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를 재편하는 금융 대혁명 - 하버드대학 최고의 디지털 금융 강의
마리온 라부.니콜라스 데프렌스 지음, 강성호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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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물품을 미친듯이 생산해주는 시대. 이를 '산업혁명'이라고 불렸다. 공급력은 소비를 넘어섰다. 소비보다 빠른 시대는 '대공황'이 됐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은 '재고'를 쌓았다. 자본주의는 시원하게 돈이 돌아야 한다. 경제 순환의 속도가 느려지자, '동맥경화'가 일어났다. 세계는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경제는 소비과 공급 두 날개로 날아간다. 공급만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과 '소비'는 인간의 몫이다. 경제의 핵심은 다시 봐도 '인간'이다.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을 넘어 섰단다. 훨씬 높은 생산성의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잃는다고 했다. 그래도 인간은 꾸준히 '가계부채'를 늘려가며 소비를 진작했다. 시장이 소비하지 못하자 미국 정부는 '후버댐'을 지어 경제 성장을 이끌어 냈다. 뉴딜 정책으로 댐 건설을 건설했다. 건설 노동자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카지노를 찾았고 그렇게 '라스베이거스'가 성장했다. 비슷한 시기 자동차 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포드'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주 5일 근무라는 파격적인 근무제도를 도입한다. 이로인해 자동차 수요는 물론 소비력이 함께 늘었다. 자동차 생산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며 도로와 항만 등의 사회기반시설이 구축됐다. 고무와 철강, 석유 등의 관련 산업이 함께 성장했다. 인간이 중심이 된 생산과 소비의 결과다. 기계는 인간이 더 많은 생산을 도울 수 있도록 도왔다. 자판기가 늘어나도 카페의 갯수는 늘어났다. 인간의 소비력이 높아지면 기계는 인간을 더 쉽게 일하도록 돕고 더 많이 생산되게 돕는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자. 자동차 산업은제조업체와 판매 딜러로 분화했다. 시장의 파이는 더 커졌다. 금융은 제조와 얼마나 다를까. 금융도 마찬가지다. 금융 상품은 제조와 판매가 분리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핀테크는 판매를 담당하고 은행은 금융 상품을 제조하게 된다. 결제가 간편해지자 소비는 늘어난다. 공급과 소비가 균형적으로 늘어나면 시장은 커진다.

도서 '팩트풀니스'를 보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공감한다. '엠페사'는 케냐의 통신사 사파리콤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신사인 보다콤의 전화를 이용한 비접촉식 결제, 송금, 금융 서비스다. 엠페사가 케냐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낙후된 통신 인프라 때문이다. 케냐는 유선전화 단계를 건너 뛰고 바로 무선통신 기술 단계로 진입했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 확장되면서 기존 산업을 갖추지 않은 사회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제3세계의 경우 금융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 '핀테크'라는 기술을 만난다. 기존 산업이 규모를 갖고 있는 경우, 산업의 이동은 쉽지 않다. 다만 온라인 기술의 보편화는 기존 산업 규조를 갖고 있지 않은 국가들에게 빠르게 확산이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온라인 전자 상거래와 SNS가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의 급성장은 사실 금융 인프라가 부족했기에 가능했다. 대부분의 거래에서 통용하는 지급 결제 서비스는 중국의 농촌과 저소득층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저렴한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는 이제 '알리페이', '텐센트', '텐페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인과 케냐인들 다수가 은행 계좌가 없고 불편한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장이다. 원래 케냐인들은 장거리에 있는 아들에게 부모가 송금하려면 직접 차를 타고 현금을 운반해야 했다. '미타투스'라는 미니 버스에 운전사에게 돈을 배달하길 부탁하는 방법으로 송금을 했다. 이 송금 방식은 수수료도 비싸거니와 도중 도난이나 분실되는 일이 잦았다. 스마트폰의 가격이 저렴해진 요즘 시대에와서 금융은 가장 빠른 속도로 금융 사각지대를 넓게 포용했다.

