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이준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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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물류산업 신사업 도약을 위한 3대 전략 마련'을 발표했다. 26년까지 로봇 배송, 27년까지 드론 배송 조기 상용화, AI 기반 전국 당일 배송 체계를 구축하는 등 여러 추진 전략이 소개됐다. '물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미래'는 들이닥친다. 국토부에서도 변화에 맞는 준비가 한창이다. AI, 미래자동차, 드론 등 곧 다가 올 기술을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기간시설에 대해 국가는 재빨리 흐름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산업이 신속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터를 닦고 준비해야 한다. 그것을 '인프라'라고 한다. 인프라는 민간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사업이 확대되기 전, 시설 확충은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시간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도 발생한다. 장래를 바라보는 행정력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를 진보적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시대에 맞는 빠른 행정력은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가.

얼마 전 애플페이가 한국에 상륙했다. 삼성페이와 다르게 애플페이는 모든 곳에서 결제할 수 없다. 애플페이가 일부에서만 결제가 되는 이유는 결제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삼성페이는 NFC와 MST 두 방식으로 결제된다. 다만 애플페이는 NFC 방식으로만 결제된다.

삼성페이가 지원하는 MST 방식은 구형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가 마그네틱 선에 내장된 정보를 읽는 방식이다. 애플은 NFC 방식을 이용한다. 지금껏 우리라에 애플페이의 도입이 늦어졌던 이유는 NFC 카드 단말기의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세는 NFC 방식이다. NFC 방식은 근거리 통신을 지원하기 때문에 전송 속도가 빠르고 암호화 기술로 보안성이 뛰어나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대한민국은 애플페이 도입이 늦어진 것일까. 1987년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이 본격적으로 늘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금융은 신용카드 발급을 늘렸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기존 현금 사용시 잦던 '탈세'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이로 국가 또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그렇게 1990년에는 1000만장이던 카드 발급수가 2002년에는 1억장을 초과했다. 이렇게 신용카드 사용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결제 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됐고 '이스라엘, 홍콩, 프랑스, 터키' 다음으로 세계 다섯 번째로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 됐다. 이처럼 카드 사용 빈도가 높다는 것은 소비를 진작하고 탈세를 막는 좋은 효과도 있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에게는 구형 마그네틱 카드 단말기가 보급됐다. 중국의 경우, 10년 간 현금을 중시해왔다. 우리와 같은 기존 산업국이 과도기의 기술을 도입하던 와중, 중국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중국인들의 '신용카드'보다 '직불카드'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리고 중간과정 없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결제를 받아 드린다. 우리는 세계적인 추세인 NFC 결제 방식의 도입이 늦어지는 반면 중국은 더 빠르게 '캐시리스' 사회가 됐다. 여기에는 '민간기업'의 '기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한몫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경쟁력은 세계 2위에서 34위로 떨어져 있다. 다만 중국은 현재 세계 6위다. 소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것이다. 미래를 먼저 준비한 행정력의 차이가 기술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여기에 아직도 현금을 사용하는 '일본'의 예를 함께 들어보면 더욱 적절할 듯하다.

배달 로봇이 상용화되는 일은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중 하나다. 다만 이런 기술의 도입에 앞서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할까. 드론을 통해 배송을 받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게 우리의 거주 형태는 수평적이지 않고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고로 드론을 이용한 배송보다 바퀴달린 이동수단이 더 우리 사회에 적합할 것이라고 이준석 작가는 말한다. 바퀴달린 이동 수단이 우리 사회 곳곳을 움직이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기계적이라기 보다 조금더 인도적이다. 바퀴 달린 운송수단을 배송 로봇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까. 바로 장애인에 대한 복지다. 무인 운송수단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인간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 장애물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보도블록과 도로의 턱, 계단 등이다. 로봇이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인간이 편하게 다녀야 한다. 행정은 단 하나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 아니라, 그 효과가 극대화되어야 한다. 고로 행정가들은 다방면으로 여러가지를 고려해 봐야한다. 그밖에 우리 사회가 맞이 할 거부할 수 없는 미래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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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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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여진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을 공격해 온다.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오랑캐와 화친한다는 광해를 폐위시켜, 반정을 일으킨 '인조'에게 일어난 일이다. 지금에 와서야, '광해'의 중립외교를 '실리외교'라고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아니다. 임진년에 파병까지 보내 준 '명'을 져버리고 오랑캐를 상대로 '중립외교'를 한다는 것은 당시 납득하기 힘든 의견이었다. 청과의 화친은 인조에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단순히 고리타분한 '사대부'들의 고집이 아니라, 정권 잡은 이들의 정치적 명분이었다. 병자호란은 어렇듯 단순히 여진에게 집밟힌 치옥의 역사가 아니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다.

