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인, 중국상인, 일본상인
이영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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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사람을 만나다보면 국적에 고정관념이 생긴다. 해외 생활 10년, 희미하게 생긴 그것은 차별과 차이의 경계를 아슬히 넘나들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또한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공통점을 찾게 되고, 더 차이점을 찾게 된다. 표면적으로 비슷한 한, 중, 일. 그러나 이 셋은 생각보다 다르다. 이들이 차이는 무엇일까.

해외에서 간혹 듣는 말이 있다. '한국인을 조심해라.' 유학생 사이에서 통용되던 말이다. '한국인을 믿지 말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말은 일반적이진 않지만 쓰여진 이유도 분명은 있다. 다양한 사람을 겪었다. 국적마다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중국인' 커뮤니티는 견고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끼리 돕고 끈끈하다. 항상 그들끼리 모이되, 서로의 경계가 견고하다. 좁은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그들에게 사용되는 '만만디'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상황에 그것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답게 달성 목표가 있으면 열정적이기도 하다. 과거 내가 살던 아파트는 중국인 아파트였다. 중국인들의 커뮤니티가 견고하다. 견고하다는 것은 배타적이다. 배타적인 것은 내부 결속이 높다. 그 성향을 확인했다.

둘째, 일본의 경우, 비교적 커뮤니티가 견고하지는 않다. 이는 폐쇄성은 갖고 있지만 폐쇄성은 '타국가'에 국한되지 않다. 이들은 같은 일본인들끼리도 연결성이 없다싶은 경우는 외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닥 강한 편도 아니다. '배척'보다는 '무관심'이 크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해외에서 아르바이트 고용하고 세금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한국인 고용주는 대체로 한국인 직원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성실하고 융통성있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이것은 고용주 입장에서 장점일 수 있으나 고용인 입장에서는 법의 보호와 비보호 사이를 '믿음'이라는 모호한 연계 사이에 있다. 일부 악성 고용주는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한인 커뮤니티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런 문제로 고용인들은 언어가 해결된다면 한국인 고용주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피한다.

무역사업을 할 때도 비슷했다. 원칙을 중요시 하는 일본과 다르게 한국과 중국은 나름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나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꽤 모험이라 여기지만 한국과 중국의 경우, 그것을 사업 수완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다. 감정적으로 한국인은 일본인과 더 친밀감을 느낀다. 아마 발음과 어순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 그런 듯 하다.

예전 중계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수출로 단가마진을 얻었던 적있다. 이 때, 샘플이 현지에 도착했었다. 당시 거래금액은 현지에서도 저렴한 편이었다. 다만 보내는 쪽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거래였다. 첫 샘플은 40피트 컨테이너가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적인 사업이 동종업계에 빠르게 소문이 났다. 이후 1차 상품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현지 반응도 좋았다. 이후 2차 상품 거래를 위해 현지를 방문했을 때, 바이어는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바이어는 우리에게 알고 있는 회사냐며 물었다.

거기에는 꽤 익숙한 한국 유통회사의 이름이 있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금액으로 조건이 제시되어 있었다. 바이어는 제3의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저 조용히 거래처를 바꿔도 되지만,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생각에 우리쪽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사업가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었다. 우리가 흔히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되려 믿을 수 없는 쪽은 바이어가 보더라도 상도덕 없는 행동을 했던 상대 한국 무역업자였다.

앞서 말한 세 국가의 특성은 분명하다. 실제로 중국에는 꽌시 문화가 있다. 흔히 말하는 인맥을 통한 사업이다. 영화 '범죄의 전쟁'을 보면 주인공 '최익현'은 굉장히 많은 일을 '인맥'을 통해 해결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많이 사라진 모습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비즈니스가 '시스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과 미세하게 알고 있는 문화적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심지어 냉혹한 비즈니스에서 큰 돈이 오고가면 더욱 그렇다.

과거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인공지능이 번역을 완전하게 하게 될 시대에 언어공부의 필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 생각을 모두 배우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단순히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해, 상품을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의 누군가와 감정적 교류를 하고 문화와 생활방식,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역이건, 사업이건 아무리 냉정하다고 해도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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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어 고전 시가 1 - EBS 장동준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장동준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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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왜 시를 썼을까? 고대인들의 흔적에 '소설'이나 '수필'은 없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시'를 남겼다. 왜 그들은 '시'를 남겼을까? 인류는 최초의 흔적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림은 별 다른 교육이 없어도 쉽게 의미를 전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보가 점차 많아졌다. 인류는 '추상적인 정보', '감정', '철학'을 남기고 싶었다. 이처럼 '그림'으로 남기기 모호한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다른 수단을 발견해야 했다. 그 당시 인류에게는 또다른 고민이 있었는데, '그림'은 추상적인 정보를 남기기도 어려웠지만 꽤 작업시간이 길었다. 이들은 대체로 동굴의 벽이나, 동물의 뼈, 돌에 기록을 남겨두곤 했는데 그것을 긁어 내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영어에서 '기록하다'와 '긁다'의 어원은 둘다 'scrib'으로 같다.

