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 테마소설집 1
정대건 외 지음 / 읻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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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넓다. 쓸데 없는 생각이 많다.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한다.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상에서 대체로 입을 다문다. 살아 있는 옆사람보다 누군가가 혼자 사색한 글을 읽는 것이 더 공감된다. 현실에서 대체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준다. 고민을 들어주면 그 감정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나가지 못하고 좌뇌와 우뇌의 구석구석을 훑고 마치 자기 일처럼 착각한다. 스타벅스의 종이빨대가 지구 환경을 구하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한다. 그들이 건내는 리유저블 컵이 진정 환경을 위한 것인지, 다시 그곳을 찾게 하는 마케팅적인 요소인지 그 진심에 골똘하게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나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스스로의 답을 내놓는다. 글을 쓰면 글이 어려워진다. 말을 하면 말이 겉돈다. 생각하면 생각이 깊어진다. 글을 쉽게 쓰고 싶고 말을 간결하게 하고 싶오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끊임없이 내면과 부딪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좌절한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

그 고민이 한참이 이어진다. 친한 누군가의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감정은 각 시간마다 고요함과 요동침의 파동을 갖는다. 그 주파수에 맞는 행동과 생각을 하고 싶다.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가 나만의 감정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방해금지 모드로 스마트폰을 변경하고 쌓여 있는 미확인 메시지를 내 감정이 용납하는 시간에 확인한다. 그것들이 나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장벽을 쌓는다. 갑작스러운 불청격을 싫어한다.

"어. 미안해. 뭐 좀 하느라 이제 확인했어."

'여보세요'보다 먼저 하는 인사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누군가는 '그려려니'한다. 극도로 외로움을 느껴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저절로 진짜들만 진득하게 쌓여간다. 그들은 소중하지만 그래도 내 영역을 침범해 올 수 없다.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

특별하게 하는 일이 없어도 배꼽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불편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일단 거절하고 본다.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 일러준다. 잊지 못하고 '언제 연락을 주면 될까' 고민한다. 연락을 먼저 준 것은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왜 지금 보자고 했을까', '왜 잠깐 보자고 했을까', '왜 하필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전화를 한다.

"그래. 어디야? 지금 갈께."

그 귀찮은 내부의 목소리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그냥 나가기로 결정한다. 대충 차려입고 나간다. 그러나 그냥 연락했다는 이야기에 허탈함을 느낀다. '그냥 잡담이구나.'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깜빡 거리는 스마트폰의 배터리 표기처럼 '뇌용량 방전'을 알리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온다. 집으로 들어온다. 분명 즐거웠으나 후회가 밀려온다. 이런 비생산적인 대화였으면 그냥 집에서 쉴 것을...

최대한 편한 옷을 갈아입는다. 스마트폰 SNS를 켠다. 너무 많은 정보가 눈으로 쏟아져 온다. 꺼버린다. 생각은 SNS의 유해함으로 이어진다. 저것은 뇌에 어떤 작용을 할까. 저것을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 흔히 말하는 쓸데 없는 생각이 머리를 마구 어지럽힌다. 영화를 보기로 한다. 넷플릭스 영화를 켠다.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예전에 봤던 영화 중 흥미롭게 봤던 영화를 선택한다. 마음이 놓인다. 나 스스로의 검증이 끝난 영화를 켠다. 이미 몇차례 본 영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본다.

"감독은 이 장면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우는 이 역할을 찍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배역은 당시 무슨 생각이 었을까?"

배우 얼굴에 나타난 미세한 근육 떨림, 머릿카락 흔들림까지 모두 포착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지나가는 역할을 하던 엑스트라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불현듯, 예전에 봤던 '프렌즈'라는 시트콤이 떠오른다. 거기에 비중이 작은 배우를 하나 떠올린다. '건터'라는 카페 주인이 떠올랐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James Michale Taylor' 이것이 '건터'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었다. 그는 수 년 전에도 그의 이름을 비슷한 경로로 검색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기억이 났다. 그가 우연히 지나가는 배역인 '건터' 역을 했다가 정식 배우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조금을 더 검색해보니, 2021년 5월 전립선암 투병 중 그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 그럴 줄 알았으면 예전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달았으면..."