시대가 맞아서 그런지, 시대를 맞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디지털 결제 수단이 고도화, 간소화되자, 마침 세계적 팬데믹이 일어났다. 비대면 시대를 전세계가 함께 맞이하고 사람들은 더 빨리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기준으로 중국 온라인 결제 사용자는 대략 8억 5천 500만정도 된다. 이는 유럽 전 인구보다 많고, 미국과 일본, 한국을 합친 숫자보다 몇 배나 많다. 중국가 동남아시아는 젊은 인구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많다. 이런 이유로 더 빠른게 신기술을 받아들였다. 얼마 전 금융당국은 금산 분리 규제 완화에 불을 당겼다. 전통 금융권으로 포용하기 힘든 영역까지 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은행을 포함하여 금융회사들이 가상자산업에 진출할 여지가 많아졌다. '코인'이라는 비주류 금융 자산을 양성화하여 산업 전반에 활용될지가 기대된다. '부를 재편하는 금융 대혁명'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코인'에서 출발하기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사실상 '코인'에 대해 불편한 이유 '관리', ' 변동성', '활용' 정도다. 전세계가 '코인'을 활용하기에 '코인 시장'의 규모는 터무니없이 작다. 또한 너무 커다란 변동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코인'의 변동성과 규모, 활용은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 소수가 거래하기 때문에 거래량이 적고 물량이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심하게 발생할 뿐이다.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관리'다. 투명하게 세수를 걷고 금리를 통해 경제를 완만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기에 '코인'은 사실상 현재 체제이 적합하지는 않다. 또한 '달러'라는 금융 패권을 넘어서야 하는 것도 힘들다. 고로 금융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중앙통제 화폐와 성격을 공유하며 성장해 나갈지도 모른다. 경제는 어떤 산업이던 결국 '금융'을 통해 생명을 부여 받는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본'이고 '자본'은 '금융'이다. 앞으로 변화해 나갈 시대에 '금융'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땀 흘려 일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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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피스 전략 - 경영을 예술하라
김효근 외 지음 / 가디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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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양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 활동을 '예술'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것을 '예술'이라고 할 때, 경영을 예술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선에는 다섯 가지 신분이 있다. 왕족, 양반, 중인, 평민, 천민. 그 중 가장 하위 계급인 '천민'에는 '기생'이나 '광대', '무당', 백정'이다. 현대에는 이들을 다르게 평가한다. 이들은 예술가에 속하며 '백정'은 '서양적 외모'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 '고귀함'과 '천함'은 천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결정 되는 것이다. 천하다고 생각했던 '의술'은 지금은 '의학'으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산업시대를 지나 빠르게 서비스 시대에 돌입했다. 공급력을 늘려야 하던 '경영'은 '효율'에서 서비스로 초점이 이동했다. 경영자가 '판매하는 것'이 '상품'이 아니라 '감동'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에서 '고객 감동'이 어떤 부분에서 '예술'과 닿아 있다. '넷플릭스'나 '페이스북', '애플' 역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 만족'을 목표로 움직인다. 애플의 아이폰 이용자들에게 브랜드 선택 이유를 물어본 결과 제품의 성능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는 40.48%가 됐고 브랜드와 디자인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도 30.96%였다. 브랜드와 디자인이 결정적 구매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업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은 더이상 '제품'의 성격을 벗어나 '브랜드'가 된다. 사업자가 자신의 상품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가치를 갖게 하는 '브랜드'라는 것은 결국 '이름'을 알린다 경영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우리는 '명작' 혹은 '명품'이라고 부른다. 세기를 넘어서는 명작이 있듯 기업 경영도 시대의 아이콘이 되며 '명작'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세계 6위다.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에 이은 순위다. 미국이 아닌 국가 중 1위인 셈이다. 삼성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제품에 'SAMSUNG'이라는 로고를 새겨 넣으며 '우리가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보장된 감동을 의미한다. 최근 ESG는 기업이 추구해야할 필수 경영 이념이 됐다. 이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단순히 기업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는지를 살피는 구조가 됐다. 얼마나 건전한 지배구조 속에서 환경과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기업에게 '돈' 이상의 것들을 기대하면서 '기업'은 효율성 감소를 맞이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신뢰도 향상'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갖는다. 브랜드와 명작이 이름 만으로 파괴력을 갖는 이유는 '판매실적'과 '효율성'보다 '신뢰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CEO들은 이제 미학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감동 시킬지 생각해야 한다. 