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아오바 유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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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이라는 말은 근래에 들어 종종 들어보곤 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역주행'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알고리즘'의 개념이 보편화 되고 난 뒤 부터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는 서로 비슷한 키워드로 얽히고 섥히며 유기체처럼 연동하다가 특정 시기에 우연하게 다수에게 노출된다. 잊혀졌던 기록과 영상이 다시금 다수에게 노출됨으로써 타이밍의 문제로 묻혔던 진실들은 다시 표면 위로 솓아 난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데이터는 정보의 호수에 순식간에 묻힌다. 지금 이 글 또한 발행된 즉시, 일부 소수에게 소비되고 사라질 것이다. 숨겨져 있는 이런 데이터는 언제고 적절한 시기와 상황이 되면 불현듯 솟아난다. 이렇듯 알고리즘은 타이밍에 의해 묻혔던 진짜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하곤 한다. 개봉한지 10년이 넘은 조연 배우의 대사가 현 시대에 다시 유행이 되며 잊고 지내던 배우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소설은 우연한 기회에 추천 영상을 보게 된 한 직장인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참, 괜찮다.'라고 생각했던 영상이나 노래의 주인공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섬뜩하고 때론 씁쓸한 일이다.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뿐인 실체에 우리는 '죽은자'의 묘한 채취와 흔적을 느낀다. 실제로 누군가 남긴 글과 영상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런 시기의 역사는 30년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정보 중 어떤 글과 영상이 산 사람의 것이고, 죽은 사람의 것인지 디지털 신호는 감지해 내지 못한다. 죽은자들의 생각과 흔적이 마음껏 온라인 상을 떠돌며 불현듯 불쑥 불쑥 우리의 삶에 나타날 것이다. 아마 30~40년만 지나도 온라인 상에서 검색되는 정보의 대다수는 죽은자들의 것으로 넘처날 것이고 우리는 감정 없는 '2진법 계산기'에 의해 죽은자들의 생각과 흔적을 끊임 없이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인공 줏타는 밴드를 하고 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노래는 우연하게 한 직장인에게 노출된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또다른 방향이 된다. 줏타가 죽기 전, 그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네트워크와 같이 얽히고 섥힌다. 한 음악이 완성되고 다른 누군가에게 갑작스럽게 소개된다. 온라인은 다시 오프라인으로 섥히고 얽힌다. 오프라인은 다시 온라인으로 얽힌다. 이런 역할을 하는 매개체로 소설은 '음악'을 택한다. 음악은 여러사람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영향력을 끼친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은 직간접적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죽음은 과거의 죽음과는 다르다. 보통의 죽음은 모든 것이 사라진다. 장례를 통해 죽은이의 흔적을 지워주는 것은 죽은자에 대한 예의이자, 산 사람에 대한 배려다. 죽은자의 주변의 슬픔을 최대한 빨리 잊게 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장례식'이면 되려 술판과 도박을 하며 웃고 떠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죽은자의 흔적은 시간과 함께 사라져가며 죽은자는 산자의 적당한 추억이 되고 서서히 잊혀진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이런 정보화 사회에 대한 반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은 밴드의 주인공의 삶을 역으로 돌아보는 소설의 구성상 죽음의 가치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죽어서도 끊임없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파하고 감정을 자극하며 살았을 때와 똑같은 활동을 하게 됐다. 어쩌면 철학적인 의미로 넘어갈 수도 있는 '영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줏타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는 아이를 남긴다. 사람이 남기는 흔적이란 죽음으로 모두 지울 수 없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마 아이는 계속 자라나며 유튜브 속의 줏타의 나이까지 찰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아버지의 나이를 넘기게 될 것이고 온라인 속에서 늙지 않고 항상 청춘인 아버지를 평생을 바라보고 노파의 날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남기는 모든 글 또한 나의 죽음을 뒤로하고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고 발간될 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가 내 나이를 넘어서며 내가 쓴 글을 보고 '한 젊은이의 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누구나 무언가를 포기한다. 그걸 어른이 된다는 말로 포장하며 태연하게 살아간다. 그런 법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큰 흐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을 포기하며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것이고 말한다. 우리가 마주해야하는 큰 흐름이란 운명이며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큰 힘을 우리는 매순간 마주해야 하는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정보의 바다가 출렁거리면서 의도하지 않는 순간, 나의 기록이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영향력을 남기며 살아간다. 또한 소설의 말처럼 그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미 사라져버린 명곡들이 다시 역주행하며 순위권으로 언제든 올라가는 것처럼 어쩌면 알고리즘은 우리가 포기했던 것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비록 그 기회가 죽음 이후라고 하더라도 분명 우리의 영향력은 조금도 노화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으며 최초의 모습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노래의 제목이다. 잔잔한 파도란 큰 바다가 만들어낸 일종의 출렁거림이다. 그것이 비록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적절하게 잔잔하게 움직인다. 바다는 엄청나게 방대한 부피와 질량을 갖고 있는 덩어리로 때로는 묵직하고 방대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관대함도 가지고 있다. 소설은 일본 소설의 특유의 장점 처럼 술술 읽히고 쉽다. 책의 표지가 우리나라 수필같아 반전스럽기도 하다. 때론 자극적일 것 같고, 때론 잔잔한 이런 수필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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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착취 -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 줄 74개의 원칙
훙페이윈 지음, 홍민경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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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의 문화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적도 방향으로 큰 태평양을 끼고 있는 동쪽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끼고 있는 서쪽 문화권이 그렇다. 이 둘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기후적 특성이 달라졌다. 태평양을 끼고 있던 동쪽 대륙에는 집중 호우식 장마철이 존재하고 서쪽대륙에는 동쪽에 비해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1년에 1000mm 이상의 비가 내리는 지역에는 벼를 재배하고, 그 이하의 지역에서는 벼를 재배했다. 벼를 재배하는 지역은 농경지에 물을 대는 관개사업이 필수적이다. 또한 보를 만들어야 하는 토목 공사도 중요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여러 사람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반대로 노동 방식 면에서 합심할 필요가 없는 서양에서는 마른 땅에서도 쉽게 자라는 밀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런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삶의 방식은 문화가 되어 동양에서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해지게 됐다. 실제로 쌀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과 인구 부양력이 다른 어떤 곡물보다 높은 편이었는데, 밀 혹은 보리보다 2배 가까운 생산량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동양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서양에 비해 더 높은 문명 수준을 갖고 있었고 그 것을 근거로 더 복잡하고 세분화된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Sister를 굳이 말하자면 여자 형제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여동생과 누나, 언니 등. 누가 부르냐에 따라 상하관계와 남녀 상의 차이를 확실하게 두었다. brother 또한 누가 부르냐에 따라 오빠, 형, 남동새으로 상하, 남녀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Aunt는 고모이기도 하면서 이모이기도 하고, 숙모이기도 하면서, 외숙모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관계 형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생님, 오빠, 선배, 사장님,' 등의 호칭이 관계 형성 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사장님이나 직원, 선배, 후배 상관없이 모두 이름을 부른다. 이처럼 지리와 기후는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당연히 동양에게 더 큰 이슈가 됐다.

