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흑역사 - 두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농담 같은 세금 이야기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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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JTBC에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가 가상화폐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 있다. 유시민 작가는 가상화폐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재승 교수는 잡초는 뽑고 거름은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도 아니다. 주목해야 한 부분은 '행정 하는 입장'에서의 '탈 중앙화'가 어떻게 보이는지다. 2,5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는 세금 영수증이 기록됐다. 최초의 문명부터 지금까지 '중앙집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사피엔스가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 '중앙집권'은 필수불가결했다. 인간은 정착하면서 '사유재산'을 쌓기 시작하고 재산이 쌓이면 반대로 '도적'이 생겼다. 대게 농경민족들은 '전쟁'을 통해 노예와 농토를 확장했다. 전쟁은 국가의 농토를 확장하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가장 진보하기 수월한 방식이었다. 반대로 타민족으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생겼다. 분산된 힘을 중앙으로 모으면 역시 통제하기 쉽다. 따뜻한 햇볕이 볼록렌즈를 통해 모이면 두꺼운 나무에 불도 붙일 수 있듯, 모인 힘들은 '치안유지'나 '국토방위' 등에 사용됐다. 외교에도 유리하게 작용됐다. 1930년대 미국으로 대공황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던 '뉴딜정책'이 대표적이 예다. 무제한적 경제적 자유주의가 통제력을 잃고 빠르게 무너져 내릴 때, 뉴딜정책은 자유주의를 수정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기업과 노동자를 살리는 정책을 통해 은행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고 생산과 소비도 제어할 수 있었다.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중앙 집권은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는 분명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으나 19세기 시장은 제국주의를 맞이하고 20세기 대공황을 바라보며 수정자본주의로 나아갔다.

세금은 중앙에 권력을 모아주는 도구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금은 권력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보호'의 명분으로 뜯어가던 '약탈'이 '세금'이라는 그럴싸한 명칭으로 변형되며 역사는 '내려는 자'와 '덜 내려는 자'의 눈치게임으로 흘러갔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명세서에 기재된 '세금'을 없는 돈으로 치부한다. 원천징수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이 없는 현재지만, 이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재밌다. 영국의 헨리 8세는 1512년 신분 계급에 따라 세금을 차별 부과하기로 했다.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대상자 중에는 각기 다른 신분과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에게 세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밌는 아이디어가 하나 나온다. 그것은 이랬다. 주인이 먼저 하인들의 세금을 납부한 뒤에 나중에 하인들에게 지급할 임금에서 세금만큼의 차액을 제외하고 지급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신용하기 어려운 하인들이 아닌 신뢰할 만한 출처로부터 돈을 받아내고 이후 그들이 하인에게 차감된 급여를 지급하는 맥락은 오늘날의 '원천징수'가 된다. 이런 원천징수는 '부가가치세'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물품을 구매할 때, 국가에 직접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 일괄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이 또한 신뢰할 만한 곳으로부터 안전하게 거둬드린다는 원천징수의 좋은 예다. 이처럼 받으려는 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세금을 거둬드릴지 고민한다. 반면 내지 않으려는 쪽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이야기는 극단적인 '설'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흥미롭다. 1997년 잔 루이즈 칼망(Jeanne Louise Clament)이라는 여인이 프랑스 아를에서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다른 글에서도 적었던 적이 있는 내용인데, 다만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2018년 두 연구원이 그녀의 지나치게 많은 나이에 의심을 한 것이다. 연구원들은 1934년부터 '잔 할머니'는 '잔 할머니'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934년부터는 '잔 할머니'의 딸이 할머니의 행세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사망신고를 늦게 한다는 주장이다.