배달어플의 경우 '맛' 만큼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단순히 맛이 있는 음식만으로는 고객의 감동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더 다채로운 사고를 하고 시각을 확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감동이라는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로서 경영자의 자질이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 언제부턴가 기업의 적정주가를 확인하는 PER의 역할에 대해 상기해야 했다. 사람들은 이미 고평가 된 기업의 주가를 이익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매입했다. 인간은 고차원적으로 문명을 발달할수록 '미학적 가치'를 우선시 했다. 최초에는 '생존'을 위해, 둘째는 번영을 위해, 세번째는 만족을 위해 진화해갔다. 요리는 날고기를 불에 그을려 먹는 수준에서 조리를 통해 더 맛잇는 음식을 먹는 수준으로,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수준에서 보기도 좋은 시각적, 문화적 가치를 넣었다.

전화만 되면 되는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 위치가 가로냐, 세로냐, 몇 개나 있는가 등으로 집중하게 됐다. 의복은 문화가 발전할수록 효율성과 정반대로 의미없는 '악세서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이런 본능이 사람을 다루고 제품을 다르고 돈을 다루는 경영이라는 기술에 적용되지 않을리 없다. 동인도 회사는 상업적 이윤을 위한 회사로 출발했으나 더 큰 교역을 위해 용병과 무기를 배에 함께 실었고 타국가와 민족의 땅에 들어가 노동력과 원자재를 제공받고 완제품을 팔아 이득을 취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컸던 이런 거대 기업은 지금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물품을 팔아 넘기던 행위가 아니라 감동을 통해 마음을 여는 어떤 모습을 보자면 예전 동화에서 자켓을 벗기려던 바람과 햇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강한 바람을 불면 더 자켓의 단추를 여미는 반면 은은하게 데워주면 저절로 단추를 풀어 재끼는 동화 말이다. 이제 유형의 가치를 넘어 무형의 가치가 훨씬더 중요한 시대다. 기업은 '제품'을 넘어' 꿈, 감성, 디자인, 이야기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낸다. 단순히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도출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교양교육이 필수적인 시대가 그것이다. 이런 문화와 교육은 올바르게 선 '철학'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의 전공이 철학이 었던 이유는 어떻게 하면 본질을 간파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는데 기여한다. 예술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야기할 뿌만 아니라, 즐거움과 오락도 제공한다. 예술은 도덕적 완전함에 기여한다." 앞으로 머리가 아닌 감성으로 기업과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 K팝과 한류 열풍을 기반으로 기업은 제품을 더불어 문화를 함께 수출하고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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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 50년간 우주를 올려다본 물리학자의 30가지 대답
폴 데이비스 지음, 박초월 옮김 / 반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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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던지고 앞면만 연달아 100만 번 나올 확률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0'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주를 기준으로 수학적 확률은 0이 아니다. 수학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값이 한없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극한'이라고 한다. 연산을 진행할수록 값이 무한대로 가까워질 뿐 절대로 닿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고 '수렴한다'고 한다. 100만 번이나 동전앞면이 연속적으로 나올 확률은 완전한 '0'이 아니다. 0으로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무수하게 작지만 '존재'와 '무존재'에서 '존재'로 분류된다.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넓히면 확률은 반드시 늘어난다. 동전 던지기의 횟수를 무한대에 가깝게 한다고 해보자. 시행횟수를 수 조 번, 수 천 조 번 이상 시행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시간을 넘어 공간도 넓힌다는 의미다. 수 조, 수 천 조가 넘어가는 시간의 값과 공간의 값은 서로 곱해지고 그 확률은 '존재'에 가까워진다. 무한에 비해 비하면 100만이라는 숫자는 1과 다름없다. 우주의 크기는 관측가능한 수준을 기준으로 465억 광년이다. 빛의 속도로는 930억 광년이다. '무한'이나 다름없는 '빛'의 속도로 날아도 930억 년을 날아가야 한다. 이 또한 관측가능한 범위다. 우주의 나이는 130억 년은 된다. 시간과 공간을 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과적 상상력은 더이상 과학적인 물음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멈춘다. 다만 의문점이 있다. '확률'에 따르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확률은 '0'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리 밖 누군가를 찾아다니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만 존재할 가능성도 '0'에 수렴하지만, '0'은 아니지 않을까. 마치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팔던 '모순'의 모습 또한 '우주'라는 무한의 앞에서 둘 다 일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것은 '무한'이 만들어낸 착각이자, 진실이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하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양자역학'이다.

