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몽골에 지배당하며 90년에 가까운 내전 간섭을 받는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최대 934명이다. 일본의 기록에는 553명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인식에는 몽골에 대한 감정보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일까. 간혹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일본 순사가 군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에서 민간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의 독일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일제하에서도 원칙적으로 '법치'는 있었다. 무차별적인 학살과 살상이 아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일제의 불법적 만행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감정을 우선하고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1년에는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이 일본의 동경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묵고 있는 일본인 하숙집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말다툼 끝에 이판능은 부엌칼로 하숙집 주인 두 부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게 됐고, 일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 와서는 그 형량이 7년 6개월로 감형됐는데, '정신착란'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오늘날의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로 그는 무죄감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의 문제로 감형된 사건이기도 했다. 완전 무법의 시대일 것 같은 국권피탈의 기간에도 사법은 작동했다. 어린 시절 근대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은 '악', 한국은 '선'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당시에는 정확하게 맞게 떨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가 믿고 싶던 것들이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어째서 몽골에 비해, 일본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극단적인 것일까. 추측컨데 이는 '현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아마 몇몇은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나빠야 하는데,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글'에 대한 반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울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보면 '승리한 근현대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 혁명들은 왕권을 몰아낸 의회의 승리다. 이 혁명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의회정치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히 따지고 보자면 이 혁명은 우리가 삼국시대 당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율령반포, 영토확장, 법치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 '왕권강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왕권약화의 끝을 보여주던 서구의 정치역사는 그렇게 '혁명'을 통해 '절대선'으로 바뀌는 듯 했다. 반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여러 정책 중 이부는 우리가 배운 '왕권강화'가 명분이었다.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청나라'와 떠오르던 신흥강국 '일본'과의 외교능력은 그렇게 왕권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서구 선진국과 다르게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이다. 역사는 꼭 정해진 '선'과 '악'이 있지 않다. 시기에 따라 지금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보이는 것들이 '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수학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역사'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흔들거리는 양팔저울을 떠올리곤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추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쪽에 무게를 더해간다. 현대에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과 '일본'을 적으로 두고자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도 그렇다. 안중근과 이봉창, 서재필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역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죄사절단'을 구성하여 뤼순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조의금을 모으고 대대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투사 이봉창 또한 색다른 해석이 있다. 그는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바꾸기도 했고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없이 술마시고, 영화보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서재필 또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던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했던 애국의 마음과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이게도 사람들은 결과에 맞게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존재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 대륙의 '콩산맥'이 20세기초까지 지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는 사람과 그 풍경을 묘사하는 여행가들의 말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존재하지 않던 콩산맥'을 부정하는 것은 천치 취급당하기 일수였다. 나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입맛에 맞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조금더 자극적이고 조금더 극적인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기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감정, 삶의 태도가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러가지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 할수록 시끄러워 지는 법이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역사를 볼 때면, '단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하는 교과서라는 단 한 권의 책에도 참 복잡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정확히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교과서 집필' 만큼이나 '독서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순간 - 사진작가 문철진 여행 산문집
문철진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에도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았지만, 어쩐지 '가지 못하는 것'과 '가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행서적을 좋아했지만, 근래들어 부쩍 여행서적을 자주 읽는다. 가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위로 받는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여행 서적마다 특별하게 다른 부분은 없다. 비슷한 나라에 비슷한 경로로 간다. 거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편지형식을 띄고 있다.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로에 따른 순서도 없다. 일본을 갔다가 갑자기 브라질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페이지에는 태국이 나오는 것 처럼 사건의 순서와 시간에 관계없이 나온다. 어쩐지 진짜 친구의 편지를 읽는 듯 하다. 문철진 작가는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벌써 십 수 권을 출판한 그는 최근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로 나가는 일에 부담감을 가졌다. 중독이란 이런 것일까. 그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몸에도 흘러나와 마치 담배나 마약과 같이 금단 증세가 일어난다고 했다.

