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비우기 - 삶이 복잡하고 무거운 당신에게
가비 림멜레 지음, 장혜경 옮김 / 터치아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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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는 '이과수 폭포'가 있다. 이과수 폭포는 아름다움으로 꽤 유명하다. 이 폭포는 아르헨티나가 80%를 소유하고 있고 브라질이 20%를 소유한다. 그러나 이 폭포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는 브라질로 행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보다 훨씬 더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든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더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브라질로 행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때로 한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상대를 바라보는 일이 더 쉽다. 자신의 표정을 아는 것보다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것이 더 직관적으로 편하다.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보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호흡을 보는 편이 훨씬 쉽다. 고로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더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호흡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목소리는 어떤지, 표정과 말투는 어떤지 그것을 잘 관찰해야 다음 우리 선택을 현명하게 할 수 있다.

욕망에 휩쌓일 때,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무한대로 가속하며 달려 나간다. 욕망과 바람을 살피지 못하고 끌면 끌려가는 자석과 쇳덩이 같은 관계를 가진다. 욕망이 끌면 끌리는대로 따라가고 다른 욕망이 자석이 되어 끌어당기면 우리는 역시 그 방향으로 언제든 끌려간다. 그러니 주체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엉터리 자아가 형성된다. 방향성도 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고로 자신의 욕망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에서 어떤 욕망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욕망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고로 욕망을 알기 위해서 선호를 알아야하고 선호를 알게되면 가치관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해야 한다. 치약을 뚜껑을 열고 뚜껑이 아닌 치약을 갔다버리면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주어진 옵션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야하며 그 욕망의 끌림에 어느정도 응할 수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패턴'을 살펴봐야 한다. 사람의 소비패턴은 그 사람을 알 수 있게 한다.

2012년 미국의 대형소매 업체 타겟에서는 소비자의 행동 분석과 그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소비자가 선호할만한 할인 쿠폰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런데 한 부모가 마트로 항의를 했다. 자신의 자녀는 여고생인데 어째서 임산부 용품관련 할인 쿠폰을 보냈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고생은 실제로 임신한 상태였으며 타겟의 예측 모델은 여고생의 평소 구매 패턴을 통해서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지출이란 우리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돈'을 포기해서라도 얻고 무언가다. 바로 '돈' 보다 상위한 우리의 '욕망들'이다. 소비를 관찰하는 것은 욕망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어떤 사람은 경험에 비용을 지불하고, 어떤 이들은 사치품에 비용을 지불한다. 누군가는 여행하는데 돈을 쓰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는데 비용을 치룬다. 사람마다 돈을 포기하게 만드는 욕망의 모양이 각자 다르다. 고로 무엇에 지출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를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에 종속되어 있는가. 그것에서 자유로운가. 구매하는 것은 욕망에 끌리는 것이고 소유하는 것은 지난 욕망에 미련을 갖는 것이다. 고로 무엇을 구매했는지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혹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혹시 유통기한 지난 조미료? 곰팡이가 쓸고 눌러 붙은 영양제? 사용하지 않는 치약뚜껑이나 고장난 전자기기? 꼬여 있는 충전선이 저 보이지 않는 서랍 구석에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버리지 못한 미련들은 물리적 공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간에서도 우리의 여유를 좀먹는다.

20세기, 물품의 대량 생산은 시작됐다. 소품종 대량 생산의 시작이다. 포디즘과 테일러리즘 덕분에 이는 가능해졌다. 포디즘은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 '포드'의 이름을 땄다. 생산 조립라인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생산 공정을 표준화하면 물품은 빠르고 쉽게 생산된다. 테일러리즘은 '프레드릭 윈즐로 테일러'의 이론이다. 포디즘에 기반이기도 하다. 작업을 세분화하고 표준화하여 효율적으로 물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후 '플라스틱'이 개발되면서 더 싸고 더 편한 물품이 대량으로 나오게 됐다. 원래 피아노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마리의 코끼리를 죽여야 했다. 지금은 석유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얻게 된 부산물로 쉽고 싸게 플라스틱을 만들어 버린다. 고로 대부분의 물건 값은 허무맹랑할 정도로 저렴해져 버렸다. 고로 어떻게 되어 버렸는가. 우리는 함부로 사고, 버리지 못하며 계속 쌓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욕망과 미련에 쉽게 유혹되어 종속되어 버린다. 때로 그 종속을 더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또다른 종속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체적인 삶은 어디에 있는가. 버리다보면 들이는 일도 신중해진다. 그럼 욕망에 덜 끌리고, 소유에 덜 미련을 가지며 그 모든 유혹에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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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알려주는 염증 제로 습관 50
이마이 가즈아키 지음, 오시연 옮김 / 시그마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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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산소를 만나면 녹이 스는 것 처럼, 인간의 세포도 산소와 만나면 염증이 일어난다. 산소는 세포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인 동시에 해로울 수 있다. 이렇게 세포에 '녹'이 슬도록 하는 산소의 반응산물을 활성산소라고 한다.

