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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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독'이라는 활동만으로도 뇌의 기억력은 좋아진다.

만 48세 그룹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으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 첫 일주일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2주부터는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대략 4주가 지난 뒤부터는 만 37세 그룹을 뛰어넘는 성적으로 열 살 이상 젊은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아졌다. 묵독도 물론 좋은 독서법이지만 '음독'하는 습관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내가 사랑하는 '키스 휴스턴'의 '책의책'을 보면 인간의 문해력이 어떻게 사회 변화를 만들었는지 말하는 극단적인 예시가 나온다.

과거 중세 시대 귀족들은 책과 관련된 작업을 하인들에게 부탁하곤 했다. 심지어 귀족들 중에는 글을 읽는 문맹도 많았다. 이들은 사교모임을 위해, 종교 서적이나 문학 작품들을 읽었어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자신의 하인들에게 글을 읽어 달라고 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책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하인'의 '손글씨'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하인들은 '문해력'이 높아져서 전문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들의 일부는 사회의 지식 계급이 됐다. 필사에 능숙했던 하인들은 '수도원'이나 '성당' 혹은 '상업 문서 작업'을 위한 '회사'에 고용되었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다소 높아졌다.

유럽 중세 후반으로 가면 도시와 상업 활동이 많아지면서 문서 작성이나 읽기가 필요한 직업들이 늘었는데, 이때 문해력을 가진 하인들은 귀족의 집을 떠나 도시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직업으로 이동했다.

하층 계급에서 문해력으로 지위 상승이 일어난 이후, 많은 이들이 자녀를 교육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와 맞나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일부 귀족들은 문맹이기도 했다. 이들은 '문해력'있는 하인을 고용하여 문서를 작성하거나 재산을 관리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처한 이들도 적잖았다. 하인이나 서기관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문맹 귀족들은 왜곡된 정보와 잘못된 문서에 의해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는데 영향을 받았다. 일부 하인은 재산 문제를 악용하기도 했고 중요 정보를 조작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영지와 재산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신분을 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한 셈이다. 중세 하인들은 귀족을 위해 책을 읽거나 필사했다. 이는 '유전자'와 상관 없는 '반복적인 언어 활동'이다. 이 활동을 강제하기만 해도 뇌의 신경망은 새롭게 형성되고 강화된다. 가령 새로운 단어를 학습하는 과정은 '해마'와 같은 뇌영역을 활성화한다. 이는 기억력과 언어능력을 발달시키며 뇌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바뀌게 한다.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신경세포인 뉴런 간의 연결 강도가 바뀌면서 신경 연결이 생성되는 것이다.

문해력을 갖추기 시작한 하인들은 필사와 독서와 같은 반복 학습을 통해 집중력과 어휘력이 길러지고 이긋이 전문직으로 지위 상승을 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 뇌과학에서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음독'이나 '필사'와 같은 활동에 대한 중요성을 말한다. 이들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뇌의 신경가소성을 촉진한다.

물론 유튜브나 인터넷강의, TV를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정보는 단순 투입량만 쉽고 빠르게 늘어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가 분명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도록 돕는 기계이지만 꾸준히 걸어야 하는 이유는 기초체력이 건강해야 그 '차량 이용'을 건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된 사람에게 무지막지한 음식을 쉽고 빠르게 집어 넣는 행위와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투입되는 정보량이 아니라 그것을 소화하는 소화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책은 다른 현대 매체에 비해 가장 느리고 지루한 정보 소화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원래 기술이 비해 진화는 아주 느리며 '근육과 같은 단백질'의 변화는 독서 행위처럼 느리고 점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책은 전자책으로 책을 보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 있었지만... 이를 아이패드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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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어
로빈 노우드 지음, 문수경 옮김 / 더난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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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인간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무의식'을 탐구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 짓는다고 봤다.

'로빈 노우드'의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어'는 '프로이트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심리는 무엇 때문일까.

'로빈 노우드'는 이것이 단순 '나쁜남자'가 가진 '매력'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무의식적 욕구와 관련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적 패턴을 성인기의 관계에서도 반복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사랑이 불안정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 나쁜 남자의 여자를 대하는 '애매한 태도'는 이 갈망을 자극한다. 그의 무심한 핸동 뒤에 감춰진 작은 따듯함이 마치 어린 시절에 간신히 받았던 관심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로빈 노우드는 이런 심리를 책 전반에 둔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들은 자신이 사랑 받을 자격이 있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노력은 때로 자신을 파괴하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 상대가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를 떠나지 못한다. '나쁜 남자'가 자신에게만 한없이 '착해질 어느 순간'을 믿으며 일방적 관계를 잇다가 결국 자신조차 잃어버린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가. 첫째는 자신의 무의식을 인지하는 하는 것이다. 나쁜 남자와의 관게는 단순한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했던 과거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둘째는 자기 돌봄이다. 관계에서 상대의 사랑에 매달리기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다시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리자면, 무의식에 의해 휘둘리던 삶을 의식적으로 다룰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어'는 '나쁜남자'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나쁘다'는 가치판다은 상당히 상대적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사랑을 왜곡시킨 스스로가 가진 심리적 뿌리를 직면하도록 돕는다.

