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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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빛나며, 덫없는... 모두가 그렇다. 별처럼 빛나는 시한부 삶을 산다. 그것은 타버리며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빛은 본질을 두고 수 억 광 년을 날아온다. 날아 온 빛은 본질이 사라진 순간에도 여전히 빛난다. 그것이 여기에 닿아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에너지가 되는지 본질은 알지 못하지만 역시 그것은 이곳에 심어져 새로운 싹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 빛은 생각을 닮았다. 찰라의 순간만 스쳐 지나간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잠시 닿고 사라질 뿐이다. 그 찰라의 순간을 위해, 빛은 수억 년의 시간과 수억 광년의 과정이 필요하다. 짧은 만남을 하고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빛과의 만남, 생각과 감정이 전달되는 과정은 그래서 아주 고귀하다. 별빛은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나 무수한 공간과 시간을 얼마나 홀로 내달렸을까. 그러니 여기 지금 이순간, 그것들을 허투루 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이 일회성이다. 빛처럼 멀고 길다. 시공간을 달려오며 스치듯 지나간다. 다가오는 인연과 운명, 시간도 그렇다.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할까. 몇 번의 오전 10시를 맞이할 것이며, 몇 번의 월요병을 앓게 될까. 모든 것은 유한하다. 유한한 것은 희귀하다. 희귀한 것은 필요로 할 때, 가치 높아진다. 고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면 모든 것은 가치 있어진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모든 것은 고귀해진다.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80만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빛을 본 이후로 이 유한한 카운타다운은 시작된다.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희귀해진다. 채워짐 없이 매순간 소비해 버리는 이 유한한 가치는 매순간이 더 고귀해지는 까닭이다. 유아기를 지나고 청년기를 지나며 의식없이, 그것을 소진해 버리지만 그것을 후회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의식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소진하고 있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어쨌건 매순간은 소진으로 전속력을 달리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 대부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살있는 것 같은데, 살고 있지 않다. 인생 80만 시간중 30만 시간은 자는데 사용하고 눈 깜빡거리는데에도 9년이나 사용한다. 평생의 40퍼센트를 눈감고 있는데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나. 나머지 60퍼센트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인지하지 못하는 매순간에도 별빛은 끝없이 날아온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어떤 별은 죽어 버렸을 것이고 어떤 별은 새로 태어났을 것이다. 어둠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빛도 있고, 밝히기 위해 발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작고 하찮아서 신경에 쓰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타버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순간에 그것은 전부 소멸 중이다. 더 태울수록 빨리 소멸하고, 열정적으로 탈수록 수멸한다. 소멸하는 순간도 마저 소멸 중이다. 최선의 타오름으로 소멸해 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운으로 잠시 남았다가, 그것마저 소멸해버린다. 모두는 시간이라는 진통제를 치사량까지 투여 받 소멸해 버리는 죽음을 향한 여정 중이다. 책장에는 이미 소멸해버린 별의 여운들이 있다. 그것이 타버려 남겨진 흔적이 몇 백 페이지 위에 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정된 순간을 살고 한정된 공간을 살며 소멸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소멸해버린다.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허망함은 잠시남아 머물다가, 그마저 소멸해 버릴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으로 앉고 사는 듯 하지만, 그것을 몇 번 떠올려 보지 못하고 죽는다. 특히 골똘하게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경험한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한줌의 재가 되어 흔적도차 사라진다. 그것은 '빛'과 같이 멈추지 못하고 잡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가. 얼마 전, '사카모토 유이치'라는 인물이 별이 됐다. 함께 시대를 같이한 인물 중 누군가의 생이 마감됐을 때, 그가 곧 '역사'가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어린시절, '정주영 회장'이 생을 마감했을 때,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끝났다고 생각하셨다. 8년 뒤에는 마이클잭슨이 죽었고, 다시 2년 뒤에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지금은 '죽은 후'가 더 익숙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생과 함께 살고 있을 때, 나는 일상에 치여 살다가 불현듯 그 죽음을 봤다. 어쩐지 알고 지냈던 누군가의 죽음 같아, 믿겨지지 않으면서 때로는 그 본체를 떠난 빛이 시간과 공간에 남겨 놓는 흔적들로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이 생각을 읽으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채, 빛만 가지고 수 십 억 광년을 날아온 빛의 흔적들처럼 영롱하게 빛나지만 만질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저 그것은 그것으로 완전하게 존재하며 아주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서 어떤 것은 사라져가고 있고, 어떤 것은 만들어가고 있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그것이 어두운 어딘가를 얼마간 빛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은 단 한번도 완전히 어두워진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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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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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꽃이 피는 시기가 있으면 지는 시기도 있다. 