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미르 파란시선 127
류성훈 지음 / 파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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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는 것은 점점 더 공감에서 멀어진다는 뜻이었고 공감하기 위해선 말을 끝내야 할 때가 있었고 그런 끝은 점점 늘어만 갔다." -류성훈의 '글루코사민 중'

산에 오르면 산 전체가 위로를 줄 때도 있지만 작은 풀이나 나무가 위로를 줄 때가 있다. 무작위로 뻗어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이 아주 오묘하게 마음을 위로하게 되면 산이 아닌 '그것'을 위해 그곳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어떤 것이 나를 위로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뜯어보지 않은 포장 산물처럼 무엇이 나를 위로할지 알 수 없이 산행한다. 무언가로 위로 받으면 숨겨둔 보물을 당연하듯 찾아내고 내려온다. 그것이 마치 목적인 것 처럼.

때로는 규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규모가 담지 못한 것을 담아낼 때가 있다. 무엇을 찾아낼지 알지 못하면서 무엇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행할 때가 있다.

대체로 '시'는 그렇다.

시를 읽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가 적확하게 나에게 들어 맞을 때가 있다. 다만 그 적확은 아주 미묘한 감정의 선을 건드린다. 단연컨데 시인의 글은 그의 것이다. 그가 뱉어낸 글에는 시인의 철학과 생각이 담겼고 시인의 경험과 문체가 담긴다. 그러나 그것이 넘어오면 그것은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담겨와 바늘 끝 같은 감정의 쳠예함을 정확히 타격한다. 바늘 끝이 바늘 끝과 닿는 아주 극미세한 교감에 온몸이 전율이 흐를 때가 있다.

'대화한다는 것은 공감에서 멀어진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도 하다. 세상 누구도 자신보다 더 자신다울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큼 해 본 적이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자신만큼 시간들여 들여다본 적 없다. 그것은 부모, 형제, 부부할 것 없고 친구, 연인은 말할 나위 없다.

말을 할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때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달, 바다, 산에게 위로 받는다. 그것의 특장점이란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사람을 기르지 않는 시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 반려동물을 길러 본 적 있는 이들의 수가 국민 과반을 넘는다. 말하는 동물의 양육이 인생에 패착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부모로 학습했다.

결국 그 하나의 바둑돌을 내려 두면서 판 전체가 어그러지는 오묘한 관경을 바라본 자녀세대의 현명한 선택은 '말하는 동물'을 키우지 않자는 것이 아닐까.

소통은 공감이 아니다. 소통은 그저 오고 가는 창구를 열어 놓는 일일 뿐이지 그것이 진청 하나의 감정으로 덩어리 지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오고 가는 소통의 창구로 인해 어떤 누군가들은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들은 색이 다른 이들의 감정으로 오염이나 물이 들기도 한다.

자전만 있고 공전 없는 춤들.

나아감 없이 제자리에서 근면하게 도는 것들에 대한 회의감. 그것은 과정이라는 이름에 언제나 따라다닌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 받고 싶기에 어디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근면해진다. 그것이 자신의 자리라고 착각한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공전하며 나아가 버린다.

고도로 성장하던 경제의 발전이 한풀이 꺾이고 그것이 다시 한풀이 꺾여, 전설적인 성공을 이뤄낸 어버이들에 대한 열등감.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낸 동년배들과의 경쟁심. 그것은 남녀를 불문해졌다.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든 뭐든 잡히는대로 물속에 처박아 한 모금의 숨을 뻐끔 거리듯, 대상은 자녀, 부모 심지어 사랑해야 할 이성까지다.

삭막한 경쟁사회가 생존본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사방에 적만 가득하다는 학습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우리는 해버린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들임에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들은 결국 아주 똑똑한 선택을 한다. 몰라야 할 것은 몰라도 좋다.

