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소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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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문장은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첫 문장의 조사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가 '꽃이 피었다'로 바꿨다. 그의 수필 '바다의 기별'에서는 이 조사 하나에 얼마나 심히 고민했는지 흔적이 있다. 그 결과는 '담배 한 갑을 태운 것'으로 설명됐다. 단순한 조사 하나, 단어 하나지만 그것이 갖는 어감은 아주 다르다. 문장을 여는 첫 문장에 그는 왜 그런 고민을 했을까? 김훈 작가는 현대 사회의 언어 사용에 대해 우려하곤 했다. 그는 사회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마치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는 언어의 사용이 언어의 본질을 바꾸었다고 했다. 언어는 곧 소통의 도구이지만, 앞선 언어의 오사용으로 언어는 단절의 장벽을 만드는 무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이처럼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했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라는 두 문장은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꽃이 피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서술한 문장이다. 곷이 피었다는 사건 자체에 중점을 둔다. 다만 '꽃이 피었다'는 꽃을 특정하거나 강조하며, 다른 상황이나 맥락, 대조되는 요소들과의 관계속에서 꽃이 피었다는 것을 말한다. 고로 한국어에 있는 '조사'인 '은'이나 '는'은 종종 비교나 대조 혹은 특정한 사실에 대한 강조를 하는 반면, '이'나 '가' 조사는 사건이나 상태의 간단한 서술에 쓰인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문장이 전달하려는 뉘앙스나 맥락을 크게 바꾼다. 김훈 작가가 '꽃이 피었다'라고 쓴 이유는 그 문장이 담담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또한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또한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1인으로 한때나마 그의 문체를 따라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그의 글은 덧붙이기보다 덜어내기를 중요시 한다. 불필요한 수식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접속사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의 글이 동강동강난 짧은 문장 여럿의 나열처럼 보인다. 군더더기가 없다. 덜어진 접속사는 문맥의 흐름으로 '독자'의 문해력에 맡긴다. 그의 작업을 보면 '문학'이 단순히 글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다듬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은 쓰는 것보다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예술품을 빗는 '장인'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글을 대하는 그 태도를 보면 경이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을 작품화해 내놓는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일이다. 음악가나 소설가, 화가 등 '창작물'을 만드는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다. 상품화한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되고, 팬층이 생겨난다는 것은 꽤 고귀한 일이다. 거기에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들어간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등장하고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어도 이들은 결코 '멋진 문장'을 만들지라도 철학을 담을 수는 없다. 때로 인공지능은 문법적 정확성, 문체의 다양성, 심지어 창의적인 표현까지 흉내낼 수 있다. 다만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철학'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글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 생각이 깃든 철학이 결여되어 있다. '프랑츠 카프카'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프랑크 카프카'는 20세기 초의 체코 출신 유대인 작가다. 그는 고뇌와 내면적 갈등을 그의 작품에 깊게 반영했는데, '변신'이라는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괴상한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따지고 보면 카프카 자신의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카프카의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적 갈등이 그 작품에 독특한 깊이와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생을 통해서 그 문학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설령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글인지 보다, 누가 쓴 글인지를 먼저 살핀다. 고로 아무리 훌륭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삶'을 살아 갈 수는 없고, 단순한 알고리즘에 의한 데이터 조합에 '매력을 느낄 독자'도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AI가 이 모든 직업을 위협하는 시대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작가다.

괴소소설을 보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이 책이 단편 소설이라면 그저 그런 소설일 수 있다. 다만 이 글을 쓴 이가 '히가시고 게이고'라면 읽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게 된다. 지금껏 그가 써왔던 이야기와 문체, 풀어가는 방식과 함께 비교하며 읽다보니 소설이 담고 있는 재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이 소설은 짧은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짧고 쉽다. 간단히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어떤 부담감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다.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단편이라면 취미로 써둬도 좋겠다.'