아들러(Alfred Adler)는 모든 고민은 관계의 고통 속에서 오고, 모든 기쁨 역시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2020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61위이고, 일본은 62위, 홍콩78위, 베트남 83위, 인도네시아 84위, 중국 94위를 기록한다. 반면 1위부터 25위까지의 모든 국가는 서양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유가 어찌 됐던 아들러가 말한 모든 고통이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국가별 행복지수에 간접적으로 들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쌀 생산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관계에 속박되어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사회와 문명을 비추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찌됐건 우리는 모두 주관적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제주도 중심에 높게 솟아 있는 한라산은 남쪽에서 보기엔 북쪽의 산이고 북쪽에서 보기엔 남쪽의 산이다. 서울에 있는 남산은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 이후 남쪽에 있는 목면산의 이름을 남산이라고 불렀으며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토에서 보기에 실제로 북산이나 다름없다. 또한 북한산의 이름 또한 한강 이북에 있어 북한산이 되었지만 남산과 북한산의 거리는 남북으로 10km밖에 차이 나질 않는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 완전히 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관계라는 것은 어디에서 보느냐,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첨예하게 달라진다. 사람은 시간이 흘렀다고 저절로 성숙해 지지 않는다. 그 말인 즉, 관계형성은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깨치지 않는다. 누구나 그에 맞는 적당한 경험과 배움이라는 훈련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주 대두되는 용어중 하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이는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네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판단으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지만 관계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며 타인에 의해 스스로의 감정마저 지배되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이 관계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직장 등에서 형성되는데 쉽게 말해 자신의 자녀나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상대가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관계 착취다. 마르크스(Karl Marx) 이론에 의하면 착취란 노동계급이 실제 가치보다 낮은 임금으로 자본가를 위해 일하고, 자본가는 노동계급의 성과에 대한 잉여가치를 수탈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관계에 의해 너무나 쉽게 착취당하고 이것을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심리학에서 프리드먼(Freedman)과 프레이저(Fraser)가 1966년에 제기한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foot in the door technique)'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요구를 하고, 상대방이 수락하면 좀더 높은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방이 이 '더 어려운 요구'를 받아들일 확룰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뒤이어 제시한(변종) 요구에 순종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상대를 착취하는 것은 아주 은은하게 조금씩 스며든다.