7살 아이는 7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고 스무살 청년은 스무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너무 빨리 성숙해진 세상이 서로서로 삭막해지게 하고 의미를 상실케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가만 보면 그것은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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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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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침팬지를 간식과 공간으로 훈련한 실험이 있었다. 1973년 뉴욕 콜롬비아 대학의 허버트 테라스 교수의 실험이다. 그는 평범한 침팬지를 수학 문제를 풀고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침팬지로 훈련시켰다. 훈련방식은 간단하다. 배고픈 침팬지를 한 공간에 넣는다. 공간의 가운데 선을 긋는다. 침팬지가 우연히 선을 넘으면 배식구에서 사과조각이 떨어진다. 침팬지는 그 공간을 학습했다. 침팬지의 학습이 끝나자 실험자들은 공간을 바꾼다. 선 대신에 커다란 버튼을 설치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커다란 버튼을 누른 침팬지는 사과를 얻었다. 비슷한 과정을 몇 차례하며 실험자들이 했던 것은 침팬지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었다. 단계별로 학습 난이도는 올라갔다. 이후 침팬지는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고 인간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천재 침팬지고 길러졌다. 인간은 항상 공간으로부터 학습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

건축은 단순히 구조물을 쌓고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만드는 것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다. 건축물을 짓는 행위는 '시'를 짓거나, '밥'을 짓는 것 처럼 재료를 들어 구조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건축 자재도 들어가지만 짓는 이의 철학과 의미가 함께들어간다. 시나 밥과 같이 그것은 짓는 자체 보다는 상대를 위해 대접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결국 상대에 대한 공감인지 능력이 공간인지 능력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바꾸는데 아주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옷'과 '공간'이다. 영국 속담에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처칠의 말처럼 공간도 사람을 만든다. 조선시대 임금은 정3품 이상의 고위관리와 조정회의를 했다. 이때 임금은 가장 진한 적색 곤룡포를 입었고 그 중심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그의 자리는 입식의자 위에 앉았다. 정3품의 당상관들은 임금의 좌와 우에 좌식으로 앉아 조금 밝은 적색 의복을 입었다. 또한 임금을 측면으로만 대할 수 있었다. 임금은 위에서 아래로 신하들 전체를 정면으로 내려다 봤지만 신하들은 임금을 바라 볼 수 없었다. 의복과 더불어 공간은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실제 2.7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3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의 창의력이 두 배나 높게 나왔다는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공간이 중요한 이유 그것이 물리적 공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인 공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맹모삼천지교'도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맹자의 어머니는 아이의 환경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으로 인해 이사를 다녔다.

사피엔스에게 공간은 몹시 중요하다.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를 벗어나 모든 대륙으로 인류가 뻗어 나간 것은 인간이 '공간'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살기 적합한 공간을 찾아 능동적으로 다녔다. 기후변화로 밀림을 잃은 원숭이가 초원의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리를 펴고 앞발을 들어 먼 공간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허리가 펴진 원숭이들은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직립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후면 근육이 강화해야 했고 후면 근육이 강화되면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2족보행을 하게 됐다. 2족보행은 4족 보행에 비해 어너지 소모가 25%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력이 늘어나면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넓어졌다. 이 과정에서 체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머리를 제외한 전신의 털이 얇아졌고 가늘어졌다. 전신 '살갗'이 노출된 상태가 됐다. 인간에게 의복과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 버린 보호막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필수품이 되버린 '의'와 '주'는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그러나 현대의 대한민국은 똑같은 공간에서 획일화 된 삶을 산다. 대규모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서 볼일을 보고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있는 식탁에 앉아 있으며,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 거주 공간의 역할이 개성을 잃고 단순히 거주 역할만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차'나 '인스타그램' 등을 사용한다. 공간이 인간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그뿐만 아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사무라이 마을'을 보면 주택 담장으로 만들어진 골목길이 미로처럼 되어 있다. 이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좁은 공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간활용 방식이기도 하다. 섬나라의 경우 공간에 대한 제약이 있다. 고로 이동 시간은 적게 들지만 공간은 항상 부족했다. 이를 위해 조경과 건축 디자인을 복잡하게 구성하는 것다. 오밀조밀한 공간은 일본인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일본인들은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한 구성을 한다. 일본의 '신주쿠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의 신주쿠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역 중 하나다. 초보 여행자들이 가끔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본 전자나, 자동차 산업 역시 대체적으로 작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집어 넣는 제조업으로 성정하기도 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2017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됐다. 이 건축물은 특이하게도 미술관 내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건축물의 내부는 다른 미술관처럼 찾기 힘든 미로형 내부가 아니라 달팽이 모양과 같이 나선형 구조의 경사로가 있다. 관람자들은 이방과 저방을 오가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를 따라 가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 장소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에 꼽히곤 한다. 이 디자인을 생각한 이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건축거장으로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3대 건축 대장으로 꼽힌다. 건물 내부에서 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건물 곳곳에 묻어 있다.