대략 4만 년 정도 쯤, 인류는 역사적 기록을 시작한다. 획이 많은 '그림'을 단순화 하여 '기호'로 만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들은 기호를 '돌'이나 '뼈', '벽'에 새기기 시작했다. 기록 방법은 문화와 지역마다 달랐다.

크게 동양와 서양을 보면 지리적 위치에 따라 어떻게 문화가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서양의 남쪽 즉, 적도는 아프리카 대륙이 자리하고 있다. 반대로 동양의 남쪽은 태평양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인 이유로 동양은 강수량이 많고, 서양은 적다. 1000mm의 강수량이 돼야 생육환경이 되는 '대나무'는 빠르면 하루에 1미터씩 자란다. 풀이 짧게 자라, 목축에 유리하던 유럽이 동물의 '뼈'나 '가죽'에 기록하던 것과 반대로 동양에서는 '대나무'를 사용하 기록했다. 대나무는 빠르게 자라고 딱딱하여 기록하기 편했다. 이런 이유로 '한자'를 살피면 '글'과 관련한 문자에는 '대나무 죽'이 사용된다. 이 지리적 차이는 쓰는 방식에도 차이를 두었다.

대나무를 긁어내 문자를 쓰던 시기, 중국에서는 딱딱한 곳에 글을 쓰기 위해, 글자에 최대한 '곡선'을 제거했다. 한자에 곡선이 드문 이유다. 대체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새로쓰기를 한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다 들어갈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었는데 고로 고대 동양의 문학은 대나무 마디 하나 정도에 들어갈 정보를 넣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기록'을 하는 방법이 '그림'에서 '기호'로 바뀌고, '기호'에서 '문자'로 바뀌면서 '교육'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문자'를 기록하는 작업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대체로 문자를 다루는 이들은 '소수'이고 이 정보는 다시 '구두'로 '다수'에게 전달돼야 했다. 고로 구전 전통에 적합한 방식인 '시가'가 사용됐다. '시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구문'과 '리듬'인데, '구문'과 '리듬'은 기업하고 전달하기 쉽도록 도왔다. 또한 복잡한 상황에 대해 비교적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려다보니 '은유법', '의인법', '활유법' 등 다양한 수사법이 발전됐다. 그런 이유로 고전 시가는 점차 '고정된 형식'을 갖춰 시작하다가, '기록'을 하는 기술이 발전되면서 더 형식의 파괴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고대문학은 고로 '시'이자 '노래'의 성격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시가'이다.

고전 시가는 크게 고대가요, 향가, 한시, 시조, 사설시조 등으로 나눠지는데, 이는 인쇄술의 발전과 연관있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의 경우, 문자수가 적고 함축된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당연의 '의인법'과 '은유법'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고전시가'로는 '구지가'라고 있다. 구지가는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라는 내용의 노래다. 이 노래의 원문을 살피면 가로, 새로 글자수가 형식을 갖춰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가락국의 군중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임금을 맞이 하기 위해 불렀다. 즉, 이 노래에서 '거북이'는 실제 '거북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지가는 '부족장'에 해당되는 '구간'이라는 존재 2~300명이 임금을 맞이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불렀던 노래다. 즉, 고전시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기와 배경이다. 고전시가는 조금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쉽게 말해, 단순히 옛 어휘나 한자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인들은 문학을 대체로 '기록'의 용도로 사용했다. 최초에는 '감정'을 담는 용도 보다 역사의 기록 혹은 주술의 형태였다. 그러다 문자 매체가 발전하면서 점차 감정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진화해 나간다. 그렇게 '시조'가 등장하고 이어 '사설시조'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형식'의 본격적 파괴가 일어난다. 시대에 따라 문학을 구분하고 각 시대마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본다면 '고전시가'는 우리의 언어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우 재밌는 문학이 된다. 원래 문학이란 '공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어'나 '문자'로 하는 예술작품이다. 고로 암기하고 풀어내는 대상이라기보다 감상하고 즐기는 대상이어야 한다.

'스터디하우스'에서 출판한 '생강 국어 '고전시가'는 만화를 통해 빠르고 쉽게 내용을 이해 시킨다. 문학 공부가 만화처럼 쉬워야 하는 이유는 문학이 '그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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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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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햇볕을 쐐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가져야 한다.