그의 인생에 대해 궁금했다. 30년이나 된 성공한 시트콤에 출연한 그의 이후 삶에 대해 알기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끈다. 한 참을 멍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대체로 비현실적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시 그것의 꼬리를 생각이 물었다. 그 생각은 꼬리를 내밀고 다음 생각에게 여지를 주고 있었다.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쓸데 없는 생각. 그것을 없애고 싶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다 내 안에 있는 가장 단순하고 냉철한 그 어떤 자아를 꺼내어 다시 MBTI 검사를 해본다. 최대한 외향적이고 최대한 냉철하고, 최대한 비계획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검사를 한다. 결과가 나온다.

또...

INFJ...

침울해진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이 세계 1퍼센트나 있다. 스스로의 불쌍함을 잊고 그들이 참 불쌍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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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역사 - 금융 위기 200년사에서 미래 경제의 해법을 찾다 CEO의 서재 40
토머스 바타니안 지음, 이은주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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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부터 2020년까지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일어나 파산한 은행의 갯수는 2만 개다. 같은 기간 캐나다에서는 은행 파산이 두 차례 밖에 일어나지 않았으며 미국보다 은행업 위기가 많이 발생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뿐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만 지나치게 금융 위기와 공황이 잦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지난 200년간 9번의 금융 공황이 일어나고 위기가 일어났다. 물론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토마스 바타니안'은 그것이 미국 정책의 과도한 개입과 잘못된 감독, 규제 때문이라고 봤다. 토마스 바타니안은 커터 행정부에서 통화감독청 수석 고문의 특별 보좌역을 맡았고 레이먼 행정부에서는 연방주택대출은행 이사회의 법무자문의원을 맡았다. 이후 정부 단체와 금융회사, 투자자를 대표하는 일을 하며 미국 행정부에 비공식적인 자문역을 담당한 작가다. 그는 미국 역사에 등장하는 50번의 대형 금융 기관 실패 사례 중 30건을 자문한다. 또한 합병, 규제 등의 문제에 관한 다양한 소송을 진행하기도 한 변호사다. 이처럼 미국 행정부에서 금융에 관해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던 그가 생각한 미극 금융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이렇다. 미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은 물론 좋은 의도로 시작을 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도 많다.

2023년 3월 10일 실리콘밸리은행인 SVB가 파산했다. SVB는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정도 되는 은행이다. 이 은행은 어떻게 파산하게 됐을까. 2023년 이전까지는 미국의 화폐발행으로 인해 유동성이 증가하던 막바지 시기다. 이 시기에 SVB는 고객의 예금을 대출이 아닌,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이들은 대체로 장기 자산에 속한다. 빠르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이 자산들을 잔뜩 들고 있떤 이 은행은 2022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2022년 미연방준비제도인 FED가 금리인상을 급격하게 진행하면서 부터다. 금리 인상이 진행되자, 고객들의 예금은 줄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출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SVB의 잔고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에 고객 예금을 돌려주기 위해, SVB는 가지고 있던 미국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2년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손실액이 커졌다. 그 과정중 미국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은행은 파산했다.