유현준 교수의 인문 건축 기행을 보면 꼭 세계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다. 그의 다른 도서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 역시 단순히 구조물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그 내면에 담고 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가 숨어져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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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 양자역학, 창발하는 우주, 생명, 의미
박권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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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표현이다. 빅뱅으로 우주가 폭발할 때, 최초의 원자인 수소와 헬륨이 생성됐다. 폭발 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서로 끌어당긴다. 더 무거운 쪽으로 원자가 모인다. 중력 수축이다. 모든 원자는 떨린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말한다. 유명한 E=mc^2다. 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이다. 질량이 무수하게 작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빛에 속도에 가까우면 에너지는 엄청나게 커진다. 빠르게 떨고 있는 원자들이 중력에 의해 모여 들면 원자 사이에 밀도가 높아진다. 온도도 높아진다.

원자의 모형을 보면 가운데 커다란 '양성자'가 있고 그 주변으로 전자가 도는 모형을 볼 수 있다. 전자는 마이너스 전하를 갖고 양성자는 플러스 전하를 갖는다. 플러스 전하가 강력하게 가운데로 모여든다. 플러스 극을 가진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양성자들도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운동에너지의 크기는 온도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고로 온도가 초고온 상태가 되면 양성자의 운동에너지가 엄청나게 커지는데 이렇게 높아진 운동에너지의 힘이 서로를 밀어내던 힘을 이겼을 때, 두 원자핵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두 원자핵이 충돌하여 하나의 원자핵으로 결합될 때, 아주 강력한 끌어당기는 힘이 발생한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속도 높아지면 역시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렇게 두개의 원자가 하나의 원자로 융합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핵융합 에너지'라고 한다. 아무튼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 기존 원소는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원소로 생성된다. 새로운 원소는 이전 원소보다 질량이 더 크다. 원소들이 폭발로 인해 우주로 흩어졌다가 다시 무거운 원자로 모여든다. 다시 중력 수축이다. 이렇게 수축과 핵융합 반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차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점차 원소가 무거워지다가 철이 만들어지면 같은 방식으로 더이상 무거운 원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철은 모든 원자핵 가운데 가장 강한 결합을 한 상태다. 고 가장 안정되어 있는 상태다. 고로 철 역시 가장 무거운 원소이기 때문에 주변 원자를 끌어당긴다. 기본적으로 철을 만들기 위한 핵융합 온도는 30억도다. 중심이 철로 가득찬 중력덩어리가 점차 모여든다. 중력에 의해 철이 꾸준하게 모여들면 질량은 점차 커진다. 그러나 철은 아무리 온도가 높아져도 핵융합하지 않는다. 점차 철은 철끼리 끌어당기며 압력이 높아진다. 이때 철의 중심 핵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면 양성자와 전자가 합쳐지며 중성자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보는 원자 모형은 커다란 양성자를 전자가 돌고 있지만 실제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지 않다. 양성자와 전자의 거리는 서울에 둔 오렌지와 수원에 있는 꽃가루 사이의 비율과 같다. 다시 말하면 원자의 99%는 비어있다. 이 비어 있는 공간이 꾸준하게 압축되다가 결국 붕괴되면 원자가 무너지며 수축한다. 이 수축 속도가 빨라지면 폭발한다. 이 폭발이 초신성 폭발이다. 별들 중에서 태양보다 10배 정도로 무겁고 태양보다 10억 배 밝은 이런 초신성은 중심핵이 수축하며 폭발에 이른다. 이것이 우주 전체로 흩어지고 흩어진 우주 알갱이가 다시 모여 만들어진 것이 우주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은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별의 후손인 셈이다. 이렇게 원자가 뭉쳐지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태양계와 지구는 만들어졌다. 지구에는 이처럼 별에서 흩어져 나온 원자들이 득실 거린다. 이 중 10억년 동안 지구에 떨어진 번개로 인해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지구에는 35억년 전 엄청나게 많은 번개가 내렸다. 이 것은 생명에 필수적인 물질인 인을 만들어냈다. 이 인은 점차 발전하다가 단세포 생물로, 그 단세포는 분열을 하면서 다세포로, 그 아주 극희귀한 경우의 수를 뚫고 어류가 되고 그것은 다시 땅으로 기어 나온다. 극한의 숫자를 뚫고 그것은 멸종하고 탄생하길 반복하다가 나온 것이 지금의 우리다.