1623년, 인조 반정이 일어난 시기, 그때는 누르하치가 명나라 푸순성을 함락시킨지 5년 뒤다. 본격적으로 청이 성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청 조차 명을 대체할 것이라 여기기 힘들 시기었다. 결과를 알고 보면 '명청교체기'의 조선 상황은 답답해 보인다. 소설과 영화에서 관객과 독자에게만 공개된 위기감을 주인공들이 모를 때, 독자와 관객은 불안과 긴박함을 느낀다. 그것을 서스펜스라고 부른다. 모든 걸 다 알고 볼 때는 조선의 상황이 무능하고 답답해 보이겠지만, 그것은 '미래'라는 결과를 알고 봤기 때문이다.

인조가 반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청의 영토는 조선보다 작고 척박했다. 여진이 조선을 공격해 오던 시기까지 명은 여전히 대륙 대부분을 지휘하는 폐권국이었다. 여진은 만주 일부에서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점이다. 여진은 종종 반도로 내려와 해적질을 하거나 노략질을 하곤 했다. 조선인들에게 여진은 중원을 대체할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는 조선에서는 '명청교체'를 생각해 볼 수 조차 없었다. 명이 청과 대등한 영토를 가진 시기는 병자호란이 10년도 지나서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각각 척화파와 주화파다. 청군과 화친을 맺어서는 안된다는 쪽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쪽이다. 이 둘은 병자호란 뒤에 심양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주화파 최명길은 당시 청군과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그 또한 전란이 수습된 뒤에 심양으로 압송된 것은 아이러니 하다. 실제로 그가 심양으로 압송된 이유는 명과 내통했다는 명분에서다. 남한산성 안에서 최며길과 김상헌은 각자 다른 주장을 했지만 시대적으로, 둘 다 청이 명을 집어 삼킬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치 못한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는 원래 여기저기 배밭이 있던 조용한 농촌이었다. 이 지역은 비만 오면 침수되기 일수였다. 이 지역은 197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평당 300원하던 땅값은 1억으로 올랐다. 그것은 결과를 알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지, 실제로 그것을 모르던 시기에서는 나아가는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최명길은 화친을 말하고 김상헌은 그것을 반대한다. 척화 주장을 했던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대립은 갈등 속에 두 의견을 던지는 자아를 닮았다. 최명길이 청에 답서를 쓰며 홍타이지를 황제자고 칭하자 김상헌은 그 자리에서 국서를 북북 찢어버렸다. 이에 최명길은 말한다.

"대감은 국서를찢으시오. 나는 다시 쓰겠습니다. 찢는 사람도 필요하고 찢어진 국서를 다시 줍는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서 그 어느 쪽도 선과 악이 아니고, 어느 쪽도 정의나 불의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가장 정치적인 말이다. 상대의 역할도, 자신의 역할도 모두 제 역할 일 뿐이다.

역사는 비극이고 치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역사가 남긴 것은 가치있다. 소설 '남한산성'은 '최명길'과 '김상헌'이 등장한다. 이 둘은 '인조'라는 임금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양쪽의 의견이 팽팽하다. 이쪽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이쪽이 맞고 저쪽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저쪽이 맞다. 살다보면 그런 상황은 종종 접한다. 어떤 쪽을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일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 맞고, 저렇게 보면 저것이 맞는 상황에서 자아가 힘겹게 갈등하는 일은 남한산성의 '인조'와 닮았다. 수학문제를 풀 때는 답지를 보아선 안 된다고 한다. 수학은 논리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논리란 사고와 추리 과정을 법칙적인 연관을 따라 끌어가는 일이다. 즉 답을 얻기 위해서는 법칙적 연관으로만 근거해야 한다. 다만 답을 알고 난 뒤 부터는 반대로 결과를 근거로 연관을 짜맞춘다. 고로 가장 비논리적인 과정을 학습한다.

