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가 만든 질서 - 인류와 우주의 진화 코드
스튜어트 A. 카우프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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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지구에 원시세포가 처음 탄생했다. 이는 움직이거나 기어다니지도 못했다. 그저 삼투 펌프에 의해 겨우 '대사' 정도만 하며 '생명'으로 겨우 분류되는 어떤 존재였을 뿐이다. 겔의 형태로 흐르다가 고이는 일이 이들의 존재의 전부였다. 축축한 화산의 어느 물 웅덩이에서 시작한 이런 작은 대사의 시작은 생명이 되었다. 우리가 추측건대 이들이 시작한 유전자 변이의 독특한 특성은 지금의 우리의 속에도 담겨져 있다.생명이라는 고귀한 탄생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이란 아주 고차원적인 물리적, 화학적 반응들이 우연찮게 이 땅 위에 생겨난 뒤에 만들어졌다. 작가인 '스튜어트 A. 카우프만'은 세계적인 복잡계 이론생물학자다. 그가 생며의 탄생에 대해 이처럼 도발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에 도전한다. 대략 40억 년 전, 아주 먼 곤드와나 대륙 서해안에 원시 생명이 탄생했다. 흐릿한 햇빛으로 겨우 따뜻해진 지구의 축축한 물웅덩이에는 밤이오고 낮이오기를 반복했다. 이들은 말랐다가 젖었다가를 반복하며 대사하고 변이했다. 의지없이 수동적으로 다른 물질을 흡수했다가 뱉어내기를 반복 했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먹거나 뱉거나 배출한다고 부르기 조금 애매한 형태의 반복이었다. 그들의 손자와 손자. 그리고 그들의 손자는 조금씩 번영해가며 지구를 덮어 갔다. 그들은 떠더니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고 젖다가 마르면서 결합하고 분열했다. 어떤 세포들은 우연하게 바위에 붙어 정착형 섭식을 하고, 다른 어떤 세포는 겨우 꾸물대다가 다른 원시생물의 성분을 흡입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시작한 원시세포는 수동적 출렁거림과 마름과 젖음, 부딪침과 정착함, 흡수와 배출 등의 행위를 반복했다. 4,000,000,000년 전에 생명은 조금씩 성격이 다른 어떤 것들로 나눠졌다. 고작 생물로 보기도 어려울 것 같은 벼룩이나 바위 위에 이끼나 지금 고성능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인간이나 그 뿌리의 뿌리, 그리고 그 뿌리의 뿌리를 살펴보면 아주 기가막힌 우연에 의해 겨우 갈래가 나눠진 운좋은 세포와 그렇지 못한 세포일 뿐이다. 이런 기가막힌 우연과 물리학으로 말하기 모호한 부딪침과 마름, 젖음을 누가 감히 물리학과 화학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만물은 수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 피타고라스 조차 이를 '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고작 나눠 떨어지지 않는 '무리수'의 발견으로 위기를 맞이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논리처럼 우리의 물리와 화학은 과연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과연 타당한 과학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종은 점차 다양해지면서 생태적 지위를 나눴다. 먹히는 세포와 먹는 세포가 생기고 조금더 고차원적인 대사를 하는 세포와 단순한 대사를 하는 세포로 나눠졌다. 각기의 세포는 최초 국가가 산업화 이전에 각기 따로 발전하는 모종의 어떤 산업들이 '산업혁명'이 되자, 갑작스럽게 하나의 유기체 모양을 형성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 처럼 성장했다. 자동차 산업이 정유산업을 발전시키고, 정유산업이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며 상호 상생관계로 성장해가듯, 도로, 시설, 공장, 소비 등의 복잡한 유기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의 종의 폭발을 야기 했다.

