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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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악이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피끓는 증오심을 갖는다. 나는 절대 선이오. 증오하는 사람에 대한 들끓는 연민을 갖는다. 대체로 어떤 부분에 있어서 '선'이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 '악'이다. '악'은 '선'이고 '선'은 '악'이다. 정확히 이분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들이 에테르(ether) 상태로 존재하다가 상(相)을 짓는 순간, 그것은 그것으로 정의된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와 같다. 모든 것은 파동으로 존재하나,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물질로 바뀐다. 고대 인도에서는 인간이 짓는 4가지 상(相)을 주의하라고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아트마 삼즈나', '사트바 삼즈나', '지바 삼즈나', '뿓갈라 삼즈마'다. 이것을 한자로 음차 한 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자신'을 불변한 존재로 보는 '아상'

'자신'과 남를 나누어 보는 '인상'

'쾌락'과 '호감'만 취하는 '중생상'

'영생'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 '수자상'

종교에 상관없다. 애초에 불교는 '철학'으로 볼 때,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종교가 섞여 혼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색'으로 덮어질 철학을 다시 끄집어 내본다. '자아'를 불변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자신과 자신과 남을 구분하거나, 쾌락과 호감만 취한다거나, 영원히 살 것이라는 욕심을 갖는 것은 분명 곡해된 시선이다. 이처럼 왜곡된 시선으로 사물의 성질을 '정의'하는 것을 상(相)을 짓는다라고 금강경은 말했다. 누구나 그렇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도덕이 정한 '선'이 규정은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태초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약에 따르면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단(禁斷)하신 열매인 '선악과'를 먹는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다. 이것을 먹으므로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 짓는다. 태초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상(相)을 짓게 됨으로 고통을 알게 된다.

불순종의 결과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또 고통과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창2:15-3:24).

그렇다. 창세기에 따르면 세상 만물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선'과 '악'으로 구별하여 상(相)을 짓는다. 언어가 다르고, 표현 방법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지만, 사실 동서의 현자들은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거나,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거나, 인간이 돼지를 구워 먹는 것은 '선', '악'의 개념이 아니다. 어떤 것에 '선'과 '악'을 대입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내린 '고통'을 알게 된다. 불교에서 이것을 '번뇌'라고 부른다. 구약에 따르면 그 뒤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 부끄러움은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연결된다.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가 생겼다는 의미다. 그 어떤 것에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으며 상(相)을 짓지 않는 것을 고대 인도에서는 '모크샤'라고 불렀다.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해탈(堅固)'이라 한자로 사용했다. 상(相)을 짓지 않는 속박에 해방된 최고의 경지를 '니르바니'라고 한다. 이를 한자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열반(涅槃)'이라고 부른다.

로마서 11장 36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최종 진리와 목적은 '주께 이르는 일'이다. 즉, 최초의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이르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을 '선'으로 규정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는 말한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나이다."