이 따위 것들이 어떻게 우울증 극복 방법이 될 수 있나. 표면적인 공감은 얼마나 무서운가 알 수 있다. 우울증의 극복 방법은 전문가와의 상담 및 약물 치료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것은 우울증 극복 방법이 아니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우울증의 증상인데, 그것을 하지 말라니 모순이다. 불규칙한 습관을 갖는 것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어떤 것에 무기력 해지는 것도 모두 우울증의 증상이다. 증상을 하지 말라는 것만큼 허무맹랑한 조언이 있을 수 있나.

고열이 나는 몸살 환자에게 '고열을 내지 마라'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우울증을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가 우리를 병들게 한다. 10대부터 30대까지 우리 사회 구성원을 가장 많이 죽이는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자살은 병이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병 들었다.

최근 뉴스를 켜면 가장 많이 도배되는 이슈는 '출산률'이다. 가임 여성 1명당 출산률이 0.7명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매번 도배된다. 욜로족, MZ세대 특징, 카푸어, 영끌 등 젊은 이들을 비꼬는 신조어가 시시각각 나온다. 배부른 MZ 세대에 대한 빈정거림이 사회적 문화가 됐다. 기성세대는 나약한 젊은 이들의 인내력, 열정 따위가 없다고 한탄한다.

대한민국의 자살자는 언제나 1위를 해왔던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시대는 MZ 세대다. 그 이전 세대에서 '자살'은 그닥 사회적 이슈가 아니였다. 1983년 한해 동안 총 자살자는 3,471명이 고작이다. 다만 2021년 대한민국의 자살자는 1만3352명이었다. 쉽게 말하면 2021년 겨울 4개월 간 자살한 이가 1983년 총 자살자보다 많다. 이 숫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는 13만 명이 넘는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2기에서 생긴 사망자보다 많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5년마다 원자폭탄 하나가 투하되는 셈이다.

10대, 20대, 30대, 젊은 세대의 사망 원인중 자살 비율은 거의 50%다. 젊은 세대의 죽음 둘 중 하나는 자살이다. 젊은 세대의 우울증은 왜 방치되는가. 젊은 층에 저렴한 임대 주택을 제공하거나, 강력한 독신세를 부과하겠다는 출산 정책, 다자녀를 출산하면 공용주차장을 무료로 한다는 행정을 보면 젊은이의 우울에 대해 기성세대는 공감하지 못한다.

우울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무기력하다. 어떤 욕구나 의욕도 사라진다. 그런 이들이 많아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정책은 '우울증 해결'이다. 나또한 우울증을 겪은 적 있다. 그것이 '의지'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겪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울증'이란 심지어 눈앞에 바퀴벌레가 지나가도 손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증상이다. 방은 너저분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것을 사회는 '게으름'이라고 부른다. 어리석게도 젊은이들도 그것을 '게으름' 혹은 '무력함', '무기력', '무능력'으로 받아들인다.

한때, 출판계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있다. 10대에는 반드시 해야할, 혹은 20대에는 반드시 해야 할, 30대가 되면 반드시 해야 할.. 이런 시리즈가 한참을 인기를 끌다가, 이후에는 '괜찮아' 시리즈가 유행했다. 힐링이나 위로라는 감성적인 키워드가 마케팅이 되면서 젊은이들을 위로 했다. 사회 전체가 번아웃된 시점에서 아직도 '우울증'에 대한 위험성은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식'이다. 스스로 그것이 병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병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마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사실 자살률과 출산률을 보면,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나서서 국민 정신건강을 챙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젊은 이들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고 다그치기만 한다.

병에 대한 인지와 인정은 그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부터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우울증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시원하게 알리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와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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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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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는 것은 중학생 부터다. 중학생이 되면 항상 옳던 어른의 환상이 깨진다. 아이의 사회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는 가족 구성원으로 사회를 처음 배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선택한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성한다.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 따르면 정체성은 사회적 연결로 이루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즉, '사회적 연결'이라는 것은 '자아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가정'은 유아기에 정체성을 형성시킨다. 다만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를 겪으면 정체성은 완전 재편성된다. 선택할 수 없던 '환경'에서 '선택'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맞춰야 하는 환경에서 '맞게 바꿀 수 있는 환경'으로의 변화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환경을 재조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정'의 역할은 축소된다. 스스로 만든 사회적 소속감은 새로운 자아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대부분의 아이는 '친구'로부터 사회를 형성하지만 그 관계망에서 학교 선생님의 역할은 몹시 중요하다.

