입지 않는 옷'을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를 쌓아둔다. 그것이 버릇이 된다. 너무나 많은 아이템에 둘러 쌓인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즉, 지저분한 아이템에 둘러 쌓여, 자신이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필요한 물건에 대해 즉각적으로 찾아 낼 수 없다. 즉, 물건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진다. 다시말해 아무리 하찮은 지출도 모두 2배가 된다. 공간마저 두 배로 사용한다. 요즘과 같이 집값이 높은 시대에, 잡동사니에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꽤 비싼 공간의 값을 지불하여 쓰레기에 내어주는 꼴이다. 부자들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이유는 그들이 '재고관리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사업은 '재고관리'가 생명이다.

'돈'은 에테르를 닮았다.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구매 순간 '형태'로 존재한다. 무슨 말인가. 10만원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연필이 될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 그 가능성은 '물건'로 굳어져 버린다.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 즉시 '입자'가 되는 '양자역학'을 닮았다. 그렇다. 돈은 가능성이다. 고로 '형태화'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다. 사과를 1만원에 사서 2만원에 판매한다고 해보자. 만약 100개의 사과를 구매할 여력이 되더라도 100개의 사과를 구매하면 안된다. 사과 100개를 구매하는 순간, 그것은 '재고'가 된다. 다시말해, 물건이 된 가능성은 팔리기 전까지 '악성재고'일 뿐이다. 이는 '유동성'에 악이 된다. 돈은 굴러야 커진다. 눈덩이를 닮았다. 구르면 구를수록 덩치를 키운다. 그러나 돈이 물건으로 굳어져 버리면 구르지 못한다. 구르지 못하는 눈덩이는 어떤가. 서서히 녹아버린다. 재고를 쌓는 것은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며 쌓여진 재고는 점차 감가상각에 의해 녹아간다. 소매업종에서 일한 적 있다. 사장은 말했다.

"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 같나요?"

그때 카운터라고 답했다. 카운터는 매장의 얼굴이고 결제을 하는 곳이다.라고 답했다. 사장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진열하는 쪽인가요?"

상품진열은 방법에 따라 판매율은 달라진다. 그러나 사장은 그때도 아니라고 답했다. 사장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창고 입니다."

창고가 가장 중요하다. 재고가 쌓이면 사업은 반드시 망한다. 팔리지 않는 악성재고는 창고에 쌓여 다른 물건을 가린다. 그러면 아무리 히트상품이라 하더라도 빛을 보기 전에 망하게 되어 있다. 창고를 깨끗하게 비우고 잘 관리해야 돈이 돈다. 결국 미니멀리즘은 '소유욕'을 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관리'에 대한 이야기다. 재고관리는 사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다. 최대한 재고를 없애야 한다. 가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물건을 재고처럼 쌓아 놓는다면 반드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느려진다.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부의 성공은 보수적인 접근 뒤에 이뤄진다. 모든 사업은 '관리'라는 목적을 만난다. 맥도날드의 CEO는 버거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CEO는 커피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업종이던 그 상위에는 언제나 '관리'라는 목적을 만난다. 고로 커피장사, 버거장사, 옷장사, 스마트폰 장사 할 것 없이, 모든 일의 하부에는 각자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만 그 상위로 올라 갈수록 재고관리와 사람관리 능력만 남게 된다. 이 가장 상위에는 고로 '철학'이 남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이런 방식으로 성장한 사례다. 고로 '아이템'으로 사업하느냐는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재고관리'에 실패하면 반드시 망한다. 부자들이 정리정돈에 뛰어난 이유는 깔끔한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에 베어 있는 '관리' 습관 때문이다. 그들은 쓰지 않는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고 들인다고 하더라도 얼마후 처분해 버린다. 그들은 가치 있는 물건만 집으로 들인다. 가치있는 물건을 집으로 들이면 그것들은 관리 받는다. 이들에게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현대 중공업은 유조선을 만들어 팔며 성장했다. 그러다 오일쇼크가 터지며 만들어 놓은 유조선이 놀게 되는 경험을 한다. 말그대로 '악성재고'가 된 것이다. 현대는 유조선을 개조하여 '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물건을 싣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대상사의 시초다.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오일뱅크 현대 그룹은 모두 '재고처리'를 효과적으로 하는 과정에 형성된 결과물이다.

