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얻다 - 그림책 읽는 시간
김수민 외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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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 중 하나는, 당근을 먹는 일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어린 시절 나는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었다. 숟가락에 흰 쌀밥을 떠올리면 어느샌가 흰밥 위에는 고기나 햄이 얹어 있었다. 부모님이 잽싸게 밥 위에 소시지 반찬을 올리셨다. 당근이나 양파 같은 야채가 올라가는 경우는 없었다. 먹지 않는 나에게 '고기'를 올리는 것이 그나마 회유였던 것 같다. 어느새 아이의 숟가락에 고기를 얹고 나면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당근'과 '양파'다. 부모님은 야채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했는데, 마흔에 가까워져서야 야채를 먹게 됐다. 따지고보면 부모님이 숟가락에 얹어도 넣지 않던 야채를 아이는 너무 쉽게 넣게 하는 샘이다. 그거 말고 무엇이 있을까.

아침이 되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알람보다 먼저였다. 어머니는 알람을 맞췄음에도 항상 그 보다 먼저 나를 깨웠다. '1분만 더'를 몇 번하다가 투덜대며 식사 자리에 앉는 일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지지 않으면 나보다 아이가 늦는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하고 선다.

적당히 지저분해도 좋았던 방도, 아이의 장난감과 간식, 옷가지가 섞여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것 치우기도 벅찬 생활 습관은, 더러 아이의 것까지 치우며 말끔히 고쳐졌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아이와 함께 살면서 엄청난 다독가가 됐다. 아이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 지독한 책벌레가 되게 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아이와 누워서 책 보는 습관은 아이게만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고보니 사람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아이에게서 길러지는 모양이다.

아이와 누워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함께 본다. 아이를 위한다는 행동이 꼭 아이만을 위하고 있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릴 때 분명 들어봤던 이야기였는데, 아이와 함께 읽었더니 생소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는 순수하게만 읽혀지지 않는 책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짜임이 탄탄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읽어주느라 연기력과 발성 연습, 발음 교정이 모두 되기도 한다. 최근에 아이와 읽었던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책이다. 분명 이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도무지 기억에 나질 않았다. 차근 차근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동화를 진행하자, 이야기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었다. 아이와 함께 동거하면 이처럼 아이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나조차 교육시키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이는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최소 30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왕국의 주요 대사는 이제 완벽하게 외웠다. 주요대사 뿐만 아니라, 주요하지 않은 대사도 거의 암기하다시피 했을 정도다.

아이와 이처럼 동화나 그림책, 만화를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워킹데드', '수리남', '프리즌브레이크',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좀비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하거나, 감옥을 탈옥하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채워 놓고 살았을 나의 30대는 아이로 하여금 깨끗하게 리프레쉬 됐다. 오늘의 나는 왕자님이 공주님을 구하는 동화와 공주님이 왕자님을 구하는 만화를 보고, 오누이가 엄마를 구하거나,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는 영화를 본다. 거기에는 흉측한 좀비나 마약이 아니라, 호랑이나 늑대 정도가 나올 뿐이다.

'작은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얻다'는 '김수민, 송진설, 차은주, 최서원' 작가의 수필이 돌아가며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은 동화를 읽는 초보 엄마의 사연부터 시작해서 부모와의 이야기 자녀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그림책에 대한 애정도 적잖게 담겼다. 어린시절 재밌게 읽었던 '좋은 생각', '연탄길'이라는 잡지와 책에서 처럼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극적이고 반전이 있고 통쾌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잔잔하고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가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더 큰 위로를 줄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다만 성인들도 그림으로 하여금 더 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우리를 감상적이게 하는 것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나무 끝에 달린 빨간 낙엽이다. 그 낙엽은 너무나 단순하고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동화에는 어른들의 책처럼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아이들과 읽어주고 있지 않다면, 잽싸게 메모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적잖게 떠오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리석게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여기지만, 아이는 나의 입에 당근을 넣게 하고, 게을러지지 않게 하기도 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예전 햇님과 바람의 동화가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에서 바람이 벗기지 못한 옷을 햇님은 은은한 볕으로 벗겨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아이에게로 넘겨짐으로써 또다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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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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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예수가 아니라, 마크 주커버그를 존경하고. 십자가가 아니라, 사과 표식을 추앙하며, 신이 아니라 구글에게 묻고, 교회나 성당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연결된다. 그들은 신 만큼이나 우리를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를 조종하고 있고, 우리의 정보를 갖고 있다.