아무리 아끼고 타도 오래된 자동차는 어딘가 녹이 슬기마련이다. 우리 몸도 그렇다. 관리를 잘하더라도 어딘가에 염증이 발견한다. 자동차에는 평균 3만 5천개의 부품이 사용된다. 인간의 세포는 대략 35조 개이다. 단순 비교가 옳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자동차보다 10억배 이상은 더 복잡하다. 고로 가만히 숨만 쉬며 시간을 보내도 우리의 몸은 쇠퇴한다. 다만 같은 물건이라도 관리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가령 어떤 자동차는 꾸준한 기름칠과 관리로 30년이 지나서도 문제가 없는 반면, 어떤 자동차는 10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녹이 슬기도 한다.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은 이를 알고 매일 기름칠하고 닦는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어떤가. 우리몸도 비슷하다. 우리몸을 이루는 35조에서 37조 개의 세포는 자동차보다는 더 복잡하고 염증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공들여 할부금을 갚는 고급 스포츠카보다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주어진 '몸뚱이'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오래 전에 받아서 '거저'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지는 이 몸뚱이를 고급 스포츠카보다 더 아끼고 관리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첫째, 매번 식사할 때, 한입에 30번 씹는 것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한끼를 먹을 때 씹는 횟수가 13세기에는 2,654회였다. 그러다 20세기초가 되면서는 1420회로 크게 줄었다. 우리는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폭식'을 유발하고 내부 장기들이 과도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오래 사용하는 아이폰 뒷판이 뜨끈해지면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듯, 우리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도록 내부 장기를 두어서는 안된다. 적게 씹으면 음식물은 덜 분해가 된 상태로 위에 도달한다. 덜 분해가 된 음식을 분해하기 위해, 위장은 더 많은 위산을 분비한다. 더 많은 위산이 분비되면 위벽이 자극을 받아 장기적으로 세포 손상이나 염증이 발생한다. 대체로 '소식'을 하거나 '마른 유형'의 사람을 보면 한 입을 물고 보통 사람보다 오래 씹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오래 씹으면 식사시간이 길어지고 위가 포만감을 느끼는데 걸리는 지연 시간인 20분 이상을 초과하여 더 적게 먹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둘째, 앉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회가 되면 앉으려는 엉덩이 무거운 현대인들에게 '반이나 남은 물'이라고 한다면 앉을 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오래 앉아 있을 수록 손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지 못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는 편이 낫다. 걸을 시간이 현저하게 적은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걸을 수 없다면 차라리 서는 편이 낫다. 인간의 근육은 상체에 60%, 하체에 40%가 몰려 있다.

예전에 헬스장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다이어트를 하려면 '상체 근육'이 아니라 '하체 근육'을 운동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근육량으로만 비교하면 상체가 더 많은데 왜 하체 근육을 키우라고 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다. 상체 근육은 밀고 당기는 동작처럼 기능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 고로 기능별로 더 세밀하게 나눠져 있다. 반면 하체의 경우에는 가장 큰 근육 그룹이 있는 부위로 하체 근육이 발달하면 기초대사율이 증가한다. 기초대사율이란 단순히 현상 유지만을 위해 사용되는 '열량'을 말한다. 고로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어도 누군가는 더 많은 열량을 태운다는 의미다. 근육은 같은 부피의 지방에 비해 3배나 더 무겁다. 고로 쉽게 말해 근육은 고무줄, 지방은 솜과 같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과 밑으로 뒤룩뒤룩 삐져나온 솜은 분명 같은 무게임에도 보기에 달라진다. 고로 하체를 평소에 사용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셋째, 혼잣말을 할 때,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불러라.