삼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은 '쌀'을 팔던 회사다. 그러다 쌀이 재고로 쌓이는 일을 없애기 위해, 직접 정미소를 차렸다. 또한 이 정미소까지 운송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운송업'을 시작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재고처리'를 최우선으로 한다.

예전 해외에서 꽤 성공한 사업가를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당구장을 운영했지만, 당구장 손님들이 매번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는 것을 보고 같은 건물에 중국집도 차렸다. 이어 당구장과 중국집에 정기적으로 '청소업체'를 부르던 일을 처리하고자, '청소업'까지 운영했다. 한때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지탄받던 비즈니스 형태는 사실상 매우 효과적인 '관리능력'인 셈이다. 실제로 이들은 지각하는 법이 없고 어지르는 법이 없다. 시간관리, 자기관리, 재고관리 등 '관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왜 정리정돈을 잘하는가. 그것은 정리정돈이 결국은 '관리'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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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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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장점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겪어보는 것이다. 2006년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소설을 읽었다. 책은 인식의 변화를 줬다. 주인공은 '살안자'의 동생이다.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입장이다. 게다가 '살인'이라면 어떤 변명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가 아니던가. 다만, 선과 악은 그렇게 칼로 무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악마'라기 보다 매우 인간적이었다. 느낀바는 이렇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 입장을 알 수 없다.'

사람은 보는 만큼 성장한다. 조선 시대의 누군가가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있더라도 '화성이주'를 생각해 낼 수는 없다. 결코 알지 못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확장할 뿐이다. 고로 사람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매우 각별한 경험이다.

2022년 한해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585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585건의 사건이다. 이는 '피해자'뿐만아니라 '가해자'도 만들어 낸다. 즉, 한해 1000명이 넘는 살인 피해자와 살인 가해자가 만들어진다. 성폭력은 3만건, 그러니까, 6만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매녀 만들어진다. 절도는 27만 건이다. 이또한 50만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들어진다. 고로 그 만큼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1922년 소련 최고 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 백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

숫자는 비극의 크기를 함시하지만 그것은 깊이를 말하진 못한다.이 비극에는 감정이라는 깊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선을 행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에도 여지는 존재한다. 비록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지라도 각자 자신만의 이유를 가진다. 고로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그렇다. 최초에는 사건을 다룬다. 다음에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이후부터 명확한 '선과 악'이 등장한다. 명확하게 '나쁜 사람'과 명확하게 '좋은 사람'이 나눠 등장한다. 다만, 진행하면서 작가는 각각의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모든 인물의 과거나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그 인물이 행동한 이유의 인과관계가 펼쳐 보여진다. 비로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한다. 물론 여기서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는 것은 '상황상'을 말한다. 모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선과 악은 존재한다. 다만 이것은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개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선한 인물도 수없는 살상을 해치는 악인이다. 농장주는 어떤 면에서 '선하고 근면한 인물'로 보여지지만, '환경' 혹은 '자연'의 측면에서 사악한 인물로 보여진다.

고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처럼 다면적인 것이 인간이다. 고로 현상이나 상황을 그려내는 것보다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두 그럴싸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이를 알려준다. '악의 평범성'은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공무원일 뿐이다. 다만 그 결과는 '악'이 된다. 고로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한나 아렌트는 주장했다. 이는 악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 제시된 개념이지만 더 깊게 따지고 보자면, 본래 '악'은 외부적으로만 보여질 뿐이다.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민의 29.8%가 전과자다. 다시 말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전과자다. 현재 대한민국 교도소 수감자수는 5만명이다. 다시말해, 지금 이순간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이다. '전과자'를 나쁜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대한민국에 선한 인물은 셋 중 둘 뿐이다. 수감자를 1000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1000명 중 한명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범법 혹은 범죄와 '악'은 같지 않다.

