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
귀도 토넬리 지음, 김정훈 옮김, 남순건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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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당신을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

신은 당신을 만들기 위해 '진공' 상태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진공' 상태'란 가득찬 상태다. 그게 무슨 말일까. '진공상태'는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다. 흔히 '비어있는 상태' 혹은 '무'의 상태로 알기 쉽지만 진공은 가상의 입자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상태다. 쉽게 말해 양전자와 음전자가 끊임없이 생기고 상쇄하는 상태다. 이를 '양자요동'이라 한다.

수 많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생겨나고 서로를 소멸시키며 0으로 반환하는 상태다. 평온하고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들어지고 서로 소멸하며 요동치는 역동의 상태다. 0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있다.

0이 최초에 발견될 때, 인도 수학자들은 그것에 '없다'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0이 무한한 양수와 음수의 집합이며 모든 것이 중첩되고 상쇄하는 완전한 상태로 봤다. 다시말해 0은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없음의 반대다.

아무튼 이렇게 진공의 상태가 만들어지면 그 안은 에너지가 '거의 무한'이다. 물질과 반물질이 무한히 생성하고 소멸한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서든 물질이 반물질보다 더 많이 남는 상태가 되는데, 이 미세한 비대칭 때문에, 우주에 물질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고 이 비대칭이 꾸준하게 팽창한 결과가 현재의 우주다.

우주 초기의 환경은 고온과 고압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강력히 잡아당기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것을 핵력이라 한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력으로 결합되면 중수소핵이 된다. 다시 중수소핵 두 개는 결합하여 헬륨핵이 된다. 이렇게 최초의 원자가 만들어지는데는 3분의 시간만이 걸렸다. 다만 이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에하나 이 과정이 10분 간만 지속됐더라도, 거의 모든 수소는 자유양성자를 소비해 무거운 원자가 되버린다. 그러면 우주상의 모든 수소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수소가 사라지면 '헬륨'이 생성되지 않는다. 헬륨과 수소가 없으면 우주를 밝히는 '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 몇 분, 그 몇 분의 차이로 우리는 기적인 세상을 보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자는 공간을 부유하고 다닌다. 부유하는 원자는 어떻게 될까.

만유인력의 법칙, '모든 물질은 서로 끌어 당긴다. 단, 질량이 작은 물질은 질량이 큰 물질에 끌려간다.'

이 원칙에 따라 떠다니는 원자는 서로 달라붙고 다른 원자를 끌어당긴다.

이렇게 덩어리 된 원자는 다시 공간을 부유하고 다른 원자를 더 끌어 당기며 몸집을 더 키운다. 질량이 커지면 더 큰 중력을 갖게 된다. 더 큰 중력은 더 많은 원자를 끌어 당긴다. 이렇게 뭉쳐진 원자 덩어리가 모여 압력과 열이 생기면 핵융합의 새로운 조건이 탄생한다.

원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조건 아래서 '수소'가 '헬륨'으로, 헬륨이 '탄소'로 바뀌고, 여기에 추가적인 핵융합이 일어나며 산소, 질소, 마그네슘 등으로 점점 더 무거운 원소로 결합된다.

융합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점점 무거운 원자가 되던 덩어리는 결국 더이상 결합할 수 없는 최대치까지 몸집이 커진다. 그 덩어리가 바로 원자 '철'이다. '철'은 합성을 멈추고 안으로만 수축만한다. 그러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폭발해 버리는데, 이것이 '초신성 폭발'이다. '초신성 폭발'은 우주 사방으로 원자를 다시 흩뿌려 버린다. 이렇게 뿌려진 원자가 다시 서로 끌어당기며 질량을 키우고, 다시 철이 되면 폭발하고 사방으로 원자를 뿌린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반복한다.

최초의 핵이 만들어지는데는 고작해봐야 3분이다. 다만 광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까지는 38년의 시간이 걸린다. 다시 첫번째 별이 만들어 지는데는 2억년이 걸린다.

'성서'에서 말하는 '빛이 있으라하여 빛이 있었다.'

처럼 간결하고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분명 엄청난 과정을 통해 우주는 빛을 만들었고 이제 그 빛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조건이 된다.