세계는 숫자와 숫자를 더하고 빼는 '수'가 아니며, 이를 바탕으로 한 물리와 화학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과 생물의 시작은 '서사'며 '이야기'이고 '우연과 필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다. 얼핏, 물리학 전체를 부정하는 듯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생명의 첫 출현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무질서가 만든 질서'란 결국 우리가 정의 내린 '수와 물리, 화학'이라는 질서 속에 생명과 우주를 담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어차기 우리가 진리로 여기던 '고전물리'가 '양자역학'을 만나면서 전혀 들어먹히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맞이 한 것 처럼, 우리가 지금껏 이해하려던 물리적, 화학적인 생물의 정의는 모순을 피하지 못한다.그는 그렇게 세계적 천재들에게 수여되는 맥아더 펠로십, 하버트 사이먼 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논리는 '다윈'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어떤 '원인'에 의해 일어났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논리적 모순에 의해 '가능하게 함'에 의해 일어났다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심장은 혈액을 몸 구석 구석으로 펌프질 하지만, 그것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진화했는지, 혈액을 펌프질 하기 위해 진화했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정의 내리는 과정이 너무 '인간의 사고'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됐다는 결과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한 가운데 어떻게 바뀌어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드디어 비교적 최근의 과학인 '양자역학'을 만난다. 필연적인 공식에 의해 생겨났다기보다 '일종의 확률적'으로 존재했고 오로지 '가능성'에 의해 일어났다. 생물의 진화를 기존 과학으로 설명하기에 그 '확률'이 너무나 터무늬 없다. 결과를 알고서 생각하기에 그저 '그 기가 막힌 우연들의 지독한 시간을 만나 생겼다'로 정의 할 수 밖에 없다. 정확히 원인과 결과에 의한 고전 물리학을 생명공학에서 분리하고 '양자역학적 생명공학'을 이야기 한다. 생명의 진화는 말 그대로 알 수 없다.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해 앞으로의 생물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명은 '양자역학'의 원리로 어떤 확률적 가능성에 의해 존재하고 사라졌다. 어떤 물리법칙도 생물권의 창발을 함의하지 않는다. 기가막히게 들어 맞던 고전 물리가 현대에와서 삐걱거리면서 정답으로 정의되던 생명의 탄생에도 여러가지 시각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과학이 만나는 최대의 난제인 '알 수 없다'가 최대의 정답값이 되어버리는 논리를 지은이는 한다. 책은 가볍고 얇고 짧다. 하지만 책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읽기는 쉽지 않다. 다만 생명과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누군가라면 호기심을 갖고 읽어볼만 하다. 이 책의 부제는 'A World Beyond Physics'로 물리학을 넘는 세계를 뜻한다. 생명에 물리학을 배제 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유사과학이나 사이비로 전락할 수 있지만, 그런 접근을 통해 현대 과학을 접하고 있다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들어 올 여지가, 지동설이 우리에게 들어 올 여지마저도 있기 어려웠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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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영화가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김혜남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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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15일, 뉴욕크리스티 경매에서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91cm의 토끼 조각품이 911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은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의 한화 가치는 대략 1084억 원이다. '제프 쿤스'의 '토끼'는 인터넷 서칭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술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마트에 파는 토끼모형 풍선이다. 이것이 1000억의 가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이런 알 수 없는 현대 미술은 내가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으며 그 사장은 매년 더 커지고 있다. 미술 시장 거래 규모는 대략 674억 달러로 우리돈 76조 6천 억원이 넘는다. '토끼'가 거래되던 2019년 기준으로는 한 해 만에 7%나 성장했다. 이쯤되면 '비트코인'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 전까지 가장 비쌌던 현대 미술 작품은 '풍선 개'였다. 이 또한 626억 원이나 한다. 이 풍선 개의 모양은 더 아이러니한데, 길다란 풍선으로 길거리에서 만들어 주던 풍선 개의 모양을 하고 있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표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면을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매우 간단한 한 문장을 남겼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혹은, 부처는 우리에게 그만큼 짧은 문장을 남겼다.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각자가 사는 인생의 종류와 상황은 다양하지만, 그 어느 때인가, 짧으면서도 그 문장 안의 공간이 낙낙한 말들은 우리 생각의 여지를 넓히면서 때에 맞게 위로 하고 힘을 준다.