모든 '악'을 '악'으로 정의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악'과 '선'이 공존한다. 우리는 내면을 보지 못하기에 그의 겉모습으로 '악'과 '선'을 구분한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그 내면을 보지 못한다. 그저 가늠하거나 넘겨 짚을 뿐이다. 각자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이느 공간에서 만나게 된 단면끼리 그 역사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를 보더라도 그럴 것이다. 예전 미국의 TV광고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쪽은 우울해 하는 인물이 있고, 한쪽은 스포츠를 관람하고 소리를 지르며 평범한 삶을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대조되어 있었다. 그 광고는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한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스포츠를 관람하고 소리를 지르며 평범한 삶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삶을 떠났다는 이야기었다. 그렇다. 내면은 모른다. 고로 소설의 가장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누군가의 복잡한 내면을 아주 잠시라도 훔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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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수학 3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생강 시리즈
김민재 외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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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우리의 앞에 마법의 상자가 하나 있다. 이 상자는 꽤 특혈한 상자인데, 우리가 이 상자 안에 무언가를 넣으면 그 상자는 그것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버린다. 예를들어 상자 안에 사과를 넣으면, 상자는 그것을 바나나로 바꿔 버린다. 그것에 규칙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마법의 상자다. 다만 그것에 규칙이 주어지면 그것은 '함수'라는 수학 용어가 된다.

수학에서 함수는 이 상자와 같다. 우리가 '입력'으로 무언가를 넣으면, 상자는 그것을 '출력'으로 뱉는다. 결국 그 상자는 출력에 따른 결과값을 도출해주는 장치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것을 인연과보(因緣果報)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음에도 결과값이 출력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히 '우주의 규칙'이라 할 수도 있다.

다시 함수로 돌아가보자. 어떤 숫자를 입력하는 '상자'가 있다. 이 상자에 숫자 2를 넣으면 상자는 곧 4를 출력한다. 다시 4를 넣으면 이 숫자는 다시 8을 출력한다. 여기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한다. 넣은 값에 2배를 출력한다는 것이다. 함수는 규칙을 따른다. 그렇다. 함수는 항상 일정한 규칙이나 방법에 따라 작동한다. 그저 마법과 같이 어떤 일이 그저 출력되는 것은 없다. 어느 순간에는 3이 출력되고 어느 순간에는 -2가 출력되고, 다시 어떤 순간에는 20억이 출력되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상자에 몇 번의 값을 입력해보고 대략적인 함수의 규칙을 알아차린다. 함수에서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을 알아내고 입력값에 어떤 출력값이 나오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무한한 가능성의 함수로 시작한다.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환경, 가치관, 교육 이라는 초기 조건이 설정된다. 이는 우리 인생 함수를 형성하는 기본 매개 변수가 된다. 인생에서 변수는 변화를 의미한다. 경험이나 관계 직업, 건강 등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리고 각각의 흔적은 하나의 점이 되어 좌표평면에 그려진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곡선을 만들어낸다. 반면, 상수도 존재한다. 우리의 핵심 가치와 신념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일관성이다. 이것은 우리 인생 함수에 균형을 잡아주고 방향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함수. 이것은 왜 중요한가. 어떤 현상이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분명 존재한다. 가령 물이 끓는다던지, 물이 얼어버린다던지, 그것은 분명 어떤 변화지점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임계점'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는 막연한 자연현상이었지만, 그것의 정확한 수치를 숫자로 알고 있는 순간부터 그것은 무한대로 이용가능한 재료로 변신한다. 원래 '무지'는 공포의 영역을 확산하고, '앎'은 안정의 영역을 확산한다. 이처럼 임계점을 구하는 하나의 과정을 '극한'이라고 한다.