과거 인간은 'GOD'에게 의존했다. 다만, 현대 우리는 'GAFA'에 의존한다. Google, Apple, Facebook, Amazon. 이들은 새 시대 종교처럼 여겨지고, 과거 종교가 우리에게 끼쳤던 영향력만큼 영향을 끼친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많이 알고 있고, 주변을 독점하여 '유일신'으로 전지전능하게 됐다.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가. 다섯의 석학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에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 다행이도 언급된 석학들 중 절반 정도의 저서는 이미 읽었다.

미국의 건국이념. 미국은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국가다. 근면과 절약에 의한 부의 축적을 지향하는 국가다. 신에게 그 영광을 돌렸다. 청교도, 그 윤리가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만들었다. 다수의 백만 장자가 사회의 주류가 되는 공평한 사회. 그것이 미국 건국 이념이다. 다만 이제는 조만장자 한 둘이 나머지 99를 노예처럼 착취하는 사회가 됐다. 이 소수는 지나치게 세금을 적게 내며 다수의 공적 이익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8년 금융 위기, 그 이후 10년간 월마트가 낸 법인세는 640억 달라였지만, 아마존은 14억 달러 정도뿐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고용창출의 효과와 영향력을 말하기에 앞서 이들은 가장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인력을 착취하는 피라미드 최상단에 섰다.

착취 당하는 99명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가장 존경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말했다.

'미국은 보통 인간을 사랑한다.'

현대의 미국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나. 현대의 미국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이조스'를 사랑하지 보통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다수는 99이며 그들은 사랑받지 못한다. 승자 독식 경제에서 성공한 소수가 되지 못한다면, 평범한 이들은 하잘것없는 존재로 전락된다.

GAFA가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상품'이 됐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용자들로부터 이용료를 받지 않는다. 이들은 다수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광고주들로부터 이용료를 받는다. 즉, 광고주 입장에서는 '이용자'는 상품이다. 그들은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 기업에 더 많은 광고비를 낸다. '소비자'가 아니라 '상품'이 되버린 다수의 인간은 저도 모르게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데이터를 쌓아준다.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주고 받고, 뉴스를 읽기도 하고, 검색을 하거나 쇼핑을 한다.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도 듣는다. 플랫폼 기업들이 필요로하는 정보를 열심히 쌓아주는 무급 노동력 제공자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한다. 이렇게 다수의 인간이 쌓아 놓는 데이터는 수십억 달러로 바뀌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계좌로 들어가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클릭한다. 이 과정에서 스타는 탄생한다. 이런 '인플루언서'들은 조회수와 클릭수, 구독자수를 늘려서 굉장히 성장하기도 한다. 다만 이처럼 유튜버, 인스타그램 스타, 페이스북 인플루언서 들이 얻는 수익은 플랫폼에서만 이뤄진다. 즉 플랫폼 기업은 '카지노', 인플루언서는 '잭팟' 터진 고객 정도다. 실제로 소수의 인간이 잭팟이 터지면 다수의 대중은 꿈과 환상, 기대만으로 플레이한다.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쪽은 당연히 카지노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학자들이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 말한다. 다만 경제학자들이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공익'이다. 공익에 이바지하는 것이 '경제'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썼으며, 사람들은 그를 '경제학자'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그의 논리 목적이 단순히 '돈 버는 사회'로 치부한다. 다만 애덤 스미스는 '사회과학자'였고 '철학자'였다. 그는 사회가 공공으로 이익을 향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스템에 관심을 두었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돈이 최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멀지 않은 미래, 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현금과 같은 돈의 개념이 달라지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소득이나 돈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더라도 '경제'와 '자본주의'는 그 모양을 다르게 하고 존재할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 기술과 자본의 미래, 문명의 전환, 부와 권력의 지각 변동. 세계 석학들은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대의 종교가 된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질서를 잡을지, 미래에 대한 흐름을 알 수 없는 우리는 그 안목을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함께 지켜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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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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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마법의 비행'을 보면 새가 어떻게 방향을 찾는 지를 설명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본능으로 알겠거니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는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안단다. 우주나 별, 이런 건 인간 만의 사유물처럼 생각했는데, 철새들도 금성을 보고, 달을 보고, 목성과 토성을 본단다. 그들을 '새 대가리'라고 부르는데, 언어도 글도 없이 별자리를 알아본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방향을 안다는 것이 놀라웠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에는 와이테마타 항과 연결되는 하버 브릿지가 있다. 거기를 건넜다. 다리를 건넌 이유는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였다. 배고픈 유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과 '정원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원은 하버 브릿지를 넘어야 했다. 한 번 정리하면 둘이서 100불을 받았다. 빵을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유학시절이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주중에 식사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 주간은 10센트까지 탈탈 털어 식비로 사용했다. 수중에 0원이 남은 날이었다. 빈손으로 버스정류장을 갔다. 그곳에서 함께 일할 동생을 만났다.

