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는 빨리 걷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
장샤오헝 지음, 하은지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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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급식이 나오면 좋아하는 반찬과 싫어하는 반찬이 있었다. 좋아하는 반찬은 소시지, 싫어하는 반찬은 가지무침이다. 반찬이 나오면 먹는 방식이 있다.

첫째, 맛 없는 것부터 먹을 것.

둘째, 맛 있는 것은 여유있게 먹을 것.

사람마다 성향과 취향을 다르겠지만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코를 막고 가지무침부터 빠르게 해치우면 소시지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인생 혹은 성공을 어떤 부류로 봐야 할까. 빠르게 성취해야 하는 부류일까? 음미하고 즐거야 하는 부류일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사람은 빠르게 도달한 것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감흥을 느끼지 않기 위해, 때로는 빠르게 해치우는 일도 한다. 코를 막고 재빨리 목구멍으로 가지무침을 넘기는 행위가 그런 일이었다. 슬픈 기억은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를 기대하고 행복한 순간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고로 속도라는 것은 '가치'에 반비례한다.

고급 와인을 먹는 방법은 코로 먼저 즐긴다. 입에 머물면서 공기와 섞어준다. 그것을 그제서야 삼킨다. 오래 머금으면 그 향을 더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쓰디쓴 싸구려 술은 단숨에 목구멍으로 밀어 삼켜킨다. 연인의 손이 닿으면 오랫동안 머물고 싶지만 개똥이 닿으면 빨리 털어 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속도가 '가치'를 만들어 낸다고 믿는 세상에 '기술'이 아닌 곳에서 '가치'가 만들어 질지 의문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시대다. 속도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속도는 빨라질수록 시공간을 왜곡한다. 자신의 시간만 천천히 흐른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속도를 고정하면 시공간이 왜곡된다. 삶은 시공간을 영유하는 것이다. 해외에 살면서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했다. '뉴질랜드'라는 곳은 '유학생', '현지인', '관광객' 섞여 있다. 교육과 관광을 업으로 삼는 국가답게 관광객과 유학생 현지인의 비율이 적당히 섞여 있다. 개중 여권을 보지 않고도 상대의 체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걷는 모습이다. 두리 번 거리며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 쪽은 관광객 쪽이다. 아주 빠르게 앞만 보고 걸어가는 쪽은 현지인 쪽이고 그 중간 정도 되는 것이 유학생 쪽이다. 이 셋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쪽은 역시 가장 느린 쪽이다.

'빨리 걷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는 명언은 중국 최고 부자 '마윈'이 한 말이라고 한다. 빨리 걷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바쁘다는 것 혹은 늦었다는 것. 걸음이 빠른 사람은 대게 다음 일정에 쫒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와 영감은 쫒기는 와중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돈'으로 환전하여 사용하는 '시간제 근로자'가 아니라면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맞다. 누군가는 최저임금을 벌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지만, 누군가는 바쁜 일은 피고용인에게 넘기고 가치있는 일을 한다. 실제로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다. 군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병장과 이등병의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등병의 경우에는 무척 바쁘고 분주하지만 성과는 엉성하다. 반대로 병장은 무척 여유롭지만 성과는 완벽하다. 결과는 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는 '성격급한 부자'에 관한 책을 읽었다. 부자들은 다수 다혈절적이고 성격이 급한 편이라는 것이다. 꽤 부유한 몇 명을 함께 경험해 본 결과,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그들은 성격이 몹시 급하고 다혈절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는 한 없이 친절하다가 업무상 답답함이 느껴지면 '버럭'하고 화를 내곤 했다. 그들의 걸음거리가 어땠는지 특별하게 기억에 남진 않지만 분명한 건 성격 급한 부자들을 꽤 많이 봤다는 사실이다. 다만 성격이 급한 것과 '속도'와는 다르다. 실제로 그들은 바쁜 업무 중에도 개인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화분을 키우거나 골프를 치거나 책을 읽는 등. 꽤 여유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즐겼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급조절'인 것 처럼 보인다.

별 하나와 동그라미 하나를 빠르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을 빠르게 그리기 위해 오른손과 왼손에 연필을 한 자루씩 쥔다면, 동시에 별과 동그라미를 그려 2배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아마 별이나 동그라미 혹은 그 둘 다 엉망으로 그려 넣을 것이 뻔하다. 사실 별과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하나를 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다시 그리는 것이다.