무한의 확률은 '존재'와 '무존재'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 지끈지끈 골치가 아파지는 이런 질문들 또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는가. 이 무한대에 가까운 우주에서 하필 이 공간에, 이 시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기적에 가깝지 않을까. 단군 할아버지가 사시던 기원전 2333년과 오늘 2022년은 우주의 무한대 앞에 한 점에 가깝기도 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13,775,245,658년에 살고 있다. 공간적으로 말하자면 930,015,684,236,258,461,035,150km 중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뒷자리는 무의미하여 임의적으로 만듬) 여기에 오늘 존재하는 기적은 엄청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단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성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미 무한이라고 생각되는 시간과 공간도 언젠가 완성할지도 모를 우주의 입장에서 '도입'일지도 모른다. 우주가 팽창하고 확대하면 할수록 단군 할아버지와 나의 간격은 더 줄어든다. 의미는 의미기기도 하고 무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없이 0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가장 작은 입자 최소 입자를 분자라고 한단다. 분자는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졌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쿼크'라는 기본 입자를 만난다. '쿼크'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알고 모르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쿼크'라는 놈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서 원자가 되고 그것들이 결합하여 분자가 되고 그것들이 또 결합하여 어떤 결합체가 되도, 그것들은 한낱 '부스러기' 정도 역할이겠지 싶다. 이것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력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쿼크'라는 놈의 기준으로 무한대로 확장해서 '몽둥이' 정도까지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무한대로 크거나 무한대로 작다는 것은 '무존재'나 다름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무수히 하는 것과 거의 모르는 것도 따지고보면 한점의 반지름도 되지 않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우주가 존재한는가.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밤은 왜 어두운가.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꽤 그럴싸한 정답을 내린 사람들을 동경하는 세계에서 사실상 그들의 존재를 다시 살펴보자니 모두가 질문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린시절, 사촌의 집은 '비디오가게'를 했었다. 망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정마다 모두 비디오기기 한 대 씩, 혹은 DVD 기기 한대씩 가지고 올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말은 꽤 그럴듯 했다. 다만 모두가 비디오 기기를 가지고 있자, 인간들은 '포화'된 시장을 뚫을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장의 판도가 완전하게 달라지고 결국은 '비디오 대여점'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세대가 태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많은 해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포화에 이르면 누군가는 새로운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새롭게 제시된 질문이 새 시대를 열어간다. '아마구치 슈'는 현대를 이르러 '문제는 적고 해결 능력이 과잉인 시대'라고 정의했다. 결국 우주는 '철학'을 만나게 되는지 국적과 언어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의 저자 '폴 데이비스'와 '뉴타입의 시대'의 저자 '아마구치 슈'가 만난다. 무한대로 확장을 하면 결국 모든게 0이거나 1이다. 단군 할아버지와 '나' 따위도 한 점으로 뭉쳐지는데 철학과 과학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무(無)'에서 탄생했다. +1과 -1은 모두 0에서 탄생했다. 고로 이 둘은 만나면 0이 된다. 물질이 생겨남과 동시에 반물질도 생겨난다. 이 둘은 서로 상쇄하며 우주 전체의 값은 여전히 0이다. +1000이라도 결국 -1000의 값으로 상쇄되고 +25억도 -25억으로 상쇄한다. 우주가 이러한데 질문과 해답은 따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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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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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서머스카운티 탤컷에는 한 남자가 서있다. 남자는 묵직한 해머를 들고 있는데, 근육질의 몸을 가졌다. 