여행다운 여행을 가 본 기억은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관광'과는 다르다. 삶과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훌쩍하고 여행을 떠나버리긴 쉽지 않다. 대게 여행을 하게 되면 여럿이서 함께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도는 것을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의 로망은 조용히 재밌는 소설책을 가방 가득하게 갖고가서 혼자 사색하고 글쓰고 읽고 하는 여행이다. 누구와 생각의 차이로 다투고 싶지도 않고 무얼 먹을지 고민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챙기거나, 눈치를 살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낮선 곳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싶은 욕심이다. 대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오겠다는 강박증 같은 각오를 하고 떠난다. 언제 다시 살펴보지 모를 사진을 마음껏 찍고 SNS에 남기게다는 일념을 갖는다. 추억을 갖는다는 것은 내부가 아닌 외부의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외부의 일이 너무 복잡하여 쉬며 충전하러 떠나는 길에 굳이 찾아 추억을 만들 욕심은 없다. 예전 '김영하' 작가 님의 글에서 중국을 떠나는 길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이 한 적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여행에서의 추억은 굳이 찾지 않더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조용히 사색을 하며 글을 쓰려던 여행에서도 어떤 무언가의 사건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다만 글쓰는 사람에게는 불쾌한 사건도 좋은 사건처럼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없어도 괜찮고 있으면 더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 여행에서 사진은 몹시 중요하다. 사실 말은 추억을 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했지만, 오래 전 떠났던 여행을 복기하는데는 사진만 한 것이 없다. 예전 어린시절에 가족 여행에서 아버지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계셨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의 갯수가 정해져 있던 필름카메라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담기 완벽했다. 다만 요즘처럼 어제든 수 배 장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깨닳으려는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여 단 한 컷을 찍어내려는 미세한 마음의 작동과, 언제 우연히 행복한 표정이 찍힐지 몰라서 마구자비로 찍어대는 사진과는 분명 본질의 차이가 발생한다.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굉장히 기민한 감각을 소유하게 된다. 빌어먹을 하루 중에서도 분명 감사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여 온순하고 예민한 그 행복의 감정이 숨겨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책에서는 그야말로 글보다 사진이 많다. 하지만 글보다 사진에 더 오랜기간 시선을 머물려 사색했다. 작가가 나와 같은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의미없는 한 컷을 찍고 다음 컷을 준비하는 인스턴트 같은 감정은 아니였다는 것은 사진과 함께 하는 편지글에서 읽힐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살면서, 제주에서 20년 가까운 기간을 살면서 여행에 굶주려 있는 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일상이었던 곳을 특별한 감정을 갖고 방문하고 추억과 사색하는 이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한 줄 인문학 Q&A Diary - 3년 후, 내 아이를 위한 특별한 기록
김종원 지음 / 청림Life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선생님은 '세상 그 어떤 완벽한 문제집보다 꾸준히 모아둔 오답노트 한 권이 더 완벽하다'고 하셨다. 이는 탄생 원리가 '나의 약점'에 최적으로 보완토록 되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문제집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보다, 꾸준히 모아왔던 '오답노트 한 권'을 꾸준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15년 전 사용하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그거에는 하루를 살면서 내가 느꼈던 내용이나 고쳤으면 하는 버릇, 사람을 만나면서 했던 실수 등이 투박하게 적혀 있었다.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이나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많이 해줘야 하는지, 부하직원으로써 어떤 자세를 해야하고 리더로써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날 그날에 따라 좋은 명언과 참고할 만한 글, 내가 해왔던 생각들이 정리없이 적혀 있었다. 그 것을 지금에서 보면 내가 읽어왔던 어떤 책들보다 가장 완벽하게 나를 보완하고 있다는 생각이들때가 있다.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수 백 장의 내용 중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과 해당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위인들의 격언 중에는 시대에 맞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는 내용도 있다. 계발을 위해 읽어가는 그런 내용은 완전히 나에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쉽지 않다.