2008년 금융 위기도 비슷하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알기 위해선 2002년으로 먼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2년, 미국에서는 커다란 이벤트 하나가 발생한다. 바로 911테러의 발생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져 내린 것 이상의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주식 시장은 거의 일주일 동안 폐장된다. 이는 미국 투자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었다. 주가는 크게 하락했고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때 연준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다. 2001년까지 6%였던 금리는 1.25%까지 낮아졌다. 저금리 시대가 열리자,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기 시작한다. 정부는 이에 주택소유장려정책을 펼치고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한 규제를 철저하게 완화한다. 정부의 정책은 분명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던 좋은 의도였다. 다만 이는 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투기성 자본이 부동산으로 몰려 드는 것이다. 당시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리자, 은행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저당채권을 금융회사에 판다. 주택저당채권이란 은행이 주택을 대출해 줄 때, 집을 담보로 받게 되는 권리다. 이것으로 은행은 대출금 상환을 보장 받을 수 있고, 대출 받은 사람은 주택을 구매할 수 있게 되다. 그러나 이 채권을 산 회사는 이것을 담보로 다시 투자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투자은행은 이 채권을 묶어 신용상품을 발행한다. 이처럼 여러 개의 채권을 묶어서 하나의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드는 것을 CDO라고 부른다. 이 CDO는 당연히 구조적으로 투명하기 힘들고 투자자가 그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여러 개의 채권을 가지기 때문에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하다.

어쨌건 저금리와 주택담보대출 장려라는 정책변화는 미국 부동산 시장을 활발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 당연히 부동산 투자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이에 묶여 있는 CDO가 미국 밖에서도 팔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CDO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은행은 대출 허가를 늘리기 시작한다. 미국의 모기지는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눠지는데, 신용도가 높은 고소득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임 등급, 그 다음으로 알트 A등급, 마지막으로 신용도가 가장 낮은 서브 프라임 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미국은 늘어난 수요을 맞추기 위해 저신용자들인 서브프라임 등급까지 대출 허가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대출을 허가한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하나 서브프라임 등급자들이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은행은 부동산을 차압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충당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 있었던 SVB은행 사태와 마찬가지로 은행의 부실해진 시기에 급격한 금리 인상 정책이 실행된다. 0.02%까지 낮아진 금리는 5.25%까지 높아지게 된다. 대출금리는 최초 2년 간, 고정금리로 진행하다가 나머지 기간은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출 금리가 6% 이상이 되어가자, 상환 능력이 부족한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채무불이행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상환하지 못한 대출자들은 집을 차압당하고 부동산 매물은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에 연동되어 있는 CDO의 가치도 함께 폭락하며 미국 내외로 수많은 은행과 금융사가 도산 위기에 놓인다. 여기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며 그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

분명 이런 금융 위기가 하나의 이벤트로 인해 일어났다고 보기 힘들다. 대체로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미국의 중앙의 금융정책이 다른 역효과를 내며 커다란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토머스 바타니안은 공황의 요소 중 대부분이 정부가 관리를 잘못하여 시장이 과열되면 일어난다고 봤다. 여럿 차례의 금융 위기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일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대응과 관리에 대한 미흡에 대해서는 일관성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블록화 현상'이다. '세계화'에 익숙한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만 낮선 것은 아니다. 경제와 정책을 담당하는 의사 결정자들 또한 조금 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축통화를 둘러 싼 다양한 이견과 전쟁, 중국의 성장, 무역전쟁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독립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좋은 인사이트를 갖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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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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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임금'에게 판매한 아주 똑똑한 마케터를 알고 있다. 벌거 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제단사들이다. 이들은 어느날 임금에게 나타나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신하들은 중간 중간 제단사를 찾아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멍청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고로 옷이 보이는 것처럼 임금에게 보고한다. 다시 같은 이유로 다른 신화들이 찾아왔고 그들도 역시 옷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임금이 그 옷을 받게 된다. 모든 신하의 눈에는 보인다는 '이 옷'을 임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임금의 체통이 있어, 임금은 그것을 보인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신하들이 아름답다고 말한 옷이다. 모든 신하들이 극찬을 했다. 임금도 그 옷이 반드시 보여야했다. 제단사들은 임금에게 옷을 입히는 시늉을 한다. 임금 또한 옷 입는 시늉을 한다. 이후 옷을 입고 임금은 거리를 나선다. 시민 그 누구도 그 옷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모두가 보이는 옷을 자신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근엄한 표정으로 보이는 것처럼 시늉하다가 한 어린 아이가 소리친다.