그의 이름은 '존 헨리'. 그는 1872년 탤컷의 빅벤드 터널 공사 노동자다. 터널 공사에 사람이 아니라 '증기드릴'이 사용되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헨리는 기계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증기드릴'과 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은 하루를 넘어 지속했고 결국 인간은 승리했다.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준 '헨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결국 무리한 대결 탓으로 결국 사망한다. 한 삽, 한 삽을 퍼낸 구덩이와 굴착기가 단숨에 퍼낸 구덩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인간의 우월성과 존엄성을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젓가락'으로 밥먹는 일에 대해 '손가락의 우월성'이 침해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 한다. 심지어 '뗀석기', '간석기', '청동기', '철기' 등. 시대를 구분하는 잣대는 '지능 수준'이 아니라 '도구 사용 수준'이다. 진일보한 문명을 사용한 것은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내고 인간을 더 풍족하게 살도록 했다. 구석기 누군가는 한끼 식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종일의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의 지금은 그 위험을 줄였고 시간도 줄였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높은 생산성을 대신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주먹도끼로 찍어 내어 빻은 밀가루와 분쇄기로 갈아낸 밀가루에는 '인간의 우월성'이 아니라 '고운 입자'라는 가치를 매겨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우월성을 침해한 사건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기 훨씬 이전부터 꾸준하게 이겨왔다. 인간은 분쇄기에도 졌지만, 자동차에게도 졌고 타자기에도 졌다. 단지 이번에 '인공지능'에게 졌을 뿐이다. 인공지능에게 지면서 인간이 우월성을 침해 받았다 충격이 현대인들에게 만연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한 진일보한 문명 상태를 유지했다.

'지능'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이 더 위험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었다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다만. 나는 이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알파고가 아무리 뛰어나도 알파고는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200만년이 걸렸다.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키는데 걸린 시간을 보면, 우리가 고작 십 수 년 개발 뒤에 '신'의 업적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과만이다.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승리다. 알파고에게 패배를 하고 '이세돌'은 은퇴를 했다. 우사인볼트는 100m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기아 K9 자동차 안에서는 나와 우사인볼트는 모두 평등해진다. 증기드릴을 이긴 '존 헨리'처럼 그 시대에 잠시 기계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기계는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앞지른다. 인간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생산해 냈기 때문에 당연히 기계는 인간보다 우월해야만 했다. 자동차가 탄생한 이유는 자동차가 인간보다 우월한 속도와 지구력을 가졌기 때문이고 드릴이 탄생한 이유도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 만년 전 누군가는 주먹도끼에 의해서 인간의 영역이 침범 당했다고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충분하게 돕는데 사용될 것이고 더 편하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직업을 앗아갈 것이라고 공포에 떨곤 했다.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인공지능이 엄청난 생산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소비력이 없다면 곧바로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의 효율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이 가난해진다는 위험은 공상 영화에서도 갖기 힘든 설정이다. 인류가 달나라를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대부분의 인간이 달탐사를 가진 않는다. 기술은 경제를 앞질러 혼자 독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조선 태종 12년에 코끼리가 조선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온 사신이 태종에게 코끼리 한마리를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조전서를 지내던 '이우'라는 사람이 코끼리를 찾아왔다. '이우'는 코끼를 보며 말했다.