자녀나 친구에게 조언을 하는 일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사상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은 '호의'를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선의들은 따지고보면 더욱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부모자신관계의 갈등은 동물세계에서는 일어지 않는다. 부모의 잔소리나 자녀의 일탈 또한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착취하려는 노력과도 같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이론은 총 다섯 단계로 나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눠진다. 이중 소속과 애정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외부에 기인한 욕구고 나머지 3가지 욕구는 스스로에 기인한다.

따지고 보자면 관계는 외부에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다. '자아긍정'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반대로 '자아긍정'을 할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다. 진정한 자신감은 '자아 긍정'과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되고 노자는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고 말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박사는 '초점의 오류(focusing illusion)이라는 개념을 제시 했다. 특정한 촛점 하나에 꽂혀서 다른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을 말한다. 관계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원인에 상대에게 있다는 것은 초점의 오류와도 같다. 모든 관계에서는 '내'가 중심에 서 있음으로 관계의 문제라는 것은 '나'를 살펴보는 일이 필연적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자신의 상상 및 판단력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항상 미래에 후회할 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착취란 상대의 잘못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잘 아는 것 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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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교향악
박황서 지음 / 좋은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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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달은 지구와 비슷한 크기와 질량을 가진 행성이었다. 달과 지구는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탱하고 쌍둥이처럼 닮아 가며 같은 속도로 태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대변혁이 일어나 태양계를 휩쓸면서 둘은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했다. 그 가공할 충동으로 인해 달은 대부분의 질량을 지구에 내주고 까마득히 멀어져 갔다. 달이 남기고간 무수한 금속성 광물들은 지구를 행성인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자석으로 변모케 했다. 이렇게 형성된 강력한 자기장이 태양풍을 타고 끊임없이 날아오는 하전 입자들을 차단함으로써 지구에는 물이 존재할 수 있게 됐다. 생명체가 번성할 토대가 구축된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나마 달은 수십억 년을 한결같이 저 멀리서 우주가 번성하는 관경을 흐뭇이 지켜보고 있다."

다소 이과스러운 주제로 글을 시작한다. 분명 제목은 '봄의교향악'으로 잔잔하고 부드러운 문과형인데 말이다. 첫 글은 이 책이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 말하고 있다. 저자인 박황서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이과박사다. 현재는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학하며 집필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그가 쓰고자하는 소설은 그가 갖고 있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직업처럼 복잡하게 융합되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작가가 쓴 글의 첫 구절은 달의 기원설중 하나다. 달의 기원은 현재까지 미스터리에 속해져 있다. 달의 기원은 총 4가지로 분류되는데 태양 주변을 돌던 찌꺼기들이 합쳐지며 지구가 될때, 함께 탄생했다는 동시 탄생설, 지구옆을 우연히 지나던 소행성이 지구 중력에 붙잡혀 지구 주위를 돌게 됐다는 포획설, 지구가 만들어질 때, 자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구의 일부분이 달로 분리 되어졌다는 분리설, 마지막으로 지구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다가 지구와 충돌된 중돌설이다. 이중 가장 유력한 가설은 충돌설이며 많은 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 정설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이 이런 달의 기원을 시작으로 기술이 시작된 것은 처음에 의아한 일이다. 다만 소설을 완독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달의 기원에서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했다. 철저한 이과적 감성으로 바라 본 달의 기원을 문과적 해석으로 다시 살펴보자면 이처럼 비슷한 결의 친구가 다른 친구를 위해 제몸을 희생하는 우정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달은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홀로 모행성을 돌고 있는 위성이다. 그러면서도 모행성의 크기가 다른 태양계의 위성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희안하게도 달과 지구는 많은 미스테리한 관계를 가진 행성과 위성이다. 그 크기는 400배 멀리 떨어진 태양보다 정확하게 400배가 작아서 달과 태양의 지름은 소숫점 자리까지 일치할 정도다. 또한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주기가 달의 자전 주기가 27.3일로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달은 우리에게 뒷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지구에게 어두운 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뒷모습을 숨기는 달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두 친구 관계를 연상 시킨다. 달은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며 은은한 빛으로 지구의 밤을 비춰준다.