"너 얼마 있어?" "나? 8불."

녀석은 갈 때 4불, 올 때 4불하여 정확히 8불만 쥐고 있었다. 녀석의 가난도 당연했다.

"가서 50불을 받으면 5불로 줄께. 4불만 빌려 줘."

그렇게 그는 들고 있는 8불 중, 4불을 넘겨줬다. 버스가 출발했다. 하버 브릿지를 지나가던 것까지 기억 났다. 그 뒤로 기억이 없다. 잠깐 눈을 감고 떴는데, 버스는 주택가를 지나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주택가. 동서남북 똑같은 주택, 똑같은 정원, 똑같은 풍경 뿐이다. 동생을 급하게 깨웠다.

"야! 여기 어디야?"

친한 동생은 눈을 겨우 떴다. 그러곤 주변을 살폈다. 지나왔는지, 도착 전인지 가늠이 되진 않았다. 급한 마음, 놀란 마음에 버스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냥 타고 있었어야 했다.

어딘지 모를 뉴질랜드 어딘가.

잠 깨고 공기 좋고 볕 좋은 어딘가다. 그때의 막막함. 수중는 한 푼도 없는 막연함. 아르바이트하면 생길 100불도 역시 없다. 개운하게 일어난 걸 봐서, 분명 멀리 온 듯 했다. 그 때 함께 내렸던 동생은 주변을 살피며 위치를 가늠했다.

"알면...? 별 수는 있고?"

그는 방향을 알고 걸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내키는 대로 걸자고 했다. 내가 맞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틀렸고 결국 그도 그냥 걷기로 했다. 버스는 아침에 탔는데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대략 10시간은 걷지 않았을까. 그때 느꼈다. 생각보다 인간은 똑똑하지 않구나. 이런 일로 인간을 대표해서 송구하지만 바보 같은 두 유학생은 생각도 대책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건물도, 특별한 지형도 없었다. 있었다고 별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복사 붙이기 한듯 반복하는 뉴질랜드의 어느 곳, 우리 뿐만 아니라 새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꽤 적당한 타이밍이 아닌 시기와 공간에 기회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것을 마주한다고 해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적지 않다. 뉴질랜드에서 무수하게 길을 잃었고, 서울, 싱가포르, 시드니, 태국, 베트남에서도 길을 잃었었다. 그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걷기'다. 방향을 가늠하지 않기. 그냥 걷기. 일단 그냥 무식하게 걷고 본다. 그려면 최소 10시간이 걸리던, 11시간이 걸리던 집에는 도착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 어차피 집이다. 여행은 더 멀리가고 더 오래 있을수록 남는 거라고 했다. 과거에는 목숨을 걸고 떠났겠지만 이제는 객사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스마트폰도 없고 지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집신발 한 켤레와 요기꺼리, 여벌 옷 정도 들고 나갔을 그들에 비하면 꽤 대단한 것들을 들고 여행하는 편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깨닫는 것이 있다.