아이의 사회가 넓어졌다는 것은 새로운 자아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부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기존 자아와 새로운 자아가 충돌하고 몹시 혼란스러운 시기도 겪는다. 어른의 표본이던 부모에 의구심을 갖고 어른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어른의 세계가 자신보다 유치하고 미성숙하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이 깨달음은 가끔 갈등의 씨앗이 된다. 이런 혼란기에 부모는 자녀의 변화한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당황한다.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른 자녀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달라진 자녀의 태도에 여러 이유를 찾는다. 그 중 하나가, '생물학적 변화'다. 호르몬 시스템의 변화가 아이를 반항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를 오롯이 생물학적 영향으로만 취급할수는 없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아'를 바꾸는 일은 성인에게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언어마다 각기 다른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다. 각각의 언어마다 다른 자아를 갖는다. 자아 형성에 '언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있지만, 자아 형성에서 중요한 것이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자아를 갖는다. 다시 말해,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의복이 태도가 달라지게 한다. '구스타프 칼 융'에 따르면 정신분석에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페르소나는 외부적 이미지나 역할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사회적 가면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역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각각의 환경마다 다른 사회적 가면을 쓴다. 이런 사회적 가면은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쉽게 말해 자아의 변화는 사회변화에 필수적이다. 청소년기의 아이가 겪는 변화는 어른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큰 격변이다. 이 시기에 형성되는 두 자아에 대해 우리는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소설 '동급생'을 집필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쓴소리'에 불만을 가졌다. 특히나 '교사'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기껏해봐야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학교'로 취업한 이들로 '교사'를 평가절하 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이 '사회의 무서움'에 대해 훈계하면, '당신이 사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기도 했다. 따지고보면 교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은 '사회'를 온전하게 겪지 못한다. 의사, 변호사, 판사, 연예인, 댄서, 강사, 공무원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성인들은 자신의 직업 밖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되려 사회가 좁아진다. 개중 사회에 깊은 고민을 해보는 쪽은 '교사' 쪽이다. 교사는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접하고 사회로 내보내는 직업이다. 그들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지켜본다. 보통의 어른은 비슷한 직업군을 가진 이들과 업무를 한다. 비슷한 직종, 비슷한 소득 수준, 비슷한 학업수준을 가진 이들과 생활하기에 그들의 자아는 되려 좁아진다. 반면 '교사'는 꽤 다양한 수준의 사람을 상대한다. 이것은 환경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연결'이 되기도 한다. 어른과 청소년의 사이의 환경에서 '자아'를 형성하기도 한다. 어쩌면 청소년와 사회적 연결을 하고 자아의 폭을 공유하는 많지 않은 어른 중 하나다.

'소설 동급생'은 '동급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전개 될수록 그 갈등이 동급생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까지 확대된다. 따지고보면 '어른'과 '청소년'은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갖는다. 비슷한 성별, 비슷한 사회적 위치, 비슷한 소득, 비슷한 직종으로 점차 나눠지는 어른들의 사회에 비해, 어린 쪽의 사회 경험은 더 폭넓다. 어린 시절, 남녀는 함께 친구가 되고 비싼 옷 입은 아이와 싼 옷을 입은 아이는 한데 섞여 지낸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점차 자신들의 사회를 좁혀 살아간다. 정체성이라는 틀은 어느 쪽이 더 넓은가. 다시 정체성이라는 틀은 어느쪽이 더 확고해지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각각 다른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갖는다.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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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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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이해하는 철학 중 '블록 우주'라고 있다. 시간을 하나의 '블록(Block)'으로 생각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블록처럼 고정되어 있다. 시간은 과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정된 하나의 블록 처럼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고정된 시간을 경험할 뿐이다. 이 이론에서는 모든 사건과 상태는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시공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는 이론 중 하나이며 연구나 검증이 어렵기에 '유사과학'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는 않는다. 굳이 '블록 우주론'을 들고 오지 않더라도 현재, 과거, 미래는 동시에 내재되어 보인다. 씨앗을 보면 수박을 볼 수 있고, 수박을 보면 씨앗을 볼 수 있다. 시간이라는 함수값을 지우고 보면 수박과 씨앗은 함께 존재한다. 때로 우리는 '세종대왕'의 어린시절을 보며 '세종대왕'의 업적과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다시, 세종대왕의 업적을 보며 어린시절과의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이도'라는 인물이 태어났을 때, 이미 그 안에는 그의 미래가 이미 함께 존재하는 바와 같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다고 해보자. 물은 식도를 타고 신체 내부로 들어간다. 내려간 물은 위를 지나 소장으로 이동한다. 소장 내부 벽면에는 몰을 흡수하기 위한 수송체가 있다. 수송체는 수분과 미네랄을 흡수한다. 이는 모세혈관을 통해 혈류로 들어간다. 소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물은 다시 대장으로 흘러간다. 대장은 수분의 일부를 재흡수한다. 이렇게 흡수된 물은 혈관을 타고 이동하거나 세포에 잠시 머물다가 6시간 정도 지나서 일부 소변이나 대변으로 배출된다. 배출되는 소변은 화장실 변기관을 타고 하수관으로 이동한다. 하수관은 지역내 하수처리 시설로 연결된다. 하수 처리 시설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정화 과정을 겪는다. 이후 이는 대략 24시간 정도가 지나서 바다나 강, 하천 등으로 배출된다.