 현대 미술은 작가가 관객에게 겉모양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정신적 선물을 주는 것이다. 정작 만들어낸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이 무엇을 선물했는지 알 수 없다. 보기에 따라 수 천 혹은 수 백 조 개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그 빈공간의 여지를 넘겨 주는 것이다. 해석의 여지가 적어 질수록 관객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의 범위가 그만큼이나 좁아진다. 점 하나 찍고 10억의 가치를 한다는 현대 미술은 사실상 무한대의 표현을 하고 있는 샘이다. 예술 영화라고 평가되는 영화들을 보자면 가끔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갑자기 뜬금없는 대사가 맥락에 맞지 않게 나오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 한동안이나 노출된다. 여기에 온갖 평론가들은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아 그것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설명하곤 한다. 다만 그것은 정답일 수 없다. 그것은 그 평론가가 해석한 해석일 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대뜸, 알 수 없는 대사가 하나 나온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마주하면서 형사(송광호)는 지긋이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한국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로 꼽히는 이 명품 대사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해석으로 설명된다. 다만, 이는 사실상 '송강호' 배우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대사다. 깊은 감독의 철학이나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다고 밝혀졌다.

 사실상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넘기는 행위는 가끔 난해하지만, 더 가치 있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백의 미' 혹은 '미완성의 미학'이 그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이이러니하게도 더 치솟았다. 이은성 작가의 '동의보감'은 작가가 '춘하추동' 4권으로 기획했던 책임에도 3권까지만 존재하고 작가가 운명을 달리했다. 그로인해 그 소설은 결국 3권으로 출시하여 '미완'으로 남게 됐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은 그의 삶이 젊은 시절로 끝이 나며, 미완성인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해석을 할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영화 뿐만 아니라 '책'도 그렇다. 사실상 이처럼, 사고의 여지를 넉넉하게 비워 두는 매체는 활자 매체다. 활자에는 '영상'도, '소리'도 없다. 그 모든 것을 관객에게 넘겨주고 곡선과 직선으로만 이뤄진 정보활자만 넘긴다. 이런 이유로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간혹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에 반에 영화는 꽤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주인공의 음성과 표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양한 기법을 통해 감독은 영화 만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시도를 한다. 이것이 현대 영화가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냥 표면적인 내용만 이해하고 보기에 그 깊이가 상당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는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해석을 공유하고 전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 님의 말처럼, 작가는 작품 속에 무언가를 숨겨 놓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용하는 이가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플랫폼의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과 같다. 김혜남 작가님은 이번 책을 통해 그가 느꼈던 영화의 생각을 담았다. 봤던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기준으로 영화를 살피며 보통의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재미난 캐릭터들의 이면을 찾아 해석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과 가치관, 지식을 동원하여 해석한 영화의 이야기는 또다른 재미를 만든다. 그 글들을 보면 다시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영화도 있다. 그의 이야기 중 '늙음'에 대한 말이 꽤 와닿는다. 그의 문장은 플라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플라톤은 '늙음에 만족할 때 늙음을 지탱할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늙음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이것은 젊음에도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플라톤의 말을 빌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영화 '황금연못'에서 노인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나이듬'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지능은 80세까지 증가하며 우리는 점차 쇠퇴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전속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롱펠로는 80세 때 대학 50주는 강연에서 'Morituri Salutamus'라는 시를 읊었다.

카토는 80세에 그리스어를 배웠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대왕을 쓰고,

시모니데스는 동료들로부터 시에 관한 상을 받았다.

80세가 넘은 바로 그 나이에......