달이 지구에 도움을 준 것은 직접적인 것 말고도 간접적으로도 있다. 밤하늘에 달을 바라보던 아이작 뉴턴은 어째서 달이 지구로 떨어지지 않는지를 고민한다. 그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를 떠올리며 '만류인력의 법칙'을 생각해 낸다. 그 뒤로 지구의 문명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달과 지구의 지질학적 특징은 거의 비슷하다. 달은 지구와 닮아 있으며 멀리서 지구 주위를 돈다. 이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켜보고 자신의 뒤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 관계를 닮아 있다. 권투를 하던 근호는 가와 같은 체육관에서 스파링 연습을 하더 벌어진 일로 강민을 혼수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에 수술비를 벌기위해 생체실험을 한다. 운동을 하던 사람이 자신의 몸을 버려가며 구하려 했던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재희와 근호, 한나가 이끌어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한 소설일 것 같지만 초반 절반까지, 성추행, 범죄, 뇌사, 납치 등 어둡고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그들의 배경을 설명하던 소설은 점차 친구들 사이의 관계로 촛점을 바꿔가며 전개해간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인데 담고 있는 내용은 꽤 다양하다. 이런 이유로 장편 소설인듯 하면서 단편소설 같기도하고 다시 또 대하소설 같기도 하다. 책은 빠른 전개를 통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데, 어쩐지 현실성 있는 소재 같지만 충분히 소설같은 이야기와 전개임에도 충분하다. 사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 ,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문제일 수는 있으나, 현실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에게는 현실성있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어두운 배경을 갖고 있는 소설이지만 표지에 담고 있는 '봄의 교향곡'이라는 제목처럼, 또한 이학박사가 쓴 장편 소설인 것처럼 소설은 양면된 두 가지를 숨기지 않고 모두 들어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책은 잔잔한 주말에 카페에서 잠깐 잠깐씩 시간을 내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종이 위에서 눈을 띄고 시선을 옮겨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먹먹함과 잔잔함이 뒤늦게 묻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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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와일드 이펙트 - 행복한 성공, 1000권의 책을 읽고 100명의 전문가를 만나고 100곳을 방문하라
유광선(WILDS) / 와일드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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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결은 어떻게 다른가. 완독하고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가격표를 확인한다. '18,000원...' 완전한 불공정 거래구나. 더군다나 이 책은 지난 번, '황준연 작가 님께 선물 받은 책이다. 책의 매력은 이런 데 있다. 합법적이고 권장하는 불공정거래다. 빌 게이츠의 글이나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의 글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비슷한 값어치를 낸다. 평생 한 번 만날지 말지도 모를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렇게 훔쳐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책에서 '유광선 작가 님'의 생각을 훔쳤다. 그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사업가'이기도 하다. 책은 '너도 부자가 될 수 있어'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경험을 했고, 이런 생각을 했다.'로 전개한다.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를 보면 이름만 보고도 '투자기피대상'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다. 도통,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알파벳의 조합인 회사, 가령 AMC(가칭)이나 아이알에스(가칭)와 같은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높은 확률로 흔히 말하는 '핫'한 사업에 모두 걸쳐 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를 다시 말하자면 그런 회사들은 '블록체인', '제약', '사우디국영석유사' 등 잘 모르지만 매혹적일 것 같은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상증자나 공시불이행 등 신임할 수 없는 회사들은 제 아무리 3일, 4일 상한가를 기록한다고 해도, 나 개인적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종목은 '삼양통상'처럼 지루해 보이는 사업을 하는 피혁회사나 '강원랜드'처럼 독점 사업을 진행하면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에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다.