자, 이제 나의 몸의 일부였던 물이 바다나 강, 하천으로 갔다. 배출된 물은 머물지 않는다. 지구가 자전하며 생성되는 바람의 영향으로 수표면을 이동한다. 혹은 바다로 간 물은 달과 태양의 조석력으로 마구 섞인다. 혹, 지구의 중력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섞인다. 바다의 다른 물과 섞여 어디론가 흘러가거나 바다 생물의 몸에 들어가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바다의 온도 차이로 열도 현상이 일어나면 위 아래로 섞이며 해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류는 태양 에너지에 의해 기체로 바뀐다. 이것이 상승하는 공기와 대류가 되면 수증기를 삼킨 공기는 상승하며 차가워진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수중기는 응축된다. 응축되면 작은 물방울이 형성된다. 증기 분자들은 작은 물방울로 모여 구름 형태가 된다. 구름은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대기를 타고 다니다가 크고 무거워지면 중력에 의해 지면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지면 지표면에 스며든다. 이중 일부는 흙과 지반을 통과해 지하수가 된다. 일부는 강이나 강물, 호수가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동물과 식물의 식수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부는 정수 처리가 되어 주택, 학교, 회사 등의 소비자에게 배급된다. 이것이 다시 한 잔의 물이 되어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이렇게 돌고 돈다. 물은 때로 나를 채우기도 하고, 남을 채우기도 한다. 물의 순환 과정을 살피면, 나를 채우던 물이 고양이를 채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는 때로 나무가 되거나 풀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동차가 되거나, 핸드폰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어떤 것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갖더 버린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70%는 물로 이뤄져 있다. 인간은 이처럼 돌도 도는 순환의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고여있는 형태일 뿐이다. 들어왔다가 나가고 외부를 돌고 돌아 다시 들어온다. 그것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순환하는 어떤 커다란 유기체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커다란 유기체는 모두 '나'이기도 하다.

윤회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물의 순환의 예를 들었다. 비약이라면 비약이다. 어쨌건 우리는 돌고 도는 유기체의 일부이며, 그 유기체 자체이기도 하다. 고로 사람은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없고, 물은 물이라 규정할 수 없으며, 나는 나라고 규정할 수 없다. 불교철학에서는 이처럼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설명한다.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너'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착각. 그런 것들이 모두 착각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주는 하나 덩어리가 끝없이 움직이며 형태를 변형하는 유기체일 뿐이다. 고로 우주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며, '슬픔', '악', '선', '기쁨' 따위는 없다. 모두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처럼 구별할 수 없는 큰 덩어리에 인간은 구별 지어 이름 짓길 좋아한다. 구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는 동양철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노자' 철학에서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도'라고 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범'이라고 한다. 그것을 '도'라고 이름 지엇지만, 혹은 '범'이라고 이름 지엇지만 그것이 가르키는 대상이 너무 모호한 하나의 덩어리다. 서양 철학에서는 이를 '신'으로 규정하는데 이 전체를 '하나'라고 부르며, 기독교 철학에서 이를 '유일신', '하나님'으로 규정한다.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각각의 조합이다. 고로 각각은 모두 전체이다. 이것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를 가르켜, '도가도 비상도'했다. 이는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다'라는 의미다. 언어가 가진 한계성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불완전하다. 언어는 인간의 작디 작은 지성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고로 완전한 '우주'라고 하는 일원적인 덩어리를 인간의 지성 크기로 난도질한다. 고로 언어는 우주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쉽게 말해 인간이 가진 '종이'가 2차원 평면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정확한 지도를 제작한다손 치더라도 구형의 지구를 표현 할 수 없다. 아무리 정확한 지도도 그 왜곡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진리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진리는 경험이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더이상 진리가 아니다. 고로 지식은 언어로 얻을 수 있지만, 진정한 지혜와 깨달음은 언어로 얻을 수 없다. 그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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