다작 중 명작이 나온다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작인 것 같다. 긴 글을 잘 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단편을 써왔을까. 모든 연습은 작품이 되고, 모든 작품은 연습이 되어, 결과와 성장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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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데일리 티칭 -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크릿 습관 365
론다 번 지음, 이민영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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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자는데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된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조금 쌀쌀하다 싶어 온도를 올렸다. 발끝에서 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너무 놀라웠다. 분명 따뜻함 위에서 포근히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전기장판은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단물을 마시고 깨어나보니 해골물이었다던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날 꿀맛 같은 잠을 잤고 그것은 거짓이라도 나에게 진실을 주었다. 완벽한 거짓은 간혹 진실을 닮았다. 다시 생각해본다면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별것 없다. 내가 그날 '전원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진실이 되는 것일까. 세상에는 분명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지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이지 않다. 설령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네모 모양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죽는 이상 그 진실에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진실이라는 것은 마냥 알아야만 하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진실과 거짓은 구별할 필요도 사라진다.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진실이라면 나에게 철저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을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욱 나아가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진실이라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짓의 가치는 진실을 상회하고 남는다.

우리의 작은 지성은 '완전한 진실'에 대해 알기 쉽지 않다. 완전한 진실은 객관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은 남쪽에 있기에 남산이지만, 제주에서 바라보기에 그것은 '북산'에 가깝다. 진실과 객관성이란 결국 주관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는 유연한 것이며 고로 모든 객관화 필연적으로 오류를 낳는다. 고로 가장 완벽한 객관화는 자신을 기점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진실보다 상회한다면 거짓이 낫다. 고로 '나'는 인생 여정 중 가장 완벽한 장소와 완벽한 시간에 있다. 거기에 그 어떤 객관성이란 없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럴뿐이다. 지금은 인생 최고의 전성기이며, 다시 내일, '지금'을 인지하는 순간 그 전성기는 그 순간으로 바뀐다. 모든 것은 믿기에 따름이다. 에너지라는 것은 언제든 모양을 바꾸되 총량은 지킨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에너지가 모양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수력발전에서 만든 에너지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화력 발전소로 만든 에너지를 통해 불을 끌수도 있다. 열량은 보존하되 모양만 바뀐다. 고로 에너지의 주체는 '원인인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다. 밑으로 크게 움직이건, 위로 크게 움직이건 움직임 자체가 에너지다. 고로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얻는 이들보다 양쪽으로 얻는 효율이 좋다.

예전 한 행동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의 행동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이들에게 빈통이 있는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다만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은 모두 공을 가지고 빈통 앞에 섰다. 얼마 뒤에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바로 공을 빈통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아무 지시나 요구가 없어도 당연스럽게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봐서 우리는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빈통에 던진 공이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저 빈 시간과 빈 공간을 부여받은 이들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여 하는 일종의 '놀이'와 가깝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빈 공간에 빈 시간을 부여받고 빈통 앞에 테니스공을 들고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때 우리가 던진 공은 통에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다만 이 놀이에서 규칙이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없다. 그것은 다만 자기가 설정한 기준일 뿐이며 그 기준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고로 모든 것이 '공'하다고 했다. 도가에서는 모든 것이 '무'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고 모두 비어있는 것 투성이에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활용하는 이의 능동성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통속에 들어간 것을 성공으로 정의해도 그만이고, 통속에 들어간 것을 실패라고 정의해도 그만이다.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100년 전 캐나다의 스포츠 강사가 주변에 있는 복숭아 농장에서 가져 온 복숭아 바구니에 축구공을 던져 놓는 경기를 개발했다. 바구니를 사다리에 고정하여 높게 세웠고, 공이 들어 갈 때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번거러움을 없애기 위해 바구니 아랫부분에 구멍을 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의 시초다.