조선시대 최악의 임금을 꼽으라면 대부분 '인조'와 '선조'를 꼽는다. 역사적으로 이들의 평가는 역시 좋지 못하다. 선조는 우유부단하고 겁 많고 질투심 많은 왕이라고 부른다. 인조 또한 우유부단하고 명분만 중요시 하는 인물로 여긴다. 다만 선조는 합리적인 성격이었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인조 또한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임금이었다. 그는 백성과 사대부 모두가 비판하던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단하고 정권을 안정화 하는 유능한 왕이었다. 그런 성격은 역시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선조와 인조의 평가는 박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결과론적이다. 선조와 인조가 우유부단하고 빠르지 못한 판단력을 보인 이유는 실제 그들이 그랬기 때문이아니라, 그들이 시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답을 골라도 오답인 경우가 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비슷한 문제가 나온다. '트롤리 딜레마(전차의 딜레마)'다. 선로에 5명의 사람이 묶여 있다. 전차가 직진을 하면 이 다섯은 죽는다. 다른 선로에는 1명의 사람이 묶여 있다. 전차의 방향을 바꾸면 한 명이 죽는다. 만약 선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레버가 있다면 이 레버를 당겨야 하는가?

어떤 선택도 '최악'과 '차악'만 있을 뿐, '최선'의 선택은 없다. 우리에게 놓인 옵션은 그런 성격인 경우도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혹은 경제적인 큰 흐름에 의해 달라진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던 수 만의 사람들은 모두 '비극'을 맞이 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와 별개다. 가치판단에 따라 평가는 다양해 질 수 있다. 다만, 시험에 놓인 이들은 시험에 놓여 보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인조'와 '선조'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 않다. '인간 이종'이라는 사람이 놓인 고뇌에 공감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최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보면, 고립된 '남한산성' 속에서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 오락 가락 갈등하는 인간의 갈등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인조 1636년 그것은 '역사'의 순간을 이야기 했지만, 어쩐지 나는 그로인해 인간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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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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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많은 이야기와 경험들로 가득차 있다. 이것을 글로 풀어 내기만 하면 뭐든 문학이 된다. 많은 작가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소설에 반영하며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 토루 와타나베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그 시절 20대의 일상과 인간관계, 사랑,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이 소설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직접 노출하진 않는다. 대신,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지진 않는다. 다만 적잖은 작품들이 작가의 경험에 픽션을 덧입혀 쓰여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또한 헤세 자신의 성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나니아 연대기 또한 작가의 아이들에게서 힌트를 얻어 시작된 판타지 소설이다. '하버트 셜리'의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실제로 발생한 흉기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완성한 소설 작품이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많다. '경험' 이라는 뼈대 위에 '상상력'이라는 살을 입혀 글이 완성되면 흥미와 진정성 모두를 얻을 수 있다. 문학 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은 많다. 자서전이나 회고록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 에세이도 경험과 감정을 담아 낼 수 있다.

삶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기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진실성은 독자들에게 공감, 인사이트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을 통해 작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데는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명상과 같은 이런 글쓰기는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한다. 자기 성찰 과정을 함께 이루어 내도록 한다. 다만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표현할지는 개인의 결정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공개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하는 경우는 너무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글을 표현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보면 피치 못하게 개인정보에 대한 내용이 담겨진다. 자신의 정보 뿐만 아니라,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개인정보가 함께 담겨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나의 저서에서도 꽤 많은 부분 개인정보들이 노출됐다. 때로는 실명이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 지명과 사건이 들어가기도 한다. 글을 읽는 독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점에서 이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로 자신의 표현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표현'이다. 이는 경험, 생각, 감정을 정리하게 하고 관점을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로 인해 독립적인 시각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쓴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과 공유의 기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간다.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혹은 받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 살아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대화와 소통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힌다.