세금은 소득이나 사람에 납부한다. 어떤 집의 창문이 9개라면 8개인 집보다 집이 크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디어로 유럽에서는 '창문세'라는 것을 도입한다. 창문이 몇 개가 있는지 세금 징수원이 외부에서 세면 그에 따른 세금이 납부되는 방식이다. 이 일은 유럽의 건물양식에도 변화를 끼친다.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벽돌로 창문을 막아버리기도 하고 건물 구조를 바꾸기도 했다. 창문세는 과표 등급이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경계선에 있는 이들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아래 등급으로 창문 개수로 맞췄다. 이로 인해 창문이 9개인 집의 수가 창문 8개의 집이나 10개인 집보다 4배나 급증하는 일이 일어난다. '자파 케이크'가 출시됐을 때도 그렇다. 자파 케이크를 케이크로 볼 때, 1991년 당시 세법에 따라 부가가치세는 0원이 적용받는다. 다만 이 제품을 초콜릿 묻은 비스킷으로 보면 표준 부가가치세는 17.5%가 부과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조세 법원은 이 과자의 크기와 성분, 질감, 포장, 마케팅을 조사했다. 심지어 이들은 소비자들이 이 과자를 손으로 먹는지 포크로 먹는지까지 파악해야 했다. 결국 영국 조세 법원은 이 과자를 '케이크'로 규정했다. 간혹 우리는 '선과 악' 혹은 '도덕'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정치에 사용한다. 1861년 4월 미국 북부와 남부는 섬터 요새에서 철저하게 대치 중이었다. 이들은 이 섬터 요새를 포기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요새가 관세를 징수하는 주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를 해방한 인물로 평가되는 '링컨'은 그렇게 연간 5000만 달러의 세수입을 포기할 수 없어 전쟁을 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기장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에 관료들이 이 실험의 결과를 어디에 사용하냐고 비꼬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훗날 여러분은 이것에다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 전기세는 세수 확보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세금에 대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치열한 눈치게임은 큰 흐름에서 역사가 됐다. 책은 매우 두껍지만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나중에 반드시 재독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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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천재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 - 정재승, 김영하, 유시민, 손석희의 수사법
정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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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왓슨 회장은 '좋은 디자인이 곧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디자인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자동차는 90%, 속옷은 95%, 문구류는 99%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품질'이 아니라 '디자인'에 목숨을 거는데는 이유가 있다. 대게 품질이 평준화 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가격과 품질이라면 사람들은 디자인에 열광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배우자나 연인을 선택할 때,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신체 능력보다 '외모'를 중시한다. 이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책 한 권 읽고 나가 것보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나가는 편이 더 결정적이다. 꾸며진다는 것은 본질보다 중요치 않다. 그러나 본질로 들어가기 위해선 말끔히 꾸며져야만 한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본질로 가는 관문이다.

"나는 시간을 탕진했고 이제 시간이 나를 탕진한다."

17세기 셰익스피어가 했던 단순 교차법 문장은 입에 척하고 달라 붙는다. 운울감을 형성한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은 많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말은 다시 한 번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듣는다. 잔소리나 명언을 포함해서 그렇다. 누구도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더 곱씹고 되뇌도록 하는 것은 바로 수사법이다. 입에 척하고 달라붙는 말은 발음과 기교에서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순서를 교차한 수사법은 운율감을 형성한다. '각운'은 내용을 곱씹기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한다. 언어에서 '수사법'이란 화장법과 같으며 아무리 '마음'이 중요하지만 마음은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없다. '외모'를 가꾸지 않으면 이성에게 선택받기 어렵다.