100년 전까지는 그저 복숭아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 행동에 불과한 일이 거기에 의미을 부여하는 순간, '블록버스터 스포츠'로 탈바꿈한다. 마이클 조던의 능력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되고,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주관적인 의미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나름의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약속'이나 '합의' 또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고로 그것 또한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탑일 뿐이다. 누군가는 빙상 위에 돌을 밀어 넣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컬링'이라고 부르고, 그물 속으로 공을 차 넣는 행위에 누군가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일부는 그것을 축구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주에 원래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인지 해야지만 그것은 의미를 겨우 부여 받는다. 발과 다리를 이용해 공을 네트 넘어로 차 넣는 게임인 '세팍 타크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다. 모든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렇게 될 뿐이고, 저러한 의미를 부여하면 저렇게 될 뿐이다. 그것을 부여하는 이는 누구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그 흥미롭고 창조적인 놀이가 바로 '인생'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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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어 화법과 작문 - EBS 최경일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최경일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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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본문맹률은 1%지만, 실질문맹률이 75%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문맹이란 우리말로 '까막눈'이라고 하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는 글자를 읽어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한 바를 이해하는 이들은 25%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기본문맹이란 글자를 말 그대로 음성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만 실질문맹이란 글이 의미한 바를 이해할 수 있는지다. 눈 감은 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자가 얻을 수 있는 삶의 혜택이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수 있다. 글자를 모르는 이가 다수이고 혼자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은 꽤 편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시험을 치루는 일도 수월하고, 직업을 찾거나 자기계발을 하는데도 남들보다 수월하다. 다른이가 어렵게 쌓은 정보를 손쉽게 훔쳐 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더 풍부한 삶을 간접체험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얻을 수 있는 '공감능력'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생각에 근거를 더할 수 있는 '논리력'도 생긴다. 그것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자'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기본문맹률은 1% 수준이다. 다수의 국민이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은 모두 공부를 열심히하고, 자기계발에 속도를 붙이며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을 것 같다. 다만, 실질문맹이 75%다. 다시 말해서 실질문해력을 기른 이들에게 나머지 75%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장학금, 채용, 스포츠 경기 등에서 경쟁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째서, 세상은 소수가 독식하는 구조가 되는 것일까. 가령 예를 들자면,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부자 순위'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 부자 상위 50명 중 서울대 출신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관장, 방시혁 하이브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조영식 SD바이오센서 창업자가 6명이다. 나머지 44명의 학력 또한 연세대, 고려대, 건국대, 한양대 등이다. 대한민국에는 총 200개의 대학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 5개 정도에서 대한민국 부자 50명을 거의 대부분 배출한다. 순위를 50위에서 100위로 올려도 그 결과는 같다. 또한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서울대 출신 의원은 62명이다. 창업을 통해 부를 이루거나,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이들은 표준화된 교육제도나 시험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이다. 생각해보자. 언어 능력은 단순히 언어 능력이 아니다. 언어 능력은 당연히 글을 읽는 능력이기에, 국어능력이면서 과학능력이고, 수학능력이고, 역사능력이고, 사회능력이며 외국어 능력이다.

결국 '문해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부모가 돈이 많아 공부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 없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더 공부하여 좋은 학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단순히 '돈'이 유일한 이득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공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두가 눈 감은 시대에 홀로 눈을 뜨고 살아갈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에서 부나 권력은 최첨단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만 흥미롭게도 많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은 TV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는 것을 과도하게 꺼린다.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경영자들 중 일부는 자녀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TV시청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유튜브나 인스타, 틱톡, 웹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술의 영향력과 중독성을 잘 알기 때문에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기술에 의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는 업장을 '실리콘밸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의도치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 눈 먼 사람들을 양산하는 업종에 일을 하면서 자신과 가족들 만큼은 그것에서 철저하게 격리하여 저들끼리 눈을 뜬 세상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것은 굳이 음모론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내부적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담배 제조업체의 경영진은 자신의 가족과 자녀들이 흡연을 시작하는 것을 막는다. 패스트푸드 체인의 고위 임원은 자신의 자녀에게는 그것을 먹이지 않으며, 고카페인 음료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무리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약처럼 아이에게 지어 먹이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자들은 기술의 영향력과 중독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기술에 의해 저해되는 것을 우려한다. 대체로 부유한 가정일수록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선호한다. 예술, 문학, 체육 등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으로인해 방해 받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아이폰'을 만들었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와 로린 파월 잡스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인 리드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빌게이츠는 실제로 메모나 독서를 '전자기기'가 아닌 '종이'로만 한다. 또한 그의 딸인 제니퍼 캐서린 게이츠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인간 생물학을 전공하고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눈을 홀로 뜬 이들은 역시 자신들만 눈을 뜨고 있기를 바란다.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것을 다시 정리하면 '화법과 작문'이라고 하고, 이것을 우리는 '언어'라고 부른다. 언어 능력은 과거인들, 미래인들, 세계인들이라는 4차원의 다수와 소통하는 방법이고 많은 이가 눈을 감고 있을수록 세상은 더 편하고 쉬워진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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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지 않는 연습 : 실천편 - 관계의 피곤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반응하지 않는 연습 시리즈
구사나기 류슌 지음, 김여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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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인공지능이 자동주행을 학습하는 방법은 이렇다. '반복', '지속'.