'노우드'는 말한다. '사랑은 고통이 아니라 성장이어야 한다.'

관계에서 주는 것과 희생하는 것은 다르다. 어떤 것은 '내주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희생'이라면 '내줄수록'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고로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결핍에 대한 욕구다.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사랑은 상대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방향이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데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어'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직면하도록 돕는다.

사실 이책은 2,30대 한창 연애를 할 젊은 여성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 어쩌다가 나처럼 이미 흰머리가 스믈스믈 올라오는 아저씨에게 와서 읽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성별'과 '나이'에 상관 없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분명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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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그늘
고광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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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생존자 '하봉자'의 관점에서 미군 하지스의 내적 갈등이 교차로 묘사된다. 이는 단순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사건에 연류된 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 '붉은 그늘'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방관자'를 비롯한 모두의 역할을 묻는다. 최근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더 적나라하게 소설을 간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총'이나 '군인'은 '끔찍함'보다 '추억'에 가깝다. '군대'하면 먼저 떠올리는 일이 20대 청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군입대를 하며 비슷한 나이의 병사들과 '적잖은 추억'을 쌓은 일이 '군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다만 며 칠전 국회로 무장 군인이 투입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됐다.

'계엄군 투입'이라는 '교과서'에서 보던 사건을 실제로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을 사느라 '과거'를 잊곤 한다. '군인'이라는 말이 '추억'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소설로 혹은 짧지만 하루의 계엄으로 느꼈다.

고광률 작가의 붉은 그늘은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그린다. 이 사건을 통해 집단 폭력과 책임을 묻는다. 소설 속 하지스는 군인의 명령과 인간으로써 양심 사이에 갈등을 겪는다. 그의 내적 독백이 비극의 본질을 직시하게 만든다.

하지스는 아이들을 겨냥하라는 명령을 받고 총구를 망설임없이 내렸다. 그 장면과아이들의 울음소리, 하지스의 내적 독백이 교차한다. 양심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이 장면은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의 역할과 인간으로써의 도덕적 책임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시민을 마주한 젊은 계엄군의 심리 상태도 이와 비슷했을까.

민주화 운동을 그리는 영화를 보면 시민과 군인들이 대립 초기에는 '인간다움'이 드러난다. '군인'들은 '시민'을 '삼촌', '부모', '형'처럼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시민'들도 '군인'을 '동생', '아들', '조카'처럼 여긴다. 다만 사건이 점차 격해지며 전혀 공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개체'로써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짧은 계엄으로 잊혀졌던 과거를 강제 소환 당한다. 실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계엄'이라는 사실을 뉴스로 전해 들었다. 모두는 '수동적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을 읽다가 내려 놓은 나또한 '실제'를 바라보며, '소설'을 떠올리던 방관자 중 하나다. 유튜브 스트리밍 채팅에는 '내일 학교 가야 하나요?' 혹은 '출근하기 싫다' 등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우리가 1950년 비극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갔을가.

명령을 따르는 군인이든, 침묵하는 시민이든,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역사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고광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군인 하지스의 내적 갈등은 단순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인간 본질적인 질문'이다. 폭력 현장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폭력은 누군가의 방관 속에서 자란다. 그 방관자가 어쩌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계엄 사실을 듣고 잠못 이루진 않았다.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 이를 해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다. 실제 계엄은 해지가 됐고 계엄군 중 일부가 '의원'의 '국회 참석'을 묵인했다는 사실을 보며 소설속 '군인'의 내적 갈등이 떠올랐다.

대통령 계엄이 해지되고 사회는 말한다. 사회가 성숙한 관료주의가 되면서 리더 한 사람의 부재나 이탈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대의민주주의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방관과 침묵에 의해 제도조차 무력하게 되는 일을 막는 것이다. 바로 '관심'이다. 얼마전 벨기에는 무정부 상태로 500일을 지냈다. 그 동안 평화롭게 국가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됐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문제없이 국정운영되었다.

이런 성숙한 '제도'를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이땅에 있었는가. 소설은 잊고 있던 과거를 상기시킴으로서 지금의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감사함을 갖도록 한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순기능일지 모른다. 책은 612쪽이나 되는 분량이지만 몰입도가 높아서 빠르게 읽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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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필독서 시리즈 24
여르미 지음 / 센시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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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1위, 필명 여르미(류지아 작가)의 추천 인문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내 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은 어떤 책들이 있을까.