그것은 우연인가.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것은 확률이다. 양자역학은 참 재미있는 것이 모든 것을 확률로 표현한다. 우리가 우너자 모형을 보는 것처럼 원자는 양성자 주변에 전자가 돌고 있지 않다. 양성자 주변에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닌 '무언가'가 구름처럼 있다가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그것은 입자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거시세계와는 첨예하게 다르다. 고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끄는 하나의 공통 이론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어쨌건 거시세계에서 우리를 이르게 한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별들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그것이 입자가 된다. 그것은 단지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고로 우리가 있는 세계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박권 작가의 책은 읽으면서 전체적인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으나 어려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다양한 수학적 공식과 인문학적, 역사적 사실을 섞어 이야기 한다. 철학과 역사, 인문학으로도 설득 할 수 없는 것에 물리학과 과학, 수학을 들이밀며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는 것, 기적에 대한 것에 대해 수학적 증명을 해보인다. 수학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제창한 용어로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에너지를 알고 그 모든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능력을 갖는다면 그 역학적 상태에 따른 미래를 계산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우리가 하는 자율적인 선택들이 단순히 물리학적 계산으로 이뤄진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만 미시세계에서 라플라스의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이며 그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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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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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그는 스위스 태생으로 현대 건축의 아버지다. 전공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보르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세계의 영향력 아래 산다.

이야기는 프랑스의 '조페르 모니에'라는 정원사로 시작한다. 그는 점토로 만든 도자기 화분이 깨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화분을 콘크리트로 만든다. 그러나 거의 화분이 깨지는 현상은 여전했다. 이유는 이렇다. 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 변형을 하지 않고 갑자기 깨지거나 부서지는 것을 '취성'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유리나 도자기와 같은 물질이 있다. 외부적인 힘에 변형이 발생하지 않다가 일정 이상으로 힘이 커지면 갑자기 깨져버리는 물질 말이다. 콘크리트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또한 취성재료다. '조페르 모니에'는 콘크리트가 깨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안에 철망을 넣는다. 콘크리트에 철근을 넣는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후 그는 이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교량이나 수조 등 다양한 제품에 특허를 냈지만 건축에 활용하진 않았다. 그러다 20세기 초반에 '오귀스트 페레'가 이 아이디어를 건축양식에서 사용한다. 그는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어 콘크리트의 단점을 보완했다. 온도가 1도 오르면 열에 따라 물체의 길이가 변화한다. 이는 물질에 따라 다르다. 이것을 '열팽창계수'라고 한다. 콘크리트 또한 온도가 올라가면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 수축한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하는 철근은 재밌게도 콘크리트와 열팽창계수가 동일하다. 강철과 콘크리트의 열 팽창 계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우연으로 이 둘을 복합으로 사용하면 콘크리트는 깨지지도 않고 철근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기가막힌 발견으로 우리는 엄청나게 높은 건물이 숲처럼 조성된 도시를 살 수 있게 됐다.

어쨌던 1907년 오귀스트 페레의 건축 사무소에는 인턴 한 명이 들어온다. 그가 바로 '르 코르뷔지에'다.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집에서 시계를 만들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예를 배우다가 선생님의 추천으로 건축학도의 길을 걷는다. 이후 우연히 '오귀스트 페레'의 건축 사무소에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그런 행보는 현대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가 끼친 영향은 다양하지만 대략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필로티'는 많이 들어 볼 수 있는 말이다. 필로티는 건물 하부에 벽을 제거하고 기둥을 세우는 건축 양식이다. 이전까지 벽을 지지대로 삼던 '서양'과 기둥을 지지대로 삼던 '동양'의 건축양식이 각 지역마다 큰 특징이었다. 벽을 지지대로 삼는 서양의 건축 특징은 창을 크게 낼 수 없고 공간이 협소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반대로 동양의 건축양식은 창을 크게 낼 수 있고 공간을 넓게 키울 수 있다. 이 '필로티' 양식으로 현대 건축물들은 쾌적하고 넓은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일반 빌라를 보면 1층은 기둥만 있어 주차공간으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다수의 현대인들은 땅의 습한 기운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거주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일수록 지붕의 경사도를 높여 빠르게 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건물이 지어졌다. 다만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건물 자체의 강도가 높아지자, 이제는 건물에 '옥상'이라는 평평한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중을 지지하는 지지대가 벽일 필요가 사라지므로 현대인들은 넓고 커다란 창을 가진 건물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대체로 서양과 동양에서 '집'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면 재밌다. 우리의 부모는 대체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장 나가!"