"고놈 참 추하게 생겼구나, 에이 퉤!" 이우가 코끼리를 놀리고 침을 뱉자. 코끼리는 이우를 쓰러뜨리고 발로 밟아 죽여버렸다. 이 일로 코끼리는 '살인죄'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살인'에 대한 죄값을 두고 법리를 따지던 상황에서 결국 태종은 코끼리를 순천의 '장도'라는 섬에 귀향을 보내기로 했다. 귀향을 갔던 코끼리는 섬에 물과 식량을 축내다가 결국 야위어 갔다. 이 일로 코끼리는 다시 육지로 이송이 됐고 세종 2년에는 코끼리가 공주로 이송됐다. 코끼리는 노비에게 돌봄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었는데, 세종 3년 3월 코끼리는 다시 또 자신을 돌보는 노비를 발로 차 죽여버렸다. 코끼리는 매년 쌀 48섬에 콩 24섬을 먹어 치웠고 성질이 나빠서 사람을 죽이니 다시 또 귀향을 가야 한다고 결정됐다. 이렇게 코끼리는 다시 귀향을 떠난다. 실제 코끼리는 지능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지능지수가 80정도니 전 동물을 통틀어 4번째 정도 된다. 코끼리는 성격이 온순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포악하지도 않다.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코끼리를 포악한 범죄자로 만들었다. 어떻게 다룰지 아는 이와 그렇지 못하는 이에 따라 이는 무기가 되거나 흉기가 되기도 한다. 기계가 대체한 인류의 능력은 많다. 덕분에 인간은 치명적이던 '신체능력'을 더 퇴화 시켰다. 기계의 능력이 인간을 대체 할수록 인간은 체력이 낮아지고 근육이 약화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을 돕는다. 실제로 스마트폰에 뺏긴 지적 능력으로 사람람들은 뇌의 일부분을 퇴화시켰다. 스마트폰의 강한 자극에 오랫동안 노출된 뇌는 현실감각에 무뎌진다. 주의력이 약해지고 감정이나 현실 변화에 무감각해진다. 이를 팝콘 브레인 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이 디지털 치매, 불면증 ADHD에 취약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덜 걷고 덜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한 몸을 가진 이들이 희소한 사람이 됐고 이에 따라 가치있게 됐다. 이제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뇌 영역을 도우면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희소하게 될지도....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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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법
장신웨 지음, 고보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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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쳐해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자신의 꼬리를 미끼로 천적에게 주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런 생존법은 사실상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잘린 꼬리를 재생시키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도 하고 한 번 자른 꼬리는 다시 끊어지지 않는다. 즉, 평생 단 한번의 사용만 가능하다. 도마뱀은 꼬리에 지방을 저장하곤 한다. 지방은 실제로 가장 큰 잠재적 에너지원이다. 많은 양의 지방을 저장하면 갑자기 찾아온 기아의 상태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률을 높여준다. 꾸준하게 쌓아둔 지방을 끊어내고 도망을 가는 것은 결국 목숨을 부지했지만 새로운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은 침을 쏘고 나면 죽는다. 벌은 놀라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을 쏜다. 다만 이 생존법 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침을 쏘면서 침에 벌의 내장이 함께 뽑혀 나오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기보호를 하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뱀장어는 860V까지 전기를 생성해 낼 수 있다. 다만 이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를 배출해 내면 금세 지친다.생산 이후에 방전된 체력 때문에 원주민들에 의해 쉽게 잡히기도 한다. 외부의 적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기'라는 보호막은 자신에게도 위협이 된다. 자신 역시 발생된 전기 감전에 안전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어떤 동식물은 독을 만들어 낸다. 복어또한 외부의 위협에 대해 내부에 독성을 만들어낸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체는 죽은 뒤에 자신이 맛없는 고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후경직'을 한다. 동물체가 죽고 나면 내부에 화학변화가 일어나고 근육이 굳어지는데, 소는 24시간, 돼지는 12시간, 닭은 2시간 정도로 사후 강직된다. 이때, 고기는 질겨지고 맛이 없어지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풀어진다. 