초서는 우드스톡에서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들으며

60세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썼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마지막까지 씨름하며

80세가 지나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사실상 우리의 하루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모든 상황과 현상은 제일 처음 말했던 '현대 미술'과 같다. 언제나 해석에 따라 그 가치가 열려 있으며,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서글퍼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고귀한 성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영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은 즉, 자기 삶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을 갖는 훈련으로 만들고 언제나 자기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할 수 있다. 600억이 넘는 풍선개나 1000억이 넘는 토끼처럼, 나의 삶에 어떤 해석의 여지를 남겨 뒀는지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100조나 1000경의 가치가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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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재미와 역사가 동시에 잡히는 세계 속 일본 읽기,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조재면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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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다. 아주 명쾌하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수 차례 민주화 운동과 국권 피탈 등의 근현대사로 주권과 권력에 대한 정의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사실 이처럼 헌법 전문은 그 국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모두가 비슷할 것 같은 민주국가들 사이에서도 전문의 내용은 각기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앞서 말한대로, 주권과 권력의 주인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반면 서구 다른 나라의 경우는 '종교'와 '평등'이 그 우선 순위에 놓여 있다. 아마 공화정을 채택하던 역사적인 배경 때문일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 헌법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잇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교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의 헌법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를 존중한다. 영국의 헌법은 이렇다. "교회는 자유로우며 그 모든 권리는 온전히 유지되고, 자유 또한 침해될 수 없음을 국왕의 상속인에게 영구히 신의 이름으로 허용하며, 이 특허장으로써 확인한다." 영국은 국왕과 상원, 하원이 국민을 대표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프랑스의 헌법 저문은 이렇다. "프랑스는 불가분적,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없이 모든 시민이 법앞에 평등함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 프랑스는 지방분권화된 조직을 갖는다." 평등함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라는 정체성을 확인 할 수 있다. 독일의 헌법은 조금더 명쾌하다. '인권'이 핵심이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우리와 닮아 있다는 일본의 헌법 1조는 무엇일까.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의 보유자인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한국과 일본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굉장히 다르다. 대한민국 이전부터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민중에서의 혁명이 잦은 편이었다. 일본인들의 시선으로 한국인들은 항상 불만이 많고 성격이 불 같아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급진적이고 비약적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대체로 논리나 사고방식이 철저한 순서와 단계를 따라야 하고,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나은 방향으로의 개선과 선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일본인들인들은 회의를 좋아한다. 다만, 빠르게 결과를 내려 놓는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은 다수가 합의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단어 중 "Kaize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는 일본의 '카이센'의 영문표기인데, 일본 회사의 경영 방식을 이야기한다. 우리말로 '개선'이라고 쓰는 이 단어는 일본의 많은 산업 분야에서 행해졌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영 방식을 대표하는 말로는 '초격차'가 있다. 삼성전자의 경영방식에서 유행한 말이다. 이는 리더와 경영자들이 더 빠른 투자 판단과 리드로 경쟁사가 경쟁 의욕이 사라질만큼 저만치 따돌려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쉽게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했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를 보면 알 수 있다. 몇 차례 왕조가 뒤집어지고 혁명과 전쟁, 국가부도 등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개선'이 아니라, '전복'이 목표인 셈이다.

해외를 나가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매우 가깝다. 서로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 금새 친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깊게 알면서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불편해하고 한국인은 일본인을 답답해 하는 경우가 적잖다. 어쩐지, 국민 성향만 보기에, 한국인은 조금 무례하거나 자유분방하다는 미국인과 그 성향이 닮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이런 '카이센' 문화는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일본인들은 전통을 유지하고 개선해 가는 것을 매우 잘한다. 어린시절 TV를 보면 일본의 장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곤 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인 '곤고구미'는 578년에 창업한 회사다. 자그마치 1440년 전에 백제 장인인 유중광이 성덕태자의 초청을 받아 사천왕사를 세우며 창업한 회사다. 일본은 이처럼 천 년이 넘은 회사가 무려 20개나 있다. 이들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방향을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정치 마저 세습한다. 세습 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의 무려 5배나 된다. 이들은 2대 뿐만 아니라 3대까지 세습하는 '직업 정치인'이다. 우리의 정치는기존 기성집권 세력에 대한 반발로 정권을 뒤집는 일이 다반사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무려 반 세기 이상 정권 교체가 없기도 했다.