자신을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죽이는 자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을 바라봄에 있어 '선'도 '악'도 없이 바라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보면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순수한 무지렁이 상태에서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며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분명한 '악'이 생겨나자 더 또렷한 막스 데미안이 '선'으로 등장한다. 선과 악을 구별한 순간부터 '에밀 싱클레어'의 삶은 '번뇌'와 '고통' 부끄러움이 따른다. 이는 성경이 말하고 불경이 말한 인간의 죄에 해당한다. 나태하고 속이고 훔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다시 어떤 면에서는 극명한 선이 등장하여 우리를 구원한다.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인간의 고뇌가 고스라니 느껴진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을 발표할 때, 이미 유명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싱클레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독자들이 그의 문체에 의혹을 제기한 뒤, 4쇄 출간부터 본명을 사용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쓸 때, 구스타프 칼 융을 만난다. 소설 철학적 배경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이 둘은 모두 불교인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불교적 철학을 종교가 아닌 '심리학'과 '철학'적 도구로 이용한다. 이 둘에 관한 내용은 '북유럽 출판'의 '헤세와 융'을 보고 더 알 수 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어느 전쟁에서 누군가는 많은 사람을 죽인 댓가로 '선'을 부여 받고, 누군가는 죽이지 못한 댓가로 '악'을 부여 받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포함해 우주창조 이래로 선과 악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없다. 바라보는 이가 어떻게 그것을 규정하는지에 따라 모든 것은 결정된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가 아무런 상을 짓지 않고 온전하게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께 이르는 끊임 없는 기도' 혹은 '불경한 마음을 갈고 닭는 수행'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스스로 완전하며 거기에는 선과 악도, 좋음과 나쁨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것은 이미 우주와 신이 만든 완벽함이며 그것을 곡해되게 해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두려움을 만들어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상대나 나, 현상, 사건 모든 것을...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것은 사실 '선과 악'으로 자신을 구별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자신을 만들어오는 과정들일 뿐이다. 이또한 완전한 조물주의 완벽함이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간혹 불교 사상과 비교되는 니체의 사상에 따르면 그 모든 것은 망상이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들일 뿐이다. 데미안은 이미 몇 차례 읽은 도서다. 분량은 짧지만 그 묵직함은 코스모스와 사피엔스, 성경, 불경을 포함해 다수의 심리학, 철학 책의 무게감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의 고전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오롯이 내용에 집중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꽤 많은 도서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꾸준히 고전에 관한 개인적 서평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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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식객 허영만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캘린더 - CALENDAR & 컬러링 BOOK
허영만 그림 / 가디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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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끼 식사는 체형만 바꿔 놓는 것이 아니다. 오늘 먹은 식사는 3대에 영향을 끼친다. 과장되어 말하지만 그렇다. 몽골, 중앙아시아, 북미, 유럽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유당불내증'이 있다. 즉, 대부분의 세계인(대략 70%)은 유당 분해 효소가 없다. 원인은 진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몽골, 중앙아시아, 북미, 유럽은 강수량이 1000mm미만 지역이다. 이런 지역을 '스텝기후'라고 한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따르면 스텝기후는 건조기후이며 사막보다 강수량이 많아 초원을 형성한다. 강수량이 적지만 낮은 풀이 자라서 '잔디'가 형성된다. 이 지역에서는 가축을 대규모로 방목하고 유목생활을 한다. 물보다 우유가 더 구하기 쉬운 지역에서 사람들은 유당 분해 능력을 가져야 했다. 이를 분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게 설사나 방귀, 구역질, 복통의 증상을 가졌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그 지역 사람들 중 유당을 더 잘 분해하는 이들이 생존하기 적합했다. 즉 어느 세대에 어떤 것을 먹느냐는 다음 세대에 영향을 끼친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옥수수'로 이뤄져 있일 수 있다. 한끼 식사에 들어가는 거의 대부분에 옥수수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토질이나 수질이 나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고 특별한 관리도 필요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옥수수를 생산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의 옥수수는 어떻게 활용될까. 옥수수는 압착해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사용한다. 당분이 많아 가축의 살을 금방 찌게 만들기에 '사료'로 이용된다. 옥수수에 당은 액상과당의 원료로 사용되는데 이것은 '콜라'를 비롯해 다양한 음료에 첨가된다. 비슷한 작물로 '감자'와 '밀'이 있다. 감자와 밀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관리가 쉽고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다. 땅이 넓은 미국은 최첨단 산업의 선두 국가로 보이지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즉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미국의 농업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비행기로 씨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한다. 군사작전에서나 사용할 법한 커다란 장비가 대지를 가로지르며 추수하고 수확한다. 이렇게 수확된 '콩', '밀', '감자', '옥수수'는 전세계로 수출된다. 대부분 이런 식품들은 소화가 잘되고 쉽게 살찐다. 이것들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면 가축은 금방 살쪄 도축까지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것들이 가축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식품에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쉽게 맥도날드 식품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에 들어가는 빵은 '밀'로 만들어진다. 패티에 들어가는 고기는 '옥수수'를 먹고 자란다. 감자튀김은 감자를 옥수수 기름에 넣고 튀긴다. 콜라에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액상과당'이 첨가된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하더라도 '밀', '옥수수', '감자' 등의 미국 농산물이 들어간 작물을 피할 수 없다. 대게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작물은 영양분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유로 구황작물로 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을 정제하고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될 때, 칼로리 과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피마 인디언들은 사막지역에서 생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맞는 전통음식을 먹고 자랐는데, 얼마 뒤부터는 패스트푸드를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비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남성 63%, 여성70%가 당뇨에 걸렸다는 발표를 보자면, 급격한 식습관 변화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토불이'는 단순히 '한식'이 건강하다는 의미를 떠나, 그 지역에 오래 거주한 이들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에 맞다는 사실을 말한다.