극한에 대해 살펴보자. 마냥 1과 가까운 숫자에 대해 살펴보자. 누군가는 2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1과 가장 가까운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1.5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1과 가장 가까운 수는 아니다. 다시 누군가는 1.1을 말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1.01을 말할 것이다. 이처럼 1과 가까운 숫자를 무한대에 가깝게 생성한다고 해보자. 극한은 우리가 얼마나 1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숫자들은 함수에 넣었을 때, 그 출력값의 변화도 함께 일어난다. 그 값이 얼마나 특정값에 가까워지느냐.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극한'이다. 극한을 사용하면 우리는 변화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다리를 건설할 때, 그 다리가 견딜 수 있는 최대 하중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막연한 공포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를 건너는 것과는 꽤 큰 차이를 만든다. 극한은 숫자를 이용하여 그 값을 계산케 한다. 우리는 유통기한이 적혀 있지 않은 음식을 먹기에 망설여진다. 우리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불분명한 아지랑이일 때, 더 줄어드는 법이며 그것이 적당히 '보임'의 영역으로 존재할 때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결국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혼인일 수도 있고, 직업일 수도 있다. 사업상의 실패일 수도 있고, 출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ㄷ르은 우리 궤적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만든다. 이 전환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 값에 모호한 태도를 가지는 것과 규칙을 파악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함수처럼 인생은 끊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우리의 인생함수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앞서말한대로 '공포'의 영역이 된다. 다만 그 공포는 '일정부분 예측 가능한 공포'다. 무지한 것을 모르는 것과 무지한 것을 아는 것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고로 이런 불확실성은 불확실성을 아는 확실성으로 전환하므로 공포에 대한 공포를 상실케 할 수 있다. 고로 우리는 공포를 아는 영역으로 만들어 그 변화의 공포를 호기심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인생을 흥미진진하고 가치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복잡한 수학은 결국 얽혀 있는 여러가지의 문제 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모두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결국 '문제'를 많이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해결 능력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다. 삶도 공부도 모두 함수를 닮아, 어떤 값을 입력해야 특정값을 얻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떤 값도 도출하지 않으면, 어떤 값도 나오지 않는다. 고로 수학은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하는 학문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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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야 - 나는 중졸 작사·작곡가
오카지마 카나타 지음, 정은희 옮김 / 리틀에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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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는 10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고통 스러울 때는 고통스러울 때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심심할 때는 심심할 때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때의 감정이 오롯한 흔적이 됐을 때, 그 글에서만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고로 자신의 오늘과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 글을 쓰다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시계 바늘이 어느 순간 하나 둘, 맞아가며 완전히 이기적인 글들이 결국은 강력히 이타적인 글들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썼던, 글에 댓글이 달렸다. 힘든 시기에 위로를 받았다는 글이다. 돌이켜 읽어보니, 내가 썼던 흔적은 분명하나, 시간의 탈것을 타고 한참을 벗어난 지금, 나는 그 생각과 감정, 주변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지 오래된 후다.