'유광선 작가'의 본업인 사업은 종목과 명칭 그리고 철학까지 굉장히 현실적이다. 가끔, 값비싼 슈퍼카나 명품을 자랑하며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를 시현하는 가짜들은 혹세무민하여 욕심많고 순진한 다수의 돈을 노린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의 글을 18,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그의 철학은 배울게 많고 또한 어느정도 나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그가 문어발 식으로 확장한다고 비난받던 사업들처럼 나 또한,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글을 쓰며 작가 활동을 하고 농사 짓기와 '농산물' 판매, 수출, 강의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인 활동을 하며 서로가 상호 상생작용을 통해 발전 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렇다고 한 분야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훨씬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10년을 해외에서 보내며 신생으로 창업한 회사에 초기멤버로 들어 간 적이 있다. 매장 수를 확장시키며 성장하는 중견기업의 성장과정을 모두 들여다보며 첫 사회생활을 했다. 첫 사회생활 치고 엄청난 경험과 대우를 받고 일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분수에 맞지 않는 외제차 관련 회사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했다. 다시금 제주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며 '초년강사'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대우를 받았다. 시작부터 비율제로 계약하여 적은 학생을 데리고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 강사로써 좋게 봐주어 인기강사 대우를 받았다. 무대뽀식 성격으로 아무 연고 없이, 구글에서 검색한 한 과일 수입 업체와 연결이 되어, 성공적인 싱가포르 수출도 성사했다. 이런 여러가지 경험은 사실상 현재에서 가치가 증명된다. 지금에 있어서는 그 많은 경험이 모두 쓰였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의 첫 책이었던 '앞으로 더 잘될거야' 처럼 나는 내 인생에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비록 이것이 과대망상증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하루 하루 나아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위로를 받는다. 아마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젊은 시대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라고 믿는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가치로 재해석된다는 말은 분명히 억울하고 냉정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산 속 초년작가의 글 보다, 그저 인지도가 높은 사업가인 '정주영 회장'의 글의 훨씬 더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건 글이나 이미지는 현대에서 상품화되어 수요 공급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 좋은 글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글이며, 화려하고 기술적인 글이 아니다. 나는 꽤 많은 글들을 쓰고 있다. 내 글이 더 가치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선 그 가치의 증명을 '글'로만 해서는 안된다. 실제 현실에서 두 발로 뛰고 움직이며 나 라는 사람의 '실물가치'를 향상 시켜야 한다. 그것이 내 글들의 가치가 향상되는 일이다.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울을 바꿀 것이 아니라, 거울이 빚추고 있는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 삶은 불평 불만할수록 어둡고 더럽고 치사한 곳이고, 기회를 찾을수록 기적과 같고 아름다운 곳이니까.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Want, Imagine, Learn, Declare

그리고 Share는 책을 덮으면서 가슴에 새겨야겠다. 이처럼 완독 후 가격을 확인하는 행위가 어쩌면 내가 책에 맹신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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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날들을 좋았던 날들로
허췐펑 지음, 신혜영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우음수성유, 사음수성독.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생명을 살리는 소의 젖과 생명을 앗아가는 뱀의 독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물을 마시고 만들어진다. 어떤 것 받아들이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같은 말을 듣더라도 불 같이 화내는 사람이 있고 '허허'하고 웃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같은 상황을 겪더러다도 한 평생 상처로 간직하는 사람이 있고 다음 삶의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물을 들이마신 소와 뱀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물'의 문제가 아니라 삼켜낸 이가 어떻게 뱉어내느냐의 문제다. '불교'나 '기독교', '천주교'의 '성언'들은 고귀한 말로 포장됐지만 '긍정적인 삶'이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주고 5리를 가자면 기꺼이 10리를 가주는 것은 불쾌하게 보자면 한 없이 불쾌해질 만한 일을 기꺼이 더 내어줌으로 상대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의 감정을 빚지게 해주는 행위다.