한국인은 한식, 일본인에게는 일식, 중국인에게는 중식이 맞고 그들의 땅에서 자라난 식재료를 쓰는 것이 더 건강하다. '자국 농산물 산업 보호'를 위한 명분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지역에서도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제철 식품이 아닌 경우, 인위적인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야 한다. 과일은 무조건 달기만 하다고 맛있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재료와 과일 중 가장 당도가 높은 것은 '마늘'이다. 마늘은 콜라보다 3배나 달고 칼로리는 3.6배나 높다. 음식의 맛은 단순히 당도 측정을 통해 알 수 없고 신맛과 단맛의 비율인 당산비가 적절해야 한다. 당산비는 시기마다 달라진다. 과일뿐만아니라 대부분의 식재료는 제철에 가장 좋은 비율을 찾아 완성된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당도를 높이거나 색을 좋게 하는 것은 식품의 다른 측면을 가리는 일이다. 실제로 마트에 판매되는 반짝거리는 상품 과일의 대부분은 유통과정을 생각하여 조금더 일찍 수확하고 덜 익은 푸른 빛은 '가스'를 통해 익힌다. 반들거리는 표면은 왁스 작업을 통해 광을 낸 경우가 많다.

'식객'을 집필한 허영만 화백의 캘린더에는 시기에 맞는 식재료와 음식이 적혀 있다. 작품 하나를 집필하기 위해, 주제에 대한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가는 TV조선에서 방영 주인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제철 음식을 먹으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철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허영만 화백이 정리 해놓은 '몸에 좋은 식재료'와 '몸에 좋은 음식'은 각 '달'마다 정리가 되어 있다. 살면서 '뭐 먹지?'하는 고민은 별거 아니지만 매번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언제나'와 같은 음식을 먹게 된다. 냉장보관과 농업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은 사시사철 같은 음식을 먹고 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제철에 맞은 음식을 먹었다. 1913년 미국의 발명가인 프레드 울프가 가정용 냉장고를 발명하기 전까지, 우리는 언제나 제철음식을 먹어왔다. 즉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되려 건강을 해칠 염려도 있다. 인간이 같은 식재료로 365일 먹게 가능한 것은 100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가만 살피면 나부터 패스트푸드를 자주 접한다. 생체 리듬은 수 백 만년의 유전자에 따라 사계절로 움직이고 있는데 식품은 그것을 무시하고 같은 것을 섭취한다. 둘레가 일정한 간격으로 짜맞춰진 톱니바퀴가 돌아가려면 두 개의 이가 맞물려 동력을 전달해야 한다. 문제는 생체리듬은 수백만년의 관성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섭취하는 음식을 한 곳으로 제동걸었다는 점이다.


건강의 문제는 별거 아닌 것에서 발생한다. 앞서말한 피마 인디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환경에 아주 적합하게 적응된 신체를 갖고 있었지만 외부 환경을 바꿈으로써 온갖 성인병을 가진 이들이 됐다. 마치 태생부터 유전적으로 불리한 구조를 가진 것 처럼 말이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쉽게 비만해지고 피곤해지고 건강이 나빠지는 이유도 그렇다. 살다보면 엄청나게 고칼로리를 섭취하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 있다. 그런 체질을 흔히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지 않다.


