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부처의 말 - 2500년 동안 사랑받은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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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렇다고 부처가 만든 종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부처는 인간의 삶이 수레바퀴처럼 돌고돌아 '고'와 '락'이 번갈아오는 '윤회'라고 여겼다. 그는 제자들에게 '고락'의 윤회를 끊어내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곤 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를 우상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우상화 하지말고 스스로 정진할 것을 독려했다. 그러나 후대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며 결국 그를 숭배하게 되었다.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던 시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던 시기. 그들의 이야기는 왜곡이 불가피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 전통에서 사랑과 자비를 가르쳤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의 많은 제자와 추종자를 길렀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은 그의 가르침을 체계화했다. 특히 사도 바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시초다.

예수와 싯다르타는 각각 기독교와 불교의 창시자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존경하던 많은 이들의 선한 마음의 불가피하게 왜곡을 만들거나 강요를 만들기도 했다.

불경과 성경은 '종교적 색깔'을 제하고 보면 무교인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발서다. 인류의 스승조차 바라지 않았던 무조건 숭배를 다시 생각해 볼만하다. 왜 주말마다 교회를 나가야 하는가. 왜 부처님 오신 날에는 등을 다는가.

이야기의 개요는 이렇다.

여러마리 원숭이가 우리 안에 있다. 우리 위에는 바나나 하나가 달려 있다.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려 손을 뻗는다. 손을 뻗자 나머지 모든 원숭이에게 찬물이 뿌려진다. 찬물을 맞은 원숭이들은 손을 뻗은 원숭이를 폭행한다. 다시 새로운 원숭이가 우리 속으로 들어온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다. 역시나 다른 원숭이들에게 찬물이 뿌려진다. 찬물을 받은 원숭이들은 손을 뻗은 원숭이를 폭행한다. 이런 절차가 몇 번 반복한다.

반복할수록 새로운 원숭이가 우리에 투입되고 기존 원숭이가 나간다. 결국 우리 안의 모든 원숭이는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됐다. 한 원숭이가 이어코 바나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손을 뻗은 원숭이를 구타한다. 찬물 사례가 없어도 그냥 폭행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원숭이가 묻는다.

"왜 때리는거야?"

그러자 한참 구타를 하던 원숭이들이 말한다.

"닥쳐.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진정 숭배의 대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아무런 비판적 사고없이 하던대로의 관성만 유지한다면 그것은 때로 목적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부처가 죽고 난 뒤, 제자들을 결속하기 위해 마하가사파는 제도를 재정비한다. 깨달음을 얻은 제자만 모아 규율을 확인하고 이를 통채로 암기하도록 시켰다. 이렇게 부처의 말은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다가 이를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로 분파가 나눠졌다. 부처는 자신을 스스로를 '불상'으로 만들어 숭배하지 말라고 일렀으나, 스승을 그리워하던 제자들은 그를 '불상'으로 제작하고 숭배했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며 변해가던 스승의 목소리는 이후 '절차'와 '법도'에 묻혀 어려워지고 중생을 위한 깨달음이라는 목적도 희미해졌다. 어려운 용어는 아는 이들끼리만 사용하는 사회적 방언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도의 복음 또한 울타리 내에서만 사용하는 언어로 굳어지며 결국 가장 스승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르침이 전달됐다.