대기만성형으로 유명한 유재석 님은 초보운전자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거에요."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맞다. 때로는 빠르다고 생각한 길이 되려 돌아가는 길인 경우가 많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빠르고. 속도는 분명 가치와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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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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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나 색을 점점 옅게 혹은 진하게 칠해서 점층적으로 변지게 하는 효과를 선염(渲染)라고 한다. 영문으로는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부르는다. 이런 선염은 몽롱하고 서정적 느낌을 준다. 경계가 모호한 색감의 변화는 동양 철학의 음양오행을 닮았다. 속이 선염으로 차 있는 반면 동양화는 그 테두리를 진한 선을 이용해 표현한다. 역설이다. 그것이 동양화의 특징이다. 칼처럼 떨어지는 외곽선과 빛처럼 점층적인 선염의 조화다. 이는 유럽 미술과 크게 다르다. 외곽선이 모호함과 칼처럼 떨어지는 유럽미술은 이처럼 동양화의 극적인 차이에 매료됐다.

자포니즘이 유럽에 소개될 때, 유럽 미술계는 정체되어 있었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그 시기 유럽 미술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단순히 원근감과 색체감 등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분위기와 서사를 바탕한 동양화는 어딘가 달랐다. 동양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는 회화방식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서양 회화의 특징이라면 외곽선을 줄여 사실적 묘사를 한다. 반면 동양 회하는 외곽선을 뚜렷하게 그린다. 또한 붓의 힘을 조절하여 두껍고 얇은 선을 나타낸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라는 그림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선비가 그려져 있다. 선비는 악기를 연주한다. 선비의 옆에는 호리병과 문방사우가 그려져 있다. 이 잡화들은 음율감을 표현하듯 굵고 얇은 선을 교차 이용한다. 눈으로 음악의 풍류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양화는 이처럼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화려하지 않은 색감과 투박한 그림체가 가벼워 보이지만 깊고 묵직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에 커다란 영감을 받았다. 당시 예술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표현력' 이었다. 실제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양 예술은 위기에 빠진다. 19세기에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묘사'는 기계가 넘어섰다. 더 이상 똑같이 복사해 낸다는 것이 무의미해 버린 것이다. 미술의 영역이 기술의 영역이 되버린 시기에 이들이 찾은 것은 '도슈사이 샤라쿠'나 '우타가와 도요쿠니'처럼 강렬하게 표현을 강조하는 동양식 우키요에였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샤라쿠의 작품을 모사할 정도였다. 그들이 동양화에 받은 충격이 엄청났다. 그전까지 화가의 역량은 얼마나 피사체를 잘 표현하는가를 고민했다. 다만 동야의 미술은 유럽과 확실히 달랐다. 동양 미술의 중심은 '피사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서사다. 또한 작가의 감정과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까지 담고 있었다. 사실주의에 벽에 갇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던 유럽은 동양화의 매력에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봤다. 모르고 보면 단순 선과 채색의 그림이지만 작가의 해석을 함께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는 역사와 서사가 있다. 투박하게 찍혀 있는 점은 눈빛을 묘사하고 두께는 힘을 표현하며 직선과 곡선으로 분위기를 표현한다. 손은 어째서 펴고 있는지, 옷차림과 자세, 시선은 모두 사소하지만 중요한 위치를 서사한다.

가장 닮아 있는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을 서사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피사체가 보여주고 있는 겉표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고로 작가의 영역이 수동에서 능동으로 넘어섰다. 이런 표현법은 당대 작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모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동양에서 시작했지만 서양에서 더 크게 환영 받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단순하고 괴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피카소의 초년 작품을 보여주면 그가 화가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정할지 모른다. 표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담는 것이 미술의 영역이 되면서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 됐다.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입체주의 미술 양식으로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피사체 모사를 벗어나 작가의 표현에 집중으로 미술의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은 입체주의를 벗어나 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해졌다. 이처럼 미술이 추상적인 것을 담아내고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예술'로 승화한 시발점에는 '자포니즘'이 있었다. 자포니즘은 일본으로 부터 시작했으나, 이름만 그렇지 일본 고유한 문화는 아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중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되는 '신윤복'의 그림은 역시나 최고다. 그의 그림은 확실히 서사적이다. 무엇하나 그저 표현된 것 없다. 각 표현이 그 시대상을 담고 있으며 관계와 전후 상황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라지와 견주어 크게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이유다. 신윤복의 그림은 굉장히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그의 그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단순한 외각선와 부드러운 선염의 조화가 이처럼 단순함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배경을 백지화 한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아예 그리지 조차 않는다. 고로 작가의 표현을 직관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볼거리가 풍성한 대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 서양화와 비교한 동앙화의 특징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것이 서양화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국수주의적인 생각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면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의 다채로움을 난도질 하는 것이다. 당근과 구름을 비교하거나 상어와 밥주걱을 비교하는 것처럼 이는 비교 대상도 아니고 비교 의미도 없다. 예술은 순위를 매기거나 우열을 가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예술은 아주 주관적인 영역이다. 고로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더 우월하거나 동양화가 서양화보다 우월한 것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온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현대 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적절한 융합의 역사다. 그 어떤 부분에 우리 조선의 그림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나 동양의 그림을 보며 서사를 유추해 내는 방식은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과 닮았다. 고로 김홍도, 신윤복 등 천재 화가의 그림들을 그들과 닮은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시대적 행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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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 수학이 어려운 엄마를 위한 전략적 학습 로드맵, 개정판 초중고로 이어지는 바른 공부습관 2
류승재 지음 / 블루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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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신경계에는 행복을 관장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물질이 있다. 어떤 원인으로 인간이 도파민의 분비를 경험하면, 우리는 반복적으로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거.