-'여르미 필독서' 중 나또한 추천하는 도서(읽은책)

1. '노자'의 '도덕경'

2.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3.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4. '공자'의 '논어'

5.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6.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7.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9. '알랭 드 보통'의 '불안'

10.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11.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여르미 필독서' 중 읽지 않은 도서(읽을 책)

1.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2.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3.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4.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5.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6.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7.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8.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9.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10.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

11.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여르미 필독서' 중 언급되지 않은 개인 추천 도서

1. '키스 휴스턴'의 '책의 책'

2.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3.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4.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5.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6. '팀 마샬'의 '지리의 힘'

7. '폴 센'의 '아인슈타인의 냉장고'

8. '이순칠'의 '퀀텀의 세계'

9. '도올'의 '노자가 옳았다'

10.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11. '헤르만 파르칭거'의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12. '바트 어만'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13.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14. '백승만' 분자 조각가들'

15. '해리 클리프'의 '다정한 물리학'

16.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작가는 완독하지 말고 순서대로 읽지 않길 바랬으나 순서대로 완독했다. 2025년 읽을 책 리스트가 꽤 정리됐다.)

성인 대부분이 1년 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1년에 한 권씩 읽어도 어떤 사람은 2~30년이 걸릴지 모른다.

고로, 만약 우리 아이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자란다?

혹은 어떤 사람이 죽을 때까지 딱 4권만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추천할 것 같다.

'노자', '사피엔스', '코스모스', '총균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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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 - ‘갓민애’ 교수의 초등 국어 달인 만들기
나민애 지음 / 김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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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초 학부모가 되면서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졌다. 2024년, 그 이유로 교육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유튜브 영상도 보고, 관련 글도 자주 쓰게 됐다. 글 상당수가 '교육'으로 향하다보니 알게 됐다.

모두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노출이 잦은 전문가들도 익숙해졌다. 마치 초면이지만 구면인듯 하다. 나민애 교수도 그렇다.

여하튼 꽤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느낀 바는 결국은 '문해력'이다. 다수의 전문가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도,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도, 학교 선생님, 학원 원장, 작가 할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가 있으니 '문해력'이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한자'다. '영어'를 가르치는 '조정식' 강사도 만약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첫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자'라고 답했다.

대한민국 성인 열명 중 여섯이 1년에 책 한권 읽지 않는 나라다. 학부모 대부분이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아마 실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가 책을 읽기 위해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이 많다. 평생 책 가까이 해보지 않던 내 또래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제 일과시간 외의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눈을 뜨지마자 '책'을 먼저 잡는다. 아이의 머리를 말릴 때도 책을 읽는다. 특별한 노력없이 나에게는 아이에게 물려줄 좋은 습관을 하나 모범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안심이다.

아이와 매주 수요일 '책의 날'로 정했다. 2주에 한 번은 반드시 도서관을 간다. 2주 간 읽을 30권의 책을 수레에 끌고 온다. 다 못읽어도 좋다. 그저 가져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느끼는 것은 구매한 책을 모두 다 읽지 않는다는 나의 습관에서이다. 책을 고르는 순간도 '독서 활동'의 일부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직접 고르고 읽고 싶으면 읽되, 읽지 않으면 그대로 반납한다. 같은 책을 두 번 읽어도 되고, 세번 읽어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30권 중에 한 권만 무한 반복하다가 29권을 그대로 반납한다.

도서관에 가지 않는 2주에 한 번은 '서점'을 간다. 아이의 학교는 매주 수요일이 4교시다.

유일하게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매주 수요일마다 결석한다. 이날은 아이에게 주말보다 기다려지는 날이다.

이날, 아이는 모아둔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도너츠를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실컷한다. 새로운 신발을 사거나, 옷구경도 이날간다. '이날'의 공식명칭은 '도서관 가는 날'이다. 아이는 '도서관 가는 날'을 주말보다 손꼽아 기다린다.

도서관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무릎 위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무릎에서 벗어나 도서 검색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시 얼마가 지나자 '학습만화' 앞에 서성인다.

지금은 학습만화와 동화책을 반반 가지고 와서 한참을 읽는다.

'나민애 교수'의 글은 지금껏 찾아보던 다른 여타 초등 교육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질'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독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기 위해 읽었다기보다 이미 행하는 일에 확신을 심기 위해서다.

가끔 교육에 대한 철학이 흔들릴 때가 있다. 역시 이것저것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사실 뭐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어'가 무조건 중요하다. '국영수'라는 학습 과목으로 여겨서 그렇지 사실 국어는 '수학이나 영어'처럼 하나의 과목이라기 보다 모든 학습의 '근간'이지 않는가.

숫자를 모르고 어떻게 수학을 배우고, 알파벳을 모르고 어떻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모든 학습에는 '국어'가 근간이 된다. 고로 책읽기를 넘어설 어떤 학습법도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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