"임금님이 벌거 벗었데요!"

그제서야 사람들은 옷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전을 읽으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된 책. 과연 그 책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그것을 읽고 커다란 감명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것이 임금님의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과 같은 것은 아닐까. 만인에게 검증된 책이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멍청이'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임금님이 벌거 벗었다'고 외친 어린 아이와 닮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그런 책들이 있다.

첫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고전을 읽으며 어떤 사람들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이야기를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실제 이상했다. 사람들은 여기에 상징주의를 담아 다양한 해석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이상했다. 대사도 전여 개연성 없이 이어졌다. 그것을 많은 사람이 인정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책에 대해 조금 더 심도 있게 살펴보려고 했지만, 나의 턱 없는 문해력으로 그 책은 그냥 이상한 책이었다. 책에서 앨리스는 커지고 작아지고 물체가 왜곡되는 것을 경함한다. 이런 형태 왜곡 인식 현상을 실제, 소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경험했는데, 그는 의식변조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었고 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었다. 1955년 영국 외과의사인 J. Todd에 의해 논문으로 다뤄졌는데 이는 '이상한 나라의 증후군' 혹은 '토드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영미권에서 흥미로운 소설인 이유는 다름 아닌, 언여 유희 때문이다. 가령 대사중에는

"내가 본 것은 고양이었어?"라는 대사가 있다. 당췌 그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이 대사를 영어로 바꿔보면 이렇다. "Was it a cat I saw?"

이 대사의 영어 스펠링을 거꾸로 쓰면 "Was it a cat I saw?"로 같은 말이 완성된다. 이 대사를 한국어로 보고 소설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차를 뜻하는 "Tea"와 발음이 비슷한 "T"를 이용한 언어 유희도 나온다. 이것을 한국어 버전의 소설로 읽고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공감하기 힘들다.

둘 째, 신곡.

이탈리아 작가 단테의 신곡은 이름이 무시무시하다.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가 그것을 읽고 그렇게 느꼈느냐 묻는다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단테의 신곡은 역시 어렵다.'고 말하지만 내가 읽은 단테의 신곡은 어렵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단테의 신곡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일단 인물의 이름이 어렵다.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보다 모르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고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것은 당연하다. 1300년에 지어진 책에 등장하는 인물을 '상식'으로 모두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단테의 개인적 라이벌이 꽤 나온다. 우리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들 인물 정보를 검색해 보면 역사적인 정보가 나오지만 정보가 그렇게 문서화 되어 있으면 역시 무시무시해 보일 뿐이다. 이 책은 지옥을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테는 지옥을 갔다 온 적이 없다. 그가 묘사한 것은 상상일 뿐이다. 신곡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등장인물들도 많이 등장한다. 플라톤이나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고, 소크라테스나 카이사르도 등장한다. 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런 이름들을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고 읽으면 단테의 신곡은 생각만큼 묵직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묵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의 근대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나뉜다." - T.S 엘리엇.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모든 문학의 절정"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무시 무시한 사람들이 '극찬한 이 '신곡'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과연 '바보'가 될 것이다. 나는 확실히 '바보'이기에 '신곡'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겠다.

참고로 'T.S 엘리엇,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분명 대단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인물 중 괴테의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책도 읽어 본 적 없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인 '노인과 바다'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그의 소설을 그저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노인과 바다'에 들어가는 '상징주의'에 대해 그저 독자의 몫으로 두었을 뿐이지 깊은 문학적 상징을 염두하고 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떠오르는 감독과 뮤지션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다.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대사는 '밥은 먹고 다니니?'다. 이 대사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석을 두었지만, 실제 이는 송강호 배우의 애드립이었다.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는 당시 서울대 사회과학대 출신의 가수의 노래라는 이유로 '청년 실업에 대한 사회 비판과 풍자'로 알려졌으나 정작, 작사할 때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직접 해명했다. 그 밖에도 '양희은' 가수의 '아침이슬'은 '민주화 운동'과 전혀 관련 없었음에도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졌고 가수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의 테마곡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고전을 더욱 풍성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가령 '대체 그 많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사랑했을까'