중독이다.

음주, 도박, 게임, 흡연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말만 들어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것은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중독된다. 이미 성공이 눈 앞에 다가와 있는 듯한 착각, 그것도 반드시 '도파민'을 분비 시키고 중독된다.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성공한 누군가의 글을 읽고 불타오르는 동기를 만들어 내는 것.

그거.

중독이다.

일시적일 뿐이다.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은 어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순간, 분비가 감소된다. 분비가 감소되면 기분은 나빠지고 공허함을 느낀다. 도파민은 지속될 수 없다. 도파민 분출은 짧지만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작심삼일' 불 타오르는 에너지를 소모하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뿐만아니라, 실패한 다이어트처럼 지난 보상에 대한 크기만큼 회의감으로 되돌아온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 그것은 진실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굳어진 삶의 방식을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없다. 동기부여는 고로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새로운 경험과 더 큰 자극을 추구할 뿐이다.

포인트는 이것이다.

"같은 경험을 반복하는 일상에서 도파민 분비는 없다."

위대함은 끓어오르는 열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루함'에서 나온다. 무언가에 커다란 성장이 있기 위해서는 끌어오르는 열정보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은 '도파민'과 아주 거리가 멀다. 우연히 영상을 보다가 방송인 '박명수' 님의 영상을 봤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밈에 대해 방송인 '박명수' 님은 말했다.

"중요한 건 꺽여도 그냥 하는 마음"

꺽이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꿈을 확고하게 하면서 동기부여를 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꺽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꺽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예전에 훈련을 하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기자가 물었다.

"운동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에 김연아 선수는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따지고 보니, 일론 머스크도 같은 대답을 했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힘의 원천? 그런 건 없습니다. 해야 하면 그냥 하는 거죠. 그건 그냥 본능입니다."

동기? 꿈? 그런 건 필요없다. 그런 것은 시작할 때는 필요하지만, 지속할 때는 필요없다. 하는 이유는 '해야 해서'다. 하는 방법은 '하다보니'다. 이유와 방법에 여간 말을 붙여봐도 본질은 '그냥 하는 것이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다. 왜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빨갛게 달궈진 쇠구슬을 누군가가 내 손 위에 올렸다고 해보자. 왜 빼야 하는가? 어떻게 빼야하는가? 그렇게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빼는 것이다. 왜? 어떻게는? 없다. 그것은 본능이다. 아이를 낳은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왜 키워야 하는가? 그런 쓰잘 데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행동은 느려지고, 시간은 허비되고, 에너지는 낭비된다. 애는 그냥 키우는 것이다. 공부는 그냥 하는 것이다. 일은 그냥 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상한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아서 자신에게 겨우 채찍질을 하면 안된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의 방법을 알고 싶을 수 있다. 다만 도서는 이렇게 말한다.

'문해력'

아주 어린 시절부터 습관처럼 쌓여 있던 하루 하루의 반복되는 일상이 수학 뿐만아니라 모든 학업 능력을 결정한다. 공부법을 알게 된다고 잘하게 되고, 왜 해야하는지를 알게 된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하는 이유는 일단 그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하는 방법은 하다보면 알게 된다. 혹은 하다보면 찾게 된다.

동기부여에 중독되고, 자기계발서 읽기에 중독되어 일시적으로 도파민 분비에 의해 열정이 타다 말고, 타다 말고를 반복하는 것은 '핵심 키워드'가 아니다.

예전 해외에서 일할 때, 아주 지독한 상급자를 만나적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지독한 상급자의 말 몇 마디가 나를 아주 크게 성장시켰다. 그가 자주하는 말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것이다.

"그냥 닥치고 해."

다른 하나는 이것이다.