조금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것은 정신건강에 몹시 좋다. 어제 다율이가 하율이에게 '수수께기 문제집'으로 문제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문제는 이랬다.

"내것인데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정답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름'이었다. 이름은 분명 나의 것인데, 가만보면 나는 하루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부를 때, 보통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대명사 나'는 '인환'이라는 고유명사를 대신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는 언뜻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성의없이 대명사를 쓰곤한다.

'야, 저기 너 앞에 그거 좀 거시기 해봐라.'

이런 대화법에서 상실한 것은 '고유한 정체성'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야, 너, 저기'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부르는 편이 우리를 각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하루 평균 4만에서 7만 번의 혼잣말을 한다. 이 혼잣말에 대부분 '주어'가 생략되거나, '대명사'인 경우가 많다. 특히 동양에서는 '주어'가 자주 생략되곤 하는데, 이는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던 과거 농경시대의 언어적 습관이기도 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문장은 명문으로 유명하다. 이 문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고로 모호한 상태와 동작이 안개를 가로 지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글이 영미권으로 번역될 때, 언어의 특성상 부득이하게 임의적 '주어'를 만들어 넣었다. 고로 온전하게 그 문학의 어감이 전달되지 않았다. 참고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3인칭 시점으로 불러 자아의 정체를 살려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넷째, 쉼.

최근 나의 최대 관심사는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줄이는 것이다. 인맥, 물건을 포함하여 하나씩 줄여나간다. 요즘 학원가에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스마트폰을 꺼낸다. 쉰다는 개념이 잘못 들어섰다. 쉰다는 개념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한숨을 '쉬다'처럼 숨을 내뱉는 일이다.

다만 현대인들은 대부분은 '쉼'이라는 표현에도 '열정'을 담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SNS를 확인하고 게임을 한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이다. 노는 것은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에너지를 요한다. 다시말해서 '일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은 일하다가 다시 노는 것이다. 그렇다면 쉼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재밌게 놀더라도 쉼이 있어야 한다. 하루종일 놀다가는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일하다가 다시 놀다가, 다시 일하다가를 반복하는 것은 뇌의 입장에서 '피로상태'를 지속한다는 것을 이미한다. 피로한 뇌는 더 빠르게 노화되고 기능저하를 겪는다.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외부 자극과 정보를 줄이고 가만히 눈을 감고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것의 최고는 전인류사의 맥락을 보건데 '명상'과 '잠'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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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세계적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15가지 양육 법칙
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강유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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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더니 목이 따끔 거렸다. '타이레놀' 두 정을 물과 삼켰다. 예전 읽었던 백승만 작가의 '분자 조각가들'이 떠올랐다.

약을 먹으면 아픈 곳만 집중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몸은 전체가 하나의 화학덩어리다. 투약에 의해 몸이 가진 화학적 농도는 달라진다. 약물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할지, 어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타이레놀, 즉 아세트아미노펜은 통증을 완화하고 열을 낮춘다. 두통이 있어도, 치통이 있어도 복용할 수 있다. 통증을 완화한다. 그렇다면 이 약품은 어떤 애니메이션처럼 우리몸에 들어와 아픈 곳의 세균에 다가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약물은 혈류를 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세포와 조직에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서 부대찌개의 햄 너무 짜기 때문에 찌개 자체에 물을 붓는 행위와 비슷하다. 두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약물은 두통을 유발하는 신경 회로를 차단하고 체온 중추에 작용하여 열을 낮춘다. 다만 우리가 필요한 역할만 골라서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이 과정에서 화학적 균형이 깨진다. 이것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바로 '졸음'이다. 현대 화학약물의 역사는 '졸음'을 어떻게 조절하는가로 발전해 왔다. 졸음을 유발하는 두통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체약품이 개발됐고 어떤 약품은 치료제로 시작했다가 수면제로 역할을 바꾸기도 했다.