하며 그 글이 내포하는 많은 해석을 찾으려 든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속에 작가는 내용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사색하는 것은 독서를 풍요롭게 한다. 고전을 읽는 습관은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통해 다양한 사색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이유가 나의 지성 탓인지, 혹은 그것과 그것을 평가하는 권위자의 권위에 의해, 없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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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록 - 내 인생을 바꾸는 작은 기적 기록
안예진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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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패권 다툼이었다. 농경민족은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고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착하고 자리잡고 문화적 번영을 하는 이룬다. 덩치가 크고 잃을 것이 많다. 비옥한 토지를 선점한다. 나아가기 보다 지키는 것을 우선시 한다. 대체로 분업이 잘 되어 있다.

유목민족은 반대다. 대체로 기민하게 움직인다. 척박한 땅에 거주한다. 덩치가 작고 잃을 것이 없다. 지키는 것보다 나아가는 것을 우선시한다. 대체로 분업보다는 개인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유목민족은 몽골이나 여진이 있다. 이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대체로 가난했고 전문적 능력도 갖추지 않았다. 날아가는 새처럼 최대한 몸집을 가볍게 해야 했다. 언제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도록 중요한 것이 아니면 덜어 냈다. 이들의 특징은 '기동력'과 '자유', '다재다능'이다. 몽골족은 이민족의 침략에 재빠르게 도망 다녔다. 활동을 위해 소지품을 최소화했다. 중요한 무언가를 제외하면 모두 버려야 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본능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이는 본질 파악 능력을 향상 시켰다. 한 곳에 머무르다보면 불필요한 잡동사니가 쌓인다. 살아가며 꼭 필요한 것들을 쌓아 두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결국 모른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잃을 것이 많은 농경민족과 잃을 것 없는 유목민족의 결정적 차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초원을 유랑하는 유목 민족도 있지만 바다를 유랑하는 유목 민족도 있다. 대체로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섬나라가 그렇다. 이들은 떠돌아 다니다가 약탈을 했다. 스스로 음식을 지어 먹었고 전쟁에도 참여했다. 농사를 짓거나 사냥도 하기도 했다. 전문 분야를 나누지 않고 개인의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해야 했다. 세계를 보면 농경민족들이 번영하다가 쇠퇴와 부패가 시작하면 잽싸게 유목민족들이 패권을 앗아갔다. 몽골, 일본, 영국, 여진 등 갑자기 세계사에 중심으로 우뚝 서버린다. 경제에서도 이와 같다. 덩치가 커지면 기동성이 줄어든다. 지나치게 커저버린 덩치 때문에 줄어든 기동성을 '프리랜서'들은 잽싸게 채워나간다. 공무원이나 대기업보다 더 선호 되는 것이 '유튜버'라는 직업이다. 커다란 덩치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지만 사람들은 자유를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공동체가 지나치게 둔해지고 비합리적이게 되면 사람들은 권태감을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 유목민족처럼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잽싸게 유목민들이 패권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지금 현재가 그 과도기라 보여진다. '디지털노마드', '경제적 자유'. 이런 것들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소속감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을 중요시 생각했다. 경제와 사회, 문화분야에서 '인플루언서', 즉 유목민들이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농경민족의 자리를 빠르게 꿰찬다. TV를 켜면 대형 유튜버들이 나온다. 이들은 스스로 연출가이자 음향감독이고 카메라 감독이자 출연자이자 작가이고, 편집자이기도 하다. 혼자서 모든 역량을 다 해낸다.