지는 시기가 있으면 피는 시기도 있다. 지는 시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피는 시기만 있는 것도 아니며 꽃이 꽃이 아닌 시기도 있고, 꽃이 꽃인 시기도 있다. 그것이 그것이 되는 시기는 분명히 있다. 고로 서두르거나 조급해 할 것 없다. 가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올 때가 있다. 꽃이 피는 시기에는 한없이 필 것만 같고, 지는 시기에는 한없이 질 것만 같다. 꽃이 꽃인 시기에는 한없이 꽃일 것 같고 꽃이 꽃이 아닌 시기엔 한없이 아닐 것 같다. 다만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이 보이다고 지금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수 억 광년을 날아온 빛의 흔적이며 그것이 보인다고 지금 존재하는지는 알 수는 없다. 반대로 어떤 별은 수 억 년 전에 만들어져 빛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지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빛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환영일 수 있다. 우주가 한 점에서 터져 나올 때, 사방으로 그 파편이 튕겨 나갔으니 우주의 모양은 '구'를 닮았다. 그것은 빙글 빙글 돌아가며 시작과 끝점을 같도록 하고 위와 아래가 없으며, 옆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도 둥글기 때문에 이는 우주를 닮았다. 둥근 것은 위도 아래도 없으며 옆도 없다. 어느 쪽으로 굴려도 그 모양은 같고 뒤집어도 세워도 그것은 그 모양이다. 지구의 곡률이 1도당 111.32킬로다. 그것은 360도로 나누어 조금씩 아래로 휘어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곧'고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14.58km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 지평선이 시선의 끝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의 끝은 아니며, 바라보지 못한 세상의 범위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그것 공간을 더 넓게 보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바라보고 싶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걸을 뿐이다.

고로 서둘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 그저 한 걸음씩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라. 한걸음 뗄 때마다, 지평선 끝도 한 걸음만큼 넓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넓이는 몇 걸음을 떼었는지로 결정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면 반대로 과거는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내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사라지고 나타날 뿐이다. 모두 환영 같은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과거도 미래도 사라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으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창조의 시간은 오로지 지금, 여기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존재의 두려움을 겪고 존재하는 것에 허상의 불안함을 갖지마라.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무소처럼 자신의 길을 걸어라. 묵묵하게 걸어가면 그것은 비록 잘못된 길이라도 언젠가 제자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우주가 둥글고 지구가 둥글기에 거기에서는 잘못된 방향도 잘못된 길도 없다. 방위가 서로 같고 상하가 서로 같다. 고로 자신이 믿는 방향을 향해 묵묵히 걸으라.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원망하지말고 세상이 나를 잘못 알아줘도 탓하지 마라. 그저 가기로 했다면 생각은 자리에 내려놓고 그 자리를 벗어나라.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원망하기 전에 내실보다 더 알려졌음을 두려워 해라.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본능'이며 '흉내'가 아니라 '본질'이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확인하려면 그저 둥근 달을 바라보라. 그것이 반달이 되었다고 반이 사라졌는가. 그것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존재하지 않는가. 차지 않은 달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일 뿐이다. 지워진 달의 반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최선을 다하라. 어느 순간 그것이 가득차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둥글다는 증명이다. 고로 지금 바라는 무언가가 무슨 모양을 하고 있는지 걱정하지마라. 그것이 반달의 모양이든, 하현의 모양이든, 초승이나, 심지어 삭의 모양이든 그저 그것의 원형이 머리 위에 떠있음을 기억하고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채워지는데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고 믿어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하는 일을 하라. 의문도 품지말고 좌절도 하지말고 열심히 하지말고 그저 숨 쉬듯이 해라. 특별하게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하고 있는 중에는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도록 해라. 세상 위대한 일은 모두 '귀찮고 하찮고 피찮고 시시찮다. 그것을 꾸준하게 해내는 것이야 말고 진정한 해냄이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없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좋아질 뿐이다. 그저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라. 현재와 지금에만 몰입하라. 그 밖에 모든 것은 환영이고 거짓이고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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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공부 혁명 -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교실은 어떻게 배우는가?