하나의 사건은 그저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이 반복적이면 그것은 '데이터'가 된다. 그것을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반복을 지속하면 알고리즘은 산발적인 데이터의 평균값을 계산한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다수의 데이터의 평균값 정도의 반응을 취한다. 인간의 뇌도 그렇다. 인간의 뇌는 '반복', '지속'한 데이터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 여기에 하나의 다른 인자를 넣자면, '빈번'이다. 인간의 뇌는 '반복적으로 빈번하게 지속하는 일'을 학습한다. 학습된 데이터는 비슷한 상황에서 '얼추' 비슷한 대응을 하도록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우리의 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자라와 솥뚜껑은 완전히 다른 모양과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얼추' 비슷하다. 우리의 데이터는 완전히 섬세하진 않지만 '대강' 비슷한 어떤 것을 '그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거기에 '의식없는 대응'을 해 나간다.

사람이 나이를 쌓는다는 것은 이런 '빅데이터'도 함께 쌓였다는 의미다. 고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의식'보다 '무의식'에 많은 일을 전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우리가 의식보다 무의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의 삶 전반이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를 살펴보자. 어린아이의 감각은 예민한다. 어린 아이는경험하는 다수의 것들을 '삶의 최초'의 받아 들인다. 쉽게 말해 모든 선택은 이전에 고민해 본 적 없는 고민일 것이고, 어떤 편견이나 과거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 다만 성인의 경우는 다르다. 성인의 경우에는 대체로의 선택에 있어 비슷한 경험을 데이터로 쌓아 있다. 어떤 편견이나 과거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점심 메뉴를 고른다고 해보자. 성인의 경우에는 다양한 메뉴를 접해보고 자신이 좋았던 기억과 그렇지 않는 기억을 바탕으로 결정을 반자동적으로 내놓는다. 다르게 말하면 그건은 '선호도'가 되지만, 말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경험'을 앗아간다. 반자동적인 선택과 결정이 완료되면 성인의 다수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경험을 할 것이고, 일상이 반복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일정의 결정을 이미 완료했다. 달력에 '월'을 가르키는 숫자가 두 자리가 되면 두꺼운 옷을 입고 장마 기간이 되면 장화와 비옷을 꺼내둔다. 그것은 반자동적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사라진다. 이런 과거의 데이터가 많다는 것은 빠르고 '대체적으로 맞는 판단'을 대략 내릴 수 있음을 말한다. 다만 다시 말하면, 새로움을 잃고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의 한 번 뿐인 여행을 떠난다고 해보자. 평생 추억해야 할 이 기억에 '나' 대신에 나의 과거를 학습한, 나를 닮은 누군가를 대신 내보낸다고 해보자. 그것은 과연 효율적인 선택일까. 그렇지 않다. 무의식화와 일반화는 대체적으로 단순반복 작업에서 효율성을 가져다 주지만, 삶의 '감사함'을 상실하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 '무의식'에게 삶의 전반을 맡겨 두고 자신은 우울과 걱정, 불안 따위로 삶을 채운다.