중부경전, 사유경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강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만든다. 뗏목은 유용하다. 강을 건넌 뒤에는 유용했던 뗏목을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간다. 결국 더이상 무거워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뗏목이 짐이 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업적이나 학력, 경력, 가르침 모든 것이 그렇다. 나를 위해 유용했던 어떤 것은 집착이 되면 짐이 된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 조차 뗏목과 같아서 그 자체로 쓰임을 다했다면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스승이 말하던 가르침이다. 이를 수행하던 제자들이 아이러니하게 스승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붙잡는다. 죽어 없어져야 할 육신은 '불상'이 되어 영생하고 영혼 또한 속세에 잡혀 있으니, 스승에 대한 옳지 못한 존경심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는 인류의 스승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단순한 숭배가 아니라 실질적 배움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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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이은경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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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작가'의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에는 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작가가는 잠깐의 외출동안 아이에게 약을 먹으라고 주문한 것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 약통의 약이 모두 비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보름치의 약을 모두 삼켜버런 아이와 엄마는 황급히 약사를 찾아 나선다. 해당 구간을 읽으며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준비한 약이 때로는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좋은 약도 복용량이 정해져 있다. 적은량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도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와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난관에 부딪쳤다. 아이가 꽤 높은 턱을 만나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바구니에는 외출시 항상 챙겨야 하는 동화책이 들어 있었고, 높은 턱을 넘으려다 몇 번을 자전거가 넘어졌다. 자전거가 넘어지며 아이의 다리에도 적잖은 상처가 났다.

가만히 서서 아이가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손은 자유로웠다.

성큼성금 다가가서 한손으로 안장을 들어 올려주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아이는 잠시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할 수 없는게 아니라, 하기 어려운 거잖아. 어려운 건 해봐야 쉬워지는 거야."

가만히 서서 기다려줬다.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고 줍기를 반복했다. 다가가서 아이의 가방정도를 들어 주었다.

"왼손으로 손잡이랑 브레이크를 잡고, 오른손으로 안장을 잡고 들어 올려봐."

아이가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전거는 턱을 넘어섰다.

이런 식이다. 자전거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아버지가 해주는 것은 거기까지다. 가령 자전거를 구매하거나 보조바퀴를 붙여야 하는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뭐든 직접하게 한다.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운동을 하다보면 극한까지 운동량을 올리고 마지막 '하나'를 들어올릴 때 손가락 하나로 도움을 준다.

가만 생각해봐도 그게 도움이다.

도와준다는 셈치고 들어올리고 있는 바벨을 모두 들어주는 것이 도움이 아니다. 뭐든 도움은 단 번의 커다란 도움이 아니다. 지켜보면서 가장 극한에 치달았을 때, 성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만 주는 것이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이후 원리를 설명했다. '스티킹포인트'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없는 극한의 상태부터가 성장이다. 무하메드 알리가 팔굽혀펴기를 처음부터 세지 않고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세는 이유도 비슷하다.

원리를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티킹포인트를 겨우 넘어서게 되면, 다음의 스티킹포인트는 한단계 올라선다.

아이의 고통을 무조건 방관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항상 아이에게 그 원리를 설명한다.

"아빠가 도와주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기 때문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찌보면 나는 '다정한 관찰자'는 아니다. 냉정하다. 원래 나이랑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생후 몇 개월 된 사피엔스가 겨우 내는 옹아리나 생후 38년 된 사피엔스가 겨우 가질 건물 한 동처럼 말이다. 각 수준에 맞는 난이도는 존재하고 각자마다 그것을 극복하는데 얻게 되는 스트레스의 양은 적잖다.

아이가 등급 하나를 올릴 때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 아이가 경쟁자 하나를 이길 때마다, 자신은 비슷한 자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위치 할 수 있는가, 살펴보면 아이가 처한 주관적 난이도에 대한 객관적 공감을 가질지 모른다.

내가 넘지 못한 벽을 아이가 넘어서길 바라지 않는다. 직접 격고 자신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도 도전을 권장한다. 그렇지 않은가. 당장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모는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가.

결국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부모가 성장해야 한다. 아이가 책을 보기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봐야 한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다. 다시말해서 아이가 어떤 벽을 넘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부모가 비슷한 수준의 벽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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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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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다. 단순한 지리적 묘사처럼 보인다. 다만, 이 문장은 꽤 많은 것을 함축한다. 우선 글의 '주어'는 무엇인가. 문장에 주어가 없다. 이는 '한국'과 '일본' 등 동양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영미권에서는 첫문장을 대체할 완전한 번안을 찾지 못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여러 번역가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번역마다 차이는 있으나 '에드워드 G. 사이든스티커'와 '노먼 케이저'의 번역을 보면 둘 다 문장의 주어 자리에 Train을 집어 넣는다.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The train emerged from the long border-tunnel-right into the snow country."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설국의 첫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일본과 같은 어순을 사용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 덜 특별할 수도 있겠으나, 영미권 독자들이 그 감성을 그대로 전달받기는 쉽지 않다.