결국 초신성 폭발이 만들어낸 원자 덩어리는 이렇게 조합되고, 저렇게 조합되며 다양한 물질이 된다. 결국 우리가 '별'에서 왔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 탄생 138억 년 동안 이런 무한한 반복은 꾸준해 왔다. 개중 은하와 별, 행성이 만들어진다. 우리 은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은하에는 대략 1천억에서 4천억개의 별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 게다가 은하의 갯수는 대략 2조 개 쯤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에 있는 별의 갯수는 최소 10의 24제곱 정도 된다. 거의 1경 개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엄청난 숫자가 모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운좋게도 이렇게 수많은 환경 중 한 곳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략 10억 년 쯤 전에, '우리은하'의 변두리에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백열 플라즈마의 완전 구체가 형성된다. 이 구체는 자기장을 가지고 있고 25일마다 자전을 하며 표면온도는 6000도에 가깝다. 그 내부 온도는 100만도도 넘는다. 이 엄청난 가스 덩어리는 거대한 중력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원시행성계 성운이 질서정연해지고 투명해진다. 태양과 가까운 쪽은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풍부해진다. 태양 주변을 공전하던 먼지 알갱이들은 질량 때문에 방사선과 태양푸에 쓸려나가지 않고 서로 충돌하며 점점 더 큰 물체로 뭉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뭉쳐진 덩어리가 1km정도가 주변을 끌어 당길 수 있는 질량이 된다. 이는 다시 주변을 끌어 당기고 주변이 끌려오면 더 큰 질량이 되어 더 큰 중력을 갖는다. 이렇게 태양 주변에는 무수한 암석 덩어리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구형 행성'이 된다.

이 행성은 태양에서 세번째로 가까운 궤도에 위치했다. 그리고 1억 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현재 화성의 질량과 같은 행성이 이 행성과 충돌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행성이 충돌하면서 아주 오랜시간 동안 두 천체는 융합된다. 그러나 일부는 튕겨져 나갔고 행성의 중력장에 갇혀 궤도를 돌다가 하나의 구체로 뭉쳐진다. 그것이 원시 지구와 달의 탄생이다.

이 중 네 번째 행성의 위치는 기가 막히다. 이 위치는 우주의 추위를 피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받을 만큼 태양에 가깝게 공전한다. 열 에너지는 너무 가열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물'은 생성된다. 기가막힌 위치 덕분에 생성된 물은 이 행성의 대부분을 덮고 수십억 년동안 유지했.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이곳에서는 꽤 다양한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분자를 통합하고 변형하며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조건이 형성된다.

이산화탄소와 햇빛은 당을 합성하고 산소가 배출되는 이 생화학 반응은 환경을 더 드라마틱하게 바꾸었다. 다시 튕겨져 나간 그 파편의 위치 또한 기가 막히게 좋았다. 달의 위치 덕분에 조류가 생기고, 계절이 생겼다. 달이 지구를 때리는 속도와 각도 또한 엄청난 운이 따랐다. 엄청난 충격은 지구의 회전 속도를 바꾸었다. 지구의 회전은 내부의 대류운동을 시킨다. 고로 철과 니켈로 구성된 액체 금속이 지구 내부에서 열에 의해 대류운동을 하고 그로인해 행성을 감싸는 얇은 자기장이 발생한다.

이는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한다. 이제 원시 지구에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 등의 유기 분자가 풍부하게 존재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일산화탄소와 암모니아, 포름알데히드를 아미노산, 지질, 다당류, 핵산으로 변형시키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이 단백질은 정보를 조직화하여 최초의 DNA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우연은 또다른 우연과 겹치며 엄청난 행운을 만든다. 바로 태양계에서 다섯 번째 암석행성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지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는 더욱 풍부해졌다. 또한 그 지구 밖으로 '목성'이라는 '실패한 별'이 만들어진다. 이 목성은 워낙 거대해서 그 중력이 엄청나다. 이 거대 가스 덩어리는 자신의 질량으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소행성과 혜성의 곡률을 변화시킨다. 실제로 목성은 그 거대한 몸체 때문에 소행성들을 우주 공간으로 밀어냈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35억 년 전, 바닷물의 보호아래, 자외선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최초의 생물학적 구조가 안전하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조류인 단세포 원핵생물에서 다세포로 분화해 간다. 대략 3억년 전에는 지구가 거대한 온실효과로인해 온난화를 겪었다. 이때,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이를 '캄브리아기'라고 한다. 다시 6500만년 전에는 커다란 운석이 주구를 충돌하며 먼지 구름이 형성된다. 이는 지구 기온을 변화시키고 갑작스러운 기온 하락에 공룡 등 다양한 종들이 멸종한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크기가 작은 포유류가 살아남으며 뜻 밖의 기회를 얻는다.