갑자기 왜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이루는 자아가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형성하는 여덟가지 지체는 몸, 생각, 감정, 감각, 관계, 환경, 영양, 영혼이다. 즉 우리는 여러 조건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반대로 하나의 정체성은 여러 조건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약물과 같이 하나의 투약으로 이것 전체의 농도는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말을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늬앙스의 경험을 하는가,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 불가능한 '사이드 이펙트'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의도대로 전달되는가. 알 수 없다. 여덟가지 지체가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자아'가 되나. 고로 사람이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단순한 몇가지 요령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육아 전문가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칭찬하세요'라고 말한다. 다른 어떤 육아 전문가는 '칭찬은 되려 독이 됩니다. 칭찬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전문가 의견의 반대편에 전문가가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커피의 효능'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에 '커피와 숙면'을 검색하면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신철 교수님'의 영상이 나온다. 아침이나 낮에 마시는 커피는 밤에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영상이다. 뇌와 신체가 카페인 효과로 인해 활동성이 높아지고 이로인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숙면을 위해서는 커피를 무조건 절제하라는 조언의 영상도 있다.

'고구마의 다이어트 효능'을 검색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고구마는 당과 칼로리가 높고 탄수화물이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해롭다는 의견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GI지수가 낮은 음식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전문가는 전체 중 일부를 들여다보는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세분화한 내용에 대해 특화적으로 연구한다. 고로 전반적인 균형은 독자가 판단해야 한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물질이 있다. 뛰어난 각성효과는 문학이나 예술, 음악, 과학계 거장들에게도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고 식욕을 억제하며 불안감과 긴장감을 급속도로 해소 시키는이 물질은 세로토닌을 분비하여 기분조절에 도움이 된다. 심지어 빠르게 인지력과 학습능력을 올리는 효과도 있다. 이 물질의 일반적 이름은 '담배'다. 좋은 부분만 취합적으로 보게되면 마약이나 담배에게서도 충분히 좋은 부분을 찾아 낼 수 있다.

전문가가 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가설 설정'이다. 전문가는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먼저 설정하고 실험을 설계한다. 이후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고로 '실험과정'에 주관성은 개입할 수 없으나 실험 단계수립 단계에서 이미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다.

논문을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주제나 접근 방식이 기존 연구와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기존 연구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통해 오류를 검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성은 논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마늘의 효능'을 이야기하면 '마늘의 부작용'이 확실한 차별성이 된다. 현대 과학은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고로 끊임없는 창과 방패가 서로가 서로를 찌르고 막는 모순을 쌓아가며 발전해 간다.

고로 어느 한쪽의 절대성이 생기지 않는다. 과학에는 100%는 없다.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생각해보건데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닐 수 있다. 데이터 전문가에 의하면 아이를 길러내는 것은 '부모'보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또 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고로 '맹신'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취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며 자신의 철학에 맞도록 선택 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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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특별판)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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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11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다. 그는 고향, 알텐하인으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가족의 형태는 이미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으며 그의 인생도 역시 그랬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을은 역시나 작은 마을이었으며 사건 피해자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스테파니와 로라의 실종 사건은 조용한 마을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 사건의 중심에 토비아스 자토리우스가 있었다. 그는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곧 의대에 진학하여 총망받는 삶을 살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하루만에 일어났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채 바뀌었다.

형사 피아와 보텐슈타인은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로 한다. 그들은 알텐하인으로 간다. 사거의 진실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마을은 조용하고 작았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작은 마을에는 깊은 어둠이 보였다.

기억을 상실한 토비아스는 그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의 기억에는 두 시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멜리라는 소녀에 의해 자신의 결백이 증명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렇게 한참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아멜리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11년 전 사건과 너무나 비슷했다. 피아와 보덴 슈타인은 아멜리의 실종과 11년 전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은 하나씩 벗겨진다.

어디서 봤던가... 했던 이 소설은 꽤 오래 전, 동생의 추천으로 읽었던 추리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2024년 8월에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한다. 제작된 드라마에서는 원작 소설의 복잡한 인물 관계와 비밀이 어떻게 영상으로 펴현될지 기된다. 원작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서스펜사가 드라마에서 잘 구현될 수 있을까.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11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자신이 정말 결백한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기억이 사라진 부분에 대해 모호한 의심만 있을 뿐이다. 그 심리적인 갈등은 독자와 시청자로 하여금 응원을 하도록 만든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작은 마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추악함을 잘 보여주는 이 소설은 하나하나 안개가 걷히는 바와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다시 읽어보니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 소설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우리 사회를 축소한 축도처럼 보여진다. 겉은 평화스럽지만 그 속에는 질투와 증오, 복수심이 가득차있다. 사회라고 말했지만, 개인의 외면과 내면도 비슷하다.