오늘의 우리의 하루는 좋은 날이 었을까? 나쁜 날이 었을까? 뱀과 소가 먹은 물과 같이, '날'이라는 것은 과연 독과 양분 중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그저 '주어진 날'을 어떻게 삼키고 있고 어떻게 뱉고 있는가. 새로운 차, 새로운 직장, 새로운 머리스타일 그것은 과연 좋은 양분인 것일까? 그것을 삼키더라도 독을 만들어 내고 있을 수 있고 죽음, 이별, 사고는 과연 나쁜 양분인 것일까? 그것을 삼키더라도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든 일에 불평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과 모든 일에 감사해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인생을 삼키면서 '독'과 '양분' 중 한쪽을 극명하게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내부에 존재한다. '선'과 '악'도, '좋음'과 '나쁨'도, '성공'과 '실패'도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관념적인 '양과' '음'은 모두 내부에 존재하고 이 경계는 분명하지 않으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삶에 있어서 '본질'을 찾는 것 자체도 무의미 하지만, 굳이 찾아본다면 '무탈'하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왜 그 행동을 지속하느냐?'라는 질문을 꼬리를 묻고 올라가다보면 완전한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까워 질 수는 있다. 어느 날, 매일과 같이 야근하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왜 일을 그렇게 많이 하세요?" 그는 대답했다.

"돈 벌어야죠",

"돈은 왜 버시나요?"

다음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그래야 아이들 옷도 사주고 해야 하니까요."

"아이들 옷을 사주는 건 왜 해야하나요?"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해지니까요". "

"그럼 아이들이 아빠가 일하지 않는게 행복하다면 일을 그만 두실 건가요?"

"그건 안돼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니까요."

이 질문에 첫 질문은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이다. 마지막 질문에 남자가 한 대답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일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일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에 최초의 대답을 내놨을까?' 아마도 본질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다양하다. 아이들 옷도 사줘야 하지만, 여름에는 좋은 곳에 여행을 가기도 해야하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도 해야하며 양가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번듯하게 살고 있다는 생색도 내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빚춰지는 사회적 지위도 필요하고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여러 이유 중 가장 먼저 포기 가능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올라가다보면 결국 '무'의 상태에 도달한다. 아무것에도 이유는 없다. 단지, 흐름에 맞는 현상에 행위를 지속할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들며 시간을 보내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최초에 자신의 본질을 찾아 고민해봤던 '싯다르타'는 모든 것은 '부질'하다고 판단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으로 보고 도교에서는 이를 '무'라고 봤으며, 양자역학에서는 이를 '중첩상태'로 정의 했다. 모든 것은 존재하기도하면서 부재하기도 하고, 행복이면서 불행이기도 하다. 삶의 의미에 심각하게 고민하다보면 때로 삶의 무의미에 허탈함을 느끼고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사실 삶이란 본질을 찾아 해맬 이유는 없다. 삶이란 그저 이유없이 주어져 있으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일 뿐이다. 거기를 채워가는 과정에 굳이 '독'으로 채워갈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차피 채워야 할 할당량의 인생이라는 '그릇'을 부여 받았다. 비워지는 경우없이 꾸준하게 채워야만 한다면 굳이 독과 양분 중 독을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가끔 바보같은 이론인 '조삼모사'처럼 아침에 세 개냐, 저녁에 네 개냐는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몫이다. 우리는 아득 바득 저녁에 4개를 받기 위해 살아간다. 사실 우리가 받을 총 량이 7개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4개를 저녁에 받기 위해 발악한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마시멜로 이론에 따라 만족지연을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유행하곤 했다. 분명하게 주어진다는 약속이 보장된 무한한 마시멜로와는 다르게 우리 인생은 한정적이며 어떠한 약속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욜로'처럼 저녁에 주어질 3개까지 모두 아침에 받아가라는 무책임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보장된 7개에 부담을 내려놓을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과 '불행'은 제로섬 처럼 한정적 자원은 아니다. 무한대로 주어지는 이 같은 양분을 굳이 저녁에 받기 위해 아침에 아껴 쓸 필요는 없다.

책은 다소 불교적인 성격을 띄고 있지만 나는 복잡하게 이뤄진 '천상계'의 신의 존재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의 불교는 우리 인생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예수의 말씀과 부처의 말씀이 '종교'의 옷을 입고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건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종교에 관계없이 철학으로 접근하여 꼭 한번 읽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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