가장 완벽하게 나의 단점을 저격하는 자기계발서는 내가 써야 한다. 보통이 작가들은 글을 읽는 것을 몹시 좋아하며,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다는 답답함에 직접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이유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을 것 같은 완벽한 책 한 권을 낸다. 하지만 그런 큰 포부를 갖고 집필한 책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이고 다시 누군가에는 '뻔한 말들'이 가득한 책인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살아왔던 인생과 보고 들었던 것들의 차이가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장 완벽하게 공감되는 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를 완전하게 알아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이유로 꾸준한 글쓰기는 가장 나를 잘 아는 책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손바닥에 30cm짜리 자를 후려맞으며 써야 했던 일기의 기억은 어쩐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일기를 숙제와 같은 업무로 만들어버렸던 어린 시절 교육 방식이 맘에 들지 않다. 선생님에게 사생활을 공개하고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거나 손바닥을 맞거나, 택1의 교육법으로 어쩐지 한국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에 거부감이 강하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면 개학 2~3일을 앞두고 연필을 쥔손이 노랗게 될 때까지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너무 단조롭지 않게 하루 하루의 이야기를 지어내며 적었던 일기의 기억을 되돌려 볼 때, 그런 식의 교육을 할 것이라면 '일기'가 아니라 차라리 '소설 쓰기'를 가르치는게 더 좋았을 법 하다는 생각도 한다. 나의 오래된 일기 방식은 '기록'이 아니다. '시'가 되기도 하고 '메모'가 되기도 하며, '편지'가 되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한다. 형식은 없다. 그냥 하루 하루 기록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2010년 어느날에 나는 친구에게 500불을 빌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일기에는 '00에게 500불을 빌림'이라는 한 줄이 적혀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그 돈을 왜 빌렸는지, 어디에 썼는지는 있지 않다. 그날 돈을 빌렸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오랜기간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던 희안한 습관 때문에 15년 전의 외국 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날것 그대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갑과 핸드폰을 자주 잃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나의 수첩에는 얼마를 사용했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그의 전화번호와 생일은 언제인지가 모두 적혀있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던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의 이름과 생일 전화번호를 보면 어쩐지 소름이 끼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의 곡선 끝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과 내가 친하게 지냈음을 암시하는 여러 글들을 보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쓴 일기에는 여러 인문학적 내용들이 적혀 있기도 하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빈 노트에 왜 그런 것들을 적어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것들을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이렇게 글을 모으고 쓰고 생각하는 작업은 꽤 시간이 지날 수록 '출판'의 욕심이 생긴다. 이런 출간 욕심은 세상에 없는 완벽한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바뀐다. 그렇게 완전한 책을 냈다고 다짐했어도 책의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린다. '어디서 본 글들이 가득한 책입니다.'부터 '완전 제게 딱 맞는 책입니다'까지 사람들 중 나와 생활 방식과 삶의 방향이 비슷한 이들은 공감하고 완전히 다른 이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와 일상을 함께하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잠을 자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매일 기록할 수 있는 빈 공간에 커다란 주제를 던져 주고, 하루의 생각을 짧게 기록하게 한다. 이것은 완전한 인문학 책, 자기계발서가 되며 동시에 일기이며, 커다란 선물이자, 교육서적일 수 있다. 예수가 아닌 이들이 그의 가르침과 그외의 것을 담은 성경이나 부처가 아닌 이들이 그의 가르침과 그외의 것을 담은 불경 등을 포함하여, 공자가 남긴 이야기를 그저 문자로 남긴 논어, 여러 성인들이 남겼다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아닌 이들이 글을 써서 남긴다. 이 또한 나에게 완전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 줄 가장 완전한 책을 3년에 걸쳐 집필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좋은 선물이자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다시 글들이 출판되어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할지도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 인문학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하라
한지우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빠르게 100m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술은 이미 수 백 년 전에 완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르게 100m 목적지에 도착하는 훈련을 이어간다. 이미 42.195km를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오래 전에 완성됐으나, 우리는 기계에 감동받지 않는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꺾었지만, 실제로 다시 한 번 스타의 자리를 확인하고 많은 광고와 협찬을 받아 상품성을 인정받은 쪽은 알파고가 아니라 이세돌 9단이다. 기계는 항상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듯 하지만 한 번도 인간을 위협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언제나 시대에 따라 기계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능력을 길러냈으며 이를 확실하게 잘 다뤄 더 많은 부와 편리를 이뤄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시장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무차별적이지 않는다. 어린시절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보통 비디오와 만화책을 함께 대여해 주곤 했는데, 지금 스마트폰으로 영화와 만화책을 모두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자 비디오 대여점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어떻게 보자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는 일을 하던 문선공은 현재 컴퓨터와 인쇄술의 발전으로 사라졌다. 이 또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았던 것 처럼 보인다. 대체로 반드시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져가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직업 이동성을 갖고 있다. 가령, 식품회사에서 경리업무를 하던 사람이 유통회사의 인사담당자 될 수 있으며, 텔레마케터가 치킨집 사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도 충분히 존재해왔다. 넷플릭스는 원래 DVD를 대여해 주던 대여점이 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들은 망거나 사라지지 않고 더 큰 번영을 이뤘다.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 것이다. 간혹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미래에 사라질 직업 순위'와 같은 기사를 보곤 한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그 직종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가게 된다는 불안감은 옳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과 사회는 그것을 충분한 시간을 주며 받아들인다. 즉, 점차 수익성이 없어지거나 문화적인 도퇴를 알리는 여러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하루 아침에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 지구상의 모든 비디오 대여점주들의 생존에 위협을 준 것이 아니다. 비디오 대여점은 점차 수익성이 떨어지고 시장은 새로운 기술에 점차 노출되며 공급자들은 여러 차례 더 큰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얻기도 한다.