어쨌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창작과 예술의 영역이다. 고로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은 언어적, 문학적 기술을 향상하게 한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하는 어투와 습관을 바라 보게 됐다. 수동태의 문장이 가독력을 잃게 하고 긴 술어가 집중력을 흐트리며 접속사 과다는 주술 관계를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학습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또 있다. 추억과 기록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그것은 추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사라져간다. 기억이 기록물로 전환되고 다시 출판물로 전환이 되면 기억은 반연구적으로 보존된다.

'민음사'의 시리즈 인 시리즈'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 중 하나인 '중급 한국어'라는 소설은 '초급 한국어'에 이어 나온 작품이다. '초급 한국어'를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전편과 후편으로 나눠진 성격의 글이 아니다. 고로 글을 읽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전후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만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의 태생부터 현 순간까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 갑자기 누군가와 인연을 맺게 되며 그 시작점으로부터 그를 파악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인물과 친해지는 과정을 닮았다. 소설이 특별한 서사를 담고 있다기 보다 일상의 서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의 삶 전편에 대한 궁금증은 있지만 그것을 몰랐다고 소설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시간 강사가 삶과 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서술하는 글이다. 그로써 어느 누군가의 인생을 가볍게 훔쳐봤다. 분명 가볍게 쓰여져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깊이가 무직하다. 사소한 인간 관계와 사건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몇 일 전,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경험했던 적잖은 일상들이 그 시기 나와 많은 부분 겹쳤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출판', '글쓰기',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고민' 등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는 '독자'에게 적잖은 공감이 됐다. 소설은 역시 99의 허구로만 만들어졌을 때 보다 작가 실제 고민과 성찰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을 때, 그 진정성을 바탕으로 가치가 있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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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마음 사전 - 가장 향기로운 속삭임의 세계
오데사 비게이 지음, 김아림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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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썰듯 경계를 베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경계 없는 모호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각. '후각'이다. 향기에는 경계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떤 향인지, 시작점은 어디고 끝점은 어딘지, 기록하기도 힘들고 보여주기도 힘들고 표현하기는 더 더욱 힘들다. 그런 특징이 인간의 감정을 닮았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모호함을 전달하기에는 '향'이 적절하다. 어쩌면 '향'을 닮은 것이 '꽃말'이다. 꽃은 단순히 그것이 담고 있는 '꽃말' 외에 맛, 향, 그것의 역사, 효능 등 다양한 것을 함께 전달한다. 쌍둥이 아이들의 이름에는 '율'자를 사용했다. '율'은 '율마나무'에서 따왔다. 율마나무는 성실함과 침착함이다. 율마는 키우기 까다로운 나무다. 한번 마르기 시작하면 살려내기 어렵지만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 끝도 없이 자란다. 율마나무는 스칠 때마다 상큼한 향과 피톤치드를 내뿜고 주변을 정화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율마나무' 하나로 꽤 많은 정의를 할 수 있다. 율마는 작은 화분으로 실내에서 키우다가 성장이 어느정도 되면 정원으로 옮겨 심을 수 있다. 야외로 나간 나무는 실내에서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여 정원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 자라난다. 이처럼 꽃과 나무에는 각자 그 성향을 닮은 꽃말이 있다.