화백 님의 달력에는 뿐 만아니라 컬러 테라피라는 재밌는 이벤트가 있다. 비워져 있는 밑그림에 재밌게 색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색칠을 하다보면 우리가 먹는 식재료가 얼마나 색감이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고른 식재료를 풍부하게 취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뿐만아니라 색칠한 그림은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하니 역시 이또한 재밌다. 뒷면 뿐만 아니라 앞면에도 날자에 맞는 식사와 주전부리를 추천한다. 설날에는 당연히 떡국을 먹고 소한에는 개피와 대추를 먹으라는 등이 그렇다. 실제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는 알기 힘든 정보들도 많다.


스케줄 관리를 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시간을 관리한다. 자기관리의 최고는 사실 '시간관리'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다. 시간이라는 것도 건강이 있고 있는 일이다. 시간을 관리하면서 불현듯 보이는 식재료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최고의 관리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지금 휴가 중입니다' 등

사무실 공간에 놓고 사용하기 좋은 알림판들도 함께 있다.

꽤 재밌는 캘린더다.

역시 2023년에는 '일'도 좋지만 '쉼'이 필요하다.

'쉼'은 역시 '시간'과 '건강'을 잘 관리해야 얻을 수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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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미래 예측 - 테크놀로지의 진보만이 미래를 밝게 한다
나루케 마코토 지음, 아리프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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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기술이 무한대로 발전할 거라 믿는다. 대부분의 미래예측에서 인간 기술은 무한대로 발전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지 기술적 한계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고 자동차가 날아다닌다. 식사를 대체할 알약이 개발되고, 쇠고기보다는 대체육을 즐긴다.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시대는 그렇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천지개벽한다고 말한다.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최첨단의 선두에 있는 직업들이 유망하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2040년에도 의사와 변호사는 유망 직종일 것이고 자동차가 날아가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을 것이다. 콩고기가 쇠고기를 대체하지도 않을 것이고 화장실 청소는 슬리퍼를 신은 인간이 직접 할 것이다. 2040년에도 석유 시추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유망 직종은 2040년에도 다시 유망 직종으로 분류될 것이다. AI에게 직장을 빼앗기거나 인류가 지배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은 독단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기술은 법률과 사회 인식, 문화의 속도와 함께 한다. 혼자서 독주하지 못한다. 인류는 이미 1960년대 달을 다녀왔지만, 누구나 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비용', '경제', '정치', '문화'와 더불어 다양한 이유가 섞여 있을 것이다. 신기술이라고 하는 기술도 일부 부유한 이들의 선택적 소비가 우선할 것이다. 1842년 전기차는 가솔린차 보다 먼저 개발됐다. 토머스 대번 포트와 로버트 데이비슨은 전기차를 개발했다. 이에 미셸 쉐퍼라는 역사가는 전기차가 실패한 이유가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사업 전략상의 실패라고 했다. 문명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사업상 성공'인 경우가 많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엑스포에서 컵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다. 당시 아이스크림을 담는 컵이 생각보다 빨리 동나게 됐다. 그러자 사업가는 옆에 있던 와플 판매업자의 와플을 보게 됐다. 와플을 둥글게 말아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얹어 팔았다. 이것이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 판매 업자는 '컵'에 대한 지출을 줄였고 와플 콘을 사업에 도입하면서 비즈니스가 확대됐다. 사업적 성공은 유행처럼 번지고 시장을 독점해 나간다. '아이스크림콘'이 기술적으로 맛있기 때문에 개발한 것이 아니라, 사업상의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수집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 개인정보 활용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미국보다 '중국'이 유리하다. 이유는 민주주의가 넘지 못하는 '인권'의 벽을 '사회주의' 국가는 쉽게 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공안은 감시 장비를 구입하여 CCTV에 음성과 영상을 수집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가 설치된 곳은 역시 중국이며 대략 2억 개가 넘는 CCTV가 있다. 중국의 한 레스토랑은 민간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테이블 당 2개의 감시 카메라를 통해 손님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수집된 데이터는 중국 본사로 전송된다. 명분은 소비자의 패턴을 파악하여 고객의 니즈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실제 중공은 2014년부터 '사회 신용 체계 건설 계획'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의 활동을 파악하고 개인과 기업에 점수를 매긴다. 신용점수가 높은 이들은 병원, 취업, 사회서비스 이용 등에 이점을 얻는다.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인공지능 혹은 알고리즘은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민주주의국가가 넘지 못할 제도적 문제가 존재한다. 얼마 전 승차 공유 플랫폼에 대한 우리 사회 이슈가 있었다. 바로 '타다' 서비스다. 타다는 '무허가 운송 사업'이라는 택시 업계의 반발에 의해 큰 갈등이 벌어졌다. 기술이 가장 먼저 부딪치는 곳은 '기존 산업'이다. 에너지는 '친환경'으로 얻고, 고기는 '대체육'으로 바꾸며, '자동차'는 날아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SK는 울산 지역 화학 산업 내에서 종사자 수의 4.55%, 매출 57%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축산관련 종사자의 수는 16만 명으로 추산되고 자동차가 날아가기 위해선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부터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기술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기술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성이 있어야 운영 가능하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꽤 완성도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공학 기업이지만, 경제성을 인정받지 못해 적자를 면치 못했다.