"방법은 모르겠고 결과는 만들어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냥 닥치고 해',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그건 모르겠고 결과는 만들어내' 가혹한 방식이었지만, 그 두 말은 나를 성장시켰다고 자부한다. 왜 하는지를 따지고 들면, 해답을 찾는다고 해도 다시 질문이 나온다. 결국 '왜?'가 궁금한 이유는 '하기 싫다'는 마음을 변명할 시작점일 뿐이다. '어떻게 하는지'는 절실하면 알아서 찾게 된다. 그리고 알게된다. 방법을 몰랐다고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절실해지면 인간은 저절로 찾게 되는 것이 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마시게 되고, 나이가 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번식욕을 갖게 되고, 배가 고프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밥을 먹게 된다. 그건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다.

중요한 건 불타는 열정도 아니고 꺽이지 않는 마음도 아니다. 그냥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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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노트 -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김익한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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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어린시절 KBS2 방영 꾸러기 수비대는 12간지 동물에 대한 내용이다. 만화 장면은 다소 각색 됐지만, 일부는 설화를 바탕을 한다. 만화 초반은 달리기 경주로 시작한다. 설화도 그렇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는 지상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그는 정월초 아침 동물들을 연회장으로 불렀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로 지위를 주겠다고 한다. 이에 모두 먼저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각자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중 단연 선두는 '소'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12간지 중 선두를 유지한다. 역시 누가 뭐래도 '우직함'과 '성실함'이 최선이라는 덕목을 가르치고 있다. 용맹함이나 다재다능, 총명함 보다 '소'의 우직함과 성실함이 가장 먼저 연회장에 근처에 다달았지만 1등을 차지한 동물은 '소'가 아니다. '쥐'다. '쥐'는 자신의 나약함을 알았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쥐는 꾀를 낸다. 그리고 소 등 위에 올라탄다. 그는 '소'의 등에 타고 있다가 결승선에 닿기 전, 가장 먼저 연회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 있다. 아이작 뉴턴이 했던 말로 유명하다.

"내가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뉴턴의 위대함은 케플러가 없다면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말은 뉴턴이 처음한 말이 아니다. 뉴턴은 이 비유를 1651년 조지 허버트의 말에서 빌렸다. 조지 허버트는 영국의 종교 시인으로써 이렇게 말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 본다."

조지 허버트 또한 이 말을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빌렸다. 바로 1621년 로버트 버튼이다. 그 또한 이의 이야기에서 빌렸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로버트 버튼 또한 이 이야기를 1159년 요아네스 사레스베리엔시스의 글을 읽고 차용했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거인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 이는 시력이 좋거나 신체가 뛰어난 덕분도 아니며 거인의 몸이 우리를 들어올려 높은 위치에 싣고 있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그리고 1130년의 베르나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고대인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수 세기의 간격을 두고 천재들은 서로 어깨를 내어주고, 어깨 위에 올라타기를 반복한다. 12간지 동물에는 당연 '쥐'나 '소'보다 용맹한 호랑이, 용이 있고, 더 빠른 말이나 토끼도 있다. 그러나 결국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쥐'다. '쥐'가 가장 먼저 도착한 이유는 '꾀'를 잘 부렸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에 과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약한 존재'를 인정하고 '거인의 어깨'를 빌리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그렇다. 거인의 어깨를 빌리고 나의 어깨를 내어주는 일이다. 나의 어깨를 내어주는 것은 지극한 이타심이 아니라, 내 어깨를 밟고 올라서는 다른 거인의 어깨를 다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은 '선사시대'다. 수백 만년의 시간동안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게 채집과 사냥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1만년 전, '쐐기문자'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문명을 이룩하고, 종이를 발명하자마자 바로 철기시대로 넘어간다. 인간이 돌고래나 침팬지보다 뛰어난 문명을 갖게 된 이유는 '독보적인 지능' 때문이 아니라, 기록할 수 있는 '엄지손가락'의 분화 때문이었다. 무려 500만 년 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현재의 이 글을 쓰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예시는 어디로부터 차용했을까. 이 글을 쓰는데 차용된 예시는 지금껏 읽어오다 번뜩였던 수많은 메모와 책에서부터 차용했다. 글을 인용하고 차용하고 생각하고 뱉어내길 반복하면서 자기화 시키고 다시 그것을 뱉고 읽고 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신만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나 또한 메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악필인 나는 시대를 잘 만났다. 책을 읽다가 1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 메모를 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살펴보니 온통 책을 읽다가 찍어둔 글들 투성이다. 누군가는 책에 직접 메모를 하고, 누구는 노트에 메모를 하지만 나는 이처럼 사진을 찍거나, 녹음, 자신에게 카카오톡 보내기 등을 활용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어색한 시간, 카드값이나 청구영수증, 스트레스를 주는 광고 등이 아니라, 조용히 사진첩을 열고 그간 찍어둔 여러 글들을 넘겨 본다. 넘기다보면 읽을 때와 다른 인사이트를 주는 말들이 또 다시생긴다. 그것은 다음 글을 쓸 때, 적절하게 섞여 새로운 글로 완성된다.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메모는 단순히 남의 글을 이용해서 넘겨 받는 도움도 주지만, 지난 나에게서 넘겨 받는 도움도 준다. 즉 시간과 공간을 횡축과 종축으로 뻗어나가 소통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 드라마 시그널을 보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을 관통하는 횡축과 공간을 관통하는 종축의 무전기가 있으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 메모는 가장 아날로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타임머신이자 텔레포트 머신이지 않을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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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 유럽에서 아시아 바이킹에서 소말리아 해적까지
피터 레어 지음, 홍우정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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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은 무역선의 항로를 미리 알고 물건을 약탈한다. 현대에는 범죄라 여기는 일이지만, 그들은 부끄럼움을 느끼지 않는다.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되려 자신들의 용맹함에 자부심을 가진다. 강탈, 방화, 납치, 폭력을 사용하거나 포로를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잔혹한 이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국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소말리아 해적 사건은 가장 극심했다. 이후 다시 해적의 숫자는 크게 줄었다. 다만 세계 경제가 다시 휘청이자 해적의 세력은 다시 커지고 있다. '빈곤'과 '탐욕'이 해적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빈곤하고 나약한 이들이, 탐욕스럽고 폭력적으로 변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해적은 아이러니한 존재다. 이들은 생각보다 민주적인 절차로 규칙과 규범을 지키고 살았다.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었고 부상금을 공평하게 나눴다. 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고 통근하는 가정적인 이들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도 했다. 바다에서 한 평생 약탈만 할 것 같은 해적은 사실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 육지에 꽤 촘촘하고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외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고 엄격한 통금시간을 지키기도 했다. 저녁 8시 이후에는 모든 양초와 불을 소등하고 모두 잠들었다.