문법이나 기교는 '계산'에 의해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이것들은 '즉각적'이다. 유학 시기, '한국어 과외'를 진행했던 적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를 만나면 큰 코 다친다.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공부해 갔다. 상대가 나에게 들이 밀었던 문법책은 '혼돈'이었다. '밥을 먹다'라는 단순한 표현에는 '식사하세요', '진지 잡수세요', '밥 드세요' 등 많은 표현이 있었다. 문법책에는 한국어의 특징이 적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대화 상대의 출생년도를 따져 자신과 나이 차이에 맞게 명사를 사용한다. 또한 상황과 대상에 맞게 술어를 선택해야 한다. 종류도 꽤 복잡하다. 얼마의 나이 차이가 나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당시 내가 받은 질문은 '정말 상대의 나이를 따지고 말을 하냐'는 것이다. 나이 차이가 애매하거나 또래 혹은 동안, 노안이라면 어떻게 대응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화 상대에 맞게 언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즉각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화법은 수많은 반복에 따른 트레이닝의 결과다. 문법책은 한국인들이 왜 한국어를 그렇게 사용하는지 적혀 있다. 읽어본다면 분명 고개가 끄덕여지겠지만 나는 말 할 때 문법을 염두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알고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언어의 수사법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읽었던 수사법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수사법이 사용된 문장을 자주 접하고 스스로 그것을 차용하길 반복하면서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재승, 김영하, 유시민, 손석희 등, 우리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달변가들은 말을 잘하는 것을 둘째치고 '글'을 잘쓴다. 글을 잘 쓰는 것을 셋째로쳐도 '읽기'를 잘한다. 예전 가수를 준비하던 이를 만났던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노래를 잘하는 비결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아웃풋은 상당한 인풋을 기반으로 한다. 책을 읽다보면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멋진 수사법들이 등장한다. 가령 '확률이 적다'라는 말을 할 때가 그렇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무자기로 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써 낼 확률과 같다.' 혹은 '고물 야적장에 토네이도가 불어서 우연히 보잉 747이 조립되어 나올 확률과 같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단순히 '확률이 적다.'라고 말하면 크게 와닿지 않을 표현을 유머러스한 표현법을 이용하면 듣는이를 덜 지루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수사법은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기교다. 한국인의 특성상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정서를 좋아한다. 고로 한국인들은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편이다. 다만 단연코 말하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을 창조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천재들은 '창조'가 아니라 '모방'에 뛰어났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기가막힌 표현법은 스스로 머리속에서 짜맞춰 나온다기 보다 다양한 생각을 읽어서 나올 확률이 높다. 고로 수사법에 대한 해결책을 굳이 말하자면, '다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재영 작가님의 '언어 천재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에서는 다양한 수사법과 예시가 표현된다. 책은 수사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모여진 하나 하나의 명언들은 정말 가슴 속으로 콕 하고 박힌다. 역시 잘 꾸며진 언어는 한 문장 단위로도 너무 기가 막히게 눈에 띄고 마음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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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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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단위로 감탄이 나온다. 문장력이 아니라 통찰력 때문이다. 1934년 출생 하신 이어령 선생은 붙일것도 많은 인물이다. 정의하기는 더 어려운 인물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수필가이자 정치인, 언론인, 문화평론가이자 교육자다. 통찰력이란 다방면의 개념을 두루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모가 한 눈에 훤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다른 이들이 분류해 놓은 지식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철학으로 잘 융합해야 가능하다. '너 어디로 가니'라는 제목은 정체성을 묻는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들어가면 철학을 만난다. 이어령 선생의 글은 스치듯 지나가는 역사의 꼬리를 잡는다. 물고 늘어진다. 거기서 이어령 선생의 철학을 만날 수 있다. 1934년 생의 문학가는 대한민국과 세계의 역사를 제대로 관통한다. 이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 중 행운이다. 국민학교 시절 1941년 태평양전쟁을 포함한 2차 세계대전을 지켜봤다. 1950년 한국 전쟁을 경험한다. 1980년 대 군사독재와 90년대 국가부도 사태를 바라본다. 직접 쌓은 데이터는 이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많이 배운 젊은 천재가 흉내내기 어려운 문학으로 남았다. 다른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처럼 책은 '꼬부랑 할머니'로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말이다..."

로 시작하는 옛날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과 같이 오락시설이 많지 않은 시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롯불'을 피워놓고 해주시는 이야기가 최고의 오락이었다. 그 시절 어린 손주들은 '화롯불'을 사이에 두고 어른들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시간이 흘러 젊은 이들의 오락거리는 늘어났고 '어른들의 이야기'는 시시하고 지루함의 대상이 됐다. '이어령 선생'은 '너 어디에 가는 줄은 알고 있니?'라는 신선한 질문으로 화려한 디지털 그래픽에 꽂혀 있는 젊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 당긴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천자문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자문은 4자 1구로 총 250구로 이루어졌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외우는 서당의 아이들 사이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외우면 될 일을 이어령 할아버지는 '왜 하늘이 검고 땅은 누런지' 의문을 제시했다. 1846년 11월, 제주에 있던 추사 김정희는 대정현의 향교에서 질문하지 않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아이들을 보며 김정희는 학당 현편을 써준다. 그것이 바로 '의문당(疑問堂)'이다. "얘들아, 의심이 나면 질문 좀 해다오'하는 대문호의 바람이다. 질문하지 않는 젊은 아이들을 보며 교육의 방향이 일방적이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300년이 흐른 뒤, 젊은 이들에게 말한다. "의심이 난다면 질문좀 해보라. 너 어디로 가니?"