호시 도모히로 지음, 정현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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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희망자에게 '키즈폰'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2년 약정 단말기값과 월 이용 요금 8,800원도 모두 무료다. 교육청 지원이다. 이제는 스마트기기가 생활로 들어 오더니, 초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 당시, 이런 온라인 교육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현상이 반드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언택트 비대면 교육은 '대안'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체'는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온라인 교육은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는 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완하거나 추가 옵션을 제공하는 정도까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교육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도 안된다고 본다. 즉,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 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언택트 교육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문제점은 여럿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배우는 것 또한 교육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며 '학업' 이외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발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타인의 실수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며 반면교사를 삼거나 동기부여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이 언택트 교육에서는 사라진다. 우리는 전화를 개발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항상 '만남'을 통해 해결한다. '전화'는 아무리 '화상통화'나 VR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어도 '만남'의 대안이 될 뿐, 만남을 '대체' 할 수는 없다.

언택트 교육의 두 번 째 문제는 집중력 저하다. 스마트폰 기기가 무서운 것은 그 속에 있는 컨텐츠가 '몽땅' 무료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컨텐츠들은 모두 무료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 수익률을 만들어 내는 거대 공룡이 됐다. 그들이 '무료'로 배포해도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케팅'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는 생존전력 상, 우리의 집중력은 너무 쉽게 저하된다.

세번째는 기술적 장벽이다. 기술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화상교육을 한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최신식 아이패드를 도구로 삼고, 누군가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학습하게 된다. 공간에서 학습하는 이들에게는 '부모소득'이 '자리 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는 '부모소득'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일부 학생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업에 참관할 있고 적절한 학습장비가 없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또한 주변 환경적 영향도 크다. 집 안 사정, 개인적인 문제 또한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흔히 '사교육 시장'은 '교육'보다는 '보육'의 의미가 훨씬 크다. 부모가 6시에 퇴근하는 사회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이 1시인 것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부축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는 '뺑뺑이'라는 용어를 익숙히 알고 있다. 자녀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때로는 '시간'이다.

그러나 온라인 교육은 꾸준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앞서 말한 '대안'이다. 모두가 같은 교육 여건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히 언택트 교육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다. 교육의 목적이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를 직, 간접적으로 겪고 그것을 맥락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 적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간접 경험을 통해 미리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인성과 관계 형성을 배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학습은 '국영수'를 대단한 온라인 속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로 '명문대 합격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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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수학 1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생강 시리즈
김민재 외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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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선수임에도 수영장에서 훈련했다. 수영장 가운데서 제자리 달리기를 하거나 명상과 같은 정신 수련도 했다. 뭍에서 공을 차고 운동장을 달려야하는 선수가 '물'에서 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전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기초체력을 위해 해야하는 훈련은 다양하다. 그 향상의 좋은 예가 수영이다. 물속에 들어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 행위도 축구 실력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다만 수영과 명상은 많은 스포츠 선수가 즐겨하는 트레이닝 방식이다. 실전과 연관이 없음에도 이것들은 체력, 정신력, 지구력, 근력, 유연성을 개선한다. 자칫 의미 없는 일 처럼 느껴지는 이 훈련이 일류를 만드는 버팀목이 됐을지 모른다. 박찬호 선수는 일상 생활 중 '계단'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계단 밟고 오르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졌다. 