이 문장은 일본 문학을 넘어, 동양 문학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이다.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아마 그 비중에서 이 첫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을 것이다. 첫문장은 눈으로 덮인 고장을 묘사한다. 다만 특별히 주어가 없다. 동양 특유의 함축적이고 서정적인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문장의 함축성과 모호성은 '도가 사상'을 닮았다.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도가적 사상이 현대에와서 '양자역학'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현대적인 사상이 됐으나, 얼마 전까지 동양의 '포괄적 수용'은 '단순 모호성'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던 '도가사상'처럼 '설국'은 명확히 '줄거리'를 말하기 쉽지 않다. 그저 있어 본 적 없는 일들이 있을 법한 일들처럼 서사되는 이야기이며 그 연결성이 너무 자연스러워 특별할 것 조차 없어 보인다. 흔히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글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작가는 소설의 '스토리라인'에 집중하지 않았다. 작가는 그저 짤막짤막한 서정적 묘사를 담았을 뿐이며 이것이 그저 군데군데 자연스레 편집되며 하나의 소설 형태를 이뤘을 뿐이다. 작가가 담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으니, 독자가 소설에서 이해하는 바도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부르면 도는 더이상 도가 아니다. 즉, 소설은 그저 자연과 현상을 담고 명확히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소설 전반의 정체성은 앞서 말한 첫 문장이 보여준다.

자연이 주는 순수함, 고요함, 그 속에 숨겨진 심오함.

넘어서는 지리적 경계, 또한 넘어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주어 없이 페이드아웃으로 넘어서며 독자는 긴터널을 뚫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 젖어들게 된다.

소설이 담은 난해함과 동양 문학의 정체성, 깊은 철학적 사유는 단순히 '이러하니, 저러하다'로 정의할 수 없는 포용성을 가진다. 서양식 사고 방식이 이미 대세를 이룬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 모호성이 굉장히 이국적이여 보일 정도다. 인간의 이성이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접근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정의됐다. 이는 서양의 논리적이고 명확한 사고를 만들어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의 근간이 됐다.

괜히 그렇다. 우리 또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이름을 '노자'보다 더 쉽게 들으며 동양의 철학적 전통인 '직관', '모호성', '전체적 사고'가 가진 '애매함'을 답답하게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지리적 입지를 '동양'에 두고 그 철학을 서양으로 옮겼는지 모른다. '야스니라'의 설국열차가 점차 다른 세계로 이동했던 것 처럼 우리는 명확해야 했던 것들에서 벗어나, 과거 이 땅에서 우리 조상이 가졌던 동양적 사고관으로의 인식 변화를 겪어 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달이 가진 '구성성분, 반지름, 둘레'가 아니라 이태백의 술잔 속에 담겨진 달이 조금더 더 달을 잘 표현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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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징비록 (패브릭 양장 에디션) - 국보 132로 오리지널 초판본 패브릭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류성룡 지음, 김문정 옮김 / 더스토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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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명나라에 조공할 길이 열리지 않아 전쟁을 벌였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에는 임진왜란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징비록'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하면서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이는 실상 명나라를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야망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본이 조선침공에 대해 표면적인 이유가 그렇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부분인데, 아무렴 현대인의 입장에서 '조공'을 바치고 싶기에 전쟁을 벌인다는 명분이 납득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에 집중해야 한다. '조공을 받친다', '선물을 내린다', '책봉을 받는다', '책봉을 내린다'라는 언어에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상하관계'가 녹아져 있다. 이는 유교 사회에서 중요한 정리중 하나인데, 유교는 관계와 위치를 정의하고 정리하여 그에 맞는 언어사용을 몹시 중요하게 여긴다. 다만 이는 관계에 맞는 '상호예의'일 뿐이다.