이야기는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했으나 꼬리를 물고 질문한다. 그것에 답을 찾아보고 찾은 답에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식으로 지식이 들어갈 호기심의 구멍을 숭숭 뚫어 놓은 뒤, 명쾌하게 하나씩 채워 나간다. 그가 경험했던 여러가지 경험 중에서 '책보'와 '란도셀'의 이야기가 있다. '란도셀'이란 사실 이름도 생소한 단어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책가방'과 닮았다. 가난과 뒤떨어진 문명의 상징이라고 여기던 '책보'에는 엄청난 철학이 있었다. 이 철학은 매우 단순하지만 단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는 일이다. 추사 김정희와 이어령 선생이 던졌던 질문처럼 나도 질문하지 않는 젊은 세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얼마 전, 각이 잘 잡혀 있는 책가방을 구매했다. 책가방은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아도 각이 잘 잡혀 있었다. 이어령 선생은 여기서부터 문제를 삼았다. 책 보는 큰 물건을 담을 때는 담은 모양에 맞게 크기와 모양이 형성된다. 물건을 풀어 헤치면 보자기는 3차원 입체 모형에서 2차원 평면이 된다. 이것은 곱게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종이 한 장을 담아도 꽉찬 모양이 줄어드는 법 없는 '가방'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여기서 '융통성'이라고 봤다. 일본과 서양에서 사용하는 '란도셀'은 이미 정형화 된 규격을 갖고 내용물과 상관없이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은 분명 다른 이들에 비해 융통성이 있다는 것 만큼은 맞다고 본다. 짚신 또한 책보와 닮았다. 짚신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상관없이 신을 수 있으며 정확한 신발 치수를 알지 않아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이다. 이것이 우리를 담고 있는 문화가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이다. 정체성이란 작은 하나로 시작하여 여러가지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하는 이 책에서 일본과 한국의 비교는 자주 나온다. 일본의 문자와 한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일본과 한국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문자는 한자를 가지고 왔다. 일본인들은 복잡한 한자를 단순화하여 개조하여 보급한다. 영어 단어에는 Kaizen(카이젠)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개선'을 나타내는 일본어 '가이젠(改善)'에서 유래했다. 일본인들의 특징은 '개선'에 있다. 생산과 상품에 대한 전반에 대해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일본인들을 발전한다. 일본어가 한자와 닮았으나 표음문자이면서 그 획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일본인들이 가진 장점에 있다. 반면 우리 한글은 전반적으로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개선'이 아닌 '혁신'을 말한다. 혁신이랑 아이디어의 원친이 외부, 내부 상관없이 완전히 새롭게 도입하는 방식이다. 완전히 뒤집어 엎고 다시 시작하는 이런 사고 방식은 '한글'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옳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급변하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에 일본의 산업은 지금도 '개선'에 촛점을 맞추며 더딘 성장에 어려워한다. 반면 우리는 기존의 것들을 버려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갈아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정체성 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고 이미 혁신을 위해 버려 버린 것들 중에서도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젊은 시대를 바라보며, 이어령 선생은 다시 묻는다. '너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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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
현혜 박혜정 지음 / 굿웰스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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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년 전 쯤, 해외에서 유명한 영상 하나가 돌아다녔다. 아기 코끼리 한마리와 배고픈 사자 14마리가 싸우는 영상이다. 이 싸움에서 아기 코끼리는 사자가 덤벼도 아랑콧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백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 14마리가 아기 코끼리와 싸우는 이 장면은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영상만 보더라도 누가 '백수의 왕'이 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영상에서 코끼리는 사자 14마리를 파리 쫓듯 쫓는다. 화가 난 코끼리가 반격하자 사자들은 코끼리를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장애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적혀 있다. 코끼리는 위협적인 몸을 갖고 있지만 온순하게 풀을 뜯는다. 결국 우리가 '백수의 왕'이라고 하면 '사자'가 떠오르는 이유가 그렇다. 숨기고 있는 능력이 더 뛰어나고 뛰어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사용하는지, 사용하지 않는지가 '백수의 왕'을 만든다. 사자는 코끼리에 비해 몸집이 작다. 골격은 말할 것도 없고 몸무게나 힘에서도 떨어진다. 간혹 물소나 하마, 기린에게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가 '백수의 왕'인 이유는 사자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코끼리, 기린은 더 위협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축구 선수라고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뛰지 않는다면 능력있는 선수가 아니다. 능력은 발휘될때만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언제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평생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않는다. 장애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이와 함께 세계를 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를 갖고 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진 간판에 등을 맞고 척추신경이 끊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사고 직후와 이후의 삶과 생각에 대해 얼핏 보자면 책을 읽으면서 숙연해질 정도다. 저자는 '나도 하는데, 할 수 있습니다!'라고 독자를 격려한다. '해야 하는데...'하고 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도 결국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이 장애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떤 결함에 의해 활동에 제약이 있다면 '장애'라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누군가는 행하고, 누군가는 행하지 못한다. 얼마 전, 조선시대 장애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책을 보자면 장애인들은 그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100번이상 충족하며 사회 주요 관직과 위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키가 크면 중심축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불리하다. 김연아 선수의 키는 큰 편이기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불리했다. 그러나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라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발바닥 안쪽 아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 그것을 '평발'이라고 부른다. 평발을 가지면 지구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지구력이 떨어져서 오래 경기에 뛰지 못해야 할 선수가 '2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지성 선수'다. 벽에 부딪쳐서 넘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장애가 된다. 다만 그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디딤돌이 된다. 박지성 선수가 평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지성 선수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평발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더 박수를 보냈다. 장애가 디딤돌이 돌이 된 것이다. 아무리 그것을 극복하면 멋진 이야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신체의 장애를 넘어서기 위해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 '에드거 앨런 포'는 시련이 없다는 것은 복 받은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련을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시나 그녀가 가져야 했던 시간을 보면 다시 또 숙연해진다.