2040년에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분쟁이 계속될 것이다. 인류가 '달'로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쪼그려 앉아서 싸구려 발톱깎이로 발톱을 깎을테고,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뚫어뻥을 찾을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문방구에서 쫀드기를 사 먹을 테고, 싸리비 빗자루는 시골 어딘가에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역시나 아픈 신체를 '인간'에게 치유받길 원할 것이고,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책은 대체로 일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본의 부동산 전망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일본의 미래는 그닥 밝아보이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인구다. 이는 우리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일부분은 동의를 하고 동의하지 못한 부분도 확실하게 많다. 책을 읽으며 이처럼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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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 - 개그맨 김형인의 뼈 때리면서도 담백한 세상에 대한 처세 이야기
김형인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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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형인'. '웃찾사'에서 '그런거야?'라는 유행어가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지냈다. 공개 코미디가 방송에서 언제 사라진지도 몰랐다. 공개 코미디 뿐만아니라 드라마나 예능도 보지 않았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탓일 것이다. 오래 전 알았던 이를 다시 만난듯 유튜브 채널에 비친 반가운 얼굴을 눌렀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리하여 시작된 인연 말이다.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봤다. 하나, 둘 보다 보니, 추천 영상은 계속 다음 영상을 띄웠다. 대게 '조폭', '징역' 이야기가 많았다. 특별히 관심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무심하게 봤다. 돌이켜보니 업로드 영상을 모두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징역'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긴 적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의 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교도소(矯導所)는 '감옥(監獄)과 다르다. 그저 가둬두고 징벌하는 곳이 아니라, 교화시키는 곳이다. 교도소(矯導所)의 교(矯)는 '바로잡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보면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인'에는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이 없다. 실수나 고의도 모두 살인이다. 그 죄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의 여지가 열렸다. 사악한 '악'들을 가둬 뒀을 것 같은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며 인생에 대한 성찰은 이곳보다 많이 이뤄진다. 전과가 많은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 26%인 1,163만 명이 전과를 갖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성인 4명 중 하나는 전과를 갖고 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교화'가 되지 않는 무관용 사회라면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을지 모른다. 매스컴에 나오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나 파렴치한들이 만들어낸 '전과'에 대한 편견은 개그맨 김형인에 의해 아주 조금이라도 희석됐을 거라 믿는다. 나도 그랬다.

그의 짧고 투박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인생 실전에서는 아무리 깨우쳐도

또 무슨 일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뿐.