다시 수백 만년 전에는 아프리카에 급격한 기온 차이로 숲을 잃어버린 원숭이가 먹을 것을 찾아 다니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넓어진 들판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넓은 지역을 오랫동안 걷기에는 털이 없는 편이 훨씬 더 유리했다. 털 없는 원숭이는 열을 배출하기 쉬워 더 많이 걸을 수 있었다. 털이 없어진 원숭이가 직립 보행을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은 '도구'를 사용하기 편했다. 또한 소모하는 열량이 높아진 탓에 '육식'을 시작한다. '초식'을 하던 털 없는 원숭이가 '육식'과 '사냥'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그리고 우연히 '불'을 발견하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그 뇌구조는 파격적으로 성장한다.

우연은 우연을 불러 일으키고, 다시 그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일으킬 때, 모든 확률은 제곱으로 커진다. 과연 우리가 '이글'을 볼 수 있었던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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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생물 Ⅰ 1 - EBS 장호 선생님 고등 생강 시리즈
장호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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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몸에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고대 의사하면 우리는 '히포크라테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서기 150년 경, 로마에는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갈레노스가 있었다. 그 또한 서양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17세기까지 사양 의학의 기반을 이루었다. 또한 그의 영향력은 근대까지 지속됐다. 갈레노스의 연구에 따르면 혈액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서 소비되어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에는 4가지의 액체가 있고 이것이 균형을 이루면 건강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이 네가지 액체는 '혈액, 점액, 노란색 담즙, 검은색 담즙이다. 이중 혈액은 당연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것이 생명의 근원이자 건강의 원천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대 의학에서 혈액은 어떻게 사용된다고 봤을까. 그 생각에 따르면 혈액은 각 신체 부위로 옮겨진다. 옮겨지며 영양분과 에너지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러한 혈액이 특정 신체 부위에 도달하면 혈액은 사용되고 사라진다. 말 그대로 소모품이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윌리엄 하비'라는 영국 의사가 현대적 의미의 '혈액순환'을 정의한다. 하비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심장이 혈액을 펌브질하고 있으며 이것이 혈액을 신체 전체로 도달하게 한다고 봤다. 펌프질 된 혈액은 산소와 영양분을 각 신체 부위에 제공하고 이산화탄소와 다른 대사 산물을 수거한다. 이런 매커니즘은 연속적으로 작동되는데 그로써 혈액이 재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재사용 되는 혈액중 일부는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또한 수거된 이산화탄소는 폐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즉, 혈액은 '영양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운반하고 수거하는 매개체라는 의미다.

현대적 의미의 '순환'을 정의했지만 혈액에 대한 연구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1665년에는 혈액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몸속에 있는 혈액을 외부의 혈액으로 공급한다는 발상은 당시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실험 대상은 강아지였다. 먼저 개 한 마리를 죽기 직전까지 피를 흘리게 만든다. 이후 그 개가 과다 출혈로 죽기 직전이 되면 다른 개의 동맥과 개의 정맥을 연결시켜 개가 살아나는지 확인했다. 이 실험으로 개가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을 확인한 의사들은 즉시 인간에게도 같은 실험을 재개한다.

1667년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드니는 15세 소년에게 양의 피를 수혈한다. 이후 그 소년은 실제 회복했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다만 이 수혈 실험은 항상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실험에서 다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고 일부 환자는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혈액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할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 분명히 종류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시기. 오스트리아에서 '란트슈타이너'라는 인물이 태어난다. 그는 수혈 후 심각한 후유증과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겉으로는 똑같이 보이는 피라고 하더라도 그 종류가 달라 서로 호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혈구의 표면에는 적혈구가 서로 달라 붙게 하는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다. 이를 '응집원'이라고 한다.