무식하게 걷는 것이 결국 굉장히 현명한 방법이었다는 사실. 지금도 나는 10시간 헤매던 골목과 골목, 구석과 구석을 안다. 두 발로 그 시공간을 통채로 학습한 거다.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가는 것 보다 더 많이 알았다. 최단거리로 이동하면 이동거리가 되지만, 더 길고 복잡하게 가면, 그것은 여행이 된다.

남는 건 시간 뿐, 넘치는 건 체력 뿐. 갔던 길을 몇 번을 돌고, 지난 길을 몇 번을 되돌아가도 괜찮다. 여행의 묘미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 도착 시간이 아니다. 어쨌건 여행은 시간을 포획해 머리속에 가두고, 체력을 길러 준다. 15년이 지난 이야기다. 15년이 지나고 보니, 3시간을 걸으나, 10시간을 걸었거나 큰 손해가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소름끼치도록 길다. 고통스러울 것 같은 순간도 소름끼칠 정도로 찰나다. 손해나 이익도 인생 전체로 보니, 별반 차이가 없다.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처음으로 지구를 향해 몸을 틀었을 때, 우리를 향해 보내온 사진은 광활한 검은 배경에 파란 점 하나였다.

해 보니 별 거 없더라.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런 것들을 깨달을 수록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

'앞으로 더 멀리가도 괜찮겠어'

그것은 이동시간이 긴 사람의 깨달음이 아니라, 여행자의 깨달음이다.

결국 가야 할 길이 60억km라면, 5km던 50km던, 무슨 차이가 있으랴.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 주식이 6만원이던, 9만원이던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50만원에 팔거라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말들이 희화화 됐지만, 그 말은 일리있다. 누군가로부터 듣을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 직접 깨달아야한다. 최단거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더 멀리 떠나도 사실 별거 없더라'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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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윈 Small Wins -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결정적 경험
신동선 지음 / 해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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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4월 18일 대동맥류 질환으로 76세의 한 노인이 사망한다. 이 노인의 부검을 담당하던 병리학 의사 '토마스 하비(Thomas Harvey)는 노인의 뇌를 화장하기 전에 빼돌린다. 왜 그랬을까.

사망한 노인의 이름이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었기 때문다. 그렇게 화장되지 못한 뇌는 총 240개의 조각으로 나눠져 이곳 저곳으로 퍼졌다. '토마스 하비(Thomas Harvey)는 이후 천재의 뇌에 대한 비밀을 파해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결혼, 직장,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아인슈타인의 뇌에만 매달렸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의 끝을 보지 못하고 2007년 끝내 사망한다. 어찌됐건 아인슈타인의 뇌는 여러 과학자들의 논문에서 다뤄지게 됐는데, 가장 특별한 것 중 하나는 이것이다. '그의 뇌는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그닥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앨라배마 주의 앤더스(Anderson) 교수는 아인슈타인 뇌에는 일반인과 다른 특징이 있다고 했다. 바로 '연결성'이다. 그의 뇌세포는 좁은 공간에 더 많이 밀집되어 정보전달이 빨랐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좌뇌'와 '우뇌' 사이에는 이 둘을 연결하는 '뇌량'이 있는데, 아인슈타인은 뇌량이 두꺼워 뇌세포 사이의 연결성이 광범위 했다는 해석이다.