일본의 전쟁 명분은 '조공-책봉 체제'에 합류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즉, 명으로부터 책봉받고, 조공을 바치고자 전쟁을 벌였다. 얼핏 이해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언어를 다시 현대적인 의미로 정리해보자.

과연 '조공'과 '책봉'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에서 조공과 선물 교환은 중요한 외교적, 경제적 관행이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조공-책봉 체제'는 주변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형성하게 했다. 고로 이는 외교적으로 안보적으로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현대 한미 동맹처럼 강력한 상호방호조약과 같다.

일단 조공은 주변국이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이다. 이로써 황제는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권력을 과시한다. 다만 이는 일방향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조선이 조공을 보내면, 명은 반드시 같은 양의 선물을 보내와야 했는데, 현대 우리식으로 보자면 '수출과 수입' 같은 개념이다. 다만 여기에 '정치적 의미'를 가진 '언어'가 심어져 있을 뿐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조선이 명나라에 너무 많은 조공을 보내자, 명나라가 이를 부담스러워 하며 조공의 양을 줄여줄 것을 요구한적 있다. 대체로 성종과 연산군 시기에 걸쳐 일어 났는데, 성종 10년인 1479년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조공이 너무 많아 감축을 요구 했다.

'책봉' 또한 '상호 외교 승인 및 동맹 조약'이라 보면 쉽다. 쉽사리 명이 조선에 대한 파병요청만 부각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명나라 또한 여진과 몽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강력한 동아시아 군사 경제 동맹 체제에 합류하는 것은 당시 일본에도 중요한 일이었다.

16세기 말,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 시대가 종식되고 통일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농업 생산량은 급격하게 증가 했는데, 농지 개간이 활발히 이뤄지고 사회가 안정화에 돌입되면서 쌀생산량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에 토지 조사를 실시하고, 세금제도를 개혁한다. 이 과정에서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했고 쌀 가격이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생겨난다.

과거나 지금이나 산업혁명 시기도 마찬가지다. 공급과잉은 인플레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시장이 포화되면 쌀을 외부로 수출하거나 소비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역사에서 이런 경우에 전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것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일본은 수출을 통해 국내 쌀 가격을 안정시키고, 경제적 불균형을 해결하고자 모색했다. 19세기 영국이 청나라와 벌인 아편전쟁이 그렇고 세계 1,2차 대전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로, 이미 한나라 시기부터 5천만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즉, '중국' 시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최대 시장으로 주변국들은 이 시장을 열기 위해 간혹 전쟁을 불사하기도 했다.

이런 동아시아 정세에서 '임진왜란'이라는 필연적 전쟁이 발발했다. 임진왜란은 그 명칭이 '왜란'으로 불리기에 그 규모에 있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당시 삼국은 세계의 주요한 중심지 중 하나였다.

당시 중국의 인구는 1억, 조선의 인구 2천만, 일본의 인구 또한 2천만 정도였다. 경제규모와 군사규모도 인구와 비례하여 굉장했다. 조선과 일본의 인구는 같은 시기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던 강국 '프랑스'보다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유럽은 막 중앙집권체제가 생겨나던 시기였고 명나라와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 전쟁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수준급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각각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세 민족이 총력전으로 벌어진 전쟁이었다. 조총이라는 유럽식 무기가 도입됐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폭격기격인 비차가 도입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대규모 해상전쟁과 스파이 활동 등의 정보 전쟁 등 다양한 계략과 영웅이 탄생하고 사라졌으며 그 결과 또한 세 국가의 운명을 명료하게 바꿨놨다.

명나라의 경우, 조선에 파병한 군사적 부담감으로 급격한 국력 약화가 이어졌고 이후 '여진족'에 의해 멸망하는 직간접적 이유가 됐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하면서 에도막부 시대가 열렸다. 비로소 일본도 히데요시가 죽고 에도막부가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면서 250년간 안정적인 정체 체제가 성립됐다. 조선은 이후 교육, 외교, 복지 등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내실을 다졌다. 임진왜란으로 많은 문서와 기록이 파괴되었는데, 이에 따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실용적인 문자의 사용이 필수적이었다. 전쟁 직후 조선은 사회복구와 재건을 위해 문맹 퇴치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한글이 법령이나, 명령서, 행정 문서 등의 실용 문서에 사용되기도 했다.