인간 뇌의 디포트값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하게 세팅되어 있다. 즉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걱정, 우울, 불안의 상태로 접어든다. 고로 우리는 그 디폴트값을 최소화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것이 최소화되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무의식에게 맡겨 두었던 '본인의 주체성'을 도로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기 위해, '내부의 대부분'을 무의식이라는 '자동행동장치'에 맡겨 두었다. 그러고서는 고작 하는 일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는 것이다. 주체성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감각을 새로이 느껴보는 것이다. 가령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감촉이라거나, 걷는다면 발바닥이 바닥에 붙었다가 떼어지는 감촉을 완전하게 느껴보는 것이다. 자신의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콧등의 감각, 새끼손톱의 느낌 등 우리가 간과하던 작은 감각기관을 모두 열어 놓는 것이다. 후각, 미각, 시각, 촉각, 청각에서 우리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아주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퀀텀라이프'의 저자인 '하킴 올루세이'는 마약중독 갱스터에서 천재 물리학자로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 그의 삶을 바꾼 아주 결정적인 습관은 '세기'다. 그는 자신이 불안하거나 다른 걱정이 생길 때면 주변을 센다고 했다. 보도블록의 숫자라던지, 주변의 나뭇가지 숫자. 벽돌의 갯수, 책장 속 책의 권수를 그냥 세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숫자를 세고 있으면 걱정과 불안은 사라진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능동적인 활동'을 할 때, 디폴트값에서 멀어진다. 고로 능동적인 경험을 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호흡하는 순간과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전등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잡음, 새소리, 바람소리, 가벼운 바람의 감촉, 스스로 만들어내는 목소리 등.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알아차리고 들여다 보자. 그러면 어떤 것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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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뇌 - 뇌를 재구성하는 과학적 마음 훈련
다니엘 골먼.리처드 J. 데이비드슨 지음, 미산 외 옮김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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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명상을 하면 달라지는 부분은 분명 있다. 대체로 명상하는 뇌가 가진 긍정적인 변화는 이렇다. '스트레스 감소'다. 스트레스 감소라는 하나로 명상의 효과를 말했지만, 이것은 다른 긍정적인 변화의 인자가 된다. 그렇게 다섯의 또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낸다.

첫째, 스트레스 감소

둘째, 감정 조절 향상

셋째, 집중력 및 주의력 증가

넷째, 기억력 강화

다섯째, 뇌 연령 감소

크게 나누면 다섯가지로 구분했지만 이 다섯가지는 다른 긍정적 변화의 인자가 되어 더 파생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첫번째로 말한 스트레스 감소는 스트레스 자체를 줄여주기도 하지만, 스트레스에 덜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인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은 '행동'을 취하며 산다. 모든 행동은 '선택'의 연속이다. 다른 동물개체보다 '선택'의 영향력이 가장 큰 동물이 '인간'이다. 스트레스는 선택과 결정을 취약하게 만든다. 이에 따른 동물 연구는 다양한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코르티코스테론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한다. 이는 동물의 학습 및 기억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선택은 환경의 변화를 만들고 환경의 변화는 인간을 그 환경에서 다시 학습하도록 한다. 인간의 뇌에는 '신경가소성'이라는 현상이 있는데 외부적 환경의 변화와 충격에 따라 뇌가 변형된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은 종종 위험 회피적 행동을 취한다. 다시말하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행동을 취한다. 반대로 이들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돌발적인 행동도 하곤 하는데 이런 비합리적인 결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환경을 조성한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또한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익숙하고 단순한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스트레스는 새로운 저옵를 처리하고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스트레스가 감소하면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 이것은 연쇄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만드는데, 식욕을 줄이고 피부를 밝게 만든다. 노화를 최소화하고 이런 내부적인 변화는 인간관계나 학업 성취 혹은 직업 선택에서도 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명상'이라는 것이 만능은 아니다. 명상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도 병을 앓는 이들도 많다. 일부는 과체중이고 드라마틱한 노화방지 효과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도 많다. 실제로 '로널드 퍼서'의 저서인 '마음챙김의 배신'이라는 책에서는 '명상'의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말한다. 명상이란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우리 생존에 필수적이다. '하이브'의 설립자인 '방시혁 이사장'은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분노'라고 답했다. 실제로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이들 중 상당수는 부정적 에너지를 이용하여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서 다수의 생물은 위기를 위기로 인지해야 한다. 다만 '명상'은 스트레스를 극도로 낮추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되려 위험한 상황으로 자신은 몰아갈 수도 있다. 예를들어 기후위기나 전쟁위협 등의 상황에서도 혼자서 내면의 평온함을 찾아가는 것이 공리적인 입장에서 이기적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산더미로 쌓아두고서 그것에서 도피하는 것은 때로 문제를 악화 하기도 한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노출된 스트레스 정도를 살펴 볼 때, 우리는 그 정도를 가볍게 볼 수 만은 없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맹수에게 쫓기는 심리상태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간다. 몰아치는 업무와 공격적인 마케팅에서 생존해야하고, 지속적인 정보와 다양한 알림에 시달린다. 24시간, 심지어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에도 그것은 우리를 불안하도록 독촉한다. 고로 우리가 일정 시간을 내면의 평온함으로 도피하는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나 현실도피라고 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명상의 방법은 다양하다. 고로 어떤 하나의 방법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가장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명상법은 이렇다.

