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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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한반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 셋이 동시에 벌어진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그렇다. 이는 임계점까지 차오르던 역사의 카르마가 터져 나온 시점으로, 잠재된 역사의 흐름이 가시적으로 보인 시작한 사건들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는 '한 사람'의 악행이나, '한 사건'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역사의 변곡점에는 '사람'과 '사건'이 존재하지만, '흐름'이 그것을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흐름을 주도하는 강력한 '물방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흐르게 하는 몇가지 법칙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어떤 시점에는 흐름을 바꾸고, 어떤 흐름에는 다시 흐름을 바꾼다. 여기에는 '지정학적 위치', '인구 구조', '태양의 흑점활동에 따른 지구 기온의 변화' 혹은 '자연재해' 등도 포함된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혹은 큰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때로 우리는 '한 사람'과 '사건'에 집중하지만, 그 또한 흐름상 파생된 현상이지, 그것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 역사의 인과관계를 따지고 들며,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줄기를 찾아가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재밌다. 또한 정치, 외교, 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역사왜곡'이라는 해석은 어떻게 발생하며 그것에게 꼬리를 내어준 사건은 어떤 인과관계가 다양하게 섞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치다 영사의 조선 상황보고를 보면 조선 내부 정치의 무능이 여실히 보여진다.

"이 나라 내정을 관찰해보니, 중앙 정부를 비롯해 모든 행정기관이 실로 부패의 극점에 다해 민력의 곤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침상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의 실권은 항상 국왕 또는 왕비의 근친인 몇개의 문벌 가문에 귀속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각 가문이 서로 권력을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각각 자기 집안의 이익을 도모하기에 급급할 뿐 국가의 안위와 왕실의 영욕은 안중에 없습니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서 일본 영사가 바라 본 조선은 부정하고 부패하며 무능했다. 조선의 쇄락하는 시점을 어디서부터로 정의해야 하고, 일본의 야욕을 어디서부터 정의해야 할까. 알 수 없다. 꽤 오랜시간 다양한 사건, 다양한 카르마가 쌓여 있다가 터져 나온 순간은 아마 1894년 그즈음이지 않을까 싶다.

조선 후기 특정 가문은 집권하여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나라를 매국한 행위자 몇몇도 역사를 바꿨다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역사를 너무 단순화한 일일 뿐이다. 조선 멸망이라는 한 사건이 벌어지기 위해 다양한 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조선 뿐만아니다. 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국민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을 지지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와 대중 조작이 독일국민을 세뇌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도부의 명령으로 역사가 흘러갔다기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 역사의 흐름은 작은 흐름이 쌓여 커다란 사건으로 발현된다.