응집원에는 A응집원과 B응집원이 있는데 각각 A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B응집원만 가진 적혈구, AB를 모두 가진 적혈구, 둘다 없는 적혈구가 있다. 이것을 ABO로 구분한다. 즉 응집원에 따라 다른 혈액이 엉키면 피는 굳어버린다. 다만 분명 같은 혈액형인데도 그 둘을 결합했을 때, 응집이 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왜 그런고하니, 혈액은 단백질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르다. 쉽게 말해 '혈액'은 그 '혈액'이 자기의 혈액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태그'나 '이름표' 같은 것을 각각 가지고 있다.

1940년대에 과학자들은 혈액 응고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라는 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원숭이를 사용했다. 이 원숭이에게서 혈액의 특별한 항원이 발견된다. 이 항원은 사람의 적혈구에도 발견될 수 있었는데, 이 항원이 존재하면 원숭이의 이름을 따서 RH+(양성), 없을 때는 RH-(음성)라고 한다.

이처럼 RH는 일종에 혈액에 붙어 있는 '이름표'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의 이름표가 있는 혈액은 RH+(양성), '이름표'가 없는 혈액은 RH-(음성)이다. 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데 이름표를 가진 이들은 이름표가 없는 혈액을 수혈 받아도 문제가 없지만, 이름표 없는 이들이 다른 이름표가 있는 혈액을 수혈 받으면, 이름표가 없는 이들은 '다른 이름표'를 '외부의 침입자'로 규정한다. 외부의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 항체를 생성하고 이 과정에서 적혈구가 파괴되기도 한다. 이 반응을 용혈 반응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수혈받게 되면 혈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빈혈이나, 신장손상, 심한 경우네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혈액형은 결국, 항원의 차이에 의한 구별이다. 다만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왕성하던 20세기 초반, 굉장히 독특한 주장이 생긴다. 동물과 사람에 대한 혈액형 조사가 한창을 이루던 시기, 국가별 혈액형 분포도 함께 이어졌다. 이 시기는 '골상학'과 '우생학' 등이 유행하던 시기다. 이런 유행은 '흑인 노예'와 '아시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 국가들에서 B형 혈액형이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B형 혈액형의 비율이 20에서 30%로 추정되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원숭이에게는 B형이 많다.'는 연구가 진행되며 이것이 새로운 인종 차별의 재료로 사용된다. 실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에밀 폰 던게른 교수는 1914년에 Handbuch der Rassenhygiene라는 책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혈액형 차이를 언급한 적 있다. 이 언급에 따르면 동양인의 혈액형 분포는 서양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며, 특히나 B형 혈액형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것이 동양인의 행동과 성격 차이에 대한 새로운 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B형이 많은 동양인은 야만적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인종차별적 소재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에 1927년 '후루카와 다케지'라는 교육자가 자신의 주변 인물과 친척 열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혈액형에 의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A형은 소극적이고, B형은 개성이 강하며, O형은 적극적이다. 또한 AB형은 A형과 B형의 특색을 모두 갖는다. 다시 1970년에는 노미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연예인과 유명인'들에서 TV와 방송매체, 뉴스, 잡지로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며 큰 유행을 갖는다. 다만 일본에서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정리한 자료는 표본이 지나치게 적고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 또한 대체로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와 '교육자'에 의해 조사된 내용이라 그 근거를 찾기 더욱 어렵다. 이렇게 일본에서 유행하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은 일본의 경제 호황시기 한국으로 넘어가 한 차례 더 유행을 했고 MBTI 성격유형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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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황솔아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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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뒷통수를 보면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눈을 등지고 있는 그 뒤통수에서 그가 평생 보지 못할 우주의 끝 같은 존재를 내가 보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우스께소리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장총'이면 자신의 뒷통수를 저격할 수 있단다. 우주도 결국은 지구처럼 '구' 모양을 하고 있을진데, 어쩌면 가장 먼거리라고 하면 어설픈 '안드로메다 은하'가 아니라 눈 뒤에 달린 '뒷통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울'과 '거울'로 내 뒷통수를 구경하는 일을 '취미'삼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이론상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들춰 보는 일은 상대의 눈에 비해 희귀한 일이다. '관찰하면 존재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라더니, 나의 뒷통수는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상대의 뒷통수를 보면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의 뒷통수라하더라도, 그에게 철저히 '무지'의 영역이 되는 그 '구역'을 면밀히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남모를 우월감이나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의 완전한 '나체'를 관찰하는 듯, 완전히 벗겨져 있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듯. 그의 완전한 무지의 영역을 훔쳐보면서 나또한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내보인다. 나의 뒷통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마 흰머리가 약간 있을 수도 있고, 삐친 머리가 불완전하게 달려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내 뒷통수를 살폈던 것은 언제인가. 가만 살펴보니, 나는 남들을 관찰하며 남에 의해 관찰된다. 그러며 정작 내가 나를 가장 모른다. 나는 나에게 단 한번도 면밀한 360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살다보면 상대의 표정과 말투, 숨소리를 관찰하게 된다. 나또한 그랬다. 직장 상사의 숨소리가 어땠는지, 그의 표정은 어떻고 목소리는 어떤지. 그 작은 변화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리며 증폭해 나간다. 상대 눈썹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아주 사소한 억양과 말투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머릿속은 끝없이 상대의 모습을 되뇌인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는 어떠하면 말의 빠르기와 높이는 어떠한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나. 상대의 한숨에 부여하는 큰 의미만큼 나의 숨에도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가. 숨을 단 한번이라도 조절해 보거나, 관찰해보려 노력은 한 적 있는가.