'호흡세기'

'바디스캔하기'

호흡을 세는 것은 단순하다.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이다. 들여 마시는 숨과 마시는 숨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때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필요는 없다. 처음 얼마간은 숫자를 세며 천천히 호흡을 들여마시고, 완전하게 내뱉는 연습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부터는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고 그저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들어 마시는 공기가 콧속을 지나고 폐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폐로 들어가서는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다시 나가는 호흡을 지켜보며 나가는 호흡에는 복부나 가슴이 가라 앉는 것을 지켜본다. 호흡이 콧속을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완전하게 호흡을 뱉는다는 생각으로 호흡의 끝을 쫓는다. 눈을 감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좋다. 다만 그것은 더 좋은 명상법이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뜨고서도 편안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여 할 수도 있고, 누워서 하거나 의자에 앉아서 할 수도 있다. 다만 잠에 들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흡에 집중할 때는 다른 생각이 들수도 있다. 다만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다른 생각이 들었다면 그 생각을 쫒지도 말고 내쫒지도 않고 그저 그것이 흘러가도록 관찰한다.

인간의 뇌는 디폴트값이 '걱정'과 '고민', '불안'이다. 다만 인간의 뇌가 다른 방식으로 작업에 몰입하게 되면, 그것들은 쏜살같이 사라진다. 가령 고장난 와이파이를 고치려고 작정하는 순간에는 '외로움'이나, '두려움'과 같은 걱정은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이후 다시 아무것도 안하는 무료한 시간이 되면 인간의 뇌는 그 디폴트값으로 돌아온다. 고로 이런 시간에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디폴트값을 다시 세팅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는 바디스캔이다. 바디스캔은 간단하다. 마치 커다란 MRI 통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 통안에서 빨간색 레이져가 정수리 끝에서 아래로 스캔한다고 떠올려보자. 자리를 잡고 눈을 감고 정수리 위에서 부터 하나씩 신체를 스캔한다. 어떤 기운이 머리 끝에서 내려와 이마를 지나고 눈썹과 코, 인중과 입술, 턱을 통과해 목과 가슴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스치고 지나가는 과정에 신경을 집중해본다. 평소에 신경을 쓰지 않는 귓볼의 감각이라던지, 눈썹 사이의 미간에는 주름이 있진 않은지, 턱에는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며 스캔한다.

이런 행동은 꼭 가부좌를 틀 필요도 없고 눈을 감을 필요도 없다. 꼭 한 시간, 두 시간일 필요도 없다. 퇴근 후, 주차를 마치고 차에 앉아서 5분, 10분도 괜찮고 일과 시간 중 짬을 낸 5분 벽에 기대어서도 괜찮다. 조용한 공간이 없다면 '오프라 윈프리'처럼 화장실칸으로 달려가도 좋다. 아주 짧은 잠시도 괜찮다. 자기 전, 누워서 해볼 수도 있고, 자고 일어나서 잠시 해 볼 수도 있다. 이 '효과'에 대해 의심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뇌는 '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의 뇌는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쉬고 있는 우리의 뇌를 조사해 본 결과, 일을 할 때와는 다른 부분이 활성화될 뿐, 완전히 비활성화 되지는 않았다. 다만 명상은 이렇게 쉼없이 활성화되는 뇌의 일부를 식혀주고 때로는 쉼의 일하는 상태에서도 '쉼'의 상태와 같이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명상을 처음 접한다면 어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로 'Calm'과 '코끼리'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 정기구독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습관화 하는데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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