글 주인도 잊어버린, 주인 없는 글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썼던 지난 5년의 흔적이 광선을 타고 빛의 속도로 뿌려진다. 그것들은 형체없는 클라우드로 두둥실 떠다니다가, 우연하게 누군가의 가슴에 꽂히는 모양이다. 내가 받은 어떤 감동도 주인이 잊어버린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된 발라드를 하나 들었다. 가만히 상념에 젖어든다. 다시 생각해본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과연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 노래를 지은 작곡가와 작사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가. 나에게 적잖은 감동과 위로를 주던 음악의 원주인들은 아마 그들이 남긴 흔적과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정작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만 보더라도 헛웃음이 나질 않던가. 마치 그것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느 귀여운 아이의 일기장인 것 마냥 하지 않던가. 그러고보면 나는 그저 '매순간의 나'로만 존재할 뿐, 지나온 '나'와 마주할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일지 모른다. '나'는 무수하게 바뀌어가는 '감정'이라는 점의 연결선일 뿐이다. 고로 과거의 나의 흔적을 밟고 찾아온 누군가의 '비난'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며, 앞으로 다가올 나의 경로를 걱정하는 누군가의 '걱정'도 이미 '나'의 것은 아니다. 나의 것은 오로지 지금이 이순간 여기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지적한 일이 나에게 울림을 주듯, 누군가의 '비판'에도 배움을 갖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걱정하는 일에도 '깨달음'을 얻듯, 누군가의 '걱정'에도 응원의 힘을 받는다. 진로라는 것은 내가 설정한 방향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돌을 쥐고 어느 방향으로 던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 방향으로 던지면 좋다. 던져서 목표물을 맞혀도 좋고, 맞추지 않아도 좋다. 쥐었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어도 괜찮다. 그 돌을 주어다가 반대 방향으로 던저도 괜찮다. 삶은 그저 내가 설정한 방향으로 진행해 보겠다는 일종의 '놀이'일 뿐이다. 우리는 어제의 내가 던진 지도를 받고 오늘을 움직이며, 내일의 나에게 그 방향을 지도할 뿐이다. 삶은 어제와 오늘 내일이 주고 받는 릴레이 경주일 뿐이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언제나 같지 않으며 그것을 인정한다면 과거의 명령에 복종할 필요가 사라지고, 내일의 나에 얽매일 이유가 사라진다.

고로, 오늘, 지금, 여기의 나에 대한 글을 써라. 그것은 나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길라잡이이며, 누군게에게는 아주 적절한 위로이며, 누군가에게는 충고가 되고 다시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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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있다는 착각 - 성적의 판도를 가르는 뇌 최적화의 기술
대니얼 T. 윌링햄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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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무엇을 위해 진화했는가. 그것을 알면 학습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문자'를 암기하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은 '공간'을 인식하고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진화됐다. 고로 학습을 위해 가장 기피해야 하는 일은 문자를 그저 암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이야기'와 '공간'을 기억하도록 진화됐다. 쉽게 말해, 인간의 기억은 '문자'보다 '이미지'나 '서사'가 중요하다. 우리의 정보 처리 방식은 생존을 위한 필수 장치였다. 쉽게 말해 우리 사피엔스 종은 복잡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억'이라는 장치를 진화 시켰으며 이것은 '사냥, 탐색,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는데 필요했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하기 위한 감각은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기억'이다.

사피엔스는 하나의 개체일 때는 매우 연약하다.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회화'를 이루는 일이다. 고로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전달되는 지식과 경험을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하곤 했다. 이런 서사적인 요서들은 감정적 연결을 통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학습에 적용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의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단순히 문자를 암기하는 대신, 정보를 시작적으로 표현하고 스토리텔링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정보를 기존 정보와 결합하게 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연결한다. 실제로 우리는 문학 작품의 한문단을 암기하는 일은 어려워 하면서 '예술 작품' 하나를 기억하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한다. 세계의 지형을 알기 위해서, '문자'가 아니라 '지도'라는 표식에 더 효과적인 도움을 얻는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어떤 학습법이 효과적인지 살펴보자.