입술 주변의 근육은 어떤 긴장상태에 있는가. 이마의 근육은 어떻고. 발이 닿고 있는 바닥의 감촉에 대해서는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왼쪽발 세번째 발가락의 촉감은 어떠한가. 그것을 지금에서야 느껴본다면, 그것이 남의 발가락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살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의 인간이 존재한다. 이런 인간들은 각자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라벨링'을 하면서 정작에게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라벨링'은 보지 못한다. 눈에서 가장 먼거리인 뒷통수에 달려 있으니 보지 못한다. 가깝고도 멀다는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일지 모른다.

혼자라는 것은 때로는 가장 낯선 이와 함께 하는 일일지 모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모든 나를 대표할 자신은 여전히 없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단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존재이며, 더욱이 관찰해 본 적은 없다. 낯선 땅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 인간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가장 낯선 자신과 일대일로 마주할 때가 아닐까. 우리는 가장 낯선이들과 만남을 피하고자 결국은 가장 익숙한 누군가를 밖으로 찾아나선다.

황솔아 작가의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는 작가가 서른 여덟살 동안 겪은 다양한 생각과 삶이 그려져 있다. 주변에 존재할 만한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쉽게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데 황솔아 작가가 말하는 것 처럼, 겉을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내가 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다면화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현대인이 생존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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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 2 경제.사회편 - EBS 이희명 선생님 고등 생강 시리즈
이희명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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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쇄국정책'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조선의 근대화를 늦춘 인물로 묘사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당시 조선의 상황을 살피면 '쇄국정책'이 '그나마의 최선'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기반을 둔 사회다. 이는 조선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연관있다. 조선 후기의 조세 체계는 주로 '토지'를 기반으로 했다. 다시말해, 세수 확보를 위해 정부는 농업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했다. 반면 상공업의 발달은 자본과 자원의 분산을 의미하며 중앙 집권 통제력을 약화 시키는 요인으로 여겼다. 상공업이 발달하면 경제의 중심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다. 이는 새로운 사회 계층의 출현을 의미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상공업이 발달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발생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의 발달이 끝이 아니다. 이는 영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었다. 영국은 도시화가 가속화 됐고 중산층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688년에는 명예혁명을 통해 절대 왕정이 제한되고 의회 중심의 정치 체제로 전환됐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에는 경제적 변화가 우선한다. 프랑스도 상공업과 제조업이 발달하며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이 생겨난다.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에 맞는 정치적 권리를 주장한다. 이런 결과로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가 말하는 시대는 '조선왕조시대'다. '조선왕조'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은 '왕조'의 몰락이다. 상공업을 발달하고 서양과 무역을 하며 근대화를 이루는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과 결이 맞지 않는다. 결국 조선이 건국 당시부터 갖고 있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중앙집권체제'가 '상공업의 발달'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체제는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일관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또한 내부적으로 일관된 규범과 기준을 확립하도록 한다. 대규모 프로젝트와 안보 정책에 효율적이고 빠른 의사결정 능력과 표준화 시스템을 가질 수 있다. 실례로 봉건국가였던 네덜란드가 중앙집권국가였던 영국에게 패권을 넘겨 주었던 사례를 본다면 정치체제는 그 시대에 따라 장단점이 있을 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흥선대원군 시대의 조선은 상공업이 구조적으로 발달할 수 없는 '농업 기반 사회'였다. 