우리는 겉으로 말끔한 척 살아간다. 체취를 감추기 위해, 향이 나는 샴푸와 비누,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하거나 세련된 옷을 차려 입기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담고 있는 '열등감'과 '증오', '자격지심', '질투'들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한 거짓을 거트로 두른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그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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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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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노우에 사나'와 '미쓰자와 데스로'는 침팬지와 인간의 지적 대결을 기획한다. 침팬지 어미와 새끼 세 쌍에게 터치스크린에 뜬 숫자(1에서 9까지)를 알아보고 순서대로 터치하도록 훈련한 것이다. 숫자는 스크린에 잠시 비춰지고 사라진다. 침팬지는 숫자를 순서대로 누른다.

대결 상대는 인간 대학생이다. 역시 만물의 영장답게, 인간은 침팬지를 이겼다. 인간 12명 중 7명이 모든 침팬지를 이겼다. 다만 숫자가 더 빨리 사라지고 더 어려워지자 점차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한다. 다섯 살배기 침팬지 한마리가 모든 인간을 이기기 시작한 것이다. 난이도는 점차 올라갔다. 이후, 모든 침팬지는 모든 인간보다 정확했고 빨랐다. 인간이 전패한 것이다. 속도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인간과 다르게 침팬지들의 성적은 속도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았다.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이 모든 자연의 '개체'보다 월등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어떤 인간은 '돌고래'보다 낮은 지능지수를 갖고 있다. 측정 방법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지적 차이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렇다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할 수 있게 했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조지프 헨릭은 하버드 대학교 인간 진화 생물학과 교수다. 그는 인간의 진화, 문화, 사회적 학습.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내가 그를 알고 있는 이유는 '위어드'라는 도서를 통해서다. '위어드'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위어드는 문화적 진화가 인류의 역사와 뇌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현대 서구 문명이 현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다. 인간의 '진화'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 문화의 변화'를 통해 다른 경로를 갖게 됐다.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이다. 그렇다. 불과 40만 년 동안 뗀석기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겨우 청동기라는 금속을 사용한 것은 고작 5000년 전 일이다. 금속의 우연한 발견과 함께 40만년을 쳇바퀴 돌듯한 인간의 진화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졌다.

단순히 역사를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감이라는 본질을 통찰하는 과정으로 인지해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진화'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헨릭 교수는 인간의 문화적 발전을 진화라는 언어를 통해 설명한다.

다양한 종교나 신화를 보면 우리 인간은 '자연'과 별개의 객체다. '자연'과 동떨어진 생물학적 배경으로 우리는 자연과 스스로를 구분 지었다. 다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으며 그 연결점은 얕게나마 존재한다. 고로 우리가 독보적인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현재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다는 그 작은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회성'일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침팬지 한마리보다 생존력이 떨어진다. 자연에서 최약체로 평가되는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이유는 인간의 진화가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하는 것이 다른 종에 비해 우월했을 뿐이다.

침팬지, 오랑우탄 그리고 두 살 짜리 인간을 비교해 보건데 다른 두 유인원에 비해 인간이 보유한 유일하게 월등한 인지 능력은 '사회적 학습 능력'일 뿐이다. 물론 다른 인지능력에서도 인간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약간의 우수함을 보였으나, 그 차이는 미미했다. 어린 인간의 공간 능력이나, 수량 능력, 인과능력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월등하다고 할 수 없다.

나약한 인간의 '지적능력'으로 우리를 만든 것은 '생물학적 진화'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이성을 선택할 때, 생존능력보다는 '외모'를 살핀다.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사회적 능력이 배우자 선택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다. 그것은 우리를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었다. 사회를 이루도록 진화한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이 삶에 대한 능동적 해석의 중요성을 말한다.

자연선택은 우리가 자연에 의해 선택 당하고 있음을 말한다. 다만 인간은 그저 선택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화가 우리를 수동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으나, 우리는 문화를 통해 진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진화'는 '능동적 대처'가 가능하고 언제나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책 재미 있습니다. 1부, 2부, 3부로 쪼개어 업로드 하겠습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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