삶이 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뇌는 생각하고 선택하는 기관이다. 생각과 선택은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밀접한 요소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뇌연결성은 단순 지식뿐만 아니라, 언어감각, 논리추론, 정보처리, 공간인지 등 연결된 뇌를 동시에 자극한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게 한다. 즉, 뇌연결성이 높은 사람은 같은 현상과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의 연결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신경 세포와 신경 세포 사이에는 시냅스로 연결된다. 정보라는 것은 이 시냅스 사이에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며 전달된다. 즉 신경 세포를 한 번 자극하면 시냅스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일은 DNA와 상관없다. 신경 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을 1회 분비하면 일정 시간 뒤에 다시 원래 수준으로 회복한다. 다만 이 자극이 주기적이고 반복적이면 세포핵에서 CREB-1(크랩-1)을 활성화 한다. 이는 유전자 통해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 단백질은 세포막을 만든다. 결국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자극은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 내어 더 높은 연결성을 만드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뇌'가 단순히 일반인보다 크고 무거웠다면, 유전학적으로 인간의 우열을 구분하는 '우생학'이 힘을 얻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고, '뇌연결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천재는 낳아지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극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면 세포와 세포의 연결은 더 경고해진다. 시냅스의 수는 더 많아지고 치밀해진다. 정보 정달은 더 빠르고 단단해진다. 다만 이 과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단백질'을 합성하고 세포막을 만들어야 하기에 굉장히 느리고 더디다. 여기서 '뇌과학'과 관련없이 여느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바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첫째, 꾸준할 것

둘째, 빈번할 것

셋째, 반복할 것

이렇게 자극한 뇌구조는 '뇌가소성'에 따라 변화한다. 변화는 느리지만, 한 번 변화하면 오래간다.

여기서 능력을 키우는 탁월한 노하우를 알 수 있다. 화학으로 이뤄지는 생체 속 변화는 단순하다. 화학물질의 농도를 높이면 된다. 즉 자주 빈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즐거워야 하고 작게 쪼개야 한다. 다시 능력을 기르기 위한 원칙을 계발서적의 언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쪼개라

둘째, 자주, 꾸준히, 반복하라

셋째, 감정을 담아라

넷째, 자신을 믿어라.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면 목표 달성은 쉬워진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뇌를 자극하여 성형하는 행위다. 고도 성장된 산업의 특징은 사회 인프라에 있다. 쉽게 '교통과 통신'이 그 사회를 번영케 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하면 각 도시는 고립되어 썩어간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있더라도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은 사회는 썩는다. 뇌도 마찬가지다. 마차, 철도와 가솔린 엔진으로 각 도시 간 유통이 확장되자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천재는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작고 꾸준하고 빈번한 반복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천재라고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작한다. 다작은 앞서 말한 천재를 만드는 원칙이다. 피카소는 2만 점의 그림을 그렸고 모짜르트는 600곡을 작곡한다.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을 쓰고 에디슨은 1039개의 발명 특허를 냈다. 이런 다작은 그들의 뇌를 성형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른 뇌 영역을 활성화 시켜 그들을 천재로 길러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작게는 일기지만 크게는 '글쓰기'다. 대게 보통사람들은 이 가장 쉬운 방법을 하찮게 생각한다.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꾸준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밀어두었다가 단번에 몰아치는 벼락치기 같은 습관은 우리의 능력은 '단기'로 머물게 하며 뇌를 성형하지 못한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르다. 때로는 답답하고 하찮아 보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방법을 모르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더 완전하고 쉬운 방법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기에 못할 뿐이다. '신동선'작가의 '스몰 윈'은 굉장히 얇지만 경험적 능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머무는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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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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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가 된 꿈.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었는가.'

이 비유는 피아(彼我)를 잊었을 때 쓴다. 이 고사성어는 현대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그 깊이가 더 해질 예정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지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이 없을수록 메타버스로 갑니다."

인구 밀도가 낮은 공간은 안전하고 자율성이 높다. 고로 사람들은 넓은 공간을 염원한다. 거기에 비용을 지불하고자 한다. 그러나 공간은 유한하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쪽은 부유한 쪽일 테고 가난한 사람들은 공간을 잃기 시작한다.

가난한 쪽은 현실 세계에서 공간을 얻지 못한다. 이들은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가상공간'이나 '메타버스'로 넘어 가는 것이다. 유현준 교수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공간이 생겼을 때, 초등학생들이 먼저 갑니다."