반대로 서양의 부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 다음과 같이 말한다."외출 금지야! 방으로 돌아가!"

볕이 잘 들지 않고 좁은 공간과 크고 통풍이 잘 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한다.

사실 건축은 공학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예술이라는 말도 함께 어울린다. 건축양식을 보면 그곳의 문화와 경제, 기후, 역사를 모두 알 수 있다. 고로 건축학은 가장 인문학적인 이공계학문이다. 이 공학은 다른 공학들과 다르게 깊게 '인간'을 생각한다. 건축은 단순히 기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후, 역사, 경제를 함께 생각해야 하고 그곳의 자연과 시기를 함께 봐야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살아 편리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고로 가장 인본주의적인 행위다. 이를 종합예술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기술적인 것 뿐만 아니라, 철근과 콘크리트처럼 조화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해야 하는 학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 이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예쁘기만하면 장땡이야?"

건축주들은 대체로 디자인적으로 예쁜 건물을 좋아한다. 그러나 건축은 표면적인 것 뿐만아니라 다면적인 고민을 필요로 한다.

늦은 오후 책을 꺼내 읽고 벌써 절반이나 읽어 버렸다. 어려운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역사적 지식도 함께 얻을 있다.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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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우아하게 지구를 지키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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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화장지 1킬로그램은 3000만 리터의 물을 기준치 이상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탄화수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환경을 위해서라면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전 세계에서 3300만 톤의 탄소가 매년 배출된다. 이를 두당 나누면 매년 4킬로그램 이상의 탄소를 지구인 한명이 꾸준히 배출하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을 한대 생산할 때마다 60킬로그램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된다. 스마트폰으로 10분 짜리 영상을 시청하면 2000와트짜리 전기 오븐을 5분간 최대출력으로 가열하는 정도의 전력이 소비된다. 또한 구글 검색을 한번 할 때마다 0.2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대체로 구글은 1분당 380만 건의 검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이것은 1분당 760톤의 이산화탄소가 검색으로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환경을 위해 친환경 제품을 인터넷으로 발품삼아 찾고 구매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역설을 낳는다. 인간은 살아 숨을 쉬는 자체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모든 순간 에너지를 만들고 탄소를 배출한다. 고로 인간이 지구를 위해서 그나마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을 최대한 덜 쉬는 일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조깅이나 운동, 스포츠는 아예 해서는 안된다. 호흡은 최대한 얕게 하고 묽고 미지근한 야채 수프로 하루에 딱 한끼만 식사해야 한다. 환경을 위한다는 착각은 적잖은 모순을 남긴다는 것이다. 조금 타협한다고 해도 환경을 위한다면 스마트폰을 버리고 책을 무지하게 많이 봐야 한다. 사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환경의 최대 적은 '인구증가'다. 고로 인구 좀 줄어야 환경이 산다. 아이를 최대한 낳지 않고 최대한 적게 숨쉬다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환경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다만 우리는 환경과 삶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자 한다. 다만 극단적인 환경옹호는 이처럼 많은 모순을 낳는다.