천적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살아 있을 때부터 죽었을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며 대부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치명적인 독성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위협이라고 느끼는 상황이 되면 우리 또한 내부에서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예전 자연습성에서 천적으로 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쳐해졌을 때의 현상이다. 인간은 뛰어난 송곳니나 두꺼운 살가죽이 없다. 털도 없는 연약한 피부에 지구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동물보다 우수한 게 없다. 다만, 인간이 위협에 노출됐을 때, 우리는 뉴로트로핀(neurotrophin)이라는 뇌 화학물질은 분비한다. 이것은 뇌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강화한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를 '생각의 바다'에 노출시킨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고민이나 걱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사자기결(思者氣結)이라고 해서 '생각이 많으면 기가 엉킨다'라고 했다. 생각의 끝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로 귀결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상황이 우리를 천적으로 부터 경계심을 갖게 만들고 이것이 집단과 개인의 생존력을 높히기 때문이다.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는 것처럼, 꿀벌이 자신의 내장을 침과 함께 내놓는 것처럼, 전기뱀장어가 자신의 체력을 방전할 만큼 전기를 내뿜어 내는 것처럼 이는 인류를 키워온 생존 전력이지만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100세가 넘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대부분이 '스트레스가 없는 즐거운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영양가 있는 식사나 꾸준한 운동이 아니라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우리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내는 내부적인 작용들이 우리를 더 빠르게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코끼리의 크기로 불어난다. 이런 걱정은 앞서 말한대로 생각 중독 현상의 결과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불필요한 미래와 과거를 떠올리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들은 결국 우리의 지능과 상상력을 발달 시켰으나 곧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극도로 발전된 생각의 범주는 가만 두게 되면 다시 불필요한 걱정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종이 위에 덜어내는 것은 '걱정'을 줄이는 동시에 엄청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은 쉽게 말하면 '망나니'에 가깝다. 그는 30대에 도박으로 부모의 유산을 모두 날렸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빚을 많이지고 성욕과 도박의 유혹에 쉽게 현혹됐다. 쾌락 뒤에 찾아오는 환멸감의 윤회를 반복하던 삶을 유지하던 그는 질투심 많고 남들의 존경과 찬사를 즐겼다. 쾌락과 좌절은 아이러니하게 같은 뇌파를 만들어 낸다. 결국 우리 뇌는 쾌락과 좌절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그는 불연듯 깨달음을 얻는 성인 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탐구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렇게 극도로 노출된 스트레스에서 탄생했다. 글 이라는 것은 '생각의 흔적'이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의 흔적들의 속도를 낮추지 않으면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를 만들어 낸다. '수능 금지곡'이라는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 있다. 어떤 날은 노래 가사가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돌아다닐 때가 있다. 이때는 가까이에 있는 물건의 숫자를 세거나 종이 위에 구구단을 적는 등 어떤 일에 몰입을 하면 일순간 머릿속에 잡생각이 들어갈 틈이 사라진다. 그리고 머리는 고요하게 된다. 생각의 흔적은 우리의 뇌를 정화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결국 '문학'이라는 결과물도 만들어낸다. 예전부터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천재적인 영감을 얻어내곤 했다. 어찌된 일인지, 미술가와 음악가의 작품은 극도로 아름답고 그들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젊은 시절 가난과 빚 사이에 요절한 '모차르트'나 조기교육으로 인한 불행의 삶을 연속한 베토벤, 반 고흐나 톨스토이. 끝도 없는 천재들은 결국 생각 중독자들이고 글과 음악은 그것을 덜어내는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아인슈타인 또한 바이올린을 몹시 좋아했다. 걱정이 코끼리처럼 몰려오면 결국 글을 쓴다. 생존을 위해 나에게 독을 만들어 내면, 이 독은 나를 죽이지만 역으로 다시 이용하면 이것은 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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