역사는 때로 정치적 소수의 의지로 주도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구성원의 집단적 의지가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 대혁명은 귀족과 왕정에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 이 혁명은 전체 정치에 국민들의 거부감이 오랜 기간 쌓여 온 결과물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일부가 아닌 흐름이 만든 결과물이다. 다수는 언제나 강력한 힘을 갖는다. 발휘하고 발현한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결국 쌓여 있다가 결정적 사건을 만들어낸다. 구성원의 책임과 참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일본 근현대 정치의 일방적인 행위로 보여 질 수 있다. 다만, 이를 견제하는 쪽의 세력이 더 강하다면 일방적으로 이또한 행해질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힘의 균형 아래 이루어진다. 즉, '역사'는 여타 '사회과학'과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훨씬 큰 학문이다. 과거의 위치와 관계, 상황 뿐만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현재의 위치, 관계, 상황을 대변한다. 그 사건들이 발생한 맥락과 후대에 끼친 영향을 고려하여, 해석자가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며, 단순히 과거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해석의 폭이 넓은 학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왜곡은 어느나라에나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현재 진행형일 때, 우리가 그것을 견재하기 위해 어떤 자세와 인지를 해야하는지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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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동행만리 - 한국콜마 창업주 윤동한 회장의 인문경영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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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가 '창조'라고 믿는 대부분의 것은 '모방'과 '연결'에서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로 부터의 무엇과 현재의 무엇 사이를 끊임없이 연결하고 복제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인간만 이런 모방과 연결에서 '창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새로운 의미로 인간을 뛰어 넘는 존재로 위협하는 '인공지능'도 그 창조 방법이 같다. 인공지능은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무엇과 끊임없이 연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고로 '창조력'은 '모방'할 데이터가 많아야 하고, 연결할 '대상'이 화수분처럼 흘러 넘쳐야 한다. 우리가 인지한 어떤 것들은 우리 뇌속에 '약몰입'상태로 존재하다가, 시냅스 사이의 끊임없는 화학작용 중 '번뜩'하고 연결성을 찾아낸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뛰어나오며 '유레카'라고 외친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가 그의 머릿속에 내리 꽂힌 것이 아니라, 그가 읽었던 책, 생각 그리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던 약몰입 상태가 묘하게 이어지다가, 의식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모든 전모가 환하게 보여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통찰력'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위대한 이가 독서를 좋아한 이유는 독서가 이런 통찰력을 길러주는 매우 핵심적인 여가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지만 음악을 좋아했다. 다윈은 지리학자지만 생물학에서 굉장한 업적을 발견했다. 모든 것은 불완전한 연결과 무관하고 임의적인 데이터 간의 상호작용으로 벌어진다. 고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그것이 전모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을 가져다 주며, 인간이 '환경'을 모방하고자 하는 본능에 철저하게 이용되게 하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년 전에 죽은 철학자와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나,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학자와 음악하는 세계적인 음악가들 사이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달라지나, 이 위인들간의 연결의 접합점으로 우리는 어떤 인물이 되는가. 또한 그 위대한 인물들을 알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형성이 수월해지며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은 어떻게 범인과 달라지는가.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자연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워낙 당연하기에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 되고, 나탁의 털은 '황색'이 된다. 자연 환경에 적합한 것이 같은 방향으로 진화해 가듯, 인간에게 환경도 그런 영향을 끼친다. '맹모'가 세 번씩이나 이사를 가면서 아들을 가르친 교훈은 아들을 키우는 것이 '어미'가 아니라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는 이유도 그만한 환경이 그만한 양육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길러내는 환경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 학습한다는 인지 없이 꾸준히 학습하게 하는 '환경'의 무서움은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 부를 이룬 이들이 '책을 읽으라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한국인들은 '학력'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갖게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둘러 쌓이느냐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정체성이 관계속에서 형성된다고 봤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계를 통해 발달하며, 이런 관계들은 개인의 성격 형성과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는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고로 개인은 속한 사회적 맥락과 경험하는 대인 관계에 따라 자신을 설정한다. 사업하는 이들이 '학력'이 우수한 이들을 먼저 뽑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학습능력이 '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학구적인 인물'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목표'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확히 눈에 보이는 '숙제'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대부분의 사업가는 업무를 맡길 수 없고, 꾸준하게 자신만의 패턴으로 '반복'해왔던 습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리하여 사회는 '학력 높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곁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성취'를 얻어 내도록 한다. 다만 사람마다 성장의 시기와 깨달음의 시기가 달라, 누구나 좋은 학력을 가질 수는 없고, 누구나 좋은 인맥을 형성할 수는 없다. 애당초 안정된 분위기에 어린 시절이 노출된 이들과 불안전한 분위기에 노출된 이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 안정감의 차이도 분명하게 있다. 고로 10대 시절 학력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고로 그 인간이 어떤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람의 학력', '출신'을 살피고 가정환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다만 이런 것들 보다 더욱 사람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방구석에서 '뉴욕대 교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수 백년 전, 이미 사망한 철학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다. 다시 엄청난 고학자들에 둘러 쌓여 많은 삶의 간접 경험과 영향력을 얻기도 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는 거기에 단순히 '돈 버는 방법'이 적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들을 둘러싸는 환경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동력을 갖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으나 그는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발명가들, 과학자를 책으로 만났으며, 책을 통해 같은 인맥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과 원활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토대를 갖추기도 했다.

빌게이츠는 우리안에 3080만 달러를 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첩을 구매했으며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립자는 카렐 차페크라는 체코의 유명 작가의 작품을 120만 달러에 구입했다. 존 제임스 오듀본의 '북아메라키의 새들'이라는 책은 2010년 런던 미술 딜러인 마이클 톨레마크에 의해 1500만달러에 구매됐고 2023년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가는 무려 1900만 달러였다. 주식투자자와의 점심식사도 이처럼 비싼 값을 하는데, 우리는 이만원 안팍으로 동서고금의 엄청난 현자를 만날 수 있다.

자, 동네 서점에 가서 '뉴턴'의 프린키피아나 다윈의 '종의 기원'은 2만원 내외의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로인해 우리는 오래 전 위대한 이들과 커넥션을 갖는다. 이것을 얼마나 위대한 '인맥형성'인가. 그것은 환경이 되고 환경은 사람을 기른다. '큰 사람 밑에서는 덕을 배울 수 있고, 큰 나무 밑에서면 크게 자랄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는지, 최근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 다양한 환경이 우리를 만들며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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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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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이면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를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았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책에 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기에 6, 7세라는 나이는 매우 소중하다.