사람들이 '유목민'에 대한 환상을 갖는 이유다. 이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스스로 컨텐츠를 제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도 한다. 이런 유목민에게 가장 큰 원동력은 사실 '결핍'과 '불안'이다. 초기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이들의 경우, 공동체가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기 바쁘다. 대체로 인플루언서들의 상당수는 항상 겉돌다가 기회를 발견한다. '도서 인플루언서' '안예진' 작가는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녀의 이름에 따라 그녀는 '유목민'을 꿈꾼다. 유목민처럼 그녀는 안정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도전'과 '자유'를 희망한다. 그녀가 이처럼 유목민을 지향하면서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현대 많은 사람들도 원하는 삶이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했다. '돈'에 대해 조금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사는 삶을 말한다. '농경민족'에게는 사실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대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꾸준하고 보장된 수확물만 존재할 뿐이다. 유목민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기회를 틈타 높은 기동성으로 커다란 성장을 할 때가 있다. 대체로 이들은 꾸준하지는 못해도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만큼의 기회가 충분하게 있고 흔히 말하는 '대박'의 꿈도 가질 수 있다.

주식투자에 실패하거나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여러 지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것으로 보아 '안예진 작가'의 삶은 유목민을 닮았다. 내 성향도 비슷하다. 역사, 경제, 양자역학, 풍수지리, 관상, 필체, 뇌과학, 동양철학, 소설, 서양철학, 종교, 미술, 음악, 뭐든 상관 없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렇게 읽다보니 얻는 게 많다. 개인이 여러가지 일에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유목민의 특성'에도 맞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보니 어떤 것을 볼 때, 다면적이게 보인다. 가령 현대미술을 보면서 역사와 기술이 떠오른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서양미술은 사실적인 그림에 권태를 느끼고 일본에서 찾은 '자포니즘'이 성장한다 던지. 노자를 읽으면서 양자역학과 닮은 부분을 찾아 본 다던지. 국부론과 종의 기원을 섞어 생각해 본다던지.

현상과 사물이 기존에 알고 있던 '관념'이 아닌 다각화된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것은 분명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그것이 다른 선택들을 하게 한다고 믿는다.

네이버 '도서인플루언서', '논술 부분 엑스퍼트'로 나 또한 등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많은 것을 얻는 부분이라면 지식적인 부분이다. 분명 농경으로 남들이 곡간을 채워가는 기간에, 여러 분야에 지식을 채워 놓고 있다고 본다.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훔쳐갈수도 없는 멈추지 않는 샘물을 내부에 만든다고 본다. 그것은 언젠가 화수분이 되어 채우고도 넘칠 것이다. 개인적 소통은 없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그런 신뢰가 있다. 단순히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기술'을 떠나, '저 사람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녹아져 있을까' 떠올리면, 이들의 미래가 기대되고 때로는 때로는 자극받기도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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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 성공 법칙 -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는 가장 강력한 8가지 습관 리어웨이크 시리즈 2
간다 마사노리 지음, 서승범 옮김 / 생각지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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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선과 악을 가르지 않는다. 중력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던, 나쁜 사람이던 '힘'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는 양자로 나눠져 있다. 그것을 '음' 혹은 '양'으로 불러도 좋다.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 '여름'과 '겨울', '겉'과 '속' 이렇게 이렇게 양자로 나눠진 것들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에너지의 크기는 같다. 이것을 수학에서는 '절대값'이라고 부른다. 절대값은 이렇다. 수직선 위에 한점을 찍고 좌측이던 우측이던 점으로부터 멀어져 보자. -3과 +3은 둘다 절대값 3이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파동을 보면 위로 볼록 나온 부분을 '마루',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골'이라고 부른다. 진동의 중심에서 골과 마루는 각각 일정부분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결국 '골'이나 '마루'나, 진동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진폭은 커지며 진폭이 커지면 파동이 커진다. 선한 내적 동기나 악한 내적 동기나 둘다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일정 부분에 성공을 이룬 이들을 보면 대체로 '선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지만, '악한 동기'로 시작한 사람도 있다. 가령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겠어'라고 다짐하는 에너지나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복수하겠어'하는 에너지나, 절대값은 같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크지만 '증오'는 그 대척점에서 사랑만큼 큰 에너지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던 믿지 않던 혹은 그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것은 그저 그렇다. 도덕적이고 윤리적 잣대는 인간의 관념상에서나 존재하지 태초에 자연과 우주에 '도덕'과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석유는 '선'하기 때문에 '물'보다 더 많은 열량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세상에는 꼭 좋은 사람에게만 '돈'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기치거나 속이고 기만한 사람에게도 '돈'은 여지없이 따라 붙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람과 집단에게도 '돈'은 끌려간다. 그것은 '중력'과 같다. 중력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작동한다. 때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끌리기도 하고 실제로 사이코패스 또한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은 걸로 알려졌다.