첫째, 학습목표를 살핀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체적으로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본질을 놓친다. 가령 어떤 누군가가 '땅을 파세요.'라는 지시를 했다고 해보자. 왜 그 일을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업무능력과 효율은 매우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서 수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비탈길을 잘 이용할 것이고 어떤 경로로 땅을 파야하는지, 어떤 깊이로 땅을 파야하는지 생각하며 일을 진행한다. 다만 그저 지시에 의해 '땅을 파는 이들'은 막연한 목표에 회의감을 갖게 된다. 고로 '목표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예를 들자면 '미적분'을 예로 들어보자. 단순히 공식을 외우고 거기에 숫자를 넣어서 그것을 풀어내는 이들과, 차후 로켓 공학에서 로켓의 역학, 짧은 거리로 자동차의 속력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수학적인 접근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의미로 '미적분'을 접근하는 이들은 완전히 다른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둘째, 마인드맵을 활용한다. 마인드맵이란 하나의 거대 뿌리에서 시작해서 가지를 치며 세부정보로 연결되는 일을 만한다. 이런 마인드맵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을 살펴야 한다. 전체의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묶을 수 있는 커다란 뼈대는 어디에 있나. 바로 '목차'에 있다. 즉, 공부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목차'를 알아야만 한다.

'책의 목차'를 살피면, 목차에는 커다란 대주제 1, 2, 3 으로 나눠져 있다. 교과서를 집필한 필자는 총 세 단계의 절차에 따라 커다란 주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주제 하위에는 각각마다 1, 2,3의 중간 주제가 있다. 각각의 주제에 다른 주제가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각각마다 1, 2, 3이라는 세부 제목으로 나눠진다. 이 세부 제목으로 나눠지면, 각 제목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그것을 살핀다.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서 커다란 마인드맵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아~ 이런 식으로 각각의 주제들이 연결되는구나."

하나의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의 그림이 완전하게 파악되면, 교과서를 소설책 읽듯, 정독해 나가면 된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이해된다. 인간의 기억은 이렇게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진화는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사회화'의 결과물이다. 고로 우리는 받아들이는 일만 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하는 일이다. 고로 인풋보다 아웃풋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세번째 요소인 '가르치기'가 필요하다.

셋째, 가르친다. 모든 학습 방법 중 가장 확실한 학습방법은 '가르치기'다.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사피엔스는 자신이 경험한 일과 알고 있는 정보를 섞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인간의 진화는 남에게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진화해 온 것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회는 대체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이'보다는 '도움을 주는 이'를 필요로 한다. 고로 더 많은 정보를 세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들은 사회의 필요 구성원으로 인정되어 꼭 생존에 유리했다. 고로 우리는 남을 잘 가르치도록 진화했으며 남을 잘 가르칠수록 생존 확률이 높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의 학습능력을 길러왔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공부 방법은 '시간'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허튼 공부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무식하게 진득하면 결국은 이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언어'가 증명한다. 우리의 기억에 모국어를 익히기 위해 '치열하게 학습'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일정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특정 환경에 노출되면 저절로 언어가 익혀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거기에 시간을 쏟는 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습관이 필요하다. 첫째,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계를 멀리한다. 둘 째, 매일 같은 양을 습관화하여 학습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계는 우리의 집중력을 앗아가는 괴물과 같다. 이는 세계적인 '마케터'들의 사냥터이다. 넷플릭스의 최대 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들은 '사람들의 수면'을 최대의 적으로 꼽았다. 즉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시간을 앗아 광고를 노출할수록 그들은 꽤 성공적인 사업 이익을 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이런 모든 것들은 현재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 있다. 어떻게 우리의 돈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으며 세계적인 수익을 얻어내는 것일까. 그들은 '노출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고로 우리는 거기에 항상 노예처럼 복종할 수 바에 없게 된다. 두 번째의 습관화는 말할 것 없다. 우리의 대부분은 시험기간에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을 공부하면 최선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진다. 다만 시험기간 하루 10시간보다 매일 아침, 저녁 30분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학습에 투자하는 결과를 나타낸다. 매일 아침과 저녁 30분은 꽤 긴 시간은 아니다. 고로 이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실패에 대한 심리적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다만 매일 10시간씩,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를 하게 되면, '열심히'했다는 과정의 취해, 심리적 데미지를 입게 된다. 고로 적은양을 꾸준히 하는 습관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은 역시나 환경과 습관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아무리 방법을 찾아 헤매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앉아서, 얼마나 했는지에 대한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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