항상 무언가를 할 때마다 책을 손에 쥐고 있는 편이라,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모습을 각인 시켜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좋은 점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첫째로, 긴 글을 읽지 못하게 됐다. 가끔은 벽돌책을 잡고 한참을 몰입해 읽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다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장 먼저 그 부분을 내려 놓아야 했다. 특별히 아이가 독서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하기 때문은 아니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몰입'이라는 과정이 사라졌다. 아이는 종종 무언가를 물어봤고 어떤 사고를 쳤으며, 아빠가 혼자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에 시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남으면 특히 책을 들고 있으며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며, 읽고 난 뒤에는 '무엇을 읽었나' 남기지 못했다. 짧게 끊어진 주의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짧은 영상'에 적합했다. 1분마다 쪼개지는 주의력을 싸매 쥐는 일에 피로를 느꼈다. 고로 남는 시간에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엄지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싶었다.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을 보고 또보고, 넘기고 또 넘겼다. 이후 다시 책을 들어도 1분 뒤에는 스마트폰으로 손이 갔다. 집에서 육아를 하는 '가정주부들이 건망증'이 빈번하다 하듯, 짧아진 주의력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깡총깡총 이곳저곳에 맴돌았다. 당연히 주의 깊게 몰입하는 것이 없으니 건망증이 높아졌다. 신경은 예민해졌다. 아이에게 '책 읽는 추억'을 남겨 주겠다는 최초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되려 아이에게 '버럭'하고 호통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후 타협해야 할 부분을 찾았다. 탈출구는 '짧은 글'이다. 아이의 질문과 질문사이에 짧게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다. '김동식 작가'의 단편소설은 아주 짧다. 초단편소설이다. 이렇게 짧은 글을 엽편소설이라고 한단다. 글은 시작과 동시에 몰입 시키고 한호흡에 소설 하나를 마무리 시킨다. 소재는 매우 신선하여 글 읽는 맛이 있다. '김동식 작가'의 글쓰기 방식을 모방하여 짧은 소설은 연재 했었다. 그것이 멈춰진 이유는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3년은 정말, 바쁜 한해였다. 개인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생겨도 그저 허송세월처럼 흘려보낼 뿐이었다. 이런 핑계로 2023년에 목표했던 '소설출간'은 이루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다. 나의 머릿속을 남의 머릿속에 넣는 일이다. 글쓴이가 '태양'을 생각하면, 읽은 이는 '태양'을 떠올린다. 글쓴이가 '바다'를 쓰면, 읽는 이는 '바다'를 읽는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하지 못할, '생각 이식'을 '독서'는 가능하게 만든다. 꼭 값비싼 기술력이 들어가야만 좋은 기술은 아니다. 앞으로도 '독서'가 가진 '생각 이식 기술'은 그 어떤 과학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소설은 그렇다. 소설은 허구다. 읽는 이들은 글쓴이의 망상을 읽는다. 그것을 문자화 하지 않으면 망상은 망상일 뿐이지만, 그것을 문자화하면 그것은 '소설'이 된다. 자신의 망상을 얼마나 잘 문자로 구현할 수 있는지, 그 기술에 대해 사람들은 평가한다. 마치 음악을 만들거나 명화를 그리듯, 글쓰기는 전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창조행위'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소설'은 '세계'를 창조한다. 저자본으로 지구를 종말로 몰아갈 수 도 있고 배우의 연기력 논란 없이,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한 시도는 할만하다. 그것은 별다른 준비물도 필요없고 대단한 배경도 필요없다. 그저 쓰기만 하면 그만이다. 2024년에는 소설 출간이라는 목표를 다시 가질 예정이다. 벌써 써두고 투고하지 못한 소설과 글이 많다. 2024년에는 하나씩 정리해 출간해 볼까 한다.

몇 일 전, 아이와 책 한무더기를 구매했다. 대체로 짧은 소설, 시, 에세이였다. 아마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3월 전까지, 천천히 읽을 예정이다. 창작물을 접하다보면, 그 소재에 이어 나만의 결과를 만들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때마다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다면 아마 꽤 괜찮은 글들이 됐을 것이다. 김동식 작가의 글은 쉽고 가볍게 읽히지만 몰입력이 좋다. 아마 작가의 다른 책도 구매해 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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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교사 위광조
꿈몽글 지음 / 파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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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과 학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시기, 나는 학교를 다녔다. 철 없는 시골 아이들의 장난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도를 넘고도 남는 행위들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 설치된 정수기에 금붕어를 집어 넣었다. 한참을 뒤에서 몰래 지켜보다가 누군가 물을 마시다 '금붕어'를 발견하면 키득거리며 웃곤 했다. 더 심한 경우는 '소변'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담대한 장난을 칠수록 '대단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아이들의 장난은 도를 한참 넘어섰다.