일본의 장기불황에 따라, 과거 일본의 영광을 만들었다는 덕목들은 이제와서는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는 원인들로 손꼽히고 있다. 부동산 버블에 따라 경 단위를 훌적 넘어버리는 일본의 빛에 대한 시각도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 밖에 장기 불황으로 그 어떤 욕구도 없어서 득도했다는 사토리 세대와 창의교육을 하기 위해, 시도했던 실패한 교육제도인 유토리 세대를 비롯해 여러가지 세대문제와 경제 문제가 일본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다. 언제부턴가는 당연했던 종신고용이 사라져간다. 어째서 일본에는 브라질 사람들이 많은지, 일본은 왜 해외 원조를 많이 하고 있는지, 왜 일본의 방사능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닌지, 책은 아주 자세하고 흥미롭게 다르고 있다. 책은 2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길지 않는 분량에 흥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요즘 한일관계가 많이 좋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깝고 함께 해야하는 이웃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해결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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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클로에 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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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하루에 심장이 몇 번 뛰는지 알아?"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

"10만 번, 그중에 한 번이라도 뛰지 않으면 중태에 빠지고 두 번 다시 뛰지 않으면 죽어."

죽음을 앞 둔 '갑'이 '을'에게 3억을 제시하며 100일 간 사랑하고 버킷리스트를 달성하자고 제안하는 독특한 계약을 설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소설같은 소재에 소설같은 전개 방식이 이어지는 로맨스 소설이다. 곧 죽을 여자와 100일 간 연애를 하면 3억을 주는 흔히 말하는 '꿀알바'에 지원한 주인공은 계약 조항 중 하나인 "갑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계약은 종료된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흔히 시대를 나눌 때,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을 위한, 그들의 소설이다. 이 둘이 바라보는 '죽음'은 참 대수롭지 않지만, 점차 시간이 다가오고 감정이 깊어질수록 피하지 못하던 죽음의 무게가 그 둘 위로 떨어져 앉는다. 죽음이 가벼운 농담의 소재가 되는 그 둘은 '철 없는 어른 놀이'를 하면서 그 어떤 어른도 맞이해 본 적 없는 '죽음'이라는 무거움으로 다가간다. 그들에게 삶은 하나의 아름다운 놀이다. 놀이에는 항상 규칙이 있지만, 진정한 재미는 그 규칙을 위반할 때 나온다.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계획을 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삶은 언제나 내가 예상하는 바와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죽음을 앞 둔 소녀와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공유하던 '을'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처음의 자신과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잔혹하게도 나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송두리째 가졌다."

사무치도록 공감되는 말이다. 영원할 것 같기에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5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조금은 불편하거나 고통이라고 느껴지는 시간, 그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것이 끝이 나고 나면, 그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내 인생을 빗대어 보더라도 그렇다. 내가 살았던 '빈공간'을 여러 차례 마주하곤 했다. 졸업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교실에 정적을 제외하곤 아무런 흔적도 없어졌을 때, 나는 그곳에 서서 항상 마지막을 바라보곤 했다. 군 전역을 할 때도 모두가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 조용한 부대는 생활하기에 지옥같았지만, 떠나갈 때는 다시 보지 못할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해외의 이곳과 저곳을 다니며, 투닥투닥 거리며 살았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공기 정도만 남게된 그 공간도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인생이 끝없다고 여기며 하나 둘 끝마칠 때마다, 인생은 어떤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지나온 길은 다시 나에게 오지 않았다. 과거가 그리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느끼던 시간과 감정은 다시 그곳에 있지 않았다.