온라인 활동이 많다는 것은 소득이 적다는 것이고 오프라인 활동이 많다는 것은 소득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사춘기 학생들도 자신만의 공간을 위해 방문을 닫는 대신, 스마트폰의 사이버 세계로 들어간다. 현실에서의 입지가 적을수록 '사이버'에서 체류 시간을 늘리며, 현실 세계보다 더 장기 체류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체류하지 않는다. 더 많은 활동을 가상세계로 한다. 심지어 바로 옆에 있으면서 메신저로 대화한다. 현실 우주에서 보기에 그들은 심지어 말 한마디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 도망가는 '가상세계'는 어디에 있나. 인류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대략 930억 광년이다. 약자들은 이 넓은 우주에서 자신이 체류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간다. 가상세계다. 그곳에세 체류하며 시간을 쏟고 기억과 삶을 채워 넣는다. 우주 어디에도 없는 시공간을 쌓고 결국 그곳에 본심까지 두고 온다. 가난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의 인생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SF소설 같은 이야기다. 다만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돈과 증권은 먼저 가상세계로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가상에 더 많은 시간을 체류한다. 가상세계의 무존재한 존재들은 '성별도, 나이도, 출신도 없다. 무영혼의 망혼들이다. 현실에서 점차 갈 곳을 잃어가는 이들은 존재에 의문을 가진다. 사회는 이들에게 존재를 의문 갖게 한다.

사회는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사는 것과 그만 사는 것에 대해 결정할 자유'. '자유사'다.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 그것은 진정한 자유일까. 세계적인 고령화 사회에서 약자들은 현실 공간을 뺃앗긴다. 존재의 가치에 의문이 생긴이들에게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것은 자유에 포장 됐지만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도망갈 곳을 잃은 이들이 결정하는 죽음 말이다.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대한민국 출산률 0.8%의 시대다. 대한민국에는 '자유사'가 없다. 다만, 역시 사람들은 '현실'에서 공간에 발디딜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사'하지 않는 대신 자유적으로 출생을 하지 않는다. 사회가 '삶'의 공간을 폭력적으로 줄이면 벌어지는 일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본심'은 굉장히 독특한 소설적 배경을 갖는다. 자유사가 합법화 된 가까운 미래의 일본이다. 소설의 아들은 자유사를 희망하던 어머니의 선택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뒤, 사고로 사망한다. 어머니의 본심을 알고 싶었던 그는 VF라는 최신 기술로 어머니를 복원한다. 생전 어머니의 데이터로 복구한 가상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어머니의 본심을 알아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보며, 얼마전 tvN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난 2020년 세상을 떠났던 전원일기의 응삼이 캐릭터, 배우 박윤배 님을 복원한 프로그램이었다. 복원된 박윤배 님은 가상인간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생생한 모습으로 출연진들과 대화했다. 저 AI가 박윤배 님의 '본심'이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점차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다. 먼 미래의 기술일 것만 같은 이 기술은 이미 이곳 저곳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기술이 철학과 부딪치며 여러가지 화두를 던진다.

얼마 전 chatGPT라는 프로그램이 소개됐다. 이 인공지능은 변호사 시험과 의사시험을 합격하고 소설을 쓰거나 간략한 희곡도 쓸 수 있다. 또한 스스로 그림을 그리거나 코딩도 한다. 얼마 전에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1위를 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꽤 철학적인 질문이 오고 갔다. 과연 AI로 그린 것은 AI가 그린 것이냐, AI를 도구로 그린 것이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저작권을 AI가 갖게 되는 날도 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AI가 소득을 일으키고 세금을 내며 인간도 고용하는 세계 말이다. 소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설명된다. 자유사를 선택하고 삶을 포기하는 인간의 유한함과 영생하는 AI와의 관계가 근로자와 고용자의 관계가 되면 인간은 기계에게 복종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물론 기계에게 복종하는 인간은 가난한 쪽이고, 그 기계의 소유권을 가진 인간은 부유한 쪽일 것이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에 사는 두 인간의 계층을 넘어, 별개의 다른 집단이 되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해갈까. 소설은 타인의 아바타가 되어, 타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업종도 소개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생'을 판매하는 시대인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본심'은 일방향의 이야기를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빗대어 현재를 말하고 공상과학을 빌려 철학을 말한다. 어머니의 본심을 찾아 떠나는 아들의 이야기. 꽤 흥미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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