고로 항상 실생활에서 계단을 이용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야구선수의 구속력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고 묻느다면 그 또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범인이 범접하지 못할 등급에 도달한 운동선수들은 '기초체력'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훈련법이 수학과 무슨 관련이 있나.이유는 이렇다. 다수가 '수학'이라는 학문에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다. 단순히 '덧셈과 뺄셈'만 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안되기에 전혀 필요 없다는 논리다. 컴퓨터와 계산기가 모두 해결해 주는 시대 '인간'의 수학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학문이라며 '수학'을 경이시 한다. 수학은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목적일 뿐이고 중요성과 이유도 모두 그것이 전부라는 이유다. 그러나 진정 수학이 필요한 이유는 직접 활용도를 높이기 때문이 아니다. '호날두' 선수가 수영실력을 위해 수영장에서 훈련을 한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컴퓨터가 대부분의 계산을 처리하고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수학을 활용하지 않음에도 수학을 공부는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문제 해결 능력. 수학은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문제 해결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이 능력은 일상생활과 직업에서도 유용하다. 논리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갖는다. 쉽게 말해 논리는 일관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가령 기상캐스터는 날씨가 궁금한 이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고기압'과 '저기압' 등을 주절주절 말한다. 예측할 날씨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어떤 논리의 근거도 없이 '내일은 비가 옵니다. 제 느낌은 맞습니다. 제 느낌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신뢰할 사람은 없다. 수학은 문제와 정답 사이에 무수한 등호가 존재하고 논리적으로 앞과 뒤가 다르지 않다는 여러 단계를 거쳐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결국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논리는 다수에게 설득력을 얻는 방법이다. 과거에는'사람'을 신뢰했다. '제사장'이라던지, 왕, 귀족의 말이 권력이었다. 다만 현대 사회로 이어지면서 '권력'은 다수의 합의에의해 얻어진다. 고로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력이 곧 권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식이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그 논리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정확한 풀이식은 오류를 줄여주고 생각을 조직화하게 한다. 현대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은 이렇다. 우리는 '이력서'로 사람을 판단하고, 제안서로 사업성을 판단하며, 계약서로 서로의 약속을 보장 받는다.

둘째는 비판적 사고다. 수학은 오류와 모순을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도록 한다. 또한 과정은 사실과 가능성을 구분케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의심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추상적 개념과 이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것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여 다룰 수 있도록 한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화하고 핵심 개념을 이해하도록 한다. '복소수'라는 개념을 보면 흥미롭다. 복소수는 '파동함수, 특히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종종 복소수로 표현되는데, 입자의 위치나 운동상태 등을 확률적으로 기술하도록 돕는다. 복소수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개념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만 이것은 양자역학의 간섭과 중첩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이다. 서로 다른 파동함수들이 중첩되어 간섭현상을 일으킬 때, 복수수의 덧셈과 곱셈 규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명료'하면서 현상은 모호한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양자역학을 '글'로 보게된다면 그것을 기술하는 현상은 직관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문자로 이해하기에, 이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철학'의 개념에 속할 것 처럼 보여진다. 양자역학이 '철학'의 개념이었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직관적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데는 힘들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수학적으로 이런 모호한 현상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슈뢰딩거 방정식이나 행렬역학, 힐베르트 공간 등과 같은 수학 개념과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설명된다. 이는 현상을 이해하는데는 애를 먹지만 실험결과와 수학적 논리는 매우 잘 일치하며 아주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고로 수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같은 현상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간단 명료하게 정의하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고로 우리는 양자역학이라는 모호한 현상을 '수학'으로 해석하여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 온 이것은 비로소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됐다. 이 절차로 우리는 반도체와 트랜지스터를 이용하고, 양자역학의 자극된 방출을 활용하여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MRI 또한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이다. 이처럼 우리 실생활에서 그것을 기술로서 사용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단계는 '수학'이다. 수학은 복잡한 현상을 '숫자'라는 명료하고 객관적인 도구로 쉽고 간단하게 다루게 돕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양자역학 만큼이나 명료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다루게 하는데, 수학을 통한 기초체력을 연습하는 것이 어째서 중요하지 않은가.