남자화장실은 소변기와 양변기가 구분되어 있다. 양변기 칸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변을 본다는 의미다. 장난기 있는 아이들은 대변기에 들어가면 문을 열거나 위, 아래로 물을 붓기도 했다. 이런 장난이 만연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터라 어지간한 장난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고 교사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는데, 그 마저 선생님께 걸리면 뺨아리를 맡곤 했다. 소변 보는 아이에게 물을 뿌리거나 옷자락을 잡아 끄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도 넘은 장난은 당시에도 심하게 느껴졌다. 썩은 우유를 가방에 놓고 발로 밟아 터트리기거나 의자에 압정을 꽂아 놓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장난을 주도하는 쪽은 언제나 일부다. 그 장난의 수위가 도를 넘어섰지만 그것이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확실하건데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학교폭력'을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폭력'이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대로 '신고 사례'가 지나치게 많다. 다른 이유로 학생들은 장난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건보고서'나 '진술서' 따위의 글을 읽다보면 놀라운 경험을 한다. 실제 그럴 법한 일들이 서면으로 분위기나 어휘만 바꾸더라도 완전히 터무니 없는 사건으로 바뀌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도 생긴다. 바로 실제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다. 너무 많은 사건으로 사건에 대한 심각성이 훼손되면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은 묻히게 된다. 고로 신고를 하지 않던 과거도 옳지 않지만 너무 흔히 신고하는 현재도 옳지 않다.

학교는 '배움'보다는 '생존'에 적합한 곳이었다. 선생님들은 '보호'보다 관리'를 목적으로 두었다. 부모는 '우리 아이 때려주세요'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선생님은 각자 자신만의 지휘봉을 가지고 다녔는데, 대체로 몽둥이로 활용됐다. 쇠파이프, 당구규대, 각목 등 남자 선생님들은 꼭 자신만의 아이템처럼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셨다. 둔탁함, 뼈까지 진동하는 묵직함. 각 선생님들마다 타격감도 달라서 매가 어떤 느낌인지는 지금도 선하다. 매주 월요일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에 아이들은 뙤약볕에 서 있다가 '픽, 픽' 쓰러졌다. 짝다리를 짚고 서있거나,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구령대'로 불려갔다. 구령대로 불려가는 아이를 뒤로하고 피식거리고 웃으면, 얼마 뒤, '짝'하고 뺨아리는 소리가 학교 운동장에 퍼졌다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옳은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 돌아와도 누구도 그것이 폭력인지 몰랐다. 학우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제지간에서도 너무 빈번하던 학교폭력이었다.

최근 한 인터넷 영상을 봤다. 어린 여고생이 선생님과 말다툼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뻘 되는 선생님과 딸 뻘 되는 제자가 한참을 싸우는데, 주변에서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지 꽤 시간이 지나서 현재 교권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본 영상에서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기껏해봐야 벌점을 주거나 '위원회'에 보고서를 작성해여 올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변해버린 탓에 과거와 현재 중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현재 교사의 '교권'은 지나치게 낮다고 여겨진다. '폭력'으로 교권을 올리는 것도 옳지 않지만 아무 힘 없는 무능한 교사의 모습도 옳지 못하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어렵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더더욱 어렵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면 기가 찬 경우를 자주 접한다.

'모든 일에 부정하는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이 없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 '무례하 사람', "무관심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이들 수십명을 모아 놓고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신고자가 원하면 무조건 심의위원회를 간다.'