동감(sympathy)과 공감(empathy)의 차이를 아는가. 이 둘은 모두 pathy(통한다)라는 어원을 공유한다. 연결되어 통한다는 의미를 가진단어다. 둘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similar(비슷한)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동감(sympathy)은 말 그대로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Entire(전체의)와 같은 어원을 가진 공감(Empathy)는 타인의 감정을 내부로 옮겨 같은 심리과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둘은 얼핏 닮았지만 다르다.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고 해서 성질이 같은 것은 아니다. 비슷하게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그것의 상태를 받아드리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가 텔레파시(telepathy)처럼 먼거리에서 통하는 초능력과 같은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겪거나 보는 일 외에 동감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에게 하는 대부분의 위로는 '네 맘 다 안다'지만 친구와 헤어지면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신의 일상을 지낸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략적으로 유추한 적은 많다. 다만 실제로 생생하게 이야기를 읽은 적은 많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고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크기의 시련을 갖고 있다. '장애'라고 말할 수도 있는 시련이다. 누군가는 배우자를 잃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모를 잃기도 하며 누군가는 남들보다 허약한 체질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시련을 갖고 있지만 완벽해 보이는 상대들을 보며 자신의 가치를 깎아버리곤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시련은 극복하지 못했을 때, 시련으로 남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난 뒤부터는 축복일 수 있다. 그것을 극복할지, 말지는 어떤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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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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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종교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다. 얼마 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전세계 빈곤층에게 통신기술을 전파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을 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힌 빌 게이츠는 '카톨릭 신자'다. 그는 자선 활동에 전념하며 전 세계 부호 목록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을 제외한 나머지 44명은 모두 '개신교 신자'다. 앞서 말한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도 '카톨릭 신자'다. 불교를 탄압의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불교 신자'였다. 안중근 의사와 정약용은 카톨릭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신자'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개신교'다. 스티브 잡스도 불교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개신교 신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카톨릭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무신론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아이작 뉴턴은 신학자며 종교학자였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간혹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왜 그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걸까. 어떤 종교인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것은 종교가 가진 '초월성' 때문이다. 종교의 특징은 '초월'에 있다. 인간이 설정한 한계선을 종교 가볍게 넘어 가게 한다. 모든 것을 초월해 버리는 종교의 근간에는 '죽음'도 있다. 종교는 죽음조차 가볍게 초월해 버린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을 믿는 것'이 순진하거나 어리석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가 천재라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 조차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대는 신을 믿는 이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다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다. 서울 구치소에서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를 상담해오던 '양순자 작가' 또한 카톨릭이다. 그녀는 사형수들을 상담하면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을 바라봤다. 인간은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을 관찰하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달리 본다. 죽음을 초월한다면 삶의 가능성은 무한으로 넓어진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남과 동시에 울음을 터트린다. 온갖 공포 속에서 빛과 공기마저 공포가 된다.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소년이 되며 공포는 점차 줄어든다. 한 살이 두 살이 되거나 여든 아홉 살이 되는 것 모두 나이가 드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죽음의 목전에서 두 가지 유형을 보인다. 하나는 그것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경우며, 다른 하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경우다. 여기서 어른과 비어른이 나눠진다. 수 많은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났다. 이들은 동등하게 같은 운명을 맞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다. 어차피 맞이하는 죽음에는 '순서'만 있을 뿐, 결과는 같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언젠가 땅에 닫는다. 반드시 언젠가는 땅에 닿는다. 죽음은 '중력'처럼 일방적인 결과다.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반드시 가게 될 결말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는다. '사후세계'를 믿던 다시 윤회하여 환생하던 죽음이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단계 중 하나라고 여길 뿐이다. 이들은 진짜 어른이 된다.