제주에서 자주 보이는 '수국'도 참 매력있는 꽃이다. 예전 제주도에서 수국은 '도체비꽃'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어린 시절 수국을 보면 이름 때문에 무서워 도망 다녔다고 하신다. '도체비'라는 말은 '도깨비'의 제주식 방언이다. 도체비꽃은 토양의 ph에 따라 색을 바꾼다. 수국 꽃의 색깔은 수시로 변하는데 그것을 꺾어다가 심으면 이전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피는 희한한 꽃이다. 이 꽃의 별명이 '변화하는 장미'인 이유다. 수국은 일본 정원이나 절에서도 널리 재배됐다. 수국은 대부분 독성이 있고 청산가리 성분으로 알려진 시안화물을 소량 함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꽃은 약으로도 쓰이고 독으로도 쓰인다. 양귀비라는 꽃도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 양귀비는 꽃이 피기 전까지는 고개글 숙이고 있다가 개화하면 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이는 당나라 귀비 양 씨에서 따왔다. 경국지색, 나라를 망하게 할 만큼 미친 미모의 상징인 양귀비는 당나라 6대 왕 헌종의 마음을 끌어드렸고 헌종은 양귀비를 만난 뒤부터 국정을 소홀히 하여 백성과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 중독성으로 양귀비라는 꽃은 여러가지 마약의 원료로 사용된다. 양귀비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비 양 씨에게서는 겨드랑이에서 심각한 암내가 풍겼다고 한다. 이 양귀비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편'이다. 실제 중국은 '당'나라 시기뿐만 아니라 '청'나라도 '양귀비'에 의해 국가가 파탄에 이르는 독특한 역사를 갖는다. 이 아편을 정제하고 새롭게 추출하여 '모르핀'이라는 마약을 만들고 다시 모르핀을 아세틸화하여 만든 것이 '헤로인'이다.

경국지색하면 떠오르는 다른 인물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무척 좋아했다. 장미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꽃이기도 하지만 가장 오래된 꽃 중 하나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플로리전트 화석지대에서 최소 3,500만년 이상된 장미를 확인할 수 있단다. 그 뿐만 아니라 장미는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에서도 그 기록이 발견됐다고 하니 이 꽃이 인간과 함께한 역사가 꽤 길다고 할 수 있다. 장미유는 화장품이나 향수에 들어간다. 다만 그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재료다. 장미유 28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6만 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위해 지중해 실시아를 방문해 며칠동안 축제를 열었다.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지 4일째 되는날 그녀는 현대 가치로 125만 달러에 해당하는 장미를 구입한다. 구입한 장미를 깊이가 45cm인 복도의 바닥에 카펫으로 깔아 사용했다. 그녀는 그 밖에도 장미를 워낙 좋아했는데 장미 향수를 사용하고 장미 목욕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는 장미는 그 매력 많큼이나 꽃말도 다양하다. 활짝 핀 분홍색 장미는 약혼을, 반쯤 핀 분홍색 장미는 사랑을, 분홍 장미 봉오리는 찬탄을, 붉은 장미는 깊은 겸손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장미가 의미하는 '겸손'과 다르게 역사에서 장미는 '사치'를 위해 사용되곤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황제는 평소 장미로 채워진 베개를 쓰고 연회장은 장미로 도배를 했다. 장미향 분수, 장미 수영장, 장미 술, 음료, 푸딩 등 장미를 이용한 사치를 즐겼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는 카네이션을, 장례식장에는 국화를, 졸업식에는 프리지아와 작약을 선물한다. 유현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과시는 '생필품'에서 멀어질수록 뛰어나다고 한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정원에 잔디를 심어두곤 했는데 그 이유는 먹고 사는 것에 전혀 연관 없는 작물을 기르고 유지하는데 비용을 지불할 만큼 그 부와 여유를 과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꽃은 영원하지 않다.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보더라도 인간이 '생필품'과 전혀 연관 없는 무언가에 비용을 지불할수록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 만큼 꽃은 먹고 사는 이외의 무언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우리 삶에서 해왔으며 고로 삶의 중요한 순간과 장면에는 언제나 꽃이 함께 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여러 꽃들의 의미와 상징을 함께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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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평화가 당연하지 않은 미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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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볼록한 부분도 있고 오목한 부분도 있다. 따뜻한 부분도 있고 차가운 부분도 있다. 볕이 잘드는 밝은 부분도 있고 그림자 지는 부분도 있다. 애초에 우주에 완전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이 있으면 부지런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이 있으면 빈곤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고 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PC사상은 모든 종류의 편견을 없애자고 한다. 종교, 출신, 인종, 성별, 장애, 직업 등에 대해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편견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백번 맞다.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다만 차별을 없애는 것과 그것들이 모두 똑같아야 하는 논리는 다르다.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하는 논리는 겉으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오류가 있다.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다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고 동물과 인간도 다르고 기업인과 노동자도 다르다. 극단적인 동물애호가나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중에는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미국 NBA 선수의 74%는 흑인 선수다. 산부인과 전공의 중 여성은 90%이고 환경파괴의 근본적 원인은 인구증가다. 도덕적 혹은 윤리적 올바름은 선민사상을 갖는다. 자신이 가진 도덕적 올바름의 가치로 타인을 평가한다. 가령 건강한 채식주의자,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동물애호가 등은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실현하며 산다. 다만 극단적인 쪽에서는 높은 선민의식으로 다른 이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을 폄하하고 평가한다.