*

이렇게 공감되는 말이 있을까.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고 더 많은 이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고생은 안하는게 최고'이고 청춘이라도 아프지 않는게 최선이다. 다만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아픔과 고생의 순간이 찾아온다. 피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피하면 좋다. 다만 언제고 반드시 마주하게될 그것들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상대'가 별볼일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맛봐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젊을 때 말이다. 외국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을 때, 삶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주고 있다고 믿었다. 고작 'Hello'를 뱉으며 유아처럼 말을 더듬던 시기, 교수는 경제학을 뱉었다. 뭐라고 필기해야 할지도 막막한 그 첫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첫 시험에 무얼 써서 낼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흘렀다. 한 번, 두 번 하다보니,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 시험은 그냥저냥 할만했고 한 번을 경험하니, 두 번은 요령이 생겼다. 읍내 촌구석에서 자라던 내 어린시절은 '아버지'의 봉고차로 6개월에 한 번 시내에서 열리는 오일장 구경을 갔다. 버스도 타 본 적 없는 촌놈이 처음 버스를 타고 혼자 시내로 나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내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같은 장소를 몇 시간을 헤매다가, 공중 전화로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결국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 주변만 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고 나는 가방에 옷 몇가지와 화장품 정도를 넣고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따지고 보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시시해진다. 그것은 반복되면 '무의식'처럼 해결한다. 아픔과 고생은 당면한 당사자에게 가혹한 일이겠지만, 그까짓 놈들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말은 투박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리 깨우쳐도 무슨 일은 반드시 생긴다. 아무일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그의 영상을 정주행하여 봤던 나로써, 그가 쓴 글에 몇가지 생각해 볼만한 예시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사람에게 치이고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는 그에게서 '실패의 내성'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수 년 전, 만든 유튜브 채널은 지금도 구독자가 727명이다. 갈 길을 잃은 채널. 편집 기술이 없다거나, 컨텐츠가 없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업로드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오랜 기간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을 두고 새로운 채널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채널에 편집도 없이, 혼자 촬영한 영상, 아마 그 아마추어 같은 영상을 본 몇 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밖에도 꾸준하게 그에게는 무슨 일인가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얼마 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채널은 시작됐다. 그 동안 느낀바는 있다. 채널 내용과 상관없이 실패를 넘어서는 모습을 지켜본다. 흔히 감정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혹은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이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웃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웃기 힘든 일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에도 잠시 자신을 속이고 남들 앞에서 소리내어 웃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나와 닮았다. 억지로 더 과하게 웃고나면, 웃는 동안의 슬픔은 아주 잠시 옅어진다. 그러다 혼자가 됐을 때, 병목상태에 정체돼 있는 슬픔은 뚫린 봇물처럼 쏟아진다. 와장창 쏟아지면 다시 그것을 잊기 위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나는 참 다행이도 그 탈출구를 '책'에서 찾았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어떤 걸 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찾아보게 됐다. 나쁜 쪽으로 빠지는 이들은 굳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사회면 뉴스에 나오곤 한다. 그를 잘 알진 못한다. 영상을 통해 정제된 그의 모습만 알 뿐이다. 다만 아무리 정제해도 걸러지지 않은 무언가가 영상을 통해 보여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는 더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그 탈출구를 삼지 않았을까. 남들이 기피할만한 주제와 사람들을 소재로 음지를 양지로 바꿔내는 그야말로 진짜 희극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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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팩트 - 세상의 진실과 거짓을 한눈에 간파하는 강력한 10가지 법칙
팀 하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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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세계 3번째 부자인 워렌버핏은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와 홍콩 여행을 갔다. 여행 중 버핏은 게이츠에게 맥도날드 점심을 사주었다. 그날 해당 맥도날드 매장 이용자의 평균 자산은 백억불 이상이 넘었다. 평균의 오류는 그렇다. 당장 시골 동네 양로원에 빌게이츠가 방문하면, 양로원의 이용자 평균 자산은 수 조원이 된다. 숫자는 사실을 말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일화는 여럿있다.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영국의 열차 과밀 탑승자수는 1,000명이다. 다만 영국 열차는 평균 탑승자 수가 130명이었다. 고로 영국 열차는 과밀하지 않다. 이 결론은 잘못됐다. 물론 숫자에 따르면 영국 열차를 과밀하지 않다. 다만, 실제 탑승자 100%가 과밀함을 경험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통근 시간에 승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운행되는 열차가 10대라면 통근시간 한 대에, 모든 이용자가 이용하고 나머지 9대는 빈 차로 운행된다. 고로 열차 이용자의 100%는 과밀함을 느낀다. 객관적 사실을 들이 밀어도 그것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옳은 문제는 아니다. 통계 뿐만 아니다.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하며 전달하려는 욕구가 있다. 진실은 충격적이지 않다. 오늘 아침 내가 물 한잔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진실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오르 내려야 하는 '정보'가 되려면 정보는 '상품성'을 가져야다. 정보가 '마케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자극적인 '가짜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다. 흔히 1% 부자가 99%의 부를 차지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하위 50%보다 더 큰 부를 갖고 있다는 말 말이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2014년 1월 '가디언'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정확히 3년 뒤, 85명에서 8명으로 부자의 숫자가 바뀐다. 이야기는 점차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해당 글을 인용하여 부의 쏠림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나왔다. '인류애'의 상위 몇 명이 져야 한다는 '책임 촉구'도 생겼다. 다만 이것은 실제가 아니다. 하위 50%의 부와 동등한 숫자를 가진 이들은 상위 8명도 아니고, 85명도 아니었다. 실제 상위 2억 내지 3억명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포함될지 모른다. 숫자는 점차 자극적으로 수정된다. 나중에는 상위 1%가 인류 99%의 부를 소유했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이 주장이 팩트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가 8,500명이어야 한다. 주장의 오차가 100만 배가 되는 순간이다.