AI는 앞으로 인류를 지배할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 잘못된 선택을 통해 우리 아이와 내 직업이 사라지는 경험은 아마 갖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동네에 하나도 없던 치킨집의 가능성을 보고 선점을 했더라도 그 외 많은 경쟁자들이 치킨집을 하거나 치킨 사업의 수익성이 없어졌다면 빠르게 다른 직종으로의 연구를 통해 발빠른 대처를 해야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우리에게만 있던 현상이 아니다. 삼성은 쌀농사를 짓던 회사에서 정미소, 유통 등 시대와 상황에 맞춰 나가며 발전해 왔고 현대나 애플 또한 그렇게 진화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사실상 1분 사이에도 꾸준하게 움직이는 주가 그래프를 보자면 우리의 미래는 어느쪽으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꾸준하게 갖고 있다. 여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특별한 직업을 선택하여 평생 편안하게 살겠다는 생각은 '공무원'이나 '농사'와 같이 일부 직종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택시를 운전한다고 앞으로 10년과 20년의 미래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자만이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렌버핏 또한 당장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실패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십 수년의 미래를 확신하는 이들 대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가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할까.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관리'를 말하고 싶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 핸리 포드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는 개발자들이 5시간 50분에 한 대를 생산하던 일을 여러 사람들이 단순 업무를 나눠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1시간 33분으로 단축했다. 이런 생산성 확장은 사실상 자동차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전문가는 관리자가 되고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근로 시간을 단축하고 제품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누구나 탈 수 없는 비싼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를 쉽고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필수품으로 이 됐다. 이처럼 사회의 변화는 무차별적인 폭력성을 갖는다기보다 수요와 공급의 라인을 왔다갔다하며 적정가격과 시장에서의 상품성에 의해 흥망이 정해진다. 대체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예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면 유럽은 앞으로 24년 뒤인 2035년에는 내연기관인 신차 판매가 중지된다. 사회가 내연기관에서 전기 혹은 수소차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에 따라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이 모두 죽는다고 볼 수 없다. 이 중 일부는 더 커다란 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흐름을 읽는 시선은 보통 독서로 길러진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의 갖는 습관이 전통적으로 독서였던 이유도 이런 맥락과 관련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석유 고갈'에 대해 꾸준하게 들어왔다. 이런 기사는 수 년 내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대부분의 매체는 대중에게 이런 불안감을 이용한다. 대중 매체가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기 위해 이용하는 최고의 감정은 바로 '불안감'이다. 우리는 언제 맹수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밤잠 설치고 경계를 서곤 했던 DNA를 갖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매체에 눈을 때지 못하게 하여 광고 수익을 얻는 단순한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독서의 대단히 중요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할 수록 인문학의 중요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미래는 분명 불투명 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이건 과거던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했으며, 인문학과 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승리했다는 것은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들 - 사물에 관한 散文詩
류성훈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가장 완벽하게 모사하는 것이 곧 정답이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것을 가장 완벽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3차원의 어떤 것을 2차원의 평면 위에 모사하는 작업에 커다란 의미는 있지 않았다. 철학이나 사유보다는 가장 완벽한 모방만이 답이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고민했다. 과연 3차원의 세상에 있는 것을 2차원으로 옮겨 담는다면 본질의 어떤 것이 누락되고 있지는 않는가. 미술은 그렇게 발전했다. 빛에 의해 가려지는 부분과 각도에 따라 숨겨지는 부분까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에 최대한 가까운 것을 담고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예술은 점차 고차원적이게 변해갔다. 