* 본 도서는 '만화'로 이뤄져 있다. 다양한 개념을 쉽고 재밌게 이해 할 수 있게 구성 되어 있기에, 다가 올 수험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하길 권장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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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20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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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난이란 본래 예측하기 어렵다. 불가피한 사건이다. 다만 이것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일탈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다. 잦은 지진이나 화산 활동에도 환경을 발판 삼아, 더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도 많다.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살면서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다면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에 가깝다.

다리가 붕괴되거나 백화점이 무너지거나 배가 가라앉는 다양한 재난은 '사회 시스템'의 어딘가에 오류가 있음을 말한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현명하지만, '소 잃은 후'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일단 잃어버린 것은 덮어두고 '덧됨'을 계속 해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이재민, 수재민 돕기' 캠페인을 벌였다. 집과 시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TV에 항상 나왔다. ARS 전화로 천 원 씩 기부를 하는 일이 거의 '문화'처럼 되어 갔다. TV에는 방에 들어찬 물을 바구니로 퍼내는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었다며 통곡하곤 했다. 그것이 일반적이라 점차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다음해에도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TV를 보면서 ARS로 전화기부를 하는 이상한 문화 말이다. 국가 역할의 부재가 시스템이 되면, 흐르는 물고는 그것을 향해 흐른다. 그 물길은 더 깊어지고 빨라진다. 그 다음 해에도 그럴 것이 뻔했다. 그것은 내성이 되어 다음해가 되을 때, 그것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특별히 이상지 않았다. 비가오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피해를 보지 않은 이들은 돕는 독특한 시스템. 그러던 것이 어느 새 그것이 사라졌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재난 관리 및 대응 체계가 개선된 결과일지 모른다. 결국 시스템이 갖춰지자, 사회는 더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인 이들을 얻었다. 국가는 기반 시설과 공공 인프라를 개선했다. 댐이나 제방, 하수도 시스템 건설을 개량했다. 건축법과 도시계획 기준을 새로이 도입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예전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그렇다. 국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직접 물을 퍼다가 날라 줄 것이 아니라, 물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줄기를 흐르는 것은 '물'의 역할이다. 시스템 구축에서 국가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하다. 국가는 누가 통제를 할 것인지, 무엇이 우선인지 규율과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해결책을 만들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증 외상 센터라는 곳은 특별하다. 이는 대규모 재난이나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은 다른 어떤 것보다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취합하여 하나의 일관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말해, 중증 외상센터는 다양한 전문 분야 의료팀이 협렵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그것은 사회가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축소판을 닮았다. 위기의 상황에 하나의 해결책을 위해 신속, 정확하게 의사전달하고 목적달성을 하는 시스템말이다. 각 상황은 환자 상태와 의료장비 시설의 복잡성 때문에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 해결 능력은 시스템 발전의 상징이다. 중증 외상 센터는 다학제적 협력의 본보기다. 외과, 내과, 신경과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협업하여 환자 치료에 임한다. 복잡한 의료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에 사람을 다루는 일을 포함한다. 업무 중, 가장 강도 높은 업무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 '인체'를 '의료 행위'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말한다. 어떤 업종에서도 가장 고단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문제 해결 능력은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일상의 도전을 대처하는 가벼운 일부터 시작해서 직장에서의 일, 국가에서 일에서 모두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장은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쉽게 말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볼수록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개인에게 대응해보면, '자기성찰'을 닮았다. 우리 사회에는 과연 시스템에 애한 '성찰'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대규모 재난 등에서 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기관이다. 쉽게 말해, 앞서 말한 사건 사고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마치 미래의 안전에 대해 '확률적 배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확률적으로 그것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판단하기에, 임시 방면으로 '덧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해결 능력'이 아직은 꽤 허술하다. 이것은 '중증외상센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미래를 대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간결하고 쉬운 문체다. 이는 교수가 '김훈 작가'의 필체를 좋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단순히 문체 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정과 결합한 의료인으로써의 소명에 대한 기술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이 우리 삶을 닮았다. 사람을 대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렵고 복잡한 속내도 살펴보자면 어떤 직업이던 사람사는 모양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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