사람은 일정 분량이 넘어가면, 그것을 가늠하는 예측량을 '무한대'로 놓는다. 대략적인 1리터와 10리터의 물병을 구분하면서도 흘러가는 강물이나, 호수,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무한대로 측량한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반드시 끝이 있는 삶을 보내면서 우리는 그것이 꼭 무한하다는 착각을 한다.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나의 시간은 그처럼 소중하다. 소설은 여기서 유한한 삶의 끝을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나 삶의 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조금 가까워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 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소중함은 끝으로 지나갈 수록 더 크게 느끼고, 그것이 지나갔을 때 절정으로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멀어져감에 따라 잊혀져 간다. 별거 아닌 순간도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보내게 될 평범한 오늘 하루는 우리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다만, 비슷한 형태의 다른 하루가 내일도 기다릴 것이고 그것이 무한대 처럼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어느하나 소중하지 않게 흘려 보낼 뿐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송두리째 갖고 간다는 것은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꾸준하게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며 그들의 삶과 시간을 앗아간다.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들에 대해, 내것 만큼이나 상대 것도 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 인생을 앗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기에 따라 굉장한 민폐일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기에 따라 참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을 좋은 시간과 감정을 보냈다고 만족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은 그래서 대단한 능력이다. 흔히 소설의 전개 방식은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다만 시한부의 사랑을 두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번 씩 해보는 '로망'이다. 소설은 굉장히 젊고 유쾌하다. 젊은 세대가 맞이하는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이 전하고자하는 주제와 내용보다는 그 이야기가 끌고나는 연애와 끝의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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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프로텍터 - 생명의 물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 2021 칼데콧 대상 수상작
캐롤 린드스트롬 지음, 미카엘라 고드 그림, 노은정 옮김 / 대교북스주니어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My mom always said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인생이란 초콜렛 박스 같은 거라고 엄마가 항상 말했어요. 어떤 걸 먹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거에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포레스트검프(1994)'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포레스트 검프는 무릎 위에 초콜렛박스를 얹어 놓고, 하나를 집어 입으로 넣는다. 어떤 바보가 우스꽝스럽고 어설프게 살아가면서 성공하는 코미디 영화로 알고 봤던 30년 전 영화다. 영화는 새하얀 깃털과 함께 시작했다. 자유롭게 바람따라 날아다니는 깃털은 숲을 지나기도하고, 달리는 차가 있는 차도를 스치기도 하며, 어떤 이의 어깨 위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그런 깃털이 다시 날아와 주인공의 발 사이에 사뿐하게 가라앉는다. 가벼운 인연을 소중히 대하는 주인공은 우연하게 온 깃털을 집어들고 여행가방 안에 잘 보관한다. 인생이란 그처럼 가볍게 살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며, 위험한 곳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런 우연과 우연을 겪은 인연과 상황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던 영화의 오프닝은 어린시절, '그냥 깃털이 날아간다.'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를 가졌다. 인생이란 왜 초콜렛 박스와 같을까. 도저히 이해불가한 대사를 던진 감독의 의도가 읽혀지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 대사의 깊은 뜻을 알게 됐다.

요즘에는 초콜렛이 획일적인 모양으로 포장되어 있다. 혹은 각 포장지마다 그 맛이 표기가 되어있다. 하지만, 30년 전 초콜렛 상자의 초콜렛은 모두 같은 포장지에 쌓여 있었다. 그 속에는 다른 맛들이 있었다. 과연 무엇을 먹을지는 알 수가 없다. 직접 까서 먹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어떤 초콜렛을 먹을지는 먹기 전에는 알 수 없으며, 임의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운이고 우연일 뿐이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배경 지식을 알지 못하고 봤던 영화 속 명대사는 그저 의미없는 한 장면으로 머릿속 어딘가를 쏘다니다가, 우연하게 숨은 뜻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시기, 담임 선생님은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고등학생도 모를만한 역사 이야기를 해 주시곤 했다. 그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셨다. 사실상 다수의 성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휴정협정일'을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껏, 그냥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다. 1995년, 당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 나이가 많으신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하지 않으셨다. 진짜 살아 있는 역사를 봐야 한다고 TV를 트셨다. TV에는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나질 않는다. 다만, 선생님은 "너희는 지금 역사를 보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당시 내가 봤던 것은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의 수 천 억원의 비자금에 대한 기자회견이었다.