이런 농업 기반 사회에서 외국과의 무역은 자칫 중대한 안보적 위기를 만들어낸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다시,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이 법칙에 따라 쌀 가격은 크게 요동친다. 농업 기반 사회인 조선의 '쌀 생산량'은 거의 정해져 있다. 게다가 19세기 조선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던 시기다. 분쟁이 줄고 중앙 권력의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세도정치'하면 정치적 불안감이 커졌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극소수의 권력이 국가를 운영되면 정치적으로는 안정화에 접어든다. 이런 이유에 조선 후기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즉,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농업생산량은 정해져 있는데 수요가 폭발하는 것이다. 이는 쌀값폭등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쌀은 지금의 쌀과는 다르다. 당시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쌀'이다. 노동력이나 군운용도 모두 쌀로 지급한다. 고로 '쌀값폭등'은 현대로 치자면, '오일쇼크'나 '하이퍼 인플레이션'와 비견할 수 있다. 조선의 주요 생산품이 '쌀'인 와중에 '외국'과 교역을 한다면 조선 내부의 '쌀'이 외부로 반출된다. 쌀이 반출되면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쌀값이 폭등한다. 쌀값이 폭등하면 국가 운영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친다.

일단 '군 운용비용이 증가'한다. 쌀값이 폭등하면 국가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증가한다.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하던 임금은 '쌀'이었다. 또한 군인들의 식량 조달에 대한 비용이 상승하고 전체 국방 예산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다. 또한 중앙 집권 국가의 큰 장점이던 대규모 사업 또한 불가능해진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 부담'도 대폭 높아진다. 또한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불안과 불만을 증가 시킨다. 상류 계급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도시 빈민이나 농민들의 반란이나 소요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사적으로 개항'을 막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생겨난다. 반면 조선과 교역상대는 어떤가. 교역 상대국은 '기계를 통한 엄청난 생산성'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상품들은 국내 산업을 위협한다. 즉,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그가 단순히 고지식한 '노인'이라서가 아니라, 당시 조선의 정치인으로써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실제로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맞는다.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의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본 외에도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수교를 시작한다. 실제로 교역이 시작되면서 대량의 곡물이 항구를 통해 수출된다. 반대로 값싼 공산품이 수입된다. 이런 상황은 결국 '조선내부의 쌀부족' 현상으로 이어진다.

흥선대원군이 우려대로 쌀이 부족해지자, 쌀값이 상승했고 물가는 폭등했다. 게다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 귀금속이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된다. 일부 지주는 쌀 수출에 적극 가담하여 엄청난 이득을 남겼다. 그 이익을 다시 토지 매입에 투자되어 대지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쌀에 대한 '시장독점'과 '수요폭발'이 일어나자, 국가는 '군인'에게 지급할 '임금'인 쌀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1882년 쌀겨와 모래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좋지 못한 급여를 받은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그것이 임오군란이다.

임오군란의 진압과정에서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다. 이로써 조선의 내정에 대한 청의 간섭은 더 커진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군대는 조선에 주둔하게 된다. 이후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점차 확대된다. 그 과정에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했는데, 외국 공사관은 해당 국가의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실제로 고종이 직접 러시아로 간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외교 관례와 영토의 개념으로 볼 때, 조선의 황제가 러시아의 영토로 피신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로시아는 러시아인을 조선의 재정, 군사 고문으로 앉히고 광산 채굴권이나 삼림 벌채권을 얻었다. 그러나 쌀유출은 계속 이어졌다. 철도가 놓이며 더 많은 식량과 자원이 철도와 항구를 통해 수출된다. 쌀값 폭등은 더 가속화된다. 뒤늦게 '방곡령'을 통해 쌀의 유출을 막아보려고도 했으나, 이미 구조적으로 경제적 파탄이 났기 늦은 상황이었다.