 이들을 극악무도한 '악'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은 신을 찬양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약탈한 물건은 신에게 재물로 바쳐졌다. 신에게 더 많은 재물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되려 좋은 일에 속했다. 이들은 깊은 신앙심으로 더 투철하게 자신들의 본업에 충실했다. 약탈하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일에 속하게 됐다. 낭만 가득한 모험가와 잔혹 무도한 범죄자, 두 탈을 모두 쓰고 있는 해적. 그들은 언제나 미디어에서 흥미로운 소재다. 실제로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해적은 실제와 얼마나 닮아있을까. 따지고 보자면 어떤 부분은 다르고 어떤 부분은 같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억양과 복장은 디즈니에 의해서 발명된 발명품이다. 이들의 복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들은 밝은 배 갑판과 어두운 갑판 사이에서 더 빨리 적응해야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려둔다. 그것이 해적 패치다. 또한 이들은 귀걸이를 착용하곤 했다. 단지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귓불에 압력을 가하면 배멀미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믿음일 뿐 실제로 배멀미와 귓불의 압력과 상관은 없다. 

 이들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꽤 문제거리였다. 1368년 명태조 주원장은 '해금'으로 알려진 해상 무역 금지령을 내렸다. 그들은 대함대를 해체하고 배들을 항구에서 썩도록 했다. 선원을 해고하고 일정 크기 이상의 배를 만드는 일도 금지했다. 해상 범죄를 줄이겠다는 이런 선택은 되려 해상범죄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명나라 무역상들은 밀수와 해적질을 나섰고 실업자가된 대함대 선언 수천 명 또한 해적질에 참여했다. 명나라가 해적을 퇴치 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으로 되려 해적이 급증한 것이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 이처럼 해적으로 돌아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이들의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상선의 경우에는 해적에 비해 더 적은 임금을 받았다. 상한 음식을 제공 받는 등 처우가 좋지 못했다. 다만 해적선의 경우에는 종종 밴드가 있거나 극장이 있는 경우도 있고 몇몇의 경우에는 공동체에서 존경 받는 일원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선장은 식민지 사회에 저명한 구성원이 되어 적잖은 대우를 받기도 한다. 북해를 누비며 왕국을 무너뜨리던 바이킹과 왕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해적을 하던 사략선, 한, 중, 일 동아시아를 누비던 왜구까지. 흥미로운 소재인 '해적'에 대해 여러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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