여성과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한글 편지와 문서작성이 종종일어났으며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 한글 소설과 민중 문학이 발전하기도 했다. 또한 전후 100년간 농업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여 전쟁 전보다 50%이상의 생산성 향상이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삼국지'나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접할 수 있음에도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할 기회는 없다. '명량, 노량, 한산' 등의 영화를 보면 각각의 인물이 특성이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적국의 인물을 악역으로, 아군의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삼국에 다양한 영웅이 생기고 사라졌다는 점에서, 또한 세 국가의 국운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뒤틀려 진행됐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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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
이인우 지음 / 파람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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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특히 좋아한다. 기행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다. 기행문은 첫째로 수필이기에 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고, 때로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다.

사람은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보다, 다양한 사건에 휩싸였을 때 더욱 그 본질을 드러내는 법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이성으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일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된다면, 혹은 갑작스럽게 그 환경에 처하게 된다면 저도 모르는 숨어 있는 본성이 나오게 된다. '기행문'은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뿐이겠는가. 기행문은 그곳의 역사와 문화, 인문학적 배경을 알게 해주고 경제와 기후, 날씨를 비롯해 부차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마치 '하멜'이 회사로부터 보상 받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인 '하멜표유기'가 당시 우리 사회의 역사와 문화 등 시대적 배경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교토, 저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를 읽으며 교토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 다른이들은 모르겠으나, '일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교토'다. 교토하면 빨간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가 우산을 들고 게타를 신은 모습이다. 어쩌면 녹차가 떠오르고 배경에 흩날리는 겹벗꽃잎이 풍성한 장면 정도가 떠오른다.

막연한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전통화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우리의 '경주'와 많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뉴질랜드에서 유학하던 시절 함께 살던 일본인 친구가 '교토' 출신이었다. 그에게 교토에 대한 몇가지 질문을 했는데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녹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는데, 인상이 깊었다.

경주하면 신라의 고도(古都)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마찬가지로 교토도 일본의 천년 고도로서 그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교토식 정원에 대한 설명이다. 교토식 정원 중에서 물 없이 자갈로 물결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가레산스이(枯山水)라고 한다. 이는 일본식 돌 정원으로 자갈이나 모래를 이용하여 물의 흐름과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가레산스이는 종종 명상과 내면의 성찰을 돕는 용도로 만들어 지며, 교토의 유명한 사찰들, 특히 료안지 같은 곳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꽤 똑똑한 방식이다. 물이 아니라 '자갈'과 '모래'를 이용하여 '물과 바다, 강' 등의 자연 요소를 만든 이유는 이렇다.

첫째,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물길과 출렁임을 모래를 이용하여 표현하면 정원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둘째, 물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보수가 용이하고, 물이 얼거나 증발하는 등의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물이 있는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꽤 귀찮은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철학적 이유다. 자갈로 물결을 표현하는 것은 불교의 '선 사상'과 연결 할 수 있다. 단순함과 내면의 성찰을 '가레산스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도서에는 적지 않게 '철학'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정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찰'이라는 장소를 설명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사찰 문화는 깊은 역사적,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 이는 일본 불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본의 사찰은 단순히 종교 시설을 넘어, 문화유산, 예술, 건축, 정원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중요한 요소로서 기능한다. 일본에는 교토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다양한 사찰이 존재하며 이곳에서는 종교적 의식뿐만 아니라, 관광이나 명상, 예술 등의 다양한 장소로 활용된다.

특히 일본 사찰은 축제와 행사의 중심지로도 활용이 되는데,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교토틔 기온 마츠리와 같이 큰 축제들은 사찰을 중심으로 열리는데,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모두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내년 2월이면 아이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기로 했다. 여행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지인의 결혼식이 일본에서 열리다보니 방문하기로 했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 일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다음에 일본을 천천히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사찰'을 중심으로 여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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