학교 폭력은 분명 옳지 못하다. 다만 '학교 폭력'이라는 경계선이 너무 낮아지면서, '교사'의 업무는 더욱 늘어난다. '신고자가 원하면 일단 심의 위원회를 간다.' 쉽게 말해 '입건'되고나면 '교사'는 교육 외에 신경 쓸 일이 더 많이 생긴다. 가르치고 상담하고 전화해야 하는 등.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폭력'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어디부터가 폭력이고 어디까지가 장난인지, 그 선을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대체로 아이들의 장난이 '폭력'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반대로 누군가는 별거 아닌 장난을 '폭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두 경우는 '진짜 폭력'의 무게감을 가볍게 만든다. 고로 무조건 신고하라, 혹은 신고하지마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수준까지가 폭력이고 어떤 수준까지가 폭력이 아닌지,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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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꾸물거릴까? - 미루는 습관을 타파하는 성향별 맞춤 심리학
이동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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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거림' 또는 머뭇거림은 일종의 교착상태다.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은 대체로 '의지박약'이나 '게으름'으로 비춰지지만 실제 반대인 경우가 많다. 마감일에 맞춰 일을 겨우 끝내는 이들은 대체로 '낙관주의자',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자신의 능력을 과만하거나 미래를 낙관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최대한 결과를 '지연'하는 경우다. 즉, 꾸물거리는 사람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고 해결법을 알아보자.

값비싼 물건을 선물 받거나 구매하게 되면 나는 그것에 철저한 주종관계를 주입시킨다. 누가 주인인지 물건에게 확실하게 해준다. 즉, 그것을 함부로 대한다.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책임없이' 대하는 것과 다르다. '함부로'라는 부사는 사전적 의미로 '곰곰히 생각지 아니하고 조심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를 의미한다. 나는 새로 산 스마트폰에 지문자국이 남을까봐,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혹 나의 흔적이 남겨질까봐 조심스레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차를 구매해도 '새차'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포장지'를 뜯지 않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한 번 나에게 들어온 물건은 웬만해서 '중고판매'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용불가 상태가 될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고로 되팔 때,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물건을 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매한 물건을 중고로 판매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다음 주인의 물건을 '임대 사용'하는 것과 같다. 단연컨데, 임대자와 임차자는 물건 사용 효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책을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의 차이와 같다. 책을 빌려주는 사람은 자신의 책의 모서리를 접거나 낙서를 하는 등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책을 빌린 사람은 그저 눈으로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다. 즉, 소유와 경험의 차이에서 그 깊이의 차이가 생긴다.

이렇게 물건을 막 대하기 시작하면, 물건이 편해진다. 물건이 편해지면 대상의 효율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완벽주의는 '노트 한권'을 다 쓸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문방구에서 노트를 구매하면 그것의 첫 장을 깨끗하게 사용했다. 필기를 깨끗하게 하거나 글씨를 최대한 예쁘게 썼다. 그러다보니, 그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 노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겪은 '완벽주의'가 '무능력'이 되는 완벽한 사례다.

비슷한 경우는 역시 있다. 중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었다. 별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미술 선생님은 내 앞에 서서 한참을 지켜봤다.

"그림에 감각이 있네, 이렇게 그리면 그림 쪽으로 나가도 괜찮겠어. 지금까지 그린 것을 보건데, 다 보지 않아도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야. 완벽해."

아이들 앞에서 엄청난 칭찬을 들은 나의 그림을 몇 점을 받았을까. 그때 내가 받은 점수는 C였다. 이유는 이랬다. 선생님의 흡족한 표정을 보고 난 뒤, 나는 더이상 그림을 건들이지 못했다. 친구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일이 제출인데, 칭찬 받은 상태에서 하나도 안 그렸네?"

그렇다. 나는 이미 완벽하다고 칭찬 받은 결과물을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결과물은 친구들이 이미 완성될 때 쯤, 부랴부랴 시작했고 데드라인을 겨우 맞추고 형편없는 미완성 작품을 제출하고 말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 '칭찬'은 되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롭 무어'의 책 'Start now, get perfect later'는 원서로 읽었다. 이후에 '결단'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원제목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완벽해져라'

이 책의 도입부에는 '꾸물거림'이 '완벽주의자'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들에 대한 예시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됐을 때, 출발하겠다는 다짐"

대체로 '꾸물거림'은 '게으름'이라는 성격의 결과물처럼 보여진다. 이는 인과관계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대체로 자존감이 결여되고 마음이 우울해지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의지력이 약해지고 행동력이 둔해진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의지력'이 약하고 행동력이 둔하기에 우울증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들에게 생기는 '의지박약'과 '게으름'은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이들에게 부지런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열이 나지 않아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언과 같다. 이들이 꾸물거리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고로 게으름을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리'와 '마음가짐'을 편하게 두는 것이 먼저다. 현대인은 스스로는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항상 놓여 있고, 끊임없는 마케팅에 노출되어 있다. 세상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파민 중독'을 유도한다. 모두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며 쇼츠, 릴스, 틱통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모두 결정 피로도를 소모해버린 현대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고 안정된 심리 상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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