글도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숙제로 작성했던 방학 일기장에는 내가 그날 무엇을 했는지가 적혀져 있다. 차원 높은 인간의 하루를 어떤 행동을 했는지로 기록하는 것이 고작 일기에 담는 모든 것이었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는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보다 중요했던 시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3차원의 것을 2차원에 옮겨 담거나 24시간을 한 장 남짓으로 옮겨 담을 때, 꽤 많은 정보가 누락된다. 이 중에서 가장 낮은 차원의 것만 옮겨 담는 것이 본질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에는 '사유할 명분'이 있다. 사유해야하는 이유나 구실이 분명하게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것과 나만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함께 사용하던 물건이 나를 당시로 되돌리곤 한다. 21세기 현대과학은 아직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못했지만 언제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물건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사물들을 가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 조차 여러 '사물'에 흔적을 묻히며 살아왔으니, 현대인들에게 사물이란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대체적으로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그것이 담고 있는 철학을 좋아한다. 새것이 갖고 있는 순수함보다는 오래된 것이 갖고 있는 철학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순수함이란 앞으로 철학이 남을 수 있는 빈자리가 많은 상태임으로 이것에 대한 기대감과 오래된 것의 철학은 분명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에는 '정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체성은 '흔적'을 통해 발생한다. 인간도 정체성과 자아는 '흔적'에서 출발한다.

흔적은 그래서 몹시 중요하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졌는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그 것은 그 사람의 미래를 대략 가늠해 보게 한다. 사물에는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한 사물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보며 끝없이 사유하는 이 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나 또한 이런 비슷한 훈련을 재미삼아 하곤 한다. 나는 보통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새로운 것을 접하기보다 이미 봤던 영화나 들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경향이 있다. 하나를 무한대로 반복해 보는 이런 습관은 자칫 누군가에게 '지겹다.'라는 감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다른 시선과 방향을 찾는 놀이를 한다. 가령 영화를 본다고 할 때는 감독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배우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며, 주인공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또한 악당의 시선이나 작은 역할의 조연의 시선에서 보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가'라는 질문을 하나 던지면 시선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해석이 발생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곡가의 시선, 작사가의 시선, 가수의 시선, 가사의 이야기나 리듬을 듣기도 한다. '가수는 이 구절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며 녹음을 했을까' 이런 사유의 놀이는 쓸때없지만 참 오래된 나의 생각 놀이법이다.

항상 잔뜩 쌓여 있는 정보의 책과 1차원의 행동을 담아둔 이야기 책을 보다가 사유할 수 있는 책을 오랫만에 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고민하고 생각해본다. 앞서 말한 미술처럼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 뒤로 보여지지 않게 숨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찌그러진 만년필이 있다. 가족여행을 가던 도중 안 주머니에 넣어둔 만년필이 실수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며 뚜껑 윗부분이 찌그러진 것이다. 이 만년필은 몰블랑의 제품으로 공항에서 구매했던 것이다. 반짝 거리는 새 제품을 아껴 쓰느라 항상 조심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닥에 떨어지고 난 뒤에는 완전한 나의 흔적이 묻어버렸다. 깨끗하게 새 것 처럼 쓰겠다는 마음은 어디에도 있지 않고 완전히 편하게 이것을 사용하게 됐다. 사실 원래 사물의 본질은 사용에 있다. 그리고 그것과 나의 관계는 흔적에 있다. 나는 새로운 수첩이나 노트를 받으면 언제나 첫번째 페이지에 더러운 글씨로 지저분하게 메모하곤 했다. 가급적 새것에서 멀어질수록 편해졌고 내 것임이 확실해졌다. 깨끗하게 사용하고자 했던 노트나 수첩은 항상 '북!'하고 찢어 '새거다움'을 유지하고자 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십 수 년 뒤에 앞 장이 수장이나 찢어진 노트를 볼때면 내가 찢었던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몹시 궁금할 때가 있다.

사물은 내가 잊어버릴 기억을 흔적이라는 방식으로 저장하는 메모리 같은 것이다. 앞만 달려가던 세상에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했던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여러 기억의 흔적을 묻혀두고 나의 선택을 받길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분명 재밌는 사유 놀이다. 오랫만에 조용한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은 글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