삶이 단 한번 뿐이라고 여긴다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목숨'이 무한대인 게임을 하는 사람과 '단판'에 승부를 봐야하는 사람과는 '실행력'부터 차이가 생긴다.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도 다른 이들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것을 먼저 안 사람은 죽음에 대해 담담하며 은행에서 번호표 뽑듯, 자신의 차례에 응당 행동한다. 어차피 놔버릴 것들에 대한 욕심도 두지 않으며, 젊은 이들가 묻지도 않은 말하고 싶어 안달하지도 않는다. 어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초월'해 있는지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초월'은 멀어진다. 살다보면 먼저 태어난 것으로 '어른'의 지위를 얻어가는 사람이 있다. 다만 모든 경우가 어른은 아니다. '나이는 많지만 어른이 아닌 경우'도 적잖게 본다. 삶에 쥐고 있는 것들은 많다. 욕심, 자존심, 허세, 체면, 물욕, 과거, 미래 등이 그렇다. 그런 것들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 '죽음보다 덜한 위기' 정도는 웃으며 넘긴다. 뜨개질을 할 때,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실을 풀어 코가 빠진 지점까지 되돌아가야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풀기가 아까워서 그대로 진행한다. 결국 완성품은 불량품이 된다.

'뭐.. 좀 다시하면 되지.'

가벼운 마음이지만 쉽게 내지 못한다. 그것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야 어른이다. '매몰'된 비용에 대한 집착도 어른이 되면 놓아야 한다. 삶에 욕심을 내려 놓으면 무서움이 사라진다. 누구나 삶에 위기가 있다. 누구나 길을 지나가다보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어둡다고 멈춰 선다면 어둠 속에 머물게 되지만, 더 가속해서 그곳을 빠져나온다면 곧 터널의 밖이라는 걸 깨닫는다. 터널 뒤에 밝은 빛을 알고 있으니 터널 쯤이야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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