일본 또한 조선의 쌀값폭등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수입국이었기에, 조선의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1920년부터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한다. 조선의 쌀을 증식하여 쌀 생산량을 높이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증산에 필요한 시설을 확대하고 화학비료를 사용을 권장한다. 실제로 더 많은 쌀이 생산되었으나 수확량에 비례하여 수출량이 늘어나면서 쌀값이 안정되지 않았다. 식량 사정도 악화됐다. 쌀값이 높아지자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처지에 쳐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항이 불러 일으킨 연쇄적인 불행의 도미노는 국가의 재정과 안보를 파탄시키고, 결국 '경술국치'까지 이어진다.

가만 보면, 중앙집권국가인 조선의 멸망은 시대적으로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경제'가 '안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지독한 방식으로 학습했다. 어느 통계를 보니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돈'과 '경제'에 삶의 촛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삶'에 직결된다는 위기감을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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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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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막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설명.

다자이 오사무, 그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난다. 집안은 부유했으며,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이루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도교제국대학에 입학한 후 좌익활동을 시작한다. 날 때부터 정해진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의 신념의 충돌은 그의 삶 전반에 존재한다. 이런 내면과 갈등은 그의 삶을 내면과 외면으로 분리했다. 물론 어떤 사건이 기폭제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겪는 다양한 사건은 모두 서로 그러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다자이 오사무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비난을 하던 그는 1930년에 다나베 아쓰미라는 연인과 투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 사건으로 연인인 아쓰미는 사망했으나 그는 살아 남았는다. 이후 연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받던 그는 이후로도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한다. 이런 비극은 다른 비극을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불러 일으킨다. 결국 그는 약물 중독에 시달린다. 중독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그가 가게 된 병원은 '정신병원'이다. 몇 번의 비운과 고통이 그들 찾으며 그는 생애 동안 총 다섯번의 자살을 시도한다. 끊임없이 자기자신과 인간에 대한 고뇌를 멈추지 않던 그는 마침내 1948년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던 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인간실격'이 발표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극적이고 복잡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작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내면의 고뇌와 인간의 약점을 탐구한다.

우울하고 침울하고, 고통스러운 그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오염되는 감정'을 느낀다. 다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가 느끼는 일부 감정에 있어서 철저한 공감을 갖는다.

그가 가진 고민들, 사회적 부적응과 자아 상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괴리감, 외로움,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불안과 혐오, 끊임없는 자기와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심, 좌절. 그것은 소설을 읽기 전에도 내 안 어딘가 존재하는 감정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장난기 많고 농담 좋아하는 밝은 사람이지만 그 속은 정반대이다. 겉으로 가면을 쓰고 솎으로 그 빛에 준하는 그림자를 가지는 것을 보면 페르소나와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구스타프 칼 융'의 심리학 이론 중 하나다. 사회적 상황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가짜 자아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을 가면, 즉 페르소나라 부른다. 반면, 우리의 의식적 자아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성, 부정적인 사고와 욕망, 감정 등 무의식의 일부, 타인에게 숨기고 싶어하는 내면. 그것은 그림자이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는 진짜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페르소나를 연출한다. 모두를 철저하게 속이며 이러한 개념은 융의 페르소나 개념와 매우 일치한다. 융의 심리학에서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자아 실현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에서의 갈등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조금 더 직관적으로 그려진다. 다만 '인간실격'에서 주인공은 이 균형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그림자에 짓눌려 고뇌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이를 수용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던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의 여정을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인간으로써 자격의 실격'을 선언한다. '소설 데미안'과 대비적으로 그는 결국 열리지 않은 결말로 끝을 낸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불안과 외로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이 고뇌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페르소나와 그림자, 선과 악 사이의 고뇌를 열린 결말로 이야기 했던 '헤세'의 '데미안'과는 다르게, '인간실격'은 종결된 결말로 끝을 낸다. 결국 우리 모두는 '페르소나'를 집어 삼키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고뇌가 멈추기 위해 결국은 그 간격을 줄여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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