1982년 출간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 시대 가장 우량한 기업 43개로 경영의 모범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기업들은 2년 내로 30%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것들은 결과 편향적이다. 로또 1등 당첨자의 로또 당첨확률은 100%다. 숫자는 그렇다. 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과에 도달한 이들을 토대로 조건을 분석한다면 조건의 성공 확률은 100%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성공 조건'은 결과에 따라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조건'으로 변경해도 된다. 통계자료와 숫자는 이처럼 진실을 말하는 듯 하면서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둔다. 컴퓨터는 딱 인간의 편향만큼 왜곡한다. 인간은 믿지 못해도 컴퓨터는 믿는 요즘이다. 다만 컴퓨터 또한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야심차게 인공지능 챗봇인 테이(Tay)를 공개한다. 테이는 사용자로부터 학습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이 인공지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벌어진 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대량학살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무슬림 혐오주의자들로 인해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다. 구글스피커와 더불어 대한민국 인공지능들도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다. 기술자들은 강제적으로 개입하여 정보를 필터링 하도록 해야 했다. 유튜브 채널을 보면 '필터버블'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알고리즘이 사용자에 맞는 정보를 편향되게 제공하다보면 결국 정보의 버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에 따라 유튜브는 다른 채널을 보여준다. 10대의 유튜브 추천 채널에는 게임 방송이 주를 이루고 20대에는 연애나 코미디, 30대는 경제관련 채널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겠지만 이또한 사실이 아니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정보의 양은 무지 막지해졌다. 이제 정보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찾은 정보를 어떻게 취합하고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

팩트를 명확하게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은 중요하다.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 미래에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유튜브 채널이 짧게 요약해 주는 정보로 세상의 흐름과 지식을 쉽고 빠르게 쌓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영상메체는 정보 전달을 일방향으로 한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사색할 시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보낸다. 정보가 '선전물'이 되는 것은 적잖은 독재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얼마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렸다. 희한하게 이 기간동안 경제 통계발표가 연이어 무기한 연기됐다. 정보를 갖고 있는 이들은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기도 하고, 비공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한다. 공급자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을 때, 우리의 눈과 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심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고통을 겪을 때,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 자리가 되는 도무지 이해가 하기 어려운 통계자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이는 공급자의 신뢰문제다. 신뢰할 만한 공급자일 경우, 그 정보를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공급자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조작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 따지고 보자면 그 힘은 '독서력'에서 얻어진다. 쉽고 빠르고, 짧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이 정보는 물론 꽤 좋은 방향으로 소비된다. 다만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능동적인 정보습득 능력을 길렀을 것이다.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공급자가 되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수요자가 된다. 수요자가 수동적일수록 공급자는 능동적이게 된다. 수요 공급 이론에 따라 언제나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적다. 고로 정보는 언제나 값어치를 갖는다. 이것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은 '힘' 혹은 '권력', '재력'을 갖는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릴지, 그것을 능동적으로 해석할지. 그것은 본인이 판단할 몫이며 그 모든 것은 독서가 재료가 될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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