탄소 배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하고 개인자가용 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까. 아니다. 진정 환경을 위한다면 계단 대신에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걷는 것보다 킥보드를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면에서 좋다. 장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하여 타고 다녀야 한다. 풍족할수록 탄소배출량은 많아진다. 고로 소비를 적게할 뿐만 아니라 생산도 적게 해야 한다. 노동을 최소화하고 생산량을 줄여 특별하게 가난해질수록 탄소발자국은 적어진다. 비행기 이용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여행이나 관광은 최대한 해서는 안된다. 대체로 반려견 한 마리당 연평균 2.5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반려견이 섭취할 육류를 따지면 연간 2톤의 이산화탄소가 더 배출된다. 고로 지구를 위한다면 탄소배출량이 연간 0.1톤 밖에 배출하지 않는 '카나리아'를 키우는 것이 좋다. 대체로 인간은 어떤 기준으로 애착을 하는 동물에게는 포근하고 안락한 사료와 장난감을 구매해 주고 다른 동물은 도살공장에 가둬 키운 뒤 조리하고 식탁 접시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것이 모순이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도 알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멜리니아 조이의 저서 '왜 우리는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육류 공장을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외딴곳에 위차하고 있으며 입구에서 입장이 허락되지 않고, 육류를 운반하는 트럭은 봉인되어 아무 표시 없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애초에 인간은 자신들의 모순을 알고 있다. 고로 대체로 눈을 가리고 스스로의 악함을 모른 척 할 뿐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은 이렇게 모순을 낳는다. 대체로 남들보다 도덕적이라고 믿는 이들은 자신의 미덕을 뽐내기 위해 남들에게 죄책감을 강요하고 불필요한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것에 모순이 있다는 것은 사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쓰레기'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국어 '쓰레기'라는 어원은 '부스러기'에서 '스러기'가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용 폐기물과는 거리가 멀다. 대체로 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각질 등의 잘게 부스러진 것들을 말한다. 그것은 환경과 관련 없는 어휘였다. 그것이 폐기물로써 환경과 연관이 지어진 것은 100년이 조금 넘는다. 그간 인간은 사용 폐기물을 폐기하지 않고 모두 사용했다. 현재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말한다. 다만 플라스틱 폐기물은 정말 인류가 만들어낸 죄악일까. 유럽인의 기준으로 93%의 사람들이 소변에서 플라스틱병과 같은 제품에 포함되는 비스페놀 성분이 검출됐다. 호주 뉴캐슬대학교에서는 '신용카드 한 장'이라는 연구를 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매주 신용카드 한 장의 무게와 같은 5g의 플라스틱을 섭취한단다. 또한 매년 1000만 톤이 넘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2050년이 되면 바다에는 어류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플라스틱은 과연 죄악일까. 실제 플라스틱이 '사망'에 이르게 한 인류보다 플라스틱으로 '생존'하게 된 인류가 훨씬 많다. 플라스틱은 가격이 저렴하고 변형이 쉽다. 플라스틱 등장 이전에 인류는 비슷한 물질을 얻기 위해, 고래를 사냥하여 그 뼈와 수염을 이용했고, 코끼리의 상아나 야생동물의 뼈 혹은 뿔을 사용했다.

인류는 코로나 백신을 위해 '투구게'의 피를 이용했다. 투구게를 산채로 잡고 그것을 묶어 그것의 피를 대량으로 채취한다. 이것들은 인도적인 이유로 다시 자연방생되지만 사실 자연 방생이 아니라 폐기 수준이다. 이들의 20~30%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곧 죽는다. 코로나 백신을 위해 우리가 '투구게의 피'를 이용한 이유는 그들의 피에 있는 '헤모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고나면 나머지는 그저 폐기해버린다. 한때, 초등학생들이 포켓몬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모우기 위해, 빵을 버린다던 뉴스가 떠오른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틀림없이 그것의 어떤 것을 위해 대량 생산을 할 것이며 나머지는 폐기할 것이다. 다만 최근처럼 환경에 대한 이슈가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이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장은 이미 극도로 포화상태다.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생산되며 생산자들은 이 치열한 경쟁의 압력을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다이어트, 친환경, 관광 등은 최근 산업으로 규모를 키우며 꽤 성장했다.

미국이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패권에 대한 전쟁이 2000년 대 들어서며 시작됐다. 그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지고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가능하도록 해왔다. 그러다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에게 '사우디'와 '러시아'가 불필요해지자, 미국은 에너지 독립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 러시아, 중동, 미국이 각자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행보를 이어간다. 플라스틱은 화학연료 산업의 부산물이다. 99%의 플라스틱은 석유와 가스에서 나오는 화학물질로 생산된다. 고로 자동차 에너지를 '석유'에서 '전기'로 바꾸었다고 친환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석유는 근현대 화학의 기반이다. 그것은 단순이 태워서 에너지원을 얻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화장품, 샴푸,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 거의 모든 것에 사용된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이 에너지 패권을 위한 원유의 수요 공급 전쟁을 위해 아마 '친환경'이라는 이슈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위한다는 것은 꼭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이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불안감과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경옹호보다는 조금 더 현명하고 현실적인 친환경의 의미를 갖는 것이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해 중요한 듯 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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