1997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치와 낭비가 국고를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TV와 기타 매체에서 꾸준하게 올라왔다. TV에서는 '파산', '도산', '해체'가 연이어 보도됐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아버지는 IMF라고 했다. 이후로 나는 IMF가 '국제통화기금'이라는 사실보다 '국가부도'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착각했다. 2001년 3월 21일. 어떤 인물의 장례식이 뉴스에 비췄다. 인물이 몸담고 있는 기업은 해체됐고, 얼마 뒤 그 인물의 장례식 장면을 보고 아버지는 너무나 아쉬워 하셨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이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에 너무 큰 인물이 졌다고 하셨다. 지금에와서는 '정주영'이라는 인물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는 이의 장례식을 반드시 보게 만드셨다. 어린시절 얼핏 들었던 기억들은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다가 성인이 되고 다시 나를 학습시켜준다. 아이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아이의 토양에 어떤 씨앗을 뿌릴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무기력하게 갇혀 있는 '공주 님'이 용감한 '왕자 님'이 구해 줄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동화책'보다는 무언가 남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검은 뱀'은 스치며 물을 오염시킨다. 물은 여러 생명을 파괴한다. 검은 뱀의 모양은 '송유관'처럼 길다. 붉은 혀가 낼름 거리며 불 꽃처럼 빨갛다. 우리 아이의 머릿속 어딘가에 이 모습이 들어 앉았다가 성인이 된 어느 순간, 번뜩이며 새싹을 돋아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 대한 교육을 담은 책은 반드시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교'는 1976년 세워진 '한국공문수학연구회'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공문수학'이란 일본의 '구몬수학'의 한문표현이다. 대교그룹은 20대의 강영중 회장이 소규모 그룹과외를 시작으로 성장한 곳이다. 뼈 속부터 '교육'을 기반으로 한 기업의 출판물이다. 믿음이 굉장히 가는 철학있는 기업이다. 아이들과 함게 읽은 '워터프로텍터'는 미국의 노벨상과 같은 칼데콧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글과 그림을 담당한 작가님은 인디언 출신이다. 작가인 캐롤 린드스톰은 2016년 4월, 인디언 마을의 실제 이야기를 이처럼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북미 자치 구역의 원주민들을 대형 송유관 공사로 부터 지키자는 운동이 배경이다. 해당 내용은 실제로 북다코다주 바켄(Bakken) 유전 지역에서부터 남다코다주, 아이오와주를 거쳐 일리노이주까지 4개주를 가로지르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1900km를 잇는 파이프 라인 프로젝트다. 여기에 원주민들이 저항하는 내용이다.

2016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여 '셰일혁명'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던 시기다. 셰일혁명은 사실상 '물'과 굉장히 연관있는 사업이다. 오일 셰일(oil shale)은 석유를 품은 일종의 퇴적암층인데, 진흙과 같은 알갱이가 석유와 함께 굳어진 암석이다. 이 암석에서 석유를 추출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액을 고압으로 분사하여 암석을 깨뜨리며 수평으로 시추해야하는 셰일 시추 공법은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공법이 얼마나 물을 낭비하는지는 '중국'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물부족국가인 중국은 실제로 미국보다 훨씬 많은 양의 셰일매장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은 셰일을 생산해 낼 수 없다. 그 이유는 당연히 높은 압력으로 지층을 부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며 환경에 엄청난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시기가 바뀌고 미국의 대통령과 미국 정책이 바뀌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과 셰일 규제를 내세우고 있다. 아마 현재에 와서는 해당 이슈가 잠잠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다음 대선에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다시 또 정책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가볍게 읽은 동화책이자만, 우리 아이가 나중에 어렴풋 기억나는 이야기와 역사를 섞어 살고 있는 현재를 해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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