부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만큼 '악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공한 이들을 보면 때로 열등감이나 복수심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이런 에너지를 이용하여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확보한다. 뒤이어 스스로를 움직였단 '악의 감정'에서 벗어나 '선한 영향력'을 고민한다. '악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다수는 대체로 '결핍'이다. 결핍이 해결된 이들은 더이상 '악의 감정'이 동력으로써 에너지를 잃는다. 이후부터 그들은 다른 도약을 위해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후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이들은 다시 한 단계 도약을 하며 다음 단계로 퀀텀 점프를 한다. 이들이 이처럼 두 번 째 감정으로 퀀텀 점프를 할 때 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꽤 높아진다. 또한 말 그대로 또다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출판'한다. 결국 출판되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선한 영향력'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한결 같은 성공 방정식은 없다. 17세기에는 17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고 21세기에는 21세기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다. 20대에는 2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고 50대에는 50대에 맞는 방정식이 있다.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에게 맞는 방정식이 있고 자영업자에게는 자영업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성별, 지역, 출신, 시기, 나이에 따른 각자 다른 방정식이 존재한다. 대체로 베스트셀러에 속한 자기계발서는 '대중'에게 선택 받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화 된 내용일 뿐이며 모두가 같은 방정식이 사용된다고 볼 수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중학생에 입학한다. 인간의 관심사는 처음에는 먹는 것에, 그 다음은 부모에 그리고 친구로 이어진다. 다시 이성과 부, 사회적 지위, 건강, 행복 등으로 넘어간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다. 유명한 누군가의 자기계발서를 보며 따라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는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제비가 박씨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그것이 '선'이던 '악'이던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초기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발화하는 것은 '악'의 에너지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악'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갖고 있는 '열등감' 혹은 '복수심', 보여주고 말겠다는 '허세'와 '허풍' 혹은 '허영심'도 포함된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당췌 말이 안되는 목표를 허풍을 늘어놓고 그것을 해내고 만다. 내뱉고나면 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카푸어'라는 이들의 대부분은 빈곤해지는 과정을 겪지만 이들 중 소수는 실제 그것을 탈 수 있는 사회적 지위까지 스스로 만들어내곤 한다. 위로 혹은 아래로 깊은 진폭은 어쨌건 '동력'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무엇으로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 말의 본질은 '움직임'이 결국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악'이던 '선'이던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까. 원리는 이렇다. 그것을 종이 위에 쓰는 것이다. 우리뇌에 들어 온 정보는 '망상활성계'에 이해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로 나눠져 이곳 저곳에 전송된다. 어떤 정보는 우선시 되고, 어떤 정보는 그렇지 않는다. 망상활성계는 이렇게 나눠진 정보 중 일부 정보에 기민하게 만들고 각성되게 한다. 종이 위에 글을 쓰면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깊은 곳에 박힌다. 이후 뇌는 우연하게 스치는 수많은 정보 중 '일부 그것'을 기민하게 받아들이고 발견한다. 그것을 스스로 재생산하고 저장하길 반복한다. 그런 과정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일어난다. 결국 무의식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세상 가장 신기한 힘은 따지고보면 '중력' 아닌가. 왜 그것이 서로를 당기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한다. 결국 '힘'은 원리를 파악하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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