전쟁이 나지 않으면 좋다. 다만 전쟁은 언제나 있어 왔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의 기록이 없는 시기는 고작해봐야 268년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있어 왔기 때문에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전쟁 상황이라는 것이 꽤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진우 작가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보면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전쟁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전쟁 옹호론'과 다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또한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인도적인 안쓰러움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들이 정한 도덕적이고 윤리적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마치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서방 매스컴을 통해 이슈가 되어 있을 뿐, 비슷한 문제는 이미 세계 이곳 저곳에 있다. 매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일본에서는 매년 2만명이 자살한다. 파키스탄에서도 매년 5만명의 어린 아이가 오염수로 사망하고 중국에서는 매년 1만 명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 모든 슬픔을 함께 하고 살아야 할까. 대한민국에서 매 38분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살한다. 모든 죽음에 슬픔을 표할 수는 없다. 그것은 냉혹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전쟁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최악의 정치 행위다. 그러나 그렇다는 가치관과 그럼에도 그것이 피치 못하게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것이다. 파리가 붙어 있는 어린 흑인 아이가 흙탕물을 마시는 장면이 종종 영상으로 소개된다. 기부참여를 높이기 위해 극단적인 영상을 송출하는 것을 '빈곤포르노'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더 불쌍하고 가여운 모습이 노출되야 기부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근거는 납득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영상에 노출된 이들은 '흑인'에 대한 또다른 편견을 갖게 된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pc사상은 그렇게 오류를 갖게 된다. 전쟁은 현실이다. 전쟁은 '악'이 '선'을 공격하는 '아마겟돈'과 다르다.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한 연예인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 적 있다. 모두가 안타까워 할 사건에 그가 기부한 기부금의 액수를 문제시 한 것이다. 얼핏 듣기에도 꽤 거금이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그의 기부금을 비웃었다. 나또한 십수년 간 유니셰프를 통해 혹은 그 밖의 시설에 대략 천 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다만 단순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욕하고 우크라이나를 감싸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평가의 대상이 됐다. 자신의 월급에 십 분의 일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우월한 도덕적 잣대로 상대의 선행을 평가하는 일은 모순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K2전차를 비롯한 다양한 방산 산업의 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는 다양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그 누구하나 파병을 통해 돕진 않는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돈과 무기를 지원할 뿐이다. '국가'와 '이념'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인류애적'으로 보면 무기와 돈을 더 지원하면 전쟁은 길어지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난다.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쟁이었다는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을 대신하여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제 관계는 인간 혹은 개인의 탐욕, 도덕과 윤리적인 가치에 의해 작동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시스템의 갈등이다.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취하는 유럽과 미국의 시스템적인 갈등이다. 안정적인 정권 유지를 위협 받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시대는 단순히 무엇이 좋고 나쁘다로 규정할 수 없다.

그간 '영국', '일본', '미국'을 비롯한 해양 세력 국가들의 주도권이 두드러졌다. 해양 세력은 극강한 무역량을 바탕으로 세계화를 선도했으며 더 큰 부를 소유하고 영향력과 군사력을 확장했다. 다만 대륙세력은 해양세력에 의해 고립되기 일 수 였다. 어느 편을 들고 어느 쪽을 응원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무엇이 맞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쟁은 역사에서 피치 못하게 일어났었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전쟁을 통해 커다란 이익을 얻는다. 주식의 등락이 요동치고 새로운 외교의 명분의 생긴다. 가치 판단보다는 현실 대응이 언제나 중요하다